양유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어젯밤 누나의 행동이 수상쩍었다. 갑자기 집에 오더니 어쩐 일인지 바로 다음 날 아침 별장의 인테리어 상황을 보러 가자고 아버지에게 말했던 것이다.“이번 일은 제 쪽 사람의 문제입니다. 강 감독하고는 무관하니 일단 가서 쉬세요. 별장은 다시 안전 검사를 받고 공사를 지속할 수 있을지 연락드리겠습니다.”양유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 대표님 믿고 가보겠습니다. 이런 일이 생겨서 속상하시겠어요. 유감입니다.”여름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장 반장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별장에 남은 양 회장은 멍하니 서 있었다. 양유진이 와서 말했다.“일단 집으로 모셔다 드릴게요.”차에 타면서 양유진이 양수영을 돌아보며 말했다.“누나, 선우 더러 우리 회사로 좀 오라고 해주세요.”동생이 이미 다 눈치챈 것을 알고 양수영이 당황했다.******1시간 반 뒤.진영그룹 회장실.한선우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 빈집에 CCTV까지 설치했을 줄은 몰랐네. 미쳤냐고?’“삼촌….”통유리 밖을 바라보고 서 있던 양유진이 돌아서더니 ‘철썩’하고 한선우의 뺨을 내리쳤다.귀가 다 웅웅 울릴 지경이었다.삼촌에게 따귀를 맞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왜 이러세요?”한선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삼촌은 언제나 자신을 제일 사랑해 주는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든 도와주고 감싸주고 보호해 주던 사람이었다.“왜 그런 것 같니?”양유진이 잔뜩 실망한 눈빛을 보냈다.“여자한테 복수하겠다고 내 별장을 물바다로 만들어? 네가 날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그런 짓을 해?”한선우는 반감이 확 올라왔다. 눈에 핏발을 세우고 소리쳤다.“강여름 때문이에요? 걔 때문에 절 때린 거예요?”“입 다물어.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좋아. 우리 그룹에서 너희 한주와 내년부터 진행하기로 했던 MOU는 전면 중단하겠다. 일전에 투자했던 자금은 전부 회수할 거야. 이제부터는 알아서 해라.”“그러시면 안 되죠.”한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준성이 노기 띤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이 망할 놈의 자식! 대체 또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외삼촌한테도 밉보였냐? 이제 진영그룹에서 자금을 철수한단다! 당장 기어들어 와!”******다음 날 아침, 여름은 양유진의 전화를 받았다.“같이 식사하고 싶은데 시간 있으신가요? 별장 문제로 상의 좀 하고 싶은데요.”“알겠습니다.”“식당 위치를 모를 테니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양유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여름은 양유진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12시 정각에 양유진의 차가 1층에 나타났다.여름이 앉자 양유진이 밀크티를 건넸다.“미안해요. 어제 그런 일을 당하게 해서.”밀크티는 딱히 비싼 것도 아니었으므로 여름은 거절하지 않고 받아 들었다.“측근에게 뒤통수를 맞아서 마음이 안 좋으시겠어요.”“여름 씨 일 처리 정말 현명했습니다. 선우에게 너무 실망했어요. 전에는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눈에는 한선우에 대한 괴로움도 담겨있었지만, 한편으로 여름을 향한 칭찬도 참을 수 없었다.여름은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한때는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가?따스한 햇살 같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양유진이 차를 몰았다.“우리 진영과 한주의 업무협업도 모두 취소했습니다.“선우 오빠에게 적잖이 타격이 되겠는데요?”여름은 한숨을 쉬었다. 한선우가 그렇게나 원하던 한주그룹의 후계자 자리도 불안해졌을 터였다.갑자기 서글퍼졌다.돌고 돌았지만 결국 뜻밖에도 여름의 쓰레기 같은 전 남친을 손봐 준 것은 진짜로 외삼촌이 되고 말았다. 최하준이 아니라.한선우가 한주그룹을 계승하지 못하게 되어도 강여경이 그와 함께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강여경이 한선우를 차버리고 다른 상대를 잡아버린다면 얼마나 흥미로울까.“기분이 좋지 않아요?”내내 여름이 한숨을 쉬다가 곧 울 것 같은 표정이 되다가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귀여웠다.“좋기는 한데 아마도 어머님께서 또 찾아와서 부탁하시겠죠.
