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화가 웃었다.“대표님께서 아이를 둘 이상 가지고 싶다는데 회장님은 대표님이 자꾸 임신 출산을 반복하면 힘들까봐 시험관 아이로 쌍둥이를 낳자고 하신 거겠죠? 그래서 이주혁 선생님이 국내 최고의 산부인과 팀을 초빙해 주셨잖아요?”“정화 씨….”백지안이 부끄럽다는 듯 살짝은 질책하는 기색을 담아 문정화에게 시선을 던졌다.여기저기 둘러보던 여름의 시선이 백지안의 배에 머무르더니 갑자기 웃었다.“남자라고 아주 말은 쉽게 했나 보네. 인공수정이 남자한테는 그냥 정자나 제공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만 여자는 갖은 고생을 다 해야 하는데. 초기에는 매일 주사 맞고 약 먹고…. 얘기 들어보니 수정란 주입하는 과정도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힘들다던데. 존경스럽네요. 최하준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지? 난 비교도 안 되겠네.”백지안의 안색이 삽시간에 확 바뀌었다. 사실 여름이 한 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백지안도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하준은 백지안을 안지 못하니 백지안도 임신을 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말 다 했어요? 지금 질투 나서 그러는 거죠?”문정화가 발끈했다.“질투? 내가?”여름이 어깨를 으쓱했다.“내가 질투할 거리가 뭐 있죠? 난 그냥 쌍둥이를 임신해서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거든. 내가 애초에 너무 눈을 높여 놔서 하나만 임신해서는 성에 안 차나 봐?”“정말 너무 하군요.”백지안이 예뻐 보이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눈에서는 곧 눈물이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여름이 눈을 돌려보니 역시나 하준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옆에는 병원 고위급 관계자들 몇 명이 따르고 있었다.하준이 다가와 백지안이 우는 것을 보고 여름에게 눈을 부릅떴다.“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미 이혼도 한 사이에 어쩌자고 계속 이러고 질척대?”백지안이 막 입을 열려는데 여름이 먼저 말을 꺼냈다.“아니, 백지안 씨에게 인공수정을 받게 하다니 너무하지 않아? 왜 그냥 자연스럽게 아기를 가지지 않고? 인공수정을 하면 초기에 매일 주사 맞
15분 뒤.여름은 병원 측에서 병원을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서경주는 아직 치료를 요하는 상태였지만 그 소식을 듣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최하준이 아주 기고만장이군. 대체 무슨 원수를 졌다고 사람 치료도 못 받게 하는 거야?”“아버지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건드렸어요.”여름이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깔았다.‘이 빚은 하나 하나 다 마음에 새겨두겠어.’“여름아, 힘들어할 것 없다. 내가 애초에 주민그룹 산하 병원에 들어오질 말았어야 했어. 주민 그룹과 FTT는 원래 한통속이었는데. 가자! 이 치욕은 내가 반드시 기억해 두겠다. 앞으로 꼭 갚아 주겠어.”서경주가 냉랭하게 내뱉었다.“네, 갚아줘야죠.”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위자영이 판결을 받은 다음날.서경주는 강여름을 자신의 후계자이자 재산상속자로 힘껏 키울 것이며, 병원에 입원한 동안 회사의 대소사는 모두 강여름이 책임지게 된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했다.네티즌은 서경주의 재산이 얼마인지, 벨레스의 기업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면서 순식간에 강여름이 전국 최고의 부유한 재벌 2세가 된다며 떠벌렸다.뿐만 아니라 여름의 미모며, 높은 학력까지도 발굴해 내서 공유했다.- 완전 팬됨. 이렇게 돈 많고 예쁜 사람이라니, 이제 감히 어떤 남자가 강여름에게 어울리겠어?- 남자가 왜 필요함?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데?- 잊어버리셨나 본데 강여름은 최하준의 전처임.-최하준은 눈이 멀었나, 외모로 보나, 재산으로 보나, 배경으로 보나 백지안하고는 너무 비교되는 거 아닌가?백지안의 팬들도 즉시 불만을 표출했다.- 백지안이 뭐 어쨌다고? 국제적으로 이름난 정신과 의사에, 영하그룹 2세인데?- 정신과 의사 따위… 강여름은 헤이즐의 수석 디자인 이사라고.- 뭐야? 헤이즐이라니 듣보잡인데?-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은 갈 텐데 굳이 무식을 티내네. 가서 검색 좀 하시지. 헤이즐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건축 회사라고. 헤이즐 소속 국제적 디자이너와 설계사들이 국제 대회는 싹 쓸어버리고, 연봉이
