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군작은 계획적이고 주도면밀 했다. 자신이 진몽요의 아이를 직접 지우지 않고 경소경이 직접 그 아이를 지우게 만들려고 했다. 방금 그 말들은 충분히 경소경을 자극시켰고, 경소경의 아이가 아니라는 걸 인지시켰다. 남자들은 이런 일들을 참을 수 없었다. 방금 이 장면을 본 아택은 속으로 두려웠다. 그는 예가네 어르신 사람이고 비록 지금은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어르신도 모셔야 하니, 만약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어쨌든 두 사람 중 한 명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에 어떻게 해도 죽은 운명이었다. 둘 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게다가 요즘은… 어르신의 연락이 잦아졌다.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아택은 예군작의 휠체어를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예전보다 회사 분위기는 더 긴장감이 넘쳤다. 예군작은 이런 분위기를 눈치챘고, 사무실 문이 열리자 그는 당황했다. 어르신이 나타났다… 그것도 사전에 말도 없이… 아택은 예가네 어르신을 마주한 순간 몸이 그대로 굳었고 예군작의 휠체어를 밀었다. “어르신.” 예가네 어르신은 이미 나이가 많아서 머리도 하얘졌고, 지팡이를 쥐고 있던 손은 빼싹 마르면서도 주름이 가득한 얼굴은 더욱 그를 진지해 보이게 만들었기에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비록 나이가 많지만 젊었을 때의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고 늙었을 뿐이지 체격도 괜찮았다. 어르신은 혼자 오지 않고 예전처럼 주변에 경호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줄을 맞춰서 선 경호원들이 최소 10명은 넘어보였고, 누가보면 손자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사채업자 같았다. “군작아, 요즘 일을 너무 크게 벌리는 거 같은데, 땅을 그렇게 많이 사서 뭐하려고? 돈도 많이쓰고, 넌 우리 예가네 돈이 땅 파면 나오는 것 같니? 우리 예가네에 너 같은 망나니는 없었어! 켁켁켁…” 어르신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심한 기침을 했고, 옆에 있던 예가네 집사가 그의 등을 토닥였다. 예군작은 무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지금 쓴 돈 결국 나중에
예군작은 차갑게 말했다. “예전에는 제가 죽을 때까지 모셔 드리는 거 그렇게 싫어하셨던 분이, 지금 과거의 마음가짐은 다 잊으셨어요? 이제라도 다친 손자가 노후를 책임져 주길 바라시나 보죠? 이미 늦으셨어요. 아들들은 이미 다 죽었고 이제 저 혼자만 남았으니까요. 저 시간 없으니까 경호원들이랑 노세요. 다른 용건 없으시면 제 시간 뺏지 마시고요.” 어르신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너…!” 아택이 말렸다. “어르신, 도련님이 이쪽에서 다 잘하고 계십니다. 회사도 잘 운영되고 있고, 제도에 온지 얼마 안되셨는데도 큰 성과들을 이루셨으니 너무 염려 마세요.” 어르신은 아택을 응시했다. “그래, 그럼 네 도련님 잘 보필하고 난 먼저 가마.” 아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을 했고 혹시 뭐라도 들켰을까 봐 겁이 났다. 그가 예군작을 잘 보필하라는 말은 결국 잘 감시하라는 말과 같은 걸 알고 있었다. 앞에는 늑대 뒤에는 호랑이가 있으니 그는 뭘 해도 마음이 불편했다. 어르신이 나간 후, 아택은 사무실 구석구석을 들춰봤다. “도청기 없습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되겠어요.” 예군작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 의심하는 거 아니겠지? 이렇게 갑자기 말도 없이 나타나고 말이야.” 아택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르신은 늘 저한테도 말이 없으시지만, 아까 들킬 만한 요소가 전혀 없으셨어요. 예전 도련님도… 이렇게 말하셨었으니까요.” 예군작은 손을 흔들었다. “내려가 있어. 노인네 그쪽 조심하고, 사소한 행동까지 잘 지켜봐. 이왕 제도에 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겠지. 앓아 누운 줄 알았는데 침대에서 다시 일어나다니 생명줄 한번 끈질기네.” 경가네 그룹. 대표 사무실 안, 경소경은 의자에 기대어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채 예군작이 했던 말을 되뇌었다. 예군작이 진몽요의 임신 기간을 그렇게 잘 알고 있고, 그에게 일부러 말해준 걸 보니 그 말의 의미는 충분히 그에게 전달되었다. 예군작이 정말 진몽
