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97화

작가: 고운
이곳은 풀과 나무가 많아 공기가 좋았다.

온하랑은 호화로운 별장을 보면서 약간 놀랐다.

부승민은 온하랑이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마음에 들어?”

“예쁘네.”

온하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승민이 얘기했다.

“마음에 들면 자주 와.”

“응... 응?”

온하랑의 대답에 부승민이 눈썹을 치켜떴다.

“왜, 싫어?”

“아니... 이 집을 샀어?”

“응. 자주 출장 오는데 호텔은 불편해서.”

온하랑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얘기했다.

“매해 추서윤 씨를 보러 올 때 여기에 있었던 거야?”

부승민은 표정이 굳어서 온하랑의 손을 끌어당겼다.

“여기 살 때 추서윤은 오지 않았어.”

“그렇게 급하게 해명할 필요 있어?”

“...”

부승민은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그 모습을 본 온하랑은 환하게 웃었다.

“그럼 추서윤 씨가 와도 못 들어오게 막을 거야?”

“...”

부승민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일단 들어가서 짐부터 풀어.”

온하랑은 그의 표정을 보고 몰래 웃었다.

전에는 그와 추서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아팠지만 언제부턴가는 부승민에게 농담을 칠 수도 있었다.

별장에는 한국계 미국인 고용인들이 캐리어를 정리하고 있었다.

온하랑은 별장을 둘러보고 내려오다가 부승민이 한편의 소파에 앉아 사과를 깎고 있는 것을 봤다.

사과 껍질은 처음부터 끝까지 끊이질 않았다.

부승민은 이미 껍질을 깎아놓은 사과를 온하랑에게 주면서 얘기했다.

“먹어 봐.”

온하랑은 사과를 건네받아서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네.”

“그럼 더 먹어.”

“아니야. 오빠가 먹어.”

온하랑은 사과를 돌려준 후 짐을 정리하러 갔다.

이곳은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기에 침실도 깨끗했고 이불도 따스해서 바로 누워도 될 정도였다. 온하랑은 캐리어 속의 옷을 옷장에 넣어두었다.

두 사람이 챙긴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가 필요한 물건들을 사 왔다.

대충 정리한 후, 고용인이 점심을 만들어왔다.

솔직히 얘기하면 고용인이 만든 한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198화

    차는 한 레스토랑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전형적인 서양풍의 인테리어였고 벽에는 영어로 레스토랑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온하랑은 비서를 따라 레스토랑에 들어갔다.로비에는 거의 빈자리가 없었다. 이 식당이 아주 유명한 식당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온하랑은 부승민을 발견했다.그는 레스토랑 안의 세 번째 줄 옆에 앉아있었는데 검은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외투는 벗어서 의자에 걸쳐놓고 있었다.나른하게 등을 의자에 대고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아주 우아해 보였다.마치 감응 센서라도 있는 것처럼, 그는 바로 온하랑을 발견하고 시선을 맞췄다.온하랑은 빠르게 걸어가 의자를 빼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왔구나. 오후에는 집에서 뭐 했어?”“잤어.”“그럼 저녁에 피곤하지 않겠네.”부승민의 말을 알아들은 온하랑은 그를 약간 노려보았다.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와 두 사람에게 건네주었다.부승민은 영어로 주문을 했다.영어를 하는 부승민의 목소리는 매우 매력적이었다.온하랑은 학교를 다닐 때 영어 듣기를 연습한답시고 그의 영어 강연을 반복해서 들으며 그의 강연문을 썼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말투를 따라 여러 번이나 읽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주문을 마친 후, 직원은 떠나갔다.온하랑은 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턱을 괸 채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를 훑어보았다.부승민은 그런 온하랑을 쳐다보았다.그녀의 이목구비는 정말 오밀조밀하게 예뻤다. 하얀 피부는 건드리면 톡 터질 것처럼 투명하고 얇았다. 반 시간이 지나고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온 건 투명하게 빛나는 캐비어였다. “특제 캐비어야. 이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야. 먹어봐.”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인 후 빵에 캐비어를 발랐다.동그란 캐비어가 온하랑의 입에서 부서졌다. 약간 짜고 약간 비릿하면서도 특별한 맛이 혀끝에서 퍼졌다.“괜찮네.”온하랑은 원래 캐비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에 몇 번 먹어보니 점점 익숙해진 것이었다.온하랑은 간단

