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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9화

Author: 류한나
은서우는 반나절 동안 사무실에서 짐을 정리하는 동안 환자의 예약을 한 건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은서우는 낙담하지 않았다.

은서우는 그저 첫날이나 이런 것일 뿐이라고, 앞으로는 점차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퇴근 시간이 돼서 퇴근하려던 참에 간호사가 은서우의 진료실 문을 벌컥 열었다.

“은 선생님, 지금 시간 되세요? 방금 큰 화상을 입은 환자가 들어왔어요!”

은서우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하지만 전 외과 의사가 아닌걸요...”

은서우는 내과를 전공했고 주로는 심장과 세포를 연구해왔다. 외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간호사도 그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저 환자는 나이가 어리고 위급한 상태에요. 은 선생님을 제외하고도 외과 의사가 몇 명 더 있긴 한데 두부는 이미 퇴근하셨고 나머지 세분은 환자를 봐줄 시간이 없으세요.”

간호사의 말을 들은 은서우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저랑 같이 가죠.”

간호사가 은서우와 함께 밖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그들은 한 엄마가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은서우가 다가가기도 전에 그 엄마는 은서우가 걸친 흰색 가운을 보자마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달음에 달려와 간절하게 빌었다.

“의사 선생님, 선생님 제발 저희 딸 좀 살려주세요!”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시겠어요?”

아이의 엄마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설명했다.

“전 그냥 잠깐 밖에 나갔다 올 생각으로 가스 불을 끄지 않고 나갔어요. 잠깐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보니 집이 모두 불에 타버렸어요. 저희 딸은 다행히 구조되었지만 전신 화상을 입었고 응급실에 실려 왔지만 봐줄 의사가 없어요.”

은서우는 곧바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지만 결코 좋지 못했다.

아이의 화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지금 상태로 봐서는 큰 면적의 피부 이식도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은서우는 내과 수술을 할 수 있었지만 이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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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서우는 종이 한 장을 뽑아서 아이의 엄마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아니에요,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는 게 의사가 해야 할 일인걸요. 전 그냥 의사로서 의무를 다한 것뿐이에요.”아이의 엄마는 몇 번이나 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서야 떠났다.은서우는 뭉친 근육을 풀며 이번 일은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되는 줄로만 알았다.그런데 바로 다음 날, 아이의 엄마가 은서우에게「현호제세」가 적힌 페넌트를 보내왔다.그 소식에 병원 전체가 들썩였다.은서우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이 빨개진 얼굴로 간신히 환자와 가족을 배웅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병원 식당에 갔을 때 또 한 번 놀림을 당하고 말았다.“듣자 하니 은 선생님께서 아침에 페넌트를 받았다고요? 새 병원에 오자마자 첫날부터 화제성을 몰고 다니다니, 대단한걸요!”“어제 홀로 외과 수술을 진행했다던데, 진짠가요?”은서우는 마지못해 그 사람들에게 해석했다.“저 혼자서 진행한 게 아니라 가르쳐주신 분이 계셨어요.”하지만 그 말에 곧바로 뒤따라오는 대체 누가 도와줬냐는 물음에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사람들은 대답 없는 은서우에게 재차 물어보았지만 대답해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내 흥미를 잃었다.은서우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비록 사람들이 저에 관한 관심은 모두 선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이 벅찬 선의가 악의보다 은서우를 더 난감하게 만들었다.은서우는 그 일이 있고 난 후 병원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유명해져서 좋은 점이라면, 당연히 그녀를 찾는 환자들이 눈에 띄게 급증했다는 것이었다.갑자기 늘어난 환자에 은서우는 더는 유유자적하지 못했고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쳐야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밥을 먹고 씻고 나와서는 다른 걸 할 기력도 없이 바로 잠들어버렸다.물론 병원에서 진상 환자들을 만나는 일도 적지 않았지만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다.무엇보다 지금 병원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경성의 병원보다 훨씬 좋았다. 만약 지나치게 진상을 부리는 환자가 나타나면 병원 동료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89화

