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은 미식가라고 자칭하는 노인이 또다시 나타나자,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거절하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좋아요.”이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건을 바라보았다.‘방금까지 경계심을 가지던 사람이 이렇게 쉽게 동의한다고? 게다가 아직 조건도 듣지 않았잖아.’이진의 생각을 알아차린 이건은 따뜻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가볍게 긁었다.그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진의 기분을 다독여 주었다.그리고 얇은 입술을 오므린 채 노인을 바라보았다.“먼저 조건이 뭔지 말해보세요.”노인도 마찬가지로 이건이 이렇게 쉽게 동의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시 멍하니 있더니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전 나쁜 사람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두 사람이 저희 마을에 왔으니 맛있는 음식이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그래요. 저희 마을은 한 달에 한 번씩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나눠 먹는 것이 풍속이기도 한 데다가, 젊은 아가씨와 인연이기도 하니 당연히 조금이나마 대접해 드려야 하죠.”이진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노인을 보았다.‘이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아직도 내 신분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걸까?’이건이 곁에 있었기에 눈치 빠른 이진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이건은 별로 망설이지 않은 채 대답했다.“그래요.”“그렇다면 절 따라오시죠.”노인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두 사람은 직원들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느릿느릿 노인의 발걸음을 따라갔다.노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벌인 후, 이건은 발걸음을 멈추고는 낮은 소리로 이진의 귓가에 말했다.“사실 이 마을에 관심이 생겼거든.”이건은 이곳에서 퇴직 생활을 즐기려는 것이 아니었다.이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건이 말을 이어 가기를 기다렸다.“이곳에서 관광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지 않아?”대답을 기다리던 이건은 먼저 입을 열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이것은 어젯밤 이진과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윤 대표님, 정말 저희 마을의 개발 사업에 투자하시려는 거예요?”촌장은 매우 열정적으로 이건을 맞이하며, 탐욕이 넘치는 표정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거듭 확인했다.이건은 웃는 듯 마는 듯 그를 흘겨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물론이죠, 이처럼 풍경이 아름다운 마을의 관광업을 발전한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거예요. 프로젝트를 개설하고 호텔을 세운다면,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모두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을 거예요.”이건은 목소리를 낮추어 보충했다.“이 마을의 촌장인 당신도 엄청난 칭찬을 받게 될 겁니다.”‘내가 그딴 칭찬을 받아서 뭐해. 돈만큼 의미 있는 건 없어.’촌장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렇다면 윤 대표님께서는 얼마를 투자할 계획인가요?”이건은 얇은 입술을 열어 가볍게 숫자를 말했다.그는 당연히 촌장의 뜻대로 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심지어 일부러 가격을 낮추어, 현지 개발사에서 제시한 가격보다 더 낮은 액수를 말했다.그 말을 들은 촌장은 환하게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건의 싸늘한 표정은 전혀 농담 같아 보이지 않았다.촌장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돈도 많은 사람이 왜 이렇게 쪼잔한 거야?’“윤 대표님, 진심이에요?”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건이라면, 분명 높은 가격을 제시할 줄 알았던 촌장은 실망하고 말았다.중간에서 돈을 빼먹으려던 촌장은, 이건이 제시한 금액이 분명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그는 애써 표정을 숨기며 말을 이어갔다.“윤 대표님, 사실 저희 마을에도 개발사가 있거든요. 하지만 저희가 그동안 관광업을 개발하지 못한 것은, 마을 주민분들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괜찮아요.”이건은 그의 말을 끊고는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주민분들을 설득하는 일은 제가 책임지도록 하죠. 촌장님께서 의견이 없으시다면 되도록 빨리 계약을 체결해 관광 개발에 대해 결정을 내리도록 하죠.”
