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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6화

작가: 류한나
“전 치료 받지 않았어요.”

정미진은 크게 후회했다.

온갖 계산을 다 해가며 일을 꾸몄지만 결국 제대로 걸려든 사람은 본인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애초에 이런 짓을 왜 했을까?

“하지만 환자분 차트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요.”

“약은 먹지 않았고 링거도 다 버렸어요.”

정미진은 말할수록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는 의사조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정미진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치료받기 싫으시면 그냥 퇴원 수속 밟으세요. 집에서 지내는 게 나을 거예요. 약값도 아낄 수 있고 요즘 젊은이들 돈 벌기 얼마나 힘든데요. 게다가 소문나면 우리 병원 체면도 말이 아니거든요.”

“안 돼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제부터는 치료에 협조할게요.”

정미진은 순순히 의사의 의견에 따랐다.

입으로는 죽고 싶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죽음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살고 싶었다.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돈 걱정도 없고 배진호도 권다솔 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효자였다. 그녀가 죽게 되면 모든 게 끝나버리는 셈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지금의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일단 병실로 돌아가세요. 치료를 받으시려면 가족분께서 동의서를 작성하셔야 하고 저희 병원 측에서도 다시 조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의사는 그녀를 설득해 병실로 돌려보낸 뒤 이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다.

...

저녁, 배진호는 정관수술을 마쳤다.

잃어버린 아이를 떠올리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고통을 느꼈다.

아버지로서 아이를 지키지 못한 건 어쩌면 그의 잘못이었다. 그는 남은 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권다솔이 전화를 걸어왔다.

권다솔?

배진호는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번호였다.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다솔 씨, 이제야 저한테 연락하는 거예요?”

“전 그냥 월요일에 이혼 절차를 마치러 가는 걸 잊지 말라고 전하려던 것뿐이에요.”

그녀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임신 사실을 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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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진호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남태건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날 어떻게 괴롭히든 괜찮다 쳐. 하지만 다솔 씨를 건드리는 건 절대 용서 못 해.”그는 남자의 주먹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쓰여야지 여자를 괴롭히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배진호는 원래 며칠간 권다솔을 따라다니며 남태건에 대해 관찰할 생각이었다. 만약 남태건이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남자라면 그만 물러날 각오도 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남태건이 무슨 짓을 한 거지?만약 배진호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 이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아무리 주먹을 날려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그녀는 옆에서 잠시 지켜보다가 마침내 배진호의 이름을 불렀다.“진호 씨, 잠깐 비켜줘요.”남태건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의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여전히 배진호를 향해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봤지? 다솔이 눈에는 내가 너보다 훨씬 중요한 사람이야. 눈치 있으면 꺼져. 우리 부부끼리 색다른 즐거움을 맛보려고 그런 거니까.”배진호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문을 닫고 하는 일이 부부간의 즐거움이지 이건 폭력과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배진호를 상처 입힌 건 그녀의 태도였다. 그는 주먹을 꼭 쥔 채 다른 손으로 여전히 남태건의 옷깃을 잡고 있었다.그리고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며 상처받은 목소리로 말했다.“남태건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제발 만나지 마요.”“일단 손부터 놓고 옆으로 물러나세요.”그녀는 나중에 배진호가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그리고 눈 감으세요.”남태건의 얼굴에는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나쁜 남자가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건 정말로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였다.그가 웃으면 웃을수록 배진호의 마음은 더 아파왔다.어디서든 그녀가 “안 돼!”라고 말하면 배진호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하지만 그녀 스스로가 원한다면 그 역시 어쩔 수 없었다.남태건이 말했듯이 이게 그들 사이의 색다른 즐거움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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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배진호는 더 이상 권다솔이 무슨 말을 했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맞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따르면 그만이라는 마음뿐이었다.권다솔은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두 사람이 한창 사랑에 빠져 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막 관계를 확정 지었을 무렵이라, 배진호는 매일 그녀를 보며 멍하니 웃곤 했다.그녀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야... 분명 우린 그때 참 행복했는데.’ 예전에 권다솔은 그에게 물었다.“진호 씨, 도대체 왜 그렇게 웃는 거예요?”그때 배진호가 답한 건 단 한 마디였다.“다솔 씨가 옆에 있기만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 정말 행복해요.”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녀 뱃속의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권용민, 김영은의 사랑을 받겠지만, 아빠의 사랑만은 없을 것 같았다.“다솔 씨, 제가 몰래 따라다녀서 제가 밉지는 않나요?”배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솔 씨가 절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그래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두려웠고, 저 사람이 정말 괜찮지 않은 사람일까 봐... 그래서 그냥 따라왔어요.”“아니에요.”권다솔이 고개를 저었다.“아니라는 게... 절 미워하지 않는다는 건지, 아니면...”“진호 씨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권다솔이 그의 말을 끊었다.“우린 한때 서로 깊이 사랑했어요. 우리가 갈라선 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오해랑 양쪽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었죠.”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배진호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배진호의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경찰이 다가와 두 사람 사이의 흐름을 끊어 버렸다.“누가 신고했나요? 그리고 저기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누구예요?”“제가 했어요. 방금 저 사람이 절 해치려 들어서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렸거든요. 얼굴에 난 상처들은 제 남편이 절 보호하려고 몸싸움을 하다가 생긴 거예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402화

