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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작가: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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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서 나온 후 온하랑은 짐을 챙겨 김시연의 집으로 갔다.

김시연은 가족들과 함께 살지 않고 혼자 아파트에서 살았다. 넓은 공간과 밝은 전망의 큰 아파트였는데 매우 쾌적했다.

온하랑은 여행에서 돌아오면 자신도 큰 아파트를 사서 혼자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후의 일이다.

김시연은 이미 여행 경로를 다 짜놓았다.

얼마 전 온하랑이 보러 왔을 때 김시연은 온하랑의 여권을 가져가 비자를 발급받고 항공권도 준비해 놓았다.

온하랑은 김시연의 집에서 여행에 필요한 짐을 다시 쌌다.

그날 밤, 온하랑과 김시연, 주연 세 사람은 여행 경로의 첫 방문지인 노르빈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의 노르빈은 북유럽 5개국 중 하나로 겨울에는 주로 스키를 타고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김시연의 계획에 따르면 그들은 주요하게 오로라를 쫓고 노르빈의 인간미를 느끼며 스키는 그저 부가적인 것이다.

오로라는 일종의 자연 현상이다. 지구의 남극과 북극 부근 지역의 초고층 대기 중에 밤에 나타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다양하고 다채롭고 예측할 수 없으며 매우 장관을 이루어 종종 사람이 말로 묘사하기에는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온하랑은 사진으로만 본 적이 있던지라 김시연의 계획을 알게 되었을 때 금세 관심이 쏠렸다.

대기실에서 김시연은 휴대폰 지도를 확대하며 신나서 소개했다.

“...오베니아에서 이틀간 놀다가 트로토와로 가서 오로라를 쫓고, 차를 렌트해서 여름섬, 링와스섬으로 가서 유람선을 타고, 스위엘로 갔다가 나베론섬으로 가서 다시 차를 렌트하고 5일간 놀다가 돌아올 때 샹포르테에 들려 며칠 노는 거예요. 다들 어떻게 생각해요?”

“전 좋아요. 그냥 시연 씨가 알아서 하세요.”

온하랑은 흔쾌히 대답했다. 주현은 시간을 계산해 보고 말했다.

“이번 왕복 여행에 거의 보름이 걸리네요. 마침 연차도 다 썼어요.”

“그럼 주현 씨는 샹포르테에 갔다가 먼저 돌아가요. 전 하랑 씨랑 다른 곳에 들려 더 놀다가 돌아갈 거예요.”

