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설아는 그가 내민 꽃을 받지 않고 싸늘한 눈빛으로 오남준을 쏘아보았다.분위기가 순식간에 경직되었고 현장에 있던 모두가 당황했다.임설아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하지만 이 결혼, 못해.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으니까!”그 말을 들은 현장에 있던 모두가 술렁이기 시작했다.약혼식 날에 프러포즈를 거부한 약혼녀라니!대체 어쩌자고 저러는 걸까?장수지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으나, 오덕화가 그녀의 손을 잡아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오남준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임설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얼굴에 대고 카드 한장을 던졌다.“남준 씨가 날 속였잖아!”현장에 있던 모두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약혼식이 파토가 난 것이다!사기 결혼인가?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사기 결혼이었다.서른 상의 테이블에는 오덕화의 친척들과 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장수지는 체면을 살리기 위해 전에 이웃에 살았던 사람들까지 모두 초대했다.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 그들의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여자가 얼마나 속상했으면 약혼식 날에 저런 말을 할까?”“아이고, 창피해서 어쩌나! 얼마나 여자애를 달달 볶았으면 약혼식 날에 저런 말을 하겠어?”“내가 말했잖아. 저렇게 조건이 훌륭한 여자애가 오남준 뭘 보고 결혼까지 한다고 나서겠어? 오남준이 사기를 쳤네!”사람들이 술렁이는 소리에 장수지는 당장이라도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았다.오남미는 임설아가 던진 카드를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 “설아야,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조급해진 오남준이 카드를 집어들고 의아한 얼굴로 임설아에게 물었다.임설아는 원통한 눈빛으로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그걸 정말 몰라서 물어? 남준 씨 원래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었어?”오남준이 망연자실하며 물었다.“지금 뭐라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짝!임설아는 그대로 손을 들어 오남준의 귀뺨을 쳤다.“야! 너 지금 내 아들 때렸어?”그
“그런 거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됐어!”장수지가 절규하며 소리쳤다. 체면을 위해 일부러 서른 테이블이나 준비하고 아는 사람은 깡그리 불러왔는데 그 사람들에게서 온갖 비난과 비웃음을 당하고 있으니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설마 저 순진한 여자애가 약혼식 날에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겠어?”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람들 틈에서 들려왔다.“정말 너무하는 사람들이네. 능력도 없으면서 저런 순진한 애를 꼬셔서 결혼하려고 한 거야?”장수지는 인상을 찡그리고 고개를 홱 돌렸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찾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오남미의 앞에 다가갔다.짝!그리고 손을 들어 오남미의 뺨을 때렸다. 오남미는 멍한 얼굴로 엄마를 바라봤다.장수지는 당장이라도 딸을 잡아먹을 기세로 고함쳤다.“나쁜 계집애! 협의가 다 되었다면서? 설아가 그러겠다고 했다면서? 이게 어떻게 된 거니!”“엄마….”오남미가 뭐라고 해명하려고 했지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하객들의 비난소리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장수지가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아이고, 내가 못살아!”오덕화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공들여서 준비한 아들의 약혼식에서 이토록 창피를 당할 줄은 누가 알았을까?털썩!그는 의자에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누나, 어떻게 된 거야!”오남준이 눈물 콧물 쥐어짜며 그녀에게 따지듯 말했다.“도와줄 능력이 없으면 가만히라도 있을 것이지, 이게 다 뭐야!”만약 오남미가 임설아와 미리 상이가 되었더라면 그가 아는 임설아는 약혼식에서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었다.“그게….”오남미도 억울함에 눈물이 나왔다.이때, 사람들 틈에서 노인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그는 오덕화와 장수지를 손가락질하며 잔뜩 실망했다는 투로 말했다.“정말 내가 너희들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동네방네 소문나게 성대하게 약혼식을 준비해 놓고 그까짓 2천만 원이 없어서 이 난리를 만들어
