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조은혁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스위트룸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박연희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창밖의 네온사인이 그녀의 얼굴에 드문드문 흩뿌려지며 그녀의 수려한 얼굴에 약간의 적막을 더했다.“왜 불을 안 켜고 있었어?”말을 이어가는 동안 조은혁은 스위트룸의 조명을 모두 켜 놓았다.등불이 밝게 켜지며 박연희의 눈가에 남아 있는 촉촉한 물기를 비춰 주었다. 아마 조금 전까지 울었던 모양이다.조은혁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더니 소파에 앉아 코트를 벗으며 입을 열었다.“어젯밤 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거야? ... 밥은 먹었어?”박연희가 먹었다고 답했다.조은혁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미연의 일로 인해 그들 사이에 끼리까지 생기자 그도 예전처럼 그녀를 아껴주지 않았다.안 먹을 거면 먹지 마.박연희는 바보도 아닌데 배가 고프면 알아서 챙겨 먹겠지.조은혁은 종일 바삐 보내느라 힘들었을 테지만 그쪽의 욕구가 하도 강해서 좀 쉬었다가 그 일을 하자고 제안을 건넸다. 박연희가 거절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녀는 매우 협조적이었다.조은혁이 그녀에게 키스할 때, 그녀는 붉은 입술을 벌리고 그와 깊은 키스를 했다.박연희는 더 이상 그에게 반항하지 않았다.그녀는 심지어 그의 목덜미까지 끌어안았고 가녀린 몸은 남자의 움직임에 맞춰주었다.박연희를 바라보는 조은혁의 검은 눈에는 섹시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동안 그들이 함께 지내온 몇 년 동안, 박연희가 정신이 나갔던 척 흉내를 냈던 그 2년을 제외하면 다른 시간 동안 그녀는 성적인 일에서도 매우 보수적이었다. 거의 모든 순간에서 그녀는 줄곧 조은혁의 스킨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었는데 언제 지금처럼 즐기는 데 익숙한 여자처럼 행동했단 말인가?지금, 이 순간의 그녀는 마치 물로 이루어진 사람 같았다.여자가 기꺼이 협조해주니 남자는 자연히 많이 편안해졌다. 조은혁은 그녀의 몸을 통해 잠시 욕구를 달랬고 그 시간이 지나서야 마치 뜨거운 모래를 머금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조은혁은 사정없이 박연희를 산산이 깨부쉈다.박연희는 천천히 그녀의 큰 눈을 떠 하얀 손바닥을 차가운 유리 위에 평평하게 펴고 창밖으로 넘쳐나는 네온사인을 바라보았다. 그 불빛은 그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그리고 그녀는 지금 또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다.그녀의 뒤에 있는, 잔인하게 그녀를 모욕하는 남자가 정말 조은혁인가. 그녀가 사랑했던 조은혁이란 말인가. 분명 처음에는 박연희의 손가락 하나조차 만지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의 조은혁은 박연희를 이런 곳에 눌러서 마치 기생처럼 그녀를 대하고 있다.“은혁 씨...”“은혁 씨...”박연희가 몇 번 기침하자 검붉은 피가 투명한 유리 위에 흩뿌려졌다.그녀는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불렀고 극심한 고통에도 조은혁의 이름을 불러야만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박연희가 부른 것은 현재의 조은혁이 아니다. 그녀의 옛 애인이다.박연희를 해치지 않던 조은혁.처음으로 그녀와 다정하게 밤새도록 잠자리를 함께했던 그 조은혁이다.왜 아직도 안 끝나는 것이지?몇 번이나 했는데 왜 아직도 끝내지 않고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거지... 그녀가 아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너무 아파서 정신이 까마득해질 무렵, 박연희는 조은혁에게 버림받고 버팀목이 없어지자 부드러운 카펫 위로 천천히 미끄러져 넘어졌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남자는 소파에 앉아 그녀더러 시중을 들라고 지시했다.옷은 온전하고 벨트만 풀려 있는 상태였고 지금은 그녀가 시중을 들어 그의 옷매무새를 정리하라는 뜻이었다.박연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장씨 아주머니는 일찍이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사모님, 만약 더 잘 살고 싶다면 대표님 앞에서 처남은 언급하지 마세요. 사모님께서 만약 말을 꺼내면 대표님은 아마 사모님을 끝까지 괴롭힐 거예요.”그리고 현재, 박연희는 결국 그 괴롭힘을 맛보게 되었다.그런데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암에 걸렸고 어차피 곧 죽을 텐데... 죽기 전