김시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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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 그녀는 트럭 운전사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그녀가 받은 거라고는 법원에서 강제 집행한 배상금일 뿐이었다.그리고 온하랑이 굳건히 그 운전자를 엄하게 벌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배상금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배상금도 운전사의 전부 재산이나 다름없었다.평범한 고아였다면 그녀가 그 돈을 받기 위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당시 아버지의 신분 때문에 교통사고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부승호를 비롯한 사회 각계 인사들과 언론의 도움으로 그 운전자는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숨지게 한 뒤 도주한 혐의로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이제 7년이 지났으니, 운전자가 출소하는 것도 정상이다.비록 아무리 무거운 처벌일지라도 아버지를 잃은 온하랑의 피해를 보상할 수는 없었지만, 온하랑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트럭 운전사는 온하랑을 알아보지 못한 듯 온하랑을 지나쳐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하랑 씨, 뭘 그렇게 봐요?”김시연은 화장실에서 나와 멍해 있는 온하랑을 보며 온하랑의 시선을 따라 남자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온하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빨리 가요, 곧 탑승할 거예요.” “네.”온하랑은 걸어가는 내내 계속 남자 화장실 쪽을 보며 마음속에 드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처음 경찰과 검찰청에서 조사한 바로 트럭 운전사의 가족은 매우 평범했으며 심지어 가난하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 왜 그가 여기에 나타났을까?현재 일부 국내선은 고속열차보다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여기는 국제선 3번 대기실이고 여기서 탑승하는 몇 대의 비행기는 모두 북유럽 국가로 향하는 비행기다. 여정이 길고 관광 시즌이라 푯값은 몇백만 원이 오가는데, 트럭 운전사의 가정 조건으로 놓고 볼 때 아주 큰 비용이다.걸어가는 내내 생각에 잠긴 온하랑은 미처 앞을 보지 못해 갑자기 한 남자와 부딪혀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김시연이 부축해 줬다.“죄송합니다.”온하랑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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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광태가 위치 추적기를 부착할 때 온하랑은 마침 넋 놓고 있었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자신이 우연히 부딪힌 거라 생각할 것이다.부승민의 눈에 어두운 빛이 스쳤다. 곧바로 전화를 끊은 부승민은 숨을 죽이고 휴대폰 앱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도에 작은 파란 점이 나타나 있었고, 강남국제공항에 멈춰 있었다.부승민은 입꼬리를 올리고 옅은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맞은편 소파에 앉아있는 연민우를 보며 말했다.“가서 퇴원 절차 밟아줘.”연민우는 흠칫 놀랐다.“대표님, 아직 상처가 회복되지도 않으셨어요.”“괜찮아.”연민우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자 부승민은 눈을 치켜뜨고 그를 다그쳤다.“빨리 가지 않고 뭐해?”연민우는 머뭇거리며 말했다.“대표님, 제가 한 가지 사실을 알았는데 대표님이 알고 계신 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뭔데?”“사모님과 관련된 일입니다.”그는 부승민이 급히 퇴원하려는 이유가 온하랑을 찾아가기 위해서라는 걸 알았다. 온하랑은 괜찮은 사람이지만 그의 고용주는 부승민이었고, 그는 부승민이 속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온하랑과 관련이 있다니?부승민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말해 봐. 뭔 일인지.”그리고 그는 한마디를 보탰다.“네 탓을 하는 일은 없을 거야.”그제야 연민우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전에 사모님이 유산하셨을 때 진료 기록을 보신 적 있습니까?”“아니.”부승민은 단호하게 대답하며 연민우에게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냈다.연민우가 생각하기에도 그랬다.온하랑이 입원해 있는 동안 부승민은 계속 온하랑 옆에 있었고, 온하랑의 상태도 모두 의사한테서 듣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관련이 적은 일은 의사가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연민우는 온하랑의 진료 기록을 보다가 한 부분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그는 이 문제를 한 달 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원래 그는 부승민과 온하랑의 사이가 처음처럼 좋아진다면 이 말을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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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는 부승민이 왜 의심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맞습니다. 출산하셨던 여성분들은 다 이렇습니다. 온하랑 씨는 임산부 중에서도 양호한 편이에요. 전혀 티가 안 나잖아요. 첫째가 벌써 세, 네 살쯤 되었죠?”연민우는 숨을 참고 감히 찍소리도 못 내고 고개를 들어 부승민의 반응을 살폈다.부승민의 안색은 더없이 어두워졌다. 눈빛이 한층 어두워진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오진 아닌 건 확실하죠?”“오진이요?”의사는 어리둥절했다.부승민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전 아직 아이가 없거든요.”의사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부승민에게 아이가 없다고? 설마... 그럼 온하랑이 출산 사실을 숨기고 사기 결혼을 했단 말인가?이럴 수가. 한 사람은 바람피우고 다른 한 사람은 사기 결혼이라니.누가 가족이 아니랄까 봐, 끼리끼리 만나는구나.부승민의 날카로운 눈빛에 흠칫한 의사는 다급히 설명했다.“오진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잘못 봤을 리가 없어요. 환자분 진료 기록에 다른 의사 선생님의 서명도 있었거든요. 못 믿으시겠으면 온하랑 씨에게 직접 물어보세요!”그러나 부승민의 안색은 여전히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의사는 또 무언가가 떠오른 듯 덧붙였다.“얼마 전 두 분 결혼 3주년 기념일이었죠? 온하랑 씨의 회복 상태로 보아 출산은 3, 4년 전에 하신 것 같았어요...”의사의 말은 온하랑이 출산한 건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부승민이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는 뜻이었다.“알겠습니다. 이제 나가주세요.”부승민의 표정은 그나마 평온했다.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지는 그 자신만 알 수 있다.“네, 알겠습니다.”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부승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연민우에게 말했다.“진료 기록에 서명했다던 의사 불러와.”“네.”연민우는 대답하자마자 바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가 문을 열려고 할 때 부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한테도 알리지 말고.”“알겠습니다.”이 일이 사실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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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승민의 마음은 복잡한 감정들로 마구 뒤엉켰다.이마의 핏줄이 튀어나오고 꽉 악문 이에서 끄드득 소리가 났다. 애써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했다.부승민과 온하랑의 아이는 태어나지도 못했다. 그런데 온하랑이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니?!그 남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온하랑의 첫 번째 남자인 걸까?온하랑이 혼자 아이를 낳게 한 것도 모자라 그녀를 책임지지도 않았다.그 사람이 누군지 안다면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것이다.전에 온하랑은 이주혁과 함께 해외로 나가려고 했었다. 설마 이주혁이 그 남자인 걸까?해외에서 둘이 살림을 차린 건가? 온하랑이 대학교 3학년일 때부터 둘이 만났었다니.마음 한구석에서 커다란 불길이 치미는 것 같았다. 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 부승민의 이성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연민우는 마치 기둥처럼 병실 밖의 벽에 꼭 붙어 서서 병실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병실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연민우는 부승민이 지금 너무 속상하여 혼자 조용히 추억을 돌이키며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모든 슬픔을 삭이는 중일 거라 생각했다.쾅.갑자기 병실에서 들려온 귀청이 터질 듯한 소리에 연민우는 몸을 흠칫 떨었다.이윽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이어졌다.자세히 들어보니 테이블이 바닥에 쿵, 넘어지는 소리, 소파가 이동하면서 나는 마찰 소리, 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지는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바닥에 무언가가 쾅, 떨어지는 소리였다...놀라서 어깨가 움츠러든 연민우는 미리 나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부승민이 분노에 차서 테이블을 걷어차는 모습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한바탕 시끄러운 소리가 지나간 후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먼저 돌아가.”부승민의 목소리는 그나마 차분했지만 피곤함과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연민우는 휴대폰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이미 밤 11시가 되었다.지금 상황을 보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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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어.”부승민은 천천히 눈을 떴다.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은 어둡지만 평온했고 블랙홀처럼 깊었다.밤새 잠을 자지 않아 눈꺼풀은 푹 꺼지고 미간은 잔뜩 구겨져 온몸이 날카롭고 사나운 기운으로 뒤덮였다.그는 일어서서 바닥에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가로질러 옆 병실로 걸어갔다.연민우는 부승민을 따라가 물 한 컵을 부어 그의 앞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물었다.“대표님, 제가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부승민이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손 놓고 있을 사람이 아니란 것을 연민우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길고 가느다란 다리를 꼬고 앉은 부승민은 소파에 나른하게 등을 기댔다.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누르자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드러났다.그는 천천히 컵을 들어 물 한 모금 마시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람 시켜서 와이프가 대학교 3학년 때 유학을 가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아봐.”병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밤을 지새운 부승민은 마침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일의 잘못된 점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첫 번째, 그는 전부터 이런 의문을 가졌다. 온하랑은 분명 처음 임신한 사람처럼 임신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였다. 만약 온하랑이 정말 아이를 낳았다면 어느 정도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두 번째, 온하랑이 정말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온하랑은 이제 그 남자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 남자와 연락하고 있을까?결혼 3년 동안 온하랑은 한 번도 유학을 갔던 도시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부승민은 분명히 알고 있다.마음을 가라앉힌 후에야 부승민은 그 아이가 이주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당시 두 사람은 아직 서로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온하랑이 아이에 대한 관심과 이주혁에 대한 마음을 미루어 볼 때, 온하랑은 이주혁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았다면 무조건 이주혁과 미래를 함께 하려고 했을 것이다.설상가상으로 이주혁이 그녀를 버린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자기 아이를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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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314화

