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시 자신을 유혹하는 것인가 싶었다.“아니, 두 분 그런 얘기는 두 분이 따로 나누시죠.”경찰이 헛기침을 하며 난처한 듯 말했다.하준은 여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이게 다 강여름 때문이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야!’“알겠어요.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여름은 또각또각 힐 소리를 내며 경찰서를 나섰다.하준이 성큼성큼 따라 나오자 여름은 대뜸 번호를 내밀었다.“내 계좌 번호.”“……”하준은 여름과 함께 있을 때마다 혈압이 확확 오르는 것을 느꼈다.“잠깐 금액이 이상한데? 왜 이렇게 많아?”“내 신발 값도 물어주셔야지.”여름이 당연하다는 듯 하준을 쳐다봤다.“그 뮬, 리미티드 버전 명품 신상이었다고.”“그 슬리퍼로 날 때려 놓고 아주 뻔뻔하게도 물어내라네.”하준이 불만스럽게 말했다.“그러면 가서 다시 찾아오시던지. 누가 그런 걸 창밖으로 던지래?”“……”비록 국내 최고의 변호사 신분이었지만 이때만큼은 할말이 궁해졌다.“아, 빨리. 나 바쁘단 말이야. 약속 잡혀있다고.”“누구랑? 도재하인가?”하준의 시선이 무거워졌다.여름이 눈을 반짝 하더니 갑자기 하준에게 다가섰다.원래도 가까웠던 두 사람은 이제 거의 몸이 붙어있었다. 여름의 몸에서 나는 향긋한 체취가 올라왔다.아찔해진 하준의 이성은 여름을 뒤로 밀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여름에게서 나는 향기는 하준을 취하게 만들었다.“가, 강여름. 뭐 하는 거야?”“그 말은 내가 물어야 할 것 같은데? 당신 아직도 마음속에 내가 있는 거 아냐?”여름이 눈썹을 휙 세웠다.하준은 웃긴다는 듯 여름에게 한 마디 하려는 순간 갑자기 여름이 손가락을 뻗어 하준의 입술을 눌렀다.여름의 손가락에서 퍼진 찌릿한 느낌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하준은 몸이 완전히 굳어져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입으로는 나랑 이혼하고 싶다고 하면서 뒤로는 유부녀 신분으로 바람 날까 봐 그런다며 내 사생활까지 일일이 간여하려는 걸 보니까 당신 마음속에 백지안만 있는 게 아니지? 백지안을
곧 검은 스포츠카가 다가왔다. 도재하가 창문을 내리더니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그러더니 여름을 태우고 경찰서를 빙 돌아 나갔다.하준은 화가 나서 쫓아갈 뻔했다. 그러나 강여름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문득 멈춰섰다.‘당신… 마음속에 아직 내가 있는 거 아냐?’여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그럴 리가 있나. 내 마음속에는 지안이 뿐이라고.’밤 10시.고요한 서재.하준은 신분기 보고서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백지안이 야한 슬립백을 입고 뒤에서 슬몃 하준을 안았다.“준, 약은 먹고 있어? 우리 한번 해볼까?”하준의 몸이 확 굳어지더니 돌아봤다. 백지안의 간절한 시선을 보니 거절하기가 어려웠다.“그럴까?”지난번에 강여름에게 그렇게 강렬하게 반응이 일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백지안의 손길이 닿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강렬한 거부감이 불쑥 치솟았다.“미안, 아직 안 되는 것 같아.”하준이 난처한 듯 지안을 밀어냈다.“조금만 더 기다려 줘.”“괘… 괜찮아. 내가 너무 서둘렀나 봐.”백지안은 입술이 빨개지도록 깨물었다.“요즘 내가 너무 불안해서 그냥 너랑 마지막 관문을 통과 해야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하준의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떠올랐다.“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평생….”“아니야. 네가 평생 그렇더라도 난 너랑 함께 할 거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니까. 다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지안의 눈에 짜증이 스쳐지나갔다.‘이래가지고는 안 되겠어. 하준이를 온전히 다 얻을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해.’“정말 미안해.”하준의 눈에 죄책감이 가득했다.‘강여름에게는 분명 반응이 있었느데. 왜 지안이에게만 안 되는 거야? 다른 여자는 다 되는데 지안이만 안 되는 건가?’다음날 출근길에 하준이 상혁에게 말했다.“저녁에 호텔로 여자 애들 몇 명 불러.”상혁은 다리가 떨려서 하마터면 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회장님, 저기….”“묻지마.”하준이 단칼에