이건이 손을 쓰기도 전에 이진은 이미 성공적으로 마을 주민들을 설득했다.하지만 촌장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이건이 몰래 시장을 찾으러 간 일은 이진만이 알고 있었다.프로젝트가 성사되었다면, 진행 방향을 정하기 위해 현지 고찰을 진행해야 한다.이건은 가능한 한 빨리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이진과 함께 잠시 마을에 머물기로 결정했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정희는, 이진이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자신을 잊은 줄 알고는 시우 몰래 찾아왔다. “이진아, 어떻게 나 빼고 여행 올 수 있어? 설마 날 잊은 건 아니지?”정희가 갑자기 나타나 평소 같은 말투로 투덜대자, 무방비 상태였던 이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정희?”이진은 놀란 마음에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보았다.“여긴 어떻게 찾아온 거야? 네가 여기에 온 걸 시우 씨도 알고 있어?”“시우 씨가 알든 말든 중요해?”정희는 시큰둥한 말투로 대답하고는, 베란다에 앉아 일하고 있는 이건을 보며 비꼬듯이 말했다.“내가 누구처럼 남자한테 푹 빠진 여자는 아니거든.”이진은 갑작스러운 말에 말문이 막혔다.‘내가 언제 남자한테 푹 빠졌다고 그래?’이진은 기분이 좋았기에 굳이 따지진 않았다.“시우 씨가 또 널 화나게 했어?”“아니거든!”‘내가 맨날 시우 씨한테 화난 줄 아나 봐! 난 이진이 너 때문에 화가 난 건데!’정희는 원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이진을 보더니, 질투하듯이 말했다.“이진아, 사실대로 말해봐. 너 나한테 싫증 난 거지? 이렇게 좋은 관광지를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야?” “난 일하러 온 것이지, 놀러 온 것이 아니야.”정희의 말에 그녀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정희가 목말라 보이자, 이진은 물 한 잔을 따라 정희에게 건네며 물었다.“시우 씨와 싸운 것이 아니라면, 왜 이 먼 곳까지 찾아온 건데?”‘시우 씨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이 먼 곳까지 온 거지?’“말했잖아, 시우 씨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라고!”정희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거듭 강조했다.
연서의 점차 어두워진 안색을 무시한 채, 이건은 부드럽게 이진의 손을 잡았다.그것은 연서를 대할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이건이 곧장 연서를 지나 자리를 뜨자, 옆에 있던 이진은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이건은 그 모습을 보더니 가볍게 이진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웃고 싶으면 웃어도 돼. 참을 필요 없어.”“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이진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물었다.“유연서 씨는 정말 당신한테 일편단심이네요.”‘차라리 날 싫어했으면 좋겠네!’이건은 그녀의 말에 불만 가득한 표정을 보였다.이진은 그대로 허리를 껴안긴 채 나무에 기대어 그와 한바탕 뜨거운 키스를 하고 나서야 얌전해졌다.그렇게 두 사람은 지형 정찰에 관한 일을 모두 잊고 말았다. 두 사람 모두 열기가 달아올라 가능한 한 빨리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하지만 민박 입구에서 또 익숙한 실루엣을 보게 되었다.‘저 여자는 하다 하다 이곳까지 몰래 따라온 거야?’이진이 몰래 탄복하는 동시에, 연서는 두 사람을 향해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두 사람도 이 민박에서 지내고 있었던 거예요? 제가 마침 간식들을 좀 사 왔는데 드셔보지 않을래요?”이렇게까지 들이댄 이상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이진은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남자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드디어 동의하자 연서는 매우 흥분하였다.도중에 그녀는 간식을 빌어, 이진을 통해 이건에 관한 소식을 물어보았다.이진은 그제야 방금 내린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더니 정희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이건 씨와 이 늦은 시간에 어디로 간 거야? 너 찾으러 방에 찾으러 갔는데 아무도 없네.]이진은 무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돌아오는 길에 유연서를 만났는데, 간식을 사 오더니 우리 방으로 가서 함께 먹자고 하더라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그만 동의해 버렸어.]‘유연서!’[내가 생각하는 그 유연서야?][그럼 그 여자 말고 또 누가 있겠어?]정희는 놀란 듯한 이모티콘을 보내더니
