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남자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 어때?”여름의 냉랭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고개를 돌려 여름의 얼굴을 마주하니 저도 모르게 그 얼굴을 손톱으로 긁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강여름, 너무 우쭐하지 마시지. 준이 잠깐 우리 오빠를 오해했을 뿐이니까. 게다가 다 네 입에서 나온 말 뿐이지 증거도 없잖아.”백지안은 곧 냉정을 되찾았다.’‘강여름에게 증거가 있었다면 진작에 다이렉트로 우리 오빠를 찾아갔지, 여기 와서 이 지랄을 하지도 않았겠지.’이번에는 구해달라고 쪼르르 달려오지 않았다는 것은 미리 충분히 대비를 했다는 뜻이니 강여름이 우리 오빠를 어쩌지는 못할 거야.’“그래. 증거는 없어. 하지만 최하준이 조사를 해보지는 않을까? 당신이라면 당신 오빠 같은 인간이 의심스럽지 않겠어? 백윤택 머리에서 나오는 수야 빤할 텐데 그 따위 가벼운 수로 최하준의 눈을 속여 넘길 수 있을까?”여름의 말을 들은 백지안은 안색이 확 변했다.“최하준이 당신을 사랑하도록 최면을 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본성까지 최면을 걸 수 있을까? 최하준은 본성이 나쁜 인간은 아니야. 그저 당신 때문에 내내 백윤택을 봐줬을 뿐이지.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그게 계속 반복이 되고 범죄를 방조하는 것도 죄라고 사람들이 떠들어대면 최하준은 어떻게 생각하겠어?”여름은 입술 꼬리를 씩 올리더니 주변을 휙 돌아봤다.“그건 그렇고, 이 별장은 나랑 최하준의 신혼집이었는데 내가 자던 침대에서 자는 거 별로 거부감 없나 봐?”그러더니 여름은 백지안이 얼마나 불쾌한 얼굴이 되었는지 따위는 아랑곳 않고 차를 타고 가버렸다.백지안은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백윤택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젯밤에 강여름 집에 사람 보내서 다 부쉈어?”“아니. 그냥 임윤서가 지내는 곳에 애들 좀 보냈는지.”백윤택이 자랑스럽게 말했다.백지안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임윤서는 지금 강여름 네 집에서 지내고 있다고. 강여름 네 집을 뒤집어 놓은 거야. 방금 그 인간이 우리 집에 와서
‘오밤중에 여자 혼자서 남자 4명을 마주쳤다가는 이기기는커녕….’하준은 저도 모르게 핸들을 꽉 잡았다.“성운빌은 학교를 끼고 있는 단지라서 어린 아이들도 많고 고급 단지라 보안이 철저할 텐데 10시밖에 안 된 시간에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그러니까 말입니다. 그쪽에서도 이렇게 미친 건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경찰에서는 그 네 놈을 잡아서 조사중입니다. 놈들 말로는 강여름 대표가 서경주 회장의 후계자니까 돈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돈될 만한 것이 있나 하고 들어갔다고 주장한답니다.하지만 강도질을 하러 들어가서 이렇게 집안 살림을 모조리 부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집에 쓸만한 가구가 하나도 남지 않았을 정도로 모두 부쉈습니다. 아무래도… 복수로 보입니다.”하준의 이마 양옆이 불뚝불뚝거렸다. 하준은 한참 만에야 싸늘하게 명령했다.“이 사건이 백윤택과 관련있는지 좀 뒤져 봐.”1시간 뒤 상혁이 사무실에 있는 하준에게 소식을 가져왔다.“백윤택의 비서가 그 상습범 4명의 가족에게 상당한 금액을 이체한 것이 밝혀졌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죽의자에 앉은 하준이 뒤로 휙 돌더니 손에 들고 있던 다트를 던져 벽에 걸린 표적 한 가운데를 맞혔다.“내가… 백윤택을 너무 이래저래 눈감아준 것 같지 않아?”하준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입가는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상혁은 어이가 없었다.‘그게 그냥 눈감아준 정도가 아니잖습니까? 아주 놈이 똥오줌을 못 가리는 지경까지 부추긴 거나 다름 없죠.’그러나 말은 상당히 돌려서 했다.“다 백 대표님이 슬퍼할까 봐 그러셨던 거 아닙니까?”“……”하준의 눈동자에 한기가 서렸다.고개를 숙이고 피곤해진 미간을 문질렀다.‘그래. 이게 다 지안이 때문이지.3년 전에도 백윤택 자식을 도와주고 싶지 않았지만 지안이 때문에 양심을 져버리고 놈을 도와주고 말았어.그 바람에 여름이가 놈을 미워하게 되었고 놈은 여름이를 가둬둘 수 밖에 없었던 거야. 그 일이 도화선이 되어서 우리 아이들