    은서우는 반나절 동안 사무실에서 짐을 정리하는 동안 환자의 예약을 한 건도 받지 못했다.하지만 은서우는 낙담하지 않았다.은서우는 그저 첫날이나 이런 것일 뿐이라고, 앞으로는 점차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퇴근 시간이 돼서 퇴근하려던 참에 간호사가 은서우의 진료실 문을 벌컥 열었다.“은 선생님, 지금 시간 되세요? 방금 큰 화상을 입은 환자가 들어왔어요!”은서우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하지만 전 외과 의사가 아닌걸요...”은서우는 내과를 전공했고 주로는 심장과 세포를 연구해왔다. 외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간호사도 그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하지만 저 환자는 나이가 어리고 위급한 상태에요. 은 선생님을 제외하고도 외과 의사가 몇 명 더 있긴 한데 두부는 이미 퇴근하셨고 나머지 세분은 환자를 봐줄 시간이 없으세요.”간호사의 말을 들은 은서우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지금 저랑 같이 가죠.”간호사가 은서우와 함께 밖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그들은 한 엄마가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은서우가 다가가기도 전에 그 엄마는 은서우가 걸친 흰색 가운을 보자마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달음에 달려와 간절하게 빌었다.“의사 선생님, 선생님 제발 저희 딸 좀 살려주세요!”“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시겠어요?”아이의 엄마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설명했다.“전 그냥 잠깐 밖에 나갔다 올 생각으로 가스 불을 끄지 않고 나갔어요. 잠깐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보니 집이 모두 불에 타버렸어요. 저희 딸은 다행히 구조되었지만 전신 화상을 입었고 응급실에 실려 왔지만 봐줄 의사가 없어요.”은서우는 곧바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지만 결코 좋지 못했다. 아이의 화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지금 상태로 봐서는 큰 면적의 피부 이식도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은서우는 내과 수술을 할 수 있었지만 이는 그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88화

    다음날 은서우는 새로운 병원에 출근했다.은서우는 인명진의 소개로 새로운 병원에 온 탓에 원장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인 원장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는데 동행하신 걸 보면 많이 아끼시는 분인가 봐요?”이 원장은 그저 가벼운 농담에 인명진이 진짜로 고개를 끄덕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네, 은서우 씨는 제가 많이 아끼는 의사죠. 은서우 씨는 제가 이 원장님에게 통화로 알려드린 것처럼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사람이에요. 단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우리 병원에서 계속 근무할 수 없게 된 것뿐이죠. 오늘부터는 이 병원 의료진이니 부디 제 소중한 후배를 잘 대해주세요.”인명진은 전례 없이 진지했다.이 원장은 잠깐 놀란 듯했으나 이내 둘에게 웃어 보였다.두 원장의 대화는 그 어느 때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순식간에 은서우의 입사에 관한 일들이 결정 났다. 하지만 은서우는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은서우의 머릿속에는 아까 인명진이 했던 말로 가득 찼다.‘후배? 난 저 사람에게 그저 후배에 불과하구나...’사실 맞는 말이었다. 둘은 원래부터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고 인명진이 은서우를 곁에 뒀던 것도 그저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태 은서우의 일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 것도 역시나 아끼는 후배를 챙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인명진은 그저 원장의 책임을 다한 것뿐이었다.하지만 은서우가 다른 병원으로 옮긴 이상 인명진은 더는 은서우의 원장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둘을 이어주던 마지막 하나 남은 연결고리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은서우는 새로운 병원에 입사한 설렘으로 열정을 불태우기도 전에 찬물을 확 끼얹은 느낌이었다.인명진도 일이 바빴기에 은서우를 새 병원에 데려다주고 곧장 경성으로 돌아가야 했다.은서우는 인명진을 배웅하러 나갔다.은서우는 인명진이 떠나기 전까지 간신히 참고 또 참았던 말을 그가 정말로 떠나기 전에 결국 뱉어버렸다.“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해도 되나요?”인명진이 잠시 멈칫하자 은서우는 다급히 해명했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87화

    은서우는 냄비에 있던 요리를 그릇에 옮겨 담다가 그만 손이 데고 말았다.“스읍”놀란 은서우는 들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았다.“왜 그래요, 손을 다친 거예요?”인명진이 다급하게 다가와 은서우가 내려놓은 음식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은서우는 손을 뒤로 숨기고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찬물에 씻으면 돼요.”하지만 인명진은 단호한 태도로 은서우의 손을 확인하려고 잡아당겼다. 은서우는 내키지 않았지만 인명진을 더 말릴 수 없어 머뭇거리며 그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은서우는 피부가 아주 하얀 사람이었는데 그 탓에 아무리 작은 상처가 생겨도 일단 생기면 감추기 어려웠다.인명진은 화상을 입어 붉어진 은서우의 손가락을 보고는 순간 정색을 해버렸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상처를 살피는 인명진은 더없이 날카로워 보였다.“죄송해요, 일부러 숨기려던 건 아니었고 이 정도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인명진은 수도꼭지를 틀고 은서우의 손가락을 흐르는 물에 씻었다.“일단 다치면 절대 별거 아닌 게 아니에요. 의사라는 사람이 그 정도 상식도 없어요?”인명진은 은서우를 따끔하게 꾸짖으며 쏘아붙였지만 은서우를 향한 걱정과 관심만은 숨겨지지 않았다.그래서인지 은서우는 민망한 것도 잠시, 인명진의 진심 어린 마음을 느끼자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졌다.마침 고개를 돌린 인명진은 그 모습을 봐버렸다.은서우는 깜짝 놀라 다급히 손을 거두며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감사해요.”은서우는 부리나케 인명진에게서 떨어져 황급히 화상 방지 장갑을 끼고는 조금 전에 내려놓았던 음식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인명진의 검고 빽빽한 속눈썹 아래 까만 눈동자는 은서우의 손가락에 남은 열기를 보아내기라도 하듯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고 어딘가 모를 미련도 남아있는 것 같아 보였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인명진은 순간 가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인명진은 걷잡을 수 없이 제멋대로 노는 감각이 달갑지 않았다.인명진은 수도꼭지를 틀어 아까 은서우의 손가락을 씻겨주던 것처럼 찬물에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86화

