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집사는 집으로 따라 들어갔고 진함도 함께 들어왔다. 진함이 이곳에 도착하자 마침 문 앞에서 임집사와 마주쳤다. 온연은 아이를 안고 마중을 나갔다. “외할머니야, 인사해야지.” 진함은 아이를 보며 따스한 눈빛을 보냈고, 온연이 싫어할까 봐 안지는 않았다. “정말 예쁘네. 얼굴은 너랑 닮았는데 표정은 정침이를 닮았네.” 온연은 웃었다. “앉으세요, 오늘 어떻게 시간 내서 오셨어요?” 진함은 거실 소파에 앉아 유씨 아주머니한테 물을 받고 감사인사를 전한 뒤 대답했다. “일하러 잠깐 근처에 왔다가 지나가는 길에 들렀어. 이 시간에 너가 집에 있을 거 같아서 왔어.” 온연은 지나가던 길이라는 말에 속지 않았다. 목가네가 대로변에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지나칠 수가 있을까? 매번 이렇게 우연히 지나칠 수는 없었다. “다 잘 되고 계시죠? 회사는 어때요?” 진함은 멈칫했다. “나쁘지 않아. 우리 회사는 작아서 목가네랑은 비교가 안되지. 밥 먹고 살 정도는 돼. 너도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놓이네.” 두 사람이 앉아서 수다를 떠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진함은 자주 해외출장을 나가서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봤을 테니 말 수가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온연 앞에서만은 어쩔 수 없었다. 온연은 원래부터 말이 없어서 당연히 침묵했다. 잠시 조용하다가 온연은 일어나서 아이를 진함에 품에 안겼다. “저 화장실 좀 다녀 올게요, 잠깐만 아이 좀 봐주세요.” 진함은 품 속에 아이를 보며 어쩔 줄 몰랐다. “어… 그래.” 그녀는 아이를 못 안아 본지 한참이 되서 혹시라도 힘이 줘서 아이가 숨을 못 쉴까봐 동작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온연이 한참을 오지 않자 그녀는 점점 긴장을 풀었고 자세히 아이를 관찰했다. 뽀얀 피부에 눈은 엄청 큰 편은 아니지만 살짝 길쭉했고, 작은 콧등도 귀여웠으며 젖살만 빠지면 턱도 꽤나 뾰족할 것 같았다. 피부는 태생부터 하얘서 사람들의 칭찬을 많이 받을 것 같았다.
온연은 목걸이를 뺏으려 했으나 아이 손은 꼭 집게발처럼 아무리 힘을 줘도 놓지 않았다. 그녀는 더 세게 힘을 줄 수 없어서 포기했다. “어휴, 뺏기 너무 힘드네. 질릴 때까지 갖고 놀게 둬야겠어요. 맞다… 그… 강연연은 어떻게 지내요?” 그녀는 강연연을 언급하기 싫었지만 진함과 딱히 나눌 얘기가 없었다. 진함은 그녀가 직접 강연연 얘기를 꺼낼 줄 몰라 살짝 당황했다. “해외에서 공부중이야. 이제야 얌전해졌어. 나도 이제 마음이 좀 놓이고. 내가 그쪽에 홈스테이 찾아줘서 그 집 사람들이랑 연락도 자주하고 소식도 다 알아. 걔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딸이라고 인정해 줘야지. 물론 다시는 걔가 너랑 정침이 앞에 나타나게 안 할 거야. 나는 끊어낼 수 없는 관계지만 넌 그럴 수 있잖아.” 온연은 은연중에 자신이 진함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예를 들어서 판단을 빨리 한 후 단호하게 결정하는 성격 말이다. “네, 저는 그 애랑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예요. 이게 제 마지막 자비니까요. 걔가 지금까지 한 행동들을 생각하면 가만두고 싶지 않아요. 저는 혈연관계를 중요시하지 않거든요. 특히 의복동생이라면 더요.” 진함은 웃었다. “이건 너랑 네 아빠랑 완전 반대네. 오히려 나랑 더 닮았어. 네 아빠처럼 따듯한 사람은 나 같은 차가운 여자를 만나면 안됐었는데. 사람의 인생은 번복할 수 없다는 게 아쉽지. 자신이 죽을 때까지 괴로워도 되돌릴 수 없으니.” “후회한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깐요.” 온연은 진함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맞아, 되돌릴 수 없지.” 진함은 왠지 씁쓸해 보였다. 모녀가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 분위기가 싸해진 적도 많지만 점점 익숙해져 갔다. 잠시 후 진함이 말했다. “이만 가봐야겠어, 괜찮으면 다음에 또 지나가다가 들를게.” 온연은 아이를 다시 안았다. “지나가는 길에 말고 앞으로 오고 싶을 때 그냥 오세요. 미리 전화만 주시고요. 가끔 집에 없을 때도 있거든요. 제가 핏줄을 중요시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 세