이건은 여전히 이진이 걱정되었기에 서재에서 나온 것이다.그런데 마침 연서의 말을 듣게 될 줄이야.이건은 끝내 인내심을 잃게 되었다. 그는 앞으로 다가가 이진을 품에 안고는 연서를 향해 말했다.“유연서, 다른 일이 없다면 이만 돌아가. 나와 내 아내는 피곤해서 쉴 거야.”“난.”연서는 아내라는 두 글자에 움찔거리더니 조금이나마 동정을 얻으려 했다,그러나 곧 이건의 혐오스러운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숙인 채 떠날 수밖에 없었다.방문이 굳게 닫히자 드디어 방 안에 생기가 돌았다.“이건 씨, 정말 사람은 겉모습만 봐서는 안 되네요! 평소에 차가운 모습만 보이셔서 몰랐는데, 여우 년을 이렇게 속 시원하게 내쫓으시다니, 정말 대단해요!”정희는 이상할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으로 이건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그리고 다정하게 이진의 팔을 껴안고 가볍게 흔들었다,“이진아, 방금 기분 상했지? 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오늘 밤은 나와 같이 자는 게 어때?”‘지금 뭐라는 거야?’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진이 하려던 말을 막았다.곧이어 문 너머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분명 시우의 목소리였다.“이건아, 이진 씨, 정희 씨가 안에 있나요?”이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건은 차가운 얼굴로 곧장 걸어가 문을 열었다.이때 정희는 여전히 자신을 숨기려고 시도했다.시우는 멋쩍게 웃더니 안으로 들어가 정희를 어깨에 올리고는 방을 나섰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진은 입을 떡 벌렸다.이건은 이진이 부러워하는 줄 알고 말했다.“자기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업어줄 수 있어.”‘아니, 하나도 안 원해!’한편 침대에 던져진 정희는 빠르게 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말아 온몸을 감쌌다.그리고 경고하듯이 시우에게 말했다.“시우 씨, 경고하는데 제가 화 풀기 전까지는, 더 이상 저한테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제 친구 앞에서는 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시면 안 돼요?”‘어깨에 올려 데리고 가는 건 너무 창피하잖아.’시우는 뒷말을 무시한 채 몸
어젯밤의 일로 인해, 이제 윤이건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관광 개발 계획을 말했다.읍장은 상상도 못 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윤이건은 놀라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목적을 노골적으로 들어내며 자신을 자극하려 한다.읍장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식을 듣자마자 윤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다.“윤 대표님, 제가 분명 말씀드렸을 텐데요. 주민들이 관광 개발에 반대한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마음대로 진행할 수 있나요?” 전화 너머로 읍장의 화난 목소리를 듣고 윤이건은 읍장이 지금 얼마나 자신을 미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칠 것 같았다. 윤이건은 동요하지 않고 여유롭게 되물었다. [그들이 반대하는 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반대하는 건가요?]윤이건의 말에 읍장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굳어졌다.하지만 이내 윤이건이 자신의 의도를 알고 있다면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읍장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생각했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죠, 윤 대표님. 우리 둘 다 똑똑한 사람들이니 그동안 겪은 일이 있으니 말하지 않아도 제 의도를 이해할 것이라 믿습니다. 돈을 벌고 싶다면 함께 벌면 되죠. 나쁘지 않잖아요?”“투자를 좀 더 늘려 제 몫도 확보되고 그러면 당신도 좋고 저도 좋으니 제가 당신의 사업을 방해할 이유는 전혀 없죠!”사실 윤이건은 읍장의 동의 없이 관광 개발 프로젝트를 따내려 했다.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윤이건은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며 그의 말을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다.이를 몰랐던 읍장은 초조하게 상대방이 대답하기를 기다렸다.그러나 다시 휴대폰을 보니, 언제 끊겼는지도 모르게 이미 통화가 종료되어 있었다.“윤이건!”읍장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는 순간, 읍장은 더 이상 예를 차리지 않고 말했다.“윤 대표, 당신이 YS 그룹의 대표라는 점을 고려해서 예를 갖추어 말했지만 여기가 우리 지역이라는 걸 잊으셔는 안되죠.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한편, 어르신의 도움으로 윤이건은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고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며 관광 프로젝트 개발 계획을 주민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했다.