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사이에 벨레스 추문은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벨레스 회장과 형수 불륜으로 둔 혼외자식이 전 회장 재산 편취 기도해.-세계관이 싹 바뀌는 소리가 들린다. 라이브 봤는데 서경재 같은 쓰레기가 벨레스 고위층의 지지를 받는다니 뒷구멍을 뭐 받아먹은 거 아니냐? 세무 조사로 탈탈 털어보자.-와하하 끼리끼리 논다고 다들 불륜하는 인간들이라 감이 떨어지는 건가?-돈 있는 놈들일수록 변태라던데, 나 이제는 그 말 믿을 것 같아.-지금 저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체 뭐야? 서경재를 지지한다는 뜻인가?-안 되겠다. 다음부터 벨레스 제품은 불매 운동이다. 나부터 시작!“……”기념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댓글을 보고는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저기… 저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아이고, 미팅이 있었는데 깜빡했네. 먼저 좀 가보겠습니다.”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자 벨레스 중역은 부끄러워서 땅에 굴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을 지경이었다.“서경재 부녀가 아주 우리 늙은이 망신을 있는 대로 시키는구먼.”주주들은 이제 속이 뒤집혔다. 뒤쪽에 중역들에게 외쳤다.“뭘 아직까지 멍하니들 있나? 어여 돌아들 가.”연회장은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서신일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내가 이제 너 때문에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겠냐?”그러더니 박재연과 함께 자리를 떴다.서경재는 화나 가서 술잔을 있는 대로 바닥에 집어 던졌다. 위자영은 놀라서 얼른 서유인을 감싸더니 울부짖었다.“강여름 고 망할 것이 왜 지 에미처럼 일찍 죽지도 않고.”“아빠, 우, 우린 이제 어떡해요?”서유인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빨개진 눈에는 불만이 가득했다.추성호의 눈빛이 잠시 번뜩이더니 기묘한 웃음을 띠었다.“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방금 강여름이 대놓고 공개적으로 자기가 서경주의 혼외자식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님은 그걸 물고 늘어지시면 됩니다. 아버님이 바람이 나서 제대로 돌보지 않으니 복수심에 동생을 찾아갔었다고 프레임을 만드는
-이해가 안 가. 위자영이 서경주 동생과 먼저 잤다면 서경재랑 안 사귄 이유는 뭐고, 왜 굳이 강여름을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 건데?-이해 안 가지? 서경재는 반쪽짜리라 벨레스에서 상속권이 없었거든. 벨레스는 줄곧 서경주한테 힘이 있었어. 신지는 원래 별 볼 일 없었는데 서경주와 결혼하면서 지금은 재벌 대열에 들어섰지.-3년 전에 서경주 대표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였다며… 위자영하고 서경재 짓 아니었을까?-3년 전에 내가 그런 소문 올렸다가 욕 바가지로 처먹었잖아…“…….”“아아악, 강여름 이게!”위자영이 히스테리컬하게 소리 질렀다.추성호도 이를 갈았다. 강여름은 이미 자신들의 수를 예측한 게 분명했다.사실 서유인이 서경재의 딸인 걸 알았다면 절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서유인이 벨레스를 물려받으면 천천히 벨레스를 삼킬 작정이었다.강여름의 출현은 그 계획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발자국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강여름이 차 키를 꺼내 누르자 앞에 세워져 있던 흰색 스포츠카가 라이트를 번쩍였다.“강여름.”뒤에서 갑자기 최하준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서경주가 바로 뒤돌아 여름의 앞을 막아섰다.“내 딸에게서 떨어지게.”하준은 들은 체 만 체하고는 여름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연회장에서 전국 재계 인사들을 상대로 여름이 보여준 차분하고 결연한 태도는 너무나 뜻밖이었다.오늘 밤을 위해 여름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전국의 재벌이 다 모인 이런 자리에서 서경재, 위자영, 서유인의 진면모를 다 까발리다니….‘오늘 밤 연예계 스타들도 많이 와서 라이브 진행하는 방송도 많았는데… 그 바보들은 그것도 몰랐겠지. 이제 신분과 체면을 최고로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세 사람과 관계를 끊으려 할 거야….’비즈니스에서 관계, 인맥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강여름은 힘들이지 않고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정말 탄성이 나왔다.여름에 대한 하준의 기억은 아직도 3년 전 그 사
