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로 데려 가죠.”이주혁은 얼른 원연수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원현무 모자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경비원 불러서 이 인간들 내보내.”원현무와 도원화는 바로 얼어붙었다.이들은 원연수가 진짜로 기절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연기다.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모두 경멸의 눈빛으로 이들을 바라모며 손가락질하고 있었다.“기어이 사람 하나를 쓰러뜨렸네.”“그러니까 저 아가씨 말은 자기 아버지가 찔러서 다쳤다는 거야? 그건 범죄 아냐? 미쳤나 봐.”“와... 감옥 가기 싫다고 병원에 와서 저 소란을....” “.......”사람들의 비난에 도원화와 원현무의 기세가 확 꺽였다. 그때 병원 경비가 달려와 두 사람을 끌고 떠났다. 하지만, 경비는 이들을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대신, 창고에 가뒀다.******이주혁은 원연수를 안고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하지만 찾아간 곳은 응급실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 휴게실이었다.휴게실에 들어서자 주혁은 ‘기절한’ 원연수를 침대에 내려놓고는 말했다.“됐어요. 이제 그만해도 돼요. 여긴 우리 둘 뿐이니까.”원연수가 조용히 눈을 떴다. 원래 이나정과 합을 맞출 생각이었는데 이주혁이 이렇게 나설 줄은 몰랐다.“연기 잘하네.”이주혁은 묘한 웃음을 띄며 원연수를 살폈다.만약 이런 꼼수를 시아가 썼다면 혐오스러웠을 텐데 원연수는 재미있었다.“봐줄 만하죠.”원연수는 당황하지 않고 일어나 앉았다. 일어나면서 등의 상처를 건드리는 바람에 이번엔 정말 얼굴이 일그러졌다.“됐어.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그 모습을 보고 이주혁이 말했다.“오늘 밤은 그냥 여기 있어. 병실이 알려졌으니 기자들이 몰려들 거야.”“어차피 내일 퇴원할 생각이었어요. 그냥 오늘 퇴원하겠습니다.”원연수는 이주혁의 휴게실에서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안 돼.”이주혁이 딱 잘랐다.“내일 아침에 아직 검사할 게 남아있거든.”“몸은 많이 회복됐어요. 모레 와서 검사해도 되잖아요.”“안 돼.”이주혁은 여전히 강한 어조로 말했다.
원연수는 그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온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도원화와 원현무는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인간들이었다.‘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못 이기는 척 여기 있을까?’부상까지 당한 상황에 더 고집부리기도 힘들었다.“알았습니다. 신세지는 셈 치고 오늘 밤은 여기 있죠.”원연수의 얼음공주 같은 얼굴에 난처함이 비쳤다.하지만, 그녀의 입장 표명은 너무나 명확했다. ‘여기 있고 싶지 않지만, 신세진 게 미안해 어쩔 수 없이 남았다. 그러니 이제 빚은 없다.’주혁은 좀 화가 났다.‘진짜... 끝까지 한 마디를 안 지는구먼.’“원연수 씨, 이런 걸 뭐라고 하는지 아나? 뻔뻔하다고 하지.”“아무렴 내가 여기 있고 싶을까요? 뻔뻔하다고 하실 것 같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됐어. 가만 누워 있어. 당신한테는 정말 못 당하겠군.”이주혁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주혁은 원연수의 이런 성격이 좋았다. 다른 여자들처럼 똑같은 반응이었다면 재미없었을 것이다.원연수는 말없이 입술을 뜯고 있었다.이주혁이 무슨 생각을 할지 알고 있었다. 이주혁에게 자신은 그저 신기한 장난감일 뿐이라는 것을.‘내가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그때는 흥미가 뚝 떨어지는 거더든.’“원장님....”이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들어와요.”경비가 들어왔다.“방금 심문해보았는데, 누군가 전화로 병실 호수를 알려주었다고 합니다.”“그게 누구래?”이주혁이 안 좋은 표정으로 물었다.“알 수 없는 번호로 걸려왔다고 합니다.”경비원이 말을 더듭었다.“아마, 원한 관계에 있는 자의 소행이 아닐까 싶은데요.”“알았습니다, 나가보세요. 두 사람은 경찰서로 데려가고.”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이주혁은 베개에 기댄 채 조용히 누워 있는 원연수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눈을 감도 있던 원연수는 잠시 후 고개를 들었다.“내 병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예요. 의료인을 제외하면 회사 사람들 뿐이죠.”“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이주혁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아마도 시아겠죠.
