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연은 참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누명을 쓰는 일에 배후가 되고 싶지 않았고, 그녀는 단지 서양양에게 일을 가르쳐 주려던 것뿐 심부름을 시키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서양양씨, 저번에 누가 내 샘플 망가트린 일 아직 조사 안 했죠? 나중에 다시 만들긴 했지만 아직 범인을 못 찾아서 그냥은 못 넘어가겠네요. 엄 매니저님한테 가서 감시 카메라 좀 보고 올 테니까 이거 정리 좀 해줘요. 부탁할게요.” 서양양은 온연이 일을 벌일 걸 알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네.” 회사에 모든 곳엔 감시 카메라가 있었고 작업실 안에도 당연히 있었기에 바로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 평소에 서양양을 부지런히 부려먹던 사람들이 한 짓이었고, 그녀들은 온연의 샘플인 줄 모르고, 다음 날 본인들이 마네킹이 필요해서 샘플을 망가트렸다. 마네킹에서 옷을 벗긴 거면 몰라도 서양양이 다음 날 다시 만들게 일부러 훼손을 시켰다. 감시 카메라를 보고 진상이 들어나자 온연의 태도는 확실했다. “매니저님, 이런 일을 참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못 참겠네요. 저를 노린 게 아니라 인턴을 노린 것 같은데, 인턴은 인권도 없나요? 회사의 일부가 될 수 없는 건가요?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재밌는 걸까요? 다들 인성이 너무 나쁘네요. 만약 마지막까지 다 완성하지 못 했더라면요? 그럼 고객사에 신뢰도 잃고 이건 회사간에 문제로 번질 수도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은 처리해주시면 좋겠네요. 서양양씨는 앞으로 제가 데리고 일할 거예요. 저 말고는 아무도 일 못 시켜요.” 엄 매니저는 얼른 머리와 허리를 숙였다. “네, 얼른 그 사람들 자르겠습니다. 앞으로 서양양씨와 같이 일해 주세요. 지금까지 회사와서 아무런 성과도 못 내고 있어서 해고 할라고 했는데 사모님께서 데리고 일해주시면 여기 있어도 될 거 같네요. 저도 마음이 놓이고요.” 온연은 덤덤하게 말했다. “매일 사람들이 불러서 잡일만 시키니까 성과를 못 내죠. 사람들 배달음식 갖다주고, 커피 사오고, 프린터기
서예령은 얼굴이 살짝 굳은 채 어쩔 줄 몰라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녀가 나가자 목정침은 데이비드를 사무실로 불렀다. “넌 여기서 돈 그냥 버니? 너 자리가 바로 내 사무실 앞에 있는데 문 하나 못 지켜? 누가 마음대로 내 사무실에 아무나 들이래? 이 층에는 급한 일 아니면 아무도 못 들어와, 알겠어? 마지막 경고야, 내가 모르는 상황에 서예령이 다시 한번 여기 오게 된다면 넌 해고야!” 데이비는 혼이 나서 벙쪘다. “아니 그게… 저번에는 아무 말없으시길래, 두 분이 가까운 사이신 줄 알고, 이렇게까지 신경쓰실 줄 몰랐어요. 게다가 저 분 사람도 괜찮고 말도 예쁘게 하셔서 제가 완전히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안 들여보낼게요.” 목정침은 긴 한숨을 쉬었다. “됐다, 너 때문에 내가 화병 나서 죽겠어. 나가!” 데이비드는 식은 땀을 닦고 얌전히 자리로 돌아와 문을 지켰다. 그는 비서 치고는 한가했고, 평소에 목정침이 시키는 일도 적었다. 스케줄과 필요한 문서 정리 외에 대부분의 시간은 멍을 때리고 있었기에, 좋은 직업 같아 보여도 사실 그는 문지기나 다름없었다… 목정침의 그 단추를 서예령은 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았고, 목정침의 대한 존경심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를 봤을 때 그녀의 몸은 마치 우주에 있는 거 같았고, 그는 우주 안에 별 같았다. 그 많은 별들 중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오전에 일을 다 마치고 온연은 지루해서 목정침에게 커피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나 일다 끝냈어요. 이 회사 잘 온 거 같아요, 일도 안 바쁘고 말이에요.’ 핸드폰 알림 소리를 듣자 그는 움직임 없이 계속 서류를 보았다. 어차피 그는 온연이 보낸 문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온연이 문자를 먼저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서류를 본지 10분이 지나자 그는 귀찮은 듯 핸드폰을 열었고, 이때 마음이 급해져 빠르게 타자를 쳤