여름은 그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다.하준이 어두운 얼굴로 여름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대체 누구랑 그렇게 통화를 해? 도재하?”‘말끝마다 사랑한다느니 뽀뽀라느니 거슬리네.’다른 남자와 그렇게 친밀한 꼴을 보자니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여름은 흠칫했다. 막 여울이, 하늘이와 통화 중이었는데 절대로 하준에게 둥이의 존재를 들킬 수는 없었다.“남이사!”여름이 얼른 이어폰을 빼면서 전화를 끄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서두르는 모습이 오히려 더 수상쩍게 보였다. 하준은 화가 나서 휴대 전화를 확 낚아채서 스피커 폰으로 돌렸다.“도재하?”“최하준!”여름은 놀란 나머지 심장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부디 둥이들이 현명하게 대처해 주기만 바랄 뿐이었다.“아저찌, 도재하가 누군데요?”아직 젖비린내가 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하준은 흠칫했다. 전화기 저쪽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여자아이 목소리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목소리는 사뭇 밀키한 것이 사람의 심장을 녹이는 것만 같았다.‘강여름이 왜 이런 아기랑 이렇게 친밀한 거야?’“아저씨가 잘못 알았구나. 넌 누구니? 강여름이랑 무슨 사이야?”하준은 여자아이를 놀래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목소리를 눌렀다.“왜 경찰 아저씨가 도둑한테 말하는 것처럼 물어봐요?”여울이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물었다.“……”하준은 골치가 아팠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어린애랑 이야기를 나누어볼 일이 없어 대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최하준, 전화기 돌려주지.”여름이 손을 뻗어 빼앗으려고 했다. 그러나 하준은 바로 손을 바꾸며 휴대 전화를 높이 쳐들었다.“아, 왜 여름 이모 전화 뺏어요?”여울이가 화를 냈다.“이모라고?”하준은 멈칫했다. 갑자기 무겁던 가슴이 한결 가벼워졌다.‘다른 남자의 애를 낳은 게 아니었다니 다행이네.’“그럼 우리 엄마겠어요? 뭐, 이모가 우리 엄마면 좋겠지만.”그러더니 갑자기 여울이 울기 시작헀
“그러게. 가정 교육이 제대로 안 됐네.”여름이 가식적으로 웃으며 답했다.“특히 얘에 아빠가 말이지, 밖에 내연녀를 두고 집은 돌보지도 않는다니까.”“거 무책임한 인간이군 그래.”하준은 갑자기 그 여자아이가 가련하게 느껴졌다.“그치? 꼭 당신처럼 말이지.”여름이 말했다.“옆 집 애기를 보니까 유산된 내 둥이들이 생각나서….”“……”하준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이제 보니 날 저격하려는 거였나? 애초에 당신이 죽자 사자 나에게 결혼해 달라면서 침대로 뛰어들지만 않았으면 임신할 일도 없었을 거 아냐?”여름은 어이가 없어서 하준을 쳐다봤다.“내가 대체 어떻게 당신 침대에 뛰어들었는데? 구체적으로 말해보시지?”“저저, 뻔뻔한 거 보라니까. 동성에 있을 때 당신이 내 술에 약을 타서 내가 당신한테 당한 거 아냐?”하준이 있는 대로 비난했다.여름은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다.‘백지안의 최면 대단하네. 완전 기억을 조작까지 했잖아? 정작 본인은 기억 조작당한 것을 눈치도 못 채고 있어.’“뭐, 내가 몇 년 지났다고 다 잊어버릴 줄 알았나?”하준이 하는 말에 멸시의 말투가 역력했다.“기억력 되게 좋으시네. 늦어서 난 이만 집에 가야겠어. 따라올래? 술 한잔 줄지도 모르지.”여름이 쇼핑백을 흔들어 보였다.“마침 레드 와인 샀는데 같이 마실래?”“난 더러운 건 질색이라서.”하준이 여름을 노려보더니 돌아서 자리를 떴다.여름은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러고 매일 밤 나에게 와서 껄떡대고 있으니 백지안은 얼마나 속이 탈까?하지만 이것도 괜찮지. 아니면 계획을 어떻게 시행하겠어?’하준은 차로 돌아갔지만 바로 출발하지는 않았다.전화기 속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니 갑자기 가슴이 찌릿하게 저려왔다.‘그때 그 아이들이 태어났다면 어땠을지 모르겠네. 굉장히 귀여웠겠지.쌍둥이라고 그랬었는데….’몇 년 동안 하준은 내내 그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떠올리니 마음이 아팠다.‘내 아이들….’----해변 별
