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고 밖에 있던 사람은 국청곡이었다. 경소경은 비록 국청곡을 본 적은 없었지만 뉴스에서 본 적이 있어 한 눈에 알아봤다. 진몽요는 당연히 그녀를 본 적이 있어서 물었다. “어쩐 일이세요? 언제 오셨어요?” 국청곡은 문 앞에 서서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미소를 지었다. “좀 됐어요. 여기 보안이 되게 엄격하네요. 아가씨 이름을 잘 모르는 거 같아서 약혼자분 이름 말하고 친구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괜찮으시죠? 기억력이 안 좋아서 한참 찾았어요. 지금 이 시간에 집에 계실 것 같아서 아가씨 임신 용품 좀 전해 드리러 왔어요.” 진몽요는 그제서야 국청곡 손에 들린 물건들을 보고 예의 바르게 받았다. “너무 죄송해요, 번거롭게 이러실 필요 없는데.” 경소경은 옆에서 아무 말이 없었고, 그의 라이벌이었던 남자의 아내가 그의 아내에게 임신용품을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국청곡은 바로 갈 생각이 없었고 진몽요도 당연히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국정곡은 앉자마자 말했다. “제가 목이 좀 마른데 오렌지 주스 같은 거 있나요?” 경소경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얘기 나누세요.” 경소경이 자리를 피하자 국청곡은 본론을 꺼냈다. “아가씨, 군작씨랑 안지 얼마나 됐어요?” 진몽요는 손가락으로 세어봤다. “얼마 안됐어요, 밥 몇 번 먹은 게 다예요. 좋은 사람이잖아요.” 국청곡의 눈동자는 살짝 흔들렸다. “진짜 밥 몇 번 먹은 게 다예요?” 진몽요는 그녀가 오해할까 봐 겁이 났다. “정말이에요, 못 믿겠으면 물어보세요. 제가 말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그 사람이랑은 사담도 잘 안 나웠어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이제 두 분도 결혼하셨고, 저도 곧 결혼하고 애까지 있는데 이런 얘기 안 해도 될까요? 이제 연락 끊긴지도 오래됐고 아마 아실 텐데요. 그때 제가 결혼 선물 보낸 이후로는 연락 안 했어요.” 국청곡은 빙긋 웃었다. “그런 뜻 아니었으니 오해하지 마세요. 그저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잠시 후, 진몽요는 자신이 아는 걸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예군작이 국청곡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 같았고 그만의 생각이 있을 것 같아 그 비밀을 타인에게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게요, 참 안타까워요. 사람도 좋고 집안 환경도 괜찮고, 딱 단점은 이거 하나뿐이니 괜찮다고 봐요. 그래도 시집 가기로 결정했으니 크게 신경 안 쓰시는 거 같아 다행이네요.” 국청곡은 마음이 나아졌다. “당연히 신경 안 쓰죠, 제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시간이 늦었네요. 두 분 더 방해 안 하고 전 먼저 가볼게요.” 이때, 경소경은 오렌지 주스를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국청곡은 그의 손에 있던 오렌지 주스를 보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오렌지 주스는 다음에 마실게요. 아가씨 오렌지 주스 좋아하지 않으세요? 아가씨가 드시면 되겠네요.” 진몽요는 국청곡에게 자신이 오렌지 주스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아냐고 묻고 싶었지만, 사람은이미 떠났다. 그녀는 경소경에 손에서 오렌지 주스를 받았다. “내가 오렌지 주스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상하네요.” 경소경은 나지막이 말했다. “예군작이 아는 건 저 사람도 알겠죠. 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녀는 눈을 부릅떴다. “그런 식으로 얘기 돌리지 말아요. 임산부는 화내면 안 좋거든요! 지금 이런 대화자세는 별로 안 좋은 거 같은데요? 이제 다들 결혼한 사람끼리 쓸데없는 얘기는 삼가는 게 좋겠어요. 오해만 안 만들면 된거죠. 아까 저녁에 연이랑 매운 닭요리 먹고 왔는데, 나는 하나도 안 매웠는데 연이는 매워서 얼굴까지 빨개졌더라고요. 신 거랑 매운 거 좋아하면 딸이라 던데, 내가 봐도 딸 같아요. 어머님이 손자에 대한 희망은 버리셔야겠어요.” 경소경은 그녀의 머리칼을 만졌다. “우리 엄마는 성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니까 걱정 마요. 너무 매운 건 좀 자제해요. 배탈날 수 있으니까.” 돌고 돌아 다시 원래의 화제로 돌아왔고 진몽요는 떠보듯이 물었다. “나 혹시 예군작한테 와이프 마음 잘 받았다고 문자 보내
