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진을 잠복해서 살인 하자고요? 그리 간단하지 않을걸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채원진의 실력은 나보다 위에 있어요.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그는 즉시 알아차릴 것이고 만약 그가 도망가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을 겁니다.”경천 랭킹 순위에 따르면 채원진은 무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강한 인물이다.다시 말해 그는 세상에서 다섯 번째로 강한 자이며 이런 사람을 처치하려는 건 하늘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만약 단순한 잠복 살인 계획이라면 전혀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유태범이 채원진의 실력을 모르고 있거나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 있다.“강제로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지. 우리는 독약을 쓸 수 있어.”이 말이 나오자 유태범은 유만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진귀당에 많은 희귀 보물이 있잖아요. 그중 하나는 ‘멸신’이라는 독약이었던 것 같은데.”“멸신? 천하십대기독 중 가장 위험한 그 독약인가요?” 유진우의 눈동자가 좁혀졌다.천하십대기독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끔찍한 독들이며 그중 1위인 ‘멸신’은 수련 수준을 무시하고 상대의 혼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다.게다가 방어, 저항 그리고 제거할 방법도 없다.하지만 ‘멸신’이라는 독은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어서 누구도 그것을 본 적이 없다.그런 강력한 무기가 자기 아버지의 진귀당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맞아. ‘멸신’은 열 대독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독이야. 이 독에 걸리면 아무리 강한 실력을 갖춘 자라도 피할 길이 없고 죽음을 면할 수 없어. 물론 용호산의 그자를 제외하고는 말이지.”유태범이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덧붙인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용호산의 그자는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라서였다. “내가 어떤 보물을 가졌는지도 다 알고 있다니. 놀라운 정보력이다.” 유만수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저 우연히 알게 된 정보일 뿐이에요.” 유태범은 재빨리 웃으며 대답했다.
유태범은 눈썹을 추켜세우고 검은 알약을 보며 약간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장혁아, 네 성의는 알겠지만 이런 보물이야 네가 가지고 있어. 삼촌은 쓸 데가 없어.”“저는 천하대보환은 많아요. 귀한 보물도 아니고 편히 드세요. 한 알로 부족하면 많으니까 더 드릴게요.”유진우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그게...” 유태범은 조금 망설였다.“왜요? 삼촌은 저를 못 믿으세요? 제가 독을 넣었다고 생각해요?”유진우가 냉담하게 한마디 덧붙였다.“그럴 리 없지.”유태범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장혁이 너는 정직한 사람이라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지.”“그럼 먹어봐요.”유진우는 검은 알약을 다시 앞으로 내밀었다.유태범은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결국 그 검은 알약을 받아들여 한 번에 삼켰다. 이 약이 무엇이든 그는 반드시 먹어야 했다. 그래야 상대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삼촌, 어때요?”유진우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괜찮군. 역시 신비한 약이야. 방금 먹자마자 몸 안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면서 전에 막혀 있던 경락들이 모두 뚫리는 느낌이야.” 유태범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말했다.“삼촌이 큰 문제가 없으니 이번 습격은 오늘 밤에 진행하죠.” 유진우가 말을 이었다. “오늘 밤?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냐?” 유태범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그의 상처는 하루이틀에 나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설령 습격에 실패해 채원진이 반격하면 그는 도망가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삼촌, 기회를 놓치면 안 돼요. 왕부 쪽에서의 소식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거예요. 채원진이 곧 이상함을 눈치챌 겁니다. 우리가 미룰수록 채원진이 도망칠 가능성이 커지니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유진우가 단호하게 말했다.“그 말은 맞지만...” 유태범은 말을 아끼며 입을 다물었다.“삼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삼촌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할 겁니다. 만약 위험에 처하시면 크게 소리치세요
“오? 벌써 준비를 해놨네.”유만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작은 여우 같았다. 일부러 이런 함정을 만든 것은 유태범에게 압박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 보약을 먹은 이상 유태범이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더는 그 마음을 드러낼 수 없을 것이다. “삼촌을 믿을 수 없으니 당연히 보험을 들어야죠. 만약 삼촌이 그 순간 열 받아서 어떤 반역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땐 우리가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격이잖아요.” 유진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예방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네 삼촌을 미끼로 쓰는 게 과연 믿을 만한 방법일까?” 유진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채원진의 실력은 뛰어나고 성격이 치밀해서 속이기 쉽지는 않을 거예요.”“삼촌만으로는 안 될 거예요. 채원진이 막 결맹한 사람을 믿지 않을 거니까. 우리는 두 번째 계획을 준비해야 합니다.” 유진우가 말했다. “그래?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유만수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천기는 누설할 수 없어요. 