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포위하듯 천천히 여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그들의 움직임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어떠한 기척도 일으키지 않고 사냥감을 노리는 늑대 떼처럼 신중하고 치밀했다. 그 속에는 짙은 살기도 서려 있었다.이때 여관 정문 앞에는 두 명의 경호팀 팀원이 경계하며 서 있었다.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 했던가 그들은 주변의 이상 징후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후!”그 순간 산들바람이 불어와 옅은 연기와 함께 묘한 향기를 실어 날랐다.그러자 두 사람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현기증을 느꼈다. 상황을 알아차릴 틈도 없이 눈앞이 깜깜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보초를 서던 두 사람을 처리하자 야행복을 입은 금도문과 원앙문의 고수들이 재빨리 여관을 포위했다.그러나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바로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약을 써서 길을 트기로 했다.그들은 창문과 문틈 사이로 모든 방에 일제히 약을 뿌리기 시작했다.그 약은 원앙문에서 비밀리에 제조한 약으로서 극소량으로도 강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 약을 흡입하면 선천무사조차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강인 씨, 어때요? 다 처리됐습니까?”약을 뿌리고 난 후 두 세력은 복도 끝에서 마주쳐 서로 상황을 주고받았다.“잡졸들은 전부 쓰러졌습니다. 이제 남은 건 유씨 성을 가진 마스터 한 명뿐입니다.”양강인은 목소리를 낮추며 답했다.“그자의 방은 2층 동쪽 끝이에요. 제가 먼저 십향연골산을 뿌릴 테니 틈을 봐서 단숨에 중상을 입히세요. 그러면 이 일은 끝입니다.”도미숙이 낮게 속삭였다.“알겠습니다.”양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도미숙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낸 후 몇몇 고수들과 함께 살금살금 계단을 올랐다.양강인 일행도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대부분의 무사들을 1층에 남겨 돌발 상황에 대비하게 했다.함께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무사는 모두 반보 마스터 급인 강자들뿐이었다.양강인과 도미숙은 손꼽히는 무도 마스터였고 그 외에도 여섯 명의 반보 마스터가 함께했기에 이 전력은
“뭐라고?!”두 명의 반보 마스터들이 유진우의 손바닥 하나에 날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본 순간 모두가 숨을 삼키며 경악했다.방금 쓰러진 두 사람은 비록 마스터 급에는 못 미쳤지만 깊은 내공과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 보통의 무도 마스터와 충분히 겨뤄볼 만한 인물들이었다.그러나 방금 단 한 방에 두 사람을 생사의 경계까지 던져놓은 것을 보니 유진우의 실력은 그야말로 괴물이라 할 만했다.그러니 그가 비설파의 오너 공진혁을 꺾었다는 이야기도 허튼 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다 같이 덤비자!”도미숙과 양강인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몸을 날려 좌우에서 유진우를 공격했다.도미숙은 원앙단도를 사용했다. 그 움직임은 날렵하고 교묘했으며 칼끝은 매번 치명적인 급소를 정확히 겨냥해 들어왔다.그 검술은 마치 꽃 사이를 누비는 나비처럼 우아하면서도 숨겨진 날카로움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반면 양강인은 금빛의 보검을 들고 있었다. 그 금도는 쇠를 자를 수 있을 듯 무겁고 날카로웠으며 털끝을 스치면 모든 걸 두 동강 낼 정도였다.이 검은 금도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보검으로 세 대에 걸쳐 내려왔으며 오너의 손에서 단련과 수련을 거쳐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특히 금도문만의 비전 검법과 함께 사용할 경우 그 위력은 두 배가 되어 모든 공격마다 하늘과 땅을 가를 듯한 기세를 뿜어내게 된다.그 위압감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고수라도 정면으로 맞서기 힘들 정도였다.도미숙과 양강인이 움직이자 다른 반보 마스터 고수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각자 몸을 날려 사방에서 유진우에게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그러나 그런 협공 앞에서 유진우는 불현듯 발을 굴렀다. 순간 그의 몸이 솟구쳐 오르더니 마치 포탄처럼 지붕을 뚫고 허공으로 튀어 올라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도망치는 거냐!”공격이 먹히지 않자 도미숙과 양강인은 즉시 지붕 위로 몸을 솟구쳐 추격에 나섰고 다른 이들도 잇따라 그 뒤를 따랐다.그러나 여관을 벗어난 순간 그들은 곧바로 알 수 있었
