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설아가 깨어났을 때 머리와 목, 팔에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그녀는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이때 경찰이 그녀에게 밥을 가져다주며 말했다.“민설아 씨는 신정 그룹 대표 송시윤 씨를 살해하려고 시도했으니 거기서 꼼짝 말고 법원의 판결만 기다리고 있으세요!”그녀는 송시윤이 차를 바꿔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민설아는 당연히 가만히 갇혀만 있을 수 없어 경찰을 불렀다.“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세요. 변호사를 불러올 거거든요.”그러자 경찰은 차갑게 픽 웃으며 무시해버렸다.어느덧 밤이 되었다. 줄곧 모습이 보이지 않던 경찰이 다시 다가왔다. 이번엔 두 여자를 끌고 왔다. 그러더니 그녀가 있던 방으로 밀어 넣고 수갑을 풀어버렸다.민설아는 두 여자를 그저 힐끗 보기만 했다. 두 여자의 사나운 시선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구석으로 더 웅크리며 경계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민설아는 더는 버틸 수가 없었고 결국 잠들고 말았다.누군가 다친 팔을 꽉 누르는 것이 느껴진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이미 막혀버린 입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지를 수 없었다.“저희를 원망하지 마세요. 저희도 돈을 받고 이 일을 하는 거거든요.”여자는 말하면서 그녀의 뺨을 갈구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그 사람이 그랬어요. 어떻게 해도 된다고. 그냥 목숨만 붙어있게 하라고 했거든요.”‘분명 송시윤이 날 죽이려는 거야!'민설아는 두 눈이 충혈될 정도로 안간힘을 쓰며 몸부림을 쳤다.다리를 들어 여자의 배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그러자 여자는 허리를 굽히며 고통에 신음을 내고 있었다.민설아가 일어나기도 전에 누군가 뒤통수를 확 잡아당겼다. 지켜보고 있던 다른 여자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것이다. 여자는 그녀의 뺨을 갈구더니 피가 흐르는 상처를 꽉 꼬집었다.“읍!”민설아는 엄청난 고통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두 여자를 그녀가 있는 구치소에 가둔 후로 몇 시간 간격으로 순찰을 돌던 경찰도 오지 않
“전화...해...”민설아는 전화번호를 말해주며 여자의 목을 꽉 졸랐다.다리에 힘이 풀린 여자는 구원의 눈길로 윤유진을 보았다.“민, 민설아, 그 손 당장 놔...”윤유진은 민설아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겁에 질린 얼굴로 보았다.“넌 어차피 집안도 망했잖아.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기나 해?”그녀는 민설아와 몇 년 동안 친구로 지냈기에 민설아의 주변 인물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중 집안 배경이 좋은 친구들은 그녀가 이미 자기편으로 매수했다.그랬기에 민설아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닥치고... 전화하라고!”민설아는 이를 빠득 갈며 힘겹게 말했다. 그녀의 손톱은 이미 여자의 살결을 파고들고 있었다. 겁에 질린 여자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입을 벙긋거렸다.윤유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행여나 실수로라도 자신의 이름을 말해버릴까 봐 이를 빠득 갈며 민설아가 말해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빠르게 전화는 연결되었다.“여보세요?”익숙한 목소리에 민설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녀는 피가 섞인 침을 삼키며 힘겹게 말했다.“저예요. 민, 설아... 성운, 경, 찰, 서로 와주세요...”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가 준다면, 할머니를 보게 해 준다면 그 남자가 그녀의 목숨을 대가로 요구해도 상관없었다.김영선은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었다. 가족 앞에서 자존심이 뭐가 중요하겠는가.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이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하지만 여자의 목을 조르고 있는 민설아의 모습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민설아는 여자와 함께 죽으려는 듯했기 때문이다.시간이 1분 1초 흘러갔다. 윤유진은 여전히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민설아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여기고 경찰들을 부추겨 민설아를 제압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다급하게 구치소로 찾아왔다.남자를 본 민설아는 희망을 품은 눈빛으로 애원했다.“절 풀어주세요... 제발... 병원에 가봐야 해요...”남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를 떠났다.1분도 지나지
