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는 실내 공간이 좁은 편이다.하준은 마침 여름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이 고개를 드는 순간 하준이 여름을 쳐다보면서 여름의 촉촉한 입술에 하준의 입술이 닿았다.온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졌다.하준의 목젖이 움찔했다. 한껏 쌓여있던 장작에 불꽃이 튀어 화르륵 타오르는 듯했다.이렇게 가까이에서 여름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촉촉한 피부가 너무나 탐스러웠다. 우유처럼 뽀얗던 피부가 빠른 속도로 핑크색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저리 가!”여름이 하준을 밀쳤다.“한 번만 더 해주면 비킬게.”하준은 몸에 힘을 주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솜사탕처럼 가벼운 키스였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평생을 바라왔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뭐가 다시야? 방금 그건 그냥 실수로 부딪힌 거거든.”여름은 당황해서 입을 비죽거렸다.“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하준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여름을 바라보았다.“어쨌든 뽀뽀 안 해주면 못 비켜.”“최하준!”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올 줄 몰랐다.“어? 저거 좀 봐!”하준이 갑자기 깜짝 놀란 듯 창밖을 가리켰다.여름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하준의 입술은 여름의 입술을 덮었다. 빠르게 키스하고 곧 몸을 뗐지만 하준은 이미 츄르를 한껏 훔쳐먹은 고양이처럼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어이가 없었다.‘뭐야? 며칠 전까지 백지안이랑 얽혀있었으면서 처음 키스하는 사람처럼 이래?’하준은 운전석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시동을 걸었다.“자기야, 오늘 벨레스에서 어땠어?”“별로였어.”여름이 눈썹이 쓱 올라갔다 내려왔다.“벨레스랑 추신이 합자회사를 설립하기로 했어. 아주 돈을 있는 대로 퍼부어 가면서 야심만만하더라고. 내가 보니까 추신에서 국내 최대 금융사를 차릴 셈인 거야. 아마도 FTT 금융 자회사를 찍어 누를 셈인 것 같더라고.”“우리 삼촌이 열심히 안 해서 요즘 FTT가 금융 쪽에서는 영 힘을 못 쓰고 있지.
“알아. 그래서 나도 크게 신경은 안 써. 할아버지께서 추신과 함께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시겠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어. 괜히 내가 양쪽에서 다 욕먹을 이유가 없지.”여름은 담담하게 어깨를 으쓱했다.“솔직히 벨레스나 서씨 집안에 별 감정 없어.”“그래. 벨레스에는 너무 마음 쓰지 마. 내 아내가 되면 FTT는 이제 다 자기 거야.”하준이 갑자기 여름의 손을 잡았다.“우리나라 최고의 부자가 되는 거라고.”“됐어. 난 내 힘으로 벌 거야. 언제 또…버려질지도 모르는데.”여름이 손을 빼면서 눈을 내리깔며 눈동자에 어린 냉기를 감추었다.“날 못 믿는구나. 상관없어.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천천히 증명해서 보여줄게.”하준은 느긋하게 웃었다.여름은 하준의 옆모습을 보면서 의아했다.“추신이 벨레스를 꿀꺽하고 나면 FTT보다 더 큰 그룹이 될까 봐 걱정되지는 않아?”“그렇지 않을 거야. 우리 FTT는 그간 엄청난 자금을 들여서 이쪽에서 연구를 많이 해 놨거든. 이제 중대한 돌파구를 찾았으니까 앞으로는 엄청나게 발전할 거야.”하준이 자신에 찬 웃음을 지었다.“추신의 시야는 국내에만 머물러 있지만 우리 FTT는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있다고. 추신은 아무리 해도 우릴 못 따라와.”여름은 깜짝 놀랐다. 순간적으로 하준이 뿜어내는 자신감을 보고 있자니 늘 보아왔던 얼굴인데도 새삼 감동적이었다.‘인간은 쓰레기지만 정말 비즈니스 머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잘생긴 비즈니스의 천재라니, 누구에게라도 매력적이잖아.’----40분 뒤.차는 강변의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 멈췄다. 인테리어가 사뭇 이국적이었다.야외 자리가 예약되어 있었다. 기분 좋은 강바람이 불어왔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여름은 해산물 요리 몇 가지를 주문했다.하준은 특별한 고객이었으므로 쉐프는 곧 빠르게 요리를 올렸다.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는 하나하나 모두 너무나 맛있었다.여름은 맛있게 먹었다.“자기들은 정말 레스토랑 하나는
