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얼른 꼬맹이를 안아 올렸다. 여울이의 눈물을 보더니 하준을 매섭게 노려봤다.“우리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소리는 지르고 난리람? 할 거면 백지안한테 가서 해. 뻑하면 그렇게 소리나 지를 거면 가. 여울이는 내가 데리고 놀 테니까. 괜히 우리 따라다닐 필요 없어.”그러더니 여울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졸지에 버려진 하준은 뒤에 남아서 주먹을 꽉 쥐고 있다가 점점 멀어져 가는 둘을 보고는 후다닥 따라갔다.“여울이는 내 조카니까 놀아도 내가 놀아줄 거야.”“싫어. 큰아빠 무서워.”여울은 가차 없이 거절했다.하준은 패배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말했다.“여울아, 미안해.”“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말고 이모한테 해요.”여울이 진지하게 답했다.여름 쪽을 쓱 쳐다봤다. 여름은 하준 따위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가버렸다.하준은 마음이 답답했다.여울이 격려하듯 하준을 바라보았다.“선생님이 잘못했으면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용기있는 사람이랬어.”“……”어린애의 순진한 시선을 마주하니 도저히 사과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하준은 할 수 없이 조용히 한숨을 쉬고 여름의 팔을 잡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사과했다.“미안해. 요즘 내가 기분이 좀 안 좋아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 너무 마음에 두지 마.”그말을 듣고 여름은 좀 짜증스럽게 돌아보았다. 이때 여울이 덧붙였다.“이모, 용서해 줘요. 우리 큰아빠 실연해서 엄청 불쌍하잖아요. 우리 아빠한테는 나처럼 귀여운 딸이라도 있지….’하준은 다시금 졸지에 여울의 팩트 폭행에 정통으로 당하고 얼굴이 축 처졌다.‘예전에 내가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너만한 애가 있었을 건데….’이제는 잃어버린 그 아이들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었다.여름은 풀죽은 하준의 모습을 보니 또 살짝 짠한 마음이 들었다.“알았어. 여울이를 봐서 이번은 넘어가 주지. 하지만 우리랑 같이 다닐 거면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어.”그러더니 여름은 꼬맹이를 데리고 비행기 어트렉션으로 가버렸다
하준은 누군가가 심장을 확 움켜쥔 듯 찌릿했다.얼른 손을 뻗어 여름을 품에 안아 들였다.하준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지자 여름은 무의식적으로 하준의 옷깃을 잡았다.그리고 살짝 정신이 돌아오자 하준이 그렇게 사람을 놀래킬지 몰랐던 여름은 주먹을 쥐고 하준의 가슴팍을 콩 내리쳤다.“최하준, 누가 그렇게 사람 놀래키래!”하준은 갑작스런 공격에 깜짝 놀라서 헉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아픈데도 여름의 애교 섞인 불평을 들으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여름의 머리에서 올라오는 샴푸 냄새와 보드라운 몸이 주는 촉감에 가슴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여울의 불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흥! 나만 버려놓고, 둘이서만 껴안고 있고!”여름이 얼굴을 붉히더니 여울에게 건너가려고 했으나 아직 높이가 너무 높은 것을 보고는 다시 다리에 힘이 풀려 꼼짝을 못 했다.“됐어요. 난 밖에 보면서 구경하면 되니까.”여울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여름은 미안한 듯 시선을 떨구었다.하준은 고개를 숙여 파닥이는 여름의 속눈썹을 내려다보았다.관람차가 2/3쯤 내려오자 여름은 바로 하준의 품에서 벗어나 여울 곁으로 갔다.하준은 품이 확 비자 불만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떴다.“이제 겨우 한 바퀴 돌았어. 한 바퀴 더 남았다고.”“안 해. 둘이나 타.”여름은 정말 너무나 무서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때는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는데 어쩐 일인지 어른이 되고 나서는 정말 관람차가 너무나 무서웠다.“나도 그만 탈래. 재미없다. 배 타러 갈래.”여울이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서 재미있는 어트렉션을 발견하고는 외쳤다.하준의 얼굴이 축 처졌다. 하지만 결국 둘을 따라 내릴 수밖에 없었다.셋은 한바탕 놀고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하준은 그런 곳에는 거의 가지 않았지만 오늘은 여울이 너무나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여름이 주문했고 셋은 창가 자리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하준은 패스트푸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콜라를