“진정해. 내가 시킨 대로 왕 비서에게 얘기는 해 놨어?”“그건 했지….”“그럼 괜찮을 거야. 돈이 얼마가 들어도 놈의 입을 단단히 틀어 막아 놔야 해. 그리고, 이제 얌전히 있어. 한 번만 더 경거망동했다가는 이제 나도 몰라.”백지안은 얼굴이 벌개졌다.‘십중팔구 하준이가 뭔가를 찾아낸 게 틀림없어. 이렇게까지 날 배려하지 않고 밀어붙일 줄은 몰랐네.’----병원.여름은 여울이를 안고 죽을 먹이고 있었다. 임윤서는 전화를 한 통 받더니 신통치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어.좋은 소식은 경찰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와서 어제 그 강도 놈들이 매수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이야. 누가 그 놈들 가족 명의로 된 통장으로 거액을 입금했대. 그게 백윤택의 비서라는 거야.”여름이 고개를 들었다.“나쁜 소식은 백윤택의 비서가 죄를 뒤집어 쓰고 인정했다는 거겠지?”“맞아.”임윤서가 한숨을 쉬었다.“우리는 이제 백윤택을 뭐 어쩌지 못한다는 말이지. 그런데 누가 경찰에 증거를 넘겼는지 알아? 최하준이래! 너 아침에 가서 무슨 짓을 한 거야?”“정신 차리라고 약 좀 먹였지. 이제는 최하준도 백윤택이 한 짓에 염증을 느끼리라는 점에 나도 도박을 걸어본 거야.”여름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실은 오늘 아침 난동은 일종의 도박이었다.지금 하준의 마음에 아직 여름에 대한 감정이 조금은 남아있고 백윤택에 대한 인내심이 극에 달했을 것이라고 상정하고 이 기회를 빌어 3년 전 아이를 잃은 일이 백윤택과 간접적으로 그 일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려고 했던 것이다.그리고 다행히도 그 도박이 먹혔다.“너 진짜 대단하다.”임윤서가 엄지를 척 올려 보였다.“근데 이모, 입술이 왜 그렇게 부었어요? 모기 물렸어요?”얌전히 여름의 품에서 죽을 먹던 여울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하며 임윤서에게 물었다.갑자기 난처한 듯 임윤서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개한테 물렸거든.”“개가 엄청 큰가 보다. 어떻게 입을 물지?”여울이 깔깔대며 웃었
“어쨌든 저한테도 조카니까 저도 좀 같이 있어 보고 싶다고요.”최양하가 손을 흔들었다.“…알겠어요.”여름도 딸의 마음을 알고는 끄덕였다.“엄마가 내일 맛있는 거 해가지고 다시 올게.”하늘을 데리고 떠나면서 돌아보니 최양하가 여울을 데리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싱글벙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저도 모르게 여울이 태어났던 해가 생각났다. 늘 울기만 하고 다른 사람은 제 몸에 손도 못 대게 했던 여울이었다.‘역시 핏줄은 땡기는 모양이지. 아니면 최양하와 최하준도 어느 정도 닮았는지도 몰라. 애들은 그런 건 귀신같이 아니까.”----저녁. 여울은 최양하의 팔을 베고 잠들었다가 갑자기 소곤소곤 속삭였다.“삼촌, 우리 아빠도 삼촌처럼 애기들한테 잘 해줘요?”최양하는 움찔했다. 품 안의 작은 꼬맹이를 보며 중얼거렸다.“우리 여울이처럼 귀여운 아이를 보면 잘해주지 않을까? 왜?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모르겠어요.”여울은 입술을 모아 합죽이 입을 했다. 눈가가 발그레해졌다.“그날 나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쳐들어 왔을 때 무서웠거든요. 그래서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마한테는 말 못했어요. 엄마가 속상할까 봐.”“우리 여울이는 정말 마음씨가 곱구나.”최양하가 한숨을 쉬었다.‘어이구, 최하준. 이 천벌을 받을 인간아. 나한테 이런 딸이 있었으면 나 같으면 물고 빨고 공주님 대접을 해줬을 건데.’“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이 삼촌을 불러. 내가 아빠처럼 해줄게.”“네.”여울은 최양하의 곁에서 스르륵 잠들었다.다음날 아침. 간호사가 최양하에게 여울을 데리고 8시 전에 4층에 가서 흉부 CT를 찍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가는 길에 최양하는 여름에게 부탁 받은 대로 여울에게 마스크를 씌웠다.CT실에 들어갈 때만 잠깐 마스크를 벗으면 된다고 했다.CT 촬영을 마치고 나와서 여울에게 마스크를 씌우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돌아보니 장춘자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여울을 쳐다보고 있었다.“얘, 누구 애니?”최양하
