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가네 공관에서 나온 후, 진몽요는 긴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그녀는 모든 일에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인생에 첫번째 목표를 달성했지만… 경소경을 불구덩이로 던져버렸고 연회장에서 나오고 난 뒤에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불안하고 공허하게 만들었다. 경가네 개열 그룹. 경소경은 사무실에서 디자이너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말해봐요, 그 원고 어떻게 손에 넣었어요? 표절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진몽요와 똑같은 원고를 제출한 디자이너는 온화하게 생긴 남자였고, 안경까지 쓴 모습이 누가 봐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안경을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 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표절한 적이 없습니다.” 경소경은 화가 나서 책상 위에 있던 필통을 던졌다. “간묵씨! 이래도 발뺌할 거예요? 내가 이미 사람들 앞에서 인정했는데 당신이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알아요? 앞으로 이 바닥에서 다시는 일 못해요. 회사도 당신 때문에 5주기나 대회에 참여할 수 없고요, 장장 15년이에요! 이번에 회사에서 등수에 들어간 작품들도 다 떨어졌어요!” 간묵은 눈썹을 찡그렸고, 경소경은 보는 눈빛은 반성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표님이랑 임립님이랑 절친인 건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 회사 디자이너 편을 들 필요까진 없으셨잖아요? 왜 제가 표절했다고 인정하셨어요? 제가 알기론 그 진몽요라는 디자이너 이 바닥에서 이름도 없는 신입이던데, 예전에 저희 회사에서도 일 했었지만 대표님이랑 좀 아는 사이라고 편 들어주신 건가요? 대표님은 본인뿐만이 아니라 저까지 해치셨어요. 저는 표절한 적 없고 표절한 건 진몽요씨예요. 매체에 다시 입장 번복해주세요, 늦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경소경은 화가 나서 웃었다. “허허, 그럼 진몽요씨가 간묵씨 디자인을 어떻게 손에 넣었을까요? 네? 진몽요씨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잖아요? 내가 알기론 두 사람 서로 사적으로 연락한 적 없는 거 같은데.” 간묵은
랜선친구? 경소경은 의심했지만 분노했다. “그 랜선친구가 누군데요? 이건 그쪽이 자기 무덤 판 거잖아요, 표절이 잘했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가져와서 쓰고, 그쪽이 순위에 들었어도 진몽요씨는 밥그릇을 잃었을 텐데 그건 괜찮다는 거예요? 그런 막무가내가 어딨어요?” 간묵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것도 하늘의 뜻이겠죠, 저는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염치없는 사람에게 경소경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래요, 누군지 말 안 해줘도 내가 알아보면 그만이니까요. 그리고 그쪽이 표절해서 회사에 끼친 영향에 대한 손해배상은 내 변호사가 계산해 줄 거예요.” 간묵의 표정은 변했다. “대표님…!” 경소경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나가세요. 잘리셨어요. 회사랑 한 계약서에 따르면 계약위반이니까 손해배상 해야겠죠. 집 가서 소환장만 기다릴 일만 남았네요.” 간묵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무리 일이 안 좋게 풀려도 경소경이 이익을 위해 자신의 편을들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 이렇게 큰 손해배상을 할 능력이 없던 그는 아까 전 기세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두려움에 떨었다. “경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지금 매체에 제가 그런 거라고 대표님과는 상관없다고 인정하고 독박 쓰겠습니다. 시키는 데로 다 할 게요… 손해배상만은…” 경소경은 말 섞기도 귀찮아 경비를 불러 그를 끌고 나갔다. 이제 간묵이 표절을 인정했으니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았으나, 진몽요의 디자인을 유출한 그 간묵의 랜선친구는 의문점이었다. 진몽요가 그 원고를 보여준 사람은 온연과 안야 밖에 없었으니… 온연은 이 업계에 신입이 아니고, 남은 사람은…. 안야! 여기까지 생각한 후 그는 망설이다 진몽요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대로 말했다. “우리 회사 디자이너가 표절했데요. 그 원고는 랜선친구가 평가해달라고 보여준 거라는데 그 원고 보여준 사람이 누군지 아니까 직접 가서 물어봐요.” 진몽요는 집에 와서 신발을 갈아 신고 있다가 안야를 보며 멍
