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왕성.유진우와 이청성은 비행기에서 내려 조용히 승합차에 올랐다. 그들은 매우 신중하게 행동했으며 아무의 주목도 받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두 사람만이 함께 떠난 것으로 그들의 밀사와 근위병은 이미 전날 밤에 서경에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 하니 더욱 은밀하고 안전했다. 차 안에서 이청성은 창문 너머로 번화한 거리를 바라보며 새로운 것들에 흥미를 느꼈다. 연경의 번잡함과 비교하면 서경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역 풍경이든, 문화든, 연경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평소 연경을 떠날 일이 거의 없었던 이청성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서경이 이렇게 많이 변했을 줄은 몰랐어요. 어렸을 때 이곳에 왔을 땐 대부분 낮은 건물들뿐이었는데 십여 년 만에 연경 못지않게 번화해졌네요.” 이청성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그러게요. 서경이 정말 많이 변했어요. 이제는 저조차도 길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유진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에게 모든 것이 이미 변해버린 모습이었다. 왕부에 돌아가도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당신 아버지는 정말 위대한 분이에요.” 이청성은 감동한 듯 말했다. “아바마마께 들었는데 20여 년 전 서경은 아직도 황폐하고 끊임없는 전쟁이 이어지는 곳이었다고 해요. 백성들은 고통 속에 살아갔고 정말 메마른 땅에 굶주린 시체가 들판을 덮은 그런 상태였죠.” 그런데 서경왕 유만수가 나타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유만수는 연경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놀라운 군사적 재능을 보였다. 군에 입대한 후에는 연전연승하며 많은 공을 세웠고 당시 그는 ‘세상에 비할 자 없는 명장’으로 불렸다. 어린 나이에 후작이 되고 장군의 자리에 올랐으니 정말 대단한 영광이었다. 모두가 유만수가 연경에 돌아가 발전하면 ‘천하의 권력을 쥔 이인자’가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결정을 내렸다. 바로 서경에 정착해 국경을 지키겠다고 한 것이다.
유씨 가문 묘원, 일명 왕씨 가문 묘원은 약 800묘의 광활한 면적을 자랑한다. 묘원 내부는 경치가 아름답고 나무들이 우거져 있으며 널찍한 도로와 다양한 시설이 완벽히 갖춰져 있다. 묘원 곳곳에는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사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여 꽃바다가 펼쳐지고 여름에는 푸른 잔디가 깔려 시원한 느낌을 준다. 가을이 되면 단풍잎이 흩날리며 감탄을 자아내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쌓여 은빛으로 뒤덮인다. 유씨 가문 묘원은 개방형으로 유씨 가문의 자손들뿐만 아니라 서경을 위해 공헌한 많은 장병들도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매년 추모 기간 때마다 묘원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떤 사람들은 고인의 묘를 참배하러, 또 어떤 이들은 순국열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서경 사람들은 이 점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현재 누리고 있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 모두 순국열사들이 목숨을 바쳐 쟁취한 결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시간 후, 유진우와 이청성은 차를 타고 유씨 가문 묘원의 정문에 도착했다.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두 사람은 간단히 변장을 했다. 이청성은 섬유 재질의 인조 얼굴 가면을 쓰고 평범한 얼굴로 변장했다. 이는 사전에 준비한 것이었다. 서경에 도착해 종일 망사 모자나 베일을 쓰고 다닐 수는 없었기에 오히려 주목을 끌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청성은 평범한 얼굴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매와 기품은 여전히 돋보였다. 묘원 안을 걷는 동안 그녀를 힐끗거리는 남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연지 랭킹 1위의 무게감이었다.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그녀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진우는 기억을 더듬으며 묘원의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억이 맞는다면 어머니의 묘는 묘원의 가장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고 비교적 한적한 곳이었다. 약 10분 정도 걸었을 때, 유진우는 드디어 진왕비의 묘를 찾아냈다. 다른 묘소에 비해 진왕비의 묘는 훨