예군작은 눈을 감고 미간을 주물렀다. “이런 일은 다시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 이따가 국청곡 오면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안방에서 기다릴 테니.” 약 2시간 정도 지난 뒤 국청곡은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곳의 위치가 너무 멀어서 진몽요를 찾으러 갔다 오는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고 불평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택은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 도련님이 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국청곡은 마음이 내려 앉았다. 왜냐면 평소에 예군작은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피해 다녔기에 그가 자발적으로 그녀를 찾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대답을 하고 위로 올라갔고 아택이 당부했다. “사모님, 도련님한테 맞서지 마시고 말할 때 조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묻고 싶었다. 예군작이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도 아니고 그녀가 예군작에게 고개 숙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택이 장난 치는 것 같진 않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오자 불이 다 꺼져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스위치를 찾고 있던 찰나에 뒤에서 예군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 왜 찾으러 갔어요?” 그녀는 깜짝 놀라서 가슴을 부여잡고 뒤를 돌았다. 어둠 속 그의 그림자는 더욱 커 보였고,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있었지만 이마가 겨우 그의 턱에 닿았다. 그의 분노는 어둠에 가려져 있었고 그녀는 마음이 불안했다. “전 그냥 선물 좀 갖다 준 것뿐이에요. 당신 친구라면서요? 당신 친구도 내 친구죠. 게다가 우리 결혼식 때 받은 것도 있잖아요. 그 그림 엄청 비싼 건데. 나중에 내가 임신하면 조언도 듣고 하면 좋을 거 같아서…” 예군작은 그녀의 턱을 잡고 말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하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요? 내가 자고 있을 때 내 지갑에 손 댔죠? 그 안에 있던 사진 봤죠? 솔직히 말해줄게요, 우리는 평생 아이 갖을 일 없을 거예요.” 국청곡은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요? 아는 척 안 하려고 했는데 지금 자백하는
비바람이 몰아친 뒤, 국청곡은 예군작에게 기대어 말했다. “아택한테 며칠 휴가 주는 거 어때요? 가정도 있고 아내가 임신 중인데 같이 있어줘야죠. 내가 당신 옆에서 같이 있으면서 좀 더 알아가고 싶어요. 정말 이상해요. 결혼식 하기 며칠전에 만났는데 당신을 사랑하게 됐다니, 이게 바로 첫 눈에 반한 건가 봐요. 근데 아직 당신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알아가면서 더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군작의 표정은 태연했다. “한 눈에 반할 때는 보통 얼굴을 보거나, 그걸…” 그가 음흉한 말을 할수록 국청곡은 마음이 더 설렜다. “짓궂어요~ 얼굴만 봤더라도 난 당신을 사랑했을 거예요. 이제 당신은 평생 내 손에서 못 벗어나요. 죽어도 당신이랑 같이 죽을 거예요!” 예군작은 쓰레기통 구석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져 잠옷을 입었다. “아택한테 휴가 줄게요. 내 옆에서 보살피는 건 좋지만 내가 장애가 있다는 건 잊지 말아요.” 국청곡은 기뻐했다. “주의할게요. 나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걱정 말아요. 맞다, 할아버님이 며칠후에 저희 보러 오신다는데, 저희가 이렇게 사랑하는 걸 보면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노인네가 온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예군작은 담배를 피며 창밖의 어둠을 보며 아무 말도 없었다. 예가네 생활은 이정도로 충분했다. 하지만 어르신이 숨이 붙어 있는 그 순간까지 그에겐 자유도 없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채 이렇게 구속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예군작의 신분이 그에게 방패가 될 때도 있었다. 그는 지금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 결혼식 이틀 전. 진몽요는 예의상 잠시 친정에 머물렀다. 이전에는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는데 하루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전에 아무리 많은 약속과 맹세를 했어도, 결혼식과 혼인신고서 만큼 확실한 건 없었다. 옷장에 걸려 있는 하얀 드레스를 보며 그녀는 약혼식 때처럼 너무 떨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결혼식만 끝나면 경소경은 그녀
