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뭐 하는 짓이야?”온하랑은 바로 핸드폰을 뺏어와서 보물을 안고 있는 것처럼 핸드폰을 품에 안고는 경계의 눈빛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온하랑은 전혀 리차드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으며 부승민에게 들킬까 봐 얼른 핸드폰을 숨긴 것이었다.온하랑의 이런 반응을 본 부승민은 화가 잔뜩 났다.“온하랑, 너 바보가 된 거 아니야? 널 두고 바람난 남자를 그렇게 염념불망 하다니?!”온하랑은 눈초리를 내리며 여전히 그 말이었다.“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내 마음이 저도 모르게...”“너...”부승민은 화가 나 하마터면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그는 눈을 감고는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하랑아, 너 지금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지? 그 남자가 뭐가 좋다고?”“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아무튼 개가 좋아.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부승민은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다.‘설마 하랑이가 대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부터 리차드랑 알고 지냈던 건가?’‘그렇다면 라차드가 하랑이 아이의 아버지일까?’부승민은 눈초리를 떨구고는 마치 안개에 침식되는 것처럼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을 점점 꼭 쥐더니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뼈마디가 다 하얘졌다.온하랑은 부승민을 힐끔 쳐다보았다. 안색이 창백하고, 마치 노승이 좌정하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먹을 불끈 쥔 부승민을 보며 온하랑은 그가 정만 자기 때문에 화가 난 줄 알아서 마음이 저도 모르게 쪼여 들었다.‘아니면 그냥 다 솔직하게 말할까?’‘안돼. 그럼, 오빠한테 너무 관대한 거잖아.’‘내일, 내일 다시 오빠한테 말해주자.’차 안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저 세 사람의 숨 쉬는 소리만 남았다.차가 아파트 아래에 도착할 때까지 고요함은 지속되었다.온하랑은 차 문을 밀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여전히 제자리에 앉아 있는 부승민을 보고 그에게 소리쳤다.“승민아, 안 내려요?”부승민은 눈초리를 떨군 채, 온하랑에게 눈
‘바텐더라고?’‘하랑이가 이런 사람을 좋아할 리가? ! 심지어 나한테는 바의 벽화 가라고 거짓말까지 했다니?!’부승민은 진짜 언제 한번 온하랑을 데리고 안과에 한 번 다녀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언제 만났어?”부승민은 이마의 핏줄마저 곤두섰다.“아마도 일주일 전쯤일 거예요. 걔랑 걔 친구가 바에 와서 저희를 찾았어요. 자기 전남편이 요즘 자기한테 집착할 거라고 했어요.”리차드는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는 부승민을 보며 계속해서 말했다.“자기 남자 친구인 척 연기를 해줄 사람을 구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걔가 절 골랐어요.”부승민은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죽은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쌀쌀한 눈빛으로 리차드를 보면서 말했다.“거짓말! 만약 당신들이 만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다면 걔가 어떻게 당신을 좋아하겠어? 제대로 말해. 너희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 아니지?”리차드는 횡설수설하며 해석했다.“제 말이 다 진짜예요. 전 거짓말 하지 않았어요. 제 동료들도 증명해 줄 수 있어요. 그리고 계약서, 제가 계약서를 보여드릴게요!”“계약서?”“네. 저희 그때 계약서까지 썼어요. 일이 끝나면 저에게 천사백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부승민은 실눈을 뜨면서 자세하게 리차드의 표정을 관찰하면서 일말의 디테일로 놓치지 않았지만 결국 아무런 이상함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리차드 정말로 거짓말한 게 아닌가?’리차드는 부승민의 시선에 등골이 오싹했다. 부승민이 조용히 말을 안 하는 것을 보자 리차드는 또 황급히 해석했다.“... 당신이 말한 걔가 날 좋아한다는 말, 정말 말도 안 돼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설마...’부승민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나 나가서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룸에서 나간 부승민은 바로 육광태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 반대편에서는 육광태의 깔렁껄렁한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부 사장, 어쩐 일이야?”“내가 물어볼게. 하랑이랑 리차드 언제부터 만난 거야? 어디서 만났어?”이 말을 들은