  • 위태로운 제안   제199화

    맏이는 부승민과 부민재의 아버지다. 그는 부승민이 어릴 때 아내와 함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둘째는 지금 BX그룹의 이사장이었다. 회사의 일에 웬만해서 손을 대지 않고 있고 본민만의 프렌차이즈를 창업해 일하고 있다.셋째는 로스엔제리너스에서 살고 있는 고모 부선월이었다.나이가 가장 어리고 여자여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녀를 매우 예뻐했다. 그래서 50대가 거의 되는 부선월은 여전히 유치한 면이 있었다.부선원을 여전히 미혼이었다.예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부선월이 결혼하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부선월더러 잘생긴 남자와 선을 보게 했었다.하지만 부선월은 끝까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고 두 어르신은 어쩔 수 없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하지만 부선월은 몇 년 전 아이를 입양했다. 부씨 가문에 입양된 지도 10년이 거의 되어가지만 온하랑은 부선월을 많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온하랑은 부선월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무심결에 느낄 수 있었다. 명절에 집에 돌아오면 부선월은 온하랑을 투명 인간 취급하곤 했으니까.후에 부승민과 온하랑이 결혼할 때, 부선월은 또 한 번 돌아왔다. 그리고 원수를 보는 것처럼 온하랑을 노려보았다.또 따로 온하랑을 불러내어 온하랑의 신분은 비천하기에 알아서 부승민을 떠나라고 했다. 그때의 온하랑은 부승민과 결혼해서 기쁨과 희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니 부선월의 말을 들었을 리가 없었다.두 사람의 사이는 그 정도로 좋지 않았다.부선월은 부승민과도 얘기했을 것이다. 다만 부승민이 부선월에게 무슨 말을 한 후, 부선월은 다시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부선월은 부승민을 아주 예뻐했다. 부민재보다 부승민을 편애할 만큼 말이다.그래서 부승민이 그녀를 보러 온다는 말을 듣고 부선월은 매우 기뻐했다.“고모.”눈앞의 부승민을 보면서 부선월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부승민 옆의 온하랑을 본 부선월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약간 깃들었다.아주 잠깐이었지만 온하랑은 발견할 수 있었다.온하랑은 미소를 짓고 얘기했다.“고모, 안녕하세요

  • 위태로운 제안   제200화

    부승민이 시선을 돌려 온하랑과 시선을 마주했다.“뭐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요.”부선월이 놀라서 얘기했다.“추서윤이 귀국했잖아.”“네.”“그 애랑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고모, 이건 제가 결정할 일이에요.”“고모는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넌 부씨 가문에서 가장 훌륭한 아이야. 네 급에 맞는 여자는 없겠지만 적어도 괜찮은 집안의 여자를 찾아야지. 온하랑은 너한테 어울리지 않는 아이야. 저런 아내를 어떻게 데리고 다녀? 네 할아버지도 사람 보는 눈이 참 별로야. 양딸로 들이고 너한테 시집보내다니. 정말 노망이 드신 거 아니야?”“고모,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앞으로 그 얘기는 꺼내지 마세요.”부선월은 찡그린 표정으로 부승민을 보면서 얘기했다.“그때는 이혼하겠다고 했잖아.”“고모!”부승민은 저도 모르게 온하랑을 쳐다보았다.온하랑은 못 들은 것 같았다.“어휴, 너도 나이가 드니 고집이 세지는구나.”부선월은 다시 거실에서 걸어 나갔다.부승민은 온하랑 옆에 와서 앉았다.“고모 성격이 원래 이래.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너무 예쁘게 키우셨어. 그러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마.”온하랑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알아. 어차피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닌데, 괜찮아.”저녁쯤, 부승민은 부선월 대신 부시아를 데리러 갔다.온하랑은 부선월과 같은 공간에 남고 싶지 않았기에 부승민을 따라갔다.가는 길에 온하랑이 물었다.“시아는 몇 살이야? 몇 학년이야?”부승민이 대답했다.“올해 네 살이고 아직 어린이집에 다녀.”온하랑이 눈썹을 까딱거렸다.“네 살?”그녀는 부선월이 그렇게 어린 여자애를 입양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그래서 고모를 할머니라고 부르고 날 삼촌이라고 불러.”그들은 어린이집 옆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부승민은 차 옆에 기대어 서 있었다. 정장은 그의 넓은 어깨와 가는 허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한 손을 차에 얹은 그의 포즈에 넓은 어깨를 돋보이게 해주었고 단단한 근육이 보일락 말락 했다.성인 남자의 매력이

