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마다 둘은 딱 달라붙어서 더없이 친밀해 보였다.네티즌은 심지어 백지안의 SNS까지 다 털었다. 어젯밤 백지안이 올린 사진에는 3층 케이크가 있었다. 맨 위에는 한 쌍의 남녀가 있었고 케이크 옆에는 하준의 메시지도 있었다.-살면서 다시 네 생일을 함께 할 수 있을지 몰랐어. 내 사랑은 너에게서 시작해서 너에게서 끝난다.--와, 난 전에 최하준이 사랑꾼인 줄 알았는데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바람이야? 정말 더럽!-진짜, 최하준하고 와이프 러브 스토리 좋아했는데-와이프가 안 됐네.-딱 봐도 불륜녀처럼 생김. 개 뻔뻔해.-아 더러워.-남의 남편이나 꼬시고 부끄럽지도 않나봐?“……”여름은 휴대 전화를 꺼버렸다. 멍하니 일어나서 양치하러 갔다.절대 울지 않겠다고 각오했지만 양치하던 중간에 세면대에 놓인 하준이 칫솔이 눈에 들어오자 눈물이 터졌다.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8시 반, 방에서 나오는데 지나가던 일꾼들이 불쌍하다는 눈으로 여름을 쳐다봤다.‘이 사람들도 그 뉴스를 다 봤겠지.’막 식당으로 들어서는데 작은외숙모 고연경의 목소리가 들렸다.“난 하준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싶었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며칠이나 됐다고 애가 그렇게 홀랑 돌아서요? 외국에서 비행기로 꽃까지 공수했다며? 내가 봤을 때는 이제 하준는 이제 마음에 아주 걔가 없다니까요.”최진이 말했다.“어쩔 수 없지, 뭐. 준이가 전에 백지안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우리도 다 봤잖아. 그런데 여름이는… 이제 얼굴도 그 지경이고 진짜 그냥 보기도 좀 그렇지.”“그러니까 말이에요. 내가 남편이래도 바람이 날 것 같아.”장춘자가 한숨을 쉬었다.“애들만 안 됐지.”고연경이 말을 이었다.“하준이는 애만 남기고 애 엄마는 나가라고 하겠지. 하지만 나도 애 키워 봤지만 걔도 애 둘 놓고 집에서 나가고 싶지는 않을 텐데.”최대범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어쨌든 우리 핏줄은 반드시 우리 집에서 키워야지 아무도 데리고 나가지 못한다.”“……”여름은 무의식적으로
백지안은 아픈 듯 ‘쓰읍’하더니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괜찮아. 그냥 작은 상처인 걸, 뭐.”곁에 있던 백윤택이 끼어들었다.“아니, 어딜 봐서 작은 상처야? 아까 피가 얼마나 철철 흘렀는데. 최 회장, 우리 지안이랑 이렇게 지내는 거 우리 지안이에게 너무 불공평하다고. 어젯밤에 우리 지안이 생일 파티 해준 사진을 어떤 놈이 다 퍼트려서 지금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죄다 내 동생 욕을 하고 있어. 우리 지안이가 불륜녀라고 더럽대. 얼마나 더럽게 욕을 하는지 알아? 그러더니 이러오 애 사는 데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고, 너무 위험하다고.”하준이 신음하더니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우선 내 명의로 된 집으로 들어가지.”“그거 괜찮네.”백윤택이 눈을 반짝였다.“몇 년 전에 해변가에 사둔 별장이 있다던데, 우리 지안이가 바다를 좋아하잖아. 거기 어떨까?”하준이 움찔했다.‘바닷가에 별장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는 전에 강여름이랑 살던 곳인데.’하준은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오빠….”백지안이 백윤택을 흘겨봤다. 그러더니 달콤한 눈으로 하준을 돌아봤다.“전에 내가 바닷가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바닷가에 집을 사두었구나?”백지안의 반짝이는 눈을 보다가 하준은 고개를 돌리며 ‘응’하고 답했다.“그러면… 그러면 나 거기로 들어갈래.”백지안이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준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백윤택이 말을 이었다.“그런데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방법은 아니지. 너도 언제까지나 최 회장 별장에만 틀어박혀서 살 수도 없잖아. 이제 일도 못 하고 사람들 손가락질이나 받고, 평생 불륜녀라는 누명을 쓰고 살다니, 우리 지안이에게 너무 불공평하다고. 어쨌거나 더 먼저 사랑했던 건 너희 둘이잖아? 왜 우리 지안이가 그런 욕을 먹으며 살아야 해?”“그만해. 난 준이랑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백지안이 눈시울을 붉혔다.“하준이를 위해서라면 평생 숨어 살아도 난 괜찮아.”