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물에서 머리를 내밀어보니 그 사람은 종적을 이미 감추었다.저녁을 먹을 때 주방장이 했던 짓 때문에 한창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도 장춘자 핑계를 대는 데에야 따라오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녹음을 하고 있었는데….핸드폰을 꺼내 봤지만 이미 물에 젖어서 꺼져버렸다.상대가 뭘 어쩌려는 수작인지 알 수 없으니 빨리 자리를 떠야 했다.“누구야?”대숲 뒤에서 갑자기 웬 반라의 남자가 나타났다. 아랫도리에 수건만 두른 그 사람은….뜻밖에도 최윤형이었다. 그 순간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여름은 피식하고 웃었다.“아이씨, 깜짝이야! 여기서 뭐 하세요?”최윤형이 깜짝 놀라더니 가슴을 감싸며 가렸다.“아, 빨리 가세요. 형님이 알았다가는 저는 죽은 목숨이라고요.”“나도 속아서 여기까지 왔어요.”강여름이 물에서 나왔다. “옷이 젖어서 일단 좀….”말하는 중에 저쪽에서 저벅저벅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여름의 안색이 확 변했다. 여름과 최윤형이 온천 같은 데서 온몸이 젖은 채 있는 걸 본다면 변명할 말이 없게 된다.“제가 가서 잠깐 시간을 끌어볼게요. 빨리 안으로 들어가세요. 뒤쪽 2층에 있는 방이 형님 방이에요. 제가 좀 있다가 형님께 말씀드려 놓을게요.”최윤형이 최민, 위자영, 최정 등 무리를 상대하러 급히 아치형 문 쪽으로 갔다. 심지어 최윤형의 어머니인 고연경도 있었다.“이렇게 다들 몰려오시고, 무슨 일이에요? 남 목욕하는 거 훔쳐보러 오세요?”최윤형이 능글거리며 그들을 막았다.“비켜.”고연경이 눈을 부라렸다.“강여름이 이쪽으로 갔다고 하던데, 걔가 너 꼬시러 온 거 아니니? 어디 숨겼어?”고연경은 아들의 됨됨이를 잘 아는지라 혹시라도 무슨 못된 짓을 저질렀을까 싶어 마음이 급했다. 서경주 같은 인물에게 잘못 보이고 싶지도 않았지만, 밖에서 낳아왔다는 여름은 그녀의 눈에 차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일단 여름을 트집 잡아서 아들을 장가 보낼 일은 없게 만들고 싶었다.“무슨 말씀을 하시
하준은 급히 방으로 돌아가 불을 켰다. 어슴푸레 달빛이 비치는 방안은 텅 비어 있었다.바로 옷방으로 가서 불을 켰다. 하준의 옷을 입고 있던 여자가 놀라서 히익하고 소리를 냈다. 옷장 문으로 몸을 가리고 쫓기는 사슴 같은 눈을 하고 부끄러운 듯 한껏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하준의 입꼬리가 쓱 올라가더니 사악하게 씨익 웃었다.“아니, 남의 방에 와서 옷을 훔쳐 입은 주제에 감히 날 노려봅니까?”“이러고 있을 틈 없어요. 밖에 사람들이 날 잡으러 돌아다닌다고요.”여름은 마음이 급했지만 그렇다고 옷과 머리가 다 젖은 채로 하준의 방을 나갈 수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을 터였다.“그러니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하준은 느긋하게 문에 기대면서 아무 상관 없다는 얼굴을 했다.“최하준 씨.”여름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준의 집에서 망신을 당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최윤형 같은 유명한 쓰레기와 얽혀서 저쪽에서 원하는 대로 일이 돌아가게 둘 수는 없었다. “아시겠지만, 나는 공짜로 누구 도와주는 사람이 아닙니다.”최하준이 다 알지 않느냐는 듯한 눈을 했다.여름은 입술을 깨물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 적당히 하시죠. 당신 여자친구도 밖에 있는데.”“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난 지금 강여름 씨 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하준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면서 오른손을 여름의 귀 옆쪽 옷장 문에 대고 당장이라도 빨아들일 듯한 눈을 하고 그녀를 쳐다봤다.여름은 심장이 더욱 두근거리며 위험스러운 그 얼굴을 쳐다봤다. ******갑자기 옷방에 열기가 차올랐다. 하준의 입술은 계속해서 여름의 붉은 입술을 탐했다.여름은 얼른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부끄러워서 차마 상대를 마주 볼 수도 없었다.“그만 해요. 도와준다고 했잖아요.”목소리가 자기가 들어도 어째 달아오른 듯 더 유혹적으로 들렸다. 하준이 탐욕스럽게 상대의 입술만 계속 바라보더니 결국 다시 입술을 눌러왔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뜨거운 키스가 지속됐다. 그러나