‘정말이지 이렇게 날 잘 아는 사람은 처음이야.완전히 투명하게 들여다 보고 있어.내가 원연수를 안 지 얼마나 됐지?정말 희한한 일이군.’원연수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솔직히 얼굴 좀 잘 생기고 집안 조건 좀 좋고, 의술 좀 있는 거 뿐이잖아요? 그 정도는 다른 사람도 가진 조건이거든요. 여자가 남자에게 그런 걸 바라는 줄 아세요? 돈 벌어다 주는 기계도 아니고. 집안 조건? 조건 좋은 사람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대표님 정도 되는 집안 배경이 아주 흔한 건 아니지만요.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대표님처럼 흥청망청 낭비하지 않거든요. 의술요? 훌륭한 의사 많죠. 결론적으로 대표님은 그렇게 매력적인 상대는 아니란 말이에요. 내가 잘 사귀고 있는 사람과의 사이를 도발해서 가지고 싶을 만큼.”“솔직히 두 분다 별로예요. 하나는 죽자살자 질척거리면서 어떻게 하룻밤 꼬셔볼까 하는 생각 뿐이고, 하나는 질투에 눈이 멀어서 사람 잡아먹으려고 덤비고. 두 분에게는 내가 하찮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싸늘한 공기가 무거운 안개처럼 공간에 꽉 찼다.이주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떨어트렸다.이주혁은 일어나서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눈이 원연수를 들여다 보았다.“요즘 내가 너무 잘 해줬나? 아주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는군.”“그렇게 바짝 다가와서 노려보면 얼른 엎드려서 아이고 감사합니다 할 줄 알았나요? 듣기 좋은 소리 안 한다는 거 알면서 왜 자꾸 코앞에 놓고 속을 긁으시는 거죠?”원연수가 싸늘하게 말했다.“질척거리는 건 대표님 문제고, 거기 응하지 않는 건 내 문제고. 애인 관리는, 대표님 몫이겠죠?”“그렇게 시아가 했다고 확신을 하다니, 증거 있나?”이주혁의 얼굴이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딱히 시아를 감싸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자기 사람으로 알려진 시아가 그런 일에 휘말렸다면 부끄러운 일이었다.“내가 대표님 심기를 건드리기 전에는 회사 사람들은 다들 나랑 사이가 좋았거든요.”당당한 원연수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원연수의 도톰한 입술에서 순식간에 피가 흘러내렸다. 안 그래도 상처 때문에 통증에 시달리던 원연수는 머리가 빙 돌았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솟구쳤다. 원연수는 울컥 비위가 상했다.‘구역질 나.대체 저 입술로 얼마나 많은 여자들에게 입 맞추었을까?게다가 난 아직 잊지 않았어. 날 감옥에 보낼 때 이주혁이 했던 그 매정하고 잔인한 말.’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원연수는 이주혁의 입술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살짝 피가 날 정도로 깨문 이주혁과 달리 원연수는 입술을 뜯어낼 기세였다.아무리 참을성이 좋은 이주혁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심하게 물어뜯기고 나자 입술을 아주 잡아 뜯어버리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어쨌든 이전 같았으면 아무래도 끌리는 마음이 있어서 어느 정도 자극적인 상황이었다면 즐길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번에는 완전히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이주혁은 원연수가 전혀 낯선 사람 같았다. 그 얼음송곳 같은 싸늘함과 원한은 마치… 예전에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백소영을 보는 듯했다.당시 백소영은 경찰의 손에 끌려가면서 딱 그런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았었다.잠깐 넋을 잃은 사이에 원연수는 이주혁의 목에 깊이 손톱을 박아 넣고 있었다.번쩍 정신이 든 이주혁은 원연수를 감싸고 있는 그 원한이라면 정말 자기를 씹어먹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있는 힘껏 밀어냈지만 원연수는 죽어라 이주혁의 목을 꽉 끌어안고 끝까지 이주혁의 입술을 깨문 채였다.“죽고 싶어!”분노에 이성을 잃은 이주혁은 원수연을 어떻게든 떼어내기 위해 와락 밀쳤다. 그 바람에 원수연은 협탁에 몸이 부딪히고 말았다. 하필 자창 부위가 부딪혔기 때문에 극심한 통증이 온몸을 관통했다.원연수는 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정신을 차린 이주혁은 기절한 연수와 침대에 얼룩진 피를 보고 완전히 당황했다.금수저로 태어나 늘 갑의 위치였다.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저항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게다가 이건 냥 반항도 아니고 완전히 맹수처럼 달려