홍현도는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가져온 죽그릇을 들더니 한 입 입안에 머금었다. 그리고 민설아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억지로 그녀의 입을 벌리게 한 뒤 입안에 머금고 있던 죽을 밀어 넣었다.어쩌면 아무것도 먹지 않아 몸이 먼저 배고픔에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민설아는 꿈결에 본능적으로 죽을 삼켜버렸다.그렇게 홍현도는 입으로 죽을 먹였다. 죽그릇은 어느새 바닥을 보였고 홍현도의 미간도 풀어졌다.그는 민설아의 머리를 받쳐 들고 있던 손을 빼려고 했으나 민설아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얼굴에 가져다 댔다.“엄마...”민설아는 기댈 곳을 찾은 듯 중얼거렸다. 너무도 따스한 온기에 눈물이 흘러나와 남자의 손바닥에 떨어졌다.“보고 싶어... 나도 데려가 줘...”홍현도는 고개를 숙여 민설아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민설아, 널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그는 망설임도 없이 손을 빼내고 방에서 나갔다.꿈속에서 민설아는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꿈속의 부모님에게 왜 송시윤을 좋아했냐며, 왜 회사까지 빼앗겼냐며 혼나고 있었다.부모님의 질책에 그녀는 숨이 턱 막혀왔다. 울면서 가지 말라며 붙잡기도 했다.다시 장면이 휙 바뀌더니 이내 누군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널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민설아는 눈을 번쩍 떴다.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원래 할머니의 상태는 양호했다. 그러나 윤유진이 병원으로 달려가 그녀가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려 충격받아 사망하게 한 것이었다.그녀는 신정 그룹을 빼앗아와야 한다.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서 말이다. 송시윤과 윤유진에게 받은 대로 돌려줘야 한다.흐리멍덩하던 눈빛이 점차 차갑게 가라앉으며 확고해졌다. 그녀는 의자에 놓여 있던 원피스로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1층으로 내려가니 주방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남자는 옅은 회색의 조끼와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방금 퇴근하고 온 것 같았다. 차가운 얼굴로 저녁을 먹으면서
다음 날 아침, 민설아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아래층으로 내려갔지만 홍현도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인 서민우만 있었다.“민설아 씨, 좋은 아침이에요.”서민우는 민설아에게 인사를 했다.“대표님께서 출근하기 전에 이따가 민설아 씨와 함께 옷 사러 가라고 하셨습니다.”“네.”민설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의아했다.그녀의 몸에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왜 잘해주는 것일까?아침을 먹은 후 서민우는 민설아를 경선시에서 제일 큰 쇼핑몰로 데리고 왔다.그는 먼저 민설아에게 둘러보고 있으라고 했고 자신은 주차하고 오겠다고 했다.할머니의 죽음으로 민설아는 쇼핑몰에서도 멍하니 서 있었다.“손님, 여기에 있는 건 전부 신상이에요. 전부 피팅 가능하세요.”귓가에 들리는 점원의 말소리에 민설아는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명품 옷가게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곳으로 온 목적이 떠오른 그녀는 기운을 차리고 걸려있던 하얀 원피스를 들었다. 그러나 손을 뻗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온 누군가가 빼앗아 가버렸다.여자는 자신이 남의 것을 빼앗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당당하게 뒤따라온 사람에게 건넸다.“유진 씨, 이 옷도 보세요. 아주 찰떡이에요!”민설아는 고개를 확 들었다. 그녀의 옆으로 몇 명의 여자가 옷을 고르고 있었다.두 여자에게 둘러싸인 윤유진은 달리아의 신상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파란색 에르베르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품이 엄청났다.“흠, 확실히 괜찮네요...”윤유진을 여자들의 칭찬을 받으며 옷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렬한 그녀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고개를 돌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그녀를 보았다.안색이 창백한 것이 기운도 없어 보였다.민설아가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로 그녀는 몰래 민설아를 데리고 간 남자에 대해 뒷조사를 했었다. 누군가의 운전기사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그런데 운전기사가 민설아를 명품으로 가득한 쇼핑몰로 데리고 올 정도의 능력이 있을 줄이야...