  • 위태로운 제안   제201화

    온하랑이 웃으며 안전벨트를 풀고 조수석에서 내리더니 뒷좌석에 올라타며 말했다.“난 시아랑 뒤에 탈게.”“당신은 내 라이벌이에요!”쪼끄만 아이가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온하랑을 보며 진지하게 말하자 온하랑은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맞아, 난 네 라이벌이야.”그때, 부승민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았다.“...뭐라고?”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상대방에게 물었다.온하랑은 백미러로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보았다.전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부승민이 버럭 화를 냈다.“됐어! 핑계대지말고 일단 먼저 진정시켜. 내가 지금 갈 테니까.”전화를 끊은 그가 이어폰을 수납함에 던져넣었다.“무슨 일이야?”온하랑이 물었다.“뉴욕지사의 한 직원이 실수했나 봐. 내가 직접 가서 처리해야 할 것 같아.”부승민이 백미러로 온하랑을 보며 말했다.“얼마나 걸리는데?”“이틀. 넌 어떡하려고? 나랑 같이 갈래?”“연휴도 거의 끝나가는데, 난 먼저 강남시에 돌아가 있을게.”“알겠어, 도착하면 비서한테 너 마중 나오라고 할게.”“응.”“강남시가 어디예요?”옆에 있던 부시아가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듣고는 묻자 부승민이 웃으며 말했다.“시아 너, 삼촌이랑 말 안 한다고 하지 않았어?”“흥.”그러자 부시아가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삼촌한테 물어본 거 아니거든요. 숙모한테 물어본 건데.”온하랑은 부시아의 귀여운 행동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가 백미러로 부승민과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말했다.“강남시는 Z국에 있어. 시아 삼촌이랑 할머니의 고향이야. 이제 기회가 되면 할머니한테 시아 데리고 놀러 가 달라고 하면 되겠다.”부시아가 도도하게 말했다.“당연히 그래야죠.”부시아는 조금 전 자기 입으로 부승민과 얘기하지 않겠다고 한 건 다 잊어버린 듯 가는 길 내내 부승민에게 자신이 학교에서 겪었던 일을 재잘재잘 말했다.친해지면 말이 많아지는 스타일 인 것 같았다.부선월의 집에 도착한 후 온하랑은 부시

  • 위태로운 제안   제202화

    부선월의 집에서 밥을 먹은 후, 부승민은 온하랑을 호텔에 데려다주고는 바로 뉴욕으로 향했다.온하랑도 호텔에서 하룻밤 묵은 후, 다음 날 바로 강남시로 돌아갔다.추석 연휴의 여행이 이로써 끝이 났다.온하랑은 기사에게 연락하지 않고 대신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연락해 그녀를 마중 나와 달라고 했다.비행기에서 내린 그녀는 아주머니와 함께 병원으로 가 산부인과 검사를 받았다.그녀는 이제 임신 14주 차가 되었다. 초음파 검사에서 태아가 이미 어느 정도 자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의사가 옆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여기 보이시는 게 아기 손이고요, 이게 발이에요. 여기가 머리인데 아직 눈이랑 코는 잘 안 보이네요. 아기는 건강하고요, 발육도 잘 되었네요.”의사의 말은 들은 아주머니가 매우 기뻐했다.산부인과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을 나서려고 할 때 의사가 당부했다.“임신 기간에는 성관계를 절제하실 필요가 있어요. 태아 발육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온하랑이 얼굴을 붉히며 알겠다고 대답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주머니가 부승민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지만 온하랑은 묵묵부답이었다.집에 돌아온 후, 온하랑은 짐을 간단히 풀고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10월 7일부터는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온하랑이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누군가 급하게 노크했다.“들어오세요.”비서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며 말했다.“온 전무님, 밖에 지금 형사님 두 분이 와 계시는데...”비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형사로 보이는 두 사람이 온하랑의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신분증을 보여주었다.왼쪽에 서 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온하랑 씨 되십니까?”온하랑은 하고 있던 일을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네, 제가 온하랑입니다. 무슨 일이시죠?”“BX 그룹의 한 비서에게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누군가 상업 기밀을 유출했다는데 온하랑 씨에게 혐의가 있어서요

