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졌다.검은색 세단은 깊어진 밤에 녹아들어 방유설의 앞에서 사라졌다. 붉은 라이트는 마치 폭죽같이 멀리 사라져버렸다.“조우현... 보고싶어.”방유설은 그곳에 멍하니 서서 중얼거렸다. 무릎의 상처가 또 벌어져 피가 새어 나와 회색 시멘트를 적시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가슴 아픈 표정이 드리워졌다.그 순간, 차량이 멈춰 섰다.방유설은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입술로 겨우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갔다. 무릎에서 피가 나도, 조우현이 앞에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했어도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조우현을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비싼 세단, 그리고 그 안의 우아한 남자.그것을 떠올린 방유설은 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잘못을 한 아이처럼 서서 어른을 기다리고 있었다.조우현은 키가 거의 190이었다. 얼굴은 조각 같았고 몸에서 흘러내리는 기품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하지만 방유설은 그저 160짜리 아담한 키였다.방유설은 아주 많은 말을 했다. 하지만 모두 밤바람에 흩어져버렸다.결국 조우현이 고개를 돌렸다.그는 묵묵히 방유설의 손가락에 꽂힌 담배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다.“연예인 아니야? 연예인처럼 행동해야지. 네가 일진인데다가 남자의 돈을 후려치고 다니는 것을 알면 네 팬들이 얼마나 속상해하겠어?”조우현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다.“넌 네 팬들이 속상해해도 별 신경 안 쓰겠지. 너한테는 오직 돈이 목표니까 말이야. 그래, 너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진심이라는 것을 바랄 수 있겠어?”“아니야!”방유설이 해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차가운 조우현의 눈빛을 보더니 다시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얼른 담배를 버렸다. 마치 과거의 잔상들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었다. 마치 방유설에 대한 조우현의 증오심처럼 말이다.그 눈빛은 마치 쓰레기를 보는 것만 같았다....방유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는 고개를 툭 떨구고 입을 열었다.“우현아, 내가 아무리
한 시간이 지난 후, 검은색 세단이 천천히 조씨 가문 저택으로 들어갔다.189의 조우현이 차 문을 열고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갔다.새벽이었지만 조씨 가문 저택은 여전히 불빛이 환했다. 조은혁은 늦게 돌아오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인기척은 들은 조은혁은 체스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조우현을 보더니 웃음을 흘렸다.“이 저녁에 누구를 보러 간 거야. 만나긴 했어?”조우현은 외투를 벗어 소파에 홱 던진 후 가정부한테 얘기했다.“국수 한 그릇 준비해 줘요.”가정부는 조우현을 어릴 때부터 보면서 아껴왔기에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소고기 국수를 끓여주었다.조우현이 국수를 먹을 때 조은혁이 옆으로 와서 조우현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마치 대답을 기다리듯 말이다.조우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얘기했다.“기다리러 간 거 아니에요.”조은혁은 조우현이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조은혁이 알아본 결과 방유설이 확실히 잘못하긴 했으니까 말이다. 그때 조우현에게 있어서 농구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그러니 방유설은 큰 잘못을 한 거다.조은혁이 얘기했다.“너 이 자식, 만약 아직도 그 여자를 좋아한다면 팔을 내어주고 사랑을 쟁취한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하지만 그게 계속해서 마음에 걸린다면 두 사람 사이는 여기까지인 거야. 그만 손 놓을 때가 된 거라고.”말을 마친 조은혁은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정신 차려! 계속 이렇게 있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아. 요즘 네 엄마도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있어. 안 말해도 알아, 다 네 걱정 때문이야. 죽도록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냥 놓아줘.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정 안 되면 우리가 선을 봐주면 되지.”...조우현은 담담한 말투로 얘기했다.“알겠어.”조은혁은 그저 웃었다.“너도 정말... 사랑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사랑에 잡혀서 이렇게 고생할 줄은 몰랐어.”...조우현은 대답하지 않았다.샤워를 마친 후 그는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정신
룸에는 조우현 외에도 10여 명이 있었다. 분위기는 매우 화끈했다.홍이현을 제외하고, 조우현과 방유설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 재벌 2세들은 방유설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방유설이 이곳에서 가장 예뻤기에 그녀를 붙잡고 계속 술을 먹이기도 했다.와인 세 잔이 그녀의 앞에 놓였다.명재호가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20억을 쓰더니 와인을 가리키면서 방유설에게 얘기했다.“투자가 필요하다며? 이걸 다 마시면 이 수표를 가져가도 좋아. 내가 투자하는 거니까.”와인 세 잔을 다 마시면 만취가 되어 꽐라가 될 것이다.홍이현이 웃으면서 얘기했다.“유설이랑 계속 얘기하셔야 하잖아요. 이건 제가 마실게요. 그리고 3잔 더 마실게요, 어때요?”말을 마친 홍이현이 잔을 가져와 와인을 부었다. 하지만 홍이현이 마시려고 하자 명재호가 그녀를 막았다.