그러나 여름과 이모님이 눈치 못 챈 사이에 최양하가 자기 방으로 가려다가 복도 구석에서 강여름이 최하준의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최양하는 실종 사건의 비밀을 알아채고 씩 웃었다.이모님은 작은 문을 지나 여름을 본채로 안내했다. 그녀가 사라져서 양가의 사람들이 모두 둘러앉아 걱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장춘자와 최대범까지 나타났다.여름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위자영이 다급하게 다가갔다.“얘, 아무 말도 없이 어딜 갔었니? 전화도 안 받고. 우리가 사방으로 널 찾아다녔다. 놀랐잖니?”그 말을 들은 장춘자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여름이 너무 함부로 행동하는 것 같아 보기 싫었다.“아니, 옷은 왜 갈아입었어?”최민이 갑자기 물었다.여름이 눈을 깜짝이며 서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잠깐 걸을까 하고 나갔는데 수영장에서 미끄러졌어요. 다행히 이모님께서 보시고 옷 갈아입으라고 데려가 주셨네요. 머리는 어떻게 말렸는데 핸드폰은 물에 빠져서 전화가 안 됐나 봐요.”잠깐 말을 멈추더니 매우 미안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정말 죄송합니다. 재미있게 카드 치고 계시는 것 같아서 괜히 소란 피우지 않고 조용히 혼자 해결하려고 했어요.”“그게 사실이냐?”장춘자가 이모님을 쳐다봤다. 이모님은 이 집에서 30여 년을 일해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이모님이 빙그레 웃었다.“됐어요. 사람 안 다쳤으면 된 거지. 가봐요.”장춘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조금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서경주가 더는 머무르지 못하겠다고 판단하고 입을 열었다.“오늘 정말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서경주 가족이 돌아갔다. 최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분명 내가 사람을 시켜서 강여름을 온천에 가서 밀어 버리라고 했는데 왜 이모님은 수영장에 빠졌다고 하는 거지?누가 시킨 건가?그럼 누가 강여름을 도와주고 있다는 말이야?’이때 최윤형이 실실거리며 최민에게 다가왔다.“고모, 그 집 일에는
서경주는 바보가 아니었다.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는 위자영을 무섭게 노려보았다.위자영이 펄쩍 뛰었다.“무슨 뜻이니? 네가 몰래 온천 쪽으로 가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최윤형을 유혹하러 갔나 싶었지. 그 인간은 워낙 지저분한 소문 있으니 걱정돼서 급하게 달려간 거 아니냐?”“그렇게 급하게 와서 옷이 흐트러진 채로 최윤형 씨랑 포개져 있는 거라도 봤으면 내 이름도 더럽혀졌겠죠. 그 댁에선 내 행실에 문제가 있다고 했을 테니 며느리 삼을 리도 없고요.여름은 깊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정말 내가 걱정됐었다면 혼자 달려오셨어야죠. 이 댁 사람들을 다 몰고 오실 게 아니라. 그리고 그런 이유로 달려와서 그 자리에 내가 없었으면 안심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여름이 조리 있게 따지자 서경주는 그 사건이 분명 위자영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이건 정말 너무 심했잖아.’서경주는 화가 나 몸이 부르르 떨렸다.“얘가 당신하고 무슨 원한이 있다고, 평소 집에서 두 모녀가 얠 공격한 건 그렇다 치고, 거기 가서까지 그러는 건 그야말로 애 인생 말아먹겠다는 거 아니고 뭐요?”여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저녁 식사 때 쉐프까지 저 무시하는 거 보셨죠?”“그래, 잊을 뻔했구나.”서경주는 그 일이 떠오르자 위자영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 “전에 당신이 최민 씨랑 친하다고 나한테 자랑하더니 둘이 얼마나 쿵짝이 잘 맞는지 오늘 아주 잘 확인했어.”“아빠, 쟤 이간질에 놀아나지 마세요.”서유인이 당황해 말했다.“넌 조용히 해.”서경주가 소리쳤다. “둘이 아주 하나같이 악랄하기 짝이 없군.”서유인이 입을 닫지 못했다. 위자영도 화가 났다.“저 아이 온 이후로 저 아이만 끼고 돌고, 아무래도 당신 강신희의 더러운….”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경주가 위자영의 어깨를 움켜쥐었다.“잘못해놓고 뉘우치지는 못할망정…, 당신하고 결혼한 게 정말 후회스러워.”“뭐라고요?!”위자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유인아, 가자.