목정침의 입꼬리는 슬슬 올라갔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설마… 내가 직접 찾아야하는 건 아니죠? 네? 그런 쉬운 방법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어요. 내가 여기서 묻는 이유는 결과를 원하고 그걸 달성하는 과정을 보여 달라는 건데 지금 내 의견을 묻는 건가요? 그렇게 기본적인 판단도 못해요? 그래요. 이 회사의 미래가 참으로 캄캄하네요.” 젊은 직원은 앞에 있던 서류를 빠르게 정리했다. “제가 지금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다음에는 꼭 대표님이 원하시는 대답을 갖고 오겠습니다!” 목정침은 미간을 주물렀다. “다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이 있으면 마음 놓고 실천해 볼 수 없어요? 내가 동의할 수도 있잖아요? 뭐든지 내 허락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머리 좀 써요. 내가 듣고싶은 건 ‘제가 비슷한 사이즈의 땅을 찾았습니다, 이 땅으로 대체할까요?’ 이 말이지, 나한테 찾으러 갈지 말지 묻는 게 아니라고요. 알겠어요 다들? 오늘 회의는 여기 까지예요!” ...... 아파트. 안야는 세심하게 아택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예군작이 한 결정 때문에 그녀는 아택과 묶여졌고, 그녀는 아택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예군작에게 그가 이곳에 와서 몸을 회복할 수 있게 부탁했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녀는 오직 아택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됐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저를 왜 도와주신 거예요? 이렇게 될 줄 아셨으면서, 왜…” 아택은 통증을 참으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도와준 거 아니에요. 어차피 예군작은 저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어요. 그 분은 제가 그 분이 시키는 일을 하길 바라지만 저는 예가네 어르신 사람이라, 예군작의 감시용 사람이거든요. 예가네 집안 일은 복잡해서 설명해도 모를 거예요. 까딱하면 목숨이 걸려 있으니 전 이미 적응됐어요.” 안야는 그를 떠봤다. “그럼… 이제 정말 예군작을 위해 일하실 건가요? 그럼 그 어르신이 가만히 있을까요?” 아택은 잠시 침묵했다. “앞 날은 길게 봐야 하잖아요. 어른신은 이미
아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여기서 같이 사는 것도 괜찮네요. 안방도 두개 있고, 제가 가끔 오기 딱 좋을 거 같아요. 나가서 일할 필요도 없어요. 제가 그동안은 먹여 살릴 수 있으니 아이 낳고 다시 얘기해요. 비록 우리가 미래는 없지만 제가 아이 아빠니까 제 말대로 해요. 같이 안 사는 거 빼고는 다 다른 부부들처럼 해요.” 안야는 마음이 왠지 모르게 공허했고 처음으로 아택을 정면으로 보자 갑자기 경소경에 대한 집착이 확 식었다. 그 순간, 그녀는 아택과의 관계가 서로 원하는 진실된 관계이길 바랐고, 완벽한 가정을 꾸리길 바랐지만 이 모든 건 아쉽게도 다 거품이었다. 이러한 압박감에 그녀를 숨을 쉴 수 없었다. “그… 거즈를 다 써서, 필요한 것 좀 더 사 올게요. 상처가 빨리 낫진 않을 거 같아요.” 그녀는 황급히 집에서 나와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약국에 도착하자 그녀는 익숙한 그림자를 보고 당황해서 뒤돌았지만 목소리를 듣고 멈췄다. “거즈는 왜 사요? 어디 다쳤어요?” 그녀는 발 걸음을 멈추고 아무렇지 않게 임립을 보았다. “아니요, 혹시 몰라서 사려고요. 뭐 사러 오셨어요?” 임립은 자연스럽게 계산대에서 계산을 했다. “손가락이 긁혀서 밴드 사러요.” 안야는 대화를 이정도 밖에 이어가지 못 했고 임립이 자신에게 인사를 건넸다는 것 만으로도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사치였다. 게다가… 만약 아택이 그 집에 있는 걸 임립이 알게 된다면 비밀을 숨기기 힘들 것이다. 그녀가 이사를 가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아파트가 임립네 회사와 너무 가까워서였다. 그녀는 그에게 뭐라도 들킬까 두려웠지만 아택이 이사 가게 두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임립이 나간 뒤 그녀는 그제서야 필요한 물건들을 다 사고 계산을 했다. 이것저것 사다 보니 총 4만원정도 나왔지만 그녀는 딱 계산할 돈만 있는 걸 보고 정말 자신이 가난해짐을 체감했다. 집에 돌아온 후 그녀는 아택이 침대에서 일어나 옷 갈아 입고 나가려는 모습을