  • 위태로운 제안   제203화

    “알겠어요, 같이 가시죠.”온하랑이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그러자 형사 둘이 온하랑의 양쪽에 서서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그중 한 형사가 문밖으로 나서며 오상철에게 한마디 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오상철 부대표님. 저희가 꼭 확실하게 조사하겠습니다.”경찰서에 들어선 후, 온하랑은 핸드폰을 바친 뒤 심문실에 들어갔다.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경찰이 그날의 CCTV를 보며 온하랑에게 물었다.“온하랑 씨, 그날 왜 부승민 씨의 사무실에 들어간 거죠? 들어가기 전에 부승민 씨가 회사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알고 있었어요. 제가 부승민 씨의 사무실에 간 건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어요. 부승민 씨의 허락을 받았고요.”경찰이 그날 온하랑과 부승민이 나눈 대화 내역을 보며 말했다.“둘은 무슨 사이죠?”“부부예요.”경찰이 온하랑을 한번 보고는 심문실을 나갔고, 방 안에는 온하랑만 남게 되었다.온하랑은 그날 부승민의 허락을 받고 그의 사무실에 들어갔다는 걸 증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증명할 수 있는 건 그것뿐, 중간에 부승민의 사무실에서 혼자 있을 때 무슨 일을 했는지는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진짜 범인을 잡기 전까지 그녀는 혐의를 벗을 수 없었다.하지만 혐의와는 별개로 그녀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24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풀려날 수 밖에 없었다.문제가 있다면 24시간이 생각보다 긴 시간이라는 것이었다.심문실에는 의자와 책상만 있었다.온하랑은 의자에 기대 앉은 채 의자 손잡이에 팔을 대고 턱을 괬다.그 자세로 얼마 동안 있고 난 뒤, 온하랑은 일어서서 심문실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심문실 안은 그녀의 숨소리만 가득했고, 아무것도 없는 밀폐된 방에 할 일도 없이 혼자 있는 건 지루하고 약간 무섭기까지 했다.점심시간이 되자 한 경찰이 간단한 밥과 반찬, 그리고 물 한 병을 가져다주었다.온하랑은 입맛이 없었지만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해서 밥을 몇 입 정도 먹은 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

  • 위태로운 제안   제204화

    부승민을 따라 심문실을 나서던 온하랑이 계성진을 발견했다.그때, 부승민이 계성진의 곁을 지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여기는 알아서 처리해 줘, 우리는 먼저 가볼게.”“네.”온하랑도 계성진에게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했다.온하랑은 계성진과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가 BX 그룹 법무팀의 특채 변호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강남시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스타 변호사였다.온하랑은 계성진이 기밀 유출 사건의 조사 때문에 경찰서에 왔다가 그냥 온 김에 그녀를 빼내 준 것이라고 추측했다.온하랑이 부승민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뉴욕에 이틀 정도 있다 온다 하지 않았어? 왜 이렇게 빨리 왔어?”부승민이 어두운 눈으로 온하랑을 보더니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으며 어이없다는 듯웃었다.“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뭐 네가 진짜 안에서 밤이라도 새게 내버려 둬?”이틀은 그저 대략 예상한 시간이었을 뿐이고, 일을 일찍 끝낸 그는 바로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비행기가 착륙한 후 연민우가 남긴 메시지를 확인한 그는 바로 경찰서로 달려오며 계성진에게 연락했다.온하랑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오상철 부대표가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데 나도 어쩔 수 없었어...”그렇다고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부부라는 사실을 공개할 수는 없었으니까.“고집은.”부승민이 그녀를 약간 질책했다.“할아버지나, 작은삼촌이나, 혹은 부민재한테 연락해도 넌 당장 거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어.”다른 사람이었다면 경찰서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혐의에서 벗어났을 텐데 온하랑만 미련하게 그 안에 갇혀 한나절을 보냈다.그녀는 상류층에 속해 있으면서도 여전히 서민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이런 위치에 있으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온하랑이 회사에 금방 들어갔을 때 그녀가 부씨 집안 빽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자자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난 몇 년 동안 일에 더 매진해서 자기 능력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온하랑은 만약 그녀가 회사