아무래도 누가 차에 손을 댄 듯했다. 여름이 급히 핸들을 돌렸다. 내리막 커브 길에서 브레이크 없이 차는 점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그때, 눈앞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다.좁은 길에서 여름은 과감하게 갓길로 피해 지나갔다. 상대차의 기사는 깜짝 놀랐다. “아, 뭐지! 레이싱하나? 이런 길에서 150km라니.”최양하가 고개를 들어 보니 흰색 차량이 쏜살같이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몇 커브를 도는 동안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레이싱을 즐기는 자신도 그렇게 운전해 본 적이 없었다.“차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따라가 봐.”운전기사가 악착 같이 따라붙었다. 놀랍게도 그 차는 시속 200km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차가 막 뒤집히려 할 때 여름은 기지를 발휘해 공사 중인 임시 흙길로 차를 몰았다. ‘쿵!’하고 차는 커다란 나무에 충돌했다.최양하가 얼른 달려가 문을 열어보니 에어백이 튀어나왔다. 가녀린 여자가 에어백에 폭 싸여 있었다. 의식은 잃었지만, 몸에 다친 흔적은 없었다.“강여름 씨?”최양하는 창백하지만,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기사와 여름을 근처 병원으로 옮겼다.곧 서경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최양하가 위로했다.“걱정 마세요. 따님께서 정말 현명하고 과감하게 대처했습니다. 차가 꽤 오래 제어가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커브 길에서 내내 침착하게 조종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공사 중인 진흙 길로 뛰어들어 감속했습니다. 다행히 사람이 안 탄 쪽이 받혀서, 외상도 별로 없습니다.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상태입니다.”“다행이군.”서경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최양하에게 말했다.“오늘 너무나 고맙네. 이 은혜 잊지 않겠네.”“천만에요. 그저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대략 30분쯤 후, 의료진이 나왔다. 과연 최양하 말대로 여름은 몸과 두부에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었지만 다친 곳은 없다고 했다.무사하다는 확인을 받고 최양하는 회사에 일이 있어 회사로 갔다.가는 길에 기사
최양하가 의미심장하게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에겐 앞에서만 굽신대고 제멋대로이던 간부들이 최하준 앞에서는 충견처럼 비굴하게 굴고 있었다.씨익 웃고는 하준을 불렀다.“형.”하준은 냉담하게 힐끗 보았다. “안 그래도 찾고 있었다. 아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데.”“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요. 출근길에 차 사고 현장을 목격해서 그 사람 병원에 좀 데려다주고 오느라고.”“다음엔 못 오면 회사에 통보해라.”하준은 룸으로 들어갔다.“알겠습니다. 그런데 형은 문병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요. 사고 난 사람이 서 회장 딸이던데. 서유인은 아니고.”과연 하준이 멈칫했다.몸을 돌려 최양하를 똑바로 보았다. 깊은 눈동자 속에 검은 물결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강여름?”“네.”최양하가 사뭇 안타깝다는 얼굴을 했다.최하준은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입을 살짝 내밀었다.“많이 다쳤나?”“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병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왔으니까.”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런데 차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던데. 엄청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구하러 가보니까 이미 인사불성이더라고.”뒤에 있던 심 전무가 ‘히익’하는 소리를 냈다.“그런 내리막 커브에서 브레이크 고장이라니, 저승행 고속도로 아닙니까?”하준은 룸 문을 발로 툭 찼다. “들어갑시다.”룸에 들어간 하준이 상혁에게 눈짓을 했다. 상혁은 의중을 파악하고 바로 조사하러 나갔다.상석에 앉은 하준 옆으로 임원진이 앉아 떠들기 바빴으나 하준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살아오면서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냉정함을 잃은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이 시각 하준의 머릿속엔 온통 강여름뿐이었다. 깜찍하고 잔망스러우면서도 수줍던 강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며칠 전만 해도 자신의 앞에서 수줍게 입맞춤을 당하던 여름이었는데 지금은 차 사고로 생사조차 알지 못하다니….갑자기 심장이 뻐근해 왔다.하준은 벌떡 일어섰다.“일이 좀 생겨서 좀 가봐야군요. 다들 식사는 알아서 하시고.”