    권다솔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계속 달래며 말했다.“저 진짜 괜찮아요. 진호 씨가 제때 나타나 구해줬고 제 가방에 호신용 스프레이가 있었는데 효과가 좋아서 한 번 뿌리면 바로 제압하더라고요.”그런데도 남태건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진호는 지금 어때? 내가 들어가서 한 번 볼게.” 권용민은 먼저 병실로 가 보자고 했다.권다솔은 부모님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갔다. 배진호는 상처를 치료받고 있었고 그들이 오자 급히 일어나 인사를 했다.“앉아서 상처부터 잘 처리해.”권용민은 그를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이전에 사위였던 배진호에게 권용민은 늘 불만이 많았다. 특히 두 사람이 이혼 문제로 시끄러울 때는 배진호가 영영 눈앞에 안 보였으면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배진호가 권다솔을 구해냈다. 그 일 덕분에 권용민은 그를 조금 달리 보게 되었다.김영은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배진호에게 다가가 상처 부위를 살펴본 뒤 의사에게 당부했다.“가급적이면 좋은 약 써서 흉터 안 남게 해주세요.” 의사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김영은도 배진호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사이 어색해질 듯하자 권다솔이 먼저 입을 열었다.“두 사람은 먼저 돌아가세요. 전 여기서 배진호 씨 상처도 마저 보고 다 처리한 뒤에 경찰서에 한 번 더 들러야 할 것 같아요.”“그래, 너는 여기 남아서 진호 좀 도와줘.” 권용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병실을 나섰다.권다솔은 당연히 부모님을 배웅하러 나갔다.“만약 네가 진호와 함께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우린 반대하지 않겠다.” 권용민은 떠나기 전 딸에게 말했다.“그건 좀 더 생각해 볼게요. 아직 결정을 못 했어요. 그런데 아빠, 오늘 많이 달라 보이시네요? 예전엔 제가 그 사람이랑 꼭 이혼해야 한다고 난리셨잖아요.” 권다솔은 아버지가 좀 의아해 보였다. 남태건 때문에 충격을 크게 받은 건가 싶었다.권용민은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 그러니까 진호가 외모도 괜찮고, 태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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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드문 해외 교류 기회를 얻는 것은 그녀의 전문 능력을 크게 인정받은 것이며 또한 시야를 넓히고 자신을 성장시킬 절호의 기회였다.하지만 그 인턴은 이 소식을 듣고 다른 속셈을 품게 되었다.그녀는 은서우를 찾아가 몰래 약봉지를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은 선생님, 이번에 원장님과 함께 가시죠? 기회를 봐서 이 약을 물에 타세요. 일이 끝나면 2천만 원 드릴게요.”은서우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채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이건 불법이에요. 절대 할 수 없어요.”인턴 민지아는 어두워진 얼굴로 싸늘하게 협박했다.“전에 제 돈을 받고 제 부탁 들어주신 거 잊지 마세요. 안 하면 당신이 돈을 받고 원장님의 사진을 몰래 찍은 사실을 폭로해 버릴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완전히 끝장나는 거죠. 그리고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가만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망쳐버리면 더 난리 칠걸요?”은서우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는 흰 종이처럼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오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떠올렸다.‘이 선택 때문에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민지아의 요구대로 하면 내 양심은 어떡하지? 원장님의 신뢰는 어떻게 보답하지?’민지아는 그녀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다시 유혹하듯 말했다.“그냥 약을 타기만 하면 돼요. 원장님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잠들면 사진 몇 장만 찍으세요. 어렵지 않잖아요? 이것만 끝내면 우리 둘은 완전히 정리되는 거예요.”은서우는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고뇌 속에서 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민지아는 목적을 달성하자 만족스러운 냉소를 지으며 장난치지 말라는 경고를 남긴 뒤 급히 자리를 떠났다.은서우는 손에 약봉지를 꽉 쥔 채 혼자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발일이 다가왔다.은서우는 무거운 짐을 끌고 인명진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가는 길 내내 인명진은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이번 교류와 관련된 의학적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26화