유진우는 어머니의 비석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올렸다.어머니를 살해한 주범 이원무는 살해되였고 호룡각도 무너졌으니 이젠 채원진과 사철수 일행만 남았다.이 사람들만 없애면 어머니의 피맺힌 원수는 완전히 갚을 수 있다.“어머니, 너무 보고 싶어요!”유진우는 눈앞의 비석을 바라보면서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유진우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일 년 내내 나랏일에만 힘쓰시며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으셨고 어머니 혼자 고생스럽게 자신을 키우셨다.어렸을 때 어머니가 너무 엄하게 다스린 탓에 반항심이 생겨 걸핏하면 엉덩이를 몇 대씩 더 맞곤 했지만 어른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고된 마음을 이해 할수 있었다.유진우는 서경 세자로서 어려서부터 부유했고 만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다.이런 환경에서 어머니가 잘 가르치지 않았다면 그는 남을 쉽게 깔보는 부잣집 도련님이 되었을 것이다.유진우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은 모두 어머니가 정성껏 길러주신 덕분이다.무술이든 군사든 의약이든 아니면 기이한 비술이든 모두 어머니의 교육을 벗어나지 못했다.어머니는 그에게 생명을 줬을 뿐만 아니라 장래의 모든 길을 열어 주셨다.“휴...”슬픔에 젖어 있는 유진우를 보며 이청성은 한숨을 내쉬며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그녀는 두 모자가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을거로 생각했다.한 시간 뒤, 유진우는 하소연을 마치고 어머니의 비석 앞에서 정중하게 세 번 절을 한 후 일어섰다.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커다란 묘지에는 몇몇 사람들이 간혹 슬피 통곡하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없었다.“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유진우는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청성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괜찮아요. 전 진 왕비의 인품을 항상 매우 탄복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그녀의 수상을 보게 된 것도 저의 영광이에요.”이청성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날도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일단 쉴 곳이라도 찾아봐요.”유진우는 어머니의 말이 나오면 더 슬퍼질까 봐 다시 말을 돌렸다.“제가
“어?”의외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비석을 다시 똑똑히 쳐다본 유진우는 이 비석의 주인이 뜻밖에도 자신이랑 친분 있는 당시 흑용군의 선봉에 섰던 유림 부 장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선봉군은 모두 신중하게 고른 실력 있는 사람들로 부 장군까지 될 수 있었다는 건 그 누구보다 더 우수했을 것이다.유진우의 기억 속에 부 장군 유림은 천성적으로 신력을 가진 사람으로 전쟁터에서 매우 사납고 흉악했으며 무수한 적을 죽여 일생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었다.유림 장군은 또한 자신의 아버지 유만수를 위해 서경을 평정시키고 적들을 방어하는데 큰공을 세웠었고 희생된 후에도 관직이 바로 한 계급 올라 선봉군 주 장군으로 바뀌었다.그리하여 장례식도 매우 성대하게 치렀고 후손들은 덕분에 각종 우대를 받으며 생활했다.‘이대로라면 유림 장군의 후손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처참해진 걸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유진우는 혼자 생각하다 천천히 젊은 남자한테로 다가가 자초지종을 들어보려 했다.“누구냐!”젊은 남자는 인기척을 눈치챈 듯 살짝 경계하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긴장하지 말아요. 우리도 당신처럼 가족한테 제사를 지내러 왔어요.”경계심이 가득한 남자를 본 유진우는 급하게 대답했다.“가족한테 제사 지내러 오셨다고요?”젊은 남자는 아래위로 훑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의 눈빛을 보니 경계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네, 저희도 방금 제사가 끝나고 돌아가려던 찰나 너무 슬피 우시길래 걱정되어 찾아왔어요.”“죄송해요. 방금 제가 감정이 조금 격했어요. 두 분이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요.”유진우의 걱정 어린 말투에 젊은 남자는 그제야 사과의 말을 전했다.“괜찮아요. 저희도 다 이해해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르고 있었다는 듯 눈앞의 비석을 쳐다보며 놀란 어조로 물었다.“어머! 여기는 위대한 유림 장군님의 묘지가 아니에요? 설마 귀하께서는 유 장군님의 후손이신가요?”“네, 제 이름은 유성이고 유림 장군은 바로 저희 아버지예요