    건물은 전형적인 고딕 양식으로 우뚝 치솟은 탑은 선이 뚜렷하고 스타일이 심플하면서도 웅장했다. 아치형 창문, 병렬된 기둥, 양쪽에 서 있는 두 개의 인물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주현은 쇼핑백을 건네받고 온하랑을 가리키며 말했다.“하랑 씨가 사진 찍어줘요!”주현은 프로페셔널한 사진사였지만 온하랑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그녀를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며 기분을 끌어올리게 하고 싶었다.“하랑 씨, 저 사진 좀 찍어줘요!”온하랑이 거절하려는 찰나 김시연은 얼른 자기 휴대폰을 온하랑의 손에 밀어 넣었다.온하랑은 어쩔 수 없이 대충 각도를 바꿔가며 김시연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휴대폰을 받은 김시연은 놀라며 말했다.“와! 하랑 씨, 실력 좋네요. 이렇게 예쁘게 찍어주다니!”주현은 다가가서 사진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랑 씨 실력이 좋은데요. 다음에는 하랑 씨가 우리 전속 사진사가 되어 줘요!”“네?”온하랑은 미간을 찌푸렸다.김시연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하랑 씨가 우리 전속 사진사가 되는 거예요. 거절하지 말아요. 하랑 씨, 여행 와서 사진도 안 찍을 거면 대신 우리라도 찍어줘요.”“알았어요.”온하랑은 동의했다.그녀도 확실히 잡생각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저녁 식사 장소는 김시연이 여러 후기를 읽고 선택한 샤부샤부 전문점인 한식당이었다.김시연의 말에 따르면 오늘은 반드시 샤부샤부를 먹어야 하는 날이었다.“이렇게 추운 날씨에 따뜻한 샤부샤부를 먹는 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에요!”가게에 있는 대부분 손님은 동양인이었고 웨이터도 몇 마디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세 사람은 각각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하고 소스를 가지러 갔다.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온하랑과 부딪혔다.온하랑이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약간 붉어진 한 젊은 남성이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그녀의 옷을 보고는 영어로 사과했다.“Sorry. I’m so sorry. I didn’t mean it.”(미안해요. 정말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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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글쎄요. 일단 먼저 카톡부터 추가할까요?”온하랑을 흘끗 쳐다본 젊은 남자는 그녀가 카카오톡을 추가할 생각이 없는 것을 알고는 김시연을 먼저 추가하기로 했다.“그럼 전 먼저 자리로 돌아가 볼게요.”그는 다시 온하랑을 바라보며 말했다.“누나, 얼룩이 지워지지 않으면 언제든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알았어요.”김시연은 온하랑을 대신해 대답했다.젊은 남자가 떠나자 김시연은 온하랑에게 말했다.“아이고, 하랑 씨.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지 마세요.”온하랑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제가 그랬어요?”“안 그랬어요?”김시연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저 사람은 성의를 잔뜩 보여줬는데 하랑 씨는 끝까지 무표정이었잖아요. 그게 쌀쌀맞은 게 아니면 뭐예요?”온하랑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다.“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요.”온하랑은 자신의 이런 문제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도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서 그런지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고객을 제외하고는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오는 사람을 굳이 막지는 않았지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고, 지금처럼 불필요한 사교 활동도 피할 수 있으면 되도록 피하려고 했다.김시연, 주현과 가까워진 것도 두 사람과 일할 때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반면에 부승민은 온하랑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다가갔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김시연이 말했다.“필요하고 불필요한 게 어디 있어요. 그냥 여행 친구로 생각하고 같이 즐기는 거죠.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각자의 길을 가면 되잖아요.”김시연의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그럼 우리도 합류할까요?”온하랑이 물었다.“일정을 먼저 봐야 할 것 같아요. 보통 국내에서 온 사람들 대부분은 바로 트로토와로 가요. 여기서 오래 머물면 비용이 더 많이 들거든요. 게다가 저 사람들은 대학생이라 오베니아에 오래 머물지 않을 거예요.”김시연은 장난기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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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1272화