부승민은 조지 부인이랑 인사를 한 후 바로 아파트로 돌아갔다.온하랑은 부승민의 사진을 보정 중이었다.정성스럽게 찍은 4장의 사진에 대해 온하랑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전혀 많은 손길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으며 간단하게 조절만 하면 되었다.갑자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온하랑은 문 쪽을 한 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물었다.“누구세요?”“나.”‘부승민?’온하랑은 도어 스코프로 밖을 내다보니 문 뒤에는 확실히 부승민이었다.‘화가 나서 삐진 거 아니었나?’‘왜 또 온 거지?’온하랑은 문을 열면서 의심스럽게 부승민을 쳐다보았다.“당신이 왜 왔어? 설마 지금까지 차에 있다가 올라온 거라고 하지 마.”“아니야.”부승민은 얼굴빛이 평온하고 입가에는 일말의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할머니께서 바로 전에 나한테 전화하셨어. 들어가서 얘기해.”온하랑은 부승민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비틀어 부승민이 들어오게 하고는 문을 닫았다.“할머니께서 뭐라 하셔?”“아무 얘기도 안 했어.”“?”‘그럼 이 사람 뭐 하러 온 거지?’온하랑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부승민을 쳐다보았다. 순간 부승민의 그윽한 눈초리와 눈빛이 마주친 순간, 우물처럼 잔잔한 그의 눈빛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부승민의 시선에 마음이 조마조마해진 온하랑은 두 손으로 팔을 비비며 물었다.“당신... 당신 왜 날 그렇게 봐?”부승민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온하랑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하랑아, 이제 보니 너도 간이 제법 크더라.”“그... 그래? 왜 갑자기 그렇게 말해?”온하랑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한 발짝 물러섰다.그녀는 부승민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는 것을 느꼈다.부승민은 천천히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온하랑의 눈앞에 펼쳐 놓았다.“네가 직접 사인한 건데, 기억하지?”‘젠장. 들켰네.’온하랑은 동공이 축소되면서 눈빛이 반짝이더니 머릿속에서는 톱니바퀴가 빠르
“하랑아.”부승민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내가 잘못했어.”“뭘 잘못했는데?”“내가 추서윤과 연기하며 너와의 관계를 끊는 게 아니었어. 너와 소통도 많이 하고 너의 선택을 존중해야 했는데 말이야.”온하랑이 차갑게 웃어 보였다.“그걸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어?”“하랑아, 난 너의 안전으로 모험을 할 수는 없었어.”“그러면 사실대로 말해줬어야지. 부시아랑 할머니를 외국에 보낸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내가 막무가내로 이해를 못하는 거도 아니잖아? 넌 여전히 날 믿지 못하는 거였어. 내가 대진 시 병원에 있을 때 오빠를 너무 따라다녀서 날 떨쳐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보네? 내가 오빠 계획을 망칠까 봐 그렇게 한 거겠지…”“하랑아.”부승민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 네가 내 짐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넌 항상 내가 마음속으로 지켜야 하는 사람이었어.”“그렇게 진심으로 지키려 했으면 왜 날 존중하지 않는…”부승민은 겁이 났다.“하랑아, 내가 진짜 미안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진짜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야?”온하랑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응.”“앞으로 그 어떠한 일이라도 나한테 다 알려줄 거야?”“응.”“근데 난 왜 그 말에 믿음이 안 가지?”부승민:“…”“나 맹세할게.”“맹세는 됐어. 별 쓸모도 없는 맹세는 왜 하는 거야? 본인 마음에서 우러러 나와서 해야 하는 거지.”온하랑이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오빠, 네가 나를 생각해서 그런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것만 알아둬. 오빠가 날 위한다고 하는 일이 사실은 절대로 내가 원하는 게 아니란 걸 말이야. 그날 회사에서 오빠와 추서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봤을 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알기나 해? 그때의 난 속으로 또 속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진짜 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칼로 오빠를 찔러버린 뒤
끈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그는 그 순간의 심정을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었지만, 어쨌든 기쁘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했다.이때 온하랑은 문득 무언가가 자신을 떠받치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숙여 확인하던 그녀가 깜짝 놀라 말했다.“부승민, 오빠…”“하랑아, 나도 모르게.”부승민은 낮은 소리로 속삭이며 왼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머릿결을 어루만지며 그녀의 뒤통수를 받쳐 들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에 키스했다.온하랑도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며 그의 키스에 응했다.그의 키스는 부드럽기도 하며 자제력이 있었다. 