하준의 마음속에 백지안은 언제나 배려심 깊은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우는 백지안을 보고 있자니 하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백지안은 알아야 했다. 이것이 하준의 역린이라는 것을.그런데도 백지안은 그런 짓을 했다.그리고 자신이 백지안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것이 이 사태가 발생한 원인이었다.돌이켜 생각해 보니 여름이 돌아온 후로 확실히 백지안에 대한 관심이 줄기는 했다.그 동안 백지안은 자신의 곁을 지키면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남자로서 하준은 유감스럽기 그지 없었다.이제 백지안은 비굴하게 애걸하면서 하준이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입을 다물고 있는 하준을 보고 백지안은 전과 달리 미친 듯 주동적으로 달려들었다.그런데 하준은 불타오르는 것 같은 몸을 하고도 백지안의 손이 닿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이 거부감이 들었다.결국 하준은 참지 못하고 백지안을 밀어버렸다.백지안은 처참하게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지안아, 정말 미안….”하준은 창백한 백지안의 얼굴을 보더니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젓더니 돌아서서 서재에서 뛰쳐나갔다.“준, 기다려!”백지안은 매무새가 흐트러진 채로 따라 나갔다. 그러나 결국 흙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가는 차를 보았을 뿐이었다.“아아악! 최하준! 이 쓸모 없는 놈아!”백지안은 미친 듯이 발을 굴렀다. 그렇게 견디기 힘들어 보이는 몸으로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왜?내가 그렇게 구역질 나?최면술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 거지?어쨌거나 저 지경을 해가지고 다른 여자를 찾아가지는 않겠지?아니, 아니야. 아예 되질 않으니 다른 여자라고 해도 소용 없을 거야.’그러나 계속해서 한줄기 불안이 백지안을 엄습했다.특히 혹여 하준이 여름을 찾아갔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백지안은 얼른 송영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철철 울면서 전화한 이유를 밝혔다.송영식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럴 리가.
여름의 조롱에 하준은 부끄러운 나머지 화가 났다.“나라고 그러고 싶었는 줄 알아? 나도 당한 거라고.”“하!”여름은 코웃음쳤다.‘쓰레기의 최고 경기를 또 돌파하셨구먼.그러니까 무슨 뜻이야? ‘내가 널 안고 싶어서 안은 줄 알아? 내가 약에 당하지만 않았다면 너 같은 거 건드리지 않는다고, 그러니 너에게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거야. 날 원망하지마.’뭐 그런 뜻이야?“왜 웃어? 아주 의기양양했지?”하준은 어젯밤 다급한 나머지 너무나 여름을 원해서 자신의 체면은 완전히 손상된 기분이었다.“좋냐”여름은 어이가 없어하며 소매를 걷었다. 팔뚝에는 온 힘들 다해 막다가 생긴 온갖 시퍼런 멍이 보였다.“이거 봐봐. 내 몸이 온통 상처 투성이야. 어젯밤에 날 사람취급하지도 않았다고! 알아?!?!”하준은 그 상처를 보면서 복잡한 심경으로 입술을 핥았다. 미안함이 슬금슬금 올라왔다.“대체 왜 백지안에게 안 가고 여길 왔어?”여름은 혐오감을 꾹 눌렀다. 하준은 여름에게도 결벽증이 있는 것을 몰랐다.“……”하준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마에 가볍게 흩어져 있는 검은 머리는 전혀 하준의 미모를 해치지 못했다. 오히려 입술과 어우러져 더욱 미모를 돋보이게 만들고 속눈썹을 더 길어 보이게 만들었다.“설마… 백지안에게 완전히 관심이 없는 거 아니야?”여름이 하준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더욱 커졌다. 밤을 보내고 나니 여름의 눈가는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어젯밤 여름이 얼마나 예뻤는지, 어떤 향기가 났는지가 뇌리를 훅 스쳐 지나갔다. 아직까지도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내 말이 맞나 보네?”입을 꾹 다문 하준을 보고 여름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쓸데없는 소리.”하준이 더없이 싸늘하게 뱉으며 여름을 차갑게 훑었다.“어제 완전히 이성이 날아가서 지안이를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웠어. 지안이는 보호하고 아껴줘야 한다고.”“그러면 나는?”한껏 웃음짓고 있던 여름의 입가가 굳어졌다.‘여전히 그 최하준이네. 아
