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실력이 백준 아저씨보다 떨어진다고 해도, 너 상대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어.”유진우가 말했다.“날 상대하겠다고? 네까짓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채원진이 가볍게 비웃었다.채원진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유장혁은 이제 막 대 마스터에 올라선 수준이었고 다른 뾰족한 수가 있다고 해도 그의 최선은 중기 대 마스터 수준이었다.그 반면에 채원진은 대원만에 가까웠다.두 사람의 차이는 두 단계 정도였지만 그 두 단계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은 차이를 보여주었다.유장혁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런 차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해봐야 아는 거잖아?”유진우는 손가락 끝으로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등 뒤에서 푸른 창궁검이 빠져나와 가볍게 그의 손에 내려앉았다.“좋아! 그렇게나 자신 있다고 하니, 나한테 직접 덤빌 기회는 주도록 하지.”채원진이 손을 휘두르자 빨간 불길을 머금은 창이 허공에 나타났다.그 창은 다름 아닌 이원무의 유품이자 신병 랭킹에서 3위를 차지한 용담적염창이었다.“너희는 절대 끼어들지 마. 오늘만큼은 내 실력으로 저 녀석의 콧대를 제대로 납작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창을 휘두르는 채원진의 몸에서는 엄청난 기세가 느껴졌다.그의 몸에서 나온 붉은 빛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구름 위에서 천둥이 치고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수백 미터 내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이 고개를 숙이며 몸을 낮추었다.보이지 않는 기세가 천지의 이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응?”채원진의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기운을 느낀 유진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지기 시작하더니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유진우는 이때까지 무도계에서 줄곧 순조롭게 나아가며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보지 못했다.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채원진에게서 전에 없던 압박감을 느꼈다.오늘 이 싸움이 고전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유장혁! 어서 덤벼, 네가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고 싶네!”채원진이 한 손을 내밀더니 이내 도발
“인정할 수밖에 없네. 너 좀 치는구나?”채원진은 한 손에 창을 든 채 당당하게 말했다.“이 세상에 솔로 스모크를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몇 없거든. 네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니, 어쩌면 몇 년 뒤엔 날 이길지도 모르겠네.”방금 채원진의 공격은 적어도 절반의 체력으로 만들어낸 기술이었다.유장혁은 그런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도 몸만 조금 밀렸을 뿐이니 그것만으로도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낼 수 있었다.그에게 5년이나 10년 정도의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채원진을 넘어설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경천 랭킹 5위라고 하길래 얼마나 강한 상대일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유진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뭐라고?”채원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이 애송이 자식이 감히 날 무시해?’“못 들었어? 다시 얘기해줄까?”유진우는 조금 전보다 목소리를 더 높여 또박또박 얘기했다.“네 기술 말이야, 정말 쓰레기라고. 내 예상보다 훨씬 나약해!”“이 자식이 진짜, 너 정말 죽고 싶구나?”그 말에 채원진은 버튼이라도 눌린 듯 진심 어린 분노를 표출했다.긴 창이 부르르 떨리더니 그의 온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폭발하듯 솟아났다. 채원진은 발끝으로 땅을 가볍게 박차며 이내 붉은 그림자로 변해 유진우에게 돌진했다.지금 그의 레벨로는 아무도 감히 채원진을 무시할 수 없었다.감히 채원진을 무시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과 다름없었다.“장하낙일!”거리를 반쯤 좁혀온 채원진이 창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18개의 창날이 순식간에 폭발하듯 나타나 유진우의 주위를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마침내 18가지의 창날이 무지갯빛 광선으로 모여 유진우를 향해 돌진했다.그 무지갯빛 광선이 지나가는 곳마다 공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땅은 깊게 파헤쳐졌다.유진우는 말로 채원진을 살살 긁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채원진의 강력한 일
