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진이 머리를 긁적였다.“오늘 저녁 벨레스 창립 30주년 기념식 준비나 잘해봅시다.”----모리 인터내셔널 호텔.성대한 기념식 파티가 준비 중이었다.그동안 벨레스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3년 전 혼수 상태였던 서경주가 깨어났다. 깨어난 뒤 서경주는 위자영과 이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위자영은 한사코 동의하지 않아 결국 법정 소송으로 번졌고 법원에서는 두 사람의 이혼을 결정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딸인 서유인이 있었다.서유인이 추성호과 결혼한 뒤 신분이 급상승하여 벨레스 부회장이 되었을 뿐 아니라 추신 그룹 내에서 전자 상거래 플랫폼을 차렸다. 그동안 벨레스 시가 총액은 천정부지로 솟았다.오늘은 그 벨레스의 창립 30주년 되는 날이었다. 그룹에서는 전례가 없이 성대한 파티를 준비했다. 국내 최고의 연예인뿐 아니라 각계의 유명 인사가 모두 초대되었다.서경주는 손님 몇 사람을 맞아 인사를 나누고는 회장 안을 둘러보다가 귀빈들에게 둘러싸인 서경재를 발견했다.마음이 복잡했다.3년 전 깨어나서 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여름은 자살했고 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서경재가 신임 회장이 되어 있었다. 서경재는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서 휠체어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회사의 경영을 딱 틀어쥐고 심지어 서경주의 심복도 모두 자기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그러나 서경주는 그가 자신의 동생이고 내내 서유인을 돌봐준 것을 고려하여 슬쩍 눈감아 주었다.다행히 이제 서유인은 철이 들었는지 그동안 꽤나 일에서도 노력을 했다.그렇지만 서유인은 아무리 봐도 여름에 비하면 성에 차지 않았다.“여기 있었네요.”위자영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듯 다가와 말했다.“이제 몇 시쯤 우리 유인이가 벨레스와 추신이 공동 설립한 합자 기업의 CEO가 된다고 발표할 거예요?”서경주의 눈에 혐오스러운 기색이 스쳤다.“누가 여기 오라고 했어?”“어머나, 내가 못 올 곳에 왔나? 난 유인이 친모라고요.”위자영이 고개를 쳐들었다.“우리 유인이가 몇 년 동안
“고맙구나.”서경주가 감동한 듯 서경재의 어깨를 두드렸다.“사실 그동안 내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앞으로 벨레스는 너에게 부탁한다.”“열심히 하겠습니다.”서경재가 대답하는데 입구 쪽에서 소란이 벌어졌다.누군가가 외쳤다.“최 회장이야.”최 회장이라면 FTT를 손에 쥔 최하준을 이르는 것이었다.하준은 몸에 딱 맞게 맞춘 블랙 수트를 입고 나비넥타이를 맸다. 훤칠한 키에 근사하게 맞춰 입은 의상이 더욱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연회장의 조명이 하준에게 집중되었다.세월이 지나면서 하준도 고급 와인처럼 잘 익어 더욱 사람의 눈길을 끄는 외모를 완성했을 뿐 아니라 타고난 품위와 거대한 아우라도 농익었다.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서유인은 저만치서 보기만 하는데도 심장이 떨릴 지경이었다.‘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는단 말이야.’그러고 나서 역시나 블랙 슈트를 입고 옆에 서 있는 남편을 보았다. 몇 년 동안 추성호의 신분도 상승했지만 최하준 같은 아우라는 역시 나오지 않았다.“여보, 뭘 그렇게 넋 놓고 봐?”추성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눈썹을 치켜세웠다. 몇 년 동안 죽도록 노력해서 쫓았는데도 하준은 타고난 비즈니스의 천재인 지라 늘 한발 늦고는 했다. 그리고 어디에 있던 하준은 항상 가장 이목을 끄는 사람이었다.“저 사람이 여기는 왜 왔나 궁금해서요.”서유인이 방긋 웃으며 추성호의 손을 잡았다.추성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강여름이랑 관련있겠지. 아무래도 전처라고 지난번에 아버님 생신에도 왔었잖아.”“웃기시네. 우리 아빠가 지난번에도 전혀 반기지 않으셨는데. 들어보니 실은 깅여름도 최 회장이랑 백지안 때문에 죽음까지 몰렸다고 하던데.”그 일이 나오니 아무래도 서유인도 할 말이 많았다. 애초에 저런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러게. 정말 저 뻔뻔함은 나도 존경스러울 지경이라니까.”추성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사람을 독하게 대하는 것도 추성호는 하준을 능가하지 못했다.----한편 하준을 본 서경주는 안색
