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윤택 같은 쓰레기를 도와줬다고 하늘이 이제 내게 벌을 내리나?’“미, 미안해.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백지안은 하준의 날카로운 눈에 놀랐다. 이렇게 무서운 하준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예전 같았으면 없을 일인데….’하준은 백지안에게 심하게 말한 것이 후회되었다.하지만 강여름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그래, 넌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저 백윤택을 감쌀 생각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요즘 대체 백윤택이 얼마나 사람을 해쳤는지 생각해 봐”‘여름이 말이 맞았어.백윤택을 감싸느라고 다른 사람의 목숨은 내게 안중에도 없었어.백윤택을 위해서 번번이 선을 넘고, 내 자신의 도덕 기준조차 파괴해 왔지.’“준, 다 내 탓이야. 탓하려면 날 탓해.”백지안이 꿇어앉아 눈물 콧물을 빼며 울었다.“난 정말 이러려던 게 아니야.”“가 봐. 난 혼자서 잠깐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하준이 백지안을 쳐다도 안 보고 차에 올라 떠나 버렸다.최면에 걸린 후 처음으로 백지안을 무시한 것이었다.백지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멀어져 가는 차를 보며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강여름이 죽었다고 하준이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분명 최면에 걸렸으니 강여름에 대한 감정은 남아있지 않아야 정상인데. 아무래도 강여름에 대한 하준이의 사랑을 내가 너무 얕잡아 본 모양이군.그래도 그것이 죽었다니 다행이지 뭐야.앞으로 다시는 내 자리를 위협하지 않겠지.’이때 백윤택이 전화를 걸어 왔다.“지안아, 강여름이 진짜로 죽었어?”“응.”“잘됐네. 그럼 이제 넌 곧 진짜 명실상부한FTT 사모님이 되겠네.”백윤택은 신이 났다. 이제 최하준이라는 뒷배가 생기면 앞으로 모든 비바람을 막아줄 터였다.“이제 좀 얌전히 지내.”백지안이 짜증스럽게 말했다.“준은 오빠 때문에 강여름이 죽었다고 생각한다고. 이제 앞으로는 절대 봐주는 일 없을 거야.”“뭐라고? 농담이겠지?”백윤택이 당황하더니 곧 웃었다.“걱정하지 마. 요즘 하준이가 널 엄청
백지안이 혀를 찼다.“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 해서 뭐 하겠어? 나랑 준이 사귀는 걸 강여름이 도저히 못 참은 거지. 게다가 우리 오빠가 임윤서를 범했는데 준은 우리 오빠가 실형 살게 될까 봐 임윤서에게 책임을 추궁하지 못하게 하려고 좀 압박을 했거든. 그랬더니 강여름이 발끈해서 준이랑 다툼이 좀 벌어졌거든. 그 바람에 애를 잃어서 충격을 받았거든. 그래서 나랑 준이 입원시키고 매일 주사에 약에… 열심히 치료를 해주고 있었는데 결국 못 참고 목을 매더라고.”백지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줄줄 이야기를 했다.그러나 백소영의 귀에는 하나하나가 가 폭탄처럼 와서 꽂혔다.‘윤서가 백윤택에게 당했어?여름이는 죽고?’사귄지는 얼마 안 됐지만 백소영에게 사고가 생긴 후로 유일하게 마음을 내준 친구들이었다.그런데 이렇게 비참한 말로라니….“백지안, 대체 왜 이렇게 악독한 거야?”백소영은 화로 눈에 핏발이 서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유리로 두 사람 사이가 막혀있지 않았더라면 백소영은 백지안을 껴안고 함께 죽기라도 할 기세였다.“내가 어디 그뿐이겠니?”백소영이 길길이 날뛰는 모습에 백지안은 만족스러웠다.“강여름이 지난번에 와서 말 안 했나 보네? 네 엄마, 아빠 다 돌아가셨어.”콰광!다른 폭탄이 또 터진 것 같았다. 백소영이 고개를 저었다.“다 거짓말이야.“네 엄마한테 최면을 좀 걸었더니 내가 떠나고 나서 네 엄마가 욕실에서 머리를 부딪히고 쓰러져서 출혈 과다로 돌아가셨고, 아빠는 네 엄마 돌아가셨다는 얘기 듣고 다시 심장병이 재발해서 돌아가셨어. 이제 널 면회하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겠네.”백지안이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만 들리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매장할 때 내가 네 엄마 유골함에 개 뼛가루를 넣어두었지. 네 엄마 유골은 내가 그냥 버렸어.”“백지안, 네가 사람이냐?”백소영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백지안을 당장 죽일 기세로 유리 벽을 두들겼다.그러나 곧 교도관들이 들어오면서 제압되었다.백소영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
