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간을 찌푸린 소은정이 물었다.“전 대표님도 술집에 드나드시는 걸 즐기실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전동하가 눈썹을 실룩거리며 말했다.“소은정 씨의 인상 속에 저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으로 보이나요?”“교향곡이 어울리시는 것 같네요.”전동하:“제가 고독 노인 같으세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은 입술을 깨물었다.“너무 비굴하게 들리네요.”전동하:“......”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기 시작했다.십 분 뒤, 소은정의 집에 도착했다.한유라가 소은정의 집에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소은해가 대문 앞에서 덜덜 떨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전동하의 차가 집사가 열어준 대문을 유유히 지나치고 있었다.소은해가 기침을 하며 조수석에 앉은 소은정의 차문을 열어 주었다.“이렇게 늦게 다니면서 술도 마셨어?”소은해를 가뿐하게 무시한 소은정은 전동하를 보며 물었다.“전 대표님 같이 들어가요, 마이크 아직 잠들 시간 아니에요.”그녀를 구해준 전동하를 집 앞까지 모셔놓고 돌려보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전동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낮은 목소리로 소은정의 뒤를 따랐다.“그럼, 실례하겠습니다.”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는 소찬식은 한 팔에는 소호랑을 다른 한 팔에는 마이크를, 그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아들 마이크가 소은정 집에 너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소호랑의 잠옷을 입고 전동하를 발견한 마이크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빠, 안녕...”전동하:“......”소찬식 회장도 전동하를 발견하고 소파에서 일어나 인자한 미소를 띠었다.“전 대표, 은정이를 데려다줘서 고맙네. 앉게나...”전동하가 점잖은 말투로 소찬식의 안부를 물었다.“별말씀을요, 가는 길에 들렀을 뿐입니다.”자신의 아들을 본 그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며칠 동안 폐를 끼쳤습니다. 애가 까불거리지 않았나요?”전동하의 말을 들은 소찬식은 연신 손사래를 쳤다.“아닐세, 마이크는 내가 본 아이들 중 제일 얌전하고 말도 잘 듣는 아이야!”소찬식이 전동하의 앞에서
소찬식이 곁에서 아이를 달랬다.“안가 안가. 올라가서 자야지 아가야…”귀엽게 투덜거리던 마이크가 그제서 얌전히 전동하한테 안겼다. 아이는 전동하한테 기댄 채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방에 가서 잘 거야!”“……”전동하는 할 말을 잃었다.이렇게까지 티 나는 수작을 부린다 이거지?소은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의 투정을 지켜보았다. 집안의 모든 사람들 행여 마이크의 잠을 방해할까 두려워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다.아무도 지금 마이크가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전동하는 할 수 없이 아이를 안은 채 소은해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계단을 올랐다.방안, 소은해는 그가 익숙하게 마이크의 이불을 정돈해 주는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아버지의 사랑은 산 과도 같다더니…”전동하가 멈칫거렸다. 그는 소은해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마이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이놈 자식이!”마이크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옆으로 돌아누웠다.전동하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소 씨 집안 세 사람이 하하 호호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소은정이 뭐라고 말을 꺼내자 화가 난 소천식이 곧바로 옆에 놓인 쿠션을 소은해한테 집어던졌다.소은해가 서러워하며 투덜거렸다.“전동하 씨가 마이크한테 주는 아버지 사랑은 산처럼 커다랗기만 하던데, 우리 집 아버지의 사랑은 도미노 인가 봐, 다 무너졌어!”화가 난 소찬식은 당장이라도 그를 때릴 기세였다.“내가 몇 년간 아끼고 아껴온 보옥을 망가뜨려놓고 뭐? 산처럼 큰 아버지의 사랑을 바래? 너 이 자식 오늘 내 손에 죽었어!”전동하가 헛기침을 하며 내려오자 소찬식이 그제야 겨우 화를 억누르며 그를 맞이했다.“회장님께서 마이크를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도 늦었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와서 인사드리겠습니다.”“참, 별말씀을요. 우리 집안에는 저런 아이가 부족했어요. 이렇게 자식들이 많은데 변변찮은 녀석 하나 없답니다. 아이는 저희가 잘 돌보고 있을 테