그때 가면 알게 되실 겁니다.” 유진우가 살짝 비밀스럽게 답했다. “이 자식, 이제는 네 아버지인 나도 속일 셈이냐?” 유만수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를 속인 게 아니라 아버지 곁의 사람들을 속인 거예요. 아무도 모르죠. 아버지 옆에 배신자라도 있을지. 조심해야죠.” 유진우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알겠다. 이제 네가 충분히 혼자 맞설 나이가 되었구나. 이 일은 전적으로 네게 맡길게.” 유만수가 하품한 후 말했다. “너희 두 형제가 서로 잘 상의해 봐. 서경의 미래는 너희에게 달렸으니 잘해라.” 그는 말을 마치고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천우야, 옷 갈아입고 나랑 함께 나가자. 예상대로라면 오늘 밤에 치열한 전투가 있을 테니 미리 준비를 해두자.” 유진우는 미리 말해준 뒤 유천우와 함께 위장을 하고 외출했다. 지금 왕부 내에서는 몇몇 가까운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뢰할 수 없었고 나머지 사람들에겐 항상 경계심
그 순간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선두에 있는 사람은 검은 망토를 두르고 모자를 깊게 쓴 중년 남자였다. 중년 남자는 모자를 매우 낮게 눌러썼고 머리를 숙여 얼굴을 확실히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외관으로 보았을 때 그의 몸은 매우 마르고 깡마른 상태였다. 문을 지나 들어온 후 모자를 쓴 중년 남자는 바로 유태범 앞에 앉았다. 그의 뒤에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경계의 태도를 취하고 주변의 이상을 감시했다. “당신은?” 유태범은 눈앞의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채원진을 이미 본 적이 있었고 그의 몸은 크고 건장한 모습이라 이 사람과는 확연히 달랐다. “유 장군, 오랜만입니다.” 중년 남자는 머리 위의 모자를 벗어 던지며 얼굴을 드러냈다.유태범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사철수?” “유 장군, 좋은 눈썰미를 가졌군요. 10년 만에 이렇게 알아보시다니 놀랍네요.”사철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10년 전의 그 강건했던 모습에 비해 지금의 사철수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잠깐! 당신은 이미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죠?” 유태범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당시 자금성 대변혁에서 왕부에 있던 사람 중 유장혁과 술광 외에는 거의 전원 희생되었고 사철수도 그중 하나였다. 그랬는데 10년 만에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운이 좋았습니다. 누군가 구해줘서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요.”사철수가 설명했다. “그렇다면 당신도 송원호처럼 호룡각 사람인 거예요?” 유태범은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맞아요. 우리는 모두 호룡각의 스파이였고 서경에 숨어 있었어요. 이제는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온 거죠.” 사철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진짜 예상 못 했네요. 당신들이 이렇게 깊숙이 숨어서 우리 모두를 속였다고요?” 유태범은 눈을 좁혔다. 10년 동안 이름을 숨기고 세상 사람들을 완벽하게 속인 것이라니. 그 깊
“기다리세요!”유태범이 떠나려 하자 사철수는 마침내 참을 수 없었다. “유 장군, 얘기는 천천히 나누면 됩니다. 왜 이렇게 성급하게 행동하시나요?”“무엇을 더 얘기할 게 있겠습니까? 가장 기본적인 신뢰조차 없는데 이것은 분명히 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유태범은 일부러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유 장군, 잠시 진정해 주세요. 각주께서는 당신을 뵙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간이 없으셔서 그렇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잠시 기다려 주시고 제가 각주께 여쭤보겠습니다. 어떻게 하실지 여쭤볼게요.” 사철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빨리 물어보세요. 저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유태범은 두 손을 뒤로 포개며 위엄 있게 말했다.“알겠습니다. 강 장군, 잠시만 앉아 계세요. 바로 각주께 여쭤보겠습니다.”사철수는 몇 마디를 진정시키며 옆으로 가서 핸드폰을 꺼내 누구와 통화를 시작했다. 약 2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 사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레스토랑 안에 있던 그의 부하들이 즉시 흩어져 주변을 살폈다. 잠시 후 모든 부하가 돌아와 상황에 이상이 없다는 보고를 했다. 사철수는 몇 마디를 더 한 후 채원진과의 통화를 마쳤다.사철수는 미소를 지으며 유태범 앞에 다가가 말했다. “유 장군, 방금 각주께 보고했는데요. 그쪽 일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데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급하시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얘기해도 괜찮습니다.” “다른 곳?” 유태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자연히 저희 호룡각의 서경 비밀기지입니다.” 사철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비밀기지는 고위 인사들만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각주께서 장군을 초대한 것도 충분한 신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을 들은 유태범은 턱을 만지며 잠시 망설였다. 그는 지금 채원진이 어떤 속셈을 가졌는지 몰랐지만 상대가 절대 순진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았다.호룡