도미숙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우더니 양강인 일행에게 눈짓을 보냈다.“지금이에요, 움직이세요!”“죽여라!”신호를 받은 양강인은 짧게 외치고는 양손에 쥔 금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온몸이 허공을 가르며 솟구쳤고 곧장 유진우의 머리 위를 향해 벼락처럼 검을 내리찍었다.양강인이 먼저 움직이자 도미숙도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렸다. 좌우 양손에 들린 원앙도가 동시에 번뜩이며 유진우의 목덜미를 향해 겨눴다.두 명의 고수가 선공에 나서자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의 실력을 펼쳐 일제히 유진우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그 순간, 유진우는 마치 과녁이 된 듯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 속에 갇히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에 강한 진기를 일으키며 몸을 강하게 떨었다.“쾅!”굉음과 함께 눈부신 진기가 그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진기는 순식간에 투명한 보호막으로 변해 유진우의 몸을 감싸는 방패가 되었다.보호막은 바람을 타고 점점 커졌다. 눈 깜짝할 사이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반구형의 보호막이 형성되었고 마치 거대한 달걀껍데기처럼 그를 단단히 감쌌다.“타다닥!”수많은 공격이 그 보호막에 부딪치며 귀를 째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눈부신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양강인의 금도, 도미숙의 원앙도, 그리고 다른 이들의 맹렬한 공격 모두 유진우의 보호막에 한 점의 상처조차 내지 못한 채 멈춰 서고 말았다.“뭐라고?”양강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얼굴엔 놀라움이 스쳤다.방금 자신이 휘두른 공격은 보호막을 미세하게 흔들었을 뿐, 그 어떤 실질적인 타격도 주지 못했다.무기를 쓰지 않고 내공만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다니, 그 실력은 실로 경이롭고도 무시무시했다.“강인 씨! 저를 엄호해 주세요. 저놈의 진기를 뚫을 방법이 있습니다!”첫 공격이 통하지 않자 도미숙은 곧장 낮은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양강인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검을 뽑아 들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맹렬한 공격을
도미숙이 십향연골산을 뿌린 순간 양강인의 금도십팔식은 이미 수련의 절정에 달해 있었다.그의 검은 날 하나하나가 맹렬했고 그 기세가 상당했다.그 순간 유진우의 몸을 보호하던 진기는 이미 깨져버렸고 오른팔은 검과 함께 얼어붙은 상태였다. 거기에 양강인의 미친 듯한 공격이 더해져 더는 도미숙의 기습을 피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숨을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사라락!”십향연골산은 희뿌연 연기로 변해 유진우를 휘감았다.유진우는 숨을 참았지만 이 연기는 틈 하나 없이 스며들어 피부를 따라 몸속 깊이 파고들었다.“흠!”유진우는 땅을 강하게 박찼다. 그러자 땅이 세 치 깊이로 꺼져 들어갔다.그의 몸을 중심으로 강력한 에너지 파동이 번졌다.순식간에 거센 바람이 불고 먼지와 자갈이 하늘로 휘날렸다.십향연골산은 그 에너지에 증발해 사라졌고 양강인의 맹렬하던 공격 또한 와해되어 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반면 도미숙은 기류에 휩쓸려 십여 미터나 날아가 땅에 떨어졌고 연달아 몇 걸음 뒤로 물러선 후에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다.가슴은 무거운 바위에 짓눌린 듯했고 온몸의 기운 또한 뒤엉켜 요동쳤다.진기의 폭발만으로도 이토록 강한 위력을 뿜어내다니, 도미숙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우의 실력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이 정도의 실력이라니, 우리가 널 과소평가했군.”도미숙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입꼬리를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소용없어. 방금 너는 이미 십향연골산을 맞았으니 말이야. 숨을 참았다 해도 독은 이미 네 피부를 통해 몸 안으로 스며들었어. 지금쯤 온몸이 힘없이 풀리고 내공도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을 거야.”“하하하! 미숙 씨, 훌륭합니다!”양강인은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 자식, 심상치 않아요. 방금 폭발한 진기만 봐도 엄청났습니다. 다행히도 미숙 씨가 십향연골산을 써주셨기에 망정이지, 정면으로 붙었으면 결과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방금 그의 금도십팔식