밥을 먹은 후 마이크까지 보고 난 전동하는 뭔가 더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해 보였다.“은정 씨, 저 회사에 일이 터져서 당분간 해외에 있을 거예요. 새해가 지나고 나서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으니 당분간 마이크를 잘 부탁드려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마이크를 돌보는 건 큰일이 아니지만… 갑자기 무슨 일이 터진 게예요?”연말에 많은 사건사고가 터지는 것이 다반사이긴 했다. 하지만 전동하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까지 나서서 특별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전동하가 웃으며 말했다.“해외에서 진행되고 있던 프로젝트에 작은 문제가 생겨서요. 협력상 측에서 계약을 파기하려고 해서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려고요.”그의 해명에 소은정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걱정 말고 가보세요. 마이크는 저희 집에서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할 수 있게 해줄게요.”전동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이는듯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프로젝트가 어디에서부터 어긋났는지 그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그 남자는 정말이지 온갖 수단을 다 쓰고 있었다.그는 소은정의 이익과 관련된 항목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더니 결국 그 마수를 외국에 뻗친 것이다.박수혁은 정말로 소은정을 아끼며 그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없게 지키고 있었다.전동하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의 미소에는 아무런 꿍꿍이도 느껴지지 않았고 예전처럼 온화하기만 했다.소은정 역시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와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왔다.그녀는 얼굴에 팩을 붙인 후 느긋하게 소호랑을 안고 베란다에 누워 주식을 살펴보고 있었다.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확인하기 귀찮았던 소은정은 소호랑의 엉덩이를 툭 툭치며 말했다.“누가 전화 왔는지 확인해 봐.”소호랑의 인공지능시스템이 발동되었다.“한유라 이모한테서 전화 왔어요……”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연결해.”소호랑이 통화를 연결했다.한유라가 말했다
오한진은 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침착하게 설명했다.“소 대표님만 보게 설정을 해놓았다가는 그쪽에서 대표님을 차단해 버리면 끝이잖아요?그게… 좀 쪽팔리긴 해도 소 대표님의 마음을 얻으시려면 좀 참으시죠!”박수혁은 짜증이 났다. 속으로 계속해서 이것은 소은정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되뇌었다.1분… 2분….기다리다가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말았다.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소은정이 전화를 걸어 오지 않는다면 단톡방을 없애 버리고 오한진은 잘라버릴 생각이었다.오한진은 자꾸 등 뒤가 서늘해지고 발밑이 차가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리에 힘이 다 풀릴 무렵 드디어 박수혁의 휴대폰이 울렸다.오한진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박수혁이 비싼 휴대폰을 건네주었다.“소 대표님이 말할 때 절대로 너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마세요. 절대 먼저 단톡방 없애지도 마시고요.”박수혁은 입술을 핥고는 끽소리도 안 하고 담담히 전화를 받았다.심장은 마구 두근대고 있었다.“여보세요?”오한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감탄해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역시나 대표님은 대표님이셔. 언제라도 저 자신만만한 기세는 꺾이지 않나 봐.아무래도 저 카리스마는 버리기 힘들겠지!“박수혁,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단톡방에서 발광을 하고 싶으면 혼자서 하던지, 왜 남가지 끌어들이고 난리야?내 이름을 다 안 써넣었다고 내가 아니라는 개소리는 하지도 마. 한 자만 써넣어도 그게 난지는 온 세상이 다 알아! 당장 그 단톡방 폭파하지 못해?”소은정의 말투는 사뭇 차갑고 강렬했다. 딱 들어도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위신이 걸려 있고 흠집 잡힐 것을 신경 쓰지만 않았다면 있는 대로 큰 소리로 ‘야 이 개**야!’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박수혁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핸드폰을 있는 대로 꽉 잡고 있는 것이 다 보였다.겉으로는 침착한 척하고 있지만 손가락에서는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긴장을 하고 있었다.소은정의 말을 듣는 박수혁의