...... 병원, 산부인과 수술실 밖. 예군작은 묵묵히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고 아택은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국청곡은 수술실에 있었고, 그가 원하지 않던 그 아이는 이제 죽기 직전이었다. 그는 자신이 분명 평정심을 유지할 줄 알았다. 아침부터 병원에 와서 수술전 검사를 할 때부터 그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국청곡이 수술실로 들어가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진몽요가 임신했을 때가 생각났고, 콩알이의 귀여웠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는 아이를 싫어하진 않지만 자신의 더러운 핏줄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길 바랐다… “도련님, 만약 어르신이 이 일을 알게되시면 어떡하실 건가요? 수술하고 회복 기간도 필요하실 텐데, 같은 지붕아래 살면 눈치를 못 채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택은 걱정했다. 예군작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눈치 채면 뭐 어쩌게? 그땐 이미 아이가 없을 테니, 다 소용없는 거잖아.” 아택은 다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왠지 모르게 국청곡이 불쌍해졌다. 결혼을 했는데 건강한아이를 낳지 못 한다는 건 참 비참한 일이었다. 갑자기 예군작이 물었다. “안야는 출산까지 얼마나 남았어?” 아택이 대답했다. “봄쯤 일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서요.” 아마 봄이 되면 진몽요와 경소경의 아이도 태어날 것이다… 잠깐의 침묵 후 예군작이 말했다. “들어가서 의사한테 수술 멈추라고 해. 아직 늦지 않았다면…” 아택은 벙쪘다가 수술실 문을 열었다. “잠깐만요! 수술 멈춰주세요!” 임신한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기 때문에 큰 수술만큼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택의 목소리를 듣고 마취사는 놀라서 손을 떨었고, 마취제가 담긴 주사기를 떨어트렸다. 국청곡도 깜짝 놀랐다. “아택씨?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아택은 또박또박 말했다. “도련님이 생각을 바꾸셨어요. 아이 낳으시래요!” 국청곡은 믿을 수 없어서 눈시울을 붉혔다. “저… 정말이에요?” 아택은
그는 차갑게 말했다. “그냥 생각을 바꿨을 뿐인데, 왜 고맙다고 해요? 이런 일이 고마운 일이에요? 이걸 은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당신 국청곡이에요. 국가네 아가씨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고개 숙일 필요 없어요. 애초부터 내 의견을 듣지 않고 단호하게 낳겠다고 했어야 됐어요.”국청곡은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 했다. 분명 그가 협박해서 유산을 할뻔한거였는데 말이다.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예요? 난… 난 그저 아이 때문에 당신이랑 싸우기 싫었어요. 내가 아무리 낳고 싶어도 당신이 싫다면 나도 우리 미래를 위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그가 비꼬았다. “국청곡씨, 설마 나 좋아하는 거 아니죠?”국청곡은 당황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비꼬는 듯한 말투는 그녀의 심장을 찔렀고, 그래서 그녀는 좋아한다는 말을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정략결혼으로 만났으니 감정이 없는 게 당연했다. 첫 만남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고, 첫 눈에 반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 짧은 시간동안 감정이 생긴다는 것도 황당했다. 설령 그녀가 첫 눈에 반했다고 말해도 그는 안 믿을것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를 비웃을 것이다… 왜냐면 첫 눈에 반한 사람은 그녀뿐이었고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웃었다. “아니요, 우린 부부잖아요. 두 가족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야죠. 아닌가요?” 예군작은 그녀의 씁쓸한 미소를 보지 못 했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몰랐다.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이미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쩌면 예군작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계속 국가네 아가씨처럼 거만하게 행동하면서, 그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는 게 맞았다. 그는 그런 모습을 싫어했다. 그녀는 뱃속에 아이가 아직 살아 있어서 마음이 좀 놓였다. “임신한 거 부모님한테 알릴 거예요.” 그녀는 그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자신이 국가네 아가씨라는 걸 상기하면서 그의 의견을 묻지 않기로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목정침은 빠르게 그녀쪽을 한번 쳐다봤다. “왜 쳐다봐? 