하준은 흠칫했다.순간적으로 온몸에서 용암이 터져 나오는 기분이었다.호흡이 무거워지고 시선은 여름의 얼굴에 고정되었다.‘일부러 이러는 걸까?’“됐다. 이제 피 안 나네.”여름의 입술이 하준의 손가락에서 떨어졌다. 하준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지 못한 건 아니지만 때로는 바짝 당겨서 마음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줄 필요가 있었다.하준은 멍하니 지혈이 된 손가락을 보고 있더니 게 껍질데기를 찾아서 다른 손을 찔렀다. 그러더니 곧 말했다.“이거 봐. 또 피나네.”“……”‘분위기 파악 정말 못하네.’“여기요!”여름은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소금 좀 가져다주시겠어요?”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일이 생각한 대로 풀리지 않았다.“이거 안 보여 피가 점점 더 많이 나는데?”“괜찮아. 이따 소금 뿌리면 돼.”여름이 가식적으로 웃었다.“강바람에 잘 말리고 연기에 구우면 베이컨이 되겠지.”“……”하준은 사색이 되었다.“아까는 빨아주더니 지금은 왜 안 해주는데?”“돌았어? 내가 무슨 당신 손가락 빨아주는 사람이야? 남들이 보면 미쳤다 그래. 그리고 손에는 세균이 잔뜩이라고.”여름이 화를 냈다.하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자 할 수 없이 조용히 냅킨으로 손가락을 눌렀다.“어휴, 이리 내. 게 살도 못 발라주는 남자친구라니 정말 쓸모없네.”여름은 한숨을 쉬며 하준의 손가락을 눌러주었다.“그냥 내가 할게.”하준은 할 수 없이 얌전히 여름에게 게를 발라주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여름 앞에서 자신이 점점 더 주접스러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도 방금 여름이 자기 손가락을 입에 넣었던 장면을 떠올리니 심장이 두근거렸다.그러나 곧 이주혁과 시아가 나타났다.“뭐야? 진짜 하준이잖아? 난 내가 잘못 봤나 했네.”이주혁의 온화한 얼굴이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같이 백지안과 함께 밥을 먹으러 다녀봤지만 하준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공손하게 게를 발라주는 모습 같은 건 본 적이 없었다.시아는 더욱 놀랐다. 평
다들 안색이 확 변했다. 이주혁의 시선이 시아를 향했다. 하준의 얼굴은 매우 어두워졌다.“내가 언제… 지안이 목에 키스 마크를 남겼단 말이야?”‘난 지안이에게 손도 못 대는데 키스 마크라니 무슨 소리야?’시아가 눌린 목소리롤 물었다.“여름아, 무슨 소리야? 난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뭐 사실 난 너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어.”여름이 유유히 말을 이었다.“그때 연금되어 있다가 간신히 산전 검사를 하러 나갔을 때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백윤택이 언론에 ‘임윤서가 자기를 유혹하려고 했다’고 퍼트리고 다닌 걸 알았겠어? 뭐, 그 사실을 알고 내가 광분하는 바람에 하준 씨랑 싸우다가 유산하게 되긴 했지만… .”쌍둥이를 잃은 것이 그때였다.하준은 그 일의 발단을 제공한 사람이 시아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그날 여름이가 칼을 들고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에 그 일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신경을 못 썼네.이제 보니 시아가 나불댄 거였군.시아가 나불대지만 않았더라면 우리 쌍둥이를 잃는 일도 없었을 텐데.’“너였어?”하준이 벌떡 일어서더니 와락 시아의 팔을 움켜잡았다.“누가 그렇게 입 함부로 놀리래?”그러더니 하준은 손을 치켜들었다.시아는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아, 아니에요. 난 억울해요. 주혁 씨, 살려줘.”“하준아.”이주혁이 하준의 팔을 잡았다.“이러지 말자.”“이 인간이 함부로 입을 놀리는 바람에 나는 애를 잃었어.”하준의 눈에서 무한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여름은 냅킨으로 입을 닦더니 한마디 했다.“시아는 그냥 아는 대로 말을 해준 것뿐이잖아. 뭐 사실 그때 나도 너무 흥분하긴 했지. 안 그랬으면 그런 멍청한 소리에 속아서 날뛰진 않았을 텐데. 아이를 잃은 일은 당신하고 내 책임이야.”하준의 몸이 굳어졌다. 여름의 말은 백윤택은 도화선이 되었을 뿐 실제로 나쁜 짓을 한 것은 자신이라는 점을 지적했다는 점을 깨달았다.이주혁은 하준의 팔을 내리고 시아를 하준