그랬다. 그 편지는 예군작이 온지령 부부를 시켜 온연에게 보낸 거였고, 온호를 납치한 것도 그의 부하였다. 아택은 망설이다가 카드를 받았다. “너무 크게 움직이시면 어르신이 의심하실 겁니다.” 예군작은 살짝 웃었다. “뭘 의심해? 의심이라… 내가 자기 손자 예군작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고 의심하는 건가? 노인네가 의심하는 거야 네가 의심하는 거야? 만약 내가 진짜 예군작이 아니라면?” 아택은 더 깊이 고개를 숙였고 아무런 감정 없는 로봇처럼 대답했다. “제 눈엔 도련님은 도련님이시지 다른 건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건 어떤 행동을 하셔도 변함없습니다.” 예군작은 기분이 꽤나 좋아보였다. “하하, 난 이래서 네가 좋아. 내가 널 곁에 두는 이유이기도하고. 그 안야는 머리가 나쁜 거 빼고는 얼굴도 괜찮으니 진짜 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택은 덤덤하게 말했다. “저 같은 사람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짐을 덜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싶습니다.” 예군작은 그의 솔직함에 놀랐다. “너는 예가네 사람들보다 인성이 훨씬 낫네. 멋지네. 내가 약속할게, 내가 원하는 일을 다 이루면, 안야 뿐만이 아니라 너의 자유도 돌려주겠다고. 그런데, 예가네 직원들이 원래 알던 예군작이랑 나랑 닮았나?” 아택은 빠르게 예군작을 훑어봤다. “네, 비슷하시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습니다. 수술까지 하셨으니 다른 사람이 의심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예가네 분들도 도련님을 만나본 사람이 많이 없고 … 요즘은 가족분들이 많이 돌아가셔서 어르신만 잘 아실겁니다.” 어르신만? 예군작은 생각에 잠겼다. “알려줘서 고마워, 주의할게. 일 열심히 해, 몸에 상처도 많으니까 사람들 더 데려가고. 난 네 일 처리 실력을 믿어. 어서 가봐.” ...... 저녁 8시가 넘은 시간, 목정침은 피곤한 모습으로 목가네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지친 그의 모습을 보자 온연은 아이가 자고 있을 때 그에게 목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절대 안으로 들어가지 마, 근처에서 숨어 있어. 절대 그 사람들한테 들켜선 안돼. 주소 알려줘, 금방 갈게!” 온호는 손을 떨면서 알겠다고 말했고, 전화를 끊은 뒤 온연은 황급히 욕실로 올라갔다. 그녀는 부끄러워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온호 그 쪽에 무슨 일이 생겼나 봐요. 예전에 납치했던 사람들이 그들이 잠깐 머물고 있는 호텔에 침입한 거 같은데 좋은 목적은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이 얼른 사람들 데리고 가봐요. 무슨 일 생길까 봐 걱정돼요! 배후에 있는 사람이 전지인지 아닌지 당신도 궁금했잖아요. 그럼 서둘러요, 지금 목욕할 시간이 아니에요!” 목정침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욕조에서 일어났다. “옷 좀 준비해줘, 난 임집사님 불러올게.” 온연은 뒤돌아 드레스룸으로 들어갔고 아무 옷이나 건넸다. “우선 옷부터 입어요, 임집사님 내가 불러 올게요. 지금 집에 경호원들 많으니까 이제서야 왜 당신이 이렇게 많이 고용했는지 알겠네요. 오늘 좀 써먹어야겠어요.” 목정침은 느긋하게 옷을 입으며 물었다. “넌 그럼 내가 괜히 돈 쓰려고 세워 둔 줄 알았어?” 그의 동작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직접 단추를 잠궈주었다. “좀 서둘러요, 우리가 갔을 때 아무도 없으면 안되잖아요!” 그는 답답해했다. “서두를수록 더 실수하는 법 몰라? 옷은 당연히 천천히 입어야지, 혹시라도 거꾸로 입어서 남들이 비웃으면 어떡해? 나만 갔다올게, 넌 집에서 애 보고 있어.” 온연은 거절했다. “집에는 아주머니 계시잖아요, 난 무조건 갈 거예요. 그러니까 말리지 마요.” 목정침이 신경 쓰는 것들을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속엔 그는 옷 입는 거랑 밥 먹는 건 늘 느긋하고 꼭 우아하게 지조를 지켰다. 어렵사리 준비를 다 마친 후에 그녀는 안도했다. “갈까요?” 그는 여유롭게 그녀를 잠시 보더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네가 갈수록 대담해지는 것 같아. 내 말도 안 듣고. 이제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온연은 약간 실망했다. 원래는 이 사람들이 누군지 보고 어쩌면 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한 발 늦고 말았다. 