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계시지?”상혁이 웃었다.“최윤형 따위가 뭐라고. 아직도 왜 갑자기 최윤형이 태도를 바꿨는지 잘 모르시나 보네.”강여경은 얼떨떨해서 최하준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도 성이 최 씨라는 것을 깨달았다.“아냐! 난 그 집안에 최하준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그 댁에 식구가 몇인데 당신이 다 알아?”상혁이 비웃었다.“잘 들으세요. 우리 변호사님이 스무 살 때부터 그 가문을 짊어지고 키워온 분이십니다.”강여경의 머리가 웅웅 울렸다.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었다. FTT가에 미스터리 한 존재가 있었다. 최란의 아들로 외부에 거의 모습을 드러낸 적이 별로 없지만 사람 대하는 수단이 아주 악랄한 인간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스무 살에 회사에 들어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삼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었다.최하준이 회사를 장악하고 나서부터 번개 같은 속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사세를 확장시켰고, 국내에서는 통신, 금융, 과학 기술 분야를 다 장악하게 되었다.최하준은 세계적인 거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내 최고 재벌이자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거짓말!”강여경은 질투가 폭발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강여름이 대체 어쩌다가 이런 남자를 낚은 거야?’“내가 뭐 한다고 당신을 속입니까? 하여간 최윤형 같은 물건은 우리 변호사님을 보면 꽁무니부터 뺀다고.”상혁이 조롱하듯 웃었다. “원래 우리 변호사님이 직접 나서지는 않으시려고 했는데, 호텔에 가둬두고 강여름 씨에게 그런 짓까지 하다니.... 언론에 뿌린 사진은 또 그게 뭡니까?”강여경이 움찔했다. 바들바들 떨면서 무릎으로 기어서 하준에게 갔다.“저기,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차디찬 증오가 하준의 눈에서 빛났다. 도저히 살려둘 수 없다는 듯한 증오의 시선이 떨어졌다.“내가 이대로 놓아줄 것 같나?”“아니에요. 제가 아닙니다. 사진은 제가 찍은 게 아니라고요.”강여경이
상혁이 더러운 것을 피하듯 뒤로 흠칫 물러났다.“어허, 손대지 마십쇼. 이 분이 나이 들어 보여도 40줄 밖에 안 됐습니다. 내내 싱글이라 짝을 찾으신다기에 특별히 소개해 드릴까 싶었지.”그러더니 상혁도 가버렸다. 강여경이 절망에 울부짖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서야 강여경은 애초에 왜 강여름을 그렇게 괴롭히고 할머니를 2층에서 밀었던가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그러나 이 세상은 후회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경찰서 입구.막 진술을 마치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여름 씨!”돌아보니 양유진이 활짝 웃으며 걸어왔다. 추운 날씨에 목에 두른 고급스러운 체크무늬 목도리가 신사적인 풍격을 더해주었다.“어머, 여기서 뭐 하세요?”여름이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인사를 건넸다. 그를 보니 문제의 사진이며 하준과 있었던 즐겁지 않은 일들이 떠올랐다.“친척이 뭘 좀 잘못했나 본데 와서 해결 좀 해주느라고요.”양유진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강태환과 이정희가 다 잡혀갔다던데….”“네. 그래서 진술서 작성했어요. 다음주에 사건이 넘어갈 테니 곧 판결 나겠죠.”“축하합니다. 마침내 할머니의 원수를 갚았군요.”양유진이 기뻐했다.“감사합니다.”그렇게 말했지만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그저 무척 피곤해 보였다.양유진이 함께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가면서 가만히 여름을 보더니 물었다.“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혹시 최 변이 뭐 오해하거나 그래서 잠도 못 자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 일은 언급하지 말아주시겠어요?”여름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다 제 잘못입니다.”양유진이 미안한 얼굴을 했다.“무슨 말씀이세요? 그날 절 도와주신 것뿐인 걸요. 대표님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지도 모르죠. 어제 일부러 절 옹호하는 입장문도 발표해 주셨고. 감사 드려야 마땅하죠.”여름이 고개를 저으며 사실대로 말했다.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느라 두 사람은 옆에 젊은 남자를