그리고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했다.“내가 원하는 건 방유설이야. 네가 이 술을 마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홍이현은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 걱정했다. 방유설이 이 술을 다 마신다면 응급실에 실려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평소에 방유설에게 엄격하다고 하지만 방유설을 아끼는 것도 진심이었다.하지만 방유설이 얘기했다.“마실게요.”홍이현이 미간을 찌푸렸다.“너무 무리하지 마.”명재호는 훼방 놓는 홍이현을 내쫓아버렸다. 홍이현은 문 앞에 가로막힌 채 방유설의 이름을 불렀다. 방유설이 지금이라도 후회한다면 바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방유설은 웃으면서 얘기했다.“투자받으려고 온 거잖아요.”그렇게 말하는 방유설은 가슴이 아팠다. 조우현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지난날 동안 적지 않은 술자리를 거쳐왔고 수많은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길가에서 토하고 운 적도 많았고 추태를 부린 적도 많았다. 다만 오늘처럼 난감한 날은 처음이었다.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조우현은 그녀를 미워한다.그리고 이미 그녀를 더러운 걸레로 본다.그러니 지금 와서 거절한다고 해봤자 투자를 받을 기
룸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처음에는 누군가가 비속어를 내뱉었지만 그 상대가 조우현인 것을 알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조우현은 천천히 일어나서 그 와인 자국을 밟고 방유설 앞으로 왔다.그는 방유설을 내려보았다.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속눈썹마저 와인으로 물든, 하얀 쇄골에 붉은 와인이 고인,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방유설을 보면서 조우현은 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더니 방유설을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원하는 게 이런 생활이야? 즐거워? 돈 때문에 이렇게 짓밟히는 게 좋아?”방유설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사람들은 조우현과 방유설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눈치챘다.명재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우현 씨가 원한다면 방유설은...”“나한테 주려고요?”조우현은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네가 뭔데 내 여자를 양보한다는 식으로 얘기해?”명재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는 이 바닥에서 조씨 가문과 유씨 가문 사람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조우현은 다른 사람들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새 와인 몇 병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 자리의 사람들은 다 눈치가 빨랐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다.모델들은 얼른 와인을 자기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방유설 같은 꼬락서니가 될 때까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유설이 나중에 복수하러 올 것만 같았다.이제는 남자들의 차례였다.명재호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와인병을 들어 머리를 깼다. 붉은 피가 그의 머리에서 흘러내렸다.하지만 웃는 얼굴로 방유설에게 얘기했다.“제가 몰라뵀군요. 죄송합니다. 나중에 사죄의 의미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방유설은 명재호가 이러는 게 조우현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볍게 대답했다.“괜찮아요.”명재호는 조우현의 눈치를 보았다. 조우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안고 방유설을 데려갔다....조우현은 방유설을 데리고 룸을 나섰다.홍이현은 밖에서 소리를 듣더니 놀랐다. 방유설은 이미 엉망진창이
주차장은 너무도 추웠다.조우현은 검은 세단의 문을 열고 방유설에게 얼른 타라고 눈짓했다.방유설은 와인으로 물든 옷 때문에 조우현의 차를 더럽힐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조우현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약간 불쾌해하면서 얘기했다.“타.”방유설은 그제야 조심스레 차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차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애썼다.그리고 조우현도 차에 탔다. 안전벨트를 매는 소리를 들으며 방유설은 놀라서 조우현의 귓가에 물었다.“우리 어디 가?”조우현은 안전벨트를 매고 고개를 들어 검은 눈동자로 방유설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대답했다.“호텔로 가. 왜, 연예계에서 굴러먹으면서 아직도 배운 게 없어? 내가 남자를 가르쳐줘야 하는 거야?”“난 그런 적 없어.”방유설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조우현은 자리에 앉아 앞을 보면서 무표정으로 얘기했다.“관심 없어.”방유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호텔로 향하는 길,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은 적막만이 흘렀다.10분 후, 세단은 5성급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다.차가 멈춘 후, 조우현은 고개를 돌려 방유설을 보면서 담담하게 얘기했다.“지금이라도 후회되면 가.”방유설은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술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더러워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예뻐 보였다.방유설은 아직 젊고 아름다웠다.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조우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문을 열고 내린 후 방유설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가 가장 좋은 방을 달라고 했다.프론트의 직원은 방유설을 보면서 연예인이 안타깝게 되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눈치는 빨랐기에 얼른 1박에 1300만인 스위트룸을 잡아주었다.조우현이 담담하게 얘기했다.“3개월로.”직원은 깜짝 놀랐다.3개월이면 거의 12억이다. 12억이면 집을 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길래 이러는 거지?’하지만 굴러들어 온 호박을 찰 수는 없다. 직원은 공손한 말투로 얘기했다.“그럼 할인해 드리겠습니다
