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연은 참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누명을 쓰는 일에 배후가 되고 싶지 않았고, 그녀는 단지 서양양에게 일을 가르쳐 주려던 것뿐 심부름을 시키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서양양씨, 저번에 누가 내 샘플 망가트린 일 아직 조사 안 했죠? 나중에 다시 만들긴 했지만 아직 범인을 못 찾아서 그냥은 못 넘어가겠네요. 엄 매니저님한테 가서 감시 카메라 좀 보고 올 테니까 이거 정리 좀 해줘요. 부탁할게요.” 서양양은 온연이 일을 벌일 걸 알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네.” 회사에 모든 곳엔 감시 카메라가 있었고 작업실 안에도 당연히 있었기에 바로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 평소에 서양양을 부지런히 부려먹던 사람들이 한 짓이었고, 그녀들은 온연의 샘플인 줄 모르고, 다음 날 본인들이 마네킹이 필요해서 샘플을 망가트렸다. 마네킹에서 옷을 벗긴 거면 몰라도 서양양이 다음 날 다시 만들게 일부러 훼손을 시켰다. 감시 카메라를 보고 진상이 들어나자 온연의 태도는 확실했다. “매니저님, 이런 일을 참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못 참겠네요. 저를 노린 게 아니라 인턴을 노린 것 같은데, 인턴은 인권도 없나요? 회사의 일부가 될 수 없는 건가요?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재밌는 걸까요? 다들 인성이 너무 나쁘네요. 만약 마지막까지 다 완성하지 못 했더라면요? 그럼 고객사에 신뢰도 잃고 이건 회사간에 문제로 번질 수도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은 처리해주시면 좋겠네요. 서양양씨는 앞으로 제가 데리고 일할 거예요. 저 말고는 아무도 일 못 시켜요.” 엄 매니저는 얼른 머리와 허리를 숙였다. “네, 얼른 그 사람들 자르겠습니다. 앞으로 서양양씨와 같이 일해 주세요. 지금까지 회사와서 아무런 성과도 못 내고 있어서 해고 할라고 했는데 사모님께서 데리고 일해주시면 여기 있어도 될 거 같네요. 저도 마음이 놓이고요.” 온연은 덤덤하게 말했다. “매일 사람들이 불러서 잡일만 시키니까 성과를 못 내죠. 사람들 배달음식 갖다주고, 커피 사오고, 프린터기
서예령은 얼굴이 살짝 굳은 채 어쩔 줄 몰라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녀가 나가자 목정침은 데이비드를 사무실로 불렀다. “넌 여기서 돈 그냥 버니? 너 자리가 바로 내 사무실 앞에 있는데 문 하나 못 지켜? 누가 마음대로 내 사무실에 아무나 들이래? 이 층에는 급한 일 아니면 아무도 못 들어와, 알겠어? 마지막 경고야, 내가 모르는 상황에 서예령이 다시 한번 여기 오게 된다면 넌 해고야!” 데이비는 혼이 나서 벙쪘다. “아니 그게… 저번에는 아무 말없으시길래, 두 분이 가까운 사이신 줄 알고, 이렇게까지 신경쓰실 줄 몰랐어요. 게다가 저 분 사람도 괜찮고 말도 예쁘게 하셔서 제가 완전히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안 들여보낼게요.” 목정침은 긴 한숨을 쉬었다. “됐다, 너 때문에 내가 화병 나서 죽겠어. 나가!” 데이비드는 식은 땀을 닦고 얌전히 자리로 돌아와 문을 지켰다. 그는 비서 치고는 한가했고, 평소에 목정침이 시키는 일도 적었다. 스케줄과 필요한 문서 정리 외에 대부분의 시간은 멍을 때리고 있었기에, 좋은 직업 같아 보여도 사실 그는 문지기나 다름없었다… 목정침의 그 단추를 서예령은 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았고, 목정침의 대한 존경심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를 봤을 때 그녀의 몸은 마치 우주에 있는 거 같았고, 그는 우주 안에 별 같았다. 그 많은 별들 중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오전에 일을 다 마치고 온연은 지루해서 목정침에게 커피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나 일다 끝냈어요. 이 회사 잘 온 거 같아요, 일도 안 바쁘고 말이에요.’ 핸드폰 알림 소리를 듣자 그는 움직임 없이 계속 서류를 보았다. 어차피 그는 온연이 보낸 문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온연이 문자를 먼저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서류를 본지 10분이 지나자 그는 귀찮은 듯 핸드폰을 열었고, 이때 마음이 급해져 빠르게 타자를 쳤
