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오의 맨 끝에 서 있던 유진우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창궁검을 거둬들이고 있었다.방금 조이준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본 유진우는 일부러 맨 뒤에 서서 빠른 속도로 검을 사용했다.이 검은 소리도 없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금빛 덩굴을 쉽게 두 동강 내어 조이준을 위험에서 구해냈다.유진우가 조이준에게 도움을 준 이유는 한편으로는 함께 동행해온 인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활용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이청성의 말대로 각 세력은 이미 오아시스에 들어섰고 그중에는 고수들이 구름처럼 많았다.용원의 기를 찾기 전까지는 유진우의 신분을 폭로하면 안 되었지만 조이준의 존재는 그들에게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다.필경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무도 마스터로 아직은 여유가 있었기에 유진우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방금 아무도 모르게 그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금빛 덩굴은 아무리 단단해도 무도 마스터와 같은 수준일 뿐 대 마스터의 검은 막을 수 없었다.싸움터 한복판에서 금빛 덩굴이 잘려 나가자 은빛 덩굴과 회색 덩굴은 모두 흔들거리기 시작했다.슥! 슥! 슥!허공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모든 덩굴은 미친 듯이 조이준을 향했고 빽빽한 공격은 온 천지를 뒤덮어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조이준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즉시 땅에 떨어진 두 칼을 주워 들더니 마스터의 강기를 돌려 공격해 온 나무 덩굴들을 자르기 시작했다.금빛 덩굴은 빠르고 힘이 세며 단단해서 뚫기가 어려웠지만 이 일반적인 회색 덩굴이든 은색 덩굴이든 상처를 입은 조이준이라도 쉽게 대처할 수 있었다.조이준이 자신이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어진 장면은 그를 놀라게 하며 급속히 얼굴색이 어두워지게 하였다.그는 잘려 나간 금빛 덩굴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대량의 금색 액체를 내뿜은 뒤 금빛 덩굴의 상처는 눈에 보이는 속도로 치유되기 시작했으며 끝부분은 여전히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그 강한 생명력은 그야말로 사람들을 오싹하게 했다
“네? 방금 누가 도움을 줬다고요?”이 말을 듣고 모두 서로를 쳐다보면서 의문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들은 방금 황급히 도망치느라 다른 것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방금 무슨 의외의 일이 발생한 건가?“조 선배님, 선배님의 으뜸가는 실력에 어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시겠어요.”“맞아요. 선배님의 싸움에 저희는 전혀 끼어들 공간이 없어요.”“조 선배님, 혹시 방금 누가 선배님을 방해라도 했나요? 빌어먹을 놈이네요.”사람들은 제각기 떠들며 이론이 분분했고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그들은 오직 조이준과 같은 마스터 급 강자만이 이런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고 방금 조이준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가혹한 결과를 보았을 것으로 생각했다.“조 선배님, 방금 무슨 일 있었던 걸 가요?”서지석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아니... 아니야, 너희들 아니면 됐어.”조이준은 고개를 저으며 더는 묻지 않았고 방금 떠보기만 했을 뿐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았다.만약 정말 대 마스터 강자가 곁에 있다면 그는 오히려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지금 그는 그냥 우연이 지나가던 고수가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생각하고 훗날 만약 만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생명의 은혜를 갚을 거로 생각했다.“조 선배님, 수고 많으셨어요. 선배님이 원하시던 곤룡띠에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가며 이미 준비해 둔 곤룡띠를 넘겨주면서 말했다.조이준은 마음속에 내려가지 않은 의문점 때문에 2초가량 머뭇거렸지만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다.곤룡띠 같은 보물은 그가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거라 당연히 거절하지 않을 것이고 기껏해야 나중에 상대방에게 뭔가 보상해 줄 수 있을 것이다.“이청성 씨, 정말 고마워요. 일을 이렇게 통쾌하게 처리하는 체면을 봐서라도 앞으로 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제가 도움을 줄게요.”조이준은 거래에 아주 만족해하며 만면에 웃음기가 가득 찼다.비록 방금 위험한 상황을 겪었지만 다행히 보물을 얻어서 믿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조