    은서우는 빼곡하게 들어선 노점과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도착한 생선 코너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싱싱한 농어 한 마리를 샀다.그리고 채소 코너에서 신선한 시금치, 감자와 표고버섯을 샀다. 그리고 파, 생강, 마늘과 같은 재료들도 잊지 않고 샀다.집에 돌아온 은서우는 서둘러 앞치마를 두르고 사 온 식자재들을 하나하나 깨끗하게 씻어 정리하였다.은서우가 농어를 손질하려고 할 때 인명진이 주방에 들어왔다.“제가 도울 게 있나요?”인명진이 묻는 말에 은서우는 조금 놀란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원장님이 요리할 줄 아세요?”인명진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조금요. 아무리 그래도 은서우 씨 혼자 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그 말을 들은 은서우는 마음이 따뜻해졌다.“너무 좋죠. 그럼 원장님께서는 채소를 썰어주시겠어요?”은서우의 말을 들은 인명진은 손을 깨끗이 씻고 칼을 집어 들어 익숙하게 감자채를 썰기 시작했다.인명진이 썬 감자채는 두께가 일정했고 은서우는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원장님 실력이 대단하신데요!”인명진은 그저 겸손하게 웃었다.“예전에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할 때 직접 요리를 하면서 실력이 늘었어요.”두 사람은 신속하게 역할을 분담했다.농어 손질을 맡은 은서우는 먼저 생선에 칼집을 내고 맛술과 생강 조각을 넣어 비린내를 제거했다.반면 인명진은 옆에서 시금치와 표고버섯을 깨끗하게 씻어 정갈하게 썰었다.농어의 비린내를 빼는 동안 은서우는 또 다른 양념을 준비했다.인명진은 다 썰어놓은 감자채를 물에 담가서 변색하는 것을 막았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자 은서우는 달궈진 냄비에 적당한 양의 기름을 부었다.기름에서 작게 연기가 피어오를 때쯤 은서우는 비린내를 제거한 농어를 천천히 냄비에 넣었다. 농어가 기름과 닿을 때 나는 지글거리는 소리가 주방을 가득 채웠다.은서우는 냄비 손잡이를 안정적으로 쥐고는 생선의 두 면이 모두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구웠다. 그리고는 진간장, 양조간장과 설탕 등의 양념들을 넣고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85화

    은서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는 옷가지들과 개인물품들을 차곡차곡 캐리어에 넣었다.그때,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은서우는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인명진이었다.“준비가 다 됐나요?”인명진이 넌지시 물었다.은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거의 다 됐어요. 원장님께서 수고가 많으세요.”방에 들어선 인명진은 캐리어를 발견하고는 별다른 말 없이 캐리어를 들었다.“괜찮으니까 이제 가죠.”은서우는 인명진을 따라 호텔 방을 나섰다.인명진은 주차장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은서우가 차에 탈 수 있도록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은서우는 차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고 인명진도 차에 시동을 걸었다.은서우가 먼저 입을 열어 차 안의 침묵을 깼다.“원장님께서 저에게 주신 도움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려요.”“자꾸 감사하다고 하지 않아도 돼요. 그쪽의 일은 제가 이미 다 말해놨어요. A도시는 생각보다도 더 괜찮은 도시고 곧 가게 될 병원의 분위기도 아주 좋을 것이니 그곳에서 열심히 해보세요.”“네...”드디어 A도시에 도착했다.인명진은 은서우가 지내게 될 숙소 근처로 은서우를 데려다주었다.그곳은 주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교통도 편리한 쾌적한 동네였다.인명진은 곧바로 은서우의 짐을 그녀의 새로운 숙소로 옮겨주었다. 방안은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물씬 감돌았고 웬만한 건 다 갖춰져 있었다.“너무 완벽해요, 원장님.”은서우가 잔뜩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인명진은 방을 빙 둘러보고는 말했다.“컨디션 회복이 먼저니까 일단 쉬세요. 그리고 내일 출근할 때 저랑 같이 가서 업무절차와 병원 환경을 숙지하도록 해요.”은서우는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원장님께서 왜 저랑 같이 가시는 거죠? 경성에 병원 일도 엄청 바쁘실 텐데 저 때문에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거 아닌가요?”인명진은 작게 웃으며 은서우에게 설명해주었다.“사실 저도 이곳에 수술 일정이 잡혀있거든요. A 도시의 바로 이 병원에서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84화