박연희를 대하는 조은혁의 행동에는 조금의 부드러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소파 위, 카펫 위, 곳곳에 그가 만들어 낸 흔적이 흩뿌려져 있었고 큼직한 유리창 위에도 그녀의 입가에서 흘러나온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혁은 눈치채지 못했고 오직 자신의 욕구에만 몰두하느라 그녀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다.그날 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박연희는 차가운 침대에 웅크린 채 유리창 너머로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세기 시작했다.조은혁의 옆에 머물러 있다면 아마 빨리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반년, 어쩌면 두세 달 만에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진범이... 그래. 그녀에게는 아직 진범이가 있다.B시에 돌아온 후, 박연희는 진범이에게 해마다 엄마가 직접 준비해준 새 옷을 입게 하도록 몇 년 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여러 벌 사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진범이에게 책도 골라주어야 했다. 조은혁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기게 된다면 진범이에게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녀의 수중에 아직 돈이 좀 있으니 그 돈을 장씨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그녀가 진범이 대신 저축하도록 해야 한다.정말 사고나 다른 일이 생기더라도 그녀의 진범이는 고통받지 않을 것이니까.진범아, 하나뿐인 진범아... 박연희가 어찌 진범이를 두고 안심할 수 있겠는가?밤에 그녀는 고열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후에 다시 내렸다.새벽녘에야 돌아온 조은혁의 몸에는 은은한 향수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박연희는 단번에 그 향이 이미연의 것과 같은 제품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덜미에는 아직 썸타는 흔적이 남아 있다.이것으로 박연희에게 벌을 주려는 것일까?그러나 아쉽게도 박연희는 곧 죽을 운명이다.어느덧 벌써 오전 9시가 되고 이들이 체크아웃까지 한 시간이 남은 시점이었다.박연희가 먼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옷 갈아입고 올게요.”그러나 손목이 잡히고 조은혁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진통제!그래! 지금 박연희에게 필요한 것은 진통제이다....깊은 밤, 하와이의 밤거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박연희는 외투를 두르고도 온몸이 으슬으슬 추웠는데 이 또한 병이 났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이전에는 그녀도 이렇게 추위를 타지는 않았다.거리마다 각양각색의 약국이 가득 차 있었는데 박연희는 마침내 24시간 영업하는 약국을 찾아냈다.박연희는 불빛이 환한 약국 안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직접 진통제 두 상자를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원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녀를 거절해버렸다.“의사의 처방전이 없다면 저는 약을 가져다줄 수 없어요.”그러자 박연희는 두툼한 지폐 두 묶음을 카운터에 놓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현금 400만 원이었다.직원은 깜짝 놀라서 좌우를 슬쩍 둘러보더니 즉시 현금을 들어 위폐 감별기에 넣어 검사하였다... 한바탕의 와글와글 소리 속에서 박연희가 건넨 것은 놀랍게도 모두 진짜 지페였다.박연희가 다시 창백한 입술을 열어 말을 꺼냈다.“처방전을 400만 원에 살 수 있나요?”“할 수 있죠! 당연히 할 수 있죠.”직원은 돈을 잘 쌓아두고 CCTV를 피해서 자신의 가방에 넣고는 몸을 돌려 박연희에게 약 다섯 상자를 건네주었다.“세 상자는 제가 더 준 셈 치죠. 하지만 이 약은 하루에 두 알만 먹을 수 있고 그래도 참을 수 없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어쨌든 병은 치료해야 하지 통증만 멈춘다고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제가 보기에 손님도 돈이 모자라지 않는 것 같은데.”박연희는 그저 싱긋 웃어 보이고는 약 다섯 상자의 포장을 뜯고는 조심스럽게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녀의 모습에 직원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약 하나 사러 오는데 뭘 그렇게 간첩 같이 굴어요. 맞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하와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남쪽 지역 사람이죠? 여기에서는 남쪽 사람이 제일 인기가 많아요. 밖에 나갈 때 카드도 안 쓰고 이렇게 현금을 쓰니까요.”“아니요. 그냥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박연희