서경주는 하준을 한 번 더 노려보고는 과히 좋지 않은 기분인 채로 무대로 올라갔다.서경주가 마이크를 들었다.“벨레스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주신 여러 내빈 여러분, 오늘은 창립 기념 행사뿐 아니라 축하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몸이 불편해서 회사 일이 대부분을 서경재와 서유인 두 사람이 맡아 주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서유인을….”“반대합니다.”닫혀있던 연회장 문이 탕하고 열렸다.다들 그쪽을 쳐다봤다.레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하얀 다리를 드러내고 하이힐을 신고 들어왔다. 매혹적인 갈색 머리는 길게 늘어뜨렸고 조명을 받아 미모가 더욱 빛났다. 몸짓마저 우아해서 신비감을 더해주었다.오늘 파티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임이 틀림없었다.다들 홀린 듯 바라보았다.그러나 다들 곧 뭔가를 깨달았다. 서유인과 그 레드 드레스의 여인을 비교해 보니 어쩐지 닮긴 했지만 자세히 비교해 보니 서유인보다 그 여인의 이목구비가 훨씬 시원스러웠다.털썩!무대 위의 서경주가 들고 있던 마이크가 떨어졌다.서경주는 경악해서는 그 레드 드레스를 바라보다 부들부들 떨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서유인도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강여름! 살아있었구나.”서유인은 너무 놀라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3년을 기다려 마침내 벨레스를 손에 넣으려는 찰나인데 강여름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튀어나오다니, 귀신인가?’위자영이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더니 소리 질렀다.“어디서 나온 사기꾼이야? 경비, 연회 망치지 않도록 당장 끌어내요.”경비 몇 명이 즉시 여름에게 다가갔다. 여름이 우아한 눈썹을 치켜세웠다. 품위있는 얼굴에 경멸이 가득했다.“위자영 여사는 이미 서경주 님과 이혼한 지 2년은 되셨을 텐데요? 언제부터 외부인이 벨레스의 중요한 연회를 지휘했나요? 아버지, 안 그래요?”여름이 서경주를 맑은 눈으로 똑바로 쳐다봤다.서경주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곧 위자영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경비에게 말했다.“건드리기만 해보라고.”그러더니 무대에
“설마. 최 회장 전처는 그… 강여름 아냐?”“맞아, 강여름.”모두의 시선이 순식간에 은근슬쩍 하준에게로 향했다.이때 하준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윽한 동공에 알 수 없는 차가운 빛이 반짝였다.하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하준은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아빠, 속지 말아요!”갑자기 서유인이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 돌아겠어요? 그냥 강여름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일 뿐이에요. 어디서 예전에 강여름에 관해서 듣고는 이제 나타나서 사기 치려는 거겠죠. 게다가 강여름은 얼굴이 다 망가졌었잖아요.”“그렇습니다, 형님. 그때 여름이 얼굴 생각 안 나세요? 국내 최고 성형 권위자도 그 얼굴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고 그랬었잖아요. 최 회장도 기억하죠?”서경재가 불현듯 앉아 있는 하준을 향해 물었다.하준은 톡톡 치던 테이블을 두고 일어서더니 한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로 여름을 향해 다가갔다.가까워질수록 여름의 매끄러운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그동안 하준은 여름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늘 그 울퉁불퉁한 피부만 기억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은 잊어버리고 있었다.이제 이렇게 다시 만나니 익숙한 느낌과 놀라운 기분이 확 덮쳐왔다.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든 미인이었다.“됐네요. 최 회장에게는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최 회장 마음속에는 내가 없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나에 대해서는 최 회장보다 김 실장이 더 잘 알걸요.”여름은 담담히 웃더니 느긋하게 서경주에게 귓속말을 했다.“아빠, 자동차 사고 나기 전에 회사 주식 35%는 제게 준다고 직접 말씀하셨었죠?”서경주의 눈에 남아 있던 일말의 의심이 싹 가셨다.이 일은 자신과 변호사 외에는 여름이 밖에 모르는 것이었다.“자, 더 이상 의심들 할 것 없습니다. 저는 이미 이 사람이 내 친딸 여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서경주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서유인이 다급히 끼어들었다.“아빠, 저 사람이 무슨 말로 아빠를 꼬드