‘우어어, 신이시여. 어떻게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한선우의 외삼촌이 날 사랑한다는데, 저는 이미 다른 사람하고 결혼했다고요!’게다가 지금 여름은 온 마음이 상처투성이라 한동안은 도저히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저, 죄송해요. 저, 저는 대표님을 그냥 편안한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친구로는 곁에 있을 수 있어서.”양유진은 침울해졌지만 그래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괜찮습니다. 받아 달라고 고백한 건 아니니까요.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여름은 마음이 아팠다.“그렇지만 저는 지금 연애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저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뭐, 왔으니 일단 식사하시죠.”여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레스토랑 밖 교차로에 스포츠카 한 대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보조석에 있던 최하준이 주의 깊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렸다.“좌회전해, 길가에 있는 저 레스토랑에서 먹자.”“안 돼. 기 팀장이랑 약속 있잖아.”이지훈은 최하준이 뭘 보는지 시선을 따라가 보고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어쩐지 차 안 공기가 싸늘해진다 싶었더니 최하준의 질투심이 발동했던 것이다.“취소해 줘.”최하준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지훈은 하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차를 돌렸다.두 사람이 레스토랑 입구에 나타나자 안내하던 직원이 흠칫했다.젊은 남자 둘이 레스토랑에 와서 밥 먹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저 두 사람 혹시, 그런 관계인가?’안타깝다는 표정을 얼른 숨기며 직원이 공손하게 물었다.“커플석으로 안내해 드릴까요?”“됐습니다.”최하준은 아무 표정도 없이 여름이 앉아 있는 곳으로 그대로 걸어갔다.다가가다 보니 여름이 다른 남자와 식사를 하는 게 확실했다.‘나에게는 한 번도 저렇게 환하게 웃어준 적이 없는데, 젠장!’“어라? 저 사람 진영그룹 양유진 대표 아니야? 전에 너한테 회사 일로 의논하고 싶다고 했던
‘미모야 더할나위 없지만, 성질은… 차마 빈말로라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그러나 최하준이 왜 이런 곳에 있는지, 여름은 순간적으로 가방을 들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앗, 두 분….”양유진은 놀라서 일어나 두 사람과 악수했다.최하준에게 손을 뻗었을 때 최하준은 거만하게 눈썹을 위로 한번 쓱 올렸다.그대로 몇 초가 흐르면서 양유진은 민망해졌다. 아마도 자신과는 악수를 하지 않으려나 보다 생각할 즈음 최하준이 손을 뻗어 악수했다.“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기분이 별로라서요.”양유진은 최 변호사와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특히 지난 번에는 진영그룹이 얽힌 소송을 한 건 맡아줬으면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잘 풀리는 것 같았으나 나중에 법률사무소 쪽에서 없던 일로 하자고 했었다.그래서 양유진은 최하준에게 그리 호감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최하준은 법조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니 체면을 세워줄 필요가 있고 혹시나 나중에라도 있을지 모를 협력의 가능성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그래서 양유진은 웃으며 물었다.“누가 이렇게 언짢게 했을까요?”최하준은 힘줄이 선명한 손가락으로 장미를 잡아 돌렸다.“여자들은 이런 유치한 걸 좋아하나 보죠?”여름은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양유진의 점잖은 얼굴이 잠시 굳었다. 이 꽃은 방금 자신이 여름에게 준 꽃이었다. 그런데 ‘유치한 것’이라니.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지만 드러낼 수는 없었다.“누군가에게는 유치할 수 있어도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마음에 새길만한 것일 수도 있지요.”“아~ 어쩐지. 내가 이런 걸 잘 몰라서 우리 와이프가 나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구나.” 최하준의 눈 위로 기다란 눈썹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푸헙!”여름이 마시던 주스를 뿜었다.양유진이 급히 냅킨을 건넸다. 여름은 인사를 하며 받아 들었다.“고맙습니다.”최하준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하고 여름을 바라보았다.“왜 그렇게 놀라시는 겁니까?”여름은 올라오는 화를 억누르며 미소를 지었다.