그때 이주혁은 그 싸늘한 얼굴의 가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결국 이주혁은 그 가면을 직접 찢어버렸다.그날 밤 백소영이 부끄러운 척하던 얼굴을 이주혁은 또렷이 기억했다.‘이제, 다 옛이야기구나.’----3년 뒤.해외 어느 곳.감긴 붕대가 하나하나 벗겨지고 눈, 코, 입이 드러났다. 거울 속 여자는 천천히 자신의 보드라운 피부를 만져보았다. 몇 년 동안 치료를 하느라고 햇빛을 보지 못했던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투명했다.이제 여고생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와, 우리 엄마 정말 예쁘다.”작은 여자아이가 와락 와서 안기며 기쁜 얼굴로 엄마를 쳐다봤다.“네가 누구 딸인데?”뒤에서 남자아이가 환하게 웃었다.“이 잘생긴 아들 엄마지.”여름은 이마를 짚었다.‘그래. 이제 아무도 내 얼굴이 이렇게 회복되고 귀여운 아이들이 둘이나 있다고는 생각지 못할 거야.’“하지만 난 엄마를 하나도 안 닮아쪄. 나는 그 나쁜 아빠를 닮았나 봐.”여자아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여름도 곧 슬픈 얼굴이 되었다.어르신들 말씀에 딸은 아빠를 닮고 아들은 엄마를 닮는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여울이와 하늘이는 쌍둥이지만 전혀 닮지 않았다.“그래. 우리 여울이가 아빠를 닮긴 했지만 우리 여울이는 엄청 귀여운걸.”임윤서가 허리를 굽혀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윤서야…”여름이 윤서를 바라보았다.“난 귀국할 준비가 되었어. 너는?”임윤서가 눈을 내리깔았다.“나는 조금 더 있다가. 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아직 안 끝났어.”여름이 살짝 마음 아픈 듯 임윤서를 바라보았다.“괜찮아. 그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이번에 돌아가면 내가 직접….”“됐어. 난 내 손으로 백윤택과 맞설 거야.”임윤서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난 네 생각처럼 약하지 않다고.”그럼 됐어.”여름이 눈가에 복잡한 기색을 숨기며 말했다.“이번에 귀국 길에는 아이들을 못 데려가니까 너에게 좀 부탁할게.”“걱정하지 마. 우리 사이에 뭘. 게다가 다 내 수양딸, 수양아
“애들은 윤서에게 부탁하고 왔어요.”“집은 인테리어 끝났습니다. 같이 가시죠.”양유진이 여름을 데리고 차에 탔다.차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관계자에 따르면 FTT 최하준 회장은 애인에게 XX브랜드의 웨딩 드레스를 맞춰주었다고 합니다. 이 드레스를 위해 최 회장은 2년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4년에 걸친 두 사람의 사랑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됩니다.양유진이 여름을 흘끗 쳐다보았다. 여름의 얼굴이 담담한 것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이 소식은 들었습니다. 정말 결혼할 모양입니다."“잘됐네요.”여름은 그다지 괴로워하는 기색 없이 사뭇 담담했다. 정신 병원에 입원당하면서부터 하준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접었었다.“양유진이 말을 받았다.“동거는 진작부터 했습니다. 아직 식을 올린 건 아니지만 사실혼이나 다름없죠.”여름이 웃었다.“정상이네요.”두 사람은 하준과 여름이 이혼을 하기 전부터 엉켜있었는데 여름이 ‘죽은’ 다음에야 말할 게 있겠는가?양유진은 여름의 그런 모습을 보고 뭔가를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았다.1시간 뒤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양유진은 여름을 위해 8층에 집을 사 두었다. 방 4개짜리로 베란다가 널찍하고 아이 방 두 칸 중 하나는 하늘색으로 침대보는 하늘이 좋아하는 스파이더맨 무늬였다. 분홍색 방에는 여러 가지 인형이 놓여있었다.여름은 아이 방 인테리어를 보고 깜짝 놀랐다.양유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여울이와 하늘이가 계속 해외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대한 빨리 아이들을 데려왔으면 하는 마음에 집도 유치원과 학교를 끼고 있고 주변 환경도 괜찮은 곳에 잡았습니다.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까지 서울에서 모두 손꼽히는 최고의 학군입니다.”그 말을 들은 여름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감동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3년 전 양유진과 최양하, 상혁 세 사람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여름은 아직도 그 병실에서 주사와 약물에 절어 미쳤을지도 모른다.출국하고 나서도 양유진은 내내