방유설은 호텔 가운을 걸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가운이 헐렁하게 걸쳐져 그녀의 가늘고 작은 체형이 더욱 돋보였다. 침실에는 밝은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조우현은 옆 욕실에서 씻고 나와 넓은 침대 머리에 기댄 채, 호텔에서 준비해 준 잡지를 대충 훑어보고 있었다. 호텔 가운 대신 검은색 바지만 입고 있으니 그의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가 돋보였다. 방유설은 그의 몸에 맺힌 물방울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침대를 짚고 조심스럽게 그의 곁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기억을 더듬어 몸을 기울여 그의 입술을 조심스레 찾아갔다. 그러자 커다란 손이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며 자신의 쪽으로 강하게 당겼다. 곧바로 뜨거웠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방유설의 마음속에 다시 꽃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조우현의 반복된 욕망 끝에 둘은 몇 번이고 파도를 탔다. 모든 게 끝났을 때는 새벽 두 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방유설은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조우현은 여전히 체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들어가더니 샤워를 하고, 호텔에 들어설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방유설은 부드러운 이불을 몸에 두르고 그가 셔츠의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우현은 당장이라도 떠날 사람 같았다. “지금 가려고?” 방유설이 본능적으로 물었다. 크리스탈 조명이 조우현을 비췄다. 조우현은 모든 일을 끝낸 것처럼 시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난 여기서 잠을 자지 않을 거야.” 방유설의 조그마한 얼굴에는 실망감이 드리웠다. 하지만 그녀는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일어나 배웅하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조우현은 그녀의 난처한 표정을 발견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배웅하지 않아도 돼. 내일 천천히 일어나서 떠나. 다음에 전화할게.” 이윽고 조우현은 방유설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자신의 번호를 입력한 뒤 전화를 걸어 저장까지 해두었다. 그러나 곧 자책의 표정을 지었다. 방유설
아주머니는 상황을 바로 눈치챘다. “조우현이구나! 안 그래도 너희 할머니가 계속 그 아이 얘기를 하시던데.”방유설은 억지로 미소 지었다. 아주머니는 방유설의 표정에서 두 사람이 행복한 연인 같지 않음을 느꼈다. 아무리 방유설네 가족과 친밀하게 지낸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고용된 입장이었기에 아주머니는 더 이상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방유설은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아주머니의 말을 곱씹었다. 할머니는 조우현을 알고 계신다.방유설과 할머니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살아남기도 힘든 상황에서 방유설은 할머니에게 매일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좋은 남자가 한 명 있어요. 조우현이라는 사람인데, 지금은 유학을 갔어요. 그 애가 돌아오면 우리는 결혼할 거고 우리 집도 더 행복해질 거예요.” 시력을 잃은 할머니는 조우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미소를 지으셨다. 조우현,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방유설은 씻고 난 뒤 할머니 방으로 갔다. 그녀는 돈을 벌어 지금의 47평 아파트를 빌렸고, 대형 테라스가 있는 가장 좋은 방을 할머니께 드렸다. 그러면 아주머니가 시력을 잃은 할머니를 돌보기도 편하니까 말이다. 아침이 되면 아주머니는 늘 할머니의 용모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햇볕을 쬐게 해드렸다. 할머니는 방유설이 밤새 집에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술을 많이 마신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방유설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걱정하며 나무라셨다. “돈은 먹고 살 정도면 돼. 왜 그렇게 무리하니! 우현이도 아직 안 돌아왔잖아. 그 애가 돌아오면 너희 결혼도 하고 애도 둘 정도 낳아." 방유설은 가슴이 저려왔다. 그녀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반쯤 웅크린 채 무릎에 얼굴을 대었다. 조우현은 방유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전날 밤 침대에서 조우현은 방유설을 룸살롱 여자 대하듯이 대했으며 어떠한 감정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성인 남녀 간의 본능적인 욕망만 남아 있었다. 피임도 철저히 했으며 모든 것이 끝난 후 방유설에게는