    수화기 너머로 임가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임연지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을까 봐 걱정하며 바로 물었다.“오늘 센트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아? 모르셨어요?”간하림은 간단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따귀를 맞은 일로 설윤은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사모님께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그 말을 듣자 임가희는 안심했다.뺨 한 대 맞고 참지 못해 도망가는, 겨우 스무 살짜리 감정적인 계집애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이틀 후에 너희 가게로 갈 거야. 그때까지 설윤을 잘 부추겨서 나한테 덤비게 만들어.”간하림은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알겠습니다. 사모님,”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드는 장면은 반드시 녹화되어 최국환에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리우 그룹.최국환은 회의를 마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서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찾았다.“오전에 사모님과 설윤 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설윤 씨는 가방을 사지 않겠다고 하시며 환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갑자기 왜?”“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화에서 설윤 씨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최국환은 한창 젊은 애인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거의 끊어지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설윤의 목소리는 살짝 쉰 듯했다.“국환 씨.”“김 비서 말로는 가방 환불해 달라고 했다던데.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싫어졌어요. 이유는 없어요.”“이유가 없어? 그럼 목소리는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누군지 말만 해.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히다니!”“묻지 마세요. 저 때문에 국환 씨와 사모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요.”“오? 내 마누라와 관련된 일이야?”“말했잖아요, 묻지 마시라고요. 더 물으면 저 진짜 삐질 거예요.”“아이고, 또 어린애