“진 대장님, 앞에 있는 두 무리의 정체는 뭐죠?”이청성은 섣불리 나서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며 조용히 물었다.“인원이 많은 쪽은 복장으로 보아 환해맹 소속일 가능성이 큽니다.”진이수가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환해맹?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요?”이청성이 다시 물었다.“서남 지역에서 가장 강한 세 파벌이 있는데 각각 유룡종, 금도문, 비설파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여섯 개의 강대한 파벌이 자리하고 있는데 환해맹도 그중 하나죠.”진이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설명했다.“다만 환해맹은 일반 파벌들과는 달리 행동 방식이 꽤 극단적인 편입니다. 그래서 평판이 좋지 않죠. 내부도 워낙 혼란스러워서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 있어요.”그 말을 들은 서지석이 못마땅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흥! 결국 도덕도 없고 인격도 바닥인 질 나쁜 무리들이 한데 모여 만든 집단이라는 거잖아요.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실상은 약탈과 강도질이나 일삼는 자들이죠. 한마디로 이 세계의 쓰레기들이에요!”“그렇군요.”이청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그럼 저들이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죠?”“화려한 옷을 입고 있긴 한데 별다른 파벌의 상징이 없어 누구인지 알기 어렵습니다.”진이수가 고개를 저었다.보통 파벌의 제자들은 외출할 때 통일된 복장을 갖춰 입는다.그러면 이름을 떨치게 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잠깐만요! 선배님, 저 사람들 어딘가 낯이 익지 않아요?”이때, 금도문의 한 제자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저기 붉은 옷을 입은 여인 말입니다. 혹시 원앙문의 장 선배님 아닙니까?”“원앙문?”서지석은 눈썹을 움찔하더니 앞을 유심히 바라보았다.그러다 문득 얼굴빛이 변하더니 놀라 소리쳤다.“은경 씨잖아!”“지석 씨, 저들 중에 아는 분이 계십니까?”이청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는 분이라니요! 저 장 선배님은 우리 선배님의 약혼녀예요!”금도문의 제자가 뜻밖의 사실을 폭로했다.“약혼녀?”그 말에 주변
“건방지군! 네가 뭐라고 감히 여기서 그런 망언을 지껄이는 거냐?”약혼자가 위협받는 모습을 본 서지석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애초에 조용히 넘어가려 했던 그였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싶었다.하지만 환해맹 놈들은 너무나도 오만방자했다. 심지어 금도문조차 안중에도 없는 듯 공공연히 약탈을 저지르려 했다. 참으로 파렴치한 짓이었다.“너...”환해맹의 한 제자가 막 입을 떼려는 순간 중년 남자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리고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다들, 재물은 그저 부수적인 것이야.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이 단순한 이치를 모를 리 없을 텐데?”“그러면 뭐 어쩔 건데?”서지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그러면 당연히 보물을 우리한테 넘겨야지.”중년 남자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돈을 잃고 재앙을 피하는 것이야 말로 현명한 거야. 보물만 건네주면 우린 즉시 떠날게. 더 이상 귀찮게 굴지도 않을 거고. 어때?”“꿈 깨!”장은경이 눈을 부릅뜨며 이를 악물고 외쳤다.“죽는 한이 있어도 너희 같은 비열한 놈들에게 보물을 넘길 생각은 없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중년 남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러자 그 뒤에 서 있던 환해맹 무리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냈다.“장로님! 이런 놈들한테 뭐 하러 설득을 합니까? 그냥 다 죽이면 되죠!”“맞습니다! 우리가 수는 훨씬 많은데 저런 하찮은 놈들이 뭐가 두렵겠습니까?”“우린 원래 이런 식으로 살아왔잖아요. 죽이고 빼앗는 게 뭐가 새삼스럽다고!”환해맹의 무리들이 저마다 떠들어댔다.그들의 눈에 서지석과 장은경은 단지 잡아먹기 좋은 어린 양에 불과했다.순순히 보물을 넘기면 목숨만은 살려줄 수 있다.하지만 그것을 거부한다면 오직 죽음뿐이었다.“장로님, 금도문의 세력이 두려워 망설이시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한 환해맹 제자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금도문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건 고작 몇 명뿐입니다. 두려워할 필요 전혀 없죠. 우리가 이곳에서 깔끔