부승민은 자기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감쌌다.그렇게 조금씩, 마치 진귀한 선물을 풀어헤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고, 서로의 탐색으로 인해 온하랑의 마음도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그녀는 곧바로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부승민도 갑자기 더욱 강하게 그녀에게 들러붙었다.그는 강하게 자신의 품속에 그녀를 가두었고, 큰 손으로 그녀의 민감 부위를 마구 자극하기 시작했다.온하랑은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고, 부승민의 열정적인 키스에 성공적으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그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등을 벽에 기대어 그녀와의 키스를 이어갔다.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고 두 볼은 불같이 뜨거워지며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온하랑은 부승민에게 반쯤 안긴 채 안으로 들어갔고, 원피스의 자크도 이미 반쯤은 열린 상태였다. 바로 옆에 침실이 있었지만 부승민은 이미 인내심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바로 그녀를 거실의 소파에 눕혔다.부승민은 그녀의 치마를 한 번에 벗긴 뒤 옆으로 내던졌다.온하랑의 피부는 마치 껍질을 깐 삶을 달걀처럼 희고 부드러웠다.부승민은 더는 참을 수 없어 마치 늑대처럼 그녀의 살결에 입을 가져다 댔다.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온몸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듯이 찌릿했고, 두피까지 그 전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문득 온하랑은 복부에서 개
“냉장고에 식자재 조금 있어. 굳이 사람 시킬 필요 없어.”온하랑이 말했다.“그래.”여름은 원래부터 더운 날씨 인지라 실내에서 에어컨을 켜고 있어야 한다. 거기에 그들은 조금 전의 운동 때문에 땀까지 난 상태라 온몸이 끈적거렸다.온하랑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침실에 들어가 깨끗한 옷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욕실로 들어가기 전 그에게 한마디 건넸다.“나 일단 들어가서 씻을게.”그녀가 문을 닫기도 전에 부승민이 곧바로 뒤따라 들어갔다.“같이 씻자.”“…”그들은 거의 한 시간 동안 같이 샤워를 했다.밖은 이미 해가 저물었고 아파트에서도 하나둘씩 불을 켜기 시작했다.온하랑은 그에게 안긴 채 욕실에서 나왔다.부승민은 목욕 타월로 그녀를 감싼 채 침실 침대에 눕혔다.힘이 빠질 대로 빠진 온하랑은 눈을 감은 채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다.이윽고 부승민이 그녀에게 얇은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나 옷 가지러 다녀올게. 갔다 와서 저녁해 줄 테니까 같이 밥 먹자.”온하랑은 겨우 나오는 목소리로 그에게 “응”이라고 답했다.부승민은 몸을 일으키며 거실로 나갔다. 그는 바닥에 버려진 셔츠와 그녀의 속옷을 주운 뒤 소파 끝자락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바지를 입고 열쇠를 가진 뒤 바로 옆집으로 향했다.그는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다시 온하랑네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는 주방의 냉장고를 한번 훑어보았다.냉장고 안에는 신선한 채소, 가지, 그리고 냉동 새우가 있었다.부승민은 그 식자재로 채소와 가지를 볶았고, 새우도 삶았다. 그러고는 흰쌀 죽도 끓여 정교하게 테이블에 세팅해두었다. 그는 침실로 들어가 그녀더러 일어나 밥 먹으라고 했다.그 말에 서서히 눈을 뜬 온하랑은 겨우 침대에 일어나 앉으며 그에게 눈짓으로 옷 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치마를 제대로 입고 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며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그 모습에 부승민은 빠르게 그녀를 부축하며 걱정되는 듯 바라봤다.“괜찮아?”그러자 온하랑이 그를
부승민은 더는 강요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이윽고 온하랑이 그에게 강씨 가문과의 원한에 관해 물었다.부승민은 경찰서 압력으로 인해 사건을 대충 종결지으려는 것부터 말했다. 그러다가 장국호가 진술을 번복해 검찰이 사건을 재수사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그는 이 모든 배후에 강씨 가문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도 한때는 강 씨 집안과 교섭할 방법을 찾았지만, 강씨 집안에서 부인한 나머지 협상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솔직히 이건 강씨 가문과 싸움에서 부승민이 이겼다고 볼 수 있다.강씨 가문에서는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할 능력이 없었고, 사건은 다시 경찰서에서 조사하게 된다.이번에 장국호와 민성주의 증언이 있으니, 추서윤 또한 절대로 법의 처벌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하랑아, 미안해. 장인어른 죽음이 큰 형과 연관이 있어서 말이야. 이건 부씨 집안에서 너에게 빚진 거나 다름없어. 이 모든 게 장인어른을 위한 것이든, 큰형을 위한 것이든 나 자신을 위한 것이든 난 끝까지 이 일에 대해 밝혀낼 거야.”부승민이 진지하게 말했다.“다만 강씨 집안에서 왜 사건의 진상 조사를 방해하는지 모르겠어. 