처참했던 민설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조금 애를 먹었네요.”큰 손의 주인은 바로 서민우였다.“민설아 씨, 이곳에 마음에 드는 옷이 없나요? 그런 거라면 다른 곳으로 가서 구경하죠.”윤유진은 고통을 참으며 서민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민설아한테 속지 마세요. 그쪽 여자친구는 겉 보이는 것처럼 얌전하지 않아요. 아주 더러운 여자라고요!”서민우는 윤유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민설아에게 말했다.“민설아 씨, 저희 가요.”두 사람은 매장을 빠져나왔다.윤유진은 당당하게 매장을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핸드백을 뒤적이던 그녀는 경찰에 신고했다.그러나 부국장이 출장 갔다는 이유와 매장의 CCTV도 작동하지 않아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신고 접수가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그렇다고 해서 민설아를 가만히 내버려 둘 위인이 아니었다.윤유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해 자신을 추앙하던 여자들을 내버려 두고 신정 그룹으로 갔다.송시윤은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누군가 노크하자 고개를 들어 문을 보았다.“여긴 어쩐 일이야?”“시윤아.”윤유진은 그에게 다가간 뒤 허벅지에 앉아 잔뜩 서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나 방금 쇼핑하다가 민설아를 봤어. 설아랑 대화 좀 나눴을 뿐인데...”그녀는 마스크를 벗었다. 얼음찜질을 해도 부은 얼굴은 가라앉지 않아 아주 처참해 보였다.송시윤은 미간을 찌푸렸다.“걔가 때린 거야?”윤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전에도 말했었지? 그날 경찰서에 찾아와서 민설아를 꺼내 준 사람이 있었다고. 내가 알아봤는데 그냥 다른 사람 운전이나 해주는 운전기사였어. 나이는 한 30대로 보였고... 설아가 아무리 집안도 망하고 가족을 잃었다고 해도 그렇게 막살면 안 되는 거잖아.”“난 그래도 친구였던 정을 생각해서 돈이라도 좀 주려고 했거든? 적어도 그런 짓은 하고 다니지 않게.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설아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근데 설아는 돈도 안 받고 다짜고짜 내 뺨을 때리면
주위 사람들의 악의 가득한 토론 소리에 민설아는 그저 입술을 짓이길 뿐이다. 그녀는 걸음을 옮겨 테이블 위에 있던 샴페인을 들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호텔의 모든 것을 송시윤이 설계한 것임을. 언론에 기사가 빠르게 퍼질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송시윤이 뒤에서 부추기고 있었기 때문이다.아마 경선시에 그녀의 기사를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으려 했다.민설아는 샴페인을 조금씩 마시면서 홀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파티의 규모는 아주 컸다. 경선시에서 재계에 발을 담근 인물이란 인물은 전부 모인 것 같았다.그녀는 홍현도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적어도 그녀는 아직 쓸모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다만 그녀는 홍현도가 그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민설아는 홀 안으로 들어온 후부터 계속 구석에만 있었다.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조용히 있었지만, 자꾸만 남자들이 찾아와 대놓고 그녀를 위아래 훑어보기도 하였고 심지어 어떤 남자는 스폰 제안도 했다.그 모습을 본 주위 여자들의 시선들이 더 아니꼬워졌다.어떤 사모님은 더는 지켜볼 수 없었는지 와인잔을 들어 민설아의 얼굴에 뿌렸다.“정말 역겹군요. 당장 여기서 나가세요!”차가운 와인이 민설아의 눈에 들어가며 그녀는 눈을 감게 되었다.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란 그녀는 늘 관심의 집중 대상이었고 어딜 가나 그녀를 치켜세워주는 사람들뿐이었다. 이번에 처음 이런 파티에서 누군가에게 와인을 맞아보았다.집안도 망했으니 그녀는 더 이상 부잣집 딸아 아니었기에 그녀를 지켜줄 사람은 더욱 없었다...민설아는 그저 자신에게 와인을 뿌린 사모님을 힐끗 보기만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몸을 돌려 테이블 위에 있던 티슈를 가져와 얼굴과 드레스를 닦았다.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송시윤이 윤유진과 함께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검