...... 병원, 산부인과 수술실 밖. 예군작은 묵묵히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고 아택은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국청곡은 수술실에 있었고, 그가 원하지 않던 그 아이는 이제 죽기 직전이었다. 그는 자신이 분명 평정심을 유지할 줄 알았다. 아침부터 병원에 와서 수술전 검사를 할 때부터 그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국청곡이 수술실로 들어가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진몽요가 임신했을 때가 생각났고, 콩알이의 귀여웠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는 아이를 싫어하진 않지만 자신의 더러운 핏줄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길 바랐다… “도련님, 만약 어르신이 이 일을 알게되시면 어떡하실 건가요? 수술하고 회복 기간도 필요하실 텐데, 같은 지붕아래 살면 눈치를 못 채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택은 걱정했다. 예군작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눈치 채면 뭐 어쩌게? 그땐 이미 아이가 없을 테니, 다 소용없는 거잖아.” 아택은 다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왠지 모르게 국청곡이 불쌍해졌다. 결혼을 했는데 건강한아이를 낳지 못 한다는 건 참 비참한 일이었다. 갑자기 예군작이 물었다. “안야는 출산까지 얼마나 남았어?” 아택이 대답했다. “봄쯤 일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서요.” 아마 봄이 되면 진몽요와 경소경의 아이도 태어날 것이다… 잠깐의 침묵 후 예군작이 말했다. “들어가서 의사한테 수술 멈추라고 해. 아직 늦지 않았다면…” 아택은 벙쪘다가 수술실 문을 열었다. “잠깐만요! 수술 멈춰주세요!” 임신한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기 때문에 큰 수술만큼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택의 목소리를 듣고 마취사는 놀라서 손을 떨었고, 마취제가 담긴 주사기를 떨어트렸다. 국청곡도 깜짝 놀랐다. “아택씨?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아택은 또박또박 말했다. “도련님이 생각을 바꾸셨어요. 아이 낳으시래요!” 국청곡은 믿을 수 없어서 눈시울을 붉혔다. “저… 정말이에요?” 아택은
그는 차갑게 말했다. “그냥 생각을 바꿨을 뿐인데, 왜 고맙다고 해요? 이런 일이 고마운 일이에요? 이걸 은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당신 국청곡이에요. 국가네 아가씨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고개 숙일 필요 없어요. 애초부터 내 의견을 듣지 않고 단호하게 낳겠다고 했어야 됐어요.”국청곡은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 했다. 분명 그가 협박해서 유산을 할뻔한거였는데 말이다.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예요? 난… 난 그저 아이 때문에 당신이랑 싸우기 싫었어요. 내가 아무리 낳고 싶어도 당신이 싫다면 나도 우리 미래를 위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그가 비꼬았다. “국청곡씨, 설마 나 좋아하는 거 아니죠?”국청곡은 당황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비꼬는 듯한 말투는 그녀의 심장을 찔렀고, 그래서 그녀는 좋아한다는 말을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정략결혼으로 만났으니 감정이 없는 게 당연했다. 첫 만남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고, 첫 눈에 반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 짧은 시간동안 감정이 생긴다는 것도 황당했다. 설령 그녀가 첫 눈에 반했다고 말해도 그는 안 믿을것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를 비웃을 것이다… 왜냐면 첫 눈에 반한 사람은 그녀뿐이었고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웃었다. “아니요, 우린 부부잖아요. 두 가족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야죠. 아닌가요?” 예군작은 그녀의 씁쓸한 미소를 보지 못 했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몰랐다.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이미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쩌면 예군작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계속 국가네 아가씨처럼 거만하게 행동하면서, 그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는 게 맞았다. 그는 그런 모습을 싫어했다. 그녀는 뱃속에 아이가 아직 살아 있어서 마음이 좀 놓였다. “임신한 거 부모님한테 알릴 거예요.” 그녀는 그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자신이 국가네 아가씨라는 걸 상기하면서 그의 의견을 묻지 않기로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목정침은 빠르게 그녀쪽을 한번 쳐다봤다. “왜 쳐다봐? 