이때 FTT에서는 중역회의가 열리고 있었다.최양하는 고개를 숙이고 휴대 전화를 보고 있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보다가 ‘오호!’하는 소리를 말았다.조용했던 회의실에 최양하의 목소리가 퍼지자 회의실은 완전 침묵에 빠졌다. 모두가 최양하를 쳐다보았다.하준이 의자에 깊숙이 기대면서 손에 들고 있던 펜을 툭 던졌다.“최 전무는 뭘 보느라고 그렇게 몰입했는지 다같이 한 번 들어 볼까?”최양하가 코를 문질렀다.“정말 듣고 싶으실까요?”중역들은 숨도 쉬지 못했다.‘최 전무가 지금 들이 받는 건가? 회장님의 화난 목소리가 안 들리나?’“회사 홈페이지 보고 있는데 지금 폭발 중이네요.”최양하가 씩 웃었다.“회장님하고 관련된 일로요.”누군가가 웃었다.“회장님과 백지안 씨의 결혼을 축하하나 보네요.”“요즘 회사로 축전이 많이 오고 있죠. 아무래도 경제계의 대 스타시다 보니까, 아하하!”하준은 내내 무표정으로 있었다. 중역들의 말에는 동의했지만 그런 문제에는 관심이 딱히 없었다.“그래서, 그 일이 지금 회사 미팅 중에 휴대 전화 가지고 놀 일이라는 건가?”“아니죠. 다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지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건, 전처 쪽 일인데요.”최양하가 어깨를 으쓱했다.“아직 모르시나 본데, 서경주 회장이 강여름을 후계자로 정했습니다. 네티즌들이 강여름의 신분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어요. 그리고 숨겨져 있던 강여름의 신분을 들추고 있는데, 이게 글쎄! 알고 보니 헤이즐의 수석 디자인 이사라지 뭡니까? 헤이즐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했어요.”“헤이즐이라고?”중역들이 놀랐다.“정말입니까? 전세계 최고의 건축 기업 아닙니까? 그쪽 디자이너들은 전세계 일류라고 하던데. 수석 디자인 이사라면 완전 초특급 인재 아닙니까!”“정말이라니까요. 못 믿겠으면 직접들 가서 보십시오.”최양하가 의미심장하게 하준을 흘끗 쳐다보았다.“회장님, 다 알면서도 우리한테는 말씀 안 하셨던 겁니까?”“……”‘어쩐지 헤이즐 같은 곳에서 선뜻 강여름과 협력을 한다 싶
여름은 초청장을 들고 빙글빙글 돌렸다.“이런 파티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담?”“정재계 명사들이 모두 모이는 파티입니다. 대표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그 시아라는 가수의 무대도 준비되어 있다고 하더군요.”여름이 안 갈까 봐 엄 실장이 부추기기 시작했다.“별일 없으시면 가서 좀 괴롭혀 주시지 그러십니까?”“……”잠시 후 여름이 웃었다.“엄 실장, 아주 사람 긁을 줄 아네요? 시아는 이주혁의 여자친구인데 나한테 무슨 일이 날까 봐 걱정은 안 되나요?”엄 실장이 웃었다.“대표님이 이제 서경주 회장의 후계자이자 헤이즐의 수석 디자인 이사라는 점이 밝혀진데다 화진의 주가가 몇 배로 뛰어서 다들 대표님과 안면을 트고 싶어 합니다. 주민 그룹이 아무리 세도 이제는 대표님에게 댈 수가 없습니다.”“그도 그러네요. 마침 이주혁에게 받을 빚도 있으니까.”여름이 초청장을 탁 하고 닫았다.‘흥, 지난 번에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모욕적으로 병원에서 내쫓았겠다? 이제 그 빚을 어떻게 받는지 두고 보시지.’----밤.컨벤션 센터의 입구.슈퍼카들이 줄줄이 들어왔다.검은 고급 세단에서 내린 여름이 길게 깔린 레드카펫 위로 걸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어 여름의 곡선을 우아하게 드러냈다. 거기에 여름의 미모와 브라운 컬이 찰랑이면서 완전히 동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단정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웠다.모든 좋은 형용사를 모두 강여름에게 사용해도 모자랄 판이었다.오늘 파티를 위해 정성들여 차려 입은 온 재계의 미녀들이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여름이 들어오고 얼마 안 돼서 시아가 차에서 내려 이주혁과 걸어 들어 왔지만 시선을 모두 강여름에게 빼앗겨 시아를 눈 여겨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시아는 강여름이 원망스러워서 어쩔 줄 몰았다. 소진그룹도 국내에서 손꼽는 그룹이라 원래는 오늘밤 파티에 참석해 한껏 뽐낼 생각이었다. 입고 있는 드레스도 이주혁에게 한참을 졸라서 일류 디자이너에게 맞춘 것이었는데 이목이 온통 강여름에게 집중되어