중심을 잡은 민설아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남자는 검은색 턱시도를 입은 채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시크한 느낌이었다.홍현도의 존재는 그녀에게 진정제와 같았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민설아는 안심되었다.민설아는 아랫입술을 틀어 물었다. 입을 열려던 순간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사람들이 더 몰려온 것이다. 그들은 열심히 속닥거리고 있었다.“세상에, 홍현도 대표님이잖아요!”“네? 대체 언제 온 거죠? 이 파티에 왔다고요?!”‘이게 무슨 소리야?!'민설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를 놀란 눈으로 보았다.민씨 가문도 재벌 가문이기는 했지만, 유서 깊은 홍씨 가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홍씨 가문에서 하는 사업은 그들과 같은 미약한 가문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그 가문의 사람과 접촉하게 될 일은 더더욱 없었다.홍씨 가문에 관한 일을 민설아는 예전에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들에게서 들은 적 있었다.게다가 지금은 홍씨 가문의 산업이 중점 산업으로 되었고 둘째 며느리가 낳은 아들 홍현도가 가문을 장악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홍현도는 아내 운이 없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는 이미 두 명의 아내를 잃었을 뿐 아니라 매번 그와 결혼을 앞둔 신부들이 이유 없이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그녀를 도와주고 있는 홍현도였다.주위 사람들은 여전히 쑥덕대고 있었다.“그런데 방금 홍 대표님이 민설아를 파트너라고 하지 않았어요?”“송시윤 씨도 대단하네요. 감히 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홍 대표님 파트너를 때린 거잖아요. 홍 대표님이 파트너를 위해 나서줄까요...?”홍현도와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홍씨 가문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었고 홍현도가 얼마나 매정하고 잔인한 사람인지도 알았다. 그런 그의 파트너를 때렸다니. 그건 그의 뺨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그러니 그가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윤유진은 사모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 방탕하게 살고 있는 민설아에 관한 것이었다. 파티 홀로 돌아온 민설아를 예리한 눈으로 발견한 그녀는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참 불쌍하네. 조금 전 그런 모욕을 당해놓고도 돌아오다니. 용기가 가상하네.'윤유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최미정이 민설아를 끌고 왔다.“유진 씨 뺨을 열 대나 넘게 때렸다면서요. 그런데 이렇게 넘어가려고요? 얼른 사과하세요!”“윤유진은 불륜녀예요. 맞아도 싼 사람인데, 제가 왜 사과해야 하는 거죠?”민설아는 최미정의 손을 뿌리치며 당당하게 말했다.조금 전 초라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당당하고 화려한 모습만 남아 있었다.윤유진은 화장실을 갔다 왔을 뿐인데 당당해진 민설아를 보며 다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야, 우린 그래도 한 때 친구였잖아. 네가 다짜고짜 내 뺨을 때려놓고 지금 날 모욕하는 거야?”조금 전 홍현오도 말했었다. 민설아는 단순한 파트너일 뿐이라고.“모욕?”민설아는 차갑게 픽 웃으며 윤유진에게 다가갔다.“그럼, 사람들 앞에서 맹세할 수 있어? 내 제일 친한 친구였던 네가 내 남편한테 꼬리친 적 없다고. 심지어 둘 사이에 세 살 된 아들도 있더라?”섬뜩하게 빛나는 민설아의 두 눈에 윤유진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게 되었고 있는 힘껏 민설아를 밀어냈다.“한 적도 없는 일을 내가 왜 맹세해야 하는데?”민설아는 차갑게 말했다.“찔리는 게 있으니까 당당하게 맹세하지 못하는 거잖아!”“...”“민설아 씨,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눈이 달려있어요.”최미정이 끼어들며 윤유진의 편을 들어주었다.“먼저 바람을 피운 사람은 민설아 씨잖아요. 전 유진 씨가 민설아 씨처럼 천박하고 뻔뻔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어요.”“그래요?”민설아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리곤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제가 아주 흥미로운 영상을 손에 넣었는데, 다들 구경이라도 하실래요?”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파티 홀 중앙에 있던 거대한 스크린이 확 켜졌다.하얀 스크
