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마련해 놨으니까 가서 좀 갈아 입어요.”송영식은 턱으로 소파에 놓인 검은 드레스를 가리켰다.“제 드레스는 멀쩡한데 왜 갈아 입어야 하죠?”윤서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당신 드레스가 우리 지안이랑 너무 똑같잖아.”송영식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지안이는 내 약혼녀니까 이제 회장 사모님인데 직원이랑 비슷한 옷을 입어서야 되겠어?”“……”윤서는 경악한 나머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뭐래! 아예 내가 같은 여자여서도 안 된다고 하지 그러셔?”송영식은 윤서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거참 지위가 있는 사람이 말이야 입이 그렇게 거칠어서야.”“아니, R&D 총감으로 모셔올 때는 굽신굽신하고 데려와 좋고는 이제 와서 뭐? 입이 거칠어?”윤서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디자인도 다른데 왜 백지안이 레드 드레스를 입으면 나도 레드 드레스는 입지도 못하는데요? 자기가 뭐나 되는 줄 아시나 봐? 참나 지금 그 집은 온 집안이 내년에 대통령 선거 준비한다고 다들 어디 가서 눈에 띄는 짓 안하려고 다들 모을 낮추는데 어디서 이런 자손이 나와서 집안을 흐리고 다니나 몰라?”그러더니 윤서는 돌아서 나가려고 했다.송영식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일부러 지안이랑 똑같은 색으로 입은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오늘 밤에 지안이보다 돋보여서 사람들 앞에서 지안이를 우습게 만들 생각이었잖아? 안 그래도 불쌍한 애를 진짜 너무 괴롭히네. 강여름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이제 그만 좀 하지 그래?”윤서는 아주 크게 심호흡을 했다.“머리가 어떻게 되신 거 아니에요? 상상력이 그렇게 풍부하면 화장품 회사 CEO가 아니라 작가가 되지 그러셨어요? 내가 백지안 코디야, 뭐야? 그 인간이 뭘 입을지 내가 어떻게 알아?”“당신처럼 음모가 많은 사람은 당연히 남들은 모르는 무슨 방법이 있겠지.”송영식이 냉랭하게 뱉었다.“아, 몰라! 어쨌든 난 죽기 전에는 옷 안 갈아입어요.”윤서는 그대로 걸어 나갔다.“댁이랑 계속 얘기하다가는 바보 옮을 것 같으니까 먼저 갈게
“뭐래? 진짜 바보예요? 그걸 안 붙이면 어떻게 나가?”윤서가 이를 악 물었다.“누굴 더러 바보래? 한번만 더 욕해 봐라, 내가 이걸 아주 그냥 밖으로 던져 버릴 거야.”송영식은 아까부터 은근히 말을 막하는 윤서에게 화가 났다.“…제가 잘못했네요. 제발 그걸 저에게 좀 건네 주시겠어요?”윤서가 웃음을 장착했다.“안 주워주시면 이대로 뛰어 나가서 회장님이 날 덮쳤다고 말하고 다니겠습니다. 밖에 기자도 많던데, 아, 백지안도 있지?”“졌다, 졌어.”송영식은 윤서의 협박에 어떨 수 없이 집어서 윤서에게 건네주었다.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송영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우스웠다.‘아니, 그저 니플 패치 하나 주워주는 걸로 저렇게 부끄러워할 일이냐고?’“뭐야,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셔? 영 여자 경험도 없는 사람처럼?”“누, 누가 경험이 없대?”송영식은 일부러 크게 말하긴 했지만 좀 주눅이 들었다. 서른이나 먹은 남자가 경험이 전혀 없다고 말하려니 뭔가 부끄러웠다.“경험이 있긴 있으시구나? 누구? 백지안에게 가서 말 해줘야지. 그래도 유경험자시라고.”임윤서가 빙글빙글 웃으며 약을 올렸다.“거 말 많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있지 그래.”영식이 어두워진 얼굴로 경고했다.“궁금해서 좀 물어본 걸 가지고. 설마, 여자 몸 본 것도 내가 처음 아닌…”임윤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영식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나가 버렸다.그러고 대뜸 문을 쾅 닫고 나가는 골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우스웠다.‘부끄러워서 화내는 거 봐.아니지, 설마 그렇게 순수하려고? 그러면 백지안 같은 인간에게는 정말 너무 아깝잖아.’----연회장.송영식은 와인잔을 들고 훌쩍 마셨다.‘젠장!’윤서 때문에 열이 받아서 그런지, 처음 여자 알몸을 봐서 그런지 열기가 몸의 특정 부위로 몰리는 기분이었다.‘이 나이가 되도록 경험도 없다니 어째 생각할수록 창피하잖아.’“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백지안이 다정하게 물었다.“임윤서 때문이지.”송영식이