양유진이 머리를 긁적였다.“오늘 저녁 벨레스 창립 30주년 기념식 준비나 잘해봅시다.”----모리 인터내셔널 호텔.성대한 기념식 파티가 준비 중이었다.그동안 벨레스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3년 전 혼수 상태였던 서경주가 깨어났다. 깨어난 뒤 서경주는 위자영과 이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위자영은 한사코 동의하지 않아 결국 법정 소송으로 번졌고 법원에서는 두 사람의 이혼을 결정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딸인 서유인이 있었다.서유인이 추성호과 결혼한 뒤 신분이 급상승하여 벨레스 부회장이 되었을 뿐 아니라 추신 그룹 내에서 전자 상거래 플랫폼을 차렸다. 그동안 벨레스 시가 총액은 천정부지로 솟았다.오늘은 그 벨레스의 창립 30주년 되는 날이었다. 그룹에서는 전례가 없이 성대한 파티를 준비했다. 국내 최고의 연예인뿐 아니라 각계의 유명 인사가 모두 초대되었다.서경주는 손님 몇 사람을 맞아 인사를 나누고는 회장 안을 둘러보다가 귀빈들에게 둘러싸인 서경재를 발견했다.마음이 복잡했다.3년 전 깨어나서 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여름은 자살했고 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서경재가 신임 회장이 되어 있었다. 서경재는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서 휠체어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회사의 경영을 딱 틀어쥐고 심지어 서경주의 심복도 모두 자기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그러나 서경주는 그가 자신의 동생이고 내내 서유인을 돌봐준 것을 고려하여 슬쩍 눈감아 주었다.다행히 이제 서유인은 철이 들었는지 그동안 꽤나 일에서도 노력을 했다.그렇지만 서유인은 아무리 봐도 여름에 비하면 성에 차지 않았다.“여기 있었네요.”위자영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듯 다가와 말했다.“이제 몇 시쯤 우리 유인이가 벨레스와 추신이 공동 설립한 합자 기업의 CEO가 된다고 발표할 거예요?”서경주의 눈에 혐오스러운 기색이 스쳤다.“누가 여기 오라고 했어?”“어머나, 내가 못 올 곳에 왔나? 난 유인이 친모라고요.”위자영이 고개를 쳐들었다.“우리 유인이가 몇 년 동안
“고맙구나.”서경주가 감동한 듯 서경재의 어깨를 두드렸다.“사실 그동안 내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앞으로 벨레스는 너에게 부탁한다.”“열심히 하겠습니다.”서경재가 대답하는데 입구 쪽에서 소란이 벌어졌다.누군가가 외쳤다.“최 회장이야.”최 회장이라면 FTT를 손에 쥔 최하준을 이르는 것이었다.하준은 몸에 딱 맞게 맞춘 블랙 수트를 입고 나비넥타이를 맸다. 훤칠한 키에 근사하게 맞춰 입은 의상이 더욱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연회장의 조명이 하준에게 집중되었다.세월이 지나면서 하준도 고급 와인처럼 잘 익어 더욱 사람의 눈길을 끄는 외모를 완성했을 뿐 아니라 타고난 품위와 거대한 아우라도 농익었다.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서유인은 저만치서 보기만 하는데도 심장이 떨릴 지경이었다.‘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는단 말이야.’그러고 나서 역시나 블랙 슈트를 입고 옆에 서 있는 남편을 보았다. 몇 년 동안 추성호의 신분도 상승했지만 최하준 같은 아우라는 역시 나오지 않았다.“여보, 뭘 그렇게 넋 놓고 봐?”추성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눈썹을 치켜세웠다. 몇 년 동안 죽도록 노력해서 쫓았는데도 하준은 타고난 비즈니스의 천재인 지라 늘 한발 늦고는 했다. 그리고 어디에 있던 하준은 항상 가장 이목을 끄는 사람이었다.“저 사람이 여기는 왜 왔나 궁금해서요.”서유인이 방긋 웃으며 추성호의 손을 잡았다.추성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강여름이랑 관련있겠지. 아무래도 전처라고 지난번에 아버님 생신에도 왔었잖아.”“웃기시네. 우리 아빠가 지난번에도 전혀 반기지 않으셨는데. 들어보니 실은 깅여름도 최 회장이랑 백지안 때문에 죽음까지 몰렸다고 하던데.”그 일이 나오니 아무래도 서유인도 할 말이 많았다. 애초에 저런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러게. 정말 저 뻔뻔함은 나도 존경스러울 지경이라니까.”추성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사람을 독하게 대하는 것도 추성호는 하준을 능가하지 못했다.----한편 하준을 본 서경주는 안색