민설아는 윤유진이 번호를 바꾸어 자신에게 연락한 것인 줄 알고 얼른 받았다.“여보세요?”“민설아 씨, 맞아요?”상대는 공손하게 말했다.윤유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민설아는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안녕하세요, 중진 그룹 인사팀이에요.”상대는 공손하게 말을 이었다.“다름이 아니라 민설아 씨 이력서를 보고 관심이 있어서 연락 드렸어요. 목요일 오전 9시에 면접 보러 오실 수 있을까요?”민설아는 이력서를 서민우에게 전송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오늘 연락받게 될 줄은 몰랐다.“네, 갈게요. 혹시 제가 챙겨가야 할 서류 같은 건 없을까요?”민설아는 독셀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후 일을 한 적 없었다. 가끔 송시윤을 도와 해외 출장을 가긴 했지만 정식으로 회사에 취직해 본 적도, 면접을 본 적도 없었다.집으로 돌아온 민설아는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그 순간 옆에 걸려있던 검은색 코트가 보였고 가까이 다가가니 은은한 향기가 났다.뭔가 향수 냄새 같았다.“아주머니.”민설아는 옷을 걸어두고 물었다.“현도 오빠가 돌아온 거예요?”김현숙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두 시간 전에 돌아왔어요. 하지만 돌아오자마자 민우 씨와 서재로 들어가더라고요. 제가 차를 들고 들어갔을 때 두 사람이 업무를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민설아는 고개를 돌려 어딘가 익숙한 코트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났지만,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가 점심에 보았던 남자는 코트를 입고 있지 않았다.확실히 그 남자는 홍현도가 아닌 것 같았다.홍현도가 서재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방해하지 않았다. 그저 거실에 앉아 서정우와 게임을 하였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멈추었다.도우미가 저녁상을 차려놓자마자 홍현도와 서민우가 내려왔다.홍현도는 하얀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고 기품이 흘러넘쳤다. 셔츠 목 부분의 단추는 풀려 있었다. 그 사이로 다부진 몸매가 살짝 보였다.아마도 오랜
서정우는 양예지를 본 적 없었지만 홍현도의 표정을 보니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홍현도의 옆에 있는 여자가 양예지라고.서정우가 낮게 읊조리는 욕설을 들은 민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정말로 현도 오빠가 맞는 거죠?”하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홍현도의 모습은 항상 차갑고 딱딱했다. 사람을 내려다보기 좋아하고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이렇듯 다정한 표정을 지은 적 없었다.“현도 오빠 옆에 있는 여자는...”이상한 감정을 느낀 그녀가 또 물었다.“본처예요?”홍현도가 혼인 신고한 뒤 그녀는 홍씨 가문에 관해 공부를 해두었다.홍씨 가문이 해강의 가문이었고 심지어 해강의 4대 가문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의 법은 경선보다 좋지 못했기에 홍씨 가문의 조상들은 대부분 일처다부제였다.일처다부제는 홍현도의 할아버지 대에서까지만 이어졌다. 그 후로 홍씨 가문은 일처일부제를 실행했다.다만 세계 금융 위기에 홍씨 가문까지 영향을 받게 되면서 사업에도 문제가 생기고 말았고 홍씨 가문을 이끌던 가주는 결국 가문을 위해 세 명의 아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홍현도의 어머니는 두 번째 아내는 홍현도 할머니 외가 쪽 조카였다.어머니가 경선시의 사람이었던지라 재계에 발을 들인 후 홍현도는 경선시에 남아 시장을 개척했고 홍씨 가문의 중요 사업을 물려받자마자 경선시로 옮겨왔다.해강의 법은 여전히 허술했다. 설령 홍현도가 해강에서 결혼했다고 해도 아내를 한 명 더 받아들일 수 있었다.그녀는 홍현도의 옆에 있는 여자가 해강에서 결혼한 아내일 것으로 생각했다.“사모님, 정말 눈이 많이 안 좋으시네요. 저 사람은 현도 형이 아니에요. 그냥 덩치가 비슷한 사람일 뿐이죠.”비록 놀라기는 했으나 서정우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얼버무렸다.“그럼 방금은 왜 욕한 거예요?”“아, 그건 여자친구분이 너무 예쁘셔서요. 연예인인 줄 알았다니까요! 하하.”과장하며 말하는 서정우에 민설아는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다.홍현도는 어느새 운전석에 앉았다. 하지만 자동차 와이퍼가 계속 작동하고
민설아는 핸드폰을 서정우에게 돌려주곤 오렌지 주스를 마시려고 하던 때 옆에 놓아둔 그녀의 핸드폰이 반짝 빛났다.누군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나야, 윤유진. 내 손에 송시윤이 너희 부모님을 죽였다는 증거가 있어. 갖고 싶으면 6억 들고 와!]이 문자를 본 민설아는 눈빛이 흔들렸다.지난번 홍현도와 호텔로 갔을 때 윤유진의 입에서 이미 그녀의 부모님이 우연한 사고로 돌아가신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서정우가 윤유진의 핸드폰과 노트북을 해킹하고 나서 그녀는 아주 꼼꼼히 보았지만,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윤유진이 먼저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민설아는 충동적인 마음을 억누르고 답장을 보냈다.[내가 6억을 마련할 수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고작 그 돈이라면 차라리 송시윤을 협박하는 게 낫지 않아? 그러면 6억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을 텐데?]그녀는 윤유진은 이렇게나 중요한 송시윤의 약점으로 자신에게 거래하려고 연락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윤유진: 네가 어젯밤 함께 호텔로 찾아온 남자가 서정우라는 거 알고 있어. 홍 대표님 부하지. 