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를 노려봤다. “알게 뭐예요?” 그는 발로 그녀의 캐리어를 차버렸다. “당신이 말했죠, 사과도 하고 설명도 했다고. 난 이미 그 일 신경 껐어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그 얘기 그만해요. 늦었으니까 자요.” 그녀는 잠 얘기만 나와도 화가 났다. 그녀가 목가네에서 밥도 못 먹고 있을 때 그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마치 그는 책을 넘기듯이 뭐든 빨리 넘겼다. 그 순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게 제일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화도 내지 않고 그저 시종일관 차가운 태도인데 이걸 누가 견딜 수 있을까? 분명 금요일에 두 사람이 사무실에서 좋지 않게 끝났는데도 그는 이틀동안 연락 한 통 없었고, 그녀는 이제 그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잠이 오겠지만, 난 안 와요! 당신은 아무렇지 않겠지만 난 다르다고요!” 싸우는 순간 그 분노속에 억울함도 엉켜 있고, 남자가 양심 없다고 뒤돌아서 욕하는 건 여자들의 본능이었다. 이 순간 여자에 머릿속엔 싸웠던 근본적 이유보다 중요한 건 남자의 태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일이 이렇게 커졌는지 몰랐고, 남자가 왜 이런 식으로 나오는 지 알 길이 없었다. 이건 절대 사랑하는 사람한테 할 수 없는 태도였기에 여자들은 100%중에 50%는 답답함, 30%는 억울함, 그리고 20%는 분노였다. 그 중에 이성은 0%였다. 경소경은 입술을 만지작 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그가 여자들과 싸울 때 쓰던 방법이 진몽요한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분명 예전에는 쉽게 해결했었던 문제들을 갖고 지금은 어쩔 줄 몰라 머릿속엔 물음표가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그녀의 화를 풀어줄 수 있을까? 말 실수를 하면 맞지 않을까? 진몽요는 당연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화가 나 있는데도 그가 아무렇지 않다는 것만 보였다. 싸우기만 하면 그는 입을 다 물었다. 그녀는 힘껏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 앉아서 캐리어를 쌌다. 다
진몽요는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일어났다. “그때 누가 나한테 그러던데, 내가 예군작이랑 밥 먹어도 되면, 당신도 이순이랑 연락해도 된다고. 내가 당신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당신 인내심도 대단해요. 내가 이틀동안 안 돌아왔는데 전화나 문자 한 통 없고, 도대체 내가 안중에 있긴 해요? 있냐고요? 아까 내가 왔을 때도 내려와서 문 열어 주기 귀찮았죠. 만약에 내가 오늘 혼자 왔으면 문도 안 열어줬을 거 같네요.” 경소경은 그 순간 침묵했다. 역시, 여자랑은 대화로만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는 그녀가 온연과 함께 있는 걸 알았기에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만약 돌아오기 싫은데 전화를 걸었더라면 어쨌든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 싸우는 건 집에서 싸우는 게 낫지 않나? 그는 그녀가 돌아온 뒤에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이틀동안 안 올 줄은 몰랐다… 그도 아까 그녀가 왔을 때 왜 직접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는지 의아했고 왜 그녀가 전화를 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는지 몰랐었다. 물론 이 질문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의 침묵은 진몽요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그래요, 당신 말 한 마디 하기가 참 어렵네요. 나도 당신이 무슨 말 하길 안 바랄게요. 진짜 가지가지 하네. 역시 돌아오면 안됐었어!” 말을 하고 그녀는 다시 앉아서 짐을 쌌고, 그는 거슬리는 캐리어를 들어 드레스룸에 놓았다. ”어디갈려고 그래요? 얼른 침대로 가서 자요!” 진몽요는 입술을 깨 물으며 문 앞으로 걸어갔다. “잘 거면 당신이나 자요. 방해 안 할 테니까.” 그는 다가가서 그녀를 붙잡았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만 싸우면 안돼요? 이 저녁에 어딜가려고요?” 그녀는 힘껏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번엔 뿌리쳐지지 않았다. “신경 꺼요! 어차피 신경 쓰고 싶지도 않잖아요! 어차피 관심 없잖아요!” 그는 벽에 있던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끄고 그녀를 안아 침대위에 던졌다. 그녀가 일어나려고 발버둥칠 때 그는 그녀를 눕히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만해요, 말 좀 듣고