  • 위태로운 제안   제1271화

    “정말... 어이가 없어...”설윤은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어딜 가요? 방금 구매 기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못 보여주는 건데요?”임연지는 설윤의 길을 막아서며 그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잡고 비꼬듯 말했다.“젊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뻔뻔해요? 유부남인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다니. 내 고모부가 그쪽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역겹지도 않아요? 몸 팔아서 얻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좋아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손님 몇 명이 임연지의 말을 듣고 문 앞에서 수군거렸다.설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임연지를 밀치고 가게를 나서 황급히 도망쳤다.간하림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저기요. 설윤 씨, 가방은...”점원은 임연지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보고 두 번 불렀다.그러나 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그만 불러요. 안 올 거예요.”임연지는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다.“저 여자가 싫다고 두고 갔으니 이 가방 저 주세요.”“임연지 씨, 죄송하지만 설윤 씨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걱정 마세요, 분명히 환불할 거예요. 환불하면 이 가방 저한테 남겨 두세요.”임연지는 선물 상자를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임연지의 배경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설윤 씨가 환불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가방을 못 사서 한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상황이 반전되고 내연녀까지 혼내주고 나니 임연지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윤아, 괜찮아?”마침내 매장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자 설윤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하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채 앞으로 걸어갔다.“윤아, 어디 가서 좀 앉을까?”설윤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간하림이 그녀를 위로했다.“윤아, 너무 속상해하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0화

    한진은 큰 도움을 주고도 단지 가방 하나 사달라는 부탁만 했을 뿐인데 실망을 안겨주게 생겼으니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심지어 가방을 선물해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는데 무슨 생각 할지 걱정되었다. 설마 공짜로 주기 싫어서 쪼잔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지?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임연지가 물었다.“다음번에 언제 입고되나요?”점원은 임연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회원 가입하시면 나중에 재고를 확보할 때 연락드리고 있어요.”“그래요. 할게요.”임연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연락처가 어떻게 돼요?”점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임연지는 전화번호를 말하며 머릿속으로 한진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설윤 씨, 어서 오세요. 가방 찾으러 오셨죠? 잠깐 앉아 계시면 금방 가져다드릴게요.”다른 점원의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고마워요.”소리의 출처를 따라 고개를 돌린 임연지는 젊은 여자 두 명을 발견하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윤아, 여기 점원이랑 아는 사이야? 물건을 엄청 많이 샀나 보네? 부러워.”나지막이 속삭이는 여자 목소리가 임연지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내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세상 물정 모르는 촌년들. 잠깐! 왼쪽에 있는 여자가 낯이 좀 익은데?’그리고 고개를 돌려 찬찬히 뜯어보았다.분명 어딘가 본 듯한 얼굴이다.기억을 되짚어보던 찰나 점원이 정교한 선물 상자를 들고나와 두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뚜껑을 열고 안에 든 가방을 보여주었다.“설윤 씨가 구매한 가방이에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설윤은 가방을 꺼내 꼼꼼히 살펴보았다.“확인했어요.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대뜸 울려 퍼졌다.“재고가 없다면서요? 분명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한테 주는 거죠?”싸늘한 표정으로 따지는 임연지를 보자 점원이 서둘러 해명했다.“이 가방은 손님께서

