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야, 보아하니 지난 몇 년 동안 군대에서 많은 걸 배웠나 보네.”유진우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네 말이 맞아. 계획 없이 섣불리 먼저 공격하는 것보다 먼저 안쪽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야. 호룡각안에 고수들이 많아 왕부 쪽 밀정들도 더 이상 들어가기 힘들 거야.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려고.”“형, 너무 위험할 것 같은데요?”유천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형은 미래의 서경을 이끌어갈 사람인데 너무 무리하면 안 돼요. 그냥 제가 갈게요. 그래도 무술 경험이 있는데 위험해도 즉시 빠져나올 자신이 있어요.”“안 돼!”유진우가 단호하게 그를 말렸다.“네 싸움 실력은 나쁘지 않지만 아직 호룡각의 베테랑 싸움꾼과 맞설 수준은 아니야. 그러다가 만약에라도 채원진에게 발각되면 도망갈 기회조차 없을 거야.”“그래도...”유천우는 다시 뭔가를 대꾸하려 했지만 유진우가 단번에 그의 말을 잘랐다.“괜찮아. 그리고 이번 작전의 모든 권한은 나한테 있으니까 지금부터 넌 그냥 여기서 얌전히 내 소식만 기다리고 있으면 돼.”유진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한창수를 데리고 자리를 떴고 유천우는 그런 자기 형이 매우 걱정되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실 그도 호룡각 내부까지 쳐들어갈 사람이 유진우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여 그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한창수의 인솔하에 유진우는 수많은 계곡과 산을 넘어 드디어 호룡각 기지의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도착해보니 역시나 유천우의 말대로 기지 앞에는 높은 성벽이 있었는데 마침 계곡의 입구 위치에 가로 세워져 있어 한눈에 봐도 이곳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유진우가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문득 호룡각 주변에 은밀하게 잠복해 있는 초소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만약 일반 사람이었다면 분명 들어가기도 전에 그들한테 발견되었을 것이다.“괜히 우리가 왔다는 걸 들키지 말고 넌 아무 곳에 숨어있어. 난 혼자 들어갈 거야.”유진우는 낮은 소리로 한
“무슨 일인데 이리도 호들갑 떨어?”다른 한 동료는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누가 몰래 들어왔나 봐!”장현진은 다시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며 범인을 찾으려 애썼다.“잘못 들었겠지. 우리 기지는 경비가 삼엄해서 들어오려면 수많은 인증이 필요하잖아. 거기에 잠복해 있는 보초들이 얼마나 많은데 누가 감히 이 모든 걸 뚫고 들어온다는 거야?”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성벽 밖은 물론이고 성벽 안에서도 24시간 내내 순찰하는 사람들이 있어 사람은커녕 파리 한 마리도 날아들기 힘들 것이다.게다가 위치도 위치였던지라 호룡각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이곳을 쉽게 찾지 못했다.“조심해서 나쁠 것도 없잖아. 내가 주변을 좀 둘러보고 올 테니까 너는 계속 지키고 있어.”장현진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창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그러나 안팎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이상하네. 내가 진짜 잘못 들었나?”장현진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둘러봐도 결과는 똑같아 결국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그러나 그의 모든 행동을 유진우가 지붕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호룡각에는 역시나 고수들이 많네. 작은 병사도 이렇게 예리한 감각을 갖고 있다니, 조심해야겠군.”말을 마친 뒤 유진우는 순식간에 지붕에서 사라지더니 바람처럼 공중에 날아올랐다.“뭐지?”어딘가에 가까워지자 유진우가 갖고 온 어미 독충이 뭔가가 느껴졌는지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예전에 그가 천하대보환에 재료를 하나 추가했었는데 그게 바로 이 어미 독충의 알이었다.벌레알은 인체에 들어간 후 빠르게 부화하여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나중에 어미 독충에게만 반응한다.쉽게 말해 부모와 자식 간의 교감이라고 할 수 있다.만약 유진우가 진짜로 살해 의향이 있다면 그 어미 독충을 죽이면 된다.그러면 유태범의 체내에 퍼져있는 수많은 벌레가 자극을 받아 그의 오장육부를 몽땅 먹어
유태범이 천천히 눈을 뜨고 뭐라고 말하려는데 창문 쪽에 뭔가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그곳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바로 유장혁이였다.“씨X!”유태범은 깜짝 놀란 나머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가 설마 호룡각의 비밀기지에까지 쫓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유 장군님, 왜 그러세요? 제가 너무 세게 주물렀을까요?”여자는 순간 자기 잘못인 줄 알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아니야.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쉬어야겠으니까 그만하고 나가.”유태범은 아까보다는 조금 진정되었는지 그녀더러 나가라고 손짓했다.