“네가 나에게 쓸모가 있는 게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차버렸을 거야.”이주혁이 사뭇 차가운 말투로 경고했다.“앞으로는 분수껏 행동해. 입은 다물고. 한 번만 더 나댔다가는 다시는 TV에 얼굴 못 나올 줄 알아.”시아는 창백한 얼굴로 얌전히 끄덕였다.지난번에 여름 때문에 평판이 바닥에 떨어지는 바람에 예능에나 간간이 출연했을 뿐 새로운 드라마 배역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제 믿을 구석이라고는 이주혁뿐이었다.“저기,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시아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이주혁이 확 말을 끊었다.“아니, 이상해서 그래.”시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 말을 꼭 해야 했다.“최하준이 예전에 강여름에게 얼마나 상처를 줬나 생각해 봐. 가두고, 유산되게 만들고, 정신병원에 넣고… 나였으면 절대 용서 못 해.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다시 둘이 잘 지낼 수가 있지?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단 말이야?”“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거야?”이주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시아는 움찔했다.“아니… 뭐… 여름이가 최하준에게 복수하려는 게 아닌가 해서. 내가 여름이를 모함하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 그냥 느낌이 그렇다고. 하준 씨가 너무 빠져들어서 나중에 상처받게 되면 어떡해?”“주문이나 해.”이주혁이 싸늘하게 뱉었다.“응, 응. 알았어.”시아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얼른 직원을 부르러 갔다.이주혁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니 이주혁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밤 9시.스포츠카 한 대가 성운빌 주차장에 섰다.여름이 안전 벨트를 풀고 내리려고 했다. 하준이 갑자기 여름의 손을 잡았다. 목젖이 꿈틀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식사할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는데 시아가 와서 물을 흐리는 바람에 이후로 분위기가 싸해지고 말았다.“여름아, 미안해….”후회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이렇게 다시 사랑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여름에게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않았을 텐데.“아직도 내가 미워?”“
“자기가 해주는 밥은 정말 너무 맛있어.”하준은 다시 흥분해서 말했다.“평생 먹고 싶어.”“평생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당신이 차버렸잖아.”여름이 접시와 수저를 치웠다.“이제 가. 늦었어.”여름이 돌아서자 하준이 다가와 뒤에서 여름을 꼭 안았다. “가기 싫다. 여기 있을래. 소파에서 자도 괜찮은데.”“나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니야.”여름이 진지하게 말했다.“당신이랑 관계하고 나서 내게 돌아오는 건 무시와 사후 피임약뿐이더라. 난 이제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어. 이젠 쉽게 날 내주지 않을 거야.”하준은 말문이 턱 막혔다.‘내가 내 발등을 찍었군.이런 날이 올 줄 알았더라면 못된 짓 하지 말 걸.타임머신이 있으면 타고 가서 과거의 날 때려주고 싶다.여름이를 안아줄 수 있을 때 아껴주지 못했더니 이제는 안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을 수도 없네.’“알았어. 갈게. 하지만 뽀뽀는 한번 받고 싶어.”하준은 여름을 돌려세우더니 분홍빛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여름은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으나 저도 모르게 점점 하준의 허리에 손을 감게 되었다.하준의 키스는 너무나 부드럽고 뜨거웠다.키스가 끝나고 문밖으로 밀려나는 하준의 눈에는 아직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가득했다.“자기야, 내일 아침에 같이 아침 먹자, 응?”“알았어.”여름은 문을 닫고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박박 힘주어 양치했다.백지안에게 입 맞추던 입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더러웠다.----하준은 정반대였다.입술에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너무나 달콤했다.상혁이 차를 몰고 데리러 올 때까지도 하준은 계속해서 입술에 남은 감촉을 음미하고 있었다. ‘너무 짧았지. 한 5~6분 되나? 좀 더 길었으면 좋았을걸.’“기분 좋아 보이십니다.”상혁이 눈치채고 과감하게 한 마디 던져 보았다.“막 연애를 시작한 스무 살 같아 보입니다.“스무 살 ‘같아 보여’?”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나이 들었단 말이야?”막 연애를 시작한 입장에서 나이 문제가 민감하게 다가왔다. 더구나 여름