  • 위태로운 제안   제1269화

    일과를 마친 설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갔다가 간하림과 다시 마주쳤다.이내 먼저 입을 열었다.“하림아, 내일 쉬는 날인데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임가희가 부탁한 일을 떠올리자 간하림은 흔쾌히 동의했다.다음 날, 두 사람은 약속 시간에 맞춰 센트럴 백화점 근처의 카페에 도착했다.일단 만나자마자 설윤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했고, 백화점으로 걸어가면서 쪽쪽 빨아 마셨다.간하림이 말했다.“여긴 명품밖에 없을 텐데?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발견했다가 가격 보고 기겁했잖아. 그나저나 꽤 익숙한 곳인가 봐? 여기 자주 와?”“내가 무슨 재주로? 국환 씨 따라 몇 번 다녀갔을 뿐, 며칠 전에 가방 하나 주문했는데 오늘 픽업하러 가는 거야.”“헐! 회장님 너무 근사하잖아.”설윤을 바라보는 간하림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했다.“그러니까 얼른 행동 개시해야 한다고. 사모님과 이혼시키고 너랑 결혼할 방법을 찾아야 해.”비록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이었다.사실 그녀는 속으로 뻔했다. 최국환과 임가희는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설윤에게 준 돈은 부부의 공동 재산에 속하지 않는지라 다시 빼앗아 갈 자격이 없었다. 물론 최국환이 직접 개입하면 회수가 가능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나중에 임가희가 설윤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나 최국환의 마음이 식는다고 해도 그동안 받았던 값비싼 선물은 여전히 가져갈 것이며 현금화하면 그래도 두둑이 챙길 수 있다.결국 임가희가 손을 쓰는 이상 설윤은 곧 최국환에게 찬밥 신세 당하므로 얼추 비슷한 액수의 보수를 받을뿐더러 임가희라는 인맥까지 확보하기에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그제야 간하림은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설윤의 표정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어젯밤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 말이 맞아. 국환 씨 아내와 적이 된 이상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봐주는 건 아니지. 고작 돈 몇 푼

  • 위태로운 제안   제1268화

    “자, 이제 그만하고 출근하자. 아니면 매니저한테 또 혼날라.”설윤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탈의실을 나가려고 했다.“먼저 가. 나 립스틱만 바르고.”“알았어.”설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간하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사모님이 부탁한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군.’...병원에 도착한 최동철은 올라가는 대신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유치원 확인하러 직접 다녀온다고 하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차에 타고 나서 메이슨을 데리러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최동철이 말했다.“별장에 계신 이모님이 연락이 와서 오늘 메이슨이 일어나자마자 발이 아프다고 했다네. 아마도 어제 강행군이었나 봐. 그래서 집에서 쉬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가면 돼.”온하랑은 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어제 많이 걸어 다니긴 했죠. 메이슨을 말렸어야 했는데...”“네 탓 아니야. 내가 너무 바빠서 녀석이랑 놀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무리한 거지.”이에 온하랑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동철 오빠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메이슨도 철이 들었고.”최동철이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남사스럽게 뭔.”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면서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동언 국제 유치원에 도착하자 젊은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소개와 함께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우리 유치원은 총 3개의 반으로 나뉘는데 최대 학생 수를 각각 20명 이내로 확보하여 교사들이 모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끔 노력하죠. 교실에는 멀티미디어 교육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전용 독서 공간, 놀이 공간, 수공예 공간, 실내외 감시 카메라, 그리고...”꼼꼼하게 알아본 결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온하랑은 꽤 만족했다.이내 유치원을 나서고 최동철에게 의견을 물었다.최동철이 말했다.“몇 군데가 노후한 것만 빼고 기본적인 인프라는 괜찮네. 시설 개조 명목으로 2억을 기부할 생각이야. 게다가 메이슨도 특별한 케이스라