얼굴에 뭐 묻었어?” 그녀는 얼른 시선을 거뒀다. “당신 본 거 아니고 바깥 풍경 본 거예요. 오늘 날씨 좋네요. 눈도 안 오고. 조금 춥긴 하지만요.” 그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너 쪽 창문이랑 풍경이 똑같을텐데 굳이 내 쪽 창문으로 봐야해? 나 때문에 가려졌을 거 같은데.” 그녀는 민망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 꼭 저렇게 아는 척을 해야 할까?드디여 미리 예약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목정침이 그녀를 향해 살짝 팔을 들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팔짱을 꼈고 다음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사실… 데이트를 하는 이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주문을 할 때 그녀는 그가 커피를 마시지 말라던 잔소리가 생각나 주스를 시켰다. 그러니 와인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와인도 술이니 수유기간엔 자제해야 했다. 예상치 못 하게 목정침이 그녀를 대신해 거절했다. “주스 말고 와인으로 주세요.” 그녀는 의아했다. “저녁에 콩알이 수유해야 해요. 술 마시면 좀 그렇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적당히 마시면 저녁때가서는 별 영향 없어. 양식 먹는데 억울하게 주스 마시는 것도 그렇잖아. 와인은 괜찮아. 정 걱정되면 미리 담아둔 거 먹여. 어차피 남은 거 있잖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말에 동의했다. 적게 마시면 괜찮을것 같았다. 어차피 반나절이나 남았으니, 소화시켜서 유해 물질이 남지 않으면 그만이지 뭐. 이때 갑자기 그가 마법처럼 어디선가 검은 색 상자를 꺼내서 그녀의 앞에 놓았다. “열어봐, 선물이야.”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 남자가… 경소경한테 이런 걸 배워온 건가? 왜 갑자기 잘 해주는 거지? 그녀에게 대놓고 선물 주는 경우가 거의 없지 않았나?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고 그 안에는 반지가 들어있었다. 반지에는 큰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었다. 주변에는 작은 다이
의혹에 차 있던 찰나에 목정침이 입을 열었다. “내가 예전에 디자인했던 거야. 나중에 조금 수정해서 공예사한테 3달 동안 맡겨서 나온거야. 만족스럽게 나와서 너한테 가져온 거고.” 그가 이렇게 말하자 온연은 문득 생각났다. 이 반지 디자인은 어렸을 때 그의 서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그때 그녀는 그가 미래의 아내를 위해 디자인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올 줄은 몰랐다… 이래서 운명은 기묘한 것 같다. 이번생에 그녀는 그의 손아귀에 제대로 잡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닫았다. 지금 반지를 낄 생각이 없었다. 평소에 일할 때 작업하는 시간이 많으니 잃어버릴까 봐 걱정됐다. 목정침은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 표정이 안 좋아졌다. “안 껴?” 그녀가 해명했다. “잃어버릴까 봐요.”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읿어버리면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지. 그냥 껴.” 그의 엄숙한표정을 보고 그녀는 쫄아서 얼른 반지를 꼈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지니까 손이 더 예쁘게 돋보였다. 이 선물은 정말 감동이었다. 점심시간이 길지 않아 밥만 먹고 회사로 향했다. 오늘 목정침의 선물과 데이트가 너무 맘에 들었던 온연은 회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때 빠르게 그의 입가에 가벼운 뽀뽀를 해줬다. 그리고 그녀가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가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사실 그는 밥 먹으러 가기 전부터 이러고 싶었다. 그가 온연이 너무 짙은색의 립스틱을 바르는걸 허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줄까 봐 싫은것도 있었지만, 그녀의 섹시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흥분할까봐 걱정한 것도 있었다. 사실 그녀의 하얀 피부엔 어떠한 립스틱 색깔도 잘 어울렸다. 긴 키스가 계속 이어졌고, 온연의 핸드폰 알람이 울려서야 마지못해 끝났다. 그녀는 업무시간에 맞춰 알람을 설정하는 습관이 있었다. 