얼굴에 뭐 묻었어?” 그녀는 얼른 시선을 거뒀다. “당신 본 거 아니고 바깥 풍경 본 거예요. 오늘 날씨 좋네요. 눈도 안 오고. 조금 춥긴 하지만요.” 그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너 쪽 창문이랑 풍경이 똑같을텐데 굳이 내 쪽 창문으로 봐야해? 나 때문에 가려졌을 거 같은데.” 그녀는 민망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 꼭 저렇게 아는 척을 해야 할까?드디여 미리 예약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목정침이 그녀를 향해 살짝 팔을 들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팔짱을 꼈고 다음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사실… 데이트를 하는 이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주문을 할 때 그녀는 그가 커피를 마시지 말라던 잔소리가 생각나 주스를 시켰다. 그러니 와인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와인도 술이니 수유기간엔 자제해야 했다. 예상치 못 하게 목정침이 그녀를 대신해 거절했다. “주스 말고 와인으로 주세요.” 그녀는 의아했다. “저녁에 콩알이 수유해야 해요. 술 마시면 좀 그렇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적당히 마시면 저녁때가서는 별 영향 없어. 양식 먹는데 억울하게 주스 마시는 것도 그렇잖아. 와인은 괜찮아. 정 걱정되면 미리 담아둔 거 먹여. 어차피 남은 거 있잖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말에 동의했다. 적게 마시면 괜찮을것 같았다. 어차피 반나절이나 남았으니, 소화시켜서 유해 물질이 남지 않으면 그만이지 뭐. 이때 갑자기 그가 마법처럼 어디선가 검은 색 상자를 꺼내서 그녀의 앞에 놓았다. “열어봐, 선물이야.”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 남자가… 경소경한테 이런 걸 배워온 건가? 왜 갑자기 잘 해주는 거지? 그녀에게 대놓고 선물 주는 경우가 거의 없지 않았나?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고 그 안에는 반지가 들어있었다. 반지에는 큰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었다. 주변에는 작은 다이
의혹에 차 있던 찰나에 목정침이 입을 열었다. “내가 예전에 디자인했던 거야. 나중에 조금 수정해서 공예사한테 3달 동안 맡겨서 나온거야. 만족스럽게 나와서 너한테 가져온 거고.” 그가 이렇게 말하자 온연은 문득 생각났다. 이 반지 디자인은 어렸을 때 그의 서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그때 그녀는 그가 미래의 아내를 위해 디자인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올 줄은 몰랐다… 이래서 운명은 기묘한 것 같다. 이번생에 그녀는 그의 손아귀에 제대로 잡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닫았다. 지금 반지를 낄 생각이 없었다. 평소에 일할 때 작업하는 시간이 많으니 잃어버릴까 봐 걱정됐다. 목정침은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 표정이 안 좋아졌다. “안 껴?” 그녀가 해명했다. “잃어버릴까 봐요.”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읿어버리면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지. 그냥 껴.” 그의 엄숙한표정을 보고 그녀는 쫄아서 얼른 반지를 꼈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지니까 손이 더 예쁘게 돋보였다. 이 선물은 정말 감동이었다. 점심시간이 길지 않아 밥만 먹고 회사로 향했다. 오늘 목정침의 선물과 데이트가 너무 맘에 들었던 온연은 회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때 빠르게 그의 입가에 가벼운 뽀뽀를 해줬다. 그리고 그녀가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가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사실 그는 밥 먹으러 가기 전부터 이러고 싶었다. 그가 온연이 너무 짙은색의 립스틱을 바르는걸 허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줄까 봐 싫은것도 있었지만, 그녀의 섹시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흥분할까봐 걱정한 것도 있었다. 사실 그녀의 하얀 피부엔 어떠한 립스틱 색깔도 잘 어울렸다. 긴 키스가 계속 이어졌고, 온연의 핸드폰 알람이 울려서야 마지못해 끝났다. 그녀는 업무시간에 맞춰 알람을 설정하는 습관이 있었다. 