여름은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옆에 있는 연인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방금 두 사람이 하던 이야기는 전에 자신과 하준이 동성의 어느 패스트푸드점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와 비슷했다.‘뭔가를 떠올린 것은 아니겠지?’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가게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저기요, 괜찮으세요? 저기요!”“누군가 쓰러졌어요. 일행분 계세요?”“……”화장실 쪽을 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얼른 가서 사람들을 헤치고 보니 하준이 쓰러져 있었다.“최하준, 하준 씨!”여름은 하준을 부르며 흔들어 보았지만 하준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서둘러 119를 불렀다.곧 구급차가 왔다. 여름은 여울과 함께 하준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여울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엄마, 아빠 왜 그래요? 왜 갑자기 쓰러졌어요?”여름은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옆에 앉아 있던 연인들 때문에 하준이 뭔가를 떠올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그러나 전에 들었던 정신과 의사의 말로는 최면에 걸린 사람은 거의 회복되는 확률이 없고 혹여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바보가 된다고 했었다.이때 응급실 문이 열리더니 의사가 나왔다.“환자분은 며칠은 안 주무신 것 같던데요. 너무 휴식을 취하지 않으셔서 자율신경계에 문란이 와서 실신하신 거 같습니다.”“그렇군요.”여름은 어이가 없었다.‘과거의 기억을 떠올려서 기절한 줄 알았더니, 뭐야? 그냥 내가 오버한 거잖아?’이때 이주혁과 송영식이 도착했다. 하준이 이송될 때 응급실 직원이 이주혁에게 연락을 해고 마침 송주혁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달려온 것이다.그러나 여름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송영식은 열이 뻗쳤다.“강여름! 또 당신이야? 어째서 이렇게 질척거리는 거야? 하준이랑 지안이 결혼식이 취소됐다고 그 틈을 파고들려는 건가? 경고하는데, 하준이에게서 떨어지라고!”“왜 이모한테 무섭게 해요?”여울이 버럭 화를 내면서 송영식을 노려보았다.“조그만 게 어른 일에 끼어들지 마.”송영식은 강여름을 노려보았다.“세상에
하준은 옆 이마를 문질렀다.“내가 왜 여기 있어?”‘난 분명 여울이, 여름이랑 놀이공원 패스트푸드점에 있었는데.’“너무 오래 쉬질 않아서 그래. 강여름이 데려왔더라.”이주혁이 하준을 흘끗 쳐다봤다.“기절했다기보다는 그냥 잠이 든 거라고. 네가 무슨 로봇인 줄 아냐? 쉬지도 않고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보내게.”하준은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 미간을 찌푸렸다.“뭐, 됐다. 배 안 고프냐? 김 실장한테 뭣 좀….”“전에 내가 강여름이랑 치킨 먹으러 다니고 그랬다고 하지 않았어?”하준이 갑자기 말을 끊었다.“그래.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물어?”“내가 다른 사람이랑도 가본 적이 있을까?”하준이 다시 물었다.“내가 어떻게 아냐?”이주혁이 의아한 듯 하준을 쳐다봤다.“어쨌든 없을 것 같은데, 왜?”“아무것도 아니야.”그러면서 하준은 이불을 젖히며 일어나 앉더니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었다.“퇴원 수속 밟아줘. 나 간다.”“하준아.”이쯤 되니 이주혁도 화가 났다.“네 몸을 스스로 좀 소중하게 생각하라고.”“괜찮아. 이제 완전히 괜찮아.”하준이 병실 문을 열고 나서자 문 뒤에 서 있던 민정화가 입을 열었다.“회장님, 어디 가십니까? 동행하겠습니다.”“네가 왜 여기 있어?”하준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민정화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문정화는 흠칫했다.민정화는 상혁과 다르게 지룡파 멤버였다.하준이 특별히 부르지 않는 이상은 오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다.지금 하준의 병실에 와 있는 것은 순전히 백지안을 위해 하준을 감시하는 중이라는 뜻이었다.“저는….”“지금 네 임무는 백지안을 보호하는 것이다.”하준의 검은 눈에서 갑자기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민 실장, 당신은 백지안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잖아. 그렇게 자주 곽철규를 만나러 갔다는데 전혀 몰랐나?”민정화는 펄쩍 뛰었다.“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백지안 님을 보호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끔은 사적인 일을 보시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24시간 함께하지는 않습니다. 24시가 함께 한다면 그건
