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연은 디자인 쪽에선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지금은 안 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본 대회에 여름 의상 주제를 보자 그녀는 흥미롭게 여겼다. “우선 정확하게 트렌드를 파악해야 되. 대중들한테 먹힐 수 있는 그런 거 있잖아. 머리를 잘 굴려 봐. 많은 가게들도 돌아보고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상품들도 둘러봐봐. 그런데 보이는 데로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있는 것들보다 더 신선한 걸로.” 진몽요는 듣기만 해도 머리가 복잡했다. “디자인의 핵심이 창의적이라는 건 아는데 내 머리로는… 너도 알잖아, 그래서 내가 널 찾아온 거지. 어차피 너도 이제 이 바닥에 일 안 하니까, 네 도움 좀 받아서 명예 좀 얻으면 안될까? 제발, 친구야~ 내가 초안은 그렸으니까 너가 좀 고쳐주면 안돼? 예전에 회사에서 네가 도와준 것만 해도 엄청 좋았단 말이야, 정말이야!” 온연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었다. “보여줘 그럼.” 진몽요는 얼른 초안을 내밀었다. “자, 여기.” 한번 슥 보더니 온연은 고개를 저었다. “안돼, 이건 별로 특색이 없어. 난 평소에 병원에서 심심할 때 패션 잡지 같은 거 보고 트렌드에도 관심 가졌어. 너도 요즘 사람들이 레트로를 좀 더 좋아하는 거 갖지 않아? 특색이 있어야지, 대신 너무 과하면 안되고. 어떤 사람들이 귀티나는 걸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화려한 걸 좋아하잖아. 이건 아닌 것 같아.” 안야도 자신의 초안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그럼 제 거는요? 한번만 봐주세요.” 온연은 안야의 초안을 보더니 결론을 내렸다. 안야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어 그려진 초안도 딱 배운만큼이었고 당연히 특색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즐겨보던 패션 잡지를 꺼내어 그녀들에게 보여주었다. “봐봐, 이 잡지 안에 딱 한 벌만 레트로 감성이잖아. 근데 내가 알기로는 잘 팔렸어. 평가도 높게 받았고 이 디자이너도 꽤 유명한 가봐. 이 잡지 전체에서 이 옷만 내 마음에 들었어. 내 감이 틀리진 않았을 거야. 빌려줄 테니까 너희도 가서
온연은 그녀가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에 속으로 응원했다. 이내 병실 문이고, 온연은 그제서야 경소경이 매일 밥 배달을 한다는 게 생각났다… 진몽요는 목정침이 온 줄 알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고 이때 유씨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소경이 왔어? 고생이 많네.” 그녀는 몸이 굳었고 바로 초안을 챙겼다. “연아, 나 먼저 갈 게. 내일 보자.” 온연은 무표정인 경소경을 보았다. “그래… 조심해서 가.” 엘리베이터에 탄 진몽요는 길게 숨을 내쉬며 왜 그를 의식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절대 그런 성격이 아닌데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 주방에서 경소경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만약 내가 당신한테 미안할 일안 했다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이 질문에 그녀가 단호한 답변을 한 뒤로 그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고 한 동안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병실에서 마주치자 그녀가 당황했던 것 같다… 경소경은 표정은 아무렇지 않았다. “정침이 아직도 안 왔어요?” 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바쁜 거 같아요. 오후에 잠깐 왔었어요. 제가 입원하고 있다고 해서 매번 방해하기도 그래요. 일도 못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맞다, 이제 3년에 한 번 열리는 그 디자인 대회 곧 시작하잖아요. 그쪽 회사에서도 참가하는 사람 있죠? 요즘 몽요가 엄청 노력하고 있어요. 퇴근하고 여기 오면 제가 피드백 해주고요.” 그녀의 은연중에 경소경에게 진몽요가 또 올 거라고, 이런 만남이 종종 있을 거니까 다시 만났을 때 어색해 하지 말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방금 두 사람은 인사도 안 하고 모르는 사람처럼 서로 눈도 안 마주쳤다. 그녀의 입장에선 당연히 경소경과 진몽요가 친구라도 되길 바랐다. 경소경은 서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 머리로 노력해 봤자죠. 만약에 1등할 수 있으면… 아니다, 1등은 무리니까 10등 안에라도 들면 내가 그 사람한테 갖고 있는 편견들 다 버릴 게요.” 온연은 물었다. “내가 왜 몽요랑 사이가 좋은 줄 알아