경소경은 이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고 진몽요는 그 점이 만족스러웠다. 사실 달래주면 되는 문제였는데 왜 그는 애초에 그런 태도였던 걸까? 그녀는 핸드폰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가져 가요!” 분위기는 이미 풀어졌고 경소경의 사고도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야 어떻게 하면 그녀의 화를 풀어줄 수 있는지 알았다. “화 풀렸어요? 나는 걔 문자 답장해 줄 생각도 없었고 연락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어요. 그러니까 당신도 예군작 멀리해요. 앞으로 기분 안 좋다고 혼자 집 나가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우리 같이 해결해요. 온연네 집에 가서 또 씩씩거리지 말고요. 내가 만약에 찾아가서 당신이랑 싸웠으면 내 체면은 뭐가 됐겠어요? 당신은 정말 당신 없는 동안 내가 잘 먹고 잘 잤다고 생각했어요? 난 계속 잠도 못 자고, 오늘 새벽 6시까지 버티다가 겨우 잠 들었어요. 주말엔 회사에서 연장근무 하는데 내가 한가한 줄 알았어요? 이제 그만 울어요, 내일 아침에 눈 붓겠어요.” 진몽요는 눈물을 닦았고 화는 이미 식어있었다. “그 말을 누가 믿어요, 날 찾으러 안 왔어도 전화나 문자 한 통 없었잖아요? 핑계 그만 대고… 나 좀 그만 눌러요, 당신 무거워요.” 그는 그녀의 작은 턱을 잡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 찾으러 갈까 생각했는데 참았어요. 당신도 안 왔잖아요? 이제 내가 무거워서 싫다는 거예요?”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저리가요! 잠 못 잤으면 계속 자요,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잖아요… 나도 자야겠어요… 졸려 죽겠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살짝 입을 맞췄다. “진짜 졸려요? 난 왜 당신이 안 졸려 보이지? 아까 싸울 때 소리지르는 거 보니까 하나도 안 졸려 보이던데. 속담 중에, 하루만 못 봐도 삼 년을 못 본 것과 같다 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녀는 그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몰라요!” 그는 여유롭게 상의를 벗었고, 그녀의 옷을 잡아당겼다. “난 알아요.” 어두운 불빛아래 그녀는 희미하게 그
경소경은 단호하게 예군작의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는 더 이어서 할 흥미가 떨어졌고 오히려 피곤이 밀려왔다. 이 이틀동안 그는 거의 눈을 감은 적이 없었다. “일찍 자죠, 내가 좀 피곤해서…” 말을 하면서 그는 이미 눈을 감았다. 진몽요는 살짝 실망했고 순간 그가 또 화가 난 건지 정말 피곤한 건지 헷갈렸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었는데, 예군작의 문자를 보자마자… 하지만 곧 그녀는 그가 정말 피곤해서 라는 걸 알았다. 그녀가 그를 발로 건드려봤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그녀의 다리를 잡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목가네. 온연은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며 깊게 생각했다. 아까 경소경의 말투만으로 그의 기분을 짐작할 수 없어서 목정침에게 물었다. “두 사람 화해했을까요? 아까 경소경이 전화를 받아서요.” 목정침은 그녀의 핸드폰을 뺏어 저 멀리 두었다. “진몽요 대신해서 전화까지 받았으면 화해 한거지.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거의 12시야. 싸울만큼 싸웠겠지. 소경이가 애도 아니고.” 온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누울 준비를 하려던 순간 배에서 갑자기 통증이 느껴졌다. 큰 통증은 아니었지만 분명이 느껴졌다. 그녀는 유산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 이런 느낌에 익숙했고 그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목정침씨… 나… 방금 배가 살짝 아팠어요…” 목정침은 벌떡 일어나 앉아 불을 켰다. “지금은?”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식은 땀을 흘렸다. “모르겠어요… 아까 잠깐이었던 거 같은데, 무서워요.” 그는 일어나서 외투를 챙겼다. “가자, 지금 병원 가봐야 되겠어.” 온연도 불안한 마음에 두 사람을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잠옷 위에 외투만 걸쳤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인기척에 유씨 아주머니가 일어났고, 두 사람이 이 새벽에 외출을 하자 이상해서 물었다. “늦은 시간에 어디 가세요?” 목정침은 조심스럽게 온연을 부축했고 눈은 그녀의 배에 고정되어 있었다. “연이가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해서요. 지금 병원 가는 길이에요. 먼저