“그 사람은? 갔어?”하준이 이주혁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넌 언제까지 걔를 그렇게 데리고 있을래? 전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보니까 정말 별로더라. 너에게 안 어울려.”“어떤 일은 어쩔 수 없는 법이야.”이주혁이 술을 한 잔 삼켰다.“그러는 넌? 정말 강여름이랑 다시 합칠 생각이야?”“응.”하준은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물론 중간에 시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이주혁이 걱정스럽게 하준을 흘끗 봤다.“강여름이… 정말 너랑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건지… 복수하려는 건지… 생각해 본 적 있냐?”싱글벙글하고 있던 하준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술잔을 내려놓은 하준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 눈빛에 압도되어 입도 못 열었겠지만 이주혁은 어려서부터 하준과 함께했다. 하준의 됨됨이를 낱낱이 아는 주혁은 하준의 눈빛 따위 아랑곳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네가 그간 강여름에게 했던 짓을 생각해 봐. 그 온갖 못된 짓을 다 했는데 그걸 다 내려놓아서 일말의 원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주혁이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하준의 심장을 꼭꼭 찔렀다.이주혁이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했던 못된 짓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되돌이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내게 복수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한참 만에야 하준이 눌린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이주혁이 하준의 어깨를 두드렸다.“그냥 환기시켜 주고 싶었어. 걔가 널 가지고 놀도록 너무 몰입하지 말라고. 아니면 또 무슨 다른 방법으로 너에게 복수할지도 모르고.”“탕!”하준이 들고 있던 술잔을 내리쳤다.“아니야. 여름이는 날 사랑해. 느낄 수 있어. 전에는 내가 여름이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지나친 짓을 했지만, 지금은 여름이를 사랑해. 이 세상에 좋은 건 모두 여름이에게 주고, 내 온 마음을 다 줄 거야.”“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난 할 말 다 했다.”이주혁은 하준의 그런 모습을 보더니 혀를 하며 냅킨을 건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본 여름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부끄러워야 정상이겠지만 두 사람이 동성에 살 때 여름은 이 수를 써본 적이 있었다.‘흥, 무슨 여자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내외를 하고 난리야?’“알았어.”여름은 침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나왔다.하준은 식탁에 앉아서 싸 들고 온 아침 식사를 펼쳐놓고 있었다.“자기 먹이려고 내가 우리 쉐프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싸 왔어. 계란국에, 감자샐러드, 메추리알 장조림, 마늘쫑 무침…”하준이 하나하나 읊었다.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수저를 들어 막 먹기 시작했는데 한참 먹다 보니 가만히 앉아만 있는 하준이 눈에 들어왔다.“당신은 왜 안 먹어?”“입맛이 없어.”하준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름이 해주는 게 아니면 하준은 그다지 식욕을 느끼지 못했다.“그러면 어떡해? 아침은 먹어야지. 이리와, 먹여줄게.”여름이 메추리알을 입에 물고는 장난스럽게 하준을 쳐다보았다.하준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여름의 속눈썹 하나하나까지도 잘 보였다.‘그러니까… 입으로 먹여준다는 말이야?’전혀 식욕이 없다던 하준의 목젖이 꿈틀했다. 고개를 숙여 메추리알을 반 베어 물었다.“이제 먹고 싶지?”생글생글 웃는 여름에게서 아침 햇살처럼 반짝이는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어.”하준은 참지 못하고 여름을 잡아당겨 무릎에 앉히고는 여름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강여름은 마약이야. 전에는 매일 싸우느라 바빠서 몰랐는데 정말 날 너무 빨아들인다고.’‘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저 좋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너무너무 좋아. 아니, 사랑해.처음부터 강여름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아.’“자기가 나에게 복수하려고 접근한 거라고 해도 난 자기랑 함께 있고 싶어.”하준은 여름의 목이 얼굴을 묻은 채로 중얼거렸다.여름의 몸이 굳어지더니 하준의 얼굴을 떼어내고 바라보았다.“지금 무슨 소리야?”“전에는 내가 너무 자기한테 나쁜 짓을 많이 했잖아.”하준이 두 손으로 여름의 두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