“진정하세요.”여름이 걱정스러운 듯 서경주의 등을 두드리더니 갑자기 서경재를 돌아보았다.“삼촌, 여전히 절 환영하지 않으시는군요. 똑같은 조카인데 너무 편애하시는 거 아닌가요?”서경재가 싸늘하게 여름을 쳐다봤다.“말했다시피 친자 확인 검사를 하기 전에는 난 당신이 우리 형님의 딸이라는 사실을 인정 못합니다. 검사 결과가 없다면 난 못 믿어요.”“못 믿겠는 게 다가 아니라 애초에 내가 돌아오길 원치 않으셨겠죠. 내 존재가 서유인에게 영향을 미치니까요.”여름이 빙그레 웃었다. 눈에는 싸늘한 빛이 반짝였다.“당연히 내 딸에게 영향을 미치지. 혼외자식 주제에 우리 집안에 먹칠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건가?”위자영이 얼른 큰소리를 쳤다.“그동안 우리 유인이가 벨레스에 얼마나 크게 공헌했는지 다들 똑똑히 봤다고.”“그건 그렇죠.”이사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누군가가 서신일을 돌아보았다. “어르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서신일을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유인이가 지금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 벨레스 후계자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우선 경주가 유인이를 신임 CEO로 발표하고 나서 얘기하자꾸나. 강여름이 진짜인지 가까인지는 친자 검사를 해봐야 할 거고.”“할아버지, 오해세요. 저는 오늘 벨레스 후계자 자리를 다투러 온 게 아니에요. 서유인은 우리 아빠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러 온 겁니다.”여름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연회장 안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서경주 자신도 얼어붙었다.위자영은 불안한 나머지 큰소리쳤다.“후계자 자리를 다투러 온 게 아니라더니 우리 유인이를 몰아내기 위해서 못 하는 짓이 없구나. 우리 유인이가 서경주의 친딸이 아니라고 모욕하다니 저 부녀가 얼마나 닮았는지 딱 보면 안 보여?”“너무 하네, 진짜 아무 소리나 마구 내지르고.”서유인은 눈시울까지 붉혔다.“뭔 헛소리를! 당장 끌어내요!”서경재는 어찌나 분노했던지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았다.“삼촌, 왜 이렇게 다급하시죠?”
“친자 검사 보고서만으로는 다들 못 믿으실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것도 준비해 뒀었죠.”여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손뼉을 짝짝 쳤다.전면 스크린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떠올랐다.서경주가 침대에 누워있고 위자영이 그 위에 올라타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있었다.“자기야, 우리 그 폐인 같은 형이 나보다 어디가 더 좋다는 거야?”“맞아. 너무 후회가 된다니까. 진작 알았으면 자기하고 결혼하는 건데. 자기 정말 너무 멋져.”위자영은 그 장면을 보고 기절하기 직전이었다.“멈춰, 멈추라고!”그러나 화면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있었다.위자영은 옷을 풀어 헤친 채 서경재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자기는 서경주 그 망할 늙은이가 대체 언제쯤에나 주식을 우리 유인이한테 물려줄 것 같아?”“걱정하지 마. 30주년 기념일에 내가 형을 설득할 방법을 생각해 뒀어.”“잘 됐다. 주식이 손에 들어오면 벨레스는 이제 우리 유인이 거가 되겠네.”“……”무대 아래서 서경재의 분노에 가득 찼던 얼굴은 완전히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계획대로라면 서유인이 주식을 장악하고 나면 서경주에게는 얼굴을 싹 바꿀 생각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다 보는 가운데서 이런 식으로 형제가 의절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3년간 애써 쌓아 올린 이미지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다들 서경주, 위자영, 서유인을 두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맙소사. 구역질 난다. 형수랑 시동생이 얽히다니, TV에서나 보는 일인 줄 알았는데.”“아마도 수십 년 전부터 저런 관계였겠지. 그러니 애도 생겼을 거고. 그래 놓고 서경주의 딸이라고 해서는 서경주의 주식을 손에 넣을 작정이었던 거야.”“서경재 입장이 아주 곤란하겠는걸. 서경주가 내내 엄청 잘해줬잖아.”“저 위자영은 또 어떻고. 평소 그렇게 고상한 척은 다 하더니 사생활이 저렇게 지저분할지 몰랐네.”“누가 아니래. 우리 마누라가 툭하면 위자영이랑 쇼핑 다니곤 했는데 그 생각을 하니까 어제 먹은