경소경과 병원에서 마주친 이후로 진몽요는 그 시간을 피해 저녁 8시가 넘어서 온연을 찾아와 9시반 정도에 집으로 돌아갔다. 경소경은 늘 온연이 식사를 마치는 데로 가니 마주칠 일이 없었다. 며칠 후, 온연이 드디어 그녀에게 물었다. “너 왜 경소경 피해 다녀? 그 사람은 널 안 피하는데, 그냥 네가 오고 싶은 시간에 오면 되잖아. 이럴 필요까지 있어?” 진몽요는 반쯤 농담으로 물었다. “난 왜 너가 그 사람 편드는 거 같지. 그냥 밥 몇 끼 해준 게 다 아니야? 그렇다고 팔이 그 사람 안으로 굽어? 난 그냥 마주치기 싫어서 그런 거야...” 온연은 사실대로 말했다. “네 반응이 단순히 마주치기 싫은 거 같지가 않아. 꼭 자신이 없어서 도망치는 것 같아. 너 간이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졌어? 너 답지 않아. 너가 그 사람한테 정말 감정이 하나도 안 남았으면, 남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아야지 왜 숨어? 그럴 이유가 없잖아, 그 사람을 아직 좋아한다면 몰라도.” 진몽요는 눈을 깔고 손에 든 원고를 보았다. “맞아, 정말 사랑했던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어? 전에는 그 사람이 각종 이유로 날 찾아와서 괴롭히고 독설을 날렸어. 그 날 우리집 와서 네 밥을 만드는데, 갑자기 자기가 미안한 일 안 했으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냐고 묻더라고… 그 순간 내가 당황해서, 어차피 새로 만나는 사람도 있는데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분명 그럴 생각 없으면서 괜히 마음 있는 척하는 게. 그래서 안 된다고 말했지. 그 후로 나랑 말도 안 하고 만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피하게 됐어… 내가 헤어지자고 했으니까 여지를 남기면 안되지…” 결국 눈물 한 방울이 원고 위로 떨어졌고,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휴지로 닦았지만 아무리 닦아도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밤새서 그린 원고에 얼룩이 지자 그 순간 그녀는 짜증이 났다. 온연은 그녀의 손에 들린 원고를 보며 화제를 돌렸다. “원고 이정도면 될 거 같아. 겉에 걸칠 것만 추가하면 되겠
진몽요는 싱숭생숭한 마음에 일찍 일어나서 꾸몄고, 갖고 있는 옷 중에 제일 비싼 옷을 입었다. 작년 봄 신상 정장을 입고, 긴 머리는 웨이브를 주어 멋있는 커리어 우먼처럼 보였고 평소와는 다른 스타일이에 하이힐까지 신어서 다리도 얇아 보이자 안야도 놀랐다. “이런 옷 입으신 거 처음 봐요. 정말 잘 어울리세요. 보기만 해도 엄청 있어 보여요. 입만 안 열면 머리 나쁜 거 아무도 모르겠는데요.” 진몽요는 그녀를 노려보며 “칭찬을 하던지 욕을 하던지 하나만 해. 이미 온 세상이 내가 머리 나쁜 거 알아. 등수에 들었든 말든 그냥 가서 즐기고 오지 뭐. 이번에 잘 안 되도 3년 후에 또 도전하면 되니까. 어차피 3년마다 있는데, 언젠간 성공하겠지.” 안야는 자신의 결과물에 별로 자신이 없었다. “저는 그냥 동행만 할 게요. 그러니까 자신감을 갖으세요, 잘 되실 거예요. 저는… 참여에 의의를 두려고요. 이 바닥에 입문한지도 얼마 안됐고, 이것도 저한테는 좋은 시작이잖아요. 늦었어요, 얼른 가요.” 편하게 가기 위해 진몽요는 미리 강령한테 차를 빌려왔고, 장소에 도착하자 갑자기 자신의 아우디가 너무 돋보인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주변엔 다 몇 억 짜리 외제차였고, 이번에도 분명 많은 유명인사 들이 왔다는 생각에 더욱 긴장되었다. 이때 예군작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답장했다. ‘이제 들어가요. 등수에 들면 밥 살게요.’ 답장을 마치고 그녀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전환했다. 요즘 예군작은 며칠에 한 번씩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고, 딱히 어떠한 목적이 있는 것 같지 않자 그녀도 경계심을 내려놓고 그를 친구로 받아드렸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에게 이상한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와 안야가 연회장으로 들어가자 거의 빈자리가 없었고, 두 사람은 맨 뒷자리에 앉았다. 심지어 좌석이 부족해서 같이 앉지도 못했다. 그녀는 첫 줄에 앉아있는 경소경과 목정침을 보았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라 좋은 자리에 앉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아서