윤서는 사뭇 두려움에 찬 목소리를 옆 사람 들으라는 듯 높였다.“아까 갈아입으라고 마련해 주신 블랙 드레스는 사이즈가 작아서 입을 수가 없더라고요. 백지안 님, 다음부터는 무슨 색 드레스를 입으실 건지 미리 좀 알려주세요. 또 같은 옷을 입어서 괜히 대표님한테 한 소리 듣기는 싫거든요.”주변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백지안을 쳐다보며 수근거리기 시작했다.“말도 안 돼. 빨간 색은 저만 입어야 하나?”“그러니까 말이야. 솔직히 임 총감이 자기보다 예뻐 보이니까 갈아입으라는 게 말이나 돼? 저런 사람인지 몰랐는데 실망이야.”“송 대표도 그래. 임 총감은 이번 신제품 조제사이자 오슬란의 공신인데 백지안이랑 같은 색 옷을 입었다고 뭐라고 하다니 제가 무슨 제왕인가?”“……”송영식과 백지안은 부끄러워서 목까지 빨개졌다. 송영식은 윤서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방 대표도 괜히 말을 보탰나 싶어서 좌불안석이 되었다.방 대표가 얼른 화제를 신제품으로 옮겼지만 어떤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가는 법이다. 드레스와 관련된 일은 온 발표회장 내로 퍼졌다.다들 경멸하는 시선으로 백지안을 보기 시작했다.백지안은 임윤서가 너무나 얄미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백윤택을 불러 속삭였다.“오늘 밤에 무슨 수를 쓰던 임윤서를 꼭 괴롭히도록 해.”“걱정하지 마. 임윤서가 마시는 술에 이미 사람을 시켜서 뭘 좀 넣었거든.”백윤택이 사악한 웃음을 드러냈다.“밤에 내가 침대에서 아주 실컷 괴롭혀 줄게.”“좋은 소식 기다릴게.”백지안은 만족스럽게 웃었다.----이때 이주혁이 송영식에게 다가왔다.“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그래. 멀리 안 나갈게.”송영식이 주혁의 어깨를 두드렸다.이주혁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 영식을 잠깐 들여다 보았다.“저기, 그냥 드레스잖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송영식은 절친의 말에 매우 민망한 얼굴이 됐다.“아니, 그런 게 아니고….”“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대선이 코 앞인데 집안에 자꾸 누를 끼치면 안 되잖아. 난
백윤택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임윤서는 너무 더워서 깼다.온 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비틀비틀 일어났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생각해 보다가 몽롱한 채로 걸어 나오다가 누군가와 탁 부딪혔다.윤서는 원하던 것을 만난 듯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저기요, 어? 임윤서 씨 아닌가…?”비서는 긴장한 눈빛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송근영을 쳐다보았다.“아무래도 누가 약을 탄 모양이구나.”송근영은 임윤서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는 말했다.비서는 흠칫했다.“오슬란 신제품 발표회에서 감히 오늘 잠 주인공인 개발팀 총감에게 손을 대다니 누가 이렇게 대담할까요?”“일단 내 방으로 데려갈 테니까 자네는 여기서 누가 와서 임윤서를 찾는지 잘 지켜 봐. 그 놈이 임윤서에게 약을 탄 놈일 테니까.”송근영은 그렇게 당부하고는 윤서를 부축해 방으로 데려갔다.방에 들어가자 임윤서는 이제 견디지 못하고 침대에서 마구 구르며 난동을 부렸다.송근영은 골치가 아팠다. 할 수 없이 욕조에 찬물을 받아 윤서를 집어넣었다.그러고 욕실에서 나오는데 비서가 돌아왔다.“방금 백윤택이 아까 그 자리에서 사람을 찾았습니다. 소방통로 쪽으로 가더니 위 아래로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당황한 기색이더라고요”“백윤택이라….”송근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백지안의 오빠인 백윤택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그 집안의 속 썩이는 인간이지. 이제 영식이 뒷배를 믿고 날뛰려는 게로구나.이제 작은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시면 동생 시댁을 등에 업고 더 지랄을 하겠지.할아버지 말씀이 맞아. 무슨 수를 쓰던 백지안이 우리 집 안에 들어오게 두면 안 되겠어.’“저, 임 총감이 굉장히 괴로운 것 같은데요.”비서가 윤서의 신음소리를 듣고 귀까지 빨개져서 말했다.송근영은 비서를 흘끗 쳐다보았다.“가서 영식이가 어디 있는지 찾아 봐요.”----연회장에서 접대 술을 계속 받아 마시고 오늘 기분도 좋아서 송영식은 이미 거나하게 취해있었다.백지안이 송영식을 부축해 엘