“기습이야?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까?”채원진은 큰소리로 외치며 양손으로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긴 창에서는 붉은 열기가 터져 나오며 유진우와 하늘에서 내려오던 그림자를 향해 날아갔다.“펑! 펑!”두 번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유진우는 창에 밀려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고, 하늘에서 내려오던 그림자는 채원진의 공격에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더니 점차 금빛의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금빛의 그림자에 숨어 있던 홍복홍은 그 충격에 높이 튕겨 올라갔고, 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수십 미터 정도 뒤로 밀려갔다.반면, 채원진은 겨우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기습을 당한 상황에서도 1대 2로 싸워가면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는 것에서 여전히 그의 강력한 실력을 알 수 있었다.유진우와 홍복홍은 모두 대 마스터 급 강자들로서 이 세상의 정상에 있는 인물들이었다.그럼에도 채원진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이 두 사람을 상대해주고 있었다.“경천 랭킹 5위라더니, 역시 이름값 하네.”홍복홍과 유진우는 나란히 서서 채원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그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채원진의 실력은 생각보다 더 강했고 서경 전역을 샅샅이 뒤져도 그의 상대는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인도 홍복홍?”채원진이 미간을 좁히더니 입가에 냉소를 띠며 말했다.“언젠가 너랑 제대로 붙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기회가 안 됐거든. 어쩌면 오늘이 기회일지도 모르겠네. 일단 유진우부터 처리하면 바로 상대해줄게. 그럼 왕부는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겠지? 그럼 난 그걸 노려서 서경을 장악할 거야.”“그래? 네가 그 정도 수준일지 한 번 봐야겠네.”홍복홍은 차갑게 코웃음을 흘리며 은침을 꺼내 뒤통수에 찔러넣었다.유진우가 했던 것처럼 그 역시 유씨 가문의 비법으로 잠재력을 이끌어낸 죽음의 한판 승부를 걸기로 했다.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기기란 불가능했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다.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이 골칫덩어리를 해결해
그 금강은 홍복홍과 함께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채원진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했다.거대한 금강 앞에 채원진의 모습은 마치 개미와도 같았다. 금강이 채원진을 가볍게 한 번만 눌러도 순식간에 짓뭉개질 것처럼 보였다.“칠살!”홍복홍의 공격과 동시에 유진우도 함께 움직였다.그는 분노에 찬 눈을 크게 뜬 채, 온몸의 진기를 창궁검에 모으더니 바닥에 발을 힘껏 내디뎠다.“슉!”유진우와 검은 또다시 한 몸이 되어 검은빛으로 변하더니 채원진의 심장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호연정기!”필사적으로 달려드는 홍복홍과 유진우를 바라보던 채원진 역시 자신의 절대적인 방어 기술을 사용했다.채원진이 몸을 몇 번 흔들더니 거대한 하얀 기운이 주위에 원형의 보호막이 생겼다.보호막 위에는 복잡하게 생긴 룬 문자가 수도 없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고,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그 보호막은 신비로우면서도 기괴해 보였다.“쿵!”엄청난 굉음과 함께 홍복홍의 금강반야장이 정확히 보호막 위를 때렸다.보호막이 한 번 흔들리더니 물결 같은 진동을 일으키며 룬 문자에서 강렬한 빛이 순간적으로 번쩍였다.“쿵!”굉음이 또 한 번 울렸다.유진우의 치명적인 검이 보호막 위에 깊게 박혔다.홍복홍과 마찬가지로 창궁검도 채원진의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겉에 거센 파문만 일으켰다.홍복홍의 금강반야장은 계속해서 보호막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고, 유진우의 창궁검 역시 필사적으로 보호막을 뚫고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각각 한 구역씩 맡아 계속해서 강력한 공격을 이어갔다.이건 두 사람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이었다. 만약 채원진의 보호막을 깨지 못하고 그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쿠구궁!”유진우와 홍복홍의 몸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폭발하기 시작했다.그 순간, 두 사람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들의 모든 힘을 쥐어짜내 채원진의 보호막 위로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어대고 있었다.“찌직... 찌지 직...”유진우와 홍복홍의 필사