원연수의 도톰한 입술에서 순식간에 피가 흘러내렸다. 안 그래도 상처 때문에 통증에 시달리던 원연수는 머리가 빙 돌았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솟구쳤다. 원연수는 울컥 비위가 상했다.‘구역질 나.대체 저 입술로 얼마나 많은 여자들에게 입 맞추었을까?게다가 난 아직 잊지 않았어. 날 감옥에 보낼 때 이주혁이 했던 그 매정하고 잔인한 말.’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원연수는 이주혁의 입술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살짝 피가 날 정도로 깨문 이주혁과 달리 원연수는 입술을 뜯어낼 기세였다.아무리 참을성이 좋은 이주혁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심하게 물어뜯기고 나자 입술을 아주 잡아 뜯어버리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어쨌든 이전 같았으면 아무래도 끌리는 마음이 있어서 어느 정도 자극적인 상황이었다면 즐길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번에는 완전히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이주혁은 원연수가 전혀 낯선 사람 같았다. 그 얼음송곳 같은 싸늘함과 원한은 마치… 예전에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백소영을 보는 듯했다.당시 백소영은 경찰의 손에 끌려가면서 딱 그런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았었다.잠깐 넋을 잃은 사이에 원연수는 이주혁의 목에 깊이 손톱을 박아 넣고 있었다.번쩍 정신이 든 이주혁은 원연수를 감싸고 있는 그 원한이라면 정말 자기를 씹어먹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있는 힘껏 밀어냈지만 원연수는 죽어라 이주혁의 목을 꽉 끌어안고 끝까지 이주혁의 입술을 깨문 채였다.“죽고 싶어!”분노에 이성을 잃은 이주혁은 원수연을 어떻게든 떼어내기 위해 와락 밀쳤다. 그 바람에 원수연은 협탁에 몸이 부딪히고 말았다. 하필 자창 부위가 부딪혔기 때문에 극심한 통증이 온몸을 관통했다.원연수는 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정신을 차린 이주혁은 기절한 연수와 침대에 얼룩진 피를 보고 완전히 당황했다.금수저로 태어나 늘 갑의 위치였다.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저항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게다가 이건 냥 반항도 아니고 완전히 맹수처럼 달려
이주혁은 이미 오늘 종일 이런저런 일로 분노가 쌓이던 참이었다.그 순간 마침내 그 분노를 터트릴 대상을 찾은 듯했다.이주혁은 원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공 속에서 잔혹한 싸늘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전에는 누군가가 자기 앞에서 수작을 부리면 그게 눈에 들어오더라도 일일이 까발리기도 귀찮아서 큰일이 아니면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시아는 수 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결혼한다는 것을 빌미로 선을 넘고는 했다.원연수 문제도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충분했다.시아의 얼굴이 빨갛게 되더니 점점 시커멓게 되었다. 이주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거의 질식해 죽겠다 싶을 때쯤 이주혁은 갑자기 냅다 시아를 내동댕이쳤다.시아는 커헉거리며 숨을 들이쉬었다.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고개를 들어 얼굴에 전혀 표정이 없는 이주혁을 올려다보았다. 마음속에 공포가 솟아올랐다.“나,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시아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과 어우러지니 어찌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련해 보였다.“내가 왜 연수를 해치려고 그런 짓을 하겠어?”“채시아, 넌 정말이지 위선자야.”보면 볼수록 역겨웠다.“너의 그런 점이 역겹다고, 알아? 뒷구멍으로 더러운 짓은 하면서 절대로 자기가 한 짓이라고 인정하기는커녕 억울한 척을 한단 말이야.”바로 그 점이 원연수와 달랐다.원연수는 못되고 교활하지만 대놓고 덤비지 결코 자기 뜻을 숨기지 않는다.열 받게 만들기는 해도 그것 때문에 사람이 싫어지지는 않는 것이다.“난 아니야. 내가 했으면 인정하죠.”시아가 큰소리쳤다. 분명 발신자 표시가 제한되도록 걸었으니 누가 걸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네가 인정 안 하면 내가 방법이 없을 줄 알아?”이주혁이 날카로운 말투로 시아의 속셈을 있는 대로 까발렸다.“주혁 씨, 나한테 이렇게 하면 안 되죠.”시아가 울먹였다.“연수랑 사귀고 싶으면 사
이주혁은 시아의 입을 통해서 뭔가를 얻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시아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주혁 씨, 여경이를 소개해 줄게요. 여경이 배후의 인물하고 인맥만 터놓으면 주민그룹은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거예요.”시아가 용기를 내어 이주혁의 뒤로 다가가 허리를 감았다.이주혁은 가차 없이 시아의 손을 쳐냈다.“채시아, 강여경이 성형수술을 해서 다른 사람인 척하고 하준이 곁에 스며들어 간호했었던 건 알겠지? 강여경이 하준이가 먹는데 약을 타서 병세를 더 악화시켰었다고.”이주혁이 천천히 돌아섰다. 두 눈에서는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정체가 거의 노출되었을 때 저는 슬쩍 빠져나가면서 무고한 사람을 불 속에 집어넣었어. 그래서 하준이에게 해를 끼친 게 지다빈이고 그 지다빈이 화재로 사망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지. 그것만 해도 천인공로할 짓인데, 추동현과 손을 잡고 그 화재 사망사건의 죄를 백소영에게 뒤집어씌운 인간이야.”시아가 덜덜 떨었다.그 사건에 대해서는 그저 조금 들었을 뿐 강여경이 그렇게 깊기 간여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게다가 백소영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줄은 전혀 몰랐다.더구나 백소영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다만 이주혁을 따라다닌 여자 중 하나로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저 이주혁이 가지고 놀다가 버린 상대 중 하나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백소영이 누구인지 알아?”