네가 장인어른의 딸이자 사건과 연관되었기도 하니깐, 갈등이 격화되면 네가 불리해져서 포기하려 하지 않을까 봐 그런 방법을 선택했을 수도 있을 거야.”온하랑은 마침내 부승민과 강씨 가문의 갈등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승민이 그녀와의 관계를 끊으려 했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솔직히 처음에 경찰서에서 사건을 종결하고 부승민이 검찰에 사건을 맡길 방법을 찾았을 때, 온하랑은 부승민이 부민재를 대신하여 살인 주모자의 죄를 추서윤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뒤, 그녀는 점차 부승민에 대한 방어기제를 버리고 그를 믿기로 했다.그녀는 더는 의심하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그렇구나, 누구를 위하든 간에 일단은 고맙네.”허심탄회한 이야기를 거치고 보니, 부승민은 그동안 확실히 그녀의 편에 서서 생각해주었었다.하여 조금 전 그녀가 거절
부승민이 웃으며 말했다.“온하랑, 너 이러기야? 네가 나 사진 찍는 건 되고 왜 나는 안 되는 건데?”“왜? 내 맘이야.”온하랑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답했다.부승민은 침대에 한쪽 다리를 꿇은 채 그녀에게 가까이했다.“어떻게 찍혔는지 한번 보자.”온하랑이 찍은 사진은 아주 느낌 있었다. 그 사진은 어제 사진 촬영하는 친구가 찍은 것보다도 더 매력적이었다.“괜찮지?”온하랑이 칭찬해달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부승민은 눈썹을 치켜세웠다.“내가 이 사진을 잡지에 올린다면 어떨까?”“안돼.”온하랑이 칼같이 그를 거절했다.“왜 안 되는 건데?”그러자 온하랑이 핸드폰을 거두며 말했다.“경제 잡지에 올리려고 그러는 거잖아? 이 사진은 주제에 어긋나는 사진이야. 하지만 연예 잡지라면 생각해볼 수 있어.”이것은 그녀의 개인 소장이라 그녀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이윽고 부승민은 셔츠의 단추를 맨 위까지 잠갔다.온하랑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뛰어갔다.“나 핸드폰에 배터리 없어 충전기 좀 가지러 가야겠네.”이상함을 느낀 부승민은 의자 등받이에 걸린 넥타이를 매며 매듭을 지었다.“오빠.”그녀의 소리에 부승민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찰칵.”온하랑은 카메라로 그의 모습을 찍었다.사진 속의 부승민은 넥타이를 매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담담한 표정과 굳건함에 부드러움까지 띤 눈빛은 보는 이들을 절로 매료시켰다.그렇게 온하랑은 눈 뜨자마자 촬영 작업을 시작했다.그녀는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맨발인 상태에서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미니 슬립을 입고 있었다. 온하랑은 둥글고 귀여운 엄지발가락으로 둘째 발가락을 누르며 카메라를 든 채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또 어떻게 찍고 싶은데?”부승민이 어이가 없는 듯 물었다.“나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온하랑은 파파라치 샷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얻어내려 했다.부승민은 웃어 보이며 긴 다리로 화장실을 향해 갔다. 그의
수화기 너머로 임가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임연지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을까 봐 걱정하며 바로 물었다.“오늘 센트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아? 모르셨어요?”간하림은 간단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따귀를 맞은 일로 설윤은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사모님께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그 말을 듣자 임가희는 안심했다.뺨 한 대 맞고 참지 못해 도망가는, 겨우 스무 살짜리 감정적인 계집애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이틀 후에 너희 가게로 갈 거야. 그때까지 설윤을 잘 부추겨서 나한테 덤비게 만들어.”간하림은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알겠습니다. 사모님,”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드는 장면은 반드시 녹화되어 최국환에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리우 그룹.최국환은 회의를 마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서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찾았다.“오전에 사모님과 설윤 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설윤 씨는 가방을 사지 않겠다고 하시며 환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갑자기 왜?”“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화에서 설윤 씨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최국환은 한창 젊은 애인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거의 끊어지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설윤의 목소리는 살짝 쉰 듯했다.“국환 씨.”“김 비서 말로는 가방 환불해 달라고 했다던데.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싫어졌어요. 이유는 없어요.”“이유가 없어? 그럼 목소리는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누군지 말만 해.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히다니!”“묻지 마세요. 저 때문에 국환 씨와 사모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요.”“오? 내 마누라와 관련된 일이야?”“말했잖아요, 묻지 마시라고요. 더 물으면 저 진짜 삐질 거예요.”“아이고, 또 어린애