상황이 달라졌다. 여태 시간을 끌었던 만큼 약효가 완전히 발휘되기에 충분했다.눈앞의 이 소년은 이제 그녀의 도마 위의 고기와 다를 바 없었다.“그렇게 자신 있으면, 어디 한번 직접 해보지 그래?”유진우는 천천히 검을 들고는 검 끝을 도미숙의 미간에 겨눴다.“흥! 헛소리하지 마! 네까짓 게 과연 무슨 큰일을 벌일 수 있겠어!”도미숙은 땅에 발을 강하게 짚으며 한순간에 잔상을 남기며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그녀가 두 손을 뒤집자, 두 자루의 곡선형 원앙도가 바로 튕겨 나가며 날카로운 암살 무기가 되어 유진우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아마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두 원앙도의 손잡이에는 특수 제작된 철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도 오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도미숙이 움직이자, 양강인도 지지 않겠다는 듯 이내 뛰어올라 칼을 높이 치켜들고,마치 산을 쪼개듯 강력한 일격으로 유진우의 머리를 향해 세게 내리쳤다.두 사람이 앞뒤로 공격하며 들어오는 모든 기술이 치명적이었고 그리고 공격 타이밍 또한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앞뒤를 모두 막기엔 역부족이었다.“분수도 모르고 설치는군!”유진우가 손목을 가볍게 흔들자, 창궁검이 순간 가로질렀다.“슈욱!”반달 모양의 검은 검광이 순간적으로 반사되었다.검은 검광은 바람을 타고 거대해지며 순식간에 10미터 크기로 확산하였다.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사신의 죽음의 낫처럼 도미숙과 양강인을 동시에 덮쳤다.“쨍! 쨍!”도미숙의 원앙도가 가장 먼저 공격을 받았고 이윽고 검광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그것은 마치 칼로 두부를 자르듯 손쉽게 갈라졌다.“이게 뭐지?!”도미숙의 얼굴색이 급격히 변했고,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극도의 위기감에 본능적으로 몸을 공중에서 비틀었다.그 순간, 공포스러운 검은 검광이 그녀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비록 직접 닿지는 않았지만, 검광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만으로도 그녀는 마치 얼음 굴에 빠진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확신했다.만약 방
“뭐야?!”양강인이 한 줄기 검광에 의해 날아가는 모습을 본 나머지 몇 명의 고수들은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리고 입이 떡 벌어졌다.양강인은 금도문의 오너이자 서남 지역의 다섯 대 마스터 중 한 명으로, 실력이 매우 강하다.그런 존재가 단 하나의 검광도 막아내지 못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저 녀석의 실력은 대체 어느 정도인가?’“으악~!”땅에 내동댕이쳐진 양강인은 몸을 떨더니 또다시 한 움큼의 피를 토하고 얼굴은 황금빛 종이처럼 창백해져서는 한동안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어... 어떻게 된 거지? 너... 넌 분명 십향연골산에 중독됐을 텐데?!”양강인은 떨리는 손으로 유진우를 가리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분명히 유진우가 십향연골산으로 제조된 연기에 중독된 걸 봤었고, 지금쯤이면 약효가 완전히 퍼졌을 거라 생각했다.정상적으로라면 지금쯤의 유진우는 이미 강노지말의 상태라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어야 한다.그러나 방금 그가 휘두른 검은 약해진 기색도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천지를 뒤흔들 만큼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었다.정말 말도 안 되는일이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어째서 유진우는 십향연골산에 중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가?“누가 너한테 내가 십향연골산에 중독됐다고 했지?”유진우는 한 손에 검을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본래 깊은 내공을 지니고 있는 그는 십향연골산 같은 독약 따위에는 쉽게 영향을 받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도 백독불침의 체질 덕분에 완전히 해독할 수 있었다.이 세상에서 십대기독 외에는 그 어떤 독도 그를 위협할 수 없었다.“네가... 네가 중독되지 않았다고?”양강인은 경악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도미숙에게 시선을 고정했다.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설마 방금 도미숙이 실수라도 한 것인가?’“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도미숙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나는 분명히 봤어! 십향연골산이 네 몸에 들어간 걸 똑똑히