“네.”그의 말에 여자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여자가 나가자 유진우는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서더니 유태범의 맞은편에 앉았다.“장혁아, 네가 여기에는 웬일이야?”유태범은 한껏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삼촌이 갑자기 행방불명되는 바람에 걱정되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유진우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여기에 와보니 멀쩡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전보다 더 윤택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마사지해 주시는 분도 계시고.”“이게 다 채 각주가 마련해준 거야. 이런 식으로 나를 여기에 머무르게 하려고.”유태범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이 삼촌은 여태껏 싸워오면서 이런 수법을 많이 봤거든. 그래서 그저 맞춰주려고 연기하고 있을 뿐이야.”“그래요?”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되물었다.“그 말인즉 삼촌은 이미 채원진 씨를 만났다는 건데 그러면 독극물 작전은 어디까지 진행되었나요?”“장혁아, 독을 먹이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내 목숨까지 걸면서 일을 진행할 수는 없잖니?”유태범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말했다.“이 기지의 방어력과 주변에 잠복해 있는 고수들을 좀 봐. 설령 내가 정말 운 좋게 채원진을 암살했다고 해도 결국에는 나도 죽게 될 거라고.”“그러면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나요?”사실 유태범의 말도 일리가 있다.이 기지의 사람들에게 포위되기라
유진우는 유태범과 다시 한번 계획을 짠 뒤 호룡각 기지에서 떠났다.그의 말대로 오래 머물면 위험한 곳이었고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런 모험은 할 필요가 없다.역시나 바람처럼 왔다가 갈 때도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그러나 유진우가 떠나자마자 유태범은 테이블 위의 유선 전화를 들더니 곧바로 통제실 번호를 눌렀다.5분 뒤.채원진이 몇 명의 병사를 데리고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유 장군, 급하게 저를 찾았다면서요?”“채 각주, 방금 호룡각 기지에 서경왕부 쪽의 사람이 몰래 들어왔다던데요?”유태범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 진짜요?”채원진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며 되물었다.“유 장군, 확실한가요?”“당연하죠. 방금까지 제 눈앞에 있었는데요.”“누구예요? 왜 유 장군을 만나러 왔대요?”“그 사람이 바로 서경왕부의 세자, 유장혁입니다!”유태범은 숨김없이 모든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몰래 여기에 온 목적도 저랑 손을 잡고 채 각주를 살해하기 위함이었고요.”“유장혁?”채원진은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만약 그 사람이라면 우리 쪽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네요.”필경 경천 랭킹 10위의 고수라면 당연히 발견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채원진조차도 100미터 이내에 있어야만 느낄 수 있다.“채 각주, 유장혁은 아직 제가 호룡각에 합류한 사실을 모르고 저랑 작전을 논의하고 갔어요.”유태범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내일, 채 각주께서 기지를 떠나 왕성으로 갈 계획이니 사람들을 데리고 도중에 잠복해 있으라고 했는데 진짜 제 말을 믿더라고요. 게다가 저랑 같이 채 각주를 살해하자고 제안했어요.”“이렇게 직접 저를 죽이러 온 걸 보면 이제 제가 진짜로 서경왕부의 눈엣가시가 된 것 같네요. ”채원진이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채 각주, 우리는 이번 기회에 작전을 잘 짜서 한 방에 유장혁을 없애야 합니다. 유만수는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고 오래 살지도 못할 겁니다. 그
“타겟 발견. 행동 개시!”호룡각 사람을 발견한 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재빨리 뽑았다.“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저 사람들이 포위망에 들어올 때가지 기다려보자.”유진우는 유천우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를 진정시켰다.전방 100미터 지점에 두 개의 덫을 파뒀는데 일단 호룡각 쪽의 사람들이 들어가면 바로 갇히게 된다.첫 번째 덫은 일명 혼미 덫이라고 불리는데 공격 범위가 몇 킬로미터로서 가장 넓었고 일단 진입하면 현기증이 나면서 방향감을 잃게 된다.두 번째 덫은 음양 덫이라고 서로 다른 모드로 되어있는데 하나는 공격 모드이고 다른 하나는 방어 모드라 공격과 방어를 마음대로 전환할 수 있는 곳이었다.유진우는 공격모드로 바꾼 뒤 여덟 명의 무술 고수들을 곳곳에 배치해 뒀다.이 여덟 명은 이 안에서 끊임없이 환영으로 변해 일단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을 전부 환영으로 공격할 수 있다.이 상태로 만약 적을 계속 찾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이곳에 갇혀 공격 한 번을 못 하고 그대로 죽게 된다.두 개 덫 외에 유진우는 또 근처에 많은 폭탄을 설치하라고 시켰다.아무리 호룡각 사람들이 운 좋게 덫에서 빠져나와 그곳을 탈출한다고 해도 결국 폭탄으로 전부 죽일 심산이었다.