이주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목소리도 점점 싸늘해졌다.“내 첫 여자야.”그 말을 마치더니 이주혁은 시아의 따귀를 올려붙였다.시아는 다리가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았다.정신이 혼미해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이주혁이 한 걸음씩 걸어왔다. 시아에게는 그 발걸음이 마치 사신의 발걸음처럼 느껴졌다.“내 평생 가장 증오하는 게 바로 강여경이야. 소영이를 내 손으로 감옥에 집어넣도록 날 가지고 놀았다고. 그런데 네가 그런 인간이랑 가깝게 지내? 절친이라고?”이주혁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올라가더니 비웃음을 띠었다.“넌 이번에 선을 넘은 정도가 아니라 내
“똑똑하게 굴어. 네가 내게 주었던 것은 남김없이 가져가도 상관없어. 강여경이 널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려. 강여경이 너에게 접근한 건 나랑 결혼할 상대였기 때문이야. 주민 그룹의 작은 사모님이 될 자격이 사라지고 나서도 그 인간이 널 만나줄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이주혁은 시아를 뿌리치고 문을 열었다.이제는 시아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나랑 결혼하지 않는다면 나도 어머님께 헌혈해 드릴 수 없어!”짙은 혐오가 이주혁의 눈을 스쳤다. “채시아, 아무리 해도 만족할 줄 모르는 악마 같은 모습 때문에 이제 내가 도저히 널 참을 수 없게 된 거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그동안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걸 해주었나? 널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줬는데도 만족할 줄을 모르고. 여자친구 자리를 차지하고 싶대서 그러라고 했더니, 나중에는 결혼을 하겠다고 하고. 그래서 결혼까지도 허락했지. 나에게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한 인간은 없었어. 마지막으로 내게 협박을 했던 인간은 지금은 뼛가루도 남지 않았어. 굳이 당해보고 싶다면 너도 한 번 해봐.”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시아는 휑한 문을 보며 오돌오돌 떨며 멍하니 서 있었다.‘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이주혁이랑 결혼하지 못하면 연예계에서 누가 날 그렇게 떠받들고 존중해 주겠어? 난 완전히 우스갯거리가 될 거라고.안 돼. 그렇게는 못 살아.’시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절대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아직은 기회가 있다.시아는 곧 119에 전화를 걸었다. 곧 구급차가 와서 시아를 인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다음날, 시아가 한밤중에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에 걸렸다.시아가 밤새워 기다린 끝에 마침내 휴대 전화가 울렸다.병약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어머님.”“얘야, 어째 갑자기 밤중에 병원에 실려 갔다니? 어디가 안 좋아? 주혁이는 같이 있니?”이주혁의 어머니 류성희의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어머님…”시아는 입술을 깨물고 울먹거렸다
“잠깐.”하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아니야. 난 갈게. 어쨌든 넌 이제 예전의 하준이가 아니잖아. 예전 친구 따위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어.”송영식은 한숨을 쉬었다.“잡지 마라.”“너 잡는 거 아니거든.”하준은 어이가 없어 하며 송영식을 쳐다보았다. ‘나에게 저런 신경질적인 친구가 있었다고?’송영식은 잠시 매우 민망해졌다.“…나 간다?”“앉아 봐.”하준이 옆이 의자를 가리켰다.송영식은 그제야 휘적휘적 가서 앉았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하준의 노트북으로 향했다.“FTT 자료 보고 있었네?”하준은 그에 답하지 않고 미간을 찡그리고 있더니 물었다.“나랑 강여름은 어떤 사이였어?”“어떨 것 같냐?”송영식이 고소해하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맞추면 여기 앉아서 얘기해 줄 거야?”하준이 냉랭하게 물었다.“말 하기 싫으면 말고. 물어볼 사람이 너밖에 없는 건 아니니까.”“내가 졌다.”송영식은 김이 빠졌다.“네가 느끼기에는 어떨 것 같은데?”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전에는 노트북도 핸드폰도 만질 줄 몰랐지만 오늘 아침에 핸드폰으로 몰래 뒤져보았다. 성인 남녀 사이에 키스를 한다는 것은 둘이 굉장히 친밀한 사이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자신과 여름이 나눈 것은 프렌치 키스라는 것까지 알아냈다.그런 것을 알아내고 나자 하준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뭐 응큼한 생각하고 있구나?”송영식이 큭큭 웃었다.하준이 송영식을 싸늘하게 흘겨 보았다.“내 여자인구인가? 하지만 결혼했다던데? 아이도 있고. 난… 강여름의 정부인가?”“… 컥컥. 대단하네. ‘정부’ 뭐 그런 단어까지 알아냈어?”송영식이 엄지를 치켜 세웠다.“하지만 그 단어가 딱 적당한 것 같다.”그 말이 맞다는 뜻이었다.하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정말 내가 그렇게 내놓기도 부끄러운 정부야?’“그렇다고 화내지는 말고. 이 지경이 된 것도 다 네 인과응보라고.”송영식이 말을 이었다.“여울이하고 하늘이 아빠가 누군지는 아냐?”“내가 어떻게 알아?”하준은 짜증이 났다.