  • 위태로운 제안   제205화

    “여보세요? 대표님? 대표님?”전화는 오상철에게서 걸려 온 것이었는데, 그는 부승민이 전화를 받은 후 아무 말도 없자 더 불안해졌다.그러다가 오상철이 세 번째로 부승민을 불렀을 때 전화기 저편에서 느릿한 대답이 들려왔다.“오상철 부대표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시죠?”부승민은 방을 나와 방문을 닫은 후에야 오상철의 부름에 답했다.“대표님 귀국하셨나요? 연 비서한테서 들었는데 직원의 부주의로 뉴욕지사에 일이 터졌다면서요? 그래도 대표님이 계셔서 문제가 커지기 전에 잘 수습되었다고 들었어요. 역시 우리 회사는 대표님이 없으면 굴러가질 못한다니까요.”오상철이 전화하자마자 갑자기 아부의 말을 쏟아내자 부승민이 예의상 웃어 보이며 말했다.“무슨 용건으로 전화하셨죠?”오상철은 그제야 전화를 한 진짜 이유를 말했다.“회사 기밀이 유출되었다는 사실에 제가 맘이 너무 급한 나머지 온 전무님을 의심했습니다. 저는 그저 회사를 위하는 마음에 그랬을 뿐 온 전무에게 사적인 감정으로 그런 게 절대 아니니 대표님이 대신 온 전무에게 말 좀 잘 해주실 수 있을까요.”부승민이 온하랑을 경찰서에서 빼낸 후 집에 데려오자마자 오상철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건, 오상철이 그를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오상철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면 온하랑에게 직접 전화했을 테지만 부승민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건 이번 일에 대한 부승민의 태도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겠지.만약 부승민이 이 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오상철은 걱정할 것 없이 평소처럼 지내면 된다.하지만 만약 부승민이 이번 일 때문에 오상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되었다면 늦기 전에 오해를 풀고 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나중에 부승민이 자신에게 복수하는 걸 방지해야 했다.“부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부대표님이 회사를 위하는 마음에 그렇게 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부대표님은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거잖아요. 온하랑 씨도 그 정도쯤은 알고 있으니 이해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말을

최신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1307화

    방안은 어두웠고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가끔 바깥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만 들렸다.설윤이 네 번째로 몸을 뒤척일 때 옆에서 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요?”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그녀의 고막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동철 씨도 잠이 안 와요?”“네.”최동철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내는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집안의 난방이 너무 커서인지 설윤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다치지 않은 발목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는데 조심하지 않고 최동철이 밖에 놓은 팔과 부딪혔다.피부가 닿는 순간 설윤은 재빨리 팔을 비켰으나 뜻밖에도 최동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의 손은 매우 컸다. 뜨거운 온도가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그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얼굴에 퍼지며 설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설윤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려고 힘을 썼지만 실패했다.“뭐 하는 거예요?”“보통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데, 한 번 시도해 보겠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설윤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 같았다.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그녀의 대답은 마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처럼 들렸다. 최동철은 그녀의 팔을 풀어주었는데 그녀가 손을 거둘 때 신속히 이불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공격적인 기운을 풍기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또 겁이 났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손끝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린 채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 놓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 그럼...”“조심할게요.”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서로의 눈 밑에는 빛을 볼 수

  • 위태로운 제안   제1306화

    설윤이 차례로 밖에 씌워져 있는 랩과 붕대를 제거하니 몇 바늘 꿰맨 상처가 드러났다.그녀는 알코올로 주변을 부드럽게 닦은 후 다시 연고를 꺼내 면봉으로 고르게 발랐다.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드러난 옆모습은 매끄러운 얼굴 라인을 자랑했다. 아마 스무 살 어린 나이어서인지 볼에는 젖살이 있어 통통했고 피부는 희고 섬세해서 모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거즈를 몇 바퀴 두른 후 설윤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다 됐어요.”“고마워요.”“별말씀을요.”설윤은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난 샤워하러 가고 싶어요. 욕실에 걸상 하나 놔줄 수 있어요?”최동철은 몸을 일으켜 동그란 걸상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다시 나오면서 그는 다치지 않은 팔을 내밀려 말했다.“부축해 줄게요.”설윤은 느릿느릿 침대로 옮겨 한 손을 그의 팔에 얹고는 다치지 않은 발을 먼저 땅에 대고는 절뚝거리며 화장실로 갔다.그녀를 안쪽 욕실로 데려다준 후 최동철은 샴푸 등을 욕실 벽에 있는 선반 위에 놓아주고는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아 주었다.설윤은 느릿느릿 옷을 벗었다. 속옷은 팬티는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빨면 곧 마를 수 있겠지만 마르기 전에는 그저...이틀 전에는 혼자 살아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곁에 남자가 한 명 많아졌다.그러나 씻지 않으면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두 장 더 사는 건데...’고민 끝에 설윤은 속옷을 빨았다. 다 빤 후 드라이어로 말리면 10분 정도면 다 마를 수 있었다.이때 설윤은 문득 최동철이 나왔을 때 머리를 말리지 않은 것이 떠올랐는데 보아하니 드라이어로 팬티를 말린 것 같았다.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설윤은 팬티를 씻고 말린 후 간단히 머리도 말렸다. 그런후 속옷과 팬티를 입고 목욕 수건을 둘렀는데 다행히도 이 수건은 충분히 길어서 가슴부터 무릎까지 감쌀 수 있었다.이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다 씻었어요?”“...네.”“그럼 제가 들어갈까요?”