단단히 화가 난 서경주가 대답하려는데 여름이 살짝 서경주를 밀어냈다. 여름은 담담하게 하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맞아, 속였지.”“잘하는군, 누구랑 작당한 건지 말해. 임윤서? 아니면 병원 사람들인가?”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이 너무나 바보처럼 느껴졌다. 3년 동안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니….여름이 고개를 젓더니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그때 죽은 척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난 아마 진짜 죽어서 한 줌 재가 돼 있을 걸.”“그게 무슨 소리지?”여름의 미소는 분명 아름다웠지만 시니컬한 눈빛이 하준을 더욱 걷잡을 수 없이 만들었다. 하준의 눈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그걸 정말 몰라서 물어?”여름은 웃으며 핸드백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이렇게 정상인 사람을 정신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 먹고 해 한 점 못 보게 했잖아. 감옥에 갇힌 죄수보다 못했다고. 그렇게 당신들은 날 정신병자로 만들었을 테지.”순간 하준의 목이 메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그때… 정상이 아니었어….”“정신에 문제가 있는 상태와 극도로 화가 치민 상태가 어떻게 다른 건지 말해 보시지?” 여름이 싸늘하게 웃었다.“아이는 잃고, 당신은 날 감금한 채 매일 내 눈앞에서 백지안하고 붙어있고… 내가 그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겠어?”“최하준… 내 딸에게 그토록 잔인한 짓을…”서경주는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자신도 깨어났을 때 여름의 상태를 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모든 게 최하준 때문이었을 줄이야….“이 자식!”서경주가 욱해서 하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하준이 가볍게 막고는 서경주의 손목을 잡았다.“놔.” 여름의 아름다운 눈빛에 싸늘함이 감돌았다.“왜? 3년 전엔 아버지를 빌미로 날 위협하더니, 또 아버지를 가지고 나랑 싸우게?”하준의 어깨가 움찔하며 입술이 살짝 씰룩이더니, 서경주를 잡고 있던 손에 스르르 힘을 풀었다. 서경주가 놀라 물었다.“나를 빌미로 위협을 했다는 게 무슨 말이냐?”하준은 침묵하고 여름은 고개를
차에 시동을 건 뒤에도 하준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여름이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좀 비켜주시지?”하준이 복잡한 심경으로 여름을 보았다. 선글라스를 걸친 날렵한 콧날, 그 아래 그려놓은 듯한 입술이 혼미할 정도로 아름다웠다.‘철저하게 환골탈태했군….’낯설기도 하면서 동시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자신이 왜 이러는지 하준도 알 수가 없었다. 여자 외모에 혹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다.잠시 후, 하준이 몸을 이동하자 흰색 스포츠카는 휙 지나갔다.김상혁이 다가왔다.“돌아가시죠.”“조사 좀 해봐. 그때 어떻게 죽은 걸로 위장하고 떠났는지, 누가 도운 건지.”하준이 갑자기 싸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여름이 떠난 쪽을 노려보았다.김상혁은 흠칫 놀라더니 빠르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차에 올라탄 뒤 하준은 여름이 SNS에 올린 글을 읽었다.‘선수 치는 데 도가 텄군…’정신이 들자 온몸이 경직되어 왔다.‘젠장… 분명 3년 동안 농락당했는데, 당연히 화가 치밀어야 할 상황에 왜 웃음이 나는 걸까?’“김 실장, 3년 전에 강여름이 정말 병이 아니었던 건가?”“그건… 저도 잘….”김상혁이 머뭇거리며 답했다.“하지만, 백지안 씨는 전문가이니 그분이 그렇다면 뭐… 설마 그분이 우리를 속이겠습니까?”뒷좌석이 잠시 조용했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하준이 상혁의 말에 멍해졌다.그렇다. 3년 전 백지안이 강여름이 우울증이라고 말했을 때 그대로 믿었었다. ‘하지만 지안이가 거짓말한 거라면?’하준이 미간을 만지작거렸다.‘아니야, 지안이가 그럴 리 없어.’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백지안이었다.“준, 집이야?”“가는 중이야.” 잠시 침묵하더니 백지안이 말을 이었다.“방금 뉴스 봤는데… 강여름이 돌아왔다지? 그 여자 아무래도….”“응.”하준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엔 온통 여름의 매혹적인 모습에 대한 이미지로 가득했다.“준, 나….”불안한 어조였다.“그 여자 봤어. 나보다 예뻐졌더라. 얼굴 고쳤나 봐? 나 좀 불안해