    경찰의 말을 들은 연희진은 그제야 울음을 그쳤지만 눈동자에 서린 불안과 불만은 여전했다.그 시각 경찰서의 다른 한 곳에는 은서우가 앉아있었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은서우의 심정은 잔뜩 흐린 날씨만큼이나 심란하고 우울했다.은서우의 머릿속에는 지난날 소씨 가문과 얽힌 수많은 갈등이 스쳐 지나갔다. 소씨 가문으로부터 멸시받고 협박받았던 아픈 기억들이 봇물 터지듯 은서우의 머릿속을 가득 점령해버렸다. 차마 형언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감각은 점점 더 선명해져 은서우가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지게 만들었다.만약 경성에 더 머물렀다간 언제가 되든 탐욕스러운 소씨 가문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은서우는 천천히 핸드폰을 꺼내 이리저리 누르다가 인명진의 번호를 발견하고 멈추었다.은서우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전화를 걸었다.곧이어 핸드폰 너머로 차분하고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에요, 은서우 씨?”은서우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목이 멨으나 가까스로 울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연락 드렸어요. 소씨 가문에서 저에 대한 괴롭힘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제가 경성에 더 머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원장님께서... 다른 도시에 제가 일할 만한 곳을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 저는 이곳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어요.”핸드폰 너머 인명진의 침묵이 이어졌다.인명진은 잠깐의 생각을 마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은서우 씨의 지금의 마음을 이해해요. 은서우 씨가 그렇게 결정했다니 저도 도와야죠. 제가 다른 지역에 있는 의료협력 프로젝트와 인맥을 통해서 은서우 씨가 소씨 가문과 얽히지 않을만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서우 씨에게 적합한 직업을 찾아보도록 할게요.”인명진의 말을 들은 은서우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정말 감사드려요, 원장님. 원장님께서 이곳에 남아서 그들과 맞서라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렇게나 저를 지지해주실 줄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83화

    “만약 아드님께서 정말 정신질환을 앓고 계신다면 전문적인 감정을 거친 뒤 저희가 관련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소태훈 씨는 반드시 저희의 감시와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그 시각, 경찰서의 또 다른 방에는 조금 전에 제압당한 소태훈이 점차 이성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소태훈의 교활한 눈빛만은 숨겨지지 않았다.소태훈의 감시를 책임진 경찰은 한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경찰의 시선을 느낀 소태훈은 고개를 들고 일부러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경찰관님, 아까는 제가 갑자기 병이 도져서 그랬습니다.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저도 정말 저 자신을 통제하기 어렵습니다.”경찰은 차디찬 태도로 대답했다.“이제 곧 소태훈 씨가 말할 시간이 있으니 지금은 얌전히 있으십시오.”소태훈은 입을 삐죽이고는 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경찰은 은서우에게 전화를 걸어 연희진의 진술을 전해주고 진실 여부를 물었다.은서우는 전화기 너머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경찰관님, 그 사람은 완전히 반대로 말했습니다. 소씨 가문에서는 오래전부터 저에게 무차별적인 비난과 악의적인 압박을 가해왔고 그들의 가족 내부의 문제도 모두 제 탓으로 돌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신고해서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 것입니다.”경찰은 은서우의 말을 열심히 기록했다.“저희도 은서우 씨의 정황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가족 간 분쟁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은 전면적인 상황 파악이 필요합니다.”“그러니 은서우 씨께서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절대 일방적인 진술만 듣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고 사실과 법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그러니 은서우 씨께서도 부디 평정심을 유지하시고 사건 처리 과정에 불필요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소씨 가문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또 생기지 않게 주의해주십시오.”은서우는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감사합니다, 경찰관님.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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