홍이현은 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방유설과 조우현이 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실 방유설 같은 순진한 아이는 연예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가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된다면, 홍이현은 그저 방유설이 자신을 잊지 말아 주길 바랐다. 하지만 조우현이 진심으로 방유설을 아끼기 전까지, 방유설은 아마 몇 번이고 더 마음 아파해야할 것이다.홍이현은 교활하게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모든 것을 조우현에게 투명하게 내보일 생각이었다. 만약 조우현이 방유설에게 진심을 주지 않는다면 방유설은 조우현이 그녀에게 준 3개월 치의 돈으로도 평생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연예계에서 오래 굴러온 홍이현은 온갖 더럽고 치사한 일들을 보아왔다. 그런 그녀는 문득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방유설이 괜찮은 삶을 살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조우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방유설은 휴대폰을 움켜쥔 채 조용히 말했다. “촬영장에서 일이 조금 생겨서요. 아마 호텔로 못 갈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조우현은 얼굴이 굳었다. 그는 마침 근처에서 일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조우현은 바로 방향을 틀어 촬영장으로 향했다. 그 시각, 홍이현은 방유설과 여배우의 갈등 한가운데에 있었다. 감독은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여배우를 의식하며 편을 들어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연기는 진지하게 해야 해요. 대본에 있는 건 진심으로 표현해야죠.” 감독의 말에 홍이현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요! 그럼 당신이 한번 직접 연기해 보든가, 아니면 저 아줌마한테 해 보라 그래요!” 감독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조금 더 예의를 차리세요.” 그러나 홍이현은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예의? 우리 유설이가 뒷배가 없다고 이렇게 무시하는 거죠? 뭐, 저 늙은이는 B급이지만 그래도 연예계에서는 공주라 이거죠? 좋습니다. 두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
진석은 조은희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눈치챘다.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조은희의 얼굴을 감싸안고 입을 맞췄다.“너와는 결혼 첫날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지! 게다가 방금 술을 마셨으니까 오늘은 아마 어려울 거야. 너에게 더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해.”조은희는 얼굴이 빨갛게 변했고 진석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참 묘했다!예전에는 그저 감정에서 비롯된 관계였고 항상 예의를 지키며 선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한 침대에 누워 서로의 몸이 밀착된 채로 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조은희는 적어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마음을 알아채고 그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며 부드럽게 속삭였다.“나도 처음이야! 결혼 첫날 밤을 준비하기 위해서 미리 배워둘게.”조은희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책을 보거나 동영상을 본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냥 진석의 품에 몸을 맡겼다.햇살이 창문 틈새로 스며들기 시작할 때쯤, 진석은 조용히 일어나 집을 떠났다. 조은희의 집이었기에 그 잠깐의 온기는 이미 지나쳐버린 상태였다...그들은 예전에는 갑자기 헤어졌지만, 지금 다시 함께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져 조은희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확실히 진석과 다시 함께하게 되었고 결혼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있었다.그들은 연애를 건너뛰고 바로 결혼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조은희는 조금 망설였다...조진범은 레드 와인을 손에 들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사실 일찍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적어도 아이도 일찍 낳고 그 후엔 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테니.’진안영은 말했다.“아이를 낳으면 둘만의 시간은 더 이상 없지 않을까요?”조우현이 답했다.“다시 만난 연인들은 가장 먼저 혼인신고를 한다고요. 그게 아니면 후회할 거예요. 많은 시간을 허비할 테니까요. 사실 처음에 부소연과 결혼해야 했어요.”오빠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은희는 그 말
진석은 예의 있게 조은혁을 호칭했다.“아버님.”조은혁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고 가볍게 기침하며 조은희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먼저 올라가라. 네 엄마가 네가 돌아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마 할 얘기가 있을 거다.”조은희는 처음엔 가만히 있었고 진석은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밀면서 말했다.“먼저 올라가.”조은희는 그제야 움직였고 조은혁 옆에 다가갔다. 집에서 막내딸인 조은희는 가장 애교가 많았고 조은혁을 안고 인사한 후 아쉬운 듯 올라갔다.조은혁은 작은 딸을 안자 화난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리더니 진석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앉아서 얘기해.”진석은 즉시 자리에 앉아 조은혁에게 차를 따랐고 조은혁은 일부러 그를 자극하는 듯한 말을 던졌다.