잠시 후, 하준은 지안을 밀어냈다.“난 서재에서 잘게.”“준, 왜 그래? 그럼 우리 아이는?”백지안이 울먹거렸다. “내가 싫어진 거야? 그때 외국에서 그 일 때문에…”“아니야. 네가 싫었던 적 없어. 내가 문제야.”하준의 눈빛에 번민이 스쳤다. 자신도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3년 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건 백지안이라는 걸 분명 잘 알면서도 관계를 좀 진전시키려 할 때면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밀려왔다.때로는 자신이 여성과의 스킨십을 혐오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백지안의 갖은 방법으로 심리 치료를 시도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백지안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우리… 병원에 한 번 가볼까? 나 정말 더 못 견디겠어. 난 정말….”지안은 옷을 벗고 앞뒤 가리지 않고 하준에게 달려들었다. 흠칫 놀란 하준이 무의식적으로 지안을 밀쳐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지안은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런 수모를 겪어본 적 없는 그녀는 이내 절규하기 시작했다.“미안해.”하준은 옷을 벗어 덮어주고는 지안을 안아 침대에 누이고 침실에서 나갔다.하준이 떠나자, 방에서 백지안이 침대를 두드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하준에게 자신을 사랑하도록 최면을 걸 때, 자신과 관계가 불가능한 사이가 될 거란 예측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때로 억지로 관계를 진전시키고자 하면 어김없이 거부반응을 보이고는 했다.3년 하고도 반이다.이런 생활을 견디자는 곧 미칠 것만 같았다. 때로 지안은 정말 아무나 찾아 하룻밤이라도 즐기고 싶은 심정이었다.분을 못 이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거절’을 누르고 끊어버렸다.하지만 곧, 그 번호로 사진 한 장이 전송돼 왔다. 자신이 비키니를 입고 어느 중년 남성의 무릎에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입가에는 시커먼 수염이 덥수룩한 우악스러운 인상에 몸과 팔에는 문신이 가득하고 배는 불룩했다. 그리고 자신은 달콤하게 웃고 있었다. 지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에겐 악몽 같은 시절이었다.핸드
전화를 끊은 후 지안은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하준이 거실 창 앞에 서 있었다. 오른손에는 와인잔을 든 날렵한 실루엣이 창문에 비치고 있었다. 이런 밤, 어느 각도에서 봐도 멋진 이런 남자라니…. 어떤 여자든 이 사람을 보면 무너지게 될 것이다.백지안의 마음속에 씁쓸함이 밀려왔다.‘누구보다 멋진 이 남자가 하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다니.’“나가려고?”하준이 지안의 손에 들린 핸드백을 흘깃 보았다.“응, 친구랑 기분 전환 좀 하게.”고개를 숙인 채 귓가의 머리를 넘기는 백지안의 모습은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하준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미안해… 병원에 가볼게.”“어… 그래.”지금 어떻게 곽철규를 구워삶을지 궁리뿐인 백지안은 대충 대답하고는 황급히 별장을 떠났다.집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하준은 괴로워하며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야옹’하고 울었다.하준은 허리를 숙여 지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나지막이 읊조렸다. “만약 계속 안 되면… 어떻게 하면 좋겠니?”………벨레스 별장.여름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름이 정원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백지안이 숨겨놓은 자기 아파트로 갔습니다. 곽철규도 그리로 갔고요. 호텔에 어렵사리 설치한 CCTV가 무용지물이 됐습니다.”“호텔로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백지안 내 생각보다 훨씬 치밀하군요.”여름이 아쉬워하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이번만 기회는 아니니까요. 언제가 됐든 걸리기만 하면 되죠.”“하긴, 잘 주시해줘요. 언제 나오는지.”“넵.”전화를 끊자 복잡한 심경의 서경주가 나와 말했다.“여름아, 방금 벨레스 쪽 주주 여럿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일 나더러 벨레스로 가라는구나. 우선 서경재와 서유인의 직위를 해임하는 데 동의했다.”“일단 가지 말고 기다리세요. 벨레스 주가가 더 떨어질 때까지요.”“알았다.”서경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여름의 의견에 동의했다.여름이 잠시 당황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쉽게 제 말을 들으시는 거예요?