조은혁이 힘을 주는 바람에 손목으로부터 통증이 밀려왔다.박연희는 그 예쁜 여자 연예인의 뒷모습을 뚫어지라 바라보더니 한참이 지나 가볍게 입을 열었다.“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소란을 피우는 것도 자격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녀의 쌀쌀맞은 태도에 조은혁은 좀 불쾌해졌다.그때 밤바람이 몰아치자 박연희가 격하게 기침을 해댔다.조은혁은 그녀의 옷이 얇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혼자 나왔어?”“약 사러 나왔어?”박연희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혹여나 조은혁이 그녀의 가방을 검사할까 봐 두려워 얼버무렸다.“네. 생리가 와서... 아랫배가 아프더라고요.”조은혁은 별다른 의심 없이 믿어주는 눈치였다.그가 차에 타라고 하자 박연희는 결국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를 따라 차에 탔다.차 안은 따뜻했지만 다른 여자가 남긴 향수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어 박연희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조은혁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더욱이 그의 관심을 끌기 싫어 필사적으로 참았다.그녀는 조금 아파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가냘픈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오랜 시간 동안 그들은 계속하여 침묵을 유지했고 차가 호텔 주차장에 주차되어서야 조은혁은 비로소 손짓했다.운전기사는 눈치껏 먼저 차에서 내려 차 옆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차 안이 워낙 좁은 터에 두 사람만 남으니 더욱 비좁아 보였다.조은혁은 고개를 숙여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뽑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놀았다.길쭉하고 훤칠한 손가락으로 담배를 끼우고 있으니 그 화면은 어두운 불빛 속에서 상당히 눈을 즐겁게 하였다.한참 뒤 그는 박연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박연준은 이미 풀려났어.”순간 박연희가 멈칫하고 그를 바라보았다.이윽고 그녀는 쉰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마워요.”그러자 조은혁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재빨리 물었다.“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세 글자만 남았나? 박연희, 만약 내가 지금 너에게 다시 한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휴대폰 너머 상대에게 몇 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작은 바에는 알약의 내부 포장이 아직 남아 있었다.조은혁은 그 포장지를 주워들어 살펴보았는데 그는 보자마자 이것은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라는 것을 알아냈다.그가 박연희를 올려다보았다.“이건 어떻게 산 거야? 그리고 또, 전에 네가 생리통을 앓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이번에는 왜 이렇게 아파하는 거야?”박연희는 가슴이 천둥이 울리는 것마냥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속삭였다.“그분도 처음에는 팔아주려 하지 않았는데 제가 그 사람에게 4만 원을 주니 그제야 방법을 대서 팔아준 거예요.”“그리고 생리통은 이번에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거예요.”조은혁은 긴 손가락으로 그 약 포장지를 가지고 놀다가 결국 한 마디 내던졌다.“이 약은 위를 상하게 하니 자주 먹지는 마.”어물쩍 넘어가게 되자 박연희는 심장이 큰 바위처럼 땅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다음날, 그들은 B시로 돌아갔다.정오 무렵, 검은색 캠핑카가 천천히 럭셔리한 별장으로 들어섰고 장씨 아주머니는 많은 고용인들을 거느리고 일찍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진범은 장씨 아주머니 품에 순순히 안겨 있었는데 하얗고 통통하게 잘 자란 모양이다.엄마를 본 진범이는 짧은 두 팔을 벌리고 끊임없이 박연희를 찾았다.“움마, 움망.”전에는 박연희도 앞날이 창창하다고 생각했었다.그래서 진범이는 조은서의 곁에서 자라고 그녀는 그를 그리 많이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을 보호해야만 진범이와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박연희는 진심으로 진범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그녀가 진범이를 안은 순간, 진범이의 몸을 만지고 진범이의 냄새를 맡고 또 진범이의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진범이는 그녀의 몸에서 나온 그녀의 혈육이다.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박연희는 주체할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아이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그의 존재를 한껏 느꼈다.뜨