곧 구급차도 와 양유진을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이미 출혈이 심해 완전히 혼수상태였다.여름은 얼른 한선우에게 연락했다. 병원에 도착해 얼마 안 되어 한선우가 금방 달려왔다.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차트를 들고나왔다.“칼이 환자의 왼쪽 신장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바로 제거해야만 살릴 수 있습니다. 환자분 보호자가 어느 분이시죠? 바로 수술동의서에 사인 바랍니다.”여름은 머리가 멍해졌다. 한선우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선생님, 반드시 제거해야만 합니까?”“이미 괴사해서 제 기능을 못 합니다.”의사가 난처해하며 말했다.“제거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게 베스트였겠지만요.”어쩔 수 없이 한선우가 동의서에 사인했다.여름은 너무나 괴로워 눈물을 흘렸다.“다 나 때문이야. 원래 날 죽이려던 건데, 양 대표님이 몸으로 칼을 막아줬어.”한선우는 마음이 복잡했다. 양유진이 여름에게 이 정도로 마음이 깊었는지 미처 몰랐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저 삼촌의 안위가 걱정일 따름이었다.“쓸데없는 생각 마. 신장만 제거하면 생명엔 지장 없다잖아. 한쪽만 있어도 기능은 할 수 있어. 앞으로 조심해야겠지만.”여름은 씁쓸하게 웃었다. 멀쩡한 장기를 잃는데 몸이 전처럼 온전할 수는 없을 터였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연락 드렸어?”“아니, 노인네들 충격받으실까 봐. 외삼촌 수술 끝나고 말씀드려야지.”한선우는 여름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사실은 진상을 알게 되면 두 분이 여름을 과하게 탓할까 두려웠다.세 시간 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양유진도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얼마 뒤, 경찰이 왔다.“강여름 씨, 가해자를 조사했는데 이름이 ‘윤정후’라고 합니다. 동성 사람은 아니에요.”여름은 극도로 분노했다.“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자 말로는 원래 ‘윤정혜’라는 쌍둥이 누이가 있었는데 5년 전, 겨우 열일곱 살 때, 흠…. ‘백운’의 백윤택 사장 눈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윤정혜는 완강히 거
“잊으셨습니까? 그 사진 보고 경호 중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하지 말란다고 경호를 그만둬? 이 상황에 제정신이야?”하준은 폭발할 지경이었다.상혁은 침묵했다. ‘차윤은 최하준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이잖습니까?’“병원으로 가.”하준이 나섰다.병원에 도착해 바로 VIP 실로 들어섰다.아직 혼수상태인 양유진은 코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고 여름이 그 옆에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더할나위 없이 눈꼴신 장면이었다. 언젠가 자신을 이렇게 간호해 줬었는데 지금은 다른 남자를 돌보고 있었다.“갑시다.”음절마다 꾹꾹 힘주어 하준이 말했다.“따라와요.”여름이 하던 걸 멈추고는 고개를 저었다.“이 사람 깨어나기 전에는 못 가요.”“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못 알아듣습니까?”울화가 치밀어 올랐다“마지막 기회입니다.”그 어느 때보다 서늘한 말투였다.하준의 말투에 여름의 마음은 더 싸늘하게 식었다. 불과 몇 시간 전 하준 때문에 칼을 맞을 뻔했던지라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저 인간이 과연 나에게 관심이 있기는 한 걸까?’“사람이 도리라는 게 있지, 양 대표님 아니었으면 난 벌써 죽은 목숨이에요. 당신 여자 친구를 살려준 사람에게 감사는 고사하고 이게 무슨 태도인가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냉정해요?”“냉정해?”하준이 뚜벅뚜벅 여름을 향해 걸어왔다. 그간 여름을 위해 온갖 일을 감당하고 보호하고 아껴주었는데, 냉정하다는 소리나 듣다니!그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혀 너무나 쓰라렸다.“윤정후가 왜 날 해치려 했는지 잘 아시죠?”여름이 차갑게 웃었다.“천하의 최하준이 뭐가 부족해서 그깟 푼돈 벌겠다고 양심을 팔았나요? 명성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얻은 그 명성요?”