“뭐야?”멀리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원앙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서지석은 순간 얼이 빠졌다.설마 했는데 장은경 일행이 이렇게 가차 없이 도망칠 줄은 몰랐다.심지어 인사 한마디조차 없었다.설령 후퇴하더라도 미리 말은 해야 하는 법 아닌가?이건 대체 뭐지? 동료를 버리고 도망친 거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지석 씨가 목숨을 걸고 구하러 갔는데 원앙문의 제자들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치다니. 정말 의리도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들이군!”멀지 않은 어둠 속에서 진이수가 고개를 저으며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사람 속을 알 수가 없구나. 보아하니 서 형의 약혼녀라는 사람도 별 볼 일 없는 인물이었어.”“불쌍한 지석 씨, 저 배신자들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위험에 빠져 버렸잖아요.”“......”사방에서 온갖 목소리가 쏟아졌다.금도문과 원앙문은 오랜 세월 세교를 맺어왔었고 게다가 서지석과 장은경은 약혼 관계까지 맺었다.일반적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함께 힘을 합쳐 적을 물리치는 멋진 이야기 하나쯤 만들어야 정상이다.그런데 현실은 달랐다.장은경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지석을 버렸다.그 차가운 결단력은 보는 이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선배님! 장은경 씨 일행은 벌써 도망친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하죠?”전투를 이어가던 금도문의 제자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순식간에 어두운 표정으로 변하며 분노가 이는 걸 억누르지 못했다.그들은 원앙문을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정작 원앙문의 제자들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도망쳤다.버려진 채 적들과 맞서 싸우게 된 상황은 누가 봐도 용납할 수 없는 배신이었다.“이제 와서 선택지는 없다. 끝까지 싸운다!”서지석은 이를 악물고 더욱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야! 너희 금도문 놈들 대체 왜 이렇게 멍청해? 저놈들이 너희를 팔아넘겼는데도 아직도 목숨 걸고 싸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중년 남자가 혀를 차며 욕설을 내뱉었다.이런 융통성 없는 놈들과 맞닥뜨리다니 재수가 없다
서지석 일행은 날카로운 소리를 따라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하자 장은경이 환해맹 무리에게 포위당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와 함께 있던 원앙문의 제자들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고 오직 장은경만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그녀는 이미 부상을 입은 데다 체력도 소진된 상태였다. 포위망이 완전히 좁혀진다면 그녀의 운명은 불 보듯 뻔했다.“얘들아! 이 아가씨, 이렇게 예쁘게 생겼는데 그냥 죽이긴 아깝잖아? 생포해! 오늘 제대로 즐겨보자고!”환해맹의 두목 격인 남자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그는 눈을 번뜩이면서 장은경의 가녀린 몸매를 탐욕스럽게 훑었다.“좋습니다!”환해맹 제자들이 낄낄대며 추악한 미소를 지었다.원앙문의 대선배 장은경은 그녀는 손꼽히는 미인으로 유명했다. 그런 여인을 탐할 기회라면 이곳까지 목숨 걸고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더러운 놈들! 전부 죽여버리겠다!”장은경은 분노에 치를 떨며 쌍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적의 목숨을 노렸다.하지만 그녀는 혼자였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 포위망을 뚫을 힘조차 없었다. 환해맹은 그녀를 조롱하며 점점 장난삼아 희롱하기 시작했다.“하하하! 계속 버텨봐라! 네가 더 버틸수록 난 더 신나거든!”“그래! 어서 덤벼보라고!”우두머리는 일부러 가벼운 공격을 섞어가며 장은경을 긁었다.때때로 그녀의 몸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상처를 하나씩 내어 그녀의 체력을 더욱 깎아내렸다.그는 환해맹에서 오래 활동하며 수많은 여자를 농락해 왔지만 이렇게 독기를 품은 장미 같은 여인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오늘 밤을 그는 마음껏 즐길 생각이었다.“짐승 같은 것들! 너희 전부 죽고 싶냐!”그 순간이었다.“지석 씨! 도와줘요!”절망 속에서 장은경은 한 줄기 빛을 본 듯 외쳤다. 서지석이 도착한 것이다.“이런 빌어먹을! 또 네놈이냐!”우두머리가 뱉은 침이 땅에 튀었다. 그의 표정이 사악하게 일그러졌다.“장로님께서 네놈을 죽이지 못
잔인한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무리의 우두머리만이 뛰어난 실력으로 화살을 모두 막아냈을 뿐 환해맹의 다른 제자들은 하나둘씩 피바다 속으로 쓰러져갔다.“망할 놈들! 감히 우리 환해맹 사람을 죽여? 딱 기다려, 오늘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다!”남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독설을 내뱉고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지석 씨! 저자를 놓치면 안 돼요!”장은경이 다급하게 외쳤다.“이 개 같은 놈! 어디로 도망치려는 거냐!”서지석은 망설임 없이 칼을 빼 들고 그를 쫓아갔다. 두 사람은 곧 격렬하게 맞붙었다.환해맹의 당주인 남자는 분명 뛰어난 무공을 지녔지만 금도문의 천재 무사인 서지석과 비교하면 한 수 아래였다.수십 합이 오간 끝에 서지석은 팔을 베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마침내 그를 내리쳐 땅바닥에 쓰러뜨렸다.그러고는 긴 칼을 그의 목에 바짝 들이대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제발! 