“요즘 쭌은 자신을 더 이상 두 살짜리 아기로 생각하지 않아. 쭌의 실제 나이는 나보다도 많다고 얘기해 줬거든. 요즘은 선생님들 모셔서 가르치는데 정말 빨리 배워. 앞으로 한 달 정도면 전에 배웠던 지식 수준은 따라잡을 것 같아.”“하지만… 그러면 뭐해? 너희들 사이에 있었던 애정 같은 건 다 잊었을 텐데.”윤서가 망설이면서 말했다.“널 잊어 버린 사람이 다시 널 사랑하게 만드는 게벌써 몇 번 째냐?”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 다시 슬픈 기분이 되었다.‘그러네. 대체 이게 몇 번 째냐고….처음에 동성에서 만났을 때, 내가 죽을 힘을 다해서 최하준을 따라다닌 바람에 결국 최하준의 관심을 받는 데 성공했지.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서도 온갖 수단을 써서 백지안 옆에 있던 최하준이 날 사랑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었고.그래, 매번 성공했어. 그래서 피곤했냐 하면, 그래. 정말 피곤했지.두 사람이 서로를 향하는 사랑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어.’“나도 모르겠어.”여름이 망연자실해서 말을 이었다.“전에는 기억에 착란을 일으켰던 거고 이번에는 완전히 어린애나 다름 없게 되어 버렸으니까. 애정 부분도 완전히 백지가 되어 버렸어. 사실 날 사랑하게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인생은 길잖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 다음에 또 이러지 않을까? 그 다음은? 내가 매번 이렇게 주동적으로 나서고 인내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라고 무쇠로 만들어진 사람도 아니고, 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네 애정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뭐라고 한 적이 없지만, 너 이러는 거 보니까 나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난… 최하준은 자기 자신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 혹시나 이번에 다시 고백 받거든 이번에는 쉽게 넘어가지 마.”윤서가 말을 이었다.“본인이야 그러고 싹 다 까먹어도 별 문제 없겠지. 하지만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그렇게 몇 번이고 잊어버린다면 그게 뭐 누구의 계략에 빠진 거든 뭐든 막 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아내랑 애가 있는
하마터면 윤서의 입술이 송영식의 코에 닿을 뻔했다. 순식간에 호흡이 엉키고 얼굴은 빨개졌다.“왜 이렇게 들이대?”“어떻게 사람이 말 한마디를 곱게 안 하냐?”송영식은 속상했다. 그런데 발그레해진 윤서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요즘 윤서의 배가 점점 크게 부풀어 올랐다. 얼굴도 동그라니 뺨이 포동포동했다. 워낙 잘 먹여 놔서 피부도 촉촉해서 저도 모르게 한번 꼬집어 주고 싶었다.“좋은 말은 할 줄 알지만 당신한테는 안 쓸 거야.”윤서가 코웃음을 쳤다.“여름이가 장보러 간다니까 우린 좀 천천히 가자.”“마침 잘 됐네. 나도 올라가서 뭣 좀 해야 하거든.”송영식이 묘하게 웃더니 신이 나서 뛰어 올라갔다.송영식의 뒷모습을 보며 윤서는 어리둥절했다.*****1시간 뒤, 송영식이 차를 몰고 하준의 집으로 향했다.송영식의 집에서 하준은 집까지는 멀지 않아서 30분이면 닿았다.윤서는 하준의 집에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집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여기 너무 큰 거 아니야? 너희 집에 대니까 우리 집 너무 초라하다.”송영식이 반박했다.“그집이 어디가 초라해?”“그러게. 그런 좋은 집을 두고.”여름이 웃으며 답했다.“같이 한 바퀴 돌까? 그러면서 과일도 좀 따고.”“그래.”윤서가 송영식을 돌아보았다.“따라오지 말고 하준 씨한테나 가 봐요.”“누가 따라간대? 자기가 무슨 인기 연예인인 줄 아나?”송영식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흥, 앞으로는 절대로 나 따라다니지 말라고!”윤서가 싸늘하게 웃었다.송영식의 얼굴이 굳어졌다.“누가 따라다니고 싶어서 따라다니는 줄 아나? 워낙 덤벙대니가 아기 다칠까 봐 그러는 거지.”“고오맙네요. 백지안 때문에 밀치지 않아서. 내 아기는 누구보다 건강할 예정이거든요.”윤서가 비꼬았다.“대체 언제적 얘기를 아직까지…. 됐다. 내가 당신이랑 무슨 말을 하냐? 하준이한테나 가 봐야지.”송영식이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너희 둘… 안