회사를 나온 그는 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파출 센터를 찾았다.“안녕하세요. 어떤 걸 도와드릴까요?”그를 맞이한 사람은 사십 대 정도의 중년 남자였다.천도준이 말했다.“간병인을 한 명 고용하고 싶은데요.”오남미가 다녀간 뒤로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서 밀착 간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현재 서천구 재개발 사업 때문에 24시간 병원을 지킬 수는 없었다.간병인을 고용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잘 찾아오셨습니다. 저희는 전문 간병인만 육성하는 센터거든요. 앉아서 얘기하시죠.”중년 남자가 웃으며 그에게 차를 권했다.“간병인에게 특별한 요구사항은 있나요?”천도준은 차를 한모금 마시고 덤덤히 말했다.“싸움을 잘했으면 좋겠군요.”“싸움이요?”같이 차를 마시던 중년 남자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흠… 이런 요구사항은 처음이라….”이럴 거면 차라리 경호원을 고용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면 됩니다.”천도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오남미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처가댁 식구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간병인을 고용한 주요 목적은 그들이 엄마의 치료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그래서 나약한 사람은 쓸 생각이 없었다.“그럼 제가 어떻게든 사람을 구해보겠습니다.”중년 남자는 의혹을 참으며 컴퓨터로 간병인 리스트를 검색했다.“다른 요구사항은 더 없나요? 월급은 얼마 정도로 예상하시나요?”“싸움 잘하고 환자를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돈은 얼마가 됐든 상관없습니다.”천도준이 말했다.어머니는 그의 전부였다. 어머니를 지킬 수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게다가 그는 현재 돈이 넘쳐나게 많았다.중년 남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20년 파출과 용역 사업을 했지만 이렇게 기괴한 요구를 하는 손님은 처음이었다.그는 30분 정도 리스트를 검색하다가 한 이력서를 보고 눈을 반짝 빛냈다.“손님, 이 사람은 어떤가요?”말을 마친 그는 노트북 화면을 천도준에게 돌렸다.천도준은 이력
서천구 재개발 사업에서 마영석 대리는 한 구역의 주요 담당자였다.마 대리가 이마에 땀을 닦으며 그에게 말했다.“지금 현장에서 오는 길인데 입주민들이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보상금이 적다면서 재개발을 반대한다고 현수막을 치고 앉았어요.”천도준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재개발 사업은 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이고 보상금도 표준보다 적지 않을 텐데? 게다가 이대광이 60억이나 더 보고하는 바람에 보상금도 그만큼 올라갔을 텐데 어떻게 된 거야? 게다가 이미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잖아. 사인할 때는 아무 불만이 없다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뭔데?”“그야 저도 모르죠.”마 대리가 난감한 얼굴로 답했다.“의성이 서천 개발에 투자한다는 소문이 돈 뒤로 그쪽 땅값이 매일 치솟고 있잖아요. 안 그래도 입주민들이 불만이 생길까 봐 현지 주민들에게 꼼꼼히 확인했고 그때는 보상 금액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했어요. 어제 그 지역 사는 할아버지들과 장기도 같이 두었는걸요.”마 대리는 말할수록 억울함이 치밀었다.“그런데 오늘 갔더니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쌀쌀맞게 대하더라고요.”“하, 재밌네.”천도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냉소를 지었다.“하룻밤 사이에 태도를 바꾼다라. 누군가가 움직였다는 얘기겠군.”정태건설에서 신입사원부터 부장까지 승진하면서 그는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비록 이대광 때문에 많은 억울함도 있었지만 그러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현재는 이수용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대표로 부임하고 이 회사의 중심이 되었다.이와 비슷한 부류의 일은 예전에도 겪어본 적 있었다.“대표님, 누가 우리 엿 먹이려고 움직였다는 얘기인가요?”마 대리가 물었다.“그럼 어제 마 대리랑 같이 장기까지 두던 노인네가 오늘 아침 갑자기 쌀쌀맞게 변했을 리가 없잖아?”천도준이 정색하며 말했다.“일단 나가봐. 내가 좀 더 조사를 해볼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일해.”“그래도 제가 그 지역 담당인데 이렇게 빠져도 정말 괜찮은 겁니까?”정직한 마 대리가 걱정스러운