“제가 이길 수 없어도 서경에는 왕이 계시잖아요. 그들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왕보다 더 강할까요?”“이보게 친구,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들이 아니에요. 그 악당들의 아버지들은 전부 지위가 높은 사람들로 유명하며 대부분 서경 황족과 친분이 두텁고 개인적인 금융거래도 엉켜있어 아무도 그들을 건드릴 수 없어요.”유성은 울먹이면서 말했다.“이런 벌레 같은 놈들을 설마 어르신도 상관하지 않는다고요?”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르신 인품으로 보면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절대 가만히 있었을 수 없었을 것이다.“어르신께서 처리해야 될 일이 그렇게나 많은데 어찌 이런 작은 일까지 일일이 신경 써주시겠어요. 게다가 그 나쁜 관리자 놈들이 이런 추악한 일들이 생겨도 말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입막음했으니, 어르신께서는 절대 알 리도 없고 우리를 위해 정의를 밝혀줄 기회도 없었어요.”유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전 서경이 이 정도로 난잡해졌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유진우는 서경에서 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집안의 세자로서 시민들이 이런 압박을 받고 있으면서도 하소연할 길이 없다는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분노가 차올라 낯색이 어두워졌다.게다가 장군의 아들인 유성마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일반 시민들은 또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지금의 서경은 겉보기엔 번화한 것 같지만, 인성은 예전 같지가 않아요. 어르신도 이젠 연세가 많으셔서 몸이 예전보다 못해지다 보니 많은 일들을 직접 처리할 수 없기에 관리자들에게 기회를 주어 처리하게 하는데 그들 또한 이런 추악한 일들은 어르신께 보고 없이 내부에서 숨기고 있어서 우리한텐 이런 불공평한 일들은 자주 볼 수 있는 일들이에요.”유성은 실망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이런 일들은 금시초문이에요. 이젠 제가 알았으니 절대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저한테 말만 해주시면 제가 반드시 되돌려 놓을 거예요.”유진우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유진우가 자신 있게 말하자 유성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정말 저희 동생을 구해내고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 주신다면 나중에 그 은혜는 꼭 갚을게요.”유성이 무릎을 꿇으며 감사의 표식을 전하려 했지만, 유진우는 황급히 일으켜 세우며 정중하게 말했다.“유성 씨, 이러실 필요 없어요. 지나가던 사람도 힘든 일에 처하면 도와줄 수 있는 세상인데 필경 서경 사람이라면 더욱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유 선생,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묘원 밖에 나가면 찻집이 있어요. 우리 그 곳에 가서 다시 대책을 논의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둘의 대화를 듣던 이청성이 말했다.“그렇게 합시다.”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팡이를 짚고 두 사람과 함께 묘원 밖의 향명각이라는 찻집으로 향했다.찻집은 2층으로 되어 있고 1층은 차를 마시며 연극을 보고 노래를 듣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 시끌벅적했고 2층은 방이라 차를 마시며 연극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적인 비밀도 나눌 수 있을 만큼 조용한 공간으로 되어 있었다.유진우 세 사람은 방으로 예약하고 차 한 주전자와 간단한 디저트 몇 접시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유성 씨, 이젠 제가 이 일에 대해 구체적인 상황을 좀 알아야겠어요.”유진우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물었다.유성은 목이 말랐던지라 찻잔을 들고 단숨에 비우고는 말했다.“어떤 물음이든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혹시 그 소현무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그의 행방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보통 나이트클럽이나 술집, 노래방 같은 유흥업소들을 잘 찾아다니는 것 같았어요.”유성은 갑자기 뭐라도 생각이 난 듯 말했다.“아! 기억났어요. 소현무가 자주 드나드는 평청왕리라는 술집이 있는데 평소에 별일 없으면 그 악당무리들을 데리고 그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거래하곤 했어요.”“평청완리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서 물었다.“동생분의 현재 상황은 어떤지요. 혹시 무슨 단서라도 있나요?”동생의 말이 나오자, 유
