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군작은 말없이 방 불을 끄고 국청곡을 등진 채 있었다. 국청곡은 이불을 걷어낸 뒤 일어났고, 침대에는 그의 냄새가 나자 그녀는 순간 마음이 들떠 잠 기운이 달아났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대한 모든 인내심이 두 집안의 협력 때문인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가끔 그가 잘해준다고 느껴도 그 호의 안에는 어떠한 감정도 섞여 있지 않는 걸 알았다. 그녀는 그의 허리를 감싸려 했고, 적어도 지금은 이유를 갖고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건들지 마요.” 예군작은 차갑게 말했다. 국청곡은 몸이 살짝 굳었고 화가 나서 그를 등졌다. 그녀는 정말 자신의 마음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몰랐고, 어쩌면 미래의 어느 날은 지쳐서 그를 떠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갑자기 뒤에서 움직임이 느껴졌고,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녀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는 박력있게 그녀의 턱을 잡고 따뜻한 입술을 포개었다.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조금 놀랐다. 방금은 그저 그를 안고 잠만 자고 싶었을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잠옷이 풀리자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아… 안돼요…” 예군작의 목소리는 낮고 어두웠다. “이러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요?”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몸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의 다리를 회복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진몽요는 안야가 걱정되어 다시 한번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경소경은 그녀와 함께 갔지만 안에 들어가지 않고 차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병실 문을 열자 진몽요는 아택을 보았다. 안야는 아침을 먹고 있었고 그녀는 안도했다. “이왕 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어제 그 상황에서 저도 전화를 안 받았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아택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진몽요는 투덜거렸다. “감사 인사 듣자고 여기 온 거 아니에요. 임산부는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니 노력 좀 하세요. 아내도 자식도 다 당신 거예요. 너무 내버려두지 말라고요.” 안
“당신… 아직 경소경 좋아해요?” 안야는 놀란 눈으로 아택을 보았다. “네?” 아택은 그녀가 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에요.” 그녀가 대답을 하려던 찰나에 아택은 일어나서 그녀가 먹은 도시락통을 치웠다. 사실 그녀도 자신이 정말 경소경을 좋아했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사람이 질투에 눈이 멀게 되면 모든 게 다 가짜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그저 무사히 아이를 낳고 편안한 알을 보내고 싶었다. 지금의 일상도 좋으니 그녀는 더 바랄 게 없었다. 진몽요는 무언가를 마음 속에 담아두는 스타일이 아니라 안야의 일은 온연도 금방 알게 되었다. 진몽요는 전화 너머 고민이 많아 보였다. “우리 셋이서 예전에 참 좋았었는데 지금은 서로 얼굴 보기도 어색하네. 내가 만약 진짜 안야를 미워해서 그 전화를 끊어버렸다면 일이 커졌을지도 몰라. 내가 전화를 안 끊어서 다행이고, 경소경씨가 나를 도와서 병원까지 가줘서 다행이지. 그때 나랑 경소경씨 둘 다 매정하지 않았어서 다행인 거 같아.” 온연의 태도도 진지했다. “그래도 사람과의 인연이 장난은 아닌 것 같아.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지. 걔는 다른 가족도 없는데 너한테 연락했다는 건 신뢰가 있어서 겠지. 너가 도울 줄 알았던 거야. 너는 걔가 과거에 했던 일을 미워하고 마음이 불편해도, 걔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서서 돕잖아. 그게 다 과거에 정 때문 아니겠어?” 진몽요는 부정할 수 없었다. 옛정은 중요했지만 지금의 절교도 진심이었다. 전화를 끊고 온연은 일어나 정수기에서 물을 받았고 이때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온연씨, 누가 1층 로비에서 찾아요. .” 그녀는 한 눈 판 사이에 뜨거운 물에 손이 데였고, 따가워서 얼른 손을 피했다. “네, 금방 내려가요.” 그녀는 고객이 찾아온 줄 알고 황급히 내려갔는데, 내려가 보니 심개였다. 그녀는 그가 찾아올 줄 몰랐어서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어…” 심개는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일하는 거 알고 지나가던 길에 들렸어요. 저번에