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 ‘아까부터 그거 때문에 의기소침한 거였어?’“그래. 완전히 탄복했지.”여름이 끄덕였다. 감탄한 것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차진욱은 흑과 백을 넘나드는 사람이었지만, 여울이를 구해주고 나서부터는 내심 존경하는 마음이 커졌다.강신희에 대해서도 차진욱은 남편으로서 아껴주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하도록 방임하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차진욱이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여 처음부터 하준을 상대했다면 여름과 하준은 진작에 끝장이 났을 것이다.돈이 넘치는 사람은 쓸데없는 못된 버릇도 있기 마련인데 차진욱에게는 그런 결점도 딱히 없었다.강신희에 대해서도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아플 때도 결코 곁을 떠나지 않았다.여름은 강신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런 사랑과 혼인 관계는 너무나 부러웠다.자신은 결혼 생활도 실패한 것 같았다. 하준은 차진욱처럼 아량이 넓고 포용력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백지안 같은 불여우에게 속아서 이용당하는 지경이었다.재결합한 뒤에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둘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전에….여름은 슬픈 마음으로 하준을 돌아 보았다. 그런데 하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우울한 모습이었다.“걱정하지 마. 나도 그런 사람이 될 거야. 여름이가 감탄할 수 있는 그런 사람.”하준이 진지하게 주먹을 쥐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FTT를 되찾아 올 거야.”여름이 빙긋 웃었다.“난 차 회장님의 패기 넘치는 스타일에 감탄한 게 아니야. 쭌은 아직 잘 모르네.”“그럼 뭔데. 말해 봐봐. 나도 배우게.”하준이 다급히 물었다.“배워서 뭐 하게?”여름이 하준을 흘겨 보았다.“혼인 관계에 대한 지조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포용력에 감탄한 거야. 그런 걸 쭌이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건데?”하준은 흠칫했다.혼인이니, 사랑하는 사람이니, 다 하준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하준은 마음이 괴로웠다. 어제 이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사실 하준은 핸드폰에서 여름과 자신의 셀카
“이게…”“그리고, 월급 받는 전문 경영인 주제에 이사회의 결정을 듣지 않고 우리에게 반항한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이 회사를 침탈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 밖에 없죠. 회사 중역은 죄다 당신이 심어놓은 사람이고 아무나 와서 기고 만장하단 말이야.”한마디 한마디 뼈가 시렸다. 맹원규의 안면 근육이 부르르 떨렸다. 하준은 그렇게 싸늘한 여름의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마저도 너무 매력이 넘쳤다.맹원규가 싸늘하게 웃었다.“강여름 씨는 내 모가지를 쳐내고 내가 고용한 임원까지 싹 솎아내고 싶으신가 보군.”“그러면, 당신은 그만 두고 나갈 건가요?”여름이 비꼬았다.“당신 같은 사람은 철면피처럼 여기 어떻게든 붙어있을 걸.”맹원규는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절대로 안 비킬 줄 알았지.”여름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일부터는 최하준 씨가 회사에 와서 회장직을 수행할 겁니다. 당신은 직위 해제예요. 이사회의 절대적인 행사권 앞에서 당신은 일개 직원일 뿐이에요. 싫다고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그렇게 말하더니 여름은 하준을 데리고 나갔다.막 문을 나서는데 안에서 뭔가를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여름이 하준에게 눈짓을 했다.하준은 바로 알아듣고 주먹을 쥐고 돌아섰다.두 사람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맹원규와 깨진 컵이 보였다.“어, 아주 잘나셨어?”하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일개 직원이 이사 앞에서 컵을 깨고 눈을 부릅뜨다니?”“아닙니다. 제가 실수로 컵을 떨어트렸습니다.”맹원규가 뱉었다.“왜요? 내 안면 근육이 멋대로 수축하는 것도 안 됩니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직원이 오너보다 기고만장한 꼴을 다 보고. 당장 나가시오.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하준은 냉엄하게 내뱉고는 여름을 데리고 나갔다.가면서 맹원규의 그 얼굴을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내일 맹원규가 꺼질까?”여름이 웃었다.“그렇게 쉽게 나가겠어?”“그런가…?”하준의 어깨가 쳐졌다.“안 나갈 거야. 배후에 양유진이 있을 테니까. 양유진이 놈에게