    은서우는 인명진의 카카오톡을 추가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동시에 긴장감이 엄습해 왔다.이제 남은 과제는 사진을 찍어 전달하는 것이었다.어느 날 병원 휴게실에서 그녀는 인명진이 혼자 앉아 자료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변에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은서우는 심호흡하며 용기를 내어 조용히 다가가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핸드폰을 만지는 척했다.실제로는 몰래카메라를 켜 자연스럽게 각도를 조정한 뒤 빠르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다행히도 인명진은 자료에 집중하고 있어 그녀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은서우는 재빨리 사진을 인턴에게 전송했다.인턴은 그 사진을 보고 매우 만족스러워했다.[은 선생님. 잘하셨어요. 이 정도는 되어야죠.]그러나 안도의 순간도 잠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인명진이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 학술 교류에 관련하여 질문한 것이다.당황한 은서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인턴도 들킬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은서우에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보내주며 인명진이 그녀를 추가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은서우는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인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그녀는 다시 인명진을 찾아갔다.“원장님, 한 인턴이 이번 수술에 대해 관심이 많더라고요. 학술 연구에서도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인데 원장님께서도 얘기 나눠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그 친구 연락처입니다.”인명진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은서우를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그는 은서우와 학술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은서우는 탄탄한 의학적 지식과 침착한 분석 능력으로 빛을 발했고 인명진은 그런 그녀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이상한 점도 있긴 하지만 확실히 능력은 있네. 한 번 키워봐도 되겠어.’인명진이 은서우를 보며 말했다.“은 선생님, 전문적인 역량이 기대 이상이군요. 앞으로 더 도전적인 케이스들을 맡겨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연구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보면 어떻겠습니까?”은서우는 깜짝 놀랐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25화

    은서우는 심장이 조여오는 듯했지만 이번에 물러서면 평생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나는 숨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어. 마음대로 해. 진실은 결국 밝혀질 테니까.”소태훈은 은서우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자 분노에 휩싸였다.그는 옆에 있던 테이블을 손으로 밀쳐버렸다.탁자 위의 찻잔과 유리병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깨진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날카로운 소리가 온 방 안을 가득 채웠다.“은서우! 넌 내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광기에 휩싸인 그의 행동은 방 안에 있던 다른 가족들의 분노까지 부추겼다.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덩치 크고 험악하게 생긴 중년 남성이 목소리를 높였다.“은서우! 네가 이 집에서 몇 년을 공짜로 먹고살았는데! 이제 와서 발을 뺀다고? 꿈도 꾸지 마.”말을 마친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거친 손으로 은서우의 옷깃을 움켜잡아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발이 바닥에서 떨어진 은서우는 목이 조여와 숨이 막혔지만 여전히 그 남자를 노려보며 외쳤다.“이건 불법 감금이에요! 놔요!”“불법 감금? 이건 가족 간의 일이야! 네가 태연이를 죽였으니 끝까지 책임져야 할 거 아냐.”그 장면을 목격한 인명진은 얼굴을 굳히고 이내 앞으로 나서서 중년 남성의 손목을 움켜잡으며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봤다.“놔. 안 그러면 신고할 거야.”남자는 인명진의 기세에 눌려 주춤했지만 굽히지 않고 외쳤다.“넌 누구야? 뭔데 우리 가족 일에 끼어드는 거지?”인명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은서우 병원 원장. 내 직원이 이런 식으로 위협받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사람이 많다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법 앞에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명심해.”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소상태가 다가와 사내의 팔을 붙잡았다.“이러다 일이 더 커지겠어요. 일단 놔요.”사내는 마지못해 손을 풀었다.갑작스럽게 자유로워진 은서우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인명진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24화