암기 형태로 발사되는 멸신독의 유효 사거리는 3미터였다.3미터 안에서는 기습공격으로 명중시킬 수 있었다.유태범이 암기를 꺼내 채원진의 등 뒤에서 기습공격을 가했을 때, 독침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쉽게 그의 몸에 꽂혀 들어갔다.“후... 드디어 끝났네.”유태범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마치 중요한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런 유태범과는 반대로 채원진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그는 놀란 듯한 눈빛으로 유태범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대체 왜입니까?”채원진은 눈을 크게 뜨며 얼굴에 드러난 충격과 당혹감, 불신과 깊은 의문을 숨기지 못했다.채원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유태범은 분명 서경 왕부와 절연한 사람이었고, 호룡각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밝은 미래만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날 배신해?’“정말 죄송합니다, 각주님. 저도 유씨 가문 사람으로서 유씨 가문이 멸망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유태범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게다가 장혁이는 제 친조카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인데, 제가 제 조카를 왜 배신합니까?”“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극이었다는 거냐고요? 배신이고 흔적이고 뭐고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예요?”채원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각주님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신뢰를 못 얻었다면 지금 이런 상황도 없었을 겁니다.”유태범이 당당하게 말했다.“각주님, 각주님은 참 똑똑하고 조심스러우셨죠. 그런 각주님을 죽이기 위해선 철저한 계획을 짰어야 했습니다. 과정이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당신... 당신들...”채원진은 분노에 치를 떨며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으로 혈압이 오른 탓에 그의 목에는 핏줄까지 튀어나와 있었다.급격한 혈액순환을 틈타 몸속으로 침투한 멸신독은 더욱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채원진의 입에서 검붉은 색의 피가 나왔다.그 순간,
10대 독극물 중 하나인 멸신독은 랜드 신선의 세상에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다시 말해, 용호산의 장선기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멸신독의 침식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언제 죽느냐에 달렸을 뿐, 채원진의 죽음은 정해진 거였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처해야지 궁지에 몰렸다고 고양이를 무는 쥐가 되어서는 안 된다.“각주님.”채원진이 습격을 당하자, 후방에서 지켜보던 마스트 경지의 장로 세 명이 갑자기 안색이 하얗게 질린채 망설일 새도 없이 즉시 나서서 도울 준비를 했다.“꺼져!”채원진이 소리를 지르며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전부 쓰러뜨릴 기세로 손에 있던 용담적염창을 휘두르자, 세 명의 호룡각 장로들이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가 피를 토하며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유태범한테 배신당해 이성을 잃은 채원진은 광기에 빠진 사람처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전부 죽일 기세였다.“너희들 전부 죽여버릴 거야!”채원진이 연속으로 용담적염창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총검이 천지를 뒤덮으며 백 미터 이내가 완전히 죽음의 늪으로 변해 산 것 죽은 것 할 거 없이 전부 가루가 되었다.“쿨럭.”한바탕 광기를 뿜어내던 채원진은 또 한 번 검붉은 피를 토해냈고 온몸에 맥이 빠져 휘청거렸다.그제야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빛이 차츰 사그라지며 광기 어린 공격도 멈추었다. “빌어먹을 놈들아, 언젠가 내가 너희들을 산산조각 낼 테니 각오들 하거라.”독설을 내뱉은 채원진은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한줄기의 잔영으로 변한 채 급하게 기지 쪽으로 도망쳤다.지금 채원진은 독에 중독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까 가슴팍이 유진우의 검에 찔려 몸이 매우 쇠약한 상태였다.만약 이 상태로 계속 싸웠다가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었던 터라 채원진은 어쩔 수 없이 기지로 돌아가 해독을 시켜줄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채원진은 자신의 기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아무리 유진우의 사람들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자신의 성벽을 뚫지는 못할 거로 생각했