문밖, 최하준의 주먹에 힘줄이 터질 듯했다.문득 여름을 걱정하며 미친 듯이 달려온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동성에서처럼 속고 또 속는 기분이었다.자신의 앞에서 진실한 척, 수줍은 척해놓고는 뒤돌아 바로 양유진과 밀어를 나누고 있다니.‘대체 날 뭘로 생각했던 걸까?’서늘한 한기가 하준의 눈에서부터 뿜어나왔다.더 들을 수가 없던 하준은 돌아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막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서경주가 하준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최 회장, 여긴 무슨 일로….”“친구가 입원해서 잠깐 보러 왔습니다.”하준은 싸늘한 얼굴로 대충 둘러대고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서경주는 하준의 냉랭한 태도에 더는 말을 붙이지 못했다. 병실로 돌아와 보니 양유진이 여름에게 물을 먹여주고 있었다. 서경주는 그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양 대표가 너에게 아주 잘하는구나. 아침에 너와 통화가 안 되니 나에게 전화가 왔더라. 사고 얘기를 듣고는 바로 비행기로 왔어, 네가 깨어나기도 전에.”여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서경주가 의자를 끌어와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양 대표 같은 사윗감하고 비교하면 최 회장은… 방금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만났는데 친구 문병 왔다더구나. 그래도 어쨌든 내가 유인이 애비인데 내가 왜 여기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어, 정 없는 녀석 같으니.”“최 회장요”양유진이 놀라며 물었다. “FTT 최 회장 말입니까?”“응, 그 사람이 유인이랑 교제 중이네.”서경주가 말했다.“그렇긴 한데 어쩐지 유인이랑 결혼할 것 같지 않단 말이지. 유인이는 지금 눈에 콩깍지가 씌였는데, 내가 보기엔 그 사람 유인이에게 아무 감정이 없는 것 같아. 진짜 좋아하면 그럴 수가 없지.”여름은 잠자코 있었다,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윙윙거리고 있었다.‘그 사람이 왜 병원에 있을까? 혹시 날 보러 온 건가? 설마 문밖에서 나랑 양유진을 보고 안 들어온 건 아니겠지?’하지만 그저 추측일 뿐 최하준의 마음속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됐어, 얘기 안 해도 돼. 죽든 말든 나랑 상관없으니.”하준은 시동을 걸고 ‘붕~’하고 떠났다. 차는 도로 위를 쏜살같이 질주했다. 놀란 상혁이 머리 위 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다.회사에 도착하자 하준은 바로 올라갔다.상혁이 커피를 한 잔 따르고 탕비실에서 나가려는데 하준이 갑자기 불러 세웠다.“기다려, 뭘 알아냈다고?”“…….”‘우리 보스는 변덕이 죽 끓듯 한다니까.’상혁이 하준을 돌아보며 침착하게 보고했다.“차는 그 집에서 누군가 건드린 것으로 보입니다. 정원사 짓입니다. 그 사람이 봉작구 일대 두식이파 두목 맹두식에게서 돈을 받은 걸 확인했습니다. 맹두식은 위지웅과 긴밀한 관계입니다. 이 일을 조사한다고 해도 위지웅에게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그렇겠지.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해본 녀석이니 이 방면으로는 도가 텄을 거야.”하준이 커피잔을 들고 후후 불었다. “서 회장 쪽에서는 알고 있나?”“그쪽에선 차를 조사했는데, 차는 전소됐고 현장 보전도 되지 않아서 아마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을 겁니다.”“아마 자기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겁니다.”“서 회장은 양반이라, 자기 사람들 의심하지 못하겠지.”최하준이 차갑게 웃었다.“제가 조사한 결과를 강여름 씨에게 알….”“뭐 하러?”하준이 커피잔을 탁자에 ‘탕’하고 내려놓았다.“자네는 강여름에게서 월급 받나? 내버려 둬! 그런 멍청이 어떻게 되든 알 게 뭐야?”“…….”“나가.”하준이 버럭했다.상혁은 하준의 괴팍한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이 일을 조사했다. 저녁이 되자 과연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서 회장 집에서 이미 범인을 찾았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지금 집을 봉쇄하고 통신망도 모두 차단했습니다.”하준이 눈썹을 찡긋 올렸다. “서 회장이 못 찾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네.”상혁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하준이 잠시 침묵하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함정이군. 서 회장은 자기 집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