처음부터 끝까지 윤이건은 논리적이고 진실한 태도로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혔다.윤이건은 YS 그룹의 사장으로서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는 지위와 신분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성공한 사업가로서 빈말로 일을 성사하지는 않는다.이번 기회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냄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존경심도 심어준다.이윽고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었지만 어르신에게는 아직 마음에 남은 일이 있었다.연속 며칠 동안 프로젝트 개발에 몰두하는 바람에 어르신은 처음에 이진과 윤이건을 초대한 목적을 잊고 있었다. 이진에게 요리 스승이 없어 그녀의 요리 스승이 되어주려고 했다. 아무리 실력이 좋더라도 좋은 스승이 없다면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어르신은 기회를 찾아 윤이건과 함께 돌아갔다.그러고는 이진을 따로 불러내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이진아, 요리 스승이 없다고 들었는데 괜찮다면 내 제자가 되어주렴.”이진이 혹시나 불편해할까 봐 어르신은 말을 마치자마자 서두르며 덧붙였다. “물론, 네가 나한테서 요리를 배운다고 해서 꼭 요리사를 해라는 건 아니야. 그냥 취미로 배워도 돼. 네 재능이 워낙 뛰어나서 너를 제자로 삼고 싶거든. 그냥 두면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어르신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다양한 요리에 능통했다.오랫동안 잊혀진 명요리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아주 쉽게 완성되었다. 다시 말해, 그의 요리 실력은 현재 TV 프로그램의 요리 경연에서도 최고의 요리사들과 견줄 수 있었다.또한 어르신의 신분을 고려할 때, 오늘 이진에게 제자로 들어오라고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은 어르신이 이진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증명하는 것이었다.이진은 놀란 듯 그런 큰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공손하게 거절했다. “어르신,
“이기태 씨, 전 아버지와 시간을 낭비할 만큼 여유롭지 않아요. 아버지의 목적을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면 경찰을 부를 수도 있어요.”“모두가 아버지의 뻔뻔함을 알았으면 좋겠어요.”이진은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참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이기태는 이진의 말에 자극받아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겨우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진아, 오해하지 마. 사실은 너와 윤이건이 최근에 관광 개발로 바쁘다는 걸 들었어. 기억하니?”“우리 이씨 가문도 예전에 관광 관리를 했었지. 우리 두 회사가 협력하면 이씨 가문은 윤씨 가문을 전력으로 지원할 거야. 그러니……, 아빠 좀 봐주면 안 되겠니?”마지막 말은 아마 이기태 본인도 너무 가식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다.그는 말을 끝내기까지 애를 먹었다.이진은 비웃듯이 이기태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 윤 대표님과 협력하고 싶으면 왜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 하지 않고 저한테 하는 거예요?”“…….”‘윤이건을 직접 설득할 수 있다면 이진과 이러지 않아도 될 텐데.’이기태는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죄책감을 표현했다.“이진아, 아빠를 아직도 원망하고 있니? 지난번 일은 정말 내 잘못이었어. 물론 계속 후회하고 있어. 그렇지 않았으면 윤이건에게 관광 프로젝트가 있다는 걸 알고도 너를 찾지도 않았을 거야. 이 모든 건 너를 위해서다.”‘나를 위해서라고?’이진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그녀의 시선은 마치 얼음 같았다.오랜만에 만난 이기태는 더욱 뻔뻔해졌다.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이기태는 점점 초조해졌다.“이진아…….”“아버지, 지금 아버지는 제가 윤 대표한테 가서 당신을 위해 말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이진은 이기태가 아직도 뻔뻔하게 행동하자 비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제가 알려드리죠. 윤 대표님의 새 프로젝트, 꿈도 꾸지 마세요. 제가 여기 있는 한 아버지가 그와 협력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이씨 가문의 인맥이 윤씨 가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이진만을 위해서 윤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