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목정침은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갑자기, 서양양이 그녀앞으로 걸어왔다. “언니, 원고 정리 다 됐는데, 오후에 샘플 만들까요? 엄 매니저님이 오후에 필요하다고 하셔서요.” 온연은 얼른 핸드폰을 끄고 부자연스럽게 머리를 귀뒤로 넘겼다. “어… 그래요, 고마워요. 샘플은 오후에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이번 건 좀 복잡해서 시간이 좀 필요할 거예요. 일찍 시작해서 야근하지 말고요.” 서양양은 그녀의 손에 낀 반지를 발견했다. “와, 언니, 반지 정말 예쁘세요. 보석이 엄청 큰데, 분명 엄청 비싸겠죠? 오전까지만 해도 안 끼고 계시던데, 아까 밥 먹으러 가셨을 때 남편분께서 선물하신 거죠? 목 대표님 정말 로맨틱하세요.” 온연은 웃었다. “가요, 작업실 가서 샘플 만들어야죠, 옆에서 좀 도와줘요.” 목정침의 문자로 인해 그녀는 오후 내내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식으로 호텔을 예약하고 가는 게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됐다. 어쩌면 일상이 너무 따분하고 반복적이라 갑자기 생긴 변화에 신선함을 느끼는 거일수도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진몽요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싶어 전화한거였는데, 온연은 목정침과의 선약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목정침과의 약속을 미루면 그가 화낼까 봐 날짜를 바꿀 수 없었다. 온연이 평소에 거절을 잘 안 하는 편이라 진몽요는 의아했다. “너 저녁에 뭐하는데? 콩알이 때문이면 그냥 데려와. 나 오후에 출근도 안 해서 지루해 죽겠어. 이제 같이 밥도 못 먹어 주는 거야? 정말 이러기야?” 온연은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나중에 만나자. 오늘은 진짜 일이 있어. 선약이 있어.” 진몽요는 놀렸다. “선약이 있다고? 그 목석같은 남자분과의 약속은 아닐테고, 새로운 남자 생긴 건 아니지? 목정침씨가 알면 노발대발할 텐데.” 온연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근데 진짜 처음으로… 점심 때 그 사람이
온연의 마음은 사르르 녹았다. 그녀는 드디어 목정침이 딸을 갖고싶어 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딸을 키우는 재미는 분명 아들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 공주님, 왜 거기로 간 거야? 아빠한테 와.”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에 온연의 몸은 그대로 굳었고 옆으로 돌아보니 심개의 놀란 눈과 마주쳤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진게 별로 없었다. 다만 나이만 더 먹었을 뿐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도 놀랐다. 그저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 “어… 언제 귀국했어요?” 잠깐의 침묵 후 그녀는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은듯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심개는 살짝 숨을 들이 마시며 딸을 안았다. “며칠 안 됐어요. 가족들 보러 귀국한거라 오래 안 있을 거예요. 진짜 신기하네요… 여기서 마주치게 될 줄 몰랐어요. 아이 용품 사러 온 거예요? 너무 급하게 오는 바람에 당신이랑 몽요씨한테 연락도 못 했네요…” 심개는 그녀가 아이를 낳은 걸 알고 있었다… 그녀도 그가 결혼을 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온연은 웃었다. “누구 좀 기다리면서 구경 좀 하고 있었어요. 몽요가 지금 임신중이라 심심하면 약속 잡아봐요. 당신 딸이에요? 몇 살이에요? 너무 귀엽네요.” 심개는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11개월 됐어요. 걸음마를 빨리 떼서 막 돌아다녀요. 연이씨 아이는… 제 딸보다 좀 더 어리겠죠, 다 알고 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온연은 아직도 심개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수 없었다. 간단한 안부인사 뒤에 어떤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심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목정침씨가 잘 해주죠? 그래 보여요. 모든 게 좋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온연은 마음이 씁쓸했다. 씁쓸한 건 과거의 청춘이 시간에 갇혀버려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날들이 되어버렸다는것과 지금은 친구사이로도 돌아가기 어렵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