하준이 주먹을 꽉 쥐었다. 손등의 시퍼런 핏줄이 터질 듯했다.“강여름 씨, 잘 들어요, 나는 변호사입니다. 변호사에게는 승패만 있어요. 정의의 사도는 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양심은 있어야죠.”여름이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하준과 자신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지금까지 내가 강여름 씨를 위해 한 일은 다 뭡니까?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하준은 주체할 수 없는 화를 삭이며 여름을 노려봤다. 이제껏 여자에게 이렇게 잘 해줘 본 적이 없던 그였다. 그런데 여름이 말 한마디로 그 모든 것을 부정해 버렸다.“양유진이 당신 목숨을 구해줬다고 그 사람하고 사귀기로 결심이라도 한 겁니까? 하긴, 처음부터 당신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놈이니까.”“말조심해요.”여름도 화가 났다.“나 때문에 신장 하나를 잃었어요. 그런데 병간호도 못해요? 이건 생명의 은인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감사 표시에요.”“난 모르겠고, 당장 따라와요. 양유진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양유진은 뒤로 강여경에게 그런 사진을 보낼 수 있는 인간이다. 겉으로는 사람 좋은 척하지만, 뒤에서는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 없는 위선자였다.“당신이야말로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네요.”여름은 극도로 화가 치밀었다.이때 한선우가 옷을 들고 들어왔다.“여름아, 옷 좀 사 왔어. 얼른 갈아입…”말을 하다가 최하준을 발견하고 한선우의 얼굴이 굳었다.“누가 들여보낸 거야? 당장 나가.”하준이 한선우와 여름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어쩐지 이상하게 버틴다 했더니. 전 남친에 새 썸남까지? 삼촌과 조카에게 이중으로 둘려싸여서 아주 신이 났다, 이거군.”“날 겨우 그런 인간으로 봤군요.”여름의 눈가가 빨개졌다. 몸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말이 너무 심하잖아? 그게 사람이 할 소리야”더 이상 참지 못한 한선우가 옷을 한쪽으로 던지고 주먹을 날렸다.하준은 가볍게 손을 들어 막았다. 한선우가 분해서 소리쳤다.
요 며칠, 쌀쌀맞게 대하기는 했지만, 강여경이 놓은 덫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여름과 헤어질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다만 그 껄끄러운 감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정말 날 사랑한다면 다시는 양유진에게 가지 말아요. 마지막으로 하는 말입니다.”하준이 더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으로 여름을 쳐다보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여름은 흠칫했다. 오늘 그가 너무 밉고 화가 났지만, 여전히 하준은 사랑하고 있었다.“그러는 당신은요? 날 사랑하나요?”‘사랑한다면, 취했을 때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른 건 다 뭐야?’“난 당신을 사랑할 수도, 언제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하준은 무표정하게 대답한 후 돌아서 나갔다.여름은 망연자실한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언제든 거둘 수 있는 사랑이라니,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야?’******서재.하준은 와인잔을 들고 창 앞에 서서 마당에 쌓인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여름이 더 이상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랐다.그렇다. 여름을 사랑하지만, 양유진과 이렇게 계속 얽힌다면 이 사랑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양유진이 여름의 목숨을 구한 것은 사업상으로 좀 지원해주면 될 일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보답이랍시고 다른 남자 곁에 있는 꼴은 볼 수 없었다.하준은 짜증스럽게 와인을 꿀꺽 삼켜버렸다.뒤에서 조용히 서 있던 상혁이 말했다.“그 사진 건은 강여름 씨에게 말씀하지 그러십니까?”“뭐 하러? 강여름이 믿겠어? 내가 생명의 은인에게서 자기를 떼어내려는 수작인 줄 알겠지.”하준이 차갑게 웃었다.상혁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양유진 정말 대단한 사람이군.’ 신장까지 희생했으니 자신이 여름이어도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깊은 밤.샤워를 마치고 나온 여름은 침대에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휴대 전화를 집어 윤서에게 톡을 보냈다. 자신 대신 양유진 간호를 부탁할 생각이었다.윤서: 어머! 너 지키려다 콩팥까지 떼냈어? 넌 어때? 그냥