전화가 연결되자 그녀는 그의 비몽사몽한 얼굴을 보고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히히, 아직 안 잤어요? 어떻게 당신도 누워있어요? 초췌한 걸 보니까 피곤한 거예요 아니면 내가 없어서 재미가 없는 거예요?” 경소경은 화면 너머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두 가지 요소가 다 있겠죠. 당신은 미리 휴가를 냈지만 난 아니거든요. 낮에 계속 회사에서 일했어요. 내일 혼인신고 하니까 엄청 신나죠?” 그녀는 마음과 다른 말을 뱉었다. “아니요, 혼인신고 보다 당신 얼굴을 보는 게 더 신나요. 하루만 안 봐도 3년은 안 본 느낌이에요.” 그는 너무 피곤했는지 눈을 감았다. “나도예요, 얼른 보고싶어요. 근데 내일 혼인신고 다 하고, 식장도 둘러봐야 돼서 내일도 바빠요.” 그녀는 그가 더 피곤할까 봐 배려해주었다. “그럼 먼저 쉬고 내일 봐요. 내일 나 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아침에 좀 더 자요. 나는 내가 운전해서 갈게요. 혼인신고 다 하고 난 바로 집에 오면 되고, 당신도 할 일 끝내고 일찍 쉬어야죠. 컨디션이 좋아야 내일 모레 얼굴도 좋아보일 거예요. 그 날은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날이 될 테니까요.” 경소경은 도저히 눈을 뜰 힘이 없었다. “알겠어요, 내일 봐요. 사랑해요.”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끊은 뒤 눈을 감고 결혼식그리고 그와의 미래를 상상했다. 사람의 인생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결혼을 한다는 건 귀한 인연이었고 그녀는 자신이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이때, 예가네 저택. 예군작은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해 있었다. 내일, 진몽요와 경소경이 법적으로 부부가 될 테지만 그는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가네 어르신이 하필 이럴 때 와서 그를 감시할 예정이었다. 이순은 잘못한 아이처럼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갑자기 예군작이 그녀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그가 그녀의 뒷통수를 잡아 책상에 눌렀다. “내가 시키는 일을 왜 그렇게 못 하는 거야? 내일, 내
이때 방문이 열리고 국청곡이 걸어 들어왔다. 이 장면을 본 국청곡의 표정은 복잡해졌다. ”군작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예군작은 이순의 머리를 놓아줬고 이순은 얼른 옆으로 비켰다. “전 먼저 나가볼게요.” 국청곡은 그녀를 보고선 예군작 앞으로 걸어가 목소리를 높였다. “방금 뭐했냐고 물었잖아요!” 예군작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의자에 등을 기대어 눈을 감았다. “방금 다 본 거 아니에요? 뭘 또 물어요? 나 기분 안 좋으니까 그런 말투로 말하지 마요.” 국청곡은 최대한 화를 참았다. “진몽요가 결혼하는 것 때문에 기분 안 좋은 거예요? 당신이 그 여자 좋아하는 거 알고 있어요. 그때 버렸던 사진 다시 주워왔죠? 끝까지 아쉬워하고 못 놓아주네요! 그 미운 오리새끼 같은 여자가 나랑 비교가 되긴 해요? 난 그래도 다 묻어두고 싶었는데 왜 꼭 내가 얘기를 꺼내게 만들어요?” 예군작은 눈을 뜨고 그녀를 노려봤다. “당신은 그 여자한테 그런 말 하고 무시할 자격 없어요. 그러니까 닥쳐요!” 국청곡은 겁도 났지만 화가 더 많이 났다. 그가 술에 취한 걸 감안해서 그녀는 더 따지지 않았고 따질 것도 없었다. “그래요, 내가 더 말 안 하면 되잖아요. 일찍 자요. 진몽요 결혼 선물은 내가 이미 준비했어요. 결혼식에 당신은 갈지 모르겠지만 난 갈 거예요. 그 사람이 제일 예쁠 때의 모습을 찍어서 당신한테 똑똑히 보여줄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시집가는 그 모습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 남자가 당신이 아닌 게 참 안타깝네요. 그러니까 망상 좀 버려요!” 말을 하고 그녀는 이를 꽉 물은 채 방에서 나가려했다. 문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그가 힘으로 그녀를 당겼고 그녀는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지만 그의 힘이 너무 쎄서 움직일 수 없었다. “뭐하는 거예요?!” 그녀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고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귀하게 커서 이런 폭력은 당해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여태껏 그녀는 이 남자가 술만 마시면 이런 줄 알았다.