하준은 여름의 뒷모습을 보는 심정이 복잡했다.‘지안이가 날 속인다고?’하준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분명 강여름의 교활한 음모였겠지.’어젯밤 땀을 많이 흘려서 하준은 찝찝했다. 그런데 사워를 하려고 들어가 보니 타월이 없는 게 아닌가? 가만 생각해 보니 아까 여름이 집어던진 수건이 기억났다.하준은 결벽증이 있어서 백지안이 한 번 닦은 수건도 절대 참지 못했다. 그러나 여름이 썼던 것은 조금도 반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수건에서 여름의 냄새가 나서 좋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여름이 식탁에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위에는 계란도 올라가 있었다. 딱 보기에도 너무나 맛있어 보였다.밤일로 피곤해진 하준은 갑자기 배가 고팠다.“내 건?”하준은 그대로 의자를 당겨 옆에 앉았다. 마치 밥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았다.여름은 느른하게 하준을 한 번 쏘아보았다.“당신 건 당신 집에 있겠지.”“……”“여기서 아무리 기다려 봐야 식사 바치는 사람 없어.”기대에 차 있던 하준의 얼굴에 분노가 들어차는 것이 그냥 봐도 보였다.“강여름, 난 지금 여기 있잖아. 아, 몰라. 나 배고프다고. 빨리 국수 끓여 줘”“내가 왜 당신에게 국수를 끓여줘야 하는데? 내가 국수 끓여주면 감사한 마음이 들기는 하겠어? 어젯밤에 구해준 감사 인사도 난 아직 못 받았는데.”눌러왔던 화가 폭발해서 여름이 마구 쏴댔다.“허구한 날 남의 집에 와서 먹고 마시고 말이야. 내가 밥값도 안 바라. 그저 문제 거리나 들고 오지 마. 꺼져!”“지금 나더러 꺼지라고 한 거야?”하준의 몸에서 음험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아니면? 가란다고 갈 거야? 문제는 당신은 지금 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거지.”“……”‘걸어나가지 않을 거면 꺼져라, 그런 말이야?’화가 나서 하준이 얼굴이 어두워졌다.‘왜 전에는 강여름이 이렇게 말을 매섭게 하는 사람인지 몰랐을까?’“죽고 싶어?”“왜? 보니까 사람 한 대 치겠네? 쳐 봐, 어쨌든 난 지금 온몸이 멍투성이라 아파 죽겠는데 두어 대 더 맞
하준은 여름을 쳐다봤다. 분명 졌는데도 어린애 같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침을 꿀꺽 삼켰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여름의 입가에 붙어 있던 국수를 덥석 물었다.이때 하준의 입술이 여름의 입술에 부딪혔다. 순간적으로 여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빠르게 하준의 볼을 스쳤다. 맑은 여름의 눈에서는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그 순간 갑자기 하준의 머릿속에서 버티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여름의 뒷목을 잡아당겨 다시 그 입술을 맛보고 싶었다.그러나 밖에서 벨소리가 다급하게 울려왔따.여름은 머뭇거리다가 하준을 와락 밀어냈다. 뽀얗던 볼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여름은 하준을 한번 노려보고는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이주혁의 훤칠한 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주혁의 시선이 순시간에 여름의 입술로 향했다. 다들 유경험자다 보니 바로 눈치챘다. 두통이 몰려왔다.“당신 찾으러 왔네. 제발 둘 다 빨리 좀 가주라. 또 내가 당신을 유혹했다는 소리 따위 듣고 싶지 않으니까.”여름이 하준을 돌아보며 비웃더니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가버렸다.이주혁이 걸어 들어왔다. 하준이 그를 보더니 그 흠잡을 것 없는 얼굴을 확 구겼다.이주혁이 이렇게 눈에 거슬렸던 적이 없었다.‘방금 주혁이 자식이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쯤 여름에게….”그런 생각이 강렬하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가 두통이 일어나며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정자가 뇌로 들어갔나, 내가 대체 왜 이러지?’“보아 하니 내가 이미 한 발 늦었군.”이주혁이 살짝 인상을 썼다.“네가 여긴 웬 일이야?”하준은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설마 지안이가….”“걘 아직 몰라. 가자.”이주혁이 돌아서서 먼저 나갔다.하준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여름을 한 번 돌아보았다. 뭔가 한 마디 건네려다가 백지안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서 그대로 이주혁을 따라 나갔다.문이 닫혔다.여름은 수도를 잠궜다.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1층.하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