지금 한 대의 이동하는 비즈니스 차 안에서. 사철수는 검은 천 한 조각을 꺼내어 유태범에게 건넸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 장군, 길이 멀고 잠시 눈을 감고 쉬어 가시죠.” “무슨 뜻이죠?” 유태범은 얼굴을 미세하게 찡그리며 물었다. “이건 우리의 규칙입니다. 비밀 기지에 외부인이 갈 때는 반드시 눈을 가려야 합니다. 안전을 위해서죠.” 사철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왜요? 저를 못 믿겠다는 건가요?” 유태범은 일부러 불쾌한 듯 말하며 물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유 장군, 모두 같은 규칙입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사철수의 태도에 변함이 없었다. “그럼 눈 가려요. 마침 피곤했는데 한숨 자도 되겠네요.” 유태범은 귀찮아서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바로 눈을 감았고 몸을 편안하게 놓은 채 잠시 휴식을 취하려 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유 장군.” 사철수는 미소를 지으며 직접 눈을 덮어 줬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차는 처음엔 순조롭게 달리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도로가 갑자기 울퉁불퉁해졌다. 차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사람을 졸리게 만들 정도로 기울었다.“사 장군,우리는 지금 도시를 벗어난 건가요?”유태범이 갑자기 물었다. “네. 맞습니다.”사철수는 숨김없이 대답했다. “안전상 기지는 도시 밖에 자리 잡고 있고 거리가 좀 멀지만 충분히 은밀한 장소입니다.” “호룡각이 생각보다 정말 조심스럽네요.”유태범이 말했다. “조심하는 게 항상 좋은 일이죠. 유 장군, 조금만 더 참으시면 곧 도착합니다.”사철수는 웃으며 말했다. 차는 계속해서 나아갔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대략 한 시간이 지난 뒤 차가 마침내 멈췄다. 그제야 사철수는 유태범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풀어주었다. 유태범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이 깊고 외진 산골짜기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우뚝 솟은 산들이 마치 숨어있는 거대한 짐승처럼 느껴졌다. 산골
이 방어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성벽을 넘어선 후 유태범 앞에 펼쳐진 또 다른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었다. 규모에서 볼 때 성벽 뒤의 이 기지는 마치 작은 도시 같았다. 곳곳에 다양한 건물들이 질서 있게 늘어서 있었다. 군사 기지, 훈련장, 실험장, 군수 창고, 벙커, 군용 공항 등 각각의 시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민간 용도로 사용되는 시설도 섞여 있었다. 유태범은 대강 한 눈으로 보면서 이 기지의 규모와 면적을 바탕으로 추정해 보았다. 이 군사 기지는 최소 5만에서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방대했다. 후방 지원 인력을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매우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처럼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다면 짧은 시간 안에 하나의 도시를 함락시키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 순간 아무리 수많은 풍파를 겪었던 유태범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화룡각은 너무나도 깊이 숨어 있었고 표면에는 티가 나지 않았으나 이미 엄청난 군사력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서경의 밀정들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로. 그는 갑자기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후회를 느꼈다. 만약 기지 안에서 채원진을 독살했다면 과연 그는 살아날 수 있었을까? 그건 명백히 불가능한 일이었다.“유 장군, 이쪽입니다.” 사철수는 유태범의 생각을 끊으며 그를 군사 기지의 중심에 위치한 지휘실로 이끌었다. 거의 아무도 모른다. 이 지휘실 아래 깊은 지하에는 핵 방어 대피소가 건설되어 있다는 사실을. 현재 지휘실 안에서는 가면을 쓴 채원진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화면 앞에서는 예전 버전의 드라마가 상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채원진은 이를 흥미진진하게 눈을 떼지 않고 보고 있었다.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채원진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철컥.” 지휘실의 문이 열리자 사철수와 유태범이 차례대로 들어왔다. “유 장군, 또 만났군요.”
“죽은 척하며 속이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채원진은 눈썹을 올리며 의아해했다. “저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었을 겁니다.” 유태범은 고개를 흔들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결국 우리는 한 수 비운 거죠. 유만수가 오히려 우리에게 함정을 놓고 우리가 그의 손에 놀아났습니다. 지금 제 부하들은 모두 제어 당했고 이제 반전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채 각주께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잠깐만요. 제가 머릿속으로 정리 좀 해볼게요.” 채원진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계획은 실패했고 유만수는 살아있으며 당신이 모은 모든 병력은 모두 포로가 되었고 지금 당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맞나요?” “네. 거의 그런 셈입니다.” 유태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 장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만약 계획이 실패하고 당신의 부하들이 전멸했다면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죠?” 채원진은 반문했다. “실은 저는 항복을 가장해서 그들을 속였고 그 틈을 타서 빠져나왔습니다.” 유태범은 고백했다. “항복? 어떻게 그랬나요?” 채원진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말씀드리기 전에 혹시 채 각주께서 불쾌해하시면 안 됩니다.”유태범은 잠시 말을 정리한 뒤에 이어서 말했다. “사실 저는 채 각주를 미끼로 삼아서 유만수에게 항복한 척하고 그들에게 제가 채 각주를 잡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들은 복수를 갈망했기 때문에 저를 풀어주었고 저를 이용해 채 각주를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래요?” 채원진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저와 만난 것은 함정이었나요? 유만수가 꾸민 계략이었다는 거군요?”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저는 서경 왕부의 세력이 이미 사라졌다고 판단했고 호룡각에 합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들을 완전히 속여서 자신들의 계략에 휘말리지 않도록 했고 중요한 정보를 하나도 누설하지 않았습니다.” 유태범은 확신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