진몽요는 마음이 복잡해졌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던 건 맞지만 아이를 지울 생각은 없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기뻤고 특히 온연의 아이가 귀여웠던 걸 생각하면 그녀도 아이가 갖고 싶었다. 그녀의 계획은 출산 임박했을 때까지 일을 하고 휴직을 한 뒤, 다시 아이를 낳고 복직 할 생각이었지 아이를 지우고 싶지 않았다. “난 아이 안 지울래요, 내 커리어에 문제될 거 없다고 생각해요.” 경소경은 살짝 망설였다. “내 말 듣고 그냥 지워요.” 이때 진몽요는 그가 그녀를 위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고 마음이 식었다. “대체 왜요? 나한테는 이유는 말해 줘야죠. 난 그냥 아무 것도 모른 채 아이를 지울 수 없어요. 결혼하기 싫으면 결혼 안 해도 돼요. 나 혼자서도 일하면서 아이 키울 수 있지, 꼭 당신이 먹여 살려야 되는 건 아니에요!” 그는 미간을 주물었다. “아침에 예군작 만나서 그 뱃지 돌려주고 왔어요.” 그는 많은 말을 생략하고 그 안에 의미를 함축시켰다. 그는 그녀가 알아듣길 바라며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진몽요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가득했다. “아, 직접 돌려줬어요? 그래서요? 그게 아이 지우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설마 아직도 우리 둘 사이에 뭐가 있거나 아이가 그 사람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경소경은 아무 말이 없었기에 인정하는 꼴이었다. 진몽요는 너무 화가 나서 웃었다. “알겠어요, 알아들었어요. 그래요, 그럼 우리 화해했던 거 없던 일로 해요. 나 이 아이 못 지워요. 그냥 낳아서 혼자 키울 거예요. 나 그 정도 능력은 돼요. 다른 일 없으면 전화 끊어요. 근무중이라 한가하게 전화 못 해요.” 그렇게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태도에 옆에 있던 에이미는 놀랐다. “대단하네요,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고 차가워요? 임신했어요? 남자 친구랑 전화한 거죠? 누구예요 그 남자?” 진몽요는 뒤돌아 울었다. “매정하고 차갑긴요? 속상해 죽겠어요! 경소
만난 다음, 진몽요는 훌쩍이며 물었다. “어떻게 혼자 왔어? 콩알이는? 집에 혼자 두면 걱정도 안돼?” 온연은 마음이 안 좋았지만 티 내지 않았다. “걱정 마, 아빠가 옆에 있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 마침 여기서 너랑 며칠 놀다 가면 딱이네. 너랑 경소경씨는 어떻게 된 거야?” 진몽요는 울먹였다. “그 사람은 예군작 아이라고 생각하나 봐. 그래서 지우래. 내가 화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어. 진짜 짜증나… 흑흑흑…” 온연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이고, 울지 마. 임산부는 울면 안돼. 지금 네가 속상한 걸 아이도 다 느끼고 있을 거야. 거짓말 아니고 정말로. 의심이 제일 큰 적이지. 두 사람 사이의 신뢰를 깨트릴 수 있는 거니까. 지금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너가 경소경씨랑 잘 대화를 하면서 아이가 그 사람 거라고 확신을 주거나, 나머지는 유전자 검사로 증거를 보여주는 거지. 아이는 지우지 마. 두 사람의 문제로 죄 없는 아이를 지우는 건 너무 하잖아.” 진몽요는 점점 안정되었다. “사실 너 오기 전에 아이 지워야 되나 싶었는데, 네 말대로 아이는죄가 없네. 나랑 경소경씨 문제 때문에 생명을 잃는 건 아닌 것 같아. 대화는 할 것도 없어. 이미 대화가 안 통하고 있거든. 그 의심병은 절대 못 고칠 것 같으니 유전자 검사가 답이네. 근데 아이도 안 낳았는데 검사를 어떻게 하지? 아이를 낳고 난 다음에 검사를 해야되면 그때까지 그 사람 의심병에 내가 화병 나서 죽을 것 같아.” 에이미가 끼어들었다. “안 낳아도 할 수 있어요. 근데 임신 3개월이상이어야 하고, 16주에서 27주차쯤이 제일 정확할 거예요, 제일 안전하기도 하고요.” 온연은 그제서야 책상 뒤에 ‘숨어’있던 에이미를 발견했다. 컴퓨터에 가려져 있어서 들어올 때 보지 못 했다. “에이미님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방금 말하신 그 방법 저도 같은 생각이었거든요. 요즘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달돼서 위험요소도 크지 않고, 필요하면 충분히 할 수