“겨, 경재 씨, 살려 줘요.”위자영은 울그락불그락하는 서경주의 얼굴에 깜짝 놀라 얼른 서경재의 뒤로 몸을 숨겼다.서경주가 돌아서서 분노로 동그랗게 뜬 눈을 서경재에게로 향했다.“서경재. 생각지도 못했구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난 네 형인데. 어려서부터 난 뭐든 너에게 다 양보했다. 그런데 넌 날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게냐? 너무나 무섭구나.”“이런 놈을 보았나? 이런 황당한 짓을 벌이다니, 양심이 땅바닥에 떨어진 게냐?”서신일은 화가 나서 컵을 냅다 집어 던졌다. 오늘로 벨레스는 온 세상에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경재에게 너무나 실망했다.”박재연도 너무 실망한 나머지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자영이 쟤는 내가 애초에 눈이 멀었지, 진작 알았으면 죽어도 저런 인간이랑 결혼시키지 않는 건데.”위자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외쳤다.“그때 나는 서경주를 사랑했어요. 너무 사랑해서, 서경주와 결혼하고 싶어서 그런 방법을 생각했던 건데….”“날 사랑해서 내 동생이 아이를 가지고 나에게 시집왔다고?”서경주가 허허 소리 내어 웃었다. 그 나이에 얼마나 웃었던지 눈물이 다 났다.“뭔 놈의 팔자가 당신 같은 인간을 만나서…. 나가. 두 모녀 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아빠….”서유인의 얼굴은 이미 있는 대로 하얗게 질렸다.곧 벨레스가 손에 들어오는 줄 알았더니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지 알 수 없었다.“아빠, 전 몰랐어요. 우리 내내 아빠와 딸이었잖아요? 날 버리지 마세요.”“정말 몰랐던 거 확실해?”여름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더니 빙그레 웃었다.“3년 전에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뇌사 상태였을 때 너랑 네 엄마는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았잖아? 오히려 아버지를 치료하던 닥터 안드레이는 화재로 죽을 뻔하기도 했지. 내가 안드레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아버지 치료를 계속하게 하지 않았으면 절대 깨어나지 못하셨을걸.”서유인이 당황해서 고개를 마구 저었다.“난 아니야. 내가 병문안을 안 갔던 건… 난….”“추성호랑 결혼
벨레스 주주들은 이 사태에 당황했다. 유 이사가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서 이사, 집안 개인사는 개인적으로 해결하시지 지금 우리 벨레스 30주년 행사장에서 이러실 게 아닙니다.”“그러게 말이오. 서유인이 그간 회사를 위해서 애써온 것도 사실이고.”다른 이사들도 맞장구쳤다.서경주는 온몸의 피가 다 얼어붙는 것 같았다.그들은 애초에 자신과 함께 벨레스를 일구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다들 이익을 위해 서경재의 편에 서기로 한 것이었다.“아버지, 너무 화내시면 몸에 해로워요.”여름이 웃으며 서경주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벨레스 그룹 이사들을 둘러보았다.“그러면 여러분은 서경재가 계속해서 회장을 맡고, 서유인에게 CEO를 맡기실 생각이란 말씀이죠”벨레스 이사들과 중역들은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그간 다들 서경재와 한배를 타고 적잖은 이득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그럼 좋아요. 아버지, 안 나간다니 우리가 나가죠.”여름은 서경주의 팔을 잡았다.“여름아….”서경주가 다급히 불렀다. 벨레스는 서경주가 여름에게 줄 수 있는 전부였다.여름이 서경주의 귀에 속삭였다.“아버지, 오늘 30주년 행사라고 기자들 부른 거 잊으셨어요? 지금 기자들이 라이브로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고요.”여경주는 확 정신이 들었다. 오늘의 추문이 인터넷을 타고 전국에 퍼져나간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어떤 기업이든 오너는 회사의 이미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이사들이 서경재 무리를 남기겠다고 고집한다면 결국 대중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 뻔했다.“곧 아버지에게 돌아와 달라고 부탁할 거예요.”여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서경주가 끄덕였다.“그래, 이런 곳에 남아 있다가는 나도 더러운 물이 들겠어. 가자. 우리는 부녀끼리 어디 가서 회포나 풀자꾸나.”두 사람은 연회장을 떠났다.다들 벨레스 이사장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다들 서로 얼굴만 마주 볼 뿐이었다.서경주 부녀가 떠나자 곧 하준도 자리를 떴다.위자영과 서유인은 안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