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목정침은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갑자기, 서양양이 그녀앞으로 걸어왔다. “언니, 원고 정리 다 됐는데, 오후에 샘플 만들까요? 엄 매니저님이 오후에 필요하다고 하셔서요.” 온연은 얼른 핸드폰을 끄고 부자연스럽게 머리를 귀뒤로 넘겼다. “어… 그래요, 고마워요. 샘플은 오후에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이번 건 좀 복잡해서 시간이 좀 필요할 거예요. 일찍 시작해서 야근하지 말고요.” 서양양은 그녀의 손에 낀 반지를 발견했다. “와, 언니, 반지 정말 예쁘세요. 보석이 엄청 큰데, 분명 엄청 비싸겠죠? 오전까지만 해도 안 끼고 계시던데, 아까 밥 먹으러 가셨을 때 남편분께서 선물하신 거죠? 목 대표님 정말 로맨틱하세요.” 온연은 웃었다. “가요, 작업실 가서 샘플 만들어야죠, 옆에서 좀 도와줘요.” 목정침의 문자로 인해 그녀는 오후 내내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식으로 호텔을 예약하고 가는 게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됐다. 어쩌면 일상이 너무 따분하고 반복적이라 갑자기 생긴 변화에 신선함을 느끼는 거일수도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진몽요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싶어 전화한거였는데, 온연은 목정침과의 선약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목정침과의 약속을 미루면 그가 화낼까 봐 날짜를 바꿀 수 없었다. 온연이 평소에 거절을 잘 안 하는 편이라 진몽요는 의아했다. “너 저녁에 뭐하는데? 콩알이 때문이면 그냥 데려와. 나 오후에 출근도 안 해서 지루해 죽겠어. 이제 같이 밥도 못 먹어 주는 거야? 정말 이러기야?” 온연은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나중에 만나자. 오늘은 진짜 일이 있어. 선약이 있어.” 진몽요는 놀렸다. “선약이 있다고? 그 목석같은 남자분과의 약속은 아닐테고, 새로운 남자 생긴 건 아니지? 목정침씨가 알면 노발대발할 텐데.” 온연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근데 진짜 처음으로… 점심 때 그 사람이
온연의 마음은 사르르 녹았다. 그녀는 드디어 목정침이 딸을 갖고싶어 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딸을 키우는 재미는 분명 아들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 공주님, 왜 거기로 간 거야? 아빠한테 와.”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에 온연의 몸은 그대로 굳었고 옆으로 돌아보니 심개의 놀란 눈과 마주쳤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진게 별로 없었다. 다만 나이만 더 먹었을 뿐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도 놀랐다. 그저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 “어… 언제 귀국했어요?” 잠깐의 침묵 후 그녀는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은듯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심개는 살짝 숨을 들이 마시며 딸을 안았다. “며칠 안 됐어요. 가족들 보러 귀국한거라 오래 안 있을 거예요. 진짜 신기하네요… 여기서 마주치게 될 줄 몰랐어요. 아이 용품 사러 온 거예요? 너무 급하게 오는 바람에 당신이랑 몽요씨한테 연락도 못 했네요…” 심개는 그녀가 아이를 낳은 걸 알고 있었다… 그녀도 그가 결혼을 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온연은 웃었다. “누구 좀 기다리면서 구경 좀 하고 있었어요. 몽요가 지금 임신중이라 심심하면 약속 잡아봐요. 당신 딸이에요? 몇 살이에요? 너무 귀엽네요.” 심개는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11개월 됐어요. 걸음마를 빨리 떼서 막 돌아다녀요. 연이씨 아이는… 제 딸보다 좀 더 어리겠죠, 다 알고 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온연은 아직도 심개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수 없었다. 간단한 안부인사 뒤에 어떤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심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목정침씨가 잘 해주죠? 그래 보여요. 모든 게 좋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온연은 마음이 씁쓸했다. 씁쓸한 건 과거의 청춘이 시간에 갇혀버려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날들이 되어버렸다는것과 지금은 친구사이로도 돌아가기 어렵다는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