여울은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자라서 가족이라고는 여름과 하늘 둘 뿐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할머니며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다 있었는데 여울에게만 없었다.그런 생각에 서러움이 왈칵 몰려왔다.여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양하의 목을 끌어안았다.“아빠~”최양하는 순간 다리가 후들하고 떨렸다.“이거 봐라. 애가 아빠라고 하잖니? 그런데도 인정을 안 해? 애는 거짓말 안 하는 법이다.”장춘자가 최양하를 쿡 찔렀다.최양하는 울고 싶었다.‘아니, 왜 갑자기 내가 딸이 생기냐고?’“안녕하세요?”여울이 달달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아이고, 요요, 조그만 게 예의 바른 거 보게? 귀엽기도 하거니와 이렇게 예의가 바르다니. 똑똑한 아이구나. 내가 누군지 아니? 어떻게 알았담?”그렇게 자식과 손자가 많아도 죄다 자라면서 골치 아프게 하는 것들뿐이었다. 특히나 손자 손녀들은 최윤형은 바람중이에, 최하준은 어렵사리 얻었던 아이들을 잃었지, 최양하는 아무리 해도 결혼할 생각을 안 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증손녀를 만나고 보니 노인네 마음이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방금 아빠가 ‘할머니’라고 했으니까요.”여울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아빠가 할머니 좋은 분이라고 했어요.”“아유, 귀엽기도. 이제 날 증조할머니라고 부르거라.”장춘자는 볼수록 여울이 마음에 들었다. 최양하를 노려보았다.“이 녀석아, 이렇게 귀여운 애를 왜 여지껏 숨겨놓고 있었니?”“……”최양하는 이제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아니, 내가 언제 너한테 할머니 얘기를 했었다고…. 아주 순식간에 그냥 저 천진한 얼굴로 이 설정에 이렇게 녹아든다고?’“당장 네 엄마한테 전화해야겠다.”장춘자는 바로 휴대 전화를 꺼내 최란에게 전화ㅐㅆ다.통화가 되자 장춘자는 사뭇 기쁜 얼굴이었다.“란아, 축하한다. 너 손녀가 생겼구나.”한창 업무 중이던 최란은 어리둥절해졌다. 한참을 생각해도 어디서 튀어나온 손녀인지 알 수가 없었다.“지안이가 임신했다나요?”“걔가 임신한 게 뭐 그리 대수
“아니에요. 날 좀 데리러 와요. 같이 한 번 가보죠.”----병원.장춘자는 벌써 식구들에게 모두 전화를 한통씩 돌렸다.최양하도 몰래 여름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따가 절대로 병원에 하늘이 데리고 오지 마세요.증손녀를 보고는 할머니가 거의 뭐 미친 듯이 좋아하세요. 둘이 생겼다가는 여기 큰일날 것 같아요.’마침 병원으로 가는 길이던 여름은 울컥했다.‘아니 이거 하룻밤 만에 딸을 뺏겼잖아? 어쩌다가 여울이가 양하 씨 딸로 둔갑을 해버렸어?뭐가 이렇게 안 맞아?’1시간도 지나지 않아 최대범, 최란, 추동현, 최민, 최진이 모두 달려왔다.모두들 올 때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로 왔지만 여울이를 보자 마자 모든 의심이 사르르 녹아버렸다.최란이 어렸을 때 모습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최란은 여울을 본 순간 그냥 너무나 마음에 쏙 들었다. 사업에만 매진하느라 손자 손녀를 본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자신을 닮은 귀여운 녀석을 보니 순간적으로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다.최란이 들어서니 여울이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알겠다! 할머니구나!”“내가 그랬지? 애가 똑똑하다고. 역시 우리 집안 핏줄이 다르구나.”장춘자는 어린애처럼 의기양양했다.최란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그래. 내가 네 할미다. 어떻게 알았니?”여울이 고개를 갸웃했다.“우리 아빠랑 닮았는데요. 그래서 할머니인 줄 알았죠. 그리고 날 보고 웃을 때 제일 예쁘게 웃었어요. 우리 옆집 우현이네 할머니가 우현이를 볼 때 표정 같았어요.”“우현이가 누구냐?”“나랑 같이 노는 친구요. 걔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현이한테 엄청 잘해줘요. 나는 없었는데.”여울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더니 곧 웃었다.“근데 이제 나도 다 생겼네.”“그래. 이제부터는 너도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구나.”최란은 마음 아픈 듯 여울을 안아 올리더니 최양하를 흘겨보았다.“이렇게 큰 일을 숨기고 말을 안 하다니, 나중에 나 좀 보자.”최대범도 맞장구를 쳤다.“우리 집안에 자손이