  • 위태로운 제안   제1267화

    설윤은 그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봤어? 다른 사람한테 절대 얘기하면 안 돼.”“당연하지.”간하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나 몰라? 걱정 붙들어 매.”그리고 다정하게 설윤의 팔짱을 끼고 클럽 탈의실로 향했다.아직 아무도 없었고, 간하림은 옷을 갈아입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윤아, 최 회장님과 어떻게 알게 되었어?”딱히 언급하고 싶지 않은 설윤은 대충 둘러댔다.“우연한 기회에 마주쳤어. 전에 일하던 곳에 놀러 왔다가 마침 내가 접대를 담당했거든.”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간하림은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손을 뻗어 설윤의 잘록한 허리를 꼬집었고, 뽀얀 피부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바라보았다.“최 회장님이 네가 진짜 마음에 드나 봐. 직접 출근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정말 좋겠네.”설윤은 피식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너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잖아.”“든든하긴 개뿔! 하늘과 땅 차이거든?”간하림이 툴툴거렸다.“가게에 오면 지명할 뿐이지 너처럼 최 회장님 전속 담당이 아니야.”심지어 손님마저 감히 설윤에게 집적거리지 못했고, 누가 봐도 사전에 단단히 경고한 게 분명했다. 반면, 그녀는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꾹 참아야만 했다.설윤은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거울을 보며 헤어스타일을 다듬었다.“윤아, 나중에 사모님이 되면 날 잊지 마.”“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녕 몰라?”이내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더니 간하림을 흘겨보았다.“국환 씨가 싫증이 나기 전에 돈이라도 두둑이 챙기면 땡큐고, 사모님은 감히 넘보지도 않아.”간하림은 납득할 수 없는 듯 바짝 다가갔다.“우리가 뭐 어때서? 최 회장님 와이프도 결국에는 사모님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잖아. 그리고 며칠 전 기사 못 봤어?”“무슨 기사?”곧이어 출입구를 힐끗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누군가 최 회장님 와이프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해서 끔찍한 상처를 입었대.”“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 위태로운 제안   제1266화

    임연지는 집에 도착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굳은 얼굴로 손에 든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는 임가희를 발견했다.테이블에 놓인 등기 전용 서류 봉투 위에 여러 장의 사진이 널브러져 있었다.“고모, 왜 그래요?”말을 마치고 나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고모부가...”이내 나머지 사진도 확인했는데 전부 어떤 젊은 여자와 다정한 스킨십을 하는 최국환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결코 가벼운 사이는 아닌 듯싶었다.“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임가희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임연지는 목을 움츠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임가희를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고모, 이제 어떡해요?”“어떡하긴?”임가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모른 척해야지. 지금 네 고모부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사는 거야. 괜히 추궁했다가 홧김에 쫓아내기라도 한다면 더 손해이지 않겠어?”그렇다고 마냥 당할 수는 없었다.지금껏 비슷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나같이 머리가 텅 빈 여자들이라 그녀의 도발에 넘어가서 부랴부랴 찾아와 따지기 급급했다. 나중에 울면서 최국환에게 하소연하면 정이 떨어진다며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또한 최국환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신분과 집안, 그리고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다.어쨌거나 그 나이 먹고 결혼을 3번이나 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본처의 자리를 위협받지 않은 이상 고작 여자 문제로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뒤에서 몰래 처리하면 그만이었다.“그냥 넘어가려고요?”비록 고모의 말도 맞지만 그래도 왠지 꺼림칙했다.“넌 신경 쓰지 마. 고모부 앞에서도 티 내지 말고.”임연지는 사진 속 여자를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여우 년’이라고 욕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요.”임가희는 사진을 모두 치웠다.무언가를 떠올린 듯 임연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참, 고모, 만약 이 여자가 임신하면 어떡해요?”“네 고모부의 컨