목정침은 그녀의 표정을 보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저희 가 볼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차로 돌아오자 온연의 불타던 얼굴도 점차 가라 앉았다. 그런 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도 알고 있었는데 괜히 말로 꺼내니 분위기만 어색해졌다… 목정침은 그런 그녀에게 장난을 쳤다. “아까 얼굴 왜 빨개졌어?”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창 밖을 보았다. “그런 적 없는데요. 병원이 더운데 내가 옷까지 껴 입어서 더웠나보죠.” 새벽에 병원까지 다녀왔더니 다음 날 아침 목정침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고 회사에 도착했을 땐 이미 10시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비서 데이비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목 대표님, 진 사모님께서 사무실에 와 계십니다.” 진 사모님은 진함 밖에 없었다. 진함이 온연 몰래 그를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딱히 놀라지 않았다. “알겠어.” 사무실에 들어오자 진함은 잡지를 보고 있었고, 그를 보자 그녀는 일어나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좀 늦게 오셨네요.” 그는 그녀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무슨 일이세요?” 진함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연이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내가 직접 찾아가기엔 그렇고. 알잖아요, 지금 임신중이니까 내가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날 본다고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목정침은 그녀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모르죠, 한번도 본 적 없는 할머니까지 받아주는 앤데,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르게 이미 마음이 풀렸을 지도 몰라요. 애가 생각보다 마음이 넓거든요.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 뱃속에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그렇지. 어제 새벽에도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어요. 만나고 싶으면 가서 만나셔도 돼요.” 진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잘 지내는 것만 알면 됐어요. 저는 그 할머니랑 달라요. 연이는 할머니랑 만난 적이 없어서, 버림받지도 않았고 원한도 없겠죠. 그렇지만 저는 그 애를 버렸으니 다르죠… 게다가 강연연까지 죄를 지었으니 나도 똑같이 그 애를 볼
강연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진함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예전에 그녀가 잘못을 저지를 때면 진함은 적어도 화를 냈지만, 이번에 진함이 그녀를 감옥에서 빼내 줬을 땐 처음부터 끝까지 오히려 태연한 모습이었다. 온연도 진함의 딸이지만 당시에 버림받지 않았는가? 진함은 그만큼 냉혈한이었다… 그녀는 드디어 두려움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진함의 옷깃을 잡았다.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제가 앞으로 말 잘 들을게요. 그러니까… 정침오빠한테 아빠 좀 풀어 달라고 부탁해주면 안돼요? 아빠도 결국 저를 위해서 감옥에 간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발요…” 진함은 강균성을 생각해도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내가 너를 구해준 것 만으로도 이미 큰 일을 한 건데, 네 아빠까지 구해줘야 하니? 넌 감옥이 다 네 맘대로 되는 줄 알아? 난 네 아빠를 풀어줄 만큼 바보야 아니야. 너 같은 흡혈귀는 하나로 충분해. 앞으로 편하게 살고 싶으면 내 말 듣고 해외로 나가서 공부해. 근데 내 말을 어기려는 순간 더 멀리 보내버릴 거야.” 강연연은 닭처럼 고개를 조아렸다. “네… 엄마 말 대로 할 게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요… 대신…가기전에 정침이 오빠 한번만 만나고 가면 안될까요?” 진함은 고민도 안 하고 대답했다. “안돼! 걔는 온연의 남자야, 만나는 것은 물론 떠올리지도 마! 건들면 안 되는 건 건들지 말고, 못 갖는 사람에 대한 욕망을 버려. 차에 타고 얼른 집에 가!” 차창 너머로 강연연은 미련이 남은 눈빛으로 목가네 그룹 건물을 바라봤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던 사람이 바로 앞에 있었지만 이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앞으로 진함의 착한 딸이 되지 않는다면 다시는 목정침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착한 딸로 산다면, 착한… 동생이 될 수도 있었다! 예가네 저택. 예군작은 핸드폰 화면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차단 당한 일을 당연히 알았고, 진몽요가 이렇게