전화를 끊은 이대광은 피식거리며 핸드폰을 소파에 던졌다.“자식, 잘난 척하는 건 여전하네? 언제까지 웃나 두고 보자.”서천구 입주민들의 난동은 그의 작품이었다.이대광에게 천도준은 여전히 과거에 그의 앞에서 납작 엎드리던 부하직원에 불과했다.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절대 천도준이 자신의 위에서 노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게다가 지난번에 클럽 근처의 골목에서 천도준에게 맞은 것이 아직도 뼈가 아팠다.매형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도 있는데 복수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천도준에게도 조력자가 있는 걸 알지만 그 조력자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자신의 매형보다 든든할까?“오빠, 무슨 일이야?”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이대광의 품을 파고들며 물었다.이대광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의기양양하게 대꾸했다.“키우던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자기가 사람이 된 줄 알잖아. 웃기지 않아?”여자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이대광의 가슴팍에 원을 그리며 애교를 부렸다.“오빠….”이대광의 얼굴에서 싸늘한 기운이 사라지고 음흉한 미소가 피어났다.한편, 전화를 끊은 천도준은 이수용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대광 혼자 한 짓이라면 그는 얼마든지 놈을 응징할 방법이 있었다.하지만 이대광의 매형에 대해서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그는 천도준의 능력을 높게 사서 3년 만에 천도준을 부장의 자리까지 올린 사람이었다.그런 사람이라면 이대광이 친 사고를 계속해서 수습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을 이 판에서 완전히 빠지게 만들어야 속 좁은 이대광이 자꾸 시비를 걸어오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이수용이 단 몇 분만에 정태건설을 인수할 수 있었다는 건 둘이 아는 사이일 가능성이 컸다.잠시 후, 이수용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밤 여덟 시에 리빙턴 호텔에서 보자는 내용이었다.천도준은 흔쾌히 나가겠다고 했지만 사실 속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옛 상사가 이 도시에서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이수용이 중간에 끼지 않았더라면 그는 혼자서 상사를 만날 기회조차 주
전에 파출 업체 사장에게도 얘기한 적 있는 내용이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전하는 건 다른 의미였다.“이 조건을 수락할 수 있다면 나는 OK입니다.”“할게요.”박유리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원했던 금액은 350만원이었다. 하지만 천도준은 통 크게 50만을 더 얹어서 주었고 나이 든 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은 그렇게 강도가 높은 일도 아니었다. 박유리 입장에서는 이게 웬 떡인가 싶기도 했다.고용 계약서를 작성한 뒤, 천도준은 박유리를 데리고 이율 병원으로 향했다.택시에 오른 박유리는 묘한 눈빛으로 천도준을 바라봤다.“뭐 궁금한 게 있어요?”천도준이 물었다.박유리가 움찔하며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죄송해요. 정말 외람된 질문인 걸 알지만 400만원이나 주고 간병인을 고용하는 분이 자차가 없다는 게 신기해서요.”천도준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가 부자가 된지도 이제 2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이식수술이 끝난 뒤에는 서천구 재개발 사업에 정력을 쏟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일하다 보니 바빠서 차를 사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그는 솔직하게 대답하며 화제를 돌렸다.“전에 공사 현장에서 일한 적 있어요?”“네.”박유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그걸 어떻게 아셨어요?”사실 천도준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박유리는 외모 조건이 어디 뒤떨어지는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전직 격투기 프로 선수였던 그녀가 왜 하필 간병인이나 공사 현장 같은 험한 일을 찾아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손에 굳은살이 많더라고요.”그 말을 들은 박유리가 씁쓸한 얼굴로 손을 가렸다.아직 이십 대 후반밖에 되지 않은 그녀는 대체 어떤 삶을 경험하고 살았던 걸까?“공사 현장에서 막일을 했어요?”천도준이 물었다.“그렇다고 볼 수 있죠. 철심 박는 일을 했어요.”박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천도준은 저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가 딱 원하던 간병인이었다.병원에