차진욱의 변호사가 나섰다.“미안하지만 강여경이 FTT를 구매하는데 사용한 자금은 모두 강신희 여사님의 계좌에서 나온 돈입니다. 계속해서 당신이 FTT 주식을 상속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법원에 주식의 동결을 신청할 수 밖에 없습니다.”“당신은 그럴 권리가 없어!”강태환이 다급히 외쳤다.“돈은 내 동생이 준 거라고. 신희를 불러와.”“강신희는 지금 병으로 입원 중이고, 나는 배우자로서 부부 공동의 자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차진욱이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그리고 난 당신들 셋이 사기범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마침 강여경의 시신이 아직 냉동 보관 중이지? 그러면 이참에 DNA를 검출해서 친자확인을 해보자고. 난 재산도 되찾고 당신들을 사기로 고소도 해야겠어. 천문학적인 금액을 사기쳤지. 아주 전세계 최고 사기액일 거야.”“헛소리! 우리는 사기 같은 거 치지 않았어!”강태환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뭐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사실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호흡이 가빠진 척하며 휠체어에 쓰러졌다.이사회를 개최했던 맹원규는 후다닥 일어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구급차 오고 있나? 회의실에 또 한 명이 기절했어. 같이 실어 보내지. 어서. 사람 죽게 생겼다고….”전화를 끊고 나가 회의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해 졌다.맹원규가 차진욱을 보고 웃었다.“주식에 이렇게 큰 문제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회의는 취소하고 다음에 다시 논의하시죠. 아니면 두 분이 개인적으로 분쟁을 해결하시고 나서 다시 이야기 나누십시다.”차진욱의 날카로운 시선이 맹원규를 훑었다.“강여경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고 당신을 불렀지? 그 돈도 내 아내의 자금이야.”맹원규의 얼굴이 굳어졌다.사실 강여경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고 맹원규를 초빙한 것은 사실이었다.“내 아내의 자금을 날려가며 불러온 게 겨우 이따위 쓰레기라니?”차진욱은 경멸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제가 뭘 잘못한 거라도 있는지요?”맹원규가 깊
기다리지.”차진욱은 셔츠를 정리하고 다시 앉았다.강태환은 바들바들 떨었다. 기절했으면 싶었다. 이제 양유진이 실려나갔으니 혼자서 어떻게 차진욱을 감당하겠는가?차진욱이 손이라도 댄다면 자신도 양유진 꼴이 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피범벅이 된 양유진을 생각하니 두려워졌다.‘기절한 척할까? 그러면 맹원규가 회의를 취소하겠지?’그런 생각을 하는데 여름이 갑자기 다정하게 다가왔다.“왜 그러세요? 놀라서 기절할 것 같은 건 아니겠죠?”“……”“기절하시면 안 돼요.”여름이 다정하게 말했다.“아빠가 기절하면 강여경의 주식을 어떻게 상속받아요?”강태환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강여경의 주식?”차진욱이 결혼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큭큭 웃었다.“그게 당신 차지가 되겠나? 범죄자 따위가 말이야.”차진욱의 말에 회의실은 묘한 정적에 빠져들었다.강태환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난 강여경의 아버지요. 여경이가 죽었는데 자식이 없으니 우리나라 법에 따라 부모가 재산을 상속받는 거지.”“강여경의 부모인 건 확실하고?”차진욱이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얼마 전 동성에 갔을 때 분명 강여경의 부모는 따로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강여경의 친엄마는 내 아내 강신희라고 말이야.”강태환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그런가요? 내가 그런 소릴 했나? 어쨌든 법적으로는 걔가 내 딸이거든.”“그래?”차진욱이 옆에 있던 변호사에게 손짓했다.변호사가 바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넸다.차진욱이 서류를 강태환에게 들이 밀었다.“그러면 잘 보시지. 소위 당신의 딸이 일전에 내 아내의 재산을 어마어마하게 썼거든. 당신네 나라 법에 따라 강여경이 쓴 돈은 우리 부부의 공동 재산이라서 내게도 그 돈을 추심할 권리가 있어. 강여경이 죽었으니 그러면 그 돈은 법적인 아버지에게서 돌려받아야겠군”“무, 무슨 근거로?”서류의 숫자를 본 강태환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평생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금액이었다.“거 참 우습구먼. 당신 딸이 죽어서 딸이 남긴 주식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와 아무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차진욱이 눈동자를 보자 양유진은 저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렸다.양유진은 자신이 차진욱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차진욱은 아들이 하나뿐이다. 