서경주는 하준을 한 번 더 노려보고는 과히 좋지 않은 기분인 채로 무대로 올라갔다.서경주가 마이크를 들었다.“벨레스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주신 여러 내빈 여러분, 오늘은 창립 기념 행사뿐 아니라 축하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몸이 불편해서 회사 일이 대부분을 서경재와 서유인 두 사람이 맡아 주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서유인을….”“반대합니다.”닫혀있던 연회장 문이 탕하고 열렸다.다들 그쪽을 쳐다봤다.레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하얀 다리를 드러내고 하이힐을 신고 들어왔다. 매혹적인 갈색 머리는 길게 늘어뜨렸고 조명을 받아 미모가 더욱 빛났다. 몸짓마저 우아해서 신비감을 더해주었다.오늘 파티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임이 틀림없었다.다들 홀린 듯 바라보았다.그러나 다들 곧 뭔가를 깨달았다. 서유인과 그 레드 드레스의 여인을 비교해 보니 어쩐지 닮긴 했지만 자세히 비교해 보니 서유인보다 그 여인의 이목구비가 훨씬 시원스러웠다.털썩!무대 위의 서경주가 들고 있던 마이크가 떨어졌다.서경주는 경악해서는 그 레드 드레스를 바라보다 부들부들 떨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서유인도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강여름! 살아있었구나.”서유인은 너무 놀라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3년을 기다려 마침내 벨레스를 손에 넣으려는 찰나인데 강여름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튀어나오다니, 귀신인가?’위자영이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더니 소리 질렀다.“어디서 나온 사기꾼이야? 경비, 연회 망치지 않도록 당장 끌어내요.”경비 몇 명이 즉시 여름에게 다가갔다. 여름이 우아한 눈썹을 치켜세웠다. 품위있는 얼굴에 경멸이 가득했다.“위자영 여사는 이미 서경주 님과 이혼한 지 2년은 되셨을 텐데요? 언제부터 외부인이 벨레스의 중요한 연회를 지휘했나요? 아버지, 안 그래요?”여름이 서경주를 맑은 눈으로 똑바로 쳐다봤다.서경주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곧 위자영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경비에게 말했다.“건드리기만 해보라고.”그러더니 무대에
“설마. 최 회장 전처는 그… 강여름 아냐?”“맞아, 강여름.”모두의 시선이 순식간에 은근슬쩍 하준에게로 향했다.이때 하준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윽한 동공에 알 수 없는 차가운 빛이 반짝였다.하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하준은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아빠, 속지 말아요!”갑자기 서유인이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 돌아겠어요? 그냥 강여름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일 뿐이에요. 어디서 예전에 강여름에 관해서 듣고는 이제 나타나서 사기 치려는 거겠죠. 게다가 강여름은 얼굴이 다 망가졌었잖아요.”“그렇습니다, 형님. 그때 여름이 얼굴 생각 안 나세요? 국내 최고 성형 권위자도 그 얼굴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고 그랬었잖아요. 최 회장도 기억하죠?”서경재가 불현듯 앉아 있는 하준을 향해 물었다.하준은 톡톡 치던 테이블을 두고 일어서더니 한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로 여름을 향해 다가갔다.가까워질수록 여름의 매끄러운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그동안 하준은 여름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늘 그 울퉁불퉁한 피부만 기억했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은 잊어버리고 있었다.이제 이렇게 다시 만나니 익숙한 느낌과 놀라운 기분이 확 덮쳐왔다.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든 미인이었다.“됐네요. 최 회장에게는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최 회장 마음속에는 내가 없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나에 대해서는 최 회장보다 김 실장이 더 잘 알걸요.”여름은 담담히 웃더니 느긋하게 서경주에게 귓속말을 했다.“아빠, 자동차 사고 나기 전에 회사 주식 35%는 제게 준다고 직접 말씀하셨었죠?”서경주의 눈에 남아 있던 일말의 의심이 싹 가셨다.이 일은 자신과 변호사 외에는 여름이 밖에 모르는 것이었다.“자, 더 이상 의심들 할 것 없습니다. 저는 이미 이 사람이 내 친딸 여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서경주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서유인이 다급히 끼어들었다.“아빠, 저 사람이 무슨 말로 아빠를 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