네가 홍 대표님한테 붙었다는 것도 알고 있어.][윤유진: 게다가 난 너보다 더 송시윤을 더 잘 알아. 송시윤이 내가 이 약점을 손에 쥐고 있다는 거 알게 되면 분명 날 가만두지 않을 거야.][윤유진: 네가 6억 주고 내가 경선시를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면 그 증거뿐만 아니라 증언이 필요할 때 증인으로 서줄게.]민설아가 계속 답장을 하지 않자 윤유진은 또 문자를 보냈다.[윤유진: 열한 시 반에 카페 블루에서 만나. 안 오면 전부 지워버릴 거니까!][윤유진: 어차피 살해당한 사람은 내 부모님도 아니잖아. 송시윤을 나보다 더 증오하는 사람도 너야.]민설아는 윤유진의 마지막 문자에 자극을 받아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민설아: 그래, 블루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윤유진이 보낸 문자를 본 그녀는 윤유진이 굳이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아마 윤유진이 송시윤
서민우의 표정이 바로 굳어져 버렸다.“네가 양예지 씨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서정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내가 형 따라 이 일을 한 지가 얼마인데. 나도 눈과 귀가 달려있다고. 과거에 양예지 씨와 현도 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대충 다 알고 있어.”“형, 그 사고도 사실 현도 형 노린 게 아니지?”서정우는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서민우가 대답하지 않자 서정우는 아이스크림을 내려놓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어르신께서는 증손자를 원하시니까 현도 형이라면 어떻게든 그 소원을 들어드리려고 했을 거야. 대리모를 찾는 건 어렵지 않겠지. 그래도 전에 만든 두 예비 신부들이랑 가짜 결혼하려고 했잖아. 근데 왜 민설아 씨랑은 진짜로 결혼한 거지?”서정우는 혼잣말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답에 가까워진 기분이었다.“혹시 양예지 씨가...”“됐어. 이젠 입 다물어!”서민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거실의 양쪽 끝엔 도우미들의 방이 있었다. 비록 늦은 시간이라 다들 쉬고 있겠지만 서민우는 그래도 만약의 상황을 위해 서정우의 입을 막아야 했다.형에게 혼난 서정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정우야, 대표님이 아무리 네게 잘해준다고 해도 친구가 아니야. 우린 그냥 대표님의 직원일 뿐이라고.”서민우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며 눈빛으로 경고했다.“그리고 아무리 양예지 씨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입 다물고 살아. 우린 사모님만 잘 지켜주면 되니까.”“응, 알았어. 더는 그 여자에 관해 말 안 꺼내면 되잖아.”서정우는 서민우가 화가 나는 것이 제일 두려웠기에 바로 순응했다.“난 방으로 들어가서 자야겠어.”그는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던 아이스크림 통을 안은 채 빠르게 방으로 들어갔다.“잠깐.”서민우가 그를 불러세웠다.“사모님한테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 괜한 말을 해서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때 내가 널 아주 ‘아껴줄' 거니까.”서정우는 서민우의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얼른
서정우는 ‘반성의 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형, 안 가면 안 돼? 내가 잘못했어. 반성하고 있어. 내가 반성의 방으로 들어가면 누가 사모님 챙겨줘?”“피치 팰리스에 널리고 널린 게 도우미야. 사모님은 굳이 네가 챙겨주지 않아도 돼!”“...”단단히 화가 난 서민우가 서정우를 엄벌하려고 하자 민설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이번 일은 정우 씨 탓만이라고 할 수 없어요. 상대가 너무 교활한 탓이죠. 그러니 그냥 혼내는 거로만 해요.”서정우가 윤유진의 핸드폰을 해킹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윤유진이 숨겨두고 있던 비밀을 알아낼 리가 없었고 송시윤과 윤유진에게 복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니 그녀는 응당 서정우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했다.민설아의 말에 서민우의 표정이 다소 풀어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서정우를 째려보았다.“얼른 사모님한테 감사 인사 안 해?”“사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모님이 절 살려주셨습니다.”서정우는 이마에 맺힌 땀을 쓱 닦았다.“사모님이 아니었으면 반성 기간이 끝났을 때 전 반성의 방에서 한 구의 시신으로 발견되었을 거예요.”민설아는 장난스러운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대화를 나누고 나니 민설아는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일찍 자라는 말을 남긴 뒤 방으로 올라갔다.그녀는 자신이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민설아가 방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민우가 2층으로 올라오며 홍현도의 방으로 들어갔다.“대표님.”안방으로 들어가자 홍현도가 묵묵히 창가 앞에 앉아 있었다. 서민우는 그에게 다가가 민설아와 나눴던 대화를 전부 보고했다.“제가 사모님께 거짓말을 했는데 믿는 눈치였습니다...”그는 뜸을 들이다가 계속 보고를 이어갔다.“사고 현장 처리할 때 근처 상가 CCTV를 전부 확인해 보았습니다. 사모님이 정우랑 호텔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예지 씨의 경호원이 사모님이 탔던 차에 10초 정도 서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홍현도는 눈을 가늘게