이렇게 되면 실제로 그들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상대방은 이미 절반 정도가 죽게 될 것이다.“포위망 안에 들어왔어. 작전 개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유진우는 재빨리 아랫사람들에게 명령했다.“작전 개시!”유천우도 따라 외치자 왕부 쪽의 사람들이 잇달아 움직이기 시작했다.첫째 덫이 개장되자 갑자기 하얀 연기가 바닥에서 피어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미터 반경을 뒤덮으면서 범위를 넓혀갔다.“왜 이래? 뜬금없이 웬 안개야?”“산속에서 아침 안개가 끼는 게 정상이지. 호들갑 떨지 마.”“아니야. 안개가 왠지 이상하니까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갑자기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고 호룡각 사람들은 곧 경계심을 가지고 저마다 무기를 꺼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그러나 한참
문제는 그들은 지금까지 쭉 앞으로 직진만 했고 방향을 틀거나 뒤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그렇다면 답은 하나, 그들은 이미 갇힌 상태에서 계속 제자리에 있었다는 걸 설명해 준다.“알았다. 이건 덫이야.”오선우는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들은 바에 의하면 일단 혼미 덫에 걸린 사람들은 머리가 어지럽고 방향감을 잃는대.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전투력을 잃고 그냥 죽게 된다고 했어.”“이런 덫을 사용 안 한지가 꽤 오래된 거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쓰는 걸 보면 분명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아.”선두에 서 있던 윤종수가 엄숙하게 말했다.“윤 대장, 이제 우리 어떡하죠?”이때, 한현오가 물었다.“당연히 기회를 봐서 이곳을 빠져나가야지. 이대로 갇히게 되면 죽는 길밖에 없어.”윤종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순간 눈에서 빛이 번쩍거렸다.호룡각의 베테랑 임원중 한 명으로서 그는 무술도 무술이지만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동공술이었다.이 기술은 주로 사람을 통제할 때 많이 사용했는데 최면술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보조 역할은 시력이 좋고 세심함을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하여 일단 이 기술을 발휘하기만 하면 주변의 세부 사항이나 이상한 점은 모두 그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된다.“찾았다!”유심히 주위를 둘러보던 윤종수는 눈빛이 반짝거리더니 곧바로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가 출구야. 날 따라 와!”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즉시 사람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달려갔다.달리면서도 그의 눈빛은 마치 전구처럼 유난히 밝게 빛났다.아까까지도 짙게 피어오르던 안개는 순간 능력을 잃은 것 같아 보였다.이 시각, 유진우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나침반 한가운데 노란빛이 발사되면서 순식간에 그 위로 빛과 그림자가 형성되었다.이 빛과 그림자는 혼미 덫을 의미했고 빛과 그림자 속의 수십 개의 작은 빛은 호룡각 사람들을 대표했는데 유진우는 이 빛의 움직임을 통해 사람들의 구체적인 위치를 판단할
유진우의 지휘 아래, 팔괘양의진이 빠른 속도로 펼쳐졌다.짙은 안개가 감도는 구역의 가장자리인 건, 감, 간, 진, 손, 이, 곤, 태의 여덟 방향에서부터 하얀빛들이 솟아올랐다.하늘로 높이 치솟은 그 하얀 빛은 마침내 하늘에서 모여 거대한 빛의 장막으로 안개 전체를 덮어버렸다.반투명한 빛의 장막은 겉보기엔 거대한 달걀 껍데기처럼 느껴졌다.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계속 달리던 호룡각 일행들은 갑자기 발밑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걸음을 멈추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단하던 땅이 갑자기 부드러워지더니 이내 늪 같은 땅으로 변해버린 것이다.게다가 땅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엄청난 힘이 그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늪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에 차마 걸음을 뗄 수 없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땅이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해버린 거지?”갑작스러운 변화에 호룡각 일행은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실력으로 따지자면 그들 역시 어디 가서 뒤처지는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은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어딜 밟아도 이미 늪으로 변해버린 땅은 그들은 아래로 강하게 끌어내렸다.발버둥 칠수록 끌어당기는 힘은 더욱 강해지기만 했다.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온몸의 진기를 모두 끌어내 이 끔찍할 정도로 강한 중력에 저항해야 했다.하지만 그럴수록 체력 소모만 커질 뿐, 별 소용은 없었다.일정한 시간 안에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그들의 진기는 모두 소진될 게 뻔했고,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늪 속에 빨려 들어가 질식사하고 말 것이다.“어르신, 설마 안개 포메이션이 땅까지 바꿀 수 있는 겁니까?”검은 옷의 남자가 물었다,“당연히 안개 포메이션만으로는 못 바꾸지. 이건 또 다른 포메이션일 거야.”빨간 옷의 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내 예상이 맞다면 우리는 지금 포메이션 속에 있는 또 다른 포메이션에 갇힌 거야. 안개 포메이션 위에 더 강력하고 기묘