그는 핸드폰을 몇 번이나 들었다가 다시 내려 놓고를 반복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혹시 전원이 꺼져 있어서 괜히 기분이 상할까 봐 차라리 참는 게 나았다. 너무 그녀에게 의존하는 그런 익숙함을 버리고 싶었다. 갑자기, 사무실 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오피스 룩을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묶은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쁜 젊은 여자가 걸어 들어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부장님께서 파일 전달하라고 시키셨는데 아드님께서 깨실까 봐 노크 안 했습니다. 파일은 책상에 올려 두고 가면 될까요?” 목정침은 고개를 끄덕이고 작게 말했다. “두고 가세요, 시간 되면 볼게요.” 말을 하면서 그는 여직원이 들어올 때 하이힐을 벗어 손에 들고 온 걸 발견했고 이 층 전용 슬리퍼도 신지 않았다. “입구에 신발장 있어요. 거기 슬리퍼 있는데.” 여직원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제가 잘 몰라서요. 들어 온지 얼마 안된 인턴이거든요. 다음부터 신고 오겠습니다. 데이비드님이 안 계서서 제가 대신 왔는데… 죄송합니다.” 목정침은 화 내지 않았고 이 여직원에 세심함에 반감이 들지 않았다. “그래요, 일 없으면 나가봐요.” 여직원은 미소를 유지하며 소파에서 잠든 아이에게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사무실 에어컨 바람이 차가워서 감기 걸리실 거 같아서요. 제 동생이 저보다 많이 어려서 제가 많이 돌봐줬었거든요. 동생 키운 경험이 있어서 대표님께서 바쁘시면 저한테 맡기셔도 돼요. 제 이름 서여령이예요. 솜 서 자요.” 목정침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서여령은 더 있지 않고 천천히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 오후, 중요한 회의가 있었는데 아이는 잠에서 깨어 칭얼거렸다. 그는 난감했고 데이비드도 아이를 달랠 줄 모르던 찰나에 서여령이 생각나 한번 맡겨 보고 싶었다. 만약 서여령이 아이를 잘 돌 본다면? 당분간 좀 맡기면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는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서여령이라는 인턴 불러와.” 데이비드는 얼른 그녀를 찾으러 갔고 서여령은 금방 왔다. 그리
목정침이 도저히 불안해서 회의를 오래 하지 않았다. 최소 2시간짜리 회의는 1시간만에 끝났고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은 다 생략됐다.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울지 않았고 서여령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아이는 무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비록 즐거워 보이진 않았지만 울지 않은 게 중요했다. 목정침은 안도하며 다가갔다. “아이 진짜 잘 보나 봐요. 예전에 애 엄마 말고 콩알이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서여령은 그가 돌아오자 살짝 겸손 해져 한쪽으로 비켰다. “콩알이요? 별명인가요? 너무 귀엽네요.” 목정침은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엄마가 지어준 거예요. 진짜 이름은 목성언이예요.” 서여령은 그를 보며 눈을 꿈뻑거렸다. 회사 사람들은 그가 웃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가 웃는 모습은 참 잘 어울렸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 모습은 소문처럼 무섭지도 않았고, 마치 저녁 하늘 속에 별처럼 빛났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녀는 칭찬을 했다. “작은 도련님 이름 너무 잘 지으신 것 같아요. 대표님이 사모님 엄청 사랑하시는 것도 눈에 보이고요.” 목정침은 온연을 떠올리자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금 그 여자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가 말이 없자 서여령은 바로 나가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목대표님은 저를 잊으신 것 같은데… 저는 기억하고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목정침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우리가 구면인가요?” 서여령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밝게 웃었다. “아니요… 그때 제가 학교 다닐 때 집안 상황이 안 좋았었는데 대표님께서 후원해 주셨었어요. 후원해주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 기억은 못 하시겠죠. 그래서 제가 졸업하자마자 이 회사로 왔어요. 대표님 이 후원하신 금액이 헛되지 않게 제가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예전에 후원했던 사람? 그는 의심을 풀었다. 확실히 그가 후원했던 사람은 많았고, 매달 마다 서명하는 종이만 해도 그렇게 많으니 ‘서여령’이라는 이름을 기억