“내가 못 할거라고 생각해?”도미숙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양 오너! 저 자식은 지금 허세를 부리는 거야.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나를 도와주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어!”“...”양강인은 눈가를 떨며,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이미 크게 다치고 피를 토했는데 나보고 또 앞장서라니. 정말 날 멍청이로 보나?게다가 저 자식은 여전히 힘이 넘쳐 보이는데 어떻게 기진맥진해 보인다고?만약 또다시 저 엄청난 검을 휘두른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양 오너! 당신은 금도문의 오너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는데, 설마 저 자식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겠지?”양강인이 반응이 없자 도미숙은 일부러 자극 주는 말을 던졌다.누군가 대신해 나서서 싸워준다면, 자신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도 오너, 저는 이미 중상을 입어 더 이상 싸울 수 없으니, 옆에서 당신을 도울 수밖에 없습니다.”양강인은 몇 번 기침을 하고 약한 척하며 말했다.“당신은 저 자식이 이미 기력이 다했다고 확신한다면, 당신들 원앙문의 실력으로 충분히 그를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더 이상 나서지 않겠습니다.”‘젠장! 싸우려면 네가 싸워! 나를 대신 죽이려 하지 마라!’“양 오너, 혹시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도미숙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믿지 않는 게 아니라, 몸이 따라주질 않습니다.”양강인은 가슴을 움켜쥐고 또다시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그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좋아! 양 오너가 나서지 않겠다면,, 우리가 직접 나서겠습니다!”도미숙은 불만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곁에 있는 두 명의 원앙문 고수에게 명령을 내렸다.“너희 둘이 함께 정면으로 공격해라! 나는 뒤에서 기회를 노리겠다!”“네?”그 말을 들은 두 명의 원앙문 고수는 얼굴이 굳어지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금도문 오너인 양강인도 저 자식에게 중상을 입었는데, 하물며 그들이야?만약 유진우가 정말로 독에 중독되
두 명의 고수가 유진우의 검 한 방에 베이며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었다.그들의 떨어진 머리를 보며 도미숙은 눈꺼풀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그녀는 줄곧 유진우가 강한 척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고 방금 전의 강한 말들도 단순한 허풍일 뿐이라 여겼다.그러나 지금에서야 그녀는 유진우의 강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오로지 한 검에 두 명의 반보 종사급 고수를 목 베어 죽이는 것은 분명히 십향연골산에 중독된 것이 아니다.‘설마, 저 자식이 정말 백독불침의 체질이란 말인가?’“제기랄! 만약 아까 내가 나섰으면 죽을 뻔했군!”양강인은 침을 꿀꺽 삼키며 유진우를 바라보며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그는 지금까지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스물 남짓한 나이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닌 자라니.서남 무림 제일인이라는 강도현조차 혼자서는 유진우에게서 손톱만큼의 이득도 보지 못할 것이다.“네... 네가 어떻게...”도미숙은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고 몸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유진우가 방금 휘두른 두 검은 너무나도 무서웠다.첫 번째 검은 금도문 오너인 양강인을 중상으로 만들었고두 번째 검은 반보 종사급 고수 두 명을 단숨에 베어버렸다.단 두 번의 검만으로 전세 역전하고 그녀를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지금,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영리하구나. 정작 본인은 나서지 않고, 두 명의 부하들만 죽게 만들었으니, 정말 훌륭한 오너야.”유진우는 한 손에 검을 들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죽어라!”도미숙은 대적을 만난 듯 소매를 휘두르며 먼저 선공을 날렸다.“슈우우우...”수많은 암기가 폭풍우처럼 유진우를 향해 쏟아졌다.이 암기들 속에는 한빙신침 한 개가 섞여 있었다.한빙신침은 원앙문의 조상이 남긴 보물, 그 파괴력이 굉장할 뿐만 아니라 명중하면 즉시 얼음처럼 몸을 마비시키는 특성이 있었다.아무리 무림 종사라 할지라도 한빙신침에 맞으면 즉시 경맥이 얼어붙고 몸이 굳어버린다.다만 한빙신침의 수량이 너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