가뜩이나 최하준과 약속 한 번 잡기도 어려운데 차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여름이 거절할 수 있을까? 하준의 악랄한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별로 반기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우리가 두 분을 방해한 건가요?”최하준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아닙니다.앉으시지요.”양유진이 메뉴를 갖다 달라고 직원을 불렀다.네 사람이 끼어 앉아서 먹으려는데 꽃까지 놓여 있으니 좁았다.여름이 자기 쪽으로 꽃을 당기려는데 최하준이 선수 쳐서 꽃을 들고 직원에게 건넸다.“이것 좀 저쪽으로 치워줘요. 내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여름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평소 여름이 꽃을 사다 집을 꾸밀 때 한 번도 알레르기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이 분명했다.“알레르기가 있었군요.”양유진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네. 특히 분홍색 꽃 종류는 더 그렇습니다.”최하준은 태연하게 메뉴를 펼쳐 유유히 주문을 이어갔다.주문이 끝나자 양유진이 화제를 전환했다.“사실 제가 계속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최 변호사, 전에 왜 제 의뢰를 반려하셨는지요?”이지훈은 최하준이 너무 심하게 말을 할까 봐 얼른 나섰다.“그때 스케줄이 겹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케이크를 먹던 여름은 그제야 최하준의 직업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변호사였구나. 실력은 꽤나 좋은가 보지.’자신이 얼마나 바보짓을 했는지 그제서야 알았다.사람들이 말하는 ‘결혼하면 안 되는 상대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게 변호사다.변호사와 이혼할 때는 ‘속옷 한 장도 못 건지고 몸만 빠져나와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들이 도리를 따질 때 변호사는 빠져나갈 법적 허점을 파고든다고.어쩐지 그렇게 자신 있게 10년이 지나도 이혼은 꿈도 꾸지 말라고 큰소리치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대체 내가 어떤 인간을 건드린 거야?어머, 잠깐, 이 인간이 무슨 짓이지?’최하준이 테이블 아래서 여름의 다리를 문지르고 있었다.여름은 얼굴이 빨개져서 최하준을 걷어찼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워 들고 벌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최하준이 담배연기를 후 불었다.담배꽁초를 근처 휴지통에 지긋이 눌러 끄고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여름에게 다가왔다.“나 좀 봅시다.”최하준이 여름의 손목을 잡고 레스토랑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갔다. 여름은 최하준에게 이끌려 술 창고 뒤편으로 갔다. 컴컴한 곳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위험한 기운이 숨도 못 쉴 만큼 둘을 압도했다.“뭐 하는 거예요?”여름이 최하준의 가슴을 밀어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내가 묻고 싶은데요.” 최하준이 밀어내는 여름의 손을 낚아챘다. 손이 뜨거웠다.“양유진과 시시덕거리니 즐겁습니까? 당신, 유부녀라는 거 잊었습니까? 이혼 운운하더니 벌써 새 애인이 생겼나 봅니다?”최하준이 모욕적으로 쏘아붙였다.“최하준 씨, 말씀이 지나치시네요.”가녀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양유진 대표님과는 밥만 먹으러…”“밥만 먹으러 온 사람이 꽃을 줍니까? 그리고 밥 먹으러 왔으면 밥만 먹을 것이지 저 사람한테 왜 그렇게 활짝 웃는 겁니까?!”최하준은 말을 하면서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름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왜 더 화가 나는 것일까.여름은 머리가 복잡해지고 가슴은 답답해졌다.“능력 있고 예쁘게 태어난 걸 어쩌겠어요? 이런 내가 좋다는데 그게 이상해요? 있는 매력을 없앨 수도 없고.”최하준이 피식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려고 하자 여름이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최하준 씨에게 내가 별볼일 없고 뻔뻔한 여자로 보인다고 해서, 내가 먼저 남자를 유혹해서 그 남자들이 마음을 주는거라 착각하지 마세요. 어쨌든 당신과는 이혼할 거예요.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최하준 당신하고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같이 있고 싶지 않으시다?”최하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냉소를 지었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침대에 들어오고 싶어 안달이더니, 이제는 같이 있고 싶지 않다? 이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지금?”그 날의 일을 떠올리자 여름은 속