사람들을 데리고 위로 올라가자 온지령 부부의 방은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호텔 주인장은 부부에게 욕을 하며 손해배상을 하라고 말했다. 부부는 아직도 혼이 나가서 그저 욕을 듣고만 있었다. 온지령은 괜찮았지만 남편은 맞았는지 상태가 안 좋아보였다. 온연은 주인장을 막았다. “그만하세요, 얼마든지 배상해 드릴게요. 집사님, 이 분이랑 내려 가서 배상해드리세요.” 주인장은 온연이 많은 사람과 함께 온 걸 보고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임집사와 함께 내려갔다. 온지령은 온호를 보고 왜 온연이 왔는지 알았다. “우린 괜찮아, 괜히 번거롭게 했네.” 온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보이네요, 저도 시력은 좋아서요. 그래서 무슨 일이였어요? 그 사람들이 왜 들이닥친 거예요? 설마…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했나요?” 온지령은 황급히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절대. 나도 왜 왔는지 모르겠어. 그냥… 너희가 우리를 찾아와서 뭘 했는지 물었어. 우리가 무슨 정보라도 흘릴까 봐 그랬나봐. 근데 우리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흘릴 것도 없었지만. 그것만 물어보고 갔어. 그리고 앞으로 조심하라고 경고했고… 난 괜찮아, 남편은 좀 맞았지만… 호는 아까 없었어서 다행이야.” 온연은 온지령의 남편을 슬쩍 보았다. “맞을 짓을 하셨으니까 맞으셨겠죠. 맞으면 당분간은 얌전히 계실 테니 잘 됐네요. 그러게 얼른 떠나라고 말씀드렸는데 왜 꼭 끝까지 남아서 맞고 가세요? 앞으로 그 사람들도 더 찾으러 올 일 없겠네요. 자유롭게 살고 싶으시면 조용히 사세요. 아니면 나중에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를테니까요. 그나마 온호를 생각해서 온 거예요. 부모가 되셨으면 그 노릇은 해야죠.” 온지령 부부는 감히 말대답을 못 했고 온호가 대답했다. “감사해요, 누나. 만약에 안 와 주셨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에요. 아무 일
진락은 얼른 표정을 숨겼다. “네 도련님, 저도 이 나이 먹고 여자친구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너무 바쁘고 시간도 없으니까요…” 목정침은 은은하게 말했다. “그럼 긴 휴가라도 보내줄까? 아니면 20년, 30년 일찍 퇴직할래?” 진락은 힘껏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도련님 밑에서 일하는 게 즐겁습니다. 나중에 퇴직할 때가 되더라도 큰 문제없으면 기사로써 더 일하고 싶습니다.” ...... 경가네 공관. 하람은 안야로부터 충격을 받은 이후로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다. 계속해서 열이 났고, 의사말로는 심한 쇼크로 인한 증상이라고 당분간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했다. 이것 때문에 경소경도 공관에 오는 날이 많아졌고 그는 하람에게 속상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경성욱이 하람 옆에서 잘 보살피는 모습을 보고 경성욱에 대한 생각도 점차 바뀌고 있었다. 아직까지 서로 인사는 안 하지만 예전처럼 표정을 굳히지도 않았다. “소경아, 나 신경쓰지 마. 아빠가 나 잘 챙겨주고 있어. 난 괜찮아. 나이 먹으면 원래 이렇게 고장나는 거지 뭐. 맞다, 남쪽에 있는 그 계열사 너가 신경 좀 잘 써. 그 회사가 기반이 탄탄해서 본사 다음으로 매출이 높고 제도에 있으니까 네가 잘 신경써야지. 엄마는 그럴 시간이 없고 아빠는 이런 거 하는 사람이 아니니 너한테 맡길게.” 하람에 잔소리에 경소경은 어쩔 수 없었다. “알겠어요, 지금 우선 하던 일만 끝내고 거기도 가볼 게요. 엄마는 다른 거 신경쓰지 마시고 쉬는데 집중하세요.” 하람은 그제서야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일 없으면 가 봐. 자꾸 여기로 오면 괜히 너 시간 방해만 되잖아. 안야랑 너랑 별 일 아니어서 다행이야. 뱃속에 아이도 너랑 상관없으니 마음이 너무 편해졌어. 이제 내 기분도 좋아졌으니 내일이면 뛰어다닐 수 있을거야.” 경소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공관을 나왔다. 그가 나가자 마자 하람은 멀쩡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요즘 애가 말이 없어진 것 같지 않아? 예전에는 안 그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