안야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다려보죠…” 몇 분 후,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관중분들이 아시다시피, 표절은 이 바닥에서 절대 용서가 되지 않죠. 지금까지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예상외로 그런 분들이 계셨네요. 게다가 이렇게 대놓고 두 원고가 똑 같은 건 처음이네요.” 그의 말에 관중들은 웅성거렸다. 맨 앞 줄에 앉은 목정침과 경소경은 자신들과는 상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진몽요는 생각에 잠겼다. “표절한 사람은 블랙리스트에 들어서 다시는 이쪽 일 못 한다던데. 회사도 5주기동안 대회에 참여할 수 없고. 그니까 15년동안 못 나온다는 거지. 누가 이렇게 재수없는지 모르겠네.” 안야는 처음 보는 일에 혀를 찼다. “그 사람들도 간이 크네요, 왜 표절할 생각을 했을까요? 무슨 일 생기면 손해보는 건 본인인데, 평생을 따라다니는 거잖아요…” 안야가 말을 다 하기전에 사회자는 두개의 똑 같은 원고를 전광판에 띄웠고, 그건 진몽요의 디자인 원고였다! 그 순간, 진몽요는 멍해졌다. 그녀의 이름과 소속된 회사의 이름도 표시되어 있었고, 나머지 한 장은 경소경 회사 것이었다! 그녀는 순간 사고회로가 멈춰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렇지 않았던 경소경도 깜짝 놀랐고, ‘진몽요’라는 이름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목정침도 눈썹을 찌푸렸고, 이 일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는 진몽요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지금은 당장 해결방법을 생각하고 진실은 나중에 조사해보려 했다. 그가 자신의 회사에서 표절했다고 인정하면 앞으로 대회 참여가 금지되고, 회사에 명예도 크게 실추되지만,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진몽요는… 그 보다 더 비참해질 것이다! 잠시 후, 진몽요는 정신을 차리고 서서히 일어나서 마이크를 건네받고 조명도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표절을 안 했다고
매체에 기자들은 경소경의 주위를 둘러싸 질문을 던졌다. “회사에 디자이너가 표절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나요?” “왜 알면서 제지하지 않으신 거죠? 요행 심리인가요?” “개열 그룹에서 5주기동안 대회에 참여가 금지됐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정확한 입장표명 부탁드립니다. 만약 모르셨다면 왜 조사도 안 해보시고 이 자리에서 바로 표절을 인정하신 거죠?” “회사에 많은 작품이 등수에 들었는데, 이렇게 자격 박탈되신 것에 대해 아쉽지 않으신가요?” 달려드는 기자들에게 경소경은 딱 한 마디만 했다. “제가 진몽요씨를 잘 아는데 저 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다른 건 드릴 말씀이 없네요.” 진몽요는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고, 자신의 작품이 등수에 들었다는 기쁨은 당연히 없었다. 계속 바라던 목표를 달성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대회가 끝난 후, 그녀는 차로 경소경의 차를 막아섰고, 이 일에 때문에 그녀는 용기 있게 그를 마주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됐든 그녀는 이 일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알아야 했다. 그녀의 원고는 온연과 안야 밖에 못 봤는데, 어떻게 경소경네 디자이너가 똑같은 디자인을 갖고 있었을까? 경소경이 내릴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녀는 차에서 내려 그의 차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창문을 내리자 그녀는 눈썹을 찌푸린 채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왜 그쪽 회사 디자이너가 표절한 거라고 했어요? 크게 손해보는 거 몰라서 그래요? 나는 쓰러지지 않는 오뚜기라서 이쪽 업계일 안 해도 상관없고, 임립네 회사도 별로 안 커서 상관없었을텐데, 바보예요?” 경소경은 그저 웃으며 반쯤 농담인 채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요. 난 전애인한테도 잘 해준다고, 또 궁금한 거 있어요?” 그녀는 살짝 화가 났다. “당신 사람이 왜 그래요? 이미 결론은 났지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요? 그 원고는 연이가 같이 고쳐준 거라 다른 사람한테 절대 보여준 적이 없어요. 그래도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아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최소한 매