제발...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잘못했소!”“위로 여든이 넘은 어머니가 계시고 갓 태어난 자식도 있소.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오!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겠소!”우두머리는 겁에 질려 필사적으로 애원했다.“흥!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애초에 그러지 말았어야지!”서지석이 차갑게 내뱉었다.“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오! 나도 억지로 떠밀린 거라오!”남자는 거의 울먹이며 애원했다.“살려만 준다면 가진 보물을 전부 바치겠소!”“너...”서지석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이더니 한순간에 남자의 가슴을 꿰뚫었다.칼을 든 이는 다름 아닌 장은경이었다.“지석 씨! 저런 놈하고 말이 뭐가 필요해요? 이런 쓰레기는 그냥 죽여버리는 게 답이에요!”장은경은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남자의 몸을 몇 번이나 더 찔렀다.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손을 멈췄다.서지석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환해맹 놈들은
금도문의 몇몇 제자들은 장은경의 행동이 못마땅했지만 서지석의 체면을 생각해 결국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그렇게 해서 서지석의 보호 아래 장은경은 무사히 무리에 합류할 수 있었다.“은경 씨, 정식으로 소개할게요. 이분은 이청성 씨예요. 얼굴도 마음도 아름답지요. 조금 전 환해맹 무리를 쫓아내고 우리를 구해준 것도 바로 이분이에요.”서지석은 장은경을 데리고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정말 감사드립니다.”장은경은 이청성을 향해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생명의 은혜를 입었으니 돌아가면 반드시 파벌 자제들께 이 일을 보고하고 크게 보답하겠습니다.”“아이고, 그럴 필요 없습니다.”이청성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지석 씨의 약혼녀잖아요. 우린 모두 벗인 셈이니 당연히 도와야 할 일이었어요.”“청성 씨, 어쨌든 우리 금도문과 원앙문 모두 이번 일로 큰 신세를 졌어요.”서지석이 두 손을 모아 정중하게 인사했다.환해맹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이청성은 그들을 적으로 돌릴 위험까지 감수하며 도와준 것이니 이 은혜를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은경 씨, 그리고 이분은 유진우 씨예요. 젊지만 재능이 뛰어나고 실력도 대단하지요. 유룡종의 제2수제자인 엄기준마저 그의 손에서 패했을 정도예요.”서지석은 손짓하며 유진우를 가리켰다.“오? 유룡종의 엄기준을 이기셨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장은경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유진우를 바라보았다.“게다가 이렇게 젊으시다니, 혹시 어느 파벌 소속이신가요?”그녀의 시선은 유진우의 단정한 외모를 훑었다. 잘생긴 데다 풍채까지 좋으니 보기 드문 인물이 분명했다.“저는 소속 파벌이 없습니다. 그냥 떠도는 무사일 뿐이죠.”유진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렇다면 잘됐군요!”장은경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우리 원앙문에서는 유진우 씨 같은 젊고 유능한 인재가 필요해요. 혹시 우리 파벌에 들어올 생각은 없으신가요?”엄기준을 이길 실력이라면 서지석과도 대등할 터였다
문을 닫은 유진우는 이제 막 침상에 올라 명상하려던 참이었다. 유진우는 자신의 방 안에 낯선 여인이 들어와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베일 달린 모자를 쓴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는 맑고 생기가 넘쳤다.몸 전체에 풍기는 고귀하고도 우아한 기운은 그 자체로도 사람의 시선을 빼앗을 만큼 압도적이었다.그 여인은 다름 아닌 이청성이었다.“어? 언제 들어온 거예요?”유진우는 잠시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전까지 장은경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정신이 없던 그는 이청성의 존재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진우 씨, 저 밤에 혼자 있으려니 외롭고 무서워서 그런데 조금만 같이 있어 줄 수 있을까요?”이청성은 방금 전 장은경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하던 말을 흉내 내며 장난을 쳤다.“청성 씨, 그래도 한 나라의 공주인데 좀 정상적으로 굴 수는 없어요?”유진우는 눈을 흘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하하하... 진우 씨,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네요. 미인이 먼저 안기려 들다니 말이에요.”이청성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더니 말했다.“저였으면 그냥 그 흐름대로 받아줬을 거예요. 저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 있나? 괜히 이상한 취향이 있다고 오해받는 것보단 낫잖아요.”“하하... 제가 그렇게 쉬운 남잔 줄 알아요?”유진우는 마지못해 웃으며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그러면서 차를 두 잔 따르더니 첫 잔을 이청성에게 건넸다.“그래서요, 밤늦게 무슨 일로 찾아온 거예요?”“별건 아니고요, 그냥 조심하라고 알려주러 왔어요. 우리, 누군가에게 찍힌 것 같아요.”이청성은 따뜻한 찻잔을 들고 조심스럽게 불어 식히며 말했다.“왕 아저씨가 순찰 돌다가 우리가 묵는 여관 근처에서 수상한 자들이 어슬렁거리는 걸 봤대요. 누가 봐도 이상한 수작 부릴 게 분명해 보였대요.”“그래요?”유진우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 한 귀퉁이를 살짝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과연 몇몇 그림자가 여관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감시