“거의 거의 다 왔어. 곧 도착이야.”채원진은 정혈을 끌어 연소시키며 겨우 도망쳤다. 도중에 끊임없이 피를 토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한바탕 전력 질주 끝에 드디어 채원진의 눈에는 기지 앞의 높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성벽만 넘으면 그는 안전할 수 있었다.채원진은 기지 안에 많은 영단 묘약이 있으니, 그의 독을 치료할 약이 기필코 있을 거로 생각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성문을 열어라! 어서 빨리 성문을 열어!”성벽 지하까지 돌진한 채원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얼굴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슝 슝 슝.채원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에서 갑자기 팔뚝 굵기의 쇠뇌가 몇 대 발사되었는데 10만여 근의 힘을 숨기고 있는 쇠뇌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놀란 채원진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팡 팡 팡.몇 대의 쇠뇌는 채원진의 눈앞에 떨어지며 엄청난 위력과 함께 뒤쪽 끝을 조금 남긴 채 반이 넘게 땅바닥 깊이 박혀 들어가며 굉음을 냈다.“야! 너희들 미쳤어? 나 호룡각의 객주야!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채원진이 성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오히려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무기를 들어 채원진에게 겨누었다.각종 중화력 무기도 가동되었고 수많은 포구와 총구가 동시에 성벽 아래에 있는 채원진을 겨누었다.누군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채원진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눈은 멋으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못 알아봐? 당장 성문을 열어! 안 그러면 전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화가 치밀어 오른 채원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집 문 앞에서 막힐 줄이야.‘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채원진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원진, 너한테 남은 건 죽음뿐이야.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고통 없이
“유 대표님, 이건 이 대표님께서 준비한 이혼 합의서입니다. 사인 부탁드려요.”청성 그룹 대표 사무실 안.OL유니폼을 입은 장 비서가 A4용지 한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그녀의 맞은편엔 수수한 옷차림에 준수한 외모를 지닌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이혼이라니? 무슨 뜻이지?”유진우가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아직도 모르시겠어요? 대표님과 이 대표님의 결혼생활은 이젠 끝이에요. 두 분은 더 이상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요. 대표님의 존재가 이 대표님에겐 걸림돌만 될 뿐이에요!”장 비서가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걸림돌?”유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러니까 청아가 날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두 사람이 결혼할 때 이씨 일가는 한창 저조기에 처해있어 빚더미가 산을 이뤘다.유진우가 그런 이씨 일가를 도와 난관을 극복해 주었다.그런데 인제 와서 부귀영화를 누리더니 이청아가 그를 발로 뻥 차버리다니.“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장 비서는 턱을 치켜세우고 책상 위의 잡지를 가리켰다. 잡지 표지 화면에 절세미인과도 같은 한 여자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유 대표님, 이 타이틀 좀 보세요. 짧디짧은 3년 안에 이 대표님의 가치가 무려 2천억 원을 돌파했다고요. 기적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강능 전체에서 가장 핫한 미녀 대표가 되었어요! 이 대표님은 뛰어난 미모와 실력으로 구름 위를 걸으며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정작 유 대표님은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이 대표님께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부디 저 자신을 알고 눈치껏 물러서세요!”유진우가 아무 말 없자 장 비서는 미간을 확 찌푸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썩 내키지 않는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현실이 이런 걸 어쩌겠어요? 전에 이 대표님을 도와준 건 사실이지만 이 3년 동안 대표님은 그 신세를 전부 다 갚았어요. 이젠 유 대표님이야말로 우리 대표님께 신세를 지고 있다고요!”“이 결혼이 한 차례 거래였어?”유진우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만약
“거의 거의 다 왔어. 곧 도착이야.”채원진은 정혈을 끌어 연소시키며 겨우 도망쳤다. 도중에 끊임없이 피를 토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한바탕 전력 질주 끝에 드디어 채원진의 눈에는 기지 앞의 높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성벽만 넘으면 그는 안전할 수 있었다.채원진은 기지 안에 많은 영단 묘약이 있으니, 그의 독을 치료할 약이 기필코 있을 거로 생각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성문을 열어라! 어서 빨리 성문을 열어!”성벽 지하까지 돌진한 채원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얼굴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슝 슝 슝.채원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에서 갑자기 팔뚝 굵기의 쇠뇌가 몇 대 발사되었는데 10만여 근의 힘을 숨기고 있는 쇠뇌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놀란 채원진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팡 팡 팡.