  • 위태로운 제안   제1265화

    “침착해.”임연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호텔에서 제공한 가운을 느긋하게 껴입었다.“샤워했어? 나랑 같이 씻을래?”“꿈 깨.”이내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으면서 문을 열자 알몸으로 나타나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는 오재원을 발견했다.“연지야.”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슬쩍 피했다.“호텔에서 푹 쉬어. 먼저 가볼게.”“아직 이른데? 좀 더 있다 가.”“안돼.”임연지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오재원을 스쳐 지나가 침대 옆으로 걸어가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었다.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쌀쌀맞은 얼굴을 보자 오재원은 꼬리를 내렸다.“알았어. 그럼 언제 다시 올 거야? 그리고 원하는 집이 있으면 알려줘. 부동산에 물어볼게.”“방 3개, 풀옵션. 나머지는 알아서 해.”“그래.”임연지는 옷매무새와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방을 나갔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뒤돌아보며 혀를 찼다.‘역겨운 놈.’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싣고 한진에게 답장을 보냈다.[호텔을 벗어나니 공기마저 상쾌한 기분이야.]한진이 대답했다.[하하하! 참,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우리 오빠가 인맥을 동원해서 각 언론사에 수시로 주시하라고 했잖아. 그중에서 제보받은 회사가 있는데 편집장이 이메일을 보자마자 오빠한테 연락했대.]그러고 나서 이메일의 스크린샷을 보내주었다.본문의 첫 마디가 온하랑이 필라시에서 유학할 때 최동철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임연지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대박인데? 고마워, 한진아. 오빠한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줘. 네가 아니었다면 진짜 아프리카로 쫓겨났을지도 몰라.]그동안 한진의 오빠가 사전에 뉴스를 차단하지 못하고 자칫 폭로라도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이제 결과를 확인한 이상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하지만 대체 누가 제보했단 말이지?한진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물론 메일 주소를 역추적한 결과 여전히 너희 집으로 되어 있어. 아마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가상 주소를 사용한 것 같아.][미친놈.]임연지는 화가 나서 머리카락을

  • 위태로운 제안   제1264화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임연지는 그 틈을 타서 오재원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오재원은 그녀를 따라 나가려고 했지만 잠시 뒤 자신이 들고 있던 캐리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끌며 엘리베이터를 나왔다.방에 들어가자 오재원은 서둘러 캐리어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임연지를 끌어안고는 침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연지야, 빨리 나 주라고. 더는 참을 수 없어.”“오재원! 이거 놔! 먼저 일어나!”“안 돼. 연지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냥 즐기기만 하면 돼.” 그녀는 그를 힘껏 밀쳤고 마음속에서 강한 반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오재원의 힘이 너무 강해 벗어나기 힘들었다. “오재원, 내 말 들어봐. 우리 얘기 좀 해야 해.” 임연지는 차분하게 말하며 그가 자신의 말을 듣길 바랐다.하지만 오재원은 이미 욕망에 눈이 멀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임연지에게 입을 맞추려 했고 손은 그녀의 몸을 함부로 만지기 시작했다.“얘기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걸 알아. 우리는 지금 중요한 일을 하는 거야.” 그는 말을 마친 후 임연지의 입술을 막았다. “연지야, 잘 생각해. 네가 만약 나를 밀어내면 난 바로 나갈 거야.” 임연지는 속에서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그녀의 밀치는 손길은 결국 멈춰 섰다.“그래 이거지.”오재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충분히 즐겼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오재원은 임연지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너 너무 향기로워. 연지야. 어쩌면 이제 우리 아이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네.”임연지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더 이상 그를 피하지 않으면 정말로 오재원에게 뺨을 갈길 것만 같았다.화장실에 들어간 임연지는 핸드폰을 꺼내 한진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진아, 살려줘. 진짜 그 사람이 너무 싫어!][돌아오자마자 나랑 자려고 하고 역겨워 죽겠어!][내가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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