진몽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월광이 경소경네 회사 직원이었나 봐. 이름이 간묵이었나, 어쩐지 닉네임이 ‘묵’이더라. 이런 사람 인품 알겠지, 앞으로 연락하지 마.” 안야는 누가 봐도 충격 먹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묵’은 백월광 같은 존재였지만 자신의 행동이 그런 결과를 불러올 줄 몰랐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진몽요는 한숨을 쉬었다. “배우면서 크는 거니까, 앞으로 기억해. 내 원고든 네 원고든 함부로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면 안돼. 너도 정말 바보야. 분명 그 사람도 같은 업계 디자이너인 거 알고있었으면서 대회준비 기간에 그걸 막 보여주다니. 얼마나 경계심이 없었던 거야? 특히 회사를 대표하는 원고는 절대 유출해선 안돼. 만약 회사에 손해라도 입히면 책임을 물어야 하니까.” 안야는 울기 직전이었다. “알겠어요… 이번에 사장님이랑 립님한테도 민폐 끼칠 뻔했네요. 그랬으면 얼굴도 못 들 뻔했어요. 너무 화내지 마세요, 정말 실수였어요.” 진몽요는 그녀의 이마를 살짝 밀었다. “됐어, 나 화 안 났어, 그냥… 이번에 경소경씨가 좀 곤란해졌을 뿐이지. 됐다, 그동안 힘들었는데 오늘 회사 안 가는 김에 잘 쉬어야지. 너도 너무 생각하지 마, 괜찮아.” 진몽요가 방으로 들어가자 안야는 묵에게 문자를 보냈다. ‘제가 보내준 원고 표절했죠? 왜 그런 거예요? 제가 그렇게 믿었는데,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런 일을 하신 거예요? 그러면 본인한테도 좋은 게 없잖아요!’ 그녀는 묵의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20분이 지나자 다시 문자를 보내려 할 때 이미 차단된 상태였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백월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진상을 알았다. 그 순간 그 감정은 오직 본인만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회사에 오자 모든 사람들은 진몽요가 순위에 들어간 것을 부러워하며 축하했다. 임립네 회사에선 진몽요의 작품만 순위에 들었다. 하지만 진몽요는 기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잘못한 건 없
임립의 너그러운 태도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진몽요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밥 먹으는 도중, 안야의 핸드폰에 SNS 알림 소리가 울렸다. 예전에 이 알림 소리는 ‘묵’의 문자를 알렸기에 때때로 기다렸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어 보았고 ‘묵’에게 친구신청이 온 걸 보자 당황해서 앞에 앉은 진몽요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친구요청을 수락했다. 그녀는 ‘묵’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지 않았고, ‘묵’이 왜 친구 요청을 보냈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그가 먼저 차단을 했었는데 말이다. 바로 ‘묵’에게 문자가 왔다. ‘미안해요, 순간 유혹에 못 이겨 그런 짓을 했으면 안됐었는데, 나도 지금 후회하고 있어요. 당신이 나의 대한 신뢰를 이용하면 안됐었어요. 나 일도 그만뒀고, 이제 이 업계에서 다시는 일 못 해요. 게다가 회사에 엄청난 손해배상까지 해야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아 순간적으로 그쪽을 차단했었던 것 같네요. 다시 생각해봤는데 사과는 해야 할 거 같아요. 앞으로 연락할 일 없더라도 이래야 내 마음도 편할 것 같아서요. 미안해요.’ 처음으로 ‘묵’이 보낸 장문의 문자에 그녀는 마음이 약해져서 답했다. ‘잘못한 거 알면 앞으로 안 그러면 되죠. 제 기억속에 그쪽은 완전 나쁜 사람은 아니였어요. 간묵씨.’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그의 이름을 몰랐을 거다. 그녀가 핸드폰에 집중한 모습을 보자 진몽요는 젓가락으로 접시를 쳤다. “뭐해? 밥 먹어!” 안야는 얼른 핸드폰을 집어넣고 “네, 먹어야죠…” 진몽요는 그녀에게 밥을 먹으라고 했지만 이내 자신의 핸드폰도 울렸다. 수신인은 예군작이었다. “여보세요?” 전화 너머 예군작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등수에 들었다면서요, 축하해요.”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밥 사겠다고 했었죠. 주말에 살게요. 장소는 그쪽이 골라요.” 이번에 예군작은 그녀의 말 대로 하지 않았다. “오늘 만나고 싶어요. 주말 말고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그래요… 그럼 오늘 저녁 어때