몇 대의 쇠뇌는 채원진의 눈앞에 떨어지며 엄청난 위력과 함께 뒤쪽 끝을 조금 남긴 채 반이 넘게 땅바닥 깊이 박혀 들어가며 굉음을 냈다.“야! 너희들 미쳤어? 나 호룡각의 객주야!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채원진이 성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오히려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무기를 들어 채원진에게 겨누었다.각종 중화력 무기도 가동되었고 수많은 포구와 총구가 동시에 성벽 아래에 있는 채원진을 겨누었다.누군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채원진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눈은 멋으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못 알아봐? 당장 성문을 열어! 안 그러면 전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화가 치밀어 오른 채원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집 문 앞에서 막힐 줄이야.‘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채원진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원진, 너한테 남은 건 죽음뿐이야.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고통 없이
10대 독극물 중 하나인 멸신독은 랜드 신선의 세상에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다시 말해, 용호산의 장선기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멸신독의 침식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언제 죽느냐에 달렸을 뿐, 채원진의 죽음은 정해진 거였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처해야지 궁지에 몰렸다고 고양이를 무는 쥐가 되어서는 안 된다.“각주님.”채원진이 습격을 당하자, 후방에서 지켜보던 마스트 경지의 장로 세 명이 갑자기 안색이 하얗게 질린채 망설일 새도 없이 즉시 나서서 도울 준비를 했다.“꺼져!”채원진이 소리를 지르며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전부 쓰러뜨릴 기세로 손에 있던 용담적염창을 휘두르자, 세 명의 호룡각 장로들이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가 피를 토하며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유태범한테 배신당해 이성을 잃은 채원진은 광기에 빠진 사람처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전부 죽일 기세였다.“너희들 전부 죽여버릴 거야!”채원진이 연속으로 용담적염창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총검이 천지를 뒤덮으며 백 미터 이내가 완전히 죽음의 늪으로 변해 산 것 죽은 것 할 거 없이 전부 가루가 되었다.“쿨럭.”한바탕 광기를 뿜어내던 채원진은 또 한 번 검붉은 피를 토해냈고 온몸에 맥이 빠져 휘청거렸다.그제야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빛이 차츰 사그라지며 광기 어린 공격도 멈추었다. “빌어먹을 놈들아, 언젠가 내가 너희들을 산산조각 낼 테니 각오들 하거라.”독설을 내뱉은 채원진은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한줄기의 잔영으로 변한 채 급하게 기지 쪽으로 도망쳤다.지금 채원진은 독에 중독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까 가슴팍이 유진우의 검에 찔려 몸이 매우 쇠약한 상태였다.만약 이 상태로 계속 싸웠다가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었던 터라 채원진은 어쩔 수 없이 기지로 돌아가 해독을 시켜줄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채원진은 자신의 기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아무리 유진우의 사람들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자신의 성벽을 뚫지는 못할 거로 생각했
암기 형태로 발사되는 멸신독의 유효 사거리는 3미터였다.3미터 안에서는 기습공격으로 명중시킬 수 있었다.유태범이 암기를 꺼내 채원진의 등 뒤에서 기습공격을 가했을 때, 독침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쉽게 그의 몸에 꽂혀 들어갔다.“후... 드디어 끝났네.”유태범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마치 중요한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런 유태범과는 반대로 채원진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그는 놀란 듯한 눈빛으로 유태범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대체 왜입니까?”채원진은 눈을 크게 뜨며 얼굴에 드러난 충격과 당혹감, 불신과 깊은 의문을 숨기지 못했다.채원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유태범은 분명 서경 왕부와 절연한 사람이었고, 호룡각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밝은 미래만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날 배신해?’“정말 죄송합니다, 각주님. 저도 유씨 가문 사람으로서 유씨 가문이 멸망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유태범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게다가 장혁이는 제 친조카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인데, 제가 제 조카를 왜 배신합니까?”