장은경은 말을 하며 천천히 다가오더니 가냘픈 손으로 자연스럽게 유진우의 단단한 가슴팍을 어루만졌다.그녀의 촉촉한 눈동자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매혹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그 시선은 마치 사람의 영혼까지 삼켜버릴 듯이 치명적이었다.평범한 무사라면 그녀와 눈을 마주친 순간 금세 정신을 빼앗기고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이것이 바로 원앙문의 간판 매혹술, 홍안취였다.원앙문이 서남 지역에서 오래 세력을 유지하며 점점 더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 홍안취라는 매혹술의 공이 컸다.얼굴이 아름다울수록 이 매혹술을 깊이 수련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남자에게 끼치는 유혹의 힘도 강해졌다.장은경은 어릴 적부터 홍안취를 익혀온 터라 벌써 십수 년의 세월 동안 그 기술을 연마해 완성의 경지에 이르렀다.게다가 그녀는 외모와 몸매 모두 뛰어나 그녀의 유혹을 버텨낼 수 있는 남자는 드물었다.금도문의 서지석도 이 매혹술에 빠져 그녀에게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자신만만했다. 유진우가 조금이라도 흔들리고 욕망의 틈을 보이기만 하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마음의 방어선을 무너뜨려 그를 손에 넣겠다고 결심했다.“저기요, 적당히 하세요. 할 만큼 했으면 얼른 돌아가 쉬세요. 저도 자야 하니까요.”장은경이 요염하게 몸을 흔들며 농염한 눈빛으로 다가갔지만 유진우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차갑게 응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히려 불쾌함이 어렸다.“뭐라고요?”장은경의 미소가 한 순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멍하니 서 있었다.자신의 매혹술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내라도 그녀가 유혹하면 반드시 흔들리는 법이었다.하지만 유진우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고 욕망의 기색은커녕 오히려 불쾌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이런 경우는 그녀에게 처음이었다.“진우 씨, 저 오늘 밤 혼자라서 너무 외롭고 무서워요. 진우 씨가 저 좀 위로해 주면 안 돼요?”장은경은 연약하고 애처로운 모습으로 태도를 바꿨다.방금
어둠은 빠르게 내려앉았다.여관에서 이청성의 경호팀 팀원들은 저녁을 먹은 뒤 일찌감치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단 두 조의 인원만 남겨 교대로 순찰과 경계를 서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죽음의 사막에서 지내는 동안 그들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이제야 비로소 그곳을 벗어났으니 오늘 밤만큼은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한편, 2층의 한 객실 안에서는 유진우가 따뜻한 물로 기분 좋은 샤워를 마친 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앉아 두 눈을 감고 고생한 몸을 풀기 시작했다.이번 임무는 그야말로 완벽했다.보물이라 불리는 것들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그는 그저 영액 한 병만 가지고 돌아왔다.이런 걸 마시는 건 처음이라 그저 간단하게 맛이나 보자는 생각이었다.유진우 정도의 실력이면 사실 영액으로 얻을 수 있는 상승효과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게다가 그의 손에는 무림의 최고 보물이라 불리는 천영 구슬이 있었다. 그 덕에 수련 속도는 비약적일 것이다.그러니 영액 같은 건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그리고 사실상 영액을 과하게 마시면 몸에 상당한 부담이 쌓이게 되고 한편으로는 체력과 잠재력을 미리 소모하는 셈이었다.물론 영액은 단기간 내에 실력을 끌어올리고 경계를 돌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그러나 그렇게 급하게 돌파한 경지는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아 매우 불안정하고 한편으론 쉽게 흐트러져 정신이 붕괴되는 위험이 따르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 경지를 돌파한 무사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단점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영액의 효능은 엄청났다.단지 수련의 경지를 올리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다.대부분의 무사들에게 한 단계 높은 경지는 평생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과도 같다는 건 잔인한 현실이었다.그런 그들에게 영액으로 경지를 돌파하고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건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똑똑...유진우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을 때 문득 문을