“당연하….”송영식이 휘 둘러보더니 갑자기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자기 방이 아닌 것 같았다.“자기 방도 아니면서!”윤서는 화가 나서 눈이 벌게졌다.“이 변태가! 백지안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나에게 손을 대? 어디 사람이 없어서 나한테 이래? 백지안한테나 갈 것이지!”“내가 손을 댔다고?”송영식은 울컥했다.“돈과 지위를 노리고 내가 취한 틈을 노리고 들어온 거잖아?”미칠 지경이었다. 어렵사리 백지안에게 청혼을 해서 겨우 성공했다 싶었더니 지금까지 지켜왔던 동정을 하룻밤 만에 윤서에게 빼앗겨 버린 것이다.“돌았나, 진짜? 이 몸은 당신 같은 인간이랑 자는데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거든! 게다가… 난 첫경험이란 말이야!”윤서는 거의 울 지경이었다.“누굴 바보로 아나? 당신 같은 사람이 아직까지 경험이 없다고? 내가 분명 다른 남자랑 만나는 것도 봤….”송영식은 말을 맺기도 전에 하얀 시트 위에 선명한 붉은 꽃무늬를 보고 목이 턱 막혔다.임윤서가 정말 첫 경험이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너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나, 난 몰라. 모르는 일이야.”“이 쓰레기가, 진짜! 죽어라!”윤서는 베개를 집어 던졌다.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기자들이 고개를 들이밀었다.너무나 익숙한 장면이었다. 왜 자꾸 이런 일만 생기는 지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송 대표님, 백지안 씨랑 사귀는 거 아니었습니까? 어째서 오 총감과 함께 계시는 거죠?”“바람입니까?”“임윤서 씨, 송 대표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눈도 못 뜨게 마구 플래시가 터졌다.윤서는 이불을 두르고 욕실로 뛰어들었다.‘이건 내가 전에 송영식에게 썼던 작전이잖아? 내가 당할 줄이야. 그런데 당해보니 정말 환장하겠네.난 뭘 그렇게 잘못해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다행히도 호텔 경비 팀에서 와서 곧 현장을 정리하고 두 사람에게 옷을 가져다 주었다.임윤서가 옷을 입고 나오자, 송영식은 어두운 얼굴로 호텔 매니저에게 신경질을 냈다.“기자들이
“백지안은 절대로 당신이랑 헤어지지 않을 테니 그건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이제 최하준이 없어서 당신을 잡은 거니까. 헤어지자며 난리난리는 좀 쳐도 좀 달래주면 다 용서해 줄 걸. 아 참! 아마도 결국은 당신은 아무 죄가 없다며 봐줄 거야.”그러더니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송영식은 그 말을 듣고 얼떨떨한 채로 서 있었다.----윤서는 시큰거리는 다리를 끌고 호텔을 나섰다. 여름이 전화를 걸어왔다.“어우~ 이 언니, 아주 끝내 줘.”여름이 존경스럽다 듯 말을 꺼냈다.“대대적으로 백지안에게 청혼을 한 다음 날 송영식을 데리고 자버리다니? 백지안에게 복수한다고 너무 신하게 하는 거 아니니? 너희 지금 완전 실검 1위야. 아주 온나라에 너희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없겠어.”“아, 시끄러!”윤서는 울고 싶었다.“나도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거든.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 필름이 끊겼다고. 내 첫 경험을 그 똥멍청이한테 뺏겨서 지금 완전 열 받아!”“아무래도 너 당한 것 같다.”여름이 진지하게 말했다“빨리 사후 피임약 처방 받아.”“아, 그러네.”윤서는 얼른 근처의 산부인과로 향했다. 그 처방전을 들고 약방으로 갔다. 약사가 처방전을 들고 약을 찾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약사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전화를 끊더니 윤서에게 말했다.“약이 저 안에 있어서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그러고 들어가더니 약사는 피임약을 비타민으로 바꾸었다.윤서는 계산을 하고 약을 먹었다.이때 길 가에 송근영의 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윤서가 떠나자 송근영은 송우재에게 전화를 걸었다.“약방에 얘기해서 약을 바꿔치기 했습니다.”“그래그래, 아주 잘 했다. 윤서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우리 집으로 들어오면 아주 잘 해주도록 하자꾸나.”----그 시각.백지안은 뉴스에서 윤서와 송영식의 사진을 보고 바로 얼굴이 일그러졌다.‘분명 어젯밤 송근영이 송영식을 데려갔는데 어째서 임윤서랑 같이 있다 사진을 찍힌 거지?”백지안은 열이 뻗쳐