“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극이었다는 거냐고요? 배신이고 흔적이고 뭐고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예요?”채원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각주님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신뢰를 못 얻었다면 지금 이런 상황도 없었을 겁니다.”유태범이 당당하게 말했다.“각주님, 각주님은 참 똑똑하고 조심스러우셨죠. 그런 각주님을 죽이기 위해선 철저한 계획을 짰어야 했습니다. 과정이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당신... 당신들...”채원진은 분노에 치를 떨며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으로 혈압이 오른 탓에 그의 목에는 핏줄까지 튀어나와 있었다.급격한 혈액순환을 틈타 몸속으로 침투한 멸신독은 더욱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채원진의 입에서 검붉은 색의 피가 나왔다.그 순간,
그 금강은 홍복홍과 함께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채원진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했다.거대한 금강 앞에 채원진의 모습은 마치 개미와도 같았다. 금강이 채원진을 가볍게 한 번만 눌러도 순식간에 짓뭉개질 것처럼 보였다.“칠살!”홍복홍의 공격과 동시에 유진우도 함께 움직였다.그는 분노에 찬 눈을 크게 뜬 채, 온몸의 진기를 창궁검에 모으더니 바닥에 발을 힘껏 내디뎠다.“슉!”유진우와 검은 또다시 한 몸이 되어 검은빛으로 변하더니 채원진의 심장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호연정기!”필사적으로 달려드는 홍복홍과 유진우를 바라보던 채원진 역시 자신의 절대적인 방어 기술을 사용했다.채원진이 몸을 몇 번 흔들더니 거대한 하얀 기운이 주위에 원형의 보호막이 생겼다.보호막 위에는 복잡하게 생긴 룬 문자가 수도 없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고,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그 보호막은 신비로우면서도 기괴해 보였다.“쿵!”엄청난 굉음과 함께 홍복홍의 금강반야장이 정확히 보호막 위를 때렸다.보호막이 한 번 흔들리더니 물결 같은 진동을 일으키며 룬 문자에서 강렬한 빛이 순간적으로 번쩍였다.“쿵!”굉음이 또 한 번 울렸다.유진우의 치명적인 검이 보호막 위에 깊게 박혔다.홍복홍과 마찬가지로 창궁검도 채원진의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겉에 거센 파문만 일으켰다.홍복홍의 금강반야장은 계속해서 보호막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고, 유진우의 창궁검 역시 필사적으로 보호막을 뚫고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각각 한 구역씩 맡아 계속해서 강력한 공격을 이어갔다.이건 두 사람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이었다. 만약 채원진의 보호막을 깨지 못하고 그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쿠구궁!”유진우와 홍복홍의 몸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폭발하기 시작했다.그 순간, 두 사람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들의 모든 힘을 쥐어짜내 채원진의 보호막 위로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어대고 있었다.“찌직... 찌지 직...”유진우와 홍복홍의 필사
“기습이야?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까?”채원진은 큰소리로 외치며 양손으로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긴 창에서는 붉은 열기가 터져 나오며 유진우와 하늘에서 내려오던 그림자를 향해 날아갔다.“펑! 펑!”두 번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유진우는 창에 밀려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고, 하늘에서 내려오던 그림자는 채원진의 공격에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더니 점차 금빛의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금빛의 그림자에 숨어 있던 홍복홍은 그 충격에 높이 튕겨 올라갔고, 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수십 미터 정도 뒤로 밀려갔다.반면, 채원진은 겨우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기습을 당한 상황에서도 1대 2로 싸워가면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는 것에서 여전히 그의 강력한 실력을 알 수 있었다.유진우와 홍복홍은 모두 대 마스터 급 강자들로서 이 세상의 정상에 있는 인물들이었다.그럼에도 채원진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이 두 사람을 상대해주고 있었다.“경천 랭킹 5위라더니, 역시 이름값 하네.”홍복홍과 유진우는 나란히 서서 채원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그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채원진의 실력은 생각보다 더 강했고 서경 전역을 샅샅이 뒤져도 그의 상대는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인도 홍복홍?”채원진이 미간을 좁히더니 입가에 냉소를 띠며 말했다.