민설아는 바로 그의 뒤로 가서 자동차 파편에 피로 흠뻑 젖어버린 그의 등판을 보았다.그제야 피비린내가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홍현도의 등을 본 순간 그녀는 가슴이 조여왔다. 얼른 목에 감고 있던 머플러를 풀어 상처 부위로 가져다 대며 지혈해보려고 했다.“정우 씨, 얼른 택시 잡아요!”“네!”서정우가 택시 잡으려고 걸음을 옮기던 순간 마침 홍현도를 데리러 온 서민우가 다가왔다.그들을 발견한 서민우는 미간을 확 구겼다. 얼른 서정우에게 운전해서 병원으로 가라고 하곤 자신은 현장에 남아 정리하겠다고 했다.차는 병원으로 빠르게 달렸다.뒷좌석에는 민설아와 홍현도가 붙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홍현도의 등을 꾹 눌렀다.머플러는 이미 피로 흠뻑 젖어버렸지만, 여전히 피가 멈추지 않았다.상태가 심각했지만 홍현도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그는 자신의 등을 눌려주고 있는 손이 작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곁눈질로 힐끗 아랫입술을 짓이기고 있는 민설아를 보았다.“그냥 파편일 뿐이야. 탄알도 아닌데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민설아는 작게 대답했다. 하지만 파편의 크기는 꽤나 컸기에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미리 연락을 받은 성현은 하얀 가운을 입은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홍현도의 상처를 본 성현은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이동 침대를 가져오라고 했다.“상처는 깊지 않으니까 여기서 치료할게. 안 그러면 수술실만 낭비해서 청소해야 할 거야.”“...”파편은 꽤나 깊게 박혀 있었다. 성현이 파편을 빼냈을 때 민설아는 벌어진 살 틈 사이로 뼈를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만약 홍현도가 제때 나타나 그녀를 감싸주지 않았다면 뼈가 보일 정도로 다칠 사람은 그녀가 되었을 것이다.그녀는 이 일로 홍현도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홍현도의 상처를 소독하던 성현이 느긋한 목소리로 민설아에게 물었다.“현도 형이 왜 다치게 된 거예요?”“차가 갑자기 폭발했어요.”민설아는 고개를 돌렸다. 더는 홍현도의
“송 대표님, 돈이 남아돌면 그 돈으로 병원 가서 눈이라도 치료해보지 그래? 실력 좋은 비서를 뽑아야 회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 자꾸 쓸데없이 기사 내리는 데에 낭비하지 말라고.”민설아의 말을 들으니 송시윤은 전부 이해가 되었다. 며칠 동안 아무리 돈을 써도 내려가지 않은 기사도, 오늘 이 상황도 전부 민설아가 꾸민 것이었다.너무 가까이에 있었던 터라 그녀는 민설아의 몸에 밴 옅은 담배 냄새를 맡게 되었다.민설아는 비흡연자였고 여자가 피우기엔 어울리지 않는 담배였다.그 순간 구청 앞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송시윤은 인생을 포기한 민설아가 역겹게 느껴지면서 이상하게 화가 치밀었다.이런 종잡을 수 없는 감정에 그는 손을 들어 올려 민설아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이때 누군가 나타나 그의 손목을 꽉 잡아버린 후 확 밀쳐버렸다.“감히 저희 사모님을 건드리려고요?”“정우 씨, 가요.”재밌는 구경을 다 했으니 민설아는 더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아 바로 걸음을 옮겼다.서정우는 바로 따라갔다.서정우에게 밀쳐진 송시윤은 바로 서정우를 알아보았다. 민설아와 홍현도의 사이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게 되었다.‘그럼 그날 구청 앞에 있었던 게 혼인 신고하러 간 거였어?'송시윤은 가슴이 조여왔다. 저도 모르게 민설아를 쫓아가 붙잡으려고 했지만, 주위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송 대표님, 왜 민설아 씨를 모함한 겁니까?”“민설아 씨 부모님의 교통사고도 우연이 아니라는 소문이 있는데, 송시윤 씨가 계획한 겁니까?”“송시윤 씨, 대답해주세요!”기자들은 송시윤을 압박했다. 그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그들은 다시 카메라를 돌려 윤유진에게 들이밀었다.윤유진은 이미 이성을 잃었기에 기자들이 묻는 것에 전부 대답해주었다.다만 입을 열기도 전에 송시윤이 그녀의 팔을 꽉 잡으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한마디만 더 한다면 네 목을 졸라 죽여버릴 거야. 알아들었어?”“꺼져.”송시윤은 기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밀친 후 윤유진을 질질 끌고