여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전에는 전화를 검사하거나 하지는 않았었는데 이제 마지막 남은 프라이버시까지 침해하려 하고 있었다.“선 넘지 말아요.”“무슨 선을 넘었다는 겁니까? 당신이 다른 놈하고 시시덕거리고 있을지 누가 압니까?”하준은 상대의 핸드폰을 검사하거나 하는 걸 옳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입꼬리가 귀에 닿을 정도로 웃고 있는 여름을 보니 어쩐지 심사가 뒤틀려 확인하고 싶어졌다.여름은 두 사람 사이의 믿음이 이렇게까지 깨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방금 톡 내용을 보여주면 또 오해할 것 같아 솔직히 얘기했다.“윤서랑 얘기 중이었어요. 걔 남자친구 일로요. 그리고… 윤서더러 나 대신 양 대표 문병 좀 가 달라고 했어요, 나는 못 가니까. 친구가 가는 것도… 안 될까요?” 여름은 눈을 똑바로 뜨고 하준을 바라보았다.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그의 얼굴이 차갑게 변하는 걸 보고 마음속에 피로감이 몰려왔다.“내 침대에 누워서도 지금 다른 남자 걱정입니까?”하준은 여름의 핸드폰을 집어 벽에 던져 버렸다.핸드폰 깨지는 소리에 놀란 여름은 귀를 막았다.하준은 여름의 손을 잡아챘다. 여름을 침대에 꽉 눌러두고 거칠게 키스하기 시작했다.“어때? 누구랑 키스하는 쪽이 더 좋아? 나야, 양유진이야?” 하준의 입술은 폭풍우가 몰아치듯 여름을 덮쳤다. 너무 아파 힘껏 밀어내려고 했지만,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서재에서 와인까지 비우고 온 하준은 욕망에 불타올랐다. 여름과 양유진의 키스 장면을 생각하자 더 그녀를 자신이 가지고 싶었다. 점점 더 거칠게 키스를 퍼부었다.“그만! 아파요.”여름이 너무 아파 몸을 피했다.“왜 피하지? 양유진이 아니라서?” 하준은 이미 질투에 이성을 잃었다. 하준은 힘껏 여름의 잠옷을 찢었다.“그날 잊을 수 없는 밤을 만들어 준 모양이지? 그래서 오늘 다시 만나니 헤어지기 싫었나?”여름은 너무 놀랐다. 그의 손을 꽉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이러지 마. 나 오늘 너무 무서웠다고요. 지금은….”“나랑은
“여기 있어요.”임옥희가 자신이 만든 아침 식사를 들고 왔다.하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강여름 씨, 내 아침을 안 했습니까?”“내가 만든 밥 안 먹겠다고 했잖아요.”여름은 담담하게 응대했다. 하준은 늘 그랬다. 의심할 때면 여름이 만든 아침밥에 화풀이해놓고, 또 내놓으라는 식이었다. ‘피곤하지도 않나?’“당장 하십시오.”하준의 얼굴이 완전히 어두워졌다.“안 해요. 내가 하인도 아니고.”여름은 죽을 다 비우고 일어났다.“회사 갔다 올게요.”하준은 고개를 돌려 현관 입구에 서 있던 차윤에게 말했다.“잘 지켜봐. 병원에 가려고 하거든 바로 데려와.”“내가 당신 노예에요?”여름은 너무 화가 났다.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억압하려 하다니.“최하준 씨, 적당히 하죠.”“날 건드렸을 때는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반항은 받아주지 않겠습니다.”담담한 말투였지만 사람 환장할 소리였다.여름은 핸드백을 챙겨 나갔다. 차윤이 따라나섰다.출근길, 여름이 아무리 속도를 내도 차윤은 쉽게 따라붙고는 했다.주차장에 도착해 여름이 내리자 차윤도 얼른 뒤에서 따라 내렸다.“따라오지 말아요. 병원 안 가요.”여름은 차윤 앞으로 가 솔직히 말했다. 이 경호원에게는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전 그분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최하준 씨가 고용한 거죠? 얼마 받나요? 내가 두 배 줄게요.”여름이 가방에서 카드를 꺼냈다.차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얼마를 주셔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그 댁에서 특별히 훈련받았습니다. 고용주를 위해서만 일합니다.”여름은 흠칫했다. ‘FTT에 차윤 같은 사람이 더 있다는 건가?’FTT는 상상 이상으로 미스테리했다.“하준 씨하고는 알고 지낸 지 오래됐죠? 혹시 ‘지안’이라고 알아요?”늘 차분하던 차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찰라였지만 여름은 분명히 봤다.“하준 씨가 그러던데, 전 여친이라고. 두 사람이 아주 깊은 사이었나 봐요?”“이미 지난 일입니다. 그분 마음속엔 이제 강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