“언젠가 너랑 제대로 붙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기회가 안 됐거든. 어쩌면 오늘이 기회일지도 모르겠네. 일단 유진우부터 처리하면 바로 상대해줄게. 그럼 왕부는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겠지? 그럼 난 그걸 노려서 서경을 장악할 거야.”“그래? 네가 그 정도 수준일지 한 번 봐야겠네.”홍복홍은 차갑게 코웃음을 흘리며 은침을 꺼내 뒤통수에 찔러넣었다.유진우가 했던 것처럼 그 역시 유씨 가문의 비법으로 잠재력을 이끌어낸 죽음의 한판 승부를 걸기로 했다.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기기란 불가능했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다.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이 골칫덩어리를 해결해
“인정할 수밖에 없네. 너 좀 치는구나?”채원진은 한 손에 창을 든 채 당당하게 말했다.“이 세상에 솔로 스모크를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몇 없거든. 네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니, 어쩌면 몇 년 뒤엔 날 이길지도 모르겠네.”방금 채원진의 공격은 적어도 절반의 체력으로 만들어낸 기술이었다.유장혁은 그런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도 몸만 조금 밀렸을 뿐이니 그것만으로도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낼 수 있었다.그에게 5년이나 10년 정도의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채원진을 넘어설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경천 랭킹 5위라고 하길래 얼마나 강한 상대일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유진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뭐라고?”채원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이 애송이 자식이 감히 날 무시해?’“못 들었어? 다시 얘기해줄까?”유진우는 조금 전보다 목소리를 더 높여 또박또박 얘기했다.“네 기술 말이야, 정말 쓰레기라고. 내 예상보다 훨씬 나약해!”“이 자식이 진짜, 너 정말 죽고 싶구나?”그 말에 채원진은 버튼이라도 눌린 듯 진심 어린 분노를 표출했다.긴 창이 부르르 떨리더니 그의 온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폭발하듯 솟아났다. 채원진은 발끝으로 땅을 가볍게 박차며 이내 붉은 그림자로 변해 유진우에게 돌진했다.지금 그의 레벨로는 아무도 감히 채원진을 무시할 수 없었다.감히 채원진을 무시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과 다름없었다.“장하낙일!”거리를 반쯤 좁혀온 채원진이 창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18개의 창날이 순식간에 폭발하듯 나타나 유진우의 주위를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마침내 18가지의 창날이 무지갯빛 광선으로 모여 유진우를 향해 돌진했다.그 무지갯빛 광선이 지나가는 곳마다 공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땅은 깊게 파헤쳐졌다.유진우는 말로 채원진을 살살 긁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채원진의 강력한 일
“내 실력이 백준 아저씨보다 떨어진다고 해도, 너 상대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어.”유진우가 말했다.“날 상대하겠다고? 네까짓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채원진이 가볍게 비웃었다.채원진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유장혁은 이제 막 대 마스터에 올라선 수준이었고 다른 뾰족한 수가 있다고 해도 그의 최선은 중기 대 마스터 수준이었다.그 반면에 채원진은 대원만에 가까웠다.두 사람의 차이는 두 단계 정도였지만 그 두 단계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은 차이를 보여주었다.유장혁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런 차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해봐야 아는 거잖아?”유진우는 손가락 끝으로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등 뒤에서 푸른 창궁검이 빠져나와 가볍게 그의 손에 내려앉았다.“좋아! 그렇게나 자신 있다고 하니, 나한테 직접 덤빌 기회는 주도록 하지.”채원진이 손을 휘두르자 빨간 불길을 머금은 창이 허공에 나타났다.그 창은 다름 아닌 이원무의 유품이자 신병 랭킹에서 3위를 차지한 용담적염창이었다.“너희는 절대 끼어들지 마. 오늘만큼은 내 실력으로 저 녀석의 콧대를 제대로 납작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창을 휘두르는 채원진의 몸에서는 엄청난 기세가 느껴졌다.그의 몸에서 나온 붉은 빛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구름 위에서 천둥이 치고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수백 미터 내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이 고개를 숙이며 몸을 낮추었다.보이지 않는 기세가 천지의 이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응?”채원진의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기운을 느낀 유진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지기 시작하더니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유진우는 이때까지 무도계에서 줄곧 순조롭게 나아가며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보지 못했다.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채원진에게서 전에 없던 압박감을 느꼈다.오늘 이 싸움이 고전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유장혁! 어서 덤벼, 네가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고 싶네!”채원진이 한 손을 내밀더니 이내 도발