“네. 지난번에 여름 씨가 분홍 장미를 좋아한다고 하길래….”서인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준의 꽃다발을 와락 빼앗아 쓰레기통에 쳐 넣었다.“최하준 씨, 이게 무슨 짓입니까?”서인천의 부드러운 얼굴에 화가 드러났다.“강여름에게서 떨어지시지.”하준이 눈을 똑바로 보며 경고했다.“서리그룹이 멀쩡하길 바란다면 말이야.”“당신은 나와 여름 씨 사이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여름 씨가 최하준 씨 전처인 건 알 고 있습니다만, 이미 이혼한 사이 아닙니까? 여름 씨 일에 간여하시면 안 되죠.”서인천이 차갑게 웃었다.“아직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본데, 당신이 벨레스에서 강여름의 신분을 노리고 접근한 거 내가 모를 줄 아시나? 그저 서리그룹에 이득이 되니까 이러는 거잖습니까? 이것만 알아두시죠. 날 건드렸다가는 그 길로 서리그룹의 돈줄을 아주 박살내 주겠습니다.”하준의 눈에는 제왕적 싸늘함이 가득했다. 한껏 억누른 목소리에서 이미 인내심이 바닥났다는 것이 드러났다.“최하준 씨, 왜 강여름 씨를 놓아주지 못하는 겁니까? 이제 당신과 백지안이 결혼할 거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는데요. 이러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서인천처럼 젠틀한 남자도 하준의 비열함에 더는 참을 수 없었다.“네. 난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수치심을 모르는 사람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 어디까지 하는지 한번 보고 싶습니까?” 하준이 얼음처럼 사늘한 눈을 하고 으르렁거렸다.서인천도 어느 정도는 겁을 먹었다. 재계에서도 하준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그저 주먹을 쥐고 분노한 채 차를 몰고 자리를 떠날 뿐이었다.차가 한 블록을 지나 어느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더니 서인천은 바로 잠시 정차하고 여름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름 씨, 낚였습니다. 이번 일은 저에게 좀 감사하셔야 합니다?”전면 차 앞에 서 있던 여름은 가볍게 웃었다.“그동안 저 따라다니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나중에 제대로 한 턱 쏠게요.”“밥은 됐고 제 개인 주택 설계도나 예쁘
하준은 놀란 여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그냥 대충 아무 말이나 했는데 정말 믿는 모양이군.’여름을 하준을 흘겨보고는 휴대 전화를 꺼내 서인천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준이 담담히 말했다.“서인천은 이미 갔어.”“또 무슨 짓을 했길래?”여름이 하준을 노려보았다.“당신을 따라다니면 내가 가만 안 둔다니까 두 말도 않고 가던데?”하준이 경멸하듯 뱉었다.“쫄아가지고.”“……”서인천과 둘이 내통하는 사이가 아니었더라면 정말 믿을 뻔했다.‘어쩜 저렇게 되는 대로 마구 지껄이는지 몰라?’여름이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하게 자신을 쳐다보자 하준은 입에 주먹을 대고 헛기침을 했다.“실은 오늘 고맙다고 인사하러 왔어. 어제 병원에 데려다줘서 고마워. 오늘 저녁에 밥을 살까 하는데 시간 어때?”“고맙지만 사양할게. 남은 좋은 마음으로 병원에 데려갔는데 당신 친구들에게 거하게 욕만 먹었어. 내가 질척거리면서 틈새를 노린다나? 내가 병원비는 돌려달라고 말했더니 당신 만날 핑계를 만든다고 하더라?”여름은 팔짱을 끼고 싸늘하게 비웃었다.“그런데 내가 오늘 당신이랑 밥이라도 한 끼 먹었다가는 나중에 또 무슨 욕을 어떻게 먹을지 내가 어떻게 알아?”“영식이 말하는 거야?”하준의 옆 이마에서 핏줄이 불뚝거렸다. 절친만 아니었으면 당장 쫓아가서 주먹을 갈기고 싶었다.“그딴소리 들을 것 없어.”“대체 뭐 하자는 거야?”여름은 시큰둥했다.“난 항상 당신 때문에 욕을 먹는다고. 당신은 백지안을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왜 자꾸 날 찾아와서 이래? 며칠 전에 결혼식장에서 당신 입으로 며칠 뒤에 다시 식을 올릴 거라고 했었잖아? 왜? 백지안이 정말 당신에게 뭔가를 잘못해서 짜증 난다고 나를 며칠 가지고 놀고 싶어? 난 당신 장난감이 아니야.”하준의 얼굴에 난처한 표정이 떠올랐다.하는 말마다 비수처럼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사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수치스러웠다. 분명 며칠 전에 자기 입으로 곧 죽어도 백지안과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었던 것이다.“