이런 회의에 전동하야말로 빠져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회의실에 난방기구를 한껏 틀어 놓았는데도 이상하게 한기가 느껴졌다.임춘식이 웃었다.“전 대표님은 지금 해외에 계셔서 회의는 참석 못 하신다고 끝나면 회의록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소은정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아서 자료를 읽었다.박수혁은 최대한 소은정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그러나 소은정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처럼 무시하기 어려웠다. 힐끔힐끔 그쪽을 쳐다보게 되었다.소은정이 전동하를 언급 하자 박수혁은 저도 모르게 냉소가 흘러나왔다.‘그 자식은 지금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구해보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을걸.쌤통이지! 소은정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거 꼴 보기 싫었거든.’임춘식이 보고를 하는 동안 박수혁의 싸늘한 태도는 스트레스를 더해주었다.임춘식은 두 사람이 전혀 교류가 없는 것을 보고 심장이 발딱거렸다. 회의를 할 때마다 완전히 무슨 심리전이 벌어지는 것만 같았다.간신히 회의를 끝내고 해산했다.임춘식이 헛기침을 했다.“연말이 되어도 이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중단되지 않을 겁니다. 이제 심리검사원이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니 설을 지나서는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까 하며 어떨까 싶은데요?”소은정이 말했다.“아직 시험도 안 해봤고 검증도 안 됐는데 이렇게 단기간에 시장에 내놓아 버리면 문제가 생겼을 때 금방 매장되고 말 겁니다.”박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소은정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임춘식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이미 어느 정도 결과가 나왔습니다. 경찰에서 통용되는 거짓말 탐지기는 최저 수준의 심리 검사설비입니다. 우리가 개발한 측정기는 그것보다 수백 배는 고급이라고요!”소은정은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뭐가 그렇게 급하죠? 설 지나서 얘기하면 되잖아요?”지금 꼭 그렇게 일거리를 만들어야 하나?임춘식은 초조한 듯 이마를 문질렀다
임춘식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심리측정 연구의 최대 성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정신질환 치료 케이스와 프로세스를 수집한 것이다. 측정한 데이터를 근거로 사용하여 마음 깊은 곳이 파동과 생각을 탐측해 환자의 자아 치유 과정을 가이드 해준다.치료 과정에 다른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이 일반 심리상담과 차별되는 점이었다. 인간과 기계의 평등한 대화를 통해 솔직하게 대할 수 있다.심리상담사로 등장한 인공지능은 충분한 데이터를 구축하여 환자가 완전히 인공지능 시스템을 신뢰하게 하고 맞춤형 치료를 제공한다.환자가 과거에 정의로운 사람이었든 죄를 지은 사람이든, 배신할 일도 없고, 개인 정보가 유출될 위험도 없다. 이 점이 환자에게 큰 매력으로 소구되는 것이다.이 프로젝트의 성과가 세상에 알려지면 분명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소은정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해보고 싶었다.경험 있는 정신과 의사가 누군가의 심리를 컨트롤할 수 있다면 과연 기계는 어떨지 궁금했다.임춘식은 박수혁과 소은정을 보며 웃었다.“들어가시죠.”박수혁은 군대에 있을 때 혹독한 심리전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쉽게 주변 사람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기계가 자신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데 별생각이 없었다.그냥 거절을 할까 하다가 소은정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다.얼른 나오려던 말을 삼키고 옷을 정리하며 일어나 따라갔다.실험실에 도착했다.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다. 어두운 회색 벽은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듯했다.소은정과 박수혁은 입구에 섰다. 두 사람은 그렇게 가까이 서서도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임춘식도 영 부자연스러운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수혁이 소은정과 접촉할 그 숱한 기회를 다 포기하다니….안에서 하얀 겉옷을 입은 사람이 나왔다. 둘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준비되었습니다.”임춘식이 손을 뻗었다.“이쪽으로 가시죠.”둘이 같이 들어간다고?그러나 소은정은 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들어갔다. 가서 보니 안에