    은서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내가 그날 가자고 제안한 건 단순한 모임이었어. 그 누구도 그런 사고가 날 거라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도 나는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보상하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나도 내 삶이 있어. 더 이상 이 일에 끌려다닐 순 없어.”그 순간 소상태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가락을 뻗어 은서우의 이마를 찌를 듯 들이밀었다.“이 배은망덕한 년아! 태연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렇게 배신해?”은서우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길을 피하며 차분하게 말했다.“저도 태연이의 죽음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하지만 제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까지 짊어지고 살 순 없어요. 저도 할 만큼 했어요.”연희진이 흐느끼며 애원했다.“서우야, 한 번만 더 도와주면 안 되겠니? 태훈이 몸이 안 좋아서 치료비가 계속 필요해.”은서우는 자신을 거둬준 양모를 바라보며 심란함을 느꼈다.이전의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감사한 마음뿐이었다.은서우는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진심으로 인정받는 가족이 되고 싶어 노력했다.하지만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엄마, 마지막이라고 말했잖아요. 제가 지난 몇 년간 드린 돈만으로 부족했나요? 단순한 사고였어요. 저도 태연이한테 그런 일이 발생할 줄 몰랐고 태훈이가 이렇게 될 줄도 몰랐어요.”그 말에 소태훈이 흥분하며 휠체어에서 몸을 기울였다.그의 눈빛에는 증오와 광기가 서려 있었다.“은서우! 그렇게 쉽게 벗어날 생각은 하지 마. 이 모든 게 왜 벌어진 줄 알아?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내 마음을 받아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은서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떨며 물었다.“뭐라고? 그 사고... 설마 일부러 낸 거야? 단지 내가 네 고백을 거절했다는 이유로?”소태훈은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그는 이젠 감추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그래! 너만 아니었으면 태연이가 죽을 일도 없었고 내가 장애인이 될 일도 없었겠지. 그러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23화

    “성북 쪽으로 가주세요. 도착하면 제가 길 안내할게요.”인명진은 은서우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내비게이션을 켜고 조용히 성북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성북은 오래된 주택가가 밀집한 지역이었다.인명진은 한 번도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그가 경성에서 주로 활동하는 곳은 병원이었고 그게 아니면 여이현이 있는 지역에 가끔 방문할 뿐이었다.하지만 생활이 안정된 후로는 여이현이 있는 곳으로도 향하지 않았다.은서우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곳에 올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마침내 그녀의 안내에 따라 차는 한 단칸방 앞에 도착했다.차를 세운 순간 안에서 격한 소란이 들려왔다.“왜 아직도 그 계집애 편을 들고 있어? 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 애만 없었어도 우리 태훈이가 이렇게 되진 않았어!”“그 애가 우리한테 준 돈만 해도 충분해. 게다가 태훈이 사고는 그냥 예상치 못한 사고일 뿐이었어. 대체 언제까지 그 아이한테 책임을 떠넘길 거야?”끝없는 다툼.은서우는 이제 이런 광경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다.더는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인명진은 남의 사생활에 관여하는 타입이 아니었다.그는 은서우가 안전벨트를 풀고 내리려는 순간 무심하게 말했다.“가족 문제로 일에 지장 주지 마세요.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으면 그냥 휴가 내세요. 그리고 차비는 안 받아요.”그건 분명 의도적인 언급이었다.인명진은 은서우를 쳐다보지도 않고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더는 그녀와 이 문제로 말 섞고 싶지 않다는 신호였다.‘내일 현금을 들고 가서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지. 지금은 그런 것보다 당장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게 먼저야.’은서우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섰고 방 안은 깨진 유리 조각, 뒤집힌 가구들과 여기저기 널브러진 물건들로 인해서 엉망진창이었다.그녀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여기 이천만 원이에요.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거 기억하세요. 저도 이제 곧 서른이에요.”“곧 서른이라고? 그럼 태연이는 너 때문에 서른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는 거 알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22화

    이천만 원이라는 돈은 가뭄의 단비처럼 절실했다.‘하지만 원장님께서 이 일을 아시면 이 병원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수도 있어.’“은 선생님, 1억이라도 원하시는 건 아니죠?”인턴은 어떻게든 인명진과 접촉하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인명진의 비서와 접촉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고 결국 선택한 차선책이 은서우였다.어차피 은서우는 돈을 받으면 부탁을 들어줄 것이었고 그 후 그녀가 병원에서 잘리든 말든 인턴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은서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겠어요. 그 부탁은 내일 다시 얘기하면 안 될까요?”“내일이면 원장님 사무실에 가는 날이잖아요? 은 선생님, 그냥 지금 확실히 해두는 게 좋겠어요.”인턴은 끊임없이 떠들어댔고 그때 은서우의 폰이 다시 울렸다.“은서우! 지금 죽어야 할 사람은 너야!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어!”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것은 분노에 찬 외침이었다.너무나 익숙한 소리에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숨이 막혀왔다.“진정 하세요. 지금 바로 갈게요. 원하는 것도 바로 가져다드릴게요.”은서우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눈앞이 핑 돌 정도로 현기증이 몰려왔다.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는 거의 본능적으로 인턴의 손을 꽉 붙잡았다.“이천만 원 준다고 하셨죠? 바로 주면 내일 부탁 처리해 줄게요.”“지금 바로 송금할게요.”인턴은 은서우가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그녀가 핸드폰을 꺼내는 순간 은서우는 그것이 최신형 아이폰이라는 걸 알아챘다.케이스조차 반짝이는 보석으로 장식된 명품이었다.‘그래. 돈 없는 사람이 이런 일에 이천만 원이나 쓸 리 없지.’계좌 번호를 불러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계좌로 이천만 원이 들어왔다.인턴은 신신당부했다.“전 고화질 사진이 필요해요. 그리고 카카오톡도 꼭 추가해 줘야 해요.”“그럼 제가 당신 카카오톡을 로그인해야 하지 않나요? 아니면 어떻게 추가해요?”“좋아요. 로그인하세요. 은서우 씨...”그때 인턴의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21화