“정말... 어이가 없어...”설윤은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어딜 가요? 방금 구매 기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못 보여주는 건데요?”임연지는 설윤의 길을 막아서며 그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잡고 비꼬듯 말했다.“젊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뻔뻔해요? 유부남인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다니. 내 고모부가 그쪽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역겹지도 않아요? 몸 팔아서 얻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좋아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손님 몇 명이 임연지의 말을 듣고 문 앞에서 수군거렸다.설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임연지를 밀치고 가게를 나서 황급히 도망쳤다.간하림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저기요. 설윤 씨, 가방은...”점원은 임연지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보고 두 번 불렀다.그러나 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그만 불러요. 안 올 거예요.”임연지는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다.“저 여자가 싫다고 두고 갔으니 이 가방 저 주세요.”“임연지 씨, 죄송하지만 설윤 씨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걱정 마세요, 분명히 환불할 거예요. 환불하면 이 가방 저한테 남겨 두세요.”임연지는 선물 상자를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임연지의 배경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설윤 씨가 환불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가방을 못 사서 한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상황이 반전되고 내연녀까지 혼내주고 나니 임연지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윤아, 괜찮아?”마침내 매장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자 설윤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하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채 앞으로 걸어갔다.“윤아, 어디 가서 좀 앉을까?”설윤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간하림이 그녀를 위로했다.“윤아, 너무 속상해하지
한진은 큰 도움을 주고도 단지 가방 하나 사달라는 부탁만 했을 뿐인데 실망을 안겨주게 생겼으니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심지어 가방을 선물해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는데 무슨 생각 할지 걱정되었다. 설마 공짜로 주기 싫어서 쪼잔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지?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임연지가 물었다.“다음번에 언제 입고되나요?”점원은 임연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회원 가입하시면 나중에 재고를 확보할 때 연락드리고 있어요.”“그래요. 할게요.”임연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연락처가 어떻게 돼요?”점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임연지는 전화번호를 말하며 머릿속으로 한진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설윤 씨, 어서 오세요. 가방 찾으러 오셨죠? 잠깐 앉아 계시면 금방 가져다드릴게요.”다른 점원의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고마워요.”소리의 출처를 따라 고개를 돌린 임연지는 젊은 여자 두 명을 발견하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윤아, 여기 점원이랑 아는 사이야? 물건을 엄청 많이 샀나 보네? 부러워.”나지막이 속삭이는 여자 목소리가 임연지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내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세상 물정 모르는 촌년들. 잠깐! 왼쪽에 있는 여자가 낯이 좀 익은데?’그리고 고개를 돌려 찬찬히 뜯어보았다.분명 어딘가 본 듯한 얼굴이다.기억을 되짚어보던 찰나 점원이 정교한 선물 상자를 들고나와 두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뚜껑을 열고 안에 든 가방을 보여주었다.“설윤 씨가 구매한 가방이에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설윤은 가방을 꺼내 꼼꼼히 살펴보았다.“확인했어요.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대뜸 울려 퍼졌다.“재고가 없다면서요? 분명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한테 주는 거죠?”싸늘한 표정으로 따지는 임연지를 보자 점원이 서둘러 해명했다.“이 가방은 손님께서