그녀가 다 꾸미자 간묵은 딱 맞춰 전화했다. “저 도착했어요, 아파트 입구예요. 내려와요.” 간묵은 목소리가 좋았다. 두 사람은 채팅만 했던 사이라 이게 첫 전화였고 안야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네, 금방 가요.” 입구로 나가자 그녀는 간묵의 차를 보았다. 비록 비싼 차는 아니었지만 나름 깔끔했고, 차 번호판도 제도 현지 번호판이었다. 차에 탄 후, 은은한 향기가 그녀에게 좋은 느낌을 주었고 간묵도 그녀가 상상한 것처럼 지적이고 깔끔하며 차 안엔 먼지 한 톨 없었다. 그녀는 살짝 미안했다. “번거롭게 여기까지 오셨네요.” 간묵은 살짝 웃으며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 주었고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안야는 확실히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뭐… 뭐 먹죠?” 간묵은 자세를 똑바로 하고 말했다. “그쪽이 먹고 싶은 거 먹어요.” 안야는 그가 신사 답다고 생각했고 외모도 멋있어서 더욱 호감이 갔다.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이번 일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황도 안 좋을텐데, 밥은 제가 살 게요!” 간묵은 난감해 보였다. “내 경제적 상황까지 고려하지 않아도 돼요. 첫 만남인데 어떻게 여자한테 얻어먹어요? 홍콩 음식 잘하는 곳 있는데 거기로 가죠. 맞다, 그때 친구랑 같이 산다고 했었죠? 같이 사는 친구가 진몽요씨예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 일은… 제 탓도 있어요. 혹시… 그 분한테 사과해줄 수 있어요? 진짜 좋으신 분이거든요… 분명 용서해주실 거예요.” 간묵은 눈을 내리깔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건 나중에 기회 되면 제가 할 게요… 먼저 밥 먹으러 가요.” 홍콩 음식점에 도착한 후 간묵은 술 두 병을 주문했다. “이 술 괜찮아요, 한 잔 마셔봐요.” 안야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한 모금 마셨고, 깊은 술 맛에 그녀는 기침을 심하게 해서 얼굴이 다 빨개졌다. 간묵은 그런 그녀를 덤덤하게 보며 “몇
풍경을 잠시 감상한 후, 그는 안야의 핸드폰을 꺼내 진몽요의 번호를 찾아 문자를 보냈다. ’안야씨가 살아 돌아가길 원한다면 본인이 표절했다고 인정하세요. 내일 뉴스에서 대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문자를 받은 진몽요는 벌떡 일어났고 예군작은 그런 그녀를 보며 “왜 그래요?” 진몽요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지금 설명하긴 좀 그렇고… 저 지금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나중에 다시 제대로 밥 살게요. 미안해요!” 예군작은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일 있는 거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도울 게요.” 진몽요는 고개를 저으며 “됐어요, 귀찮게 하고싶지 않아요. 나중에 연락할 게요, 저 먼저 가요!” 그녀는 바람처럼 식당에서 나왔고 예군작이 아택에게 눈치를 주자 아택은 따라 나왔다. “진 아가씨, 제가 데려다 드릴 게요!” 진몽요는 오늘 차를 끌고 오지 않아서 거절하지 않았다. 택시를 잡는 건 시간이 걸릴 것 같았기에 아택이 데려다 주면 훨씬 편할 수 있었다. 그 문자를 누가 보냈는지는 알고 있었고, 간묵은 경소경네 회사 사람이니 이 일을 도울 수 있는 건 경소경 밖에 없다는 생각에 예군작이라는 외부인이 돕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야가 간묵과 만날 줄도 몰랐고, 간묵이 이렇게 극단적일 줄도 몰랐다. 백수완 별장에 도착한 후 그녀는 아택에게 인사를 건네고 차에서 내렸다.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아택은 예군작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소경씨 만나러 오셨습니다.” 전화너머 예군작의 표정은 살짝 어두워졌다. 그를 거절하고 경소경의 도움을 받겠다는 건가? 그는 알겠다고 대답을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진몽요는 별장 대문에서 경비원에 의해 멈춰 섰다. “여기 주민이십니까?” 그녀는 당황했다. 이 경비원 얼굴을 보니 새로 온 것 같았고, 그녀가 자주 출입을 해서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정확히는 주민이 아니었기에 마음대로 출입할 자격은 없었다. 그녀는 경비원을 무시하고 경소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그녀