“슈욱!”빨간 신호탄이 긴 불꽃을 그리며 하늘로 솟구쳤다.하지만 중간쯤 올라가자 팔괘양의진의 반투명한 장막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밖으로 나가려던 신호탄을 그대로 막아냈다.“펑!”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신호탄이 터져버렸지만 장막에 흡수된 불빛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포메이션 안에 있던 노인과 그 일행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스쳐 지나가는 빨간 빛뿐이었다.그것 외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신호도 못 보낸다는 건, 이 포메이션이 우릴 완전히 이곳에 가둬버렸다는 뜻이 되겠구나.”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의 뛰어난 시력으로도 지금 이 포메이션의 약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알 수 없는 포메이션이 안개 포메이션보다 훨씬 정교하고 강력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두 포메이션이 겹쳐져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준 덕에 그 위력은 배가 되었다.“큰일이다! 공격이 들어오고 있어!”노인이 포메이션을 분석하고 있던 그때, 갑작스러운 경고 소리가 들려왔다.사방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그 그림자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긴 했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아 마치 연기처럼 느껴졌다.실체가 없는 그림자들의 움직임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가까이 다가온 그림자의 손은 곧장 칼날로 변해 호룡각의 멤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죽여!”더 생각할 틈도 없이 호룡각 일행들은 곧장 칼을 빼 들어 싸움에 나섰다.늪으로 변해버린 땅 때문에 행동이 제약을 받고 있었지만, 지금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림자들의 실력이 후천 무사 수준이었고 그중 일부만이 선천 초기 단계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반면, 호룡각 멤버들은 거의 모두가 선천 고수들이었던 데다가 훈련까지 잘되어 있던 덕에 호흡까지 완벽했다.그들은 빠른 속도로 그림자들을 하나둘씩 처리하며 전세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결국, 두 명이 목숨을 잃고 몇 명이 중상을 입는 정도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호룡각의 엘리트 멤버들은 그림자를 완전히 해치울 수 있었다.“하하하... 대단한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
“채원진, 나라와 백성을 해친 네 죄가 극악무도하니 인제 그만 포기하고 꼼짝 말거라. 반항한다면 사살할 것이다.”이청성은 손에 황권을 상징하는 금색 영패를 쥔 채 차가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청성이 이번에 유진우를 따라 서경에 온 이유는 바로 호룡각에 남아있는 잔당을 대처하기 위해서였고 여러 가지 경우를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병력을 이동하라는 칙령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이성민이 직접 내린 거였고 그 덕분에 20만 명의 백호군을 움직여 이번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이청성을 본 채원진은 절망하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그의 입과 코에서는 검붉은 피가 더욱 많이 흘러내렸다.“채원진, 넌 이제 끝났어. 판을 뒤집을 가능성은 절대 없으니 그만 포기해. 오늘이 지나면 호룡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어둠 속에 숨어 살던 추악한 놈들은 자기가 했던 행동에 책임지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유진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야! 난 아직 패한 거 아니야! 절대 그럴 수 없어!”채원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내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제 겨우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너희 같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 때문에 무너질 거 같아?”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 호룡각의 각주가 된 채원진은 이제 곧 막강한 권세를 누릴 줄 알았는데, 겨우 며칠도 안 돼 큰 타격을 입고 궁지까지 내몰리고 말았다.채원진은 단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어린 녀석들을 감당하지 못해 실패하고 죽는다는 게 달통 되지 않았다.“채원진, 아직도 모르겠어?”조무진은 담담하게 말했다.“용맥이 잘려서 사라질 때부터 호룡각 말살은 시작된 거야. 그때 너희들은 이미 대세와 기운을 잃었어. 만약 너희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연명한다면 몇 년 더 살 수는 있겠지만 그런 탐욕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까 서경왕부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부터 넌 이미