일과를 마친 설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갔다가 간하림과 다시 마주쳤다.이내 먼저 입을 열었다.“하림아, 내일 쉬는 날인데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임가희가 부탁한 일을 떠올리자 간하림은 흔쾌히 동의했다.다음 날, 두 사람은 약속 시간에 맞춰 센트럴 백화점 근처의 카페에 도착했다.일단 만나자마자 설윤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했고, 백화점으로 걸어가면서 쪽쪽 빨아 마셨다.간하림이 말했다.“여긴 명품밖에 없을 텐데?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발견했다가 가격 보고 기겁했잖아. 그나저나 꽤 익숙한 곳인가 봐? 여기 자주 와?”“내가 무슨 재주로? 국환 씨 따라 몇 번 다녀갔을 뿐, 며칠 전에 가방 하나 주문했는데 오늘 픽업하러 가는 거야.”“헐! 회장님 너무 근사하잖아.”설윤을 바라보는 간하림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했다.“그러니까 얼른 행동 개시해야 한다고. 사모님과 이혼시키고 너랑 결혼할 방법을 찾아야 해.”비록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이었다.사실 그녀는 속으로 뻔했다. 최국환과 임가희는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설윤에게 준 돈은 부부의 공동 재산에 속하지 않는지라 다시 빼앗아 갈 자격이 없었다. 물론 최국환이 직접 개입하면 회수가 가능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나중에 임가희가 설윤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나 최국환의 마음이 식는다고 해도 그동안 받았던 값비싼 선물은 여전히 가져갈 것이며 현금화하면 그래도 두둑이 챙길 수 있다.결국 임가희가 손을 쓰는 이상 설윤은 곧 최국환에게 찬밥 신세 당하므로 얼추 비슷한 액수의 보수를 받을뿐더러 임가희라는 인맥까지 확보하기에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그제야 간하림은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설윤의 표정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어젯밤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 말이 맞아. 국환 씨 아내와 적이 된 이상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봐주는 건 아니지. 고작 돈 몇 푼
“자, 이제 그만하고 출근하자. 아니면 매니저한테 또 혼날라.”설윤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탈의실을 나가려고 했다.“먼저 가. 나 립스틱만 바르고.”“알았어.”설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간하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사모님이 부탁한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군.’...병원에 도착한 최동철은 올라가는 대신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유치원 확인하러 직접 다녀온다고 하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차에 타고 나서 메이슨을 데리러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최동철이 말했다.“별장에 계신 이모님이 연락이 와서 오늘 메이슨이 일어나자마자 발이 아프다고 했다네. 아마도 어제 강행군이었나 봐. 그래서 집에서 쉬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가면 돼.”온하랑은 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어제 많이 걸어 다니긴 했죠. 메이슨을 말렸어야 했는데...”“네 탓 아니야. 내가 너무 바빠서 녀석이랑 놀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무리한 거지.”이에 온하랑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동철 오빠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메이슨도 철이 들었고.”최동철이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남사스럽게 뭔.”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면서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동언 국제 유치원에 도착하자 젊은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소개와 함께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우리 유치원은 총 3개의 반으로 나뉘는데 최대 학생 수를 각각 20명 이내로 확보하여 교사들이 모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끔 노력하죠. 교실에는 멀티미디어 교육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전용 독서 공간, 놀이 공간, 수공예 공간, 실내외 감시 카메라, 그리고...”꼼꼼하게 알아본 결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온하랑은 꽤 만족했다.이내 유치원을 나서고 최동철에게 의견을 물었다.최동철이 말했다.“몇 군데가 노후한 것만 빼고 기본적인 인프라는 괜찮네. 시설 개조 명목으로 2억을 기부할 생각이야. 게다가 메이슨도 특별한 케이스라