전화를 끊고 진몽요는 초조하게 기다렸고, 얼마 후 경소경의 차가 나타났다. 그녀는 얼른 다가갔고, 경소경은 차를 세웠다. “타요.”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조수석에 앉았다. “간묵이랑 연락돼요? 난 그 사람 번호도 없고 안야는 전화도 안 돼서 큰일이에요.” 경소경은 머리가 아픈지 미간을 문질렀다. “일단 안전벨트 매요, 내가 간묵한테 전화해 볼게요.” 안전벨트를 매는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어서 제대로 벨트를 매지 못했다. 안야는 이미 가족이 없기 때문에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녀는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도 이 일은 그녀와 연관되어 있으니 만약 다른 해결책이 없으면 그녀가 간묵의 작품을 표절한 거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경소경은 다급한 그녀의 모습에 직접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일단 진정해요. 간묵이 어딨는지 알아봐야겠어요. 안야씨도 분명 같이 있을 거예요. 내가 알기론 간묵은 치밀하고 세심한 사람인데 간이 큰 스타일은 아니라 극단적인 행동은 못 할 거예요. 그냥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거지 사람 해칠 생각을 없을 거예요.” 진몽요는 그래도 긴장해서 말을 더듬었다. “혹시… 혹시라도 그러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경소경은 그녀가 진정되지 않자 더 위로하지 않고 간묵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전화할 걸 알았는지 간묵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고, 기계음을 들은 진몽요는 좌불안석이었다. “어떡해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기자한테 연락해서 내가 표절했다고 할까요?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겨우 일이잖아요. 이까짓 거 안 하면 그만이에요! 정 안되면 다시 가서 디저트 가게 운영하면서 살면 돼요!” 경소경은 고민하더니 말했다. “안야씨한테 다시 전화해봐요.” 진몽요는 그의 말을 듣고 안야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안야의 핸드폰도 꺼져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안 좋은 상황들만 상상되었고, 간묵 같은 성인 남성이 안야와 단 둘이 같이 있는데 안야는 지금 정신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기에 간묵 앞에서 속수무책일 것이다. “어떡하죠
경소경은 놀리는 말투로 “설마 내 집으로 가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죠? 나는 안야씨 일이 해결도 안됐는데 당신한테도 무슨 일 생길까 봐 그래요. 이럴 때 일수록 내 수고를 덜어줘야죠. 정 마음이 안 놓이면 당신은 우리 집으로 가고 난 회사로 갈게요.”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진몽요도 거절할 수 없었다. 사실 그녀도 간묵이 이런 일까지 벌였는데 아파트에 와서 그녀를 해칠까 봐 무서웠다. “그래요… 그럼 실례할 게요.” 경소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에 그녀는 저런 말을 안 했는데 갑자기 달라진 태도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백수완 별장 앞에 도착한 후, 경비는 그의 차를 보자 바로 문을 열었다. 그는 창문을 내리고 경비원에게 말했다. “내 여자친구예요. 얼굴 잘 봐 뒀다가 앞으로 출입하게 해줘요.” 경비원은 조수석에 앉은 진몽요를 보고 얼른 허리를 숙였다. “네네네, 그럼요. 제가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진몽요는 그가 자신을 여자친구라고 소개하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그녀의 편의를 위해서였지만 심장은 빨리 뛰고 있었다. 이 자식, 그냥 가족이라고 소개해도 되지 않았나? 집 문 앞에 도착하자 경소경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녀에게 열쇠를 건넸다. “들어가요, 난 회사로 갈 게요.” 그녀는 고민하더니 말했다. “집에 있어요. 당신이 어떻게 할까 봐 무서운 거 아니니까… 예전에 사귈 때 할 짓 못 할 짓 다 했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어요? 전 애인한테 관심 없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걱정 안 해요.” 경소경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그럼 만약에… 그거 그냥 내가 아무 생각없이 뱉은 말이라면요? 다 큰 남녀 둘이서, 어떡할 거예요?” 그녀는 그를 노려봤다. “적당히 해요! 사생활이 그렇게 문란하면서, 하룻밤도 못 참아요?” 그녀는 차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갔고, 들어가자 마자 경소경의 집은 방금 대청소라도 한 것처럼 소파커버도 없고 많은 물건들이 치워져 있어 예전보다 더 공허해 보였다. 경소경도 이걸 발견했다. “어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