하준이 백지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여름을 보는 하준의 시선이 사뭇 불편했다. 하준은 주머니에 한 손을 꽂더니 한숨을 쉬며 마음을 다잡았다.“들었어? 애초에 내가 당신이랑 결혼한 이유는 집에서 하도 결혼을 재촉해서라도 당신도 날 한선우의 삼촌으로 착각해서 내게 접근했던 거잖아?”여름은 이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그래, 처음에는 우리 서로 계약으로 시작한 결혼이었지. 하지만 나중에는 우리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잖아요? 난 당신에게 억지로 같이 살자고 한 적 없어.”“시끄러워.”하준은 듣고 싶지 않았다.“당신이 계속 날 유혹한 거잖아? 아니면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이랑 결혼했을 것 같아?”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이었지만 여름은 역시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최하준, 당신 정말 너무 하네. 백지안이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 않게 해주겠다고 우리가 이혼했다는 거짓말을 내게 시키다니. 난 무슨 소리를 듣겠냐고? 다들 내가 FTT에 돈을 노리고 들어왔다고 말할 거 아냐? 그래, 백지안의 명예는 지켜주겠지만, 나는? 나는 엄청나게 욕을 먹을 텐데. 내 기분이 어떨지는 생각해 봤냐고?”“내가 왜 당신 기분을 생각해야 하지?하준은 아무렇지 않게 툭 뱉었다. 하는 말마다 비수처럼 가슴을 찔러왔다.여름은 결국 웃고 말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백지안의 최면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어쨌거나 애초에 하준은 백지안을 잊은 적이 없는 것이다.여름이 웃자 하준은 마음이 되레 불편해졌다.“내가 하는 말을 들은 건가?”“혼인 중에 불륜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서 당신들 명예를 지키자고 날 억울하게 만들 셈이라니, 꿈 깨시지. 사람들 하는 말 틀린 거 하나 없지 뭐야. 백지안은 불륜녀일 뿐이라고.”여름은 결국 크게 소리 지르고 말았다.“그런 소리 하지 마!”매정하게도 하준은 되려 이런 여름에게 윽박질렀다.여름은 움찔해서 배를 감싼 채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강여름,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지안이를 모욕하는 소리했다가는 그냥 두지 않겠어.”하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또박또박
-뭔 사업이야? 다 때려치우고 연기해라! 최하준은 연기가 전공인가 봄.“……”이어서 백지안이 온라인에 하준과 자신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커프샷을 올리기 시작하자 네티즌 여론은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에 바로 반응하기 시작했다.뒤에서 여름이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여름은 SNS를 탈퇴하고 뉴스도 아예 보지 않았다.곧 임윤서가 미친 듯이 화가 나 전화를 걸어왔다.“야, 미쳤냐? 무슨 너랑 최하준이 지난 달에 이혼을 해? 너희 아직 이혼하지도 않았잖아? 유부남이면서 최하준이 그 더러운 백지안이랑 붙은 거잖아? 사람이 어쩜 그래? 넌 근데 왜 그런 오명을 쓰겠다고 나서? 지금 사람들이 너더러 뭐라고 하는지 모르니? 안 되겠어. 이 언니가 열불이 뻗쳐서 죽겠다. 그것들을 아작을 내야지 도저히 안 되겠어!”“어쩔 수 없었어. 최하준이 우리 아버지를 두고 위협했거든. 내가 성명을 발표하지 않으면 우리 아버지 치료를 중단시킨다잖아.”여름이 무기력하게 말했다.“그러고도 사람이라니? 정말 어떻게 그렇게 못됐냐? 당장 그 인간이랑 이혼해 버려.”윤서가 길길이 날뛰었다.“아마 내가 출산하고 나면 이혼해 줄 것 같아.”“애까지 뺏어간다니?”윤서는 이제 피를 토할 지경이 되었다.“아니, 백지안 있잖아? 자기 애는 걔더러 낳아달라고 하면 되지.”여름이 힘없이 피식 웃었다.“걱정하지 마. 나도 다 생각이 있어.”“너무 화가 난다. 절대 백지안이 네 아이들 못 키우게 해.”“당연하지.”전화를 끊고 여름은 수심에 잠겼다.----한편 백지안은 즉시 해변 별장으로 이사했다.백윤택은 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신이 났다.“지안아, 여기 정말 고급스럽다. 어쩐지 이상하게 여기 그렇게 들어오고 싶어한다 했더니…. 이 부근이 서울에서 제일 부동산 가격이 높은 곳이라며?”“비싸서 여기 들어오고 싶었던 게 아니야.”백지안이 소파에 앉으며 입꼬리를 올렸다.“여기가 바로 강여름이랑 최하준이 신혼을 보냈던 곳이거든. 흥! 강여름이 알면 피를 뿜을걸?