설윤은 그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봤어? 다른 사람한테 절대 얘기하면 안 돼.”“당연하지.”간하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나 몰라? 걱정 붙들어 매.”그리고 다정하게 설윤의 팔짱을 끼고 클럽 탈의실로 향했다.아직 아무도 없었고, 간하림은 옷을 갈아입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윤아, 최 회장님과 어떻게 알게 되었어?”딱히 언급하고 싶지 않은 설윤은 대충 둘러댔다.“우연한 기회에 마주쳤어. 전에 일하던 곳에 놀러 왔다가 마침 내가 접대를 담당했거든.”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간하림은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손을 뻗어 설윤의 잘록한 허리를 꼬집었고, 뽀얀 피부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바라보았다.“최 회장님이 네가 진짜 마음에 드나 봐. 직접 출근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정말 좋겠네.”설윤은 피식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너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잖아.”“든든하긴 개뿔! 하늘과 땅 차이거든?”간하림이 툴툴거렸다.“가게에 오면 지명할 뿐이지 너처럼 최 회장님 전속 담당이 아니야.”심지어 손님마저 감히 설윤에게 집적거리지 못했고, 누가 봐도 사전에 단단히 경고한 게 분명했다. 반면, 그녀는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꾹 참아야만 했다.설윤은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거울을 보며 헤어스타일을 다듬었다.“윤아, 나중에 사모님이 되면 날 잊지 마.”“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녕 몰라?”이내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더니 간하림을 흘겨보았다.“국환 씨가 싫증이 나기 전에 돈이라도 두둑이 챙기면 땡큐고, 사모님은 감히 넘보지도 않아.”간하림은 납득할 수 없는 듯 바짝 다가갔다.“우리가 뭐 어때서? 최 회장님 와이프도 결국에는 사모님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잖아. 그리고 며칠 전 기사 못 봤어?”“무슨 기사?”곧이어 출입구를 힐끗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누군가 최 회장님 와이프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해서 끔찍한 상처를 입었대.”“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임연지는 집에 도착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굳은 얼굴로 손에 든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는 임가희를 발견했다.테이블에 놓인 등기 전용 서류 봉투 위에 여러 장의 사진이 널브러져 있었다.“고모, 왜 그래요?”말을 마치고 나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고모부가...”이내 나머지 사진도 확인했는데 전부 어떤 젊은 여자와 다정한 스킨십을 하는 최국환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결코 가벼운 사이는 아닌 듯싶었다.“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임가희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임연지는 목을 움츠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임가희를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고모, 이제 어떡해요?”“어떡하긴?”임가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모른 척해야지. 지금 네 고모부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사는 거야. 괜히 추궁했다가 홧김에 쫓아내기라도 한다면 더 손해이지 않겠어?”그렇다고 마냥 당할 수는 없었다.지금껏 비슷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나같이 머리가 텅 빈 여자들이라 그녀의 도발에 넘어가서 부랴부랴 찾아와 따지기 급급했다. 나중에 울면서 최국환에게 하소연하면 정이 떨어진다며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또한 최국환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신분과 집안, 그리고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다.어쨌거나 그 나이 먹고 결혼을 3번이나 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본처의 자리를 위협받지 않은 이상 고작 여자 문제로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뒤에서 몰래 처리하면 그만이었다.“그냥 넘어가려고요?”비록 고모의 말도 맞지만 그래도 왠지 꺼림칙했다.“넌 신경 쓰지 마. 고모부 앞에서도 티 내지 말고.”임연지는 사진 속 여자를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여우 년’이라고 욕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요.”임가희는 사진을 모두 치웠다.무언가를 떠올린 듯 임연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참, 고모, 만약 이 여자가 임신하면 어떡해요?”“네 고모부의 컨