자리에 앉은 후 심개가 말했다. “몽요한테 전화했는데 역시나 욕하더라고요. 성질 여전해요. 결혼하고 이제 애도 낳을 텐데 성격이 하나도 안 변했어요. 그래도 그 성격 때문에 고민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털털할수록 살기 쉬우니까요.” 대화 주제를 꺼내자 온연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게요. 나도 늘 그렇게 생각해요. 몽요는 참 운이 좋아요, 경소경씨가 사랑해주고, 뭐든지 다 맞춰주거든요. 해외에서 생활하는 건 어때요? 귀국해서 일할 생각은 없는 거예요?” 심개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적응 못 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적응이 되더라고요. 이미 뿌리를 박아서 돌아오는 것도 쉽지 않고 그냥 이렇게 살죠 뭐. 이거 봐요, 이 가게 인테리어 아직도 그대로예요. 너무 익숙하지 않아요?” 온연은 주변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하나도 안 변하고 그대로네요. 음식 맛도 그대로였으면 좋겠어요.” 심개는 이때 빨갛게 부어오른 그녀의 손등을 발견했고, 그녀의 손을 잡고 자세히 보았다. “손이 왜 그래요? 화상 입은 것 같은데.” 그녀는 얼른 손을 뺐다. “물 따르다가 실수도 데였어요. 이정도는 그냥 놔두면 자연적으로 치료 돼요.” 심개는 무언가를 눈치 채고 표정이 살짝 굳었다. “미안해요… 너무 급해서 그만…” 온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예전에 학교 다닐 땐 이런 거 신경도 안 썼는데요 뭘. 지금은 결혼하기도 했고 목정침씨가 워낙 질투가 많아서 기분 상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난 괜찮아요.” 심개의 눈빛을 씁쓸해 보였다. “시간은 참 재밌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과 안 좋아하는 것을 바꿀 수 있잖아요.” 온연은 침묵하며 이 말에 동의했다. 처음에 그녀는 심개를 좋아했지만, 나중엔 목정침을 사랑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형태 없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식사 후, 심개는 다시 그녀를 회사 문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의 차가 멀어지는 걸 보며 그녀는 속으로 그가 행복하길 빌었다. 앞으로 이런 만남
이때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이 되어 직원들이 속속히 돌아왔고, 사람을 앞에서 우스운 꼴을 보이는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온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모님, 말 조심하세요. 저는 무서울 게 없지만 사모님은 아니실 텐데요. 제가 정말 그 사람이랑 뭐가 있다면 대낮에 회사에 절 데리러 오게 만들었겠어요? 제발 그 머리로 생각 좀 할 수는 없으신가요?” 심개의 아내는 차갑게 웃었다. “당당할수록 찔리는 게 있는 거겠죠. 두 사람은 원래도 만나면 안되는 사이였어요!”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보며 온연은 도저히 심개의 아내와 싸우기 싫었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저는 일해야 되서 여기서 한가하게 이럴 시간 없네요.” 그녀는 바로 회사로 들어갔고, 심개의 아내도 쫓아가지 않고 씩씩거리며 나갔다. 자리에 앉은 뒤 서양양이 다가가서 작게 물었다. “언니, 방금 저 여자 누구예요? 왜 언니한테 욕한 거예요?” 온연은 머리가 아팠다. “물어보지 말고 일하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서양양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지금 회사에서 다 언니 얘기뿐이에요. 겉으로는 도도하고 청순한 척 다 하고 평소에 회사에서 이성이랑 대화도 잘 안 나누면서, 뒤에서는 목대표님 몰래 바람 피운다고요… 사람들이 다 그 여자가 찾아왔으니 언니가 확실히 그랬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요… 물론 저는 사람들 말 안 믿고, 언니 편에 설 거예요.” 온연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일거리를 만들기 싫었는데 밥 한 끼 먹었다고 왜곡된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졌다. “나 그런 사람 아니니까 마음대로 떠들게 둬요. 신경쓰기도 귀찮으니까.” 그녀가 몰랐던 건 심개의 아내가 목가네 그룹에 목정침을 찾으러 갔다는 것이었다. 대표 사무실. 목정침은 무표정으로 눈 앞에 여자를 보았다. “심 사모님, 무슨 일이세요?” 심개의 아내는 그를 훑어봤다. “목 대표님은 생긴 것도 출중하시고, 목가네가 제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집안인데 저는 이해가 안되네요. 왜 아내가 다른 여자 남편을 못