“뭐라고? 영액이라고?”그 말을 들은 원앙문의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영액은 무사에게 있어 수련의 보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충분한 양의 영액만 있다면 평범한 무사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꿈으로만 바라던 마스터의 경지를 돌파할 수 있게 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액은 너무나도 희귀하고 귀한 보물이었다. 대개 자연의 천연적인 약재 속에 소량 존재하며 이를 추출하고 정제해 얻는 데는 큰 정성과 시간이 소요된다.한 방울의 영액은 천금의 가치를 지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병 하나의 영액만으로도 피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만약 장은경이 가져온 물주머니가 죄다 영액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네, 맞습니다. 이 물주머니 안에 든 건 영액이에요. 게다가 이 한 주머니가 끝이 아닙니다. 무려 여덟 자루나 가져왔어요.”장은경의 말은 다시 한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여... 여덟 자루의 영액이라고?”도미숙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손마저 덜덜 떨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얼이 빠진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그 순간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만약 정말 그 물주머니가 전부 영액으로 가득 찼다면 원앙문에는 지금껏 없었던 하늘이 내린 기회가 찾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렇게 많은 영액이 있다면 원앙문은 단번에 일류 파벌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좋다! 정말 잘 됐다!”“이 영액만 있다면 우리 원앙문도 일떠설 수 있어!”“은경아! 넌 정말 우리 원앙문의 복덩어리야!”“지금 당장 선언하마. 오늘부터 넌 원앙문의 차기 오너로 임명된다. 장로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야!”도미숙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벅찬 감정으로 직접 장은경을 차기 오너의 자리에 앉혔다.이에 대해 장로들이나 호법들 모두 의견이 없었다.장은경은 원앙문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제자였고 언젠가는 오너 자리를 물려받을 인물이었다. 이번 공로로 인해
“후배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어요!”장은경의 눈가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그녀는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했다.“그러니까 환해맹이 보물을 노리고 너희를 매복했다고?”이야기를 들은 도미숙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맞아요! 그들은 미쳐버린 거나 다름없어요. 탐욕에 눈이 멀어 머릿수에만 의존한 채 우리 후배들을 모두 잔혹하게 죽였어요.”말을 마친 순간 장은경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썩을 놈의 자식들! 감히 우리 원앙문 제자들을 죽이다니... 반드시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도미숙은 이를 악물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그녀가 수련을 위해 밖으로 보낸 제자들은 모두 원앙문의 정예병들이었고 그들이 거의 전멸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찢어놓았다.“이번에 지석 씨와 그쪽의 사람들이 나서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미 저승길에 올랐을 거예요...”장은경은 흐느끼며 말했다.“서지석, 내 제자를 구해줘서 고맙네. 우리 원앙문은 금도문에게 큰 빚을 졌어.”도미숙은 고개를 숙이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오너님, 괜찮습니다. 금도문과 원앙문은 원래부터 가까운 사이였고 저와 은경 씨는 약혼한 사이입니다. 그녀가 위험에 처했는데 돕는 건 당연하지요.”서지석은 손을 모아 공손히 예를 갖췄다.“훌륭하군! 자네를 선택하기 잘했어!”도미숙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말했다.“아, 맞다. 오늘 아침 자네 사부께서 사람들을 데리고 막 이곳에 도착했어. 지금 마을 끝 쪽에 머무르고 계시니 어서 가보게나.”“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서지석은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한 뒤 곧바로 몇 사람을 이끌고 마을 끝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그들은 귀중한 보물을 많이 지니고 있었고 파벌의 고수들과 합류해야만 비로소 완전히 안전해질 수 있었다.