서경주는 너무나 괴로웠다. 한동안 업계를 쥐락펴락했던 그인데 이제 주변 사람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신세라니…. ‘여름이에게 꼭 잘 갚아줘야지… 내 딸이 더 이상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다음날.여름은 서경주의 검진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됐지만, 권위 있는 병원이었다. 검사 결과는 바로 나왔다.의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서 회장님 혈액에 독소가 발견되었습니다.”“뭐라고요?!”서경주는 깜짝 놀랐다.“하지만… 3개월 전에 검사받았을 때는 정상이었는데요.”의사가 고개를 저었다.“이건 만성입니다. 최소 2년 동안 차츰차츰 쌓였을 겁니다. 평소 기침, 두통, 가슴 답답함 같은 증상 없었습니까?”“아!”서경주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병원에 물어본 적 있는데 검사 후에 의사가 아마 차 사고 후유증에 노환이 겹친 걸 거라고….”“왜 그렇게 진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수치는 너무 명확합니다. 조금만 늦었다면 1년 후엔 몸이 완전히 망가졌을 겁니다. “의사가 동정 어린 눈길로 서경주를 바라보았다. 재벌 세계의 냉혹함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너무나 충격적이었다.서경주는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선생님, 그럼 그 해독은 가능한 건가요?”여름이 물었다.“가능하긴 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는 않으실 겁니다. 빨리 치료받으시는 게 좋고요.”“감사합니다.”여름은 인사하고 나서 충격에 멍해진 서경주를 부축해 나왔다. 그리고는 하얗게 질린 서경주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분명 측근에 있던 사람이 음식에 탔을 거예요. 회사 아니면 집이었겠죠. 전에 상담했던 의사나 검진 담당자도 모두 매수된 걸 거예요.”“매번 유인이가 데려갔었다.”서경주가 허탈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쨌든 20년을 키운 딸이야. 최고로 좋은 것만 주었지. 경재가 친아버지란 것도 모르는 줄로만 알았어. 그리고 위자영… 이혼 후에도 내가 수천억을 주었는데… 정말 무서운 모녀구나. 분명
서경주와 헤어지고 나서 여름은 또 전화를 받았다.“백지안이 떠났습니다.”여름이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 반이었다.“이렇게 늦게까지… 정말 대단하군요.”“맞습니다.”전화 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저도 궁금하네요. 최하준이 만족을 못 시켜주는 거 아닌가….”그때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췄다. 최하준과 김상혁이 들어왔다. 거부하기 힘든 성숙한 남성 호르몬을 온몸으로 발산하면서 말이다.이렇게 우연히 마주치게 되자 하준은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하준 뒤로 ‘비뇨기과’ 표지를 본 여름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말 만족을 못 시켜주는 걸 지도… 일이 있어서 끊을게요.”하준은 여름의 입에서 ‘만족’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 얼굴이 굳었다. “뭘 봐? 난 김 실장 진료에 같이 와 준거야.”의문의 1패를 당한 김상혁은 울고 싶었다. “…….”다른 누명은 다 뒤집어써도 이런 오명만은 거절하고 싶었다.하지만 하준의 눈짓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맞습니다… 제가 요즘 잘 안돼서….”“…….”‘비서 진료에 따라오는 상사도 있나? 그 말을 누가 믿는다고….’여름의 붉은 입술이 예쁘게 싱긋 올라갔다. “그런 건 내가 잘 치료하는데.”“당신이 치료한다고? 당신이 의사야?”하준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꾸했다.“비아그라 드세요.”여름이 눈웃음치며 고개를 들었다.“풉!”김상혁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하준이 상혁을 무섭게 노려보자 상혁은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먹어봤는데… 소용없습니다.”“아… 그래요?”여름이 의미심장하게 하준 쪽을 보았다.“왜 쳐다보는 거지? 난 안 먹어봤어.”하준은 여름을 엘리베이터 밖으로 걷어차고 싶은 심정이었다.“누가 뭐라 그랬나?”여름은 초승달 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웃었다. 하준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자기도 모르게 과거 여름의 얼룩덜룩했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여름은 어떤 남자라도 홀릴 수 있으리만치 매혹적이었다.전에도 자주 이렇게 웃었더라면… 자신도 그렇게 여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