데이비드는 방금 전 대화를 다 들었고 그는 조심스럽게 문서를 주웠다. “네,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일을 맡긴 후, 목정침은 운전을 해서 온연의 회사로 갔다. 회사에 도착한 후 그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회사 앞이야, 내려와.’ 문자를 받은 온연은 창가로 가 아래쪽을 내려다 보았고 목정침이 정말 온 걸 확인한 뒤 당황했다. 이렇게 빨리 그의 귀에 들어갔다고? 그녀는 그가 화난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오싹했기에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 피할 수는 없었고, 어차피 집에 가서도 계속 이럴 테니,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엄 매니저에게 반차를 내고 내려갔다. 내려가기 전, 서양양은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언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잘못한 게 없으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요.” 목정침 차 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나 반차 냈어요, 집에 가서 얘기해요.” 목정침은 차가운 얼굴로 엑셀을 세게 밟았고,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온연은 손잡이를 잡았다. 그는 역시 알고 왔다. 근데 밥 한 끼 먹었을 뿐인데 이럴 일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안 가는 건데… “천천히 달려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콩알이는 고아가 되는 거잖아요!” 그녀의 말을 듣고 목정침은 이성을 찾은 뒤 속도를 줄였다. 그는 짜증섞인 모습으로 넥타이를 잡았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회사에 날 찾아와서 내 아내가 바람 났다는데,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돼?” 온연은 성내며 말했다. “아니죠. 당신은 나한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먼저 물었어야죠. 나를 믿었어야지, 다른 사람 말을 먼저 믿어요? 내가 당신한테 미안할 짓 한 적 있어요?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에요!” 목정침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이런 막무가내 화법은 누구한테 배운 거야? 진몽요가 가르쳐 줬어? 나한테 똑바로 설명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집에서 애 앞에서 너랑 싸우기 싫으니까똑바로 설명 못 하면 알아서 해.” 온연은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그…
온연은 대답을 못 했다. 그녀는 심개의 아내가 그렇게 당돌할 줄 몰랐고, 사람들 앞에서 난리를 피운 것도 모자라 목정침의 회사까지 찾아갔다니. 그녀는 왠지 모르게 심개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부드럽고 우아한 남자가 말 안 듣는 아내를 만나, 심지어 좋아하는 여자도 아닌지라 그가 손해보는 게 상상이상일 것 같았다. 그녀가 말이 없자 목정침은 폭발했다. “대답해! 말 안 하면 뭐가 달라져? 묵인하는 거야? 나 이제 겨우 30대인데 너 때문에 열 받아서 일찍 죽기 싫어!” 온연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라는 거예요? 난 내 할 말 다 했어요. 진짜 밥만 먹었을뿐이라고요. 밥 먹으면서 옛날 얘기도 좀 하자는데 내가 거절할 수 있어요? 좋은 사람이라 더 거절할 수 없었어요. 과거를 담담하게 마주해야하는 거 아니에요? 물러나는 게 더 이상해요. 망설임 없이 당당해야 하는 게 맞다고 난 생각했어요. 숨고 피하고 그러면 괜히 찔리는 것 같잖아요.” 몇 초 간 정적이 흐른 뒤 목정침이 물었다. “너 아직 걔 좋아해?” 온연은 고민하지 않았다. “안 좋아해요. 그 사람도 말했어요. 시간은 재밌는 것 같다고, 좋아하던 것도 안 좋아하게 될 수 있다고요. 옛날에 내 눈에 당신은 무섭고 사납고 다가가기도 어려워서 내가 좋아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었는데 지금은 사랑하게 됐잖아요. 그 반대로 난 그 사람한테 지금 그때의 감정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요. 분명 당신이 이겼는데 왜 여기서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요.” 목정침은 말없이 콧방귀를 뀌었다. 온연은 자신의 말이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고 적어도 그는 화가 좀 풀렸다. 다행히 그녀는 그에게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진몽요의 방식대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그녀는 지금에서야 왜 진몽요가 경소경을 휘어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싸울 때 누가 잘못을 했든 대화의 흐름을 유지하고 중간에 애교만 조금 섞어주면 남자들은 넘어갔다. 잠시 후, 그녀는 떠보듯 물었다. “다 설명했으니 이제 일하러 가봐도