“은경아, 너희가 죽음의 사막에 들어갔다 온 지도 꽤 됐는데 수확은 있었느냐?”이때, 백발의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흥,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도도한 척은.”멀어져 가는 유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이수는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툴툴거렸다.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먼저 품에 안기겠다는데 남자라면 누구든 거절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진이수의 눈에 비친 유진우는 그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일 뿐이었다.겉으론 고상한 체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이런 불만은 속으로만 품을 뿐 현실적으론 힘의 격차가 너무 컸기에 함부로 나설 엄두는 내지 못했다.그렇게 몇 마디 중얼거린 그는 블랙스콜피온 팀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이번 죽음의 사막 원정에서 그의 팀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보물도 꽤 많이 거둬들였다.이 보물들을 잘 처분하면 평생 호화롭게 살아도 남을 만큼의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터였다.“선배님, 괜한 정을 나누어 줬군요. 진우 씨는 애초에 선배님을 눈에 두지도 않았어요.”한 금도문의 제자가 비웃으며 말했다.장은경은 외모 하나는 출중했지만 사람 됨됨이가 좋지 못했다. 마음이 사악하고 꿍꿍이가 많은 사람 그 자체였다.저런 사람과 엮였다간 어느 순간 자신이 팔려나갈지도 모를 일이었다.“흥.”장은경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고운 얼굴에 한기가 내려앉았다.지금껏 수없이 써온 미인계는 늘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유독 유진우 앞에선 번번이 실패했다.이 사실이 그녀를 분노케 했고 동시에 쉽게 물러서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생겼다.자기한테 넘어오지 않는 남자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은경 씨, 제가 보기엔 진우 씨 이미 마음을 둔 사람이 있는 듯해요. 그리고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그는 유룡종도 눈에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 같은 파벌은 기회조차도 없을 겁니다.”서지석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그는 5년 전 장은경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 뒤로 줄곧 그녀를 마음에 품어왔다. 마침내 체면을 무릅쓰고 사부님에게 간청해 원앙문에 혼인을 청했으며 상당한 대가를 치른 끝에 겨우 혼약을 맺을 수 있었다.그런 그였기에 장은경이 유진우를 마음
그리고 마침 이청성의 집사 왕 아저씨가 마침 많은 보급품을 실어 도착했다.간단히 휴식을 취한 후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그렇게 꼬박 사흘을 걸은 끝에 셋째 날 오후가 되던 때 그들은 죽음의 사막에서 벗어나 예전에 잠시 머물렀던 마을에 도착했다.사흘 내내 모두가 바짝 긴장한 채 지냈다. 길 위에서 무슨 위험을 마주할까 마음을 놓지 못해 밤에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이제야 겨우 발을 들인 마을에서 그들은 드디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벌써 날이 저물고 있군요. 오늘 밤은 여기서 쉬어가죠. 급히 떠나야 하는 분은 편히 가보셔도 됩니다. 그럼 오늘 저는 이만.”마을 입구에서 이청성이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자신의 경호팀과 함께 전에 투숙했던 여관으로 향했다.임무는 이미 끝났고 임시로 결성된 이 팀 역시 해산할 때가 됐다.누구 하나 손해를 본 사람 없이 각자 모두 원하는 보물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갈 시간이었다.“진우 씨,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막 떠나려던 유진우를 장은경이 불러 세웠다.장은경은 왠지 머뭇거리며 수줍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박에 눈치챌 수 있는 분위기였다.“피곤하군요.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하시죠.” 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유진우는 그녀에게 호감이 없었다.“그렇다면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장은경은 상냥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진우 씨는 타고난 재능에 실력도 출중하세요. 저희 원앙문은 바로 진우 씨 같은 인재를 필요로 해요. 혹시 저희 파벌에 들어올 생각은 없으신가요? 진우 씨께서 고개만 끄덕이신다면 진우 씨는 저희 파벌에서 가장 귀하게 모셔질 분이 될 거라고 제가 보장할게요. 혜택과 대우는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릴 수 있어요!”“죄송하지만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네요.”유진우는 단칼에 거절했다.그러고는 몸을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잠깐만요!”장은경은 다급해진 듯 그의 앞을 막아섰고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