백윤택이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며칠 임윤서에게 사람을 좀 붙여놨거든. 내가 그걸 해치우지 못하면 성을 간다!”백지안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임윤서라면 백지안의 눈에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아무리 그래도 살살해.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걱정하지 마.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밤 9시.여름은 샤워를 하고 나와서 임윤서의 톡을 받았다. 1시간 뒤에 게임을 하자는 내용이었다.혼자 내버려 두면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게 느껴져서 여름은 흔쾌히 동의했다.두 사람은 음성채팅을 하면서 몇 판을 놀았다. 임윤서가 건너편에서 외쳤다.“아악! 빨리 나 좀 지원해 줘! 완전히 둘러싸여서 못 나가고 있어.”“기다려 봐….”임윤서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맵을 켜는데 건너편에서 임윤서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오밤중에 누가 이렇게 문을 마구 두들겨? 뭐예요? 경찰에 신고….”“콰광!”갑자기 건너편에서 굉음과 함께 고성이 들려왔다.그리고 곧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여름은 급히 임윤서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불길한 예감이 덮쳐왔다. 하준의 본가에서 임윤서의 집까지는 차로 최소한 1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지금 간대도 도저히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게다가 여름은 서울에 마땅히 도와줄 만한 사람을 알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여름은 급히 양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대표님, 윤서네 집에 아무래도 누가 침입한 것 같아요. 지금 바로 좀 가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윤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아서 불안한데 저희 집에서 너무 멀어서요. 윤서네 주소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저도 지금 바로 출발해요.”“그래요. 제가 당장 가볼게요.”통화를 끝내고 여름은 차를 끌고 나갔다. 입구의 수위는 여름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여름은 급한 마음에 그대로 차로 문을 들이 받아버렸다. 그러나 문이 어찌나 견고한지 한번 들이받은 것으로는 열리지 않았다.
‘이 사람은 벌써 두 번째 나 때문에 칼에 찔리는구나.그리고 이 사람에게는 죄책감 말고는 줄 수 내가 줄 수 있는 것도 없어.’“어허, 이거 대체 임윤서의 서방인가, 아니면 강여름의 내연남인가?”백윤택이 실실거렸다.“이거 이거, 강여름이 내 매제를 속이고 밖에서 남자나 만나고 있잖아?”“백윤택, 이 짐승만도 못한…. 내가 오는 길에 가택 침입으로 신고했어! 이렇게 여럿이서 사람을 폭행까지 했으니 이제 법망을 빠져나가지는 못할 거야.”여름은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혐오한 적이 없었다.“하하하, 경찰? 경찰 좋지. 얼마든지 신고해 보라고. 어쨌든 이제 내 매제가 최하준이란 말이야. 최하준이 분명 날 꺼내줄 거라고.”백윤택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어쨌든 이 정도 일은 내가 밥 먹듯 했어도 매번 내 매부가 다 무마하고 날 꺼내 줬거든.”여름은 백윤택이 말끝마다 ‘매부’. ‘매부’거리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마치 최하준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투가 아닌가.그 유들유들한 표정에 여름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다행히 이때 경찰이 들이닥쳤다. 곧 백윤택 일당은 잡혀갔다.양유진과 임윤서는 바로 병원으로 호송되었다.구급차로 병원에 가는 길, 여름의 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다. 모두 하준의 집에서 걸려 오는 전화였다. 그중에는 하준이 걸어온 것도 있었다.여름이 전화를 받자 바로 고함이 들려왔다.“강여름, 이 밤중에 어딜 간 거야? 차로 대문을 들이받다니 무슨 짓이야? 내 아이들에게 무슨 이상이라도 생겼다가는 가만 안 둘 거야.”“당신 애가 내 배 속에 있는 건 아나 보네요.”여름도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오밤중에 어딜 갔냐고? 백윤택이 오밤중에 내 친구네 집에 들이닥쳐서 사람을 때리고 찔렀어.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오냐오냐해서 이런 인간이 끝 간 데를 모르고 날뛰는 거잖아? 최하준, 당신이 미워! 당신이 밉다고! 알아?”소리를 지르고 나니 여름의 눈에서는 구슬 같은 눈물이 뚝