    은서우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인명진은 이미 돌아서서 갈 길을 가고 있었다.비록 인명진이 병원의 원장이었지만 은서우는 회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오늘 처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는 것이었다.그는 수술용 멸균복을 입고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깊고 차가운 그의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수술 내내 상황이 아무리 긴박해도 인명진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고 그의 침착함과 냉정함은 뛰어난 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은서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이제야 왜 병원의 많은 여성 간호사, 인턴, 심지어 여의사들까지도 그에게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은서우는 가볍게 몸을 풀며 수술실을 나왔다.막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한 동료가 그녀를 찾아왔다.가슴에 걸린 명찰을 보고 은서우는 상대가 인턴임을 알았다.은서우는 예의 바르게 물었다.“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은 선생님, 방금 원장님과 함께 수술을 마치셨죠?”인턴의 질문에 은서우는 약간 의아했다.“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인턴은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은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원장님 카톡 좀 추가해서 저한테 넘겨주시거나 아니면 원장님 사진 몰래 몇 장만 찍어 주세요. 제가 이만큼 드릴게요.”인턴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은서우는 인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제가 원장님 연락처를 넘긴다고 해도 원장님 입장에서는 그냥 낯선 사람일 뿐일 텐데 원장님이 연락 받아줄 것 같아요? 그리고 몰래 사진 찍는 건 불법인 거 모르나요? 고작 그 정도 푼돈으로 저를 이런 큰일에 끌어들이겠다고요? 당신이 미친 걸까요? 아니면 제가 미친 걸까요?”은서우는 거침없이 인턴을 몰아붙였다.인턴이 급히 덧붙였다.“아니에요, 은 선생님. 도와주시기만 하면 백만 원 아니 천만 원도 문제없어요.”‘천만 원에 사진 몇 장과 연락처? 저 인턴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은서우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720화

    이명진은 병원에서 만약 어떤 의료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이 병원의 명성은 그대로 무너질 것으로 생각했다.그의 말에 한 간호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원장님, 병원 내부 번호와 원장님 개인번호 모두 통화 중이셨어요. 원장님 인기가 지금 장난 아닌 걸 모르시는 건 아니시죠?”문 앞에 대기 중인 인턴들로도 모자라 소문 듣고 연락이 오는 환자도 있었고 학생들도 있고 심지어 부잣집 부인들도 어디서 개인번호를 얻었는지 매일 전화를 걸어 이명진의 전화는 항상 통화 중 상태였다.긴급 상황만 아니라면 인명진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인명진은 간호사의 필요 없는 말을 들을 시간도 없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가 문을 열자 밖에서 있던 인턴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진짜 너무 멋있고 젊잖아. 이렇게 젊으신데 원장 선생님이라고?”“너무 잘생겼어. 여자 친구도 없다 그러던데.”“많은 수술도 직접 하신대. 그리고 학술논문도 봐주고 기타 강의도 하신다고 들었어.”“이렇게 훌륭한 사람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어떤지 상상도 안 가.”그들은 미친 사람처럼 저마다 한마디씩 주고받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인명진에게 달려들어 길을 막고 있었다.“인 원장님, 저랑 사귀시면 이런 병원 몇 개라도 더 해줄 수 있어요. 당신을 경성의 의료센터에서 우두머리로 만들어 드릴게요.”“인 원장님, 저 사람 말 믿지 마세요. 저랑 사귀시면 더 많은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드릴게요.”“인 원장님, 저랑...”“다들 꺼져!”인명진은 평소에 이 사람들에게 무관심이었지만 지금은 급한 수술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한 간호사가 데리고 온 경호원들도 그녀들을 막을 수가 없었지만 항상 따뜻하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말만 할 거로 생각했던 인턴들은 인명진의 화내는 소리 한 번에 더 이상 앞으로 다가서지 못했고 자리를 피해 길을 열어 주었다.인명진은 재빨리 수술용 무균복으로 갈아입고 소독한 후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실 안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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