차에 돌아온 후, 안야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넸다. “울지마세요… 원래부터 사장님이 표절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죄책감 느끼실 필요 없어요. 근데 보니까 경소경씨가 진짜 사장님한테 잘해 주시네요. 그런 상황에서 분명 본인이 손해볼 거 알았을 텐데 망설이지 않고 인정했잖아요. 다른 대다수의 남자들이었다면, 이익과 전애인 사이에서 아마 이익을 선택했을 거예요.” 진몽요는 코를 훌쩍였다. “회사에서 이런 일이 생겼는데 어머님이 아시면 엄청 화내실 거야. 경가네 공관에 가봐야겠어, 일단 너 먼저 데려다 줄게.” 안야를 집으로 데려다 준 후, 그녀는 경가네 공관으로 향했다. 하람은 아직도 집에서 회복중이었고, 깁스를 풀러서 걸을 수는 있었지만 아직은 절뚝였다. 그녀가 온 걸 보자 하람은 얼른 가정부에게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몽요야, 오늘 어쩐 일로 왔어? 이번 디자인 대회 너도 참여했다며, 어떻게 됐어? 오늘 결과 발표했다 던데 등수에 들었니?” 하람이 바로 질문하자 진몽요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턱걸이로 들어갔는데… 문제가 좀 생겼어요. 제가 말씀드려도 화내지 마세요.” 하람이 기분이 좋아서 과일을 먹으며 웃으며 말했다. “말해봐.” 진몽요가 아까 있었던 일을 털어놓자 하람의 표정은 역시나 변했다. “뭐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네 인품은 내가 믿지만… 소경이 밑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는 어떻게 네 작품을 표절했데? 네 작품은 온연이랑 안야만 봤다며, 이상하네… 두 사람이 소경이네 회사 사람이랑 만났을 일도 없을테고. 완전 똑같은 원고라면 우연도 아니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큰일이네… 만약 5주기나 대회에 참여할 수 없으면 회사에 경제적 손실도 클 텐데, 그 표절한사람 누군지 알아내면 그 사람한테 배상하라고 할 거야! 너무 악랄하네, 분명 들키면 어떻게 될 지 뻔히 알면서도 그러다니!” 진몽요는 죄책감이 들었다. “어머님 화 내지 마세요… 저도 경소경씨가 사람들 앞에서 인정할 줄 몰랐어요. 저는 제가 안고 가려고
경가네 공관에서 나온 후, 진몽요는 긴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그녀는 모든 일에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인생에 첫번째 목표를 달성했지만… 경소경을 불구덩이로 던져버렸고 연회장에서 나오고 난 뒤에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불안하고 공허하게 만들었다. 경가네 개열 그룹. 경소경은 사무실에서 디자이너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말해봐요, 그 원고 어떻게 손에 넣었어요? 표절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진몽요와 똑같은 원고를 제출한 디자이너는 온화하게 생긴 남자였고, 안경까지 쓴 모습이 누가 봐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안경을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 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표절한 적이 없습니다.” 경소경은 화가 나서 책상 위에 있던 필통을 던졌다. “간묵씨! 이래도 발뺌할 거예요? 내가 이미 사람들 앞에서 인정했는데 당신이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알아요? 앞으로 이 바닥에서 다시는 일 못해요. 회사도 당신 때문에 5주기나 대회에 참여할 수 없고요, 장장 15년이에요! 이번에 회사에서 등수에 들어간 작품들도 다 떨어졌어요!” 간묵은 눈썹을 찡그렸고, 경소경은 보는 눈빛은 반성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표님이랑 임립님이랑 절친인 건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 회사 디자이너 편을 들 필요까진 없으셨잖아요? 왜 제가 표절했다고 인정하셨어요? 제가 알기론 그 진몽요라는 디자이너 이 바닥에서 이름도 없는 신입이던데, 예전에 저희 회사에서도 일 했었지만 대표님이랑 좀 아는 사이라고 편 들어주신 건가요? 대표님은 본인뿐만이 아니라 저까지 해치셨어요. 저는 표절한 적 없고 표절한 건 진몽요씨예요. 매체에 다시 입장 번복해주세요, 늦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경소경은 화가 나서 웃었다. “허허, 그럼 진몽요씨가 간묵씨 디자인을 어떻게 손에 넣었을까요? 네? 진몽요씨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잖아요? 내가 알기론 두 사람 서로 사적으로 연락한 적 없는 거 같은데.” 간묵은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