왜 그 말이 그렇게 계속 맴도는지, 왜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지는 하준도 알 수 없었다.“따라와.”하준은 여름을 보며 명령하듯 말했다.여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준은 신경도 쓰기 싫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목구멍으로 피가 솟을 듯 분노가 치밀었다.“내 말 안 들려? 임신한 몸으로 이렇게 불편하게 있으면 안 된다고.”하준이 여름을 잡아 일으켰다.여름이 하준을 와락 밀치더니 슬프게 웃었다.“나라고 불편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겠냐고? 내 친구가 둘이나 저러고 정신도 못 차리고 누워있는데 내가 잘 생각이 들겠어요? 뭐, 백지안 말고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당신 같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하준은 여름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입고 있던 재켓을 벗어 여름의 어깨를 감싸주었다.놀라서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여름의 귀에 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 아이들 춥게 하지 말라고.”반짝하고 눈에 들었던 빛은 곧 사라졌다.여름은 자조적으로 웃었다.‘지금 상황이 이 지경인데 나는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거야?’그러나 곧 하준의 전화가 울렸다.하준이 휴대 전화를 꺼낼 때 흘끗 보니 액정에 ‘지안’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했다.하준은 일어나더니 저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복도는 워낙 조용했던 터라 심야가 아니었어도 여름은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백지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 같았다.이때 수술실 불이 꺼졌다.의사가 양유진의 침대를 밀고 나왔다. 양유진은 깨어 있었다. 여름의 초췌한 모습을 보더니 양유진이 미소를 지었다.“피곤하죠? 가서 좀 쉬어요. 난 괜찮아요….”‘괜찮다고?그게 이제 막 수술을 하고 나온 사람이 할 소린가?’여름은 눈시울이 붉어졌다.통화를 마치고 돌아오던 하준의 눈에 여름과 양유진이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여태껏 양유진의 수술을 지키고 있었던 거야?”“양 대표님이 아니었으면 윤서를 구하지 못했을걸.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됐어요.”여름은 고개를 저었다.‘따라가서 뭐 해? 십중팔구 경찰서 아니면 백지안에게 갔을 텐데.’여름의 예상이 맞았다.20분 뒤 하준은 경찰서에 나타났다. 백지안은 이미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울어서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준….”보자마자 백지안은 하준의 품으로 뛰어들어 울먹였다.“미안해. 우리 오빠가 또 사고를 쳤네. 이렇게 못난 짓을 하고 다닐지는 나도 몰랐어.”“전에 다 내가 뒤를 봐주는 바람에 점점 더 안하무인이 된 거잖아.”하준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사람까지 데리고 가택 침입이라니. 게다가 칼까지 들고 난동을 부려? 아주 이렇게 안하무인일 수가 있나? 왜? 아주 총을 들고 들어가서 은행이라도 터시지?”백지안이 급히 해명했다.“오빠가 임윤서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겠지. 그런데 임윤서는 안 좋아하면 그만이지 툭하면 사람을 모욕하니까, 오빠도 화가 나서 그만….”“그래서? 그러면 백윤택은 하나도 잘못한 게 없다는 말인가?”하준이 열 받아서 물었다.“아니, 그런 게 아니고….”백지안은 하준이 이렇게 진심으로 화낼 줄은 몰랐다. 놀라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껏 가련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그런 뜻이 아니라…. 물론 오빠가 잘못했지. 나도 너무 실망했어. 이게 다 내 잘못이야….”“됐어. 네가 그런 것도 아닌데. 다 백윤택의 자업자득이지.”하준이 백지안의 어깨를 두드렸다.“준, 경찰에 물어봤는데 벌써 입건됐대. 상대가 합의해 주지 않으면 감옥 간다던데?”백지안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애원했다.“난 이제 이 세상에 우리 오빠 하나 남았어. 엄마 아빠도 다 돌아가시고, 이제 오빠까지 감옥에 가고 나면 난 식구를 다 잃는 것이나 다름없어.”“너한테는 내가 있잖아?”하준이 부드럽게 달래긴 했지만 영 백윤택을 구해줄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그래도 다르지. 오빠는 유일한 내 피붙이잖아.”백지안은 하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다시 엉엉 울었다.하준은 가만가만 백지안의 등을 쓸어 주었다. 눈에는 막연한 빛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