여름은 웃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이거 아주 재미있겠는걸.3년 만에 아는 얼굴들이 이렇게 모두 한자리에 모이다니….’양유진은 여유롭게 여름에게 잔을 들어 보였다. 여름은 곧 양유진이 보낸 톡을 받았다.-오늘 당신의 목적을 아니까 방해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조용히 당신을 지켜보고 있겠습니다.여름의 마음이 따뜻해졌다.하얀 슈트를 입은 최양하는 우아하게 다가오더니 와인을 한 잔 건넸다.“원래 안 오려다가 강여름 씨 온다는 말을 듣고 바로 왔죠. 오늘 아주 성대하네요.”“그러네요. 전 마음에 들어요.”여름이 와인 한 모금을 홀짝 마시더니 매혹적인 웃음을 띠었다.최양하의 눈이 반짝이더니 유감스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최하준과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데려왔을 텐데. 지금 내가 강여름 씨를 따라다니면 가족에게 욕 먹겠죠. 형제가 한 여자를 두고 다투는 꼴은 못 볼 테니.”“날 안 따라다녀서 다행이네요. 제 스트레스가 극심할 뻔했잖아요?”“왜죠?”“지금 제 추종자가 너무 많아서요.”여름이 끊임없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남자들을 둘러보았다.“보세요, 저 많은 남자들이 호시탐탐 말 붙일 기회만 노리고 있다니까요.”“어쩔 수 없죠. 이렇게 예쁘고 실력있고, 배경 좋은 사람응ㄹ 누가 싫어하겠어요?”최양하가 여름에게 손을 뻗었다.“저랑 한 곡 추시겠어요? 오늘 밤 제일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체면 한 번 세워 주시죠?”“좋아요.”여름이 최양하의 큰 손바닥에 자기 손을 올려놓았다.두 사람은 함께 무도회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동화 속 주인공 같은 두 사람의 등장으로 연회장은 순식간에 부러움과 찬탄으로 가득했다. 막상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춤을 즐겼다.“오늘 뭐 하러 왔습니까? 한 번 깽판 놓으러 온 거예요?”여름이 최양하를 흘겨 보았다.“소진그룹 파티인데 깽판 같은 걸 치면 쓰나요? 노래나 한 곡 부르러 왔어요.”“노래를 한다고요?”최양하가 작게 기침을 했다.“오늘 시아 무대가
심장에 한기가 들며 절로 하준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던지 백지안이 ‘쓰읍~’하는 소리와 함께 나지막이 말했다.“준, 아파….”“아, 미안.”하준이 미안한 얼굴로 얼른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댄스홀 한가운데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원래는 백지안과 하준의 결혼 이슈가 가장 주목을 받을 때였으나 여름이 불쑥 튀어나와 이슈몰이를 할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는 사람들이 백지안과 여름을 비교하니 백지안이 아무리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저어 봤자 여름처럼 이슈의 중심이 되지는 못했다.이제 겨우 하준의 옆 자리를 꿰어 찼는데 여름이 튀어나서 모든 언론의 카메라를 다 가져가 버린 것이다.더 짜증나는 일은 지금 하준의 눈에서 보이는 질투의 시선이었다.“준, 어머님 저쪽에 계시네? 우리 가서 인사드릴까?”백지안이 부드럽게 주의를 환기시켰다.“그래.”가족이라고는 해도 공공장소에서 드러나 보이는 예의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따.두 사람은 함께 최란에게 다가갔다. 최란은 어느 아이 지긋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지인이 놀리듯 말했다.“자네 며느리랑 아들 왔네.”“어머님, 안녕하세요?”백지안이 두 어른을 향해 인사했다.“아이고, 예의 바르기도….”지인은 최란의 식구가 다가오자 다른 사람과 할 이야기가 있다며 자리를 피해주었다.최란은 덤덤하게 백지안을 흘긋 보았을 뿐이다. 최근 본가에 갔을 때 두 노인네가 툭하면 잃어버린 강여름 뱃속에 있던 쌍둥이를 자꾸 언급하니 백지안이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다.백지안만 아니었으면 진작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예전에는 그렇게 강여름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해서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는 남자에게 들러붙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끼어들어와 아내는 유산까지 시키는 백지안의 못된 짓거리를 보고나니 그렇게 윤리적인 인간이라는 생각도 안 들었다. 백지안은 자신을 본체만체하는 최란을 보니 위축이 되었다.하준은 그런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지안이가 어