“침착해.”임연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호텔에서 제공한 가운을 느긋하게 껴입었다.“샤워했어? 나랑 같이 씻을래?”“꿈 깨.”이내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으면서 문을 열자 알몸으로 나타나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는 오재원을 발견했다.“연지야.”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슬쩍 피했다.“호텔에서 푹 쉬어. 먼저 가볼게.”“아직 이른데? 좀 더 있다 가.”“안돼.”임연지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오재원을 스쳐 지나가 침대 옆으로 걸어가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었다.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쌀쌀맞은 얼굴을 보자 오재원은 꼬리를 내렸다.“알았어. 그럼 언제 다시 올 거야? 그리고 원하는 집이 있으면 알려줘. 부동산에 물어볼게.”“방 3개, 풀옵션. 나머지는 알아서 해.”“그래.”임연지는 옷매무새와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방을 나갔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뒤돌아보며 혀를 찼다.‘역겨운 놈.’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싣고 한진에게 답장을 보냈다.[호텔을 벗어나니 공기마저 상쾌한 기분이야.]한진이 대답했다.[하하하! 참,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우리 오빠가 인맥을 동원해서 각 언론사에 수시로 주시하라고 했잖아. 그중에서 제보받은 회사가 있는데 편집장이 이메일을 보자마자 오빠한테 연락했대.]그러고 나서 이메일의 스크린샷을 보내주었다.본문의 첫 마디가 온하랑이 필라시에서 유학할 때 최동철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임연지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대박인데? 고마워, 한진아. 오빠한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줘. 네가 아니었다면 진짜 아프리카로 쫓겨났을지도 몰라.]그동안 한진의 오빠가 사전에 뉴스를 차단하지 못하고 자칫 폭로라도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이제 결과를 확인한 이상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하지만 대체 누가 제보했단 말이지?한진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물론 메일 주소를 역추적한 결과 여전히 너희 집으로 되어 있어. 아마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가상 주소를 사용한 것 같아.][미친놈.]임연지는 화가 나서 머리카락을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임연지는 그 틈을 타서 오재원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오재원은 그녀를 따라 나가려고 했지만 잠시 뒤 자신이 들고 있던 캐리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끌며 엘리베이터를 나왔다.방에 들어가자 오재원은 서둘러 캐리어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임연지를 끌어안고는 침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연지야, 빨리 나 주라고. 더는 참을 수 없어.”“오재원! 이거 놔! 먼저 일어나!”“안 돼. 연지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냥 즐기기만 하면 돼.” 그녀는 그를 힘껏 밀쳤고 마음속에서 강한 반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오재원의 힘이 너무 강해 벗어나기 힘들었다. “오재원, 내 말 들어봐. 우리 얘기 좀 해야 해.” 임연지는 차분하게 말하며 그가 자신의 말을 듣길 바랐다.하지만 오재원은 이미 욕망에 눈이 멀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임연지에게 입을 맞추려 했고 손은 그녀의 몸을 함부로 만지기 시작했다.“얘기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걸 알아. 우리는 지금 중요한 일을 하는 거야.” 그는 말을 마친 후 임연지의 입술을 막았다. “연지야, 잘 생각해. 네가 만약 나를 밀어내면 난 바로 나갈 거야.” 임연지는 속에서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그녀의 밀치는 손길은 결국 멈춰 섰다.“그래 이거지.”오재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충분히 즐겼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오재원은 임연지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너 너무 향기로워. 연지야. 어쩌면 이제 우리 아이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네.”임연지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더 이상 그를 피하지 않으면 정말로 오재원에게 뺨을 갈길 것만 같았다.화장실에 들어간 임연지는 핸드폰을 꺼내 한진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진아, 살려줘. 진짜 그 사람이 너무 싫어!][돌아오자마자 나랑 자려고 하고 역겨워 죽겠어!][내가 기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