“눈치가 빠르네.”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버님 앞에서는 실수하지 않으려 합니다.”조은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는 이제 두 사람이 다시 함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여전히 아버지로서 딸의 미래를 걱정했다.“은희와 만나고 싶다면 지금은 조건은 없어. 하지만 요구 사항은 몇 가지 있네.”진석은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은혁은 진석의 태도를 만족스러워했지만, 하는 말은 전혀 봐주지 않았다.“첫째, 결혼을 하게 되면 은희는 너의 집에 가지 않고 결혼식과 생활은 모두 B시에 있어야 해. 둘째, 조씨 가문은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없으니 결혼 때 충분한 축의금을 줘서 편하게 생활하게 할거야. 하지만 네가 결혼 후 벌어들인 모든 돈은 은희와 공동 재산으로 해야 하며 은희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간섭할 수 없어. 또한 아이를 가질지 안 가질지 은희의 선택을 존중해야 해.”이 조건들은 모두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그렇지만 진석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할 수 있습니다.”조은혁은 더 이상 그를 어렵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진석을 보며 잠시 마음을 정리했다.사실 그도 같은 도시에서 사업을 하며 진석이 처음부터 얼마나 힘들었을
하지만 조은희는 그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고 눈물이 맺힌 채 애처롭게 다시 물었다.“결혼했어요?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저를 좋아해요?”그녀가 물었을 때 처음보다 조금 더 고집스러워졌고 그 모습에 진석은 마음이 아팠다.진석은 그들이 헤어졌을 때 조은희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하지만 지금 조은희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며 진석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용감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 아팠다.진석은 더 이상 조은희를 놀리지 않았다.그는 조은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결혼 안 했고 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약혼녀는 다리 치료를 마친 후 올 상반기에 결혼할 거야. 아직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조은희의 눈가는 더욱 붉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게 제가 진석 씨와 사귀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진석은 한 걸음 다가가 그녀 눈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조은희는 눈물이 많은 여린 여자가 되었다. 그는 예전 조은희가 항상 웃고 뒤에서 그를 끌어안으며 ‘진 선생님’이라고 달콤하게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때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을 시작했다. 그 후 조은희는 해외로 떠났고 진석은 B시에 남았다. 그 뒤 1년 동안 진석은 조은희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해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먼저 유혹한 것도 조은희였기에 더 화가 났다.하지만 그가 나중에 생각하니 조은희는 겨우 20살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첫사랑이었고 그녀의 청춘 그 전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진심으로 진석을 사랑했기에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진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알겠지? 우리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어야지. 도서관도 지어야 하잖아. 그곳도 우리가 갔던 곳이었지.”그는 조은희가 대답하기 전에
순간 조은희의 생각이 멈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조은희는 진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그가 굳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진석은 그녀를 차에서 이끌어 내리고 있었다.학교에서 준비한 식당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과거에 조은희가 진석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별도로 방을 예약하지 않았었다.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으니 묘한 감회가 밀려왔다.진석과 조은희는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185cm인 남자와 170cm인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조합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 사이의 과거를 아는 학교 관계자들은 자연스럽게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조은희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띠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어린 시절엔 철이 없었죠.”반면 최근 몇 년간 사업을 통해 단련된 진석은 여유로운 미소로 담담하게 응대했다.“과거의 인연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것으로 보여요.”그 말이 나오자 학교 관계자들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진석이 조은희 때문에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 1억이 전부 조은희 덕분이었기에 학교 관계자들은 일부러 조은희를 진석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조은희에게 음료만 권하면서 농담을 건넸다. “잠시 후 진석이 취하시면 조은희가 집에 데려다줘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잖아.”