“네, 정말 고마워요.”유성은 자신의 부러진 다리를 쳐다보고는 따라가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될 것 같아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유성 씨, 혹시 여동생 사진 있어요? 얼굴이라도 알고 찾는 것이 빠를 것 같아서요.”“네, 여기 있어요.”유성은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동생이랑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유진우는 사진을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유성의 여동생은 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진 속에서 밝은 미소를 띄고 있는 것을 보니 성격도 매우 활발하고 밝아 보였다.어쩌면 이렇게 완벽한 여성이라 소현무 같은 악당들이 눈여겨보았을지도 모른다.“진우 씨, 소현무의 부하들도 엄청 강해요. 당신들도 조심해야 해요.”유성은 엄숙하게 당부하였다.장군의 아들인 유성은 어려서부터 무술을 배워왔고 그 실력은 혼자 백 명도 거뜬히 상대할 정도로 뛰여났지만, 소현무의 부하들을 상대하기엔 실력이 아주 부족했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여기서 소식 기다리고 있어요.”유진우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청성과 함께 재빨리 움직여 차에 탔다.차 안에서 이청성은 갑자기 유진우를 보고 말했다.“사실 이 일을 진우 씨 아버지께 알려 처리하면 빠를 것 같아요.”“아니요, 이 일은 당분간 아버지께 알리면 안 돼요. 아버지가 이 일에 개입하면 경솔하게 행동할 수 있어요. 소씨 가문은 부유한 집안으로 각 방면의 권력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왕부 내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한통속이에요. 만약 이 일을 아버지께 알려 해결해달라고 하면 아마 아버지가 출발 하기도 전에 소현무 일행들은 소식을 듣고 줄행랑을 쳤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일은 처리하기가 더 번거로워질 것이니 우리가 직접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유진우의 말을 듣더니 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는 말인 거 같아요. 그들이 다 한통속이면 소현무를 잡는 것이 오히려 쉽지 않겠네요. 일단 소현무부터 잡아 피나무 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파헤쳐 연관된 악당들을 전부 끌어내는
30분 후.승합차 한 대가 평청만리 술집 입구에 도착했다.유진우와 이청성은 차례로 차에서 내렸고 둘 다 역용술을 거쳤기 때문에 신분이 탄로 날 염려가 없었다.평청만리 술집은 규모가 크고 밖에 줄도 서 있었다.다행히 두 사람은 밀정이 있어 술집에 순리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술집 안은 시끄러운 소리와 눈부신 조명으로 가득 찼다.한 무리의 남녀가 음악에 맞추어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자신의 열정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고 이런 시끄러운 환경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다.“왜요? 술집에 잘 안 오시죠?”이청성은 옆모습을 보며 웃었다.“여긴 저랑 안 맞는 곳이라 말할 수밖에 없네요.”유진우는 답했다.그는 차라리 집에서 책을 볼지언정 이런 곳에 와서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기회가 되면 시도해 볼 수 있잖아요. 그들을 보세요. 재밌게 춤을 추고 있잖아요.”이청성이 웃었다.“이런 삶은 결국 구름과 연기일 뿐이고, 모든 사람이 그런 식이라면 이 나라는 강해질 수 없습니다.”유진우는 담담하게 답했다.“당신은 정말 재미없네요. 지금 서경 백성들이 편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닙니까?”이청성이 물었다.“즐겁게 생활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서경이 오늘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은 모두 선대 열사들의 피와 맞바꾼 것입니다. 유성 같은 공신들까지 괴롭힘을 당하고 억울함을 풀 길이 없다면 근본부터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번화 후에 생겨난 해충이 너무 많습니다!”유진우의 표정은 진지했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곁에 있던 밀정이 갑자기 손가락을 뻗어 2층 모처를 향해 소리쳤다.“이봐, 소현무다!”유진우는 소리를 따라가 2층 좌석에 앉아 사람을 보았다.올백 머리에 피어싱한 화려한 차림의 젊은 남자가 여우 같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그리고 매 사람 옆에는 몸매가 괜찮은 두 명의 미녀가 앉아 있다.마음껏 마시고, 만지고, 뽀뽀하고,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듯 했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