왕부의 병력은 모두 정예병들이었고, 호룡각은 수적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두 쪽이 치열하게 싸울수록 상황은 더욱더 참혹해져만 갔다.왕부 쪽에서는 유천우가 이끌고 있었고 호룡각 쪽은 사철수가 이끌고 있었다.유진우와 채원진은 서로를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두 병력이 격렬한 혼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유진우도 포메이션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안개 포메이션과 팔괘양의진이 두 포메이션은 모두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대는 포메이션이었기 때문이었다.주변에 설치해두었던 폭탄들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정말 궁지에 몰려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게 아닌 이상, 자폭할 생각은 없었다.“천우야! 계획이 틀어졌어. 얼른 사람들 데리고 빠져나가!”잠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유진우가 과감히 명령을 내렸다.왕부의 정예병들도 절대 밀리는 쪽이 아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얻는 이득은 별로 없어 보였다.왕부의 병사 한 명이 세 명에서 다섯 명까지 상대해본다고 해도 이길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았다.호룡각의 병력은 왕부의 열 배에 달했고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만 끌었다가는 체력만 고갈되어 전멸하고 말 것이다.아직 정예병들의 체력이 충분할 때 빠져나가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어찌 됐든 정예병들이 이런 곳에서 헛되이 희생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대형으로 서도록! 다 같이 여길 빠져나가는 거다!”명령을 받은 유천우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곧바로 부하들을 지휘해 대형을 만들고 상대적으로 병력이 약해 보이는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고수들로 이루어진 왕부 정예병들의 실력은 호룡각 병력보다 훨씬 뛰어났고 훈련도 잘됐던 덕에 팀워크까지 좋았다.그들은 아주 신속하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포위를 뚫고 빠져나갔다.호룡각의 포위망은 순식간에 뚫려버렸다.“얼른 뒤를 쫓아! 절대 놓쳐서는 안 돼!”유태범은 마음이 급해진 건지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쫓아가!”사철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곧바로 엄청난 병력을 이
“아직 확신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두 가지야. 첫 번째는 유태범이 호룡각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 거야. 그리고 채원진은 유태범을 시험해볼 생각으로 이런 부대를 보낸 거고.”“그럼 두 번째는요?”유천우가 계속해서 물었다.“두 번째는 유태범이 배신했다는 건데, 이건 분명 호룡각이 파놓은 함정일 거야. 대타들만 보내서 우릴 유인해놓고 한 번에 죽이려는 거겠지.”유진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전자라면 유태범만 위험에 빠지고 말겠지만 후자라면 우리 모두가 함정에 빠진 거나 다름없어.”“다들 똑바로 들어! 언제든 방어할 수 있도록 준비해!”유천우는 유진우의 말에 곧바로 몸을 돌려 명령을 내렸고 그와 동시에 왕부의 정예병들은 즉시 흩어져 경계태세를 갖추었다.“하하하... 지금 방어 해봤자 이미 늦었어.”갑자기 하늘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엄청난 병력이 사방에서 몰려왔다.눈에 보이는 곳마다 수천, 수만의 병사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유진우가 데리고 온 정예병은 천 명가량이었지만 호룡각에서 파견된 인력은 열 배가 넘어 보였다.사방에서 몰려온 병력을 보아하니 갑자기 등장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큰일이에요! 아무래도 저희가 당한 것 같습니다!”유천우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곧장 친위대를 지휘해 방어 포메이션을 구축했다.그들은 자신들이 호룡각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호랑이가 집 앞까지 찾아온 격이나 다름없었다.“포위해!”수천 명이 넘는 호룡각의 병력은 곧바로 왕부의 정예병들을 완전히 포위했다.왕부와 호룡각 모두 정예병 중의 엘리트만 선별해서 출동시켰다.다만 호룡각 쪽이 수적으로 훨씬 우세할 뿐이었다.“이런 망할! 유태범 이 개자식이 감히 배신을 해!”유천우는 분노에 가득 찬 채 이를 악물었다.그들의 이번 작전은 호룡각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적은 병력의 최정예병들만 데려왔다.하지만 유태범이 감히 왕부를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