“무슨 헛소리야! 호룡각의 사람이 아니면, 서경왕부의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야?”채원진은 눈이 시뻘게져 소리쳤다.“맞아. 내 사람들이야.”유진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네가 부대를 이끌고 우리를 매복시키려 할 때 내 병마들은 그 허점을 틈타 이미 너의 기지를 점령했어. 그러니까 이제 이곳은 내 소유야.”“유장혁! 그런 헛소리를 내가 믿을 거 같아?”채원진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아무리 내가 많은 정예병들을 데리고 나갔다고 하지만, 기지 내에 적어도 3만 명의 병마가 있었고 각종 방어 조치까지 더해져 10만 명 이상의 병력이 없다면 감히 공격도 못해. 서경의 흑용군은 모두 내 감시하에 있었는데 만약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했다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잖아.”“누가 그래? 내가 흑용군을 호출했다고?”유진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걸 나라고 생각 못 할 것 같아? 너의 잔당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번에 특별히 지원군들을 불렀지.”어젯밤, 유천우한테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서신을 전하게 한 이유가 바로 구원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구원병이 제때 도착해 유진우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수 있었다.“지원병? 무슨 지원병?”채원진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서경과 가장 가까운 부대는 서남 지역에 있는 백호군이고, 백호군의 사령관은 전쟁의 신 조무진이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무진은 나와 아주 친한 사이라 도움을 좀 받았지.”유진우의 담담한 대답에 채원진은 못 믿겠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백호군? 조무진? 그럴 리가 없어. 헛소리 하지 마!”“못 믿겠으면 뒤돌아봐.”유진우는 설명 대신 채원진의 뒤를 보며 턱을 치켜들었다.뭔가를 느낀 듯한 채원진이 뒤를 돌아보니 성벽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은색 갑옷을 입은 준수한 외모의 한 젊은 남자가 정예 장병들과 함께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젊은 남자는 다름 아닌 전쟁의 신 조무진이었다.“채원진, 어때? 이제 현실이 좀 받아들여져
“거의 거의 다 왔어. 곧 도착이야.”채원진은 정혈을 끌어 연소시키며 겨우 도망쳤다. 도중에 끊임없이 피를 토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한바탕 전력 질주 끝에 드디어 채원진의 눈에는 기지 앞의 높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성벽만 넘으면 그는 안전할 수 있었다.채원진은 기지 안에 많은 영단 묘약이 있으니, 그의 독을 치료할 약이 기필코 있을 거로 생각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성문을 열어라! 어서 빨리 성문을 열어!”성벽 지하까지 돌진한 채원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얼굴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슝 슝 슝.채원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에서 갑자기 팔뚝 굵기의 쇠뇌가 몇 대 발사되었는데 10만여 근의 힘을 숨기고 있는 쇠뇌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놀란 채원진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팡 팡 팡.몇 대의 쇠뇌는 채원진의 눈앞에 떨어지며 엄청난 위력과 함께 뒤쪽 끝을 조금 남긴 채 반이 넘게 땅바닥 깊이 박혀 들어가며 굉음을 냈다.“야! 너희들 미쳤어? 나 호룡각의 객주야!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채원진이 성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오히려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무기를 들어 채원진에게 겨누었다.각종 중화력 무기도 가동되었고 수많은 포구와 총구가 동시에 성벽 아래에 있는 채원진을 겨누었다.누군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채원진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눈은 멋으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못 알아봐? 당장 성문을 열어! 안 그러면 전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화가 치밀어 오른 채원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집 문 앞에서 막힐 줄이야.‘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채원진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원진, 너한테 남은 건 죽음뿐이야.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고통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