곧이어 그녀는 자신이 조은혁과 재혼했다고 밝혔다.이 소식은 마치 천둥 번개와도 같이 장씨 아주머니의 귀에서 폭파되었다. 장씨 아주머니는 한참 만에야 이 소식을 소화해 내고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사모님, 왜 그러셨어요! 동거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대표님께서 싫증이 나실 때까지 기다리면 되죠. 근데 이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남은 혼인 증서는 앞으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어요.”장씨 아주머니는 너무 슬픈 마음에 눈물을 훔쳤다.그러자 박연희는 쓴웃음을 지었다.“장씨 아주머니, 아주머니도 제가 그와 결혼하는 것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왜 바깥에 그렇게 많은 여자들은 불구덩이에 뛰어들려고 하는 걸까요?”“그건 그 여자들이 대표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돈이나 육체적 쾌락만 추구하면 되지만 사모님은 다릅니다. 사모님께서는 일찍이...”장씨 아주머니는 목이 메어 거의 말을 잇지 못했다.“사모님께서는 한때 푸대접을 받으신 적이 있지만 결국은 그림의 떡이 됐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그림의 떡...박연희는 흰 얼굴에 이 다섯 글자를 곱씹으며 허무하게 웃었다.그렇다. 그녀와 조은혁의 감정은 흡사 그림의 떡과도 같다.그녀는 줄곧 조은혁의 감정을 진짜라고 여겨왔었다.사실, 모두 그녀의 환상이었지만 말이다.오직 진범이만이, 오직 그녀가 10개월 동안 품어 태어난 진범이만이 진실한 것이다...박연희는 천천히 얼굴을 어린아이에게 밀착시켜 슬픔을 표했다. 이윽고 그녀는 장씨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번에 돌아오면 꼭 부탁할 게 더 있으니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장씨 아주머니는 속으로 원인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결국, 그녀는 그동안 오랜 시간 박연희를 봐주었으니 이 여자아이는 너무 많은 고생을 겪었고 큰 충격을 받지 않았더라면 절대 이런 낙담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장씨 아주머니는 박연희의 입에서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저에게
지난번 구치소에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항상 아쉬움으로 남았었다.이제 아무도 그들의 재회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사실 어려서부터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박연희는 작은 얼굴을 그의 가슴에 파묻고 가늘게 떨리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오빠, 왜 전에 나한테 말 안 했어? 왜 안 알려줬어!”만약 그녀에게 알려줬다면, 어쩌면, 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후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그토록 조은서를 좋아했는데.아마 현재의 그는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복수하고 난 후의 쾌감이 어떻게 평생의 긴 외로움을 상쇄할 수 있겠는가?그녀는 집안 원수든, 그녀의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의 아버지는 원래 썩어빠진 인간이기에 그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관심 없었다.그저 오빠만 행복하고, 영원히 그녀의 곁에서 함께 해주길 바랐다.그녀는 박연준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한편, 박연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박연희를 달래주었다.“연희야, 이 세상에 후회 약은 없어. 만약 있다면 내 모든 생명과 바꿀 의향은 있어. 그렇게 된다면... 조은서에게도 그렇게 많은 아쉬움이 없을 것이고 너도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아마도 그녀의 곁을 지킬 수 있겠지. 은서의 변호사가 되고 은서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거야. 애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항상 내 자리가 있을 거야. 은서의 아이도 날 보면 연준 아저씨라고 다정하게 불러주겠지...”그러자 박연희는 눈을 치켜뜨고 눈물로 희미해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오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았어.”박연희는 핸드백에서 박연준의 이름으로 된 항공권을 꺼냈다.그 순간 박연준은 넋을 잃고 말았다.박연희는 연약한 몸을 추스르며 오빠에게 미소를 지었다.“오빠, 외국에 가서 살아. 스위스! 오빠 스키 제일 좋아하잖아. 얼마나 좋아.”그러자 박연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불렀다.“박연희.”박연희는 가늘게 입술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