  • 위태로운 제안   제1305화

    그녀의 최근 행동을 보면 물질, 환경, 품질 등에 큰 요구가 없는 것 같다."물론이죠."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도련님은 일반인에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설윤은 회억에 잠겨 말했다.“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이웃들이 그러는데 엄마 병은 고칠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찍 퇴원했기 때문에 병세를 끌어서 돌아갔다고 했어요.”엄마가 돌아간 후 집주인은 장례를 치러주고는 그녀를 보육원에 보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최동철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미안해요.”그는 그녀의 신원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문서에는 간단히 ‘6살 때 생모 병으로 사망’으로만 적혀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괜찮아요. 다 지나갔어요.”설윤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동철 씨는 돈이 싫으세요?”최동철은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최국환과 임가희와 암투를 벌였을까?“돈은 나에게 있어 숫자일 뿐이죠. 어쩌면 우리가 다투는 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에요.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력이죠.”최동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설윤은 아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최동철을 끌어들인 후 그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이렇게 허름한 곳에 왔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참았을 뿐이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겨울 날씨여서 그런지 금세 어두워졌다.저녁을 먹은 후 설윤은 또 얼음찜질하고 연고를 한 번 더 발랐다.발목 부기가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최동철이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며칠 동안 피해 살다가 드디어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 이르자 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어깨에 부상이 났다고 설윤이 일깨워주었지만 최동철은 신경 쓰지 않고 랩으로 상처를 감싼 후 씻으러 갔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어젯밤에 본 화면이 떠올랐다.넓은 어깨와 가슴,

  • 위태로운 제안   제1304화

    최동철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그런데, 젊은이. 아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 정말 잘 어울리네.”둘 다 잘생기고 아름다웠으니까.“저희는... 대학 동기입니다.”“그래? 몰라보겠어. 아내는 참 어려 보이는데 벌써 스물여섯이라니.”최동철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동안이라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스물여섯은 설윤의 가짜 나이였다.집주인은 작은 양념병을 들고 나와 최동철에게 건넸고 우유 두 병도 함께 내주었다.돌아온 후, 최동철은 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설윤에게 전했다.설윤은 웃으며 말했다. “동철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서로 잘 맞춰주니 완벽하네요.”최동철은 가볍게 웃으며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열었다.점심은 밥에 감자 볶음과 돼지고기였다.최동철의 요리 실력은 훌륭했다. 삼겹살을 바삭하게 볶아내 느끼함 없이 밥과 잘 어울렸다.다행히도 다친 쪽은 왼팔이라 오른손으로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으나 속도는 다소 느렸다.식사 후, 설윤은 다시 한 번 발목에 냉찜질을 했다.냉찜질을 끝낸 후 최동철이 약을 가져오자 설윤이 말했다. “제가 할게요.”“그래요.” 최동철은 순순히 응했다. 한 손으로는 불편했으니까.바쁜 대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외출할 수 없는 민박집 안, 두 사람은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설윤은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최동철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설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옆모습은 뚜렷한 이마선과 오똑한 콧대가 더해져 눈매가 깊어 보였고 날카로운 턱선이 또렷했다.정말 잘생겼다.그의 이목구비는 최국환과 약간 닮았다.하지만 나잇살이 들어 퉁퉁해진 최국환과는 달리 최동철은 참으로 젊었다. 눈빛 속에도 서른 살 남자의 단단함으로 가득했고 이는 세상 물정에 밝고 노련한 최국환과 완전 달랐다.잠시 머뭇거리던 설윤이 말했다. “동철 씨, 피곤하면 여기서 주무세요.”그의 키는 너무 커서 작은 소파에선 편히 쉴 수 없었다.설윤은 발목 부상