...... 새해 첫 날, 진몽요는 고민이 많아졌다. 원래대로라면 3일의 휴일동안 그녀는 경소경과 함께 경가네 공관에 가야하는 게 맞지만 경소경의 태도를 봐서는 안 갈 게 뻔했다. 새해 첫 날은 물론 설날에도 안 갈 것 같았다. 그녀는 일찍 일어나서 온연에게 도움을 청했다. “연아, 나 지금 어떡해야 되지? 새해 첫 날이라 경가네 공관에 가서 어머니도 보고 그러고 싶은데, 경소경씨가 일부러 죽은 척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해. 짜증나 죽겠어. 그 사람이 시부모님이랑 싸워도 나는 다르잖아. 내가 안 가면 좀 그럴 거 같은데 혼자 가기에도 좀 그래.” 이 일은 온연도 방법을 몰랐다. “네가 잘 설득을 하던지, 아니면 혼자 어색함을 무릅쓰고 경가네 공관에 가던지.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차피 나한테는 그런 일이 안 생기니까~ 네가 전화 온 김에 나도 할머니한테 안부전화 드려야겠다. 경소경이랑 잘 얘기하고 네가 판단해봐.” 진몽요는 짜증을 참고 전화를 끊었고, 침대로 걸어가 이불을 걷었다. “경소경씨, 일어나요. 오늘 새해잖아요. 그쪽 어머니랑 우리 엄마한테 인사는 하러 가야죠?” 경소경은 잠이 덜 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당신 어머니 보러 가는 건 되는데 우리 엄마는 그냥 넘어가죠.” 그가 이렇게 말할 줄 알았던 그녀는 그의 허리를 꼬집었다. “당신 어머니잖아요! 친 엄마라고요! 그래도 한번 뵈러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평생 안 만날 거예요? 아버님이랑 사이 안 좋다고 해서 어머님까지 안 볼 셈이에요? 얼른 일어나요, 어머니 댁 가서 점심 먹고 저녁에 우리 엄마 보러 가요. 그리고 남은 이틀 잘 쉬면 되잖아요. 딱 이 정도 부탁만 들어줘요. 아니면 계속 괴롭힐 거예요.” 경소경은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말했어요, 나 우리 엄마 집 절대 안 가요. 강요하지 말아요. 다른 건 다 당신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이건 안돼요.” 진몽요는 결국 포기했다. 이럴 때 경소경은 돌처럼 완강해서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아래층. 온연은 고민하다가 진함의 번호를 찾았고, 목정침의 말을 들은 그녀의 마음은 살짝 흔들렸다. 할머니와 재회를 하고 나서 다시 한번 가족의 정을 느꼈고, 그래서인지 그녀도 더 이상 진함의 대한 미움이 크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진함은 문자를 받았을 때 기분이 좋아서 답장을 하고 다시 하던 일을 마저 했다. 그 일은 강연연의 짐을 싸주는 것. 오늘은 강연연의 출국 날이었고, 모든 건 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밖으로 나가기 전 강연연은 마지막으로 발버둥쳤다. “엄마… 저 졸업하기 전에 진짜 못 돌아오는 거예요? 저 진짜 가는데… 그래도 정침이 오빠 못 보고 가게 하실 거예요? 온연 보러 가는 셈치고 제가 멀리서 잠깐만 정침이 오빠 보고가면 안될까요?” 진함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전에 분명히 말했지 안된다고. 나도 온연을 보러 가지 않을 거고, 그러니 너도 목정침을 볼 일 없어.” 이 부분에서 그녀의 태도는 완강했다. 온연은 지금 임신중이니 절대 강연연이 가까이 가게 할 수 없었다. 강연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어요… 외국 가서 꼭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한테 인정받을 거예요. 그리고… 온연의 용서도 받을게요. 어쨌든 저희 다 한 가족이고 제 언니잖아요.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요. 제가 걔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엄마를 잃고 싶지 않아요.” 강연연의 입에서 이런 말을 처음들은 진함은 마음이 약해졌다. “네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제일 좋은 거야. 온연은 지금 임신하고 있으니 네가 최대한 멀리해야 해.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네가 돌아오는 거 생각해 볼 게. 너가 걔를 언니로 인정할 수 있어도 걔가 너를 동생으로 인정할지는 모르잖아. 그리고 목정침은 네 형부니까 다른 생각 하지 마. 네가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좋은 날들만 있을 거야. 내가 장담해.” 강연연은 그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에서 원하던 걸 영원히 얻지 못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좋은 날들이 있을 수 있을까?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