국청곡이 주방에서 나오자 예가네 집사를 마주쳤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정을 숨기려 했고 오른손은 빨갛게 부어오른 왼쪽 팔목을 가렸다. “무슨 일이에요?” 집사는 형식적인 말투로 말했다. “어르신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집사가 정원으로 안내했다. 이 늦은 시간에도 어르신은 잠이 안 왔는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차를 마시면 컨디션도 좋아지고 잠도 쉽게 오지 않았다. “할아버님.” 그녀가 착한 목소리로 불렀다. 어르신은 그녀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정원에는 가로등만 켜져 있어서 빛이 밝지 않아 그녀가 부어오른 손목을 가리지 않아도 됐었다. 어르신은 어두운 하늘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 예가네에 시집온지 얼마 안돼서 궁금한 게 많을 거 같은데? 예가네는 원래 국가네보다 일이 많아.” 국청곡은 눈을 깔고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진몽요라고 아세요?” 어르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난 또 다른 게 궁금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군작이 일이 신경 쓰여? 하긴, 젊은 사람이니까 감정이 깊겠네. 그 여자는 어떻게 알았어?” 그녀는 마음이 씁쓸했다. “군작씨 지갑에서 그 여자 사진을 봤어요. 군작씨가 절 안 사랑하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 여자는 곧 결혼하는데 왜 놓아주지 못 하는 걸까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늘 그 사람은 술만 잔뜩 마시고 요 며칠 계속 저랬어요. 만약 진몽요씨가 저 사람한테 마음이 있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 분이 좋아하는 사람은 정작 경가네 도련님 경소경이잖아요.” 어르신의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허약한 손으로 의자를 꽉 잡고 있었다. ”청곡아, 군작이도 아직 어려. 젊은 때 좋아하는 사람 없는 사람이 어딨겠어? 이제 둘이 결혼했으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길 거야. 너무 신경쓰지 마, 할아버지는 늘 네 편이니까 부모님께는 알리지 말고…” 국청곡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르신은 그런 그녀를 칭찬했다. “내가 역시 사람을 제대로 봤어. 너는 그저 현모양처처럼 군작이 곁에서 잘 보살피면 돼.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 들어가서 얼른 군작이 챙겨. 술 많이 마셔서 누구라도 옆에 필요할 텐데.” 국청곡은 일어났다. “네, 그럼 저는 들어가 볼게요. 할아버님도 일찍 쉬세요.” 방으로 돌아온 뒤에야 그녀는 어르신의 말의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했다. 그에게 나머지를 다 맡겨도 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설마 진몽요를 어떻게 하겠다는 뜻인가? 그녀는 이런 일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감히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심 불안했다. 다음 날 아침, 경소경은 바로 주민센터로 향했고, 진몽요의 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자 그는 전화를 걸어 재촉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운전에 방해될까 봐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그는 어제 저녁에 진몽요가 얼마나 늦게 잤는지 몰랐을 테다. 오늘 아침에 힘겹게 일어나 강령이 그녀를 깨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직까지 늦잠을 자고 있었을 테다. 주민센터로 가는 길, 진몽요는 경소경이 기다릴까 봐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런 날에도 지각하면 그가 화를 내지 않을까? 그녀는 신호를 기다리면서 서류를 다 잘 챙겨왔는지 확인한 뒤 안도했다. 그녀는 도로 앞에 세워져 있는 낡은 봉고차 운전석에 있는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걸 알지 못했다. 그 남자의 얼굴엔 이리저리 상처가 나 있었고 보기만 해도 무서운 얼굴이었다. 초록불이 켜지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차를 출발했는데 갑자기 길에서 유모차를 끈 아줌마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놀라서 운전대를 돌렸고, 얼른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그녀가 안심하기도 전에 그 남자는 빠른 속도로 그녀의 차를 박으려 했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아줌마 때문에 봉고차도 피하지 못 하고 가드레일을 박았다. 진몽요는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분명 인도가 뒤쪽에 있었는데 이 아줌마가 갑자기 무단횡단을 했고, 이 아줌마가 아니었다면 봉고차가 그녀의 차를 박을 수도 있었다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