그것도 강신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그러니 분명 매우 애지중지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양유진은 차진욱이 잔인함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양유진은 너무 아파서 입술에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이마에서는 땀이 송글송글 솟아났다. 고통에 가득 찬 눈에 독기가 서렸다.“계속해 보시지. 그 대가로 아들 시체를 받게 될 거야. 난 놈을 아무도 없는 곳에 숨겨뒀어. 누구도 찾을 수 없게.”“그러시겠지.”차진욱은 큭큭 웃으며 양유진을 놓아주었다. 위협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얼굴이었다.“난 이래서 가식적인 인간이랑 말을 섞기가 싫다고. 인질을 잡았으면 잡은 거지 왜 나랑 쇼를 하겠다는 건지?”양유진은 당황해서 비척비척 뒤로 물러났다. 부러진 손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차진욱! 당장 내게 사과해! 사과하지 않으면 아들놈을 죽여 버리겠어. 네놈은 이제 대가 끊기게 될 거다.”몸을 빼자마자 다시 차진욱을 협박하다니 너무나 양유진다웠다.맥퀸이 분노했다.“도련님을 다치게 했다가는 네 집안이 쑥대밭이 될 줄 알아!”“우리 집안이 차민욱 만큼 가치가 있지는 않지.”양유진은 화가 난 맥퀸을 보더니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차진욱,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면 내가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말을 마치기도 전에 차진욱은 양유진을 걷어차 날려버렸다.양유진은 바닥에 엎어졌다. 목구멍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차진욱이 다가가 양유진의 얼굴을 밟았다.“그래도 체면을 좀 차리게 해주려고 했더니 끝간 데를 모르고 까부는군.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잊어버렸나? 내 아들이 팔 다리 잃는 것쯤은 신경 안 쓴다고 했지? 살아만 있으면 된다. 잘 들어. 민우의 목숨은 네가 살수 있는 조건이다. 멋대로 날 협박할 생각은 버려. 난 협박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야.”양유진은 전혀
“난 사람으로서 못할 짓을 한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전세계의 낙후된 국가에 의료 환경을 제공하고자 애썼습니다. 하루하루 병에 침식되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고통을 아십니까?”여름은 구역질이 올라왔다.양유진의 연기는 그야말로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감이었다.자기 친조카도 살해할 정도로 잔인한 인간이 병으로 고통받는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니….“윽!”옆에서 듣던 하준이 먼저 반응했다.“구역질이 나는군. 당신네 약은 선진국에 팔자면 무시 당할 수준이니 제3세계 국가에 가서 돈을 버는 수밖에 없지. 가난한 나라지만 의약품은 필수니까. 당신은 죽음에 직면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거야. 말로는 성인군자인 것처럼 굴지만 사람들이 다 바보인줄 아나?”차진욱은 하준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래. 내가 살면서 별별 사람을 다 만나 봤지만 너처럼 구역질 나는 인간은 참 드물지.”자존심이 센 양유진은 그런 모욕을 당하자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차진욱이 천천히 일어서 양유진에게 다가갔다.강태환은 양유진과 같이 있다가 차진욱의 거대한 몸이 다가오자 극도로 두려움을 느꼈다.그러나 휠체어에 앉아 있어 마음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저 손잡이만 꼭 잡을 뿐이었다.“왜 이러시죠? 여기는 FTT그룹이고, 우리나라입니다.”양유진이 낮은 소리로 경고했다.“내가 모른다더니? 이제는 내가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나 보군, 그래?”차진욱은 느릿하게 소매 단추를 풀었다. 소매를 걷으니 그을린 팔뚝이 드러났다. 탄탄한 주먹만 봐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누구 없나?”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이자 맹원규가 냅다 사람을 불렀다.그러나 맥퀸이 맹원규의 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테이블에 짓눌렀다.동시에 차진욱의 주먹이 양유진의 안면을 강타했다.180cm가 넘는 양유진의 몸이 그대로 벽까지 날아갔다. 입에서는 선혈이 흐르고 이빨도 몇 개가 부러졌다. 너무 아파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강태환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머…멈춰요.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