급히 전화를 끊고 다시 고개를 들다가 최하준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은 온통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달아오른 여름을 보니 최하준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입꼬리가 섹시하게 올라갔다.“속이 안 좋으셨군요?”둘러 댄 말이 참으로 궁색하다. 그걸 콕 집어주는 최하준이 얄미웠다.“됐어요. 와이프가 다른 남자와 있는 게 싫으면 하루 빨리 이혼 서류에 도장 찍으시죠.”“협박입니까?”싸늘한 말투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강여름 씨! 다른 남자와 만나고 다니다간 후회하게 될 겁니다.”여름이 지지 않고 대들었다.“최하준 씨가 변호사라는 거 알고 있어요. 날 사회에서 매장시킬 방법을 백 가지는 알고 있겠죠. 어차피 내 명예는 바닥이라 더는 떨어질 때도 없지, 간통죄도 폐지됐지. 난 위자료 줄 돈도 없어요. 돈도 없고 명예도 없는데 뭐 어쩌시게요?”눈을 똑바로 맞추고 당당하게 맞서는 여름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누가 위법이 아니라고 합니까? 혼인이 지속되는 한 아내는 남편에게 충실해야 하고 부당한 수법으로 상대방에게 관계를 강요해서도 안되죠. 강여름 씨는 몰래 약물을 이용해서 남편 신체에 상해를 가하려고 했어요. 이 모든 사실만 하더라도 족히 5년 형은 받을만 한데, 어떻게… 계속 해 보시겠습니까!”착 달라붙는 목소리였지만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엄중한 경고 사격이었다.“……”여름은 얼음이 되었다.‘이런 식이다? 해보자는 거지?’“아참, 보아하니 당신은 법을 전혀 모르는 것 같군요. 또 다시 강여름 씨가 양유진 씨와 식사를 하면, 회사로 고소장 날아갈 겁니다. 이제 가실까요?”여름의 손을 잡아 끌고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레스토랑을 나갔다. 오늘 최하준은 이지훈의 차를 타고 왔다. 이지훈은 지금 레스토랑에서 양유진을 상대하며 식사 중이다.최하준은 김상혁에게 데리러 오라고 연락할까 말까 고민했다. 여름이 최하준이 잡은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마침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버스에 올라탔다. “거기 서요!”최하준이 서둘러 쫓아갔다.가까스로 버스에 올
순간 버스 안에 있던 여자들의 시선들이 모두 여름에게 향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수? 하는 부러움과 질투의 눈빛들이었다. 여름은 어이가 없었다.‘뭐래? 갑자기 어디서 끼를 부려?’기분 나쁜 티를 있는 대로 냈다.“누구더러 여보래요? 소란피우지 마세요! 저는 모르는 사람이에요.”“여보, 화는 집에 가서 내고, 응?”최하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쓴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를 뒤지는 척을 했다.“진짜 지갑이 없나... 어? 이건가? 아, 이건 결혼 사진이잖아?”버스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광고라도 할 참이었다.“진짜 마누라 맞구먼. 색시, 이제 그만하면 됐어. 깜박 속을 뻔했네 그려.”잠자코 앉아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입을 열었다.“어여 버스 비 내요! 버스가 당신들 부부 싸움 하는 곳인 줄 알아?!!”버스 기사가 급기야 화를 내면서 말했다.“저런 남편이 있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겠네. 복에 겨워서 저러는 거지 원… 이제 됐으니 그만 해요!”아주머니 한 분이 옆에서 거들었다.“……”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아… 이거야, 원.’‘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결혼 사진을 왜 가지고 다녀?’승객들 성화에 못 이겨 여름은 어쩔 수 없이 버스 비를 냈다.최하준은 여름의 가녀린 허리를 덥석 끌어 안더니 귓가에 대고 섹시한 저음으로 속삭였다.“자기야~, 고마워.”최하준의 뜨거운 입김이 귀를 간질였다. 승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여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노려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빨리 꺼지세요!’ 라는 눈빛을 쏘면서.최하준은 여름을 따라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여름은 그를 무시한 채 휴대 전화를 꺼내 양유진에게 톡을 보냈다.-정말 죄송합니다. 큰이모를 우연히 만나서요… 급히 나왔습니다. 최하준이 곁눈질로 문자 내용을 보았다. 속이 다시 부글거렸다.‘닉네임도 바꾸고…내가 보고 있는데도 양유진에게 톡을 보내? 나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이모가 생겼습니까? 아직도 그쪽 집안 사람들과 연락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