조은희는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탁자 아래로 내려간 그녀의 손이 진석의 손에 잡혔다.진석의 손길은 매우 부드러웠고 남녀 간의 감정이 담긴 것 같지 않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듯 따스한 느낌이었다.조은희의 붉은 입술이 약간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후 손을 빼냈고 진석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먼저 한 잔을 마셨다.교장은 여전히 예전의 그 교장이었고 진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깊은 감회에 잠긴 듯 말했다.“많이 변했구나.”감상적인 분위
그날 밤 조은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조은혁은 그 시간 동안 새로 들인 취미인 거북이들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늙으니까 이런 거나 만지고 있지.” 그날 밤 조은혁은 거북이들을 모두 방생하며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들었다. 심지어 한 마리 거북이 등에 ‘진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며 괜히 화풀이도 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유치하다며 혀를 찼다. 조은희는 이 모든 일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며칠째 자신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보라며 걱정하고 있는 것만 알았다. 일주일이 지나며 휴가가 끝났고 조은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 수업을 맡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진석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일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 해 질 녘이었다. 조은희는 차 열쇠를 챙겼다. 차를 몰고 가 간단한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보며 먹을 계획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단순했고 굳이 그것을 깰 생각도 없었다. 며칠 전에 그 일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조은희의 얼굴은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 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야.” 그 목소리는 진석이였다. 조은희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곳에 서 있는 진석을 보았다. 그는 몇몇 교직원들과 함께 기부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은희는 학교의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부를 논의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조은희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석의 눈빛은 깊고도 복잡했다. 이 학교는 그들이 과거에 함께 있었던 곳이었
휴게실에서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안겨 억눌린 채로 울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가서 말해줄게요.” 조은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언니를 대역죄인이라고 할 거예요.” 진안영은 잠시 멈칫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 “진범 씨가 도와줄 거예요.”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더욱 몸을 기댄 채 계속 울었지만 오늘이 조우찬의 첫돌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니까.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이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진안영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문 열어볼게요.” 진안영이 문을 열었을 때 예상대로 문밖에는 진석이 서 있었다. 진안영은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두 분이 얘기하세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안영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 안은 여전히 조은희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녀는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까? 아니면 이 몇 년 동안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던 걸까? 진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5년 동안 떨어져 지낸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들이 처음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만남 이후 바로 헤어졌으니까. 조은희는 그때 겨우 18살의 어린 소녀였고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소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 조은희는 그를 품에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처음엔 진안영인 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안영의 허리는 이렇게 강건하지 않았다. 분명히 남자의 허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온화한 듯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