여름은 이미 최양하와 한 곡을 마쳤다. 곧 훤칠하고 능력 있는 서리 제철 2세가 댄스 신청을 했다.손에 저도 모르게 꽉 힘이 들어갔다.최란은 한숨을 쉬었다.“사람 앞 일이라는 건 정말 모르는 거구나. 안 그러니? 오늘 여기서 사람들은 뒤에서 양하 이야기를 쑥덕거리지 않더라. 다들 네 얘길 하지. 어쩌자고 저런 애를 두고 백지안 같은 애를 만나냐고….걔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니? 백윤택은 재벌가에서는 다들 무시하고, 네가 지탱해주는 게 아니면 아무도 영하와는 손잡고 싶어하지도 않아.”“그만 하시죠.”하준은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더욱 불편해졌다.“지안이가 제 병을 고쳐줬잖습니까? 어렸을 때 병원 입원했을 때도 지안이가 격려해주지 않았더라면 전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도 않아요.”“여름이도 널 잘 보살펴 주고 격려해주지 않았었니? 그때 여름이가 아니었으면 나야 말로 네 손에 죽을 뻔 했었다.”최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그런 일이 있었습니까?”최란은 어이가 없었다.“백지안이가 치료해줬다는 네 상태가 지금 그 지경인 거니? 뭔 치료를 했길래 여름이가 네게 해줬던 좋은 일은 그렇게 싹 다 잊었다니?”최란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하준은 정신이 멍해졌다. 저도 모르게 옛일을 다시 자세히 떠올려 보려고 했더니 갑자기 두통이 극심해졌다.하준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다가 시선 끝에 저만치에 있는 추동현이 들어왔다. 추동현과 추성호가 신나게 떠드는 모습을 보다가 하준이 냉랭하게 말했다.“추동현 화백 보시죠. 입으로는 아니라면서 사실은 추신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 정말로 추 화백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최란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더니 안색이 나빠졌다.바로 추동현에게 다가갔다.“동현 씨, 이리 좀 와 보세요.”최란이 한참이나 기다리고 났을 때야 추동현이 느른하게 웃으며 다가왔다.“무슨 일 있어요?”최란이 추동현을 바라보았다. 점점 더 추동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추신하고 거리 두시라고 했잖아
“너 보고 싶어서 그러지. 최란이 너랑 비교가 되나?”추동현이 그 사람의 허리를 감더니 뜨겁게 키스했다.“아저씨, 나 사람 없는 데 봐 놨는데, 거기 가서 놀래요?”그쪽에서 애교를 떨며 말했다.“어디, 가볼까?”추동현이 여전히 허리에 팔을 감고 뒤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걸어가면서 내내 입을 맞추고 있었다.두 사람이 막 자리를 뜨자 여름이 휴대 전화를 들고 향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손에 든 휴대 전화는 아직까지 영상을 찍고 있었다.막 따라가려는데 손 하나가 불쑥 나와 여름의 휴대 전화를 낚아챘다.돌아보니 하준이 휴대 전화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이런 걸 찍다니 부끄럽지도 않나?”잠시 후 하준은 불쾌함이 가득한 얼굴로 여름을 노려보았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 양아버지의 바람 현장을 발견하는 바람에 기분이 안 좋으리라고 생각했지 이런 문제를 들고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뭐가 부끄러운데? 아주 핫하고 좋던데. 쉰 넘은 분이 한창 젊은 아가씨 허리에 손도 척척 올리시고. 얼마나 대단해?”여름이 눈을 가늘게 떴다.“잊어버려.”하준은 괜히 울컥했다.“내가 삭제 버튼 하나 누르면 자료가 삭제되는 컴퓨터야?”여름은 다시 휴대 전화를 쏙 뺏더니 가려고 했다.하준이 와락 여름을 잡더니 날카로운 눈을 했다.“영상은 나한테 보내.”여름이 하준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달빛 아래 여름의 손이 하얗게 빛났다. 손목에는 다이아 팔찌를 차고 있었다. 심플하지만 눈처럼 하얀 피부를 더욱 고급스럽게 빛내 보였다.하준의 심장이 두근했다.“뭔데?”“저작권료는 주셔야지.”여름이 당연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추동현 화백이 누군데, FTT의 데릴사위, 추신의 맏아들인데 이런 영상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하준은 얼음처럼 차가운 논으로 여름을 쳐다봤다.“칼만 안 들었지 완전히 강도잖아?”“최하준 회장님, 저도 알 건 다 안다고요. 유명 연예인 추문 뉴스거리만 해도 수천만 원 짜리인데, 저작권료를 안 주시겠다면 그만 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