박수혁이 여기에 와 있으니 소은정은 어쩐지 박수혁이 미스터리하게 느껴졌다.시스템은 잠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런 요구를 받을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10초도 되지 않아 입구로 누군가가 들어왔다.임춘식이었다.웃을랑 말랑한 얼굴로 바라보았다.“규정에 따르면 그런 일은 안 됩니다. 하지만 소 대표님이라면 예외로 해드릴 수 있죠.”소은정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두 사람 중 하나만 시험해 보면 되지 않겠는가?소은정은 진짜로 실험실의 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임춘식이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부딪히자 시스템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앞쪽 벽이 서서히 투명해졌다.소은정은 담담히 박수혁을 보더니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이 벽은 가격이 어마어마하겠네요?”임춘식이 씩 웃더니 소리를 낮추었다.“세계 최상의 재료입니다. 안전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소은정은 벽 안쪽의 남자가 매의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박수혁이 있는 곳이 밝아졌다. 고급 주택이었다. 보고 있던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다음 순간 남자의 시선은 갑자기 이쪽을 향하더니 벽을 바라보았다.소은정은 흠칫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었다.‘내가 보이나?’임춘식이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쪽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도 안 들리고요.”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바로 임춘식을 바라보더니 쌀쌀맞은 눈빛을 보냈다.“이제 나가 보세요.”“……”“박수혁 대표가 당신이 자기 심리를 들여다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둘까요?”“하지만 소 대표님은….”소은정이 풋 하고 웃었다.“나는 걱정하지 마세요.”임춘식을 입술을 깨물었다.‘그래, 내 걱정이나 해야지.’곧 구경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임춘식은 빙긋 웃으며 나갔다. 소은정은 담담히 시선을 거두었다.박수혁의 시선은 얼마 머무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가만히 보니 박수혁은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안색이 확 변하더니 입가
두 사람은 회의실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정확하게는 남종석의 보고를 들으러 갔다.도중에 임춘식은 전화를 받고 나갔다. 소은정은 거기 앉아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15분이 안 되었을 때 갑자기 박수혁이 누군가를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소은정은 흠칫했다가 일어났다. 문을 열려는 찰나에 박수혁이 냉엄한 말투로 임춘식에게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AI 심리상담사는 개뿔! 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그 사람을 잊으라고요? 잊어서 문제가 해결된다는 소리나 들으려고 상담을 받아요?”임춘식이 답했다.“대체 누굴 잊으라고 했길래 이러십니까?”“나가요!”소은정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아서 팔짱을 끼고 앉았다.박수혁과 임춘식은 앞서거니 뒤 서거니 하며 들어왔다. 박수혁은 그다지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이 프로젝트는 역시 연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시스템이 경직되고 유연하지 않아요. 사람의 심리를 1%도 못 읽는데 이런 걸로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 수 있겠어요?”임춘식은 뭔가를 할 말이 있는 듯했다.소은정은 입술을 깨물었다.“세계적인 전문가를 좀 초빙하죠. 그분들의 기준에 따라 판정하면 언제 출시하는 게 좋을지 알 수 있을 거예요.”임춘식의 눈이 반짝했다. 그거면 되겠구나!빙고!박수혁은 입술을 핥더니 무거운 시선으로 소은정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춘식이 박수혁을 쳐다보았다.“소 대표님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모든 것은 박수혁의 뜻에 달려있었다..박수혁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고개를 들어 소은정을 보더니 빙긋 웃었다.“소 대표 말대로 하죠.”역시나 박수혁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소은정밖에 없었다.소은정이 고개를 들어 박수혁과 눈을 맞추었다.박수혁이 씩 웃더니 떠보듯 물었다.“당신은 들어가서 누굴 생각했어? 누가 당신의 고민거리였는데?”잠시 침묵이 흘렀다.소은정의 눈빛이 깊어지더니 가만히 웃었다.“난 안 들어갔는데.”박수혁의 몸이 굳어졌다. 임춘식을 확 돌아보았다.임춘식은 부들부들 떨더니 고개를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