“오너님에게 체면을 세워주자고, 절반 남기고 나머지만 가져가자.”이청성이 단호하게 말하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보물을 담을 자는 보물을, 영액을 담을 자는 영액을 챙겼다. 겉으로는 절반을 남긴다 했지만 사실은 누구랄 것 없이 조금씩 몰래 더 숨겼다.강도현은 이미 그 꼼수를 눈치챘지만 그냥 못 본 척 눈을 감았다.유진우가 드러낸 힘은 이미 모든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그 누구도 감히 무리수를 둘 수 없었다.정면으로 맞섰다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몰락할 수도 있었다.게다가 이 수중궁전 근처엔 보물을 눈독 들이는 세력들이 아직 많이 숨어 있었다.만에 하나 큰 싸움을 하고 상처만 입은 채 보물을 남에게 뺏기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이야말로 남 좋은 일을 대신 해준 셈이었다.그렇게 이청성을 비롯한 일행은 크고 작은 꾸러미를 잔뜩 챙겨 주저 없이 수중궁전을 빠져나왔다.유룡종과 비설파의 고수들은 여전히 날 선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지만 아무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강도현이 목숨 걸고 나서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유진우를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렇게 쉽게 빠져나올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많은 보물을 챙기고 말이야. 정말 불행 중 다행인 것 같아!”궁전을 벗어난 후에도 서지석은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듯 두려움이 남아 있는 얼굴로 굳어있었다.아무래도 방금까지 그들이 상대했던 이는 유룡종과 비설파의 정예 고수들이었고 그 중엔 서남 제일의 고수인 강도현까지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그런 거대한 세력은 그야말로 일대를 쓸어버릴 만한 힘이었다.금도문의 모든 병력이 총동원되어도 정면 승부는 최대한 피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그랬기에 애초에 서지석은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목숨이라도 건지면 다행이라 여겼을 뿐이었다.하지만 결과는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었다.그들은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빠져나왔고 영액과 보물도 대부분 지켜냈다. 이건 그야말로 뜻밖의 횡재였다.“우리가 이렇게 순조롭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진우 씨 덕분
이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온 세상이 떠들썩해지지 않겠는가?“좋아요! 나이스!”장은경은 환호성을 질렀다. 기쁨에 들뜬 눈동자가 반짝이며 빛났다.얼굴도 잘생기고 젊은 나이에 실력까지 뛰어난 데다 미래까지 창창한 인재라니, 이런 청년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야 했다. 설령 서지석과의 약혼을 파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유진우의 눈에 들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었다.“젠장! 또 저 자식이 잘난 척할 기회를 내줘버렸어!”진이수의 얼굴은 어둡게 굳어버렸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유진우의 위력이 커질수록 진이수의 존재감은 점점 작아질 게 분명했다.진이수는 이제 거의 반 포기 상태였다.이제는 그저 유진우가 자신에게 괜한 시비를 걸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세 수를 받아보겠다고 했는데 고작 한 번도 버티지 못했군요. 보아하니 비설파의 오너라는 자도 별 볼 일 없군요.”유진우는 조소가 서린 말투로 담담하게 말했다.그러자 비설파의 고수들은 목덜미까지 붉히며 분노로 치를 떨었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오너조차 유진우한테 패한 마당에 그들 따위가 나서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이제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강도현뿐이었다.서남 제일 고수라 불리는 강도현이라면 유진우를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 “오너님! 저놈은 너무나도 오만방자합니다. 제발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십시오. 우리 비설파의 자존심을 지켜주셔야 합니다!”“그래요, 오너님! 방금 저자는 기습 공격으로 겨우 이긴 겁니다. 오너님께서 나서신다면 틀림없이 쉽게 이기실 수 있을 겁니다!”“오너님! 본때를 제대로 보여주십시오!”비설파의 제자들이 앞다투어 강도현에게 부탁했다.모두의 간절한 시선을 받은 강도현은 난처함을 느꼈다.그는 유진우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만에 하나 패하기라도 하면 평생 쌓아온 명성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마찬가지로 서남 제일 고수라는 칭호도 물거품이 될 터였다.문제는 이렇게 수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