안야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 했고, 그저 할아버지와 손자가 친하지 않다는 것만 느꼈다. ”네, 그럴게요. 두 분이서 얘기 나누세요.” 예가네 어르신은 아택을 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얘기하자. 너도 사생활을 여자한테 다 들키긴 싫을 테니.”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어르신… 뭐가 궁금해서 오신 건가요? 제가 결혼한 일까지는 귀찮으실 거 같아서 말씀 안 드렸을 뿐입니다. 크게 할 생각도 없었고요…” 예가네 어르신은 불 같이 화를 냈다. “네 여자가 이미 아는 건 나한테 다 말했어! 내가 진짜 할아버지인 줄 알고 의심하지 않더구나. 언제까지 나를 속일 생각이었니? 감히 날 배신해? 잊지 마, 넌 내가 없었으면 오늘의 너도 없었어.” 아택은 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안야씨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제발 노여움을 베푸시고 저 여자는 건들지 말아주세요. 사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르신은 침대에 앉았다. “딱 한번 기회 더 줄게. 예군작이 하고 있는 거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해. 내가 아직 살아 있으니 예가네 주인은 절대 그 애가 될 수 없어!” 아택은 인상을 찌푸리고 잠깐 망설였다. 어르신이라고 예군작보다 인자한 사람은 아니었고, 만약 어르신의 화를 돋군다면 오늘 밤 그와 안야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의 예상이 맞다면 경호원들이 지금 이 근처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엔 예군작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는 일부만 털어놓았다. “도련님이 제도에 온 뒤로 진몽요라는 여자를 가까이하셨습니다. 도련님 말로는… 그 여자분을 사랑한지 3년이나 됐다고 하시는데… 그거 외에는 땅 구매하신 거랑 진몽요의 약혼남과 대치중인 상황 밖에 없습니다.” 어르신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예가네 결혼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줄 아나보지? 아무나랑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어림도 없지! 그 여자 어떤 사람인지 내가
예군작 쪽에서 물건을 부시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내가 한말만 기억해. 난 노인네보다 인자하지 못 하니까 네 처신 똑바로 해!” 전화를 끊고 아택은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안야에게 말했다.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가 봐야겠어요. 아마 며칠동안 못 올 거 같아요. 알아서 몸 잘 챙기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지 말고 문자로 해요.”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국수… 안 먹어요?” 그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없어서요. 그쪽이 먹어요.” 강남구. 퇴근 후 진몽요와 온연은 근처 포장마차에서 밥을 먹었고 두 사람 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진몽요는 경소경 때문에, 온연은 목정침 때문에 짜증이 나 있었다. 갑자기, 진몽요는 예군작의 문자를 보냈다. ‘당분간 외출할 때 조심해요. 혼자 다니지 말고요.” 그녀는 의아해서 문자를 온연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무슨 뜻이야? 내가 왜 조심해야 되지? 혼자 다니라고 하는데… 나 누구한테 찍혔나? 괜히 무섭네…” 온연은 문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글쎄, 근데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마침 나도 있으니 혼자는 아니네.” 진몽요는 별 생각 없이 느릿느릿 답장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문자를 보내고 그녀는 핸드폰을 옆에 올려두었다. “너 호텔 가지 말고 우리 집 가서 지내자. 어차피 예전에도 우리 한 침대에서 같이 잤으니까 숙박비도 아끼고 좋지.” 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따가 체크아웃 해야겠네. 중요한 건 너가 혼자 있으면 안될것 같아, 경소경씨랑 바로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이곳에 올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예군작은 또 이런 이상한 문자를 보냈으니 내가 너랑 같이 있는 게 좋겠어.” 잠시 후, 예군작의 답장이 왔다. ‘이유 없어요, 그냥 내 말 믿고 내 말 들어요. 당분간 연락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핸드폰 화면을 보며 의심했다. 예전에 그녀가 연락을 끊고 싶었을 때는 그렇게 해주지 않았는데, 지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