  • 위태로운 제안   제1303화

    최동철은 약품이 담긴 봉지를 찾아 안에서 멍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꺼냈다. 고개를 돌리니, 설윤이 느릿느릿 신발을 벗고 있었다.그는 연고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해줄게요.”신발과 양말을 벗자 뽀얗고 작은 발이 드러났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고 동글동글 귀여웠다. 발톱은 깔끔한 곡선을 이루며 정리되어 있었으며 발등의 뼈선은 유려하게 흐르며 섬세한 곡선을 그렸다.발목 근처에는 큼직한 멍과 부기가 올라와 있었다.최동철은 그녀의 발바닥을 받쳐 들고 부은 부위를 살짝 눌러보았다.“앗...” 설윤이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을 찡그렸다.“아파요, 누르지 마세요.”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이는데 내가 침대까지 옮겨줄 테니까 당분간은 움직이지 마요.”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그녀를 안으려 했다.“안 돼요!” 설윤은 급히 손으로 그를 막았다. “동철 씨도 팔 다쳤잖아요.”최동철은 몸을 숙여 다친 왼팔은 내리고 오른팔로 그녀의 다리 밑을 감싸 안았다. “두 손으로 내 목을 잡아요. 이쪽 팔은 힘을 쓰지 않을 거니까 안심해요.”한 손으로 안으려고?설윤은 그의 목에 양팔을 감고 조심스럽게 몸을 맡겼다.그는 오른팔로 그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두 걸음 만에 침대 곁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잠시만 기다려요. 집주인한테 얼음팩 좀 받아올게요.”“네.”최동철은 약 10분 뒤 얼음주머니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하나는 냉장고에 넣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발목에 살며시 대주었다.얼음의 차가운 감촉에 설윤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손으로 얼음주머니를 누르며 말했다.“너무 차가워요.”“20분은 찜질해야 해요.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로요.”설윤은 그에게 붕대를 가져와 얼음주머니와 발목을 단단히 감도록 했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둘 다 밖에 나가지 말죠. 배달 앱으로 장을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동철 씨,

  • 위태로운 제안   제1302화

    의사는 최동철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젊은이, 앞으로는 아내 말 잘 들어요.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여보, 들었지?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잖아!”최동철은 잠시 입을 말없이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어.”봉합이 끝난 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었다.병원을 나서며 설윤은 최동철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누가 데리러 와요?”최동철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짧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설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설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요.”그녀는 두 걸음 앞서 걸으며 말했다.“이 작은 도시는 꽤 조용하네요. 며칠 더 머물 생각인데, 동철 씨도 안 간다니까 같이 지낼까요? 서로 보호도 되고.”최동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호텔은 눈에 띄니까 단기 임대 민박을 찾는 게 더 안전하고 편리할 거예요.”“좋아요.”“근데 검색해 보니까 민박은 대부분 더블침대 방이더라고요. 괜찮으세요?”“설윤 씨가 괜찮다면 전 상관없어요.”“그럼 예약할게요.”최동철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온라인으로 예약할 거예요?”대부분의 예약 앱은 신분증 정보를 입력해야 해서, 한 번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설윤은 그의 걱정을 알아채고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이 폰은 제 이름으로 등록된 게 아니에요. 추적 못 할 거예요.”최동철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준비가 철저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임가희한테 이렇게 몰렸어요?”“임가희가 이렇게 빨리 제 존재를 눈치챌 줄 몰랐거든요. 그랬다면 좀 더 철저히 준비했을 텐데요.”최동철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먼 곳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그녀의 정보를 넘긴 장본인이 아니라는 듯이.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두 사람은 예약한 민박으로 향했다.민박은 단일 방 구조로, 면적은 47㎡. 방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오픈형 주방이 있고 가스레인지

  • 위태로운 제안   제1301화

    이튿날 아침, 최동철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패딩 점퍼에 청바지, 스니커즈, 그리고 새로 정리한 헤어스타일까지 더해지니 몇 년은 젊어 보였다. 게다가 넉넉한 핏의 패딩은 그의 체형을 자연스럽게 감춰주었다.“자, 마스크도 잊지 말고 쓰세요.”“네.” 최동철은 대답하며 책상 위의 마스크를 집어 썼다.지금 이 모습이라면 자세히 보지 않는 한 그를 알아보긴 어려울 터였다.최동철은 설윤이 입고 있는 패딩 점퍼를 힐끗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설윤은 웃으며 설명했다. “작은 가게라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어요. 그리고 커플룩이 신분을 숨기기에 더 좋아요.”“그렇군요.”“제가 먼저 내려가서 체크아웃하고 주변 상황을 살펴볼게요. 연락드리면 그때 내려오세요. 미리 택시도 불러놓을게요.”“알겠습니다.”“그럼 다녀오겠습니다.”“네.”설윤은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나갔는데 가방 안에는 두 사람이 입었던 옷이 담겨 있었다. 이곳에 그냥 두면 흔적이 남을 수 있어 길 가다 버릴 생각이었다.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설윤은 무사히 로비에 도착해 체크아웃을 마쳤다. 거리로 나서며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면서도 그녀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폈다.길 건너편 왼쪽, 작은 만두 가게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가게 앞에는 접이식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었고 그중 한 테이블에는 건장한 남자가 앉아 가끔씩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그 자리는 아침을 먹으며 호텔을 감시하기에 딱 좋은 위치였다.설윤은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는데 감시자는 그 남자 한 사람뿐인 듯했다.아마도 어젯밤 이들이 호텔 방마다 수색했지만 최동철의 흔적을 찾지 못해 속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한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주변을 수색하러 간 모양이었다.2분쯤 지나 설윤이 부른 택시가 호텔 앞에 도착했다.설윤은 최동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차 문을 열며 짐을 싣다가 말했다. “기사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 남편이 금방 내려올 거예요.”“네, 알겠습니다.”설윤은 다시 로비로 들어갔다.1분쯤