송윤구: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영식이가 백지안에게 청혼한 거야 그냥 그 아이 일이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 결혼에 반대합니다. 그리고 백지안이 우리 집에 들어올 일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임윤서 씨는 집안 식구 모두가 정해둔 약혼녀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곧 임윤서 씨 부모님과 혼사를 논의하게 될 것입니다.기자: “그러면 백지안 씨는 어쩝니까?”송윤구: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제가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영상은 거기까지였다.손을 바들바들 떨던 백지안은 곧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물건을 마구 집어던졌다.송영식의 집에서 공개적으로 임윤서가 송영식의 약혼녀라고 발표할 정도로 자기 체면을 짓밟을 줄 몰랐던 것이다.‘이제 난 뭐가 되냐고?’임윤서는 백윤택 때문에 평판이 바닥에 떨어진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영식의 집만에서 임윤서 같은 인간은 받아주면서 자신은 받아주지 않는 것이 사뭇 억울했다.‘내가 임윤서보다 못한 게 뭐야?그리고 송영식 저 멍청이는 분명 날 사랑한다고 해놓고 뒷구멍에서 임윤서랑 자? 세상에 정말 믿을 놈이 하나도 없구먼.’이때 송영식에게서 전화가 왔다.백지안은 그대로 휴대 전화를 집어 던졌다.그러나 곧 냉정을 되찾았다. 절대 가볍게 송영식을 용서해 줘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놓을 수도 없었다. 이제 주변에 손대볼 만한 남자라고는 송영식 하나 뿐이었다.----한편 송영식은 송윤구의 기자회견을 보고 급히 본가로 돌아갔다.“아버지, 기자들에게 그게 다 무슨 말씀이세요? 윤서가 언제부터 제 약혼녀예요? 제 약혼녀는 지안이라고요.”본가로 향하면서 이 사태를 전부 해명 하려고 계속 걸어 봤지만, 백지안이 전화를 받지 않아 송영식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백지안에게 패물을 보냈느냐?”송윤구가 날카롭게 물었다.“아니면 우리 집안과 그 쪽 집안이 정혼을 했느냐? 걔가 우리에게 와서 인사를 하길 했니, 밥을 한 번 먹었니?”송영식은 움찔했다.“제가 청혼을 했잖아요? 반지도 주고. 언론에서 모두 보도를….”“제대로
“어젯밤에 막 호텔에 들어서다가 임 총감이 이상한 걸 발견했다. 걸음도 똑바로 못 걷더라. 내가 얼른 비서에게 내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후에 백윤택이 내가 임 총감을 발견한 위치에 나타나서 사람 찾느라 분주했다더라. 심지어 임 총감 방까지 갔었대. 내가 CCTV도 뒤져봤는데 ‘아주 우연히도’ 28층 CCTV가 다 꺼져 있더라.”송근영이 말을 마치자 송우재가 분노에 차서 테이블을 탕 쳤다.“백윤택이가 아주 미쳐 날뛰는구먼.”“백윤택의 여동생이 송영식의 여자 친구인 줄 알고 호텔 직원들이 다들 알아서 긴 거죠.”송근영이 싸늘하게 송영식을 노려보았다.“너만 아니엇으면 백윤택이 거기 오지도 않았겠지. 그러니 네가 들어가서 임 총감의 곤란한 사정을 해결하는 것도 당연하지. 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 아니니?보니까 임 총감이 약에 심하게 취한 것 같더라. 찬물에 아무리 담가도 해결이 안 돼서 무슨 일이 날까 걱정스러웠어.”송영식은 입을 꾹 다물었다.아무리 그래도 임윤서는 자기 회사의 주주인데다가 현재 개발 팀에서 중임을 맡은 총감인데 백윤택이 감히 신제품 발표회에서 임윤서에게 수작을 부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아침에 윤서에게 자기를 유혹했다며 난리를 쳤던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기자도 누나가 불렀지?”송영식이 으르렁거리며 물었다.“그래. 일을 크게 벌이지 않으면 네가 책임을 안 질 거잖아.”송근영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치사하게!”송영식이 외쳤다.“미안하지만 언론을 동원해도 소용없어. 난 절대로 임윤서랑은 결혼하지 않을 거야. 이 생에서 이제 지안이는 더 상처받아서는 안 돼. 당장 언론에 해명할 거야.”그렇게 소리치더니 돌아섰다.가만가만한 송근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기만 해 봐. 오슬란 신제품 출시는 꿈도 꾸지 마셔. 관계 당국에 말을 넣던 어쩌던 출시를 막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뭣하면 오슬란 오프라인 매장을 전부 문닫게 만드는 방법도 있고. 할 테면 한 번 해 봐.”“아니….”송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