하준은 따라갔다. 단호한 여름의 등을 보니 여기서 제대로 해명하지 않으면 영원히 여름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잠깐만, 난 사실… 전부터 당신을 좋아했어.”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온전하게 전한 것이었다.여름을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하준은 고민스러운 듯 눌린 소리를 냈다.“하지만 난 지안이랑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고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어. 지안이를 져버릴 수 없었어. 그래서 당신이랑 이혼할 수밖에 없었어. 내 마음이 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당신이랑 있는 게 더 좋아. 당신이 양하나 서인천이랑 같이 있는 걸 보면 화가 나.”“그래?”여름은 살짝 눈시울을 붉힌 채로 하준을 노려보며 비웃었다.“당신은 백지안이랑 너무 깊게 얽혀 있었어. 날 좋아한다고는 해도 그게 백지안에 대한 당신의 죄책감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일까? 다음에 또 백지안의 말 한마디면 또 날 헌신짝처럼 버리겠지. 양치기 소년 얘기 알지? 아무리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쳐봤자 난 안 믿을 거야.”“아니야. 나랑 지안이는…이제 정말 끝이야.”하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 뭔가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 마음이 가벼웠다.사실 하준은 진작부터 백지안을 사랑하지 않았다. 지안과 함께하면 어쩐지 말할 수 없는 피로감이 쌓이곤 했다.심지어 결혼식은 하준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어쨌든 못 믿어. 다시는 당신들 사이에 껴서 총알받이가 될 생각은 없거든. 다시는 찾아오지 마.”여름은 하준을 노려보고는 힐 소리만 남기고 빠르게 멀어져 갔다.하준이 따라올까 봐 두려운 듯한 모습이었다.하준은 괴로웠다.어렵사리 속마음을 모두 꺼내 놓았는데도 여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아마도 내가 너무 큰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겠지.’----여름은 저녁에 밥을 먹으면서 임윤서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다.“뭐? 최하준이 정말로 널 좋아한다고 말했어?”임윤서가 기뻐했다.“잘됐잖아? 이제부터 죽도록 괴롭혀줄 수 있겠네?”“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거야.”여름이 한숨을
“너무 두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아무런 악의가 없습니다.”“내가 송영식의 평판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악감정이 없을 리 없잖아요!”임윤서는 그 집 식구들을 전혀 믿지 않았다. 전에 여름이 FTT 어르신에게 잡혀갔을 때는 얼굴을 다 상하지 않았던가?‘난 아직 남친도 없는데 얼굴이 엉망 되면 안 되지. 갇히고 싶지도 않아.’“협조해 주시지 않는다면 억지로 모시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집사가 한숨을 쉬었다.보디가드가 덤비려는 것을 보고 여름이 다가왔다.“윤서야, 같이 가 줄게.”“강 대표님…”집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름이 벨레스의 후계자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뭐, 쿠베라 집안 분들이 그렇게 경우 없는 분들은 아니니 하실 말씀이 있으면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제가 친구를 혼자 보내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요.”여름이 솔직히 말했다.“그러시지요.”집사가 끄덕였다.그럼 같이 가실까요?”“여름아 정말 같이 가줄 거야?”임윤서는 불안했다. 쿠베라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호랑이 굴에 걸어 들어 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괜찮아. 우리 아버지 체면을 봐서라도 그 집에서 우리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거야.”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여름도 확신은 서지 않았다.그래서 차에 타자 좀 양심은 없지만 하준에게 구조 요청 문자를 보냈다.‘어쩔 수 없지. 최하준은 꼴 보기 싫지만 그 인간이 와준다면 나랑 윤서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 거야. 어쨌거나 지금 최하준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1시간 뒤.차가 송영식의 본가에 들어섰다. 최하준의 본가가 거대하고 장엄한 느낌이라면 쿠베라 본가는 정자에 소나무, 난간 등 꽤나 전통적이 느낌이었지만 적송 한 그루만 해도 집 한 채 값은 되어 보였다.아치문을 지나니 임윤서의 눈에 키가 크고 늘씬한 여자가 보였다. 빨리 지나가서 겨우 옆모습을 본 게 다지만 임윤서를 놀래키기에는 충분했다. “왜 그래?”여름이 윤서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