사무실로 들어가자 목정침은 바쁘게 일을 시작했다. 온연은 신발을 벗고 소파에 앉아 패션잡지를 보며 때때로 목정침을 살폈다. 그는 아직 화가 완전히 식지 않았고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그녀를 보는 눈빛도 부드럽지 않았기에 그녀는 온 몸이 불편했다. 목정침을 회의에 보내고 그녀는 해방된 기분이 들어 진몽요에게 전화를 걸었다. “몽요야, 넌 내가 방금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를 거야. 내가 지금 살아서 너랑 전화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진몽요는 회사에 있었고 재밌는 얘기에 이끌려 사람 없는 비상구로 몸을 숨겼다. “무슨 일이야? 누가 널 그렇게 만들었어? 목정침이야?” 온연은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 심개가 회사에 날 찾아왔거든. 너 번호 물어보면서 같이 점심 먹자길래 먹었는데 그 와이프가 알게 된 거야. 그래서 회사 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어. 나랑 심개의 과거까지 다 알고 있더라고. 그래서 심개가 가자마자 나한테 달려들더니 한 마디 하더라. 지금 회사 사람들은 분명 뒤에서 다 내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그건 그렇다 치는데, 그 여자가 목정침씨 회사까지 와서 한바탕 했나 봐. 목정침씨가 바로 날 찾아와서, 지금 이 사람 사무실에 있는데… 진짜 죽을 뻔했어.” 진몽요는 놀랐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심개 와이프는 네가 심개랑 밥 좀 먹었다고 뭐라고 한 거야? 왜? 밥 먹는 게 어때서? 너도 뭐라고 했어?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한 마디 했을 텐데! 너랑 심개랑 잘되진 못 했어도 어쨌든 지금은 친구잖아. 목정침 때문에 너랑 심개랑 거의 연락도 안 하는데 밥 좀 먹었다고 그러는 거야? 너무하다! 목정침이 널 어떻게 한 건 아니지?” 온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방금 화 냈었다가 내가 해명하고 나서 지금은 괜찮아졌어. 근데 또 언제 화낼지 모르지. 나랑 심개 일은 그 사람 마음속에 가시 같아. 안 건들이면 괜찮은데, 잘못 건들이면 우리 둘 다 아프거든. 난 심개 와이프한테 뭐라고 안 했어.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
목정침이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온연은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비록 사무실에 히터가 켜져 있었지만 이불을 안 덮고 자면 추울수도 있었기에 그는 다가가서 그녀를 깨웠다. “나 일 끝났어, 밥 먹으러 가자.” 온연은 비몽사몽 일어났고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코도 막혔다. 잠깐 잠들은 사이에 감기 기운이 있을 줄 몰랐고 그녀의 체질은 여전히 약했다. “아… 몇 시예요?” 목정침은 손목시계를 들이밀었다. “퇴근 시간이지 몇 시긴? 감기 걸렸어?” 그녀는 코를 훌쩍였다. “그런 거 같아요. 심한 건 아니에요. 가죠.” 회사 밖으로 나와 찬 바람을 맞자 그녀는 추워서 오들오들 떨며 목정침의 품에 안겼다. “너무 추워요!” 목정침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차에 타면 괜찮을 거야.” 온연은 익숙하게 그의 보호를 받았고, 역시 그는 키가 커서 바람을 막아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됫쪽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서예령은 이 장면을 보면서 눈꼴이 시려웠다. 그녀는 자신이 질투할 자격이 없는 걸 알았지만 불편한 감정은 미친듯이 속에서 커지고 있어 걷잡을 수 없었다. 어쩌면 목정침 옆에 서고 싶은 여자가 그녀 한 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 중 가장 집착이 심한 사람이었다. 목정침의 첫 후원을 받은 그 순간부터 그녀의 인생을 오로지 그를 향하고 있었다. “목 대표님이랑 사모님 사이 진짜 좋으신가 봐. 사모님이 10살 연하라던데, 역시 딸처럼 잘 챙겨주시네. 부러워~” 옆에 있던 사람이 감탄하는 걸 들으며 서예령이 마음이 불편해져 인상을 쓰고 회사를 떠났다. 백수완 레스토랑. 온연은 앉자마자 진몽요에게 사진을 보냈다. ‘네 남편 식당에 밥 먹으러 왔어.’ 진몽요도 집에서 밥 먹는 사진을 보냈다. 비록 경소경과 둘만의 식사지만, 경소경은 음식을 많이 했고,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다. 온연이 문자를 하는 모습을 보고 목정침은 불만을 가졌다. “누구랑 문자해?” 온연은 핸드폰을 그의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