“윤유진, 난 이제 네가 징글징글해!”주재원은 그녀의 눈물을 보고도 더는 예전처럼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증오하고 있었다.“대학교 시절부터 날 멍청이 취급하면서 가지고 노니까 재밌었어? 난 머저리처럼 너만 기다렸는데 내가 가난해서 싫다고. 하, 그러더니 바로 송시윤이랑 붙어먹더라? 나랑 헤어지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야.”“송시윤, 그냥 다 말해줄게. 난 10년 전부터 쟤랑 이런 관계를 이어왔어. 이안이는 나랑 윤유진 아이야! 방금 윤유진이 왜 그렇게나 당당하게 유전자 검사해도 된다고 말한 지 알아? 그건 윤유진이 이미 그 병원 의사한테 돈을 두둑하게 챙겨주었기 때문이야. 윤유진은 의사한테 돈을 주면서 검사 결과를 조작해달라고 했거든!”“오빠!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 입 닥쳐!”윤유진은 주재원이 모든 걸 밝힐 거라곤 전혀 몰랐다. 화가 치민 그녀는 이성을 잃고 주재원의 입을 찢어버리려고 달려들었다.주재원은 그런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왜, 내가 틀린 말 했어? 내가 말한 건 전부 사실이잖아!”“아, 그래. 송시윤 너는 아직도 모르겠구나?”말하면서 주재원은 안색이 파리해진 남자를 보았다.“이안이가 왜 내 아들이라고 한 줄 알아? 그야 넌 무정자증이거든!”‘세상에!'지켜보고 있던 기자들은 특종을 잡은 듯 얼른 셔터를 눌러댔고 행여나 놓치는 부분이라도 있을까 봐 얼른 작은 수첩에 부리나케 적었다.송시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주재원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윤유진이 네 검진 결과를 조작한 거야. 그리고 매일 나랑 한 침대에서 누워서 뭐라고 한 줄 알아? 다 이안이를 위해서 너랑 사귀는 거래. 하하하, 정말 웃겨 죽겠네...”“주재원! 너 정말 미쳤어?!”윤유진은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냈다.“너한테 돈만 있었어도 내가 다른 남자랑 잤겠어? 내가 왜 그런 짓을 했겠어! 전부 다 우리 아들을 위해서잖아! 근데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주재원은 침을 뱉더니 말했다.“
민설아는 배달 음식을 시킨 뒤 서정우와 함께 제란호텔 맞은 편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 주문한 음료와 함께 먹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 한 대가 제란호텔 앞에서 멈춰 섰다.택시에서 내린 송시윤은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민설아는 입꼬리를 올린 뒤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정우 씨, 가요. 재밌는 구경 하러 가자고요!”송시윤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빠르게 2588호 앞까지 도착하고 나니 보름 전의 일이 떠올라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민설아 짓인가?'송시윤이 의심하고 있을 때 살짝 열린 2588호 문틈 사이로 여자의 쾌락에 취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를 빠득 갈았다. 다리를 들어 문을 쾅 차버렸다.문을 발로 차서 연 송시윤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침대엔 알몸으로 뒹굴고 있는 남녀가 있었다. 그가 문을 여는 소리도 듣지 못한 듯했다. 설령 송시윤이 침대까지 다가와도 그들은 정신없이 몸을 섞고 있었다.송시윤은 잔뜩 굳어진 얼굴로 침대 옆에 있던 스탠드를 들어 남자의 머리로 내리쳤다.“아악!!”남자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윤유진도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시, 시윤아...”윤유진은 송시윤이 이곳에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안색이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얼른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송시윤은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내 바로 그가 누군지 알아보곤 윤유진의 머리채를 잡았다.“윤유진, 그렇게 사촌 오빠를 신정 그룹에 입사하게 한 이유가 나 몰래 편하게 이런 짓을 하려고 그랬던 거였어?”“아,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윤유진은 머리가 너무도 아팠다.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난 억지로 당하고 있었던 거야...”송시윤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역겨워 죽겠네!”윤유진은 뺨 한 방에 침대로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두 손으로 침대를 짚으며 일어난 그녀는 한 손으로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리며 송시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그리곤 울면서 말했다.“난 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