  • 위태로운 제안   제1300화

    최동철이 말했다.“그럼 내일 병원에 다녀와야겠어요.”“제가 도와드릴게요.”약을 다 바른 뒤, 설윤은 그에게 거즈를 감아주며 말했다. “됐어요, 이제 좀 쉬세요. 전 잠깐 나갔다 올게요.”“어디 가려고요?” 최동철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임가희 쪽 사람들이랑 마주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요.”“필요한 물건을 좀 사야 하거든요. 걱정 마세요.” 설윤은 가볍게 비웃으며 말했다. “그 인간들 손아귀에서 도망쳐 나온 제가 다시 잡힐 것 같아요?”최동철은 그녀가 방금 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을 힐끗 보며 물었다. “왜 아버지한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 거예요?”“이미 기회를 놓쳤어요. 제가 뭐라 해도 믿지 않을걸요?”“그럼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아요?”“당연히 괜찮지 않죠.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어요. 기회만 생기면 반드시 다시 돌아갈 거예요.”“성공하길 바라요.” 최동철이 씩 웃으며 말했다. “돈은 있어요? 부족하면 제 카드를 써요.”설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럼 조금만 써도 돼요?”돈이야 많을 수록 좋은 법이니까.최동철은 벽에 걸린 외투를 가리켰다. “지갑은 저기 외투 주머니에 있으니까 직접 꺼내요. 현금은 많지 않지만 블랙카드는 비밀번호가 필요 없어요. 사람이 적은 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을 거예요.”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니 고급 가죽의 촉감이 손에 닿았다.“얼마든지 뽑아도 괜찮아요?” 그녀가 돌아보며 물었다.“물론이죠.”“최 대표님, 참 후하시네요.”“제 목숨은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까요.”설윤은 밖으로 나갔다.최동철은 항생제를 먹고 씻은 뒤 침대에 누워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곤했던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깨어났다.시계를 보니 벌써 열한 시였다.설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최동철이 일어나 그녀를 찾으러 갈까 고민하던 찰나, 설윤이 돌아왔다. 그녀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늦었네요. 위험한 일은 없었어요?”“없었어요.” 설윤은 고개를 저으며

  • 위태로운 제안   제1299화

    최동철은 그 말을 듣고 샤워기를 틀었다.설윤은 간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그 위에 놓인 칼을 가렸고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걸어가 문을 여니 예상대로 복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는 방 안을 힐끗거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키우는 햄스터가 실수로 도망쳤는데, 혹시 보셨나요?”설윤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방금 밖에 나갔다 와서요. 잘 모르겠네요. 남편한테 물어봐 드릴게요.”그녀는 욕실 쪽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혹시 햄스터가 들어오는 거 봤어?”샤워기에서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설윤은 욕실 문을 살짝 열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여보, 작은 햄스터가 들어온 거 못 봤어?”몇 초간 침묵이 흐른 후, 그녀는 머리를 빼고 남자에게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못 봤대요. 다른 곳도 한번 찾아보세요.”“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남자는 의심 없이 돌아섰다.최동철처럼 몸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숨겨줄 이는 남자일 수밖에 없었다.설윤은 차분히 문을 닫고 귀를 문에 붙여 조심스럽게 소리를 들었다. 남자가 정말로 떠났음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욕실 문을 열며 말했다. “갔으니 나와요.”그리고 테이블로 가서 비닐봉지 안에서 약들을 꺼냈다. “자요, 여기 이 약들이 충분한지 확인해봐요.”최동철은 뒤에서 걸어나와 약의 종류와 양을 살펴봤다. “고마워요.”“별말씀을요.” 설윤은 생수를 주전자에 붓고 버튼을 눌렀다. “제가 약 발라줄까요?”“그럼 부탁할게요. 고마워요.”최동철은 잠시 망설였으나 곧 수락하고 천천히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그가 왼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자 설윤이 다가가 도와주었다. 그녀는 그의 겉옷을 벗기고 벽걸이에 걸었다.안에는 짙은 회색 니트가 있었고 상처 부위는 터져 피로 얼룩져 있었다. 니트를 벗으려면 팔을 들어야 했기에 설윤은 그의 어깨 상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잘라낼까요? 이 옷은 이미 알아본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