손님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이대광이 눈을 반짝이며 다급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매형이 이런 장소에 자신을 데리고 왔다는 건 자신을 이끌어줄 생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에 자부감이 들었다.어떤 귀한 손님인지는 모르지만 이분의 마음을 사면 앞으로 꽃길만 열릴 것이다.‘천도준, 난 매형 도움을 얻어 더 위로 올라갈 거야. 네가 인수한 정태건설? 곧 내 손에 무너지게 될 거야!’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별실로 들어온 두 사람을 본 그는 머릿속이 온통 하얘지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입가에 미소가 사라지고 험악하게 인상이 일그러졌다.“천 부장, 너 여기가 어디라고!”경악한 이대광의 목소리가 별실에 메아리쳤다.“이대광, 이게 무슨 실례야!”매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천도준에게 상석을 양보하며 양해를 구했다.“처남이 실례를 범했네요. 죄송합니다. 어르신, 천 대표, 이쪽으로 앉으시죠.”“매형, 이건….”이대광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매형이 말했던 귀한 손님이 천도준일 줄이야!“우리 이 대표님이 많이 놀란 것 같네요.”천도준이 이대광의 앞으로 다가오며 빙그레 웃었다.이대광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지만 매형의 싸늘한 눈빛에 결국 울분을 참고 자리에 앉았다.고개를 돌리자 과거 자신의 밑에서 개처럼 기던 부하직원이 매형의 극진한 접대를 받고 있었다.자존심이 상하고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더 원통이 터지는 건, 매형은 자신을 끌어준다고 해놓고 천도준 접대 자리에 자신을 끌고 나왔다는 점이었다.“저렇게 눈치가 없어서야.”중년 남자가 한심한 얼굴로 이대광을 바라보며 불만을 토했다.오늘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애초에 이수용이 천도준을 위해 정태건설을 인수한다고 했을 때, 단 1초의 주저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수용이 가진 힘이 컸기 때문이었다. 정태건설이 어떻게 되든 그건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어차피 그 건설사는 동생 좀 키워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받
주건희는 호탕하게 웃으며 둘에게 자리를 권했다.원래대로라면 가장 연장자인 이수용이 상석에 앉아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노인은 상석을 비워두고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천도준에게 상석을 권했다.그 모습을 본 주 회장마저도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다시 천도준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이 담겨 있었다.자리에 앉은 뒤, 주건희는 싸늘한 시선으로 이대광을 바라보며 말했다.“처남, 아까 내가 했던 말 잊지 않았지?”이대광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가 천도준을 극진히 모신다? 그건 자존심 상 절대 불가능했다.집에서도 자기 멋대로 하면서 자란 그는 매형의 근엄한 모습에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뭐를요? 설마 나한테 옛 부하직원에게 술이라도 따르라는 겁니까? 전에 내가 정태 대표로 있을 때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애송이였다고요!”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별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주건희는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리며 처남을 노려보았다.쾅!그리고 힘껏 테이블을 치며 이를 갈았다.“이대광, 그 말 다시 한번 해봐. 나 네 매형이야.”이대광은 여전히 목을 뻣뻣하게 쳐들고 소리쳤다.“그래서요? 내가 당장 누나한테 전화하면 쩔쩔맬 거면서!”주건희는 순간 울컥하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외부에서는 성공한 기업인이라고 추앙 받는 그였지만 집에서는 마누라 눈치만 보며 사는 평범한 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남자는 당연히 여자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와이프의 동생인 이대광도 누나 덕분에 회사에서 40살까지 놀고 먹었다.처남을 이 자리까지 데리고 나와서 직접 사과를 하게 하려는 것도 결국엔 처남을 위한 일이었다.이수용은 그가 커버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눈치 없는 이대광은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천도준은 담담한 얼굴로 상석에 앉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대광의 반응은 그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하지만 잔뜩 화가 난 주건희를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주 회장 와이프도 친정 식구들만 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