“엄마, 옛날 예기는 뭐 하러 꺼내요? 여름이 걔가 명이 그것 밖에 안 되는 걸 어쩌겠어?”최민은 꽤 신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자제하며 말했다.“하여간 이 병원은 시설이 마음에 안 든다. 애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자꾸나. 나주에 의료팀을 꾸려서 집으로 부르면 되지. 애를 병원에 이러고 냅둘 일이 아니다.”최대범이 즉시 명령했다.FTT의 증손녀는 더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최 씨 대 가족이 위풍당당하게 여울을 데리고 병원을 떠날 때 여름이 주차장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마음이 섭섭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여울이 행복한 얼굴로 최란에게 안겨 있는 것을 보니 속이 영 말이 아니었다. 직접 입 밖으로 말한 적은 업지만 여울이 친구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부러워 했던 것은 알고 있었다.‘뭐… 이렇게 되는 것도 괜찮을지 몰라. 최양하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FTT에 들어가면 식구들이 모두 아이를 아껴줄 테고 최양하가 애를 빼앗아 가려고 하지도 않을 테고.다만 어렵사리 키워놓은 딸을 갑자기 그 집에서 데려가 버리니 상실감에 괴로웠다.“하늘아, 여울이가 부럽니? 너도 아빠네 집에 들어가고 싶어?”여름이 허리 굽혀 아들에게 물었다.하늘은 고개를 흔들었다.“저는 아빠네 집이 싫어요. 엄마랑 있고 싶어요.”그러더니 여름의 손을 꽉 잡았다.여울과 비교하면 하늘의 생김은 훨씬 여름을 닮았다.여름은 손을 뻗어 부드럽게 하늘을 껴안았다.“엄마, 실망하지 마세요. 지금은 여울이가 신기해서 그 집이 좋을 수도 있어요. 며칠 지나면 울면서 엄마를 찾을 걸요.”하늘이 담담히 말했다.“그래.”여름이 한숨을 쉬었다.‘뭐, 사실 여울이를 다시 그 나라로 보내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어. 그렇다고 최하준을 그렇게 닮은 애를 곁에 두는 것도 시한폭탄 같아서 위험해. 언제고 하늘이 존재가 폭로될 수 있어.일단은 잠깐 이 상태로 두자. 그래도 양하 씨네 집에 두는 게 제일 안전할 거야.’“하늘아, 여울이가 본가로 들어갔으니 너도 잠깐 여기 같이
한창 신나게 놀던 여울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강여울이에요.”“강 씨라고!”다들 깜짝 놀라서 눈빛이 이상해졌다.최민이 눈짓을 했다.“설마하니 쟤 에미 이름이….”최양하는 다리가 후들거렸다.“아하하, 그게 우연이죠. 뭐 세상에 강 씨는 많잖아요?”“하긴, 성이 뭔지가 뭐 중요하냐? 어쨌든 최 씨로 바꾸면 되지.”치대범이 강경하게 말했다.“난 최 씨가 되기 싫은데.”그 말을 듣더니 여울은 놀라서 울었다.“난 그냥 강여울 할 거야.”“그래, 그래. 안 바꾸면 되지. 괜찮다.”장춘자가 영감을 흘겨보았다.“이제 막 엄마를 일은 애한테 갑자기 성을 바꾸라고 해요? 천천히 하면 되지, 급할 거 뭐 있다고.”최대범은 머쓱해지고 말았다.어느 새 다들 유아실에 도착했다.여울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할머니, 여기 너무 좋아요. 난 인형이랑 분홍색이 좋거든요. 미끄럼틀도 있네? 하늘이랑 같이 놀고 싶다.”“하늘이라고?”다들 깜짝 놀랐다.최양하의 심장이 철렁하는 순간 여울이 덧붙였다.“아, 내 친구 말이에요.”“아….”그제야 다들 이해했다.최양하는 아주 그냥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이때 최란이 최양하를 흘겨보았다.“이제 애도 있겠다, 집으로 들어오너라. 애랑 같이 있어줘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밖으로 돌 생각이니?”“이제는 퇴근하면 바로 바로 집으로 오거라.”장춘자도 덧붙였다.여울이 최양하의 다리에 매달렸다.“아빠, 사랑해요~”“……”온 식구들이 하루종일 여울을 물고 빠느라 바빴다.그러나 최동현은 1시간쯤 지나자 최란에게 말했다.“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뭘 이렇게 서둘러요. 오늘 저녁에는 여울이에게 파티를 해주기로 했는데. 당신은 여울이 할아버지 아니네요.”최란이 약간 화를 냈다.“양하는 당신 아들이라고요.”“얼굴 봤으면 된 거죠. 용돈 봉투는 하나 두고 갈 게요.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추동현은 그러더니 자리를 떴다.최란은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최양하가 다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