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대표가 일 처리를 잘 끝낸 덕분이다. 어느새 저녁 7시가 넘어 있었고 예천우는 새 차를 몰고 나왔다.곳곳에 주차된 고급차들에 그는 살짝 놀랐다.이번에 보러 온 사람들은 모두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상류 사회의 예술회 같았다.입구에 도착했을 무렵, 예천우가 들어가려 하자, 두 명의 경호원이 그를 막았다."선생님, 안녕하세요. 초대장을 제시해 주십시오."예천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경호원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직접 그를 초대했다. "연주회 가는 건데, 그래도 초대장 필요한가요?"마침 옆으로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가 지나갔다. 그들은 에천우를 힐끗거렸다. 그를 멸시하는 게 분명했다."여긴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입니다."사람들은 초대장을 꺼내 경호원에게 보내준 뒤, 안으로 입장했다.경호원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예, 안으로 들어가려면 초대장이 필요합니다.""그렇군요."예천우는 전화하고 싶었지만, 어르신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전 예천우라고합니다. 초대 명단에 이름 있을 건데, 관리자한테 확인해 보는 게 어때요?"경호원은 예천우의 평범한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그를 내쫓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예의를 갖추고 있는 거다. "안 됩니다. 초대장 없이는 입장이 불가합니다."예천우는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들어 전화하려 했다.이때, 임완유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임완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예천우가 이런 자리에 아무렇게나 입고 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임완유의 목소리를 들은 예천우는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그의 아내 임완유다.임완유는 세련되고 화려한 롱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게다가 아름다운 그녀의 용모와 고상한 분위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그녀가 등장하자마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그녀의 곁에는 잘생긴 유걸이 있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유걸은 아주 댄디해 보였다.다만 예천우와 눈이 마주친 뒤,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성심껏 준비한 임완유와
"너 정말 뻔뻔하구나!"초대장도 없이 빈 손으로 찾아왔다는 얘기에 임완유는 어이가 없었다.창피한 꼴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급하게 자신의 초대장을 꺼내 말했다."저한테는 초대장이 있는데, 같이 데리고 들어가도 되죠?""안됩니다. 초대장을 들고 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경호원은 고개를 저었다."아..."예천우를 향한 비웃음 가득한 주위 사람들의 눈빛을 읽은 임완유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유걸, 먼저 들어가있어. 난 조금 있다가 갈게.""예천우, 따라와!"그녀는 일단 예천우를 다시 데려가려고 했다."어디 가?"예천우는 어리둥절했다."네가 보기에는?"임완유는 할 말을 잃었다. 본인 탓인 줄도 모르고 이렇게 해맑은 예천우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난 도무지 모르겠어.""잔말 말고 따라와!"임완유는 단단히 화가 났다.그런데 바로 이때, 옆에 있던 한 중년 남자가 둘의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다가가 물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혹시 예천우 씨 맞으세요?""네, 그런데요?""그럼 강 선생에 대해서도 잘 아시나요?""물론이죠. 그 분이 저를 초대한겁니다.""그렇죠? 선생님께서 직접 초대한 게스트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저희 부하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 약간 실수를 한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얼른 들어오세요. 오늘 밤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는 모두 멍해졌다.이렇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젊은이가 뜻밖에도 직접 초대된 게스트라니, 심지어 누군가가 직접 이렇게 맞이를 해주다니.임완유 또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지? 예천우가 게스트라고?유걸 또한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네, 감사합니다."예천우는 살짝 웃으며 임완유를 향해 인사했다."난 먼저 갈게!"이게 무슨 일이야? 임완유는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 자식 봐라, 초대 받아놓고 날 속여?까불대는 그의 모습이 매우 얄미웠다.근데, 대체 어떻게 게스트로 초대된거지
유걸은 한참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다가가 끼어들었다."이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근데 과연 피아노 곡들을 잘 감상할 수 있겠는지 모르겠네요.""들어본 적은 많지 않긴 하지만 분명히 그쪽보다는 적지 않을거예요."예천우는 일부러 임완유 앞에서 자신에게 도발을 걸어오는 유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뜻밖의 반격에 유걸은 당황했다. 예천우의 말대로 그는 피아노에 대해 아는 게 전혀없었다."허세 부리지는 마시죠.""허세 아니고, 저 진짜 잘 알거든요." 예천우는 여유롭게 웃었다."그럼 제가 간단한 테스트를 해볼가요?""됐거든요. 저는 다른 사람한테서 시험 받는거 별로 안 좋아해요." 예천우는 가볍게 거절했다.뜻밖의 신경전에 임완유는 저도 모르게 둘을 번갈아보았다.한편으론 생각에 잠겼다.그녀는 왠지 모르게 예천우와 함께 있으면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유걸과 함께 있을 때랑은 달리 덜 눈치가 보였다. 임완유의 이런 마음을 유걸도 진작에 눈치를 챘다.그리하여 더더욱 화가 났다. 자신이 공을 들여 짠 판이 계속하여 이렇게 흐트러지게 되니. 그는 곧이어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곧 연주회가 시작될거야. 얼른 가서 자리에 앉자.""응, 그래."두 사람이 자리를 찾으러 떠나자,예천우도 곧바로 함께 했다.이를 본 유걸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쪽은 모처럼 이렇게 화려한 곳에 온 것 같은데,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구경이나 하시죠?” "연주회가 시작된다 하잖아요. 저도 들을거거든요." 예천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유걸은 그가 얄미워 미칠 지경이었다.이번 연주회의 좌석 배치는 일반 연주회와는 달랐다. 기본적으로 모두 세 좌석에 작은 둥근 탁자 하나씩 배치되어있었다.가장 큰 포인트는, 앞의 첫 줄에 있는 몇 개의 원탁을 제외하고는, 다른 원탁들은 모두 마음대로 앉을 수 있는 좌석들이었다. 심지어 넉넉하게 여분의 자리도 남겨뒀었다.그리하여 이번 연주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표를 구하기가 어려웠다.탁상 옆에 도착하자마자 임완유는 자연스레
피아노에 대해 잘 모르는 유걸이었지만 그는 괜히 시비를 걸고 싶었다. 이렇게 큰 연주회에서 오프닝 무대를 장식할 수 있는 실력의 고수라면 틀림없이 뛰어난 실력자일텐데 어떻게 그저 보통이라고 평가를 할 수가 있지?다들 기립박수 하는 거 안 보여?"무식한 놈."예천우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더이상 유걸을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러자 유걸은 매우 심기가 불편했다.제3자로서 지켜보고 있던 임완유는 더 이상 참다 못해 호통을 쳤다."예천우, 너 말 조심해.”"됐어. 딱 보니까 피아노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나한테 들켜서 일부러 나한테 도발을 하면서 센 척 한거야. 민망하면 그럴 수 있지 뭐."유걸은 옆에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그러나 임완유는 마치 바보를 보듯이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사실 예천우의 말이 맞긴 한데, 정말 피아노에 대해서 모르는건 너인 것 같네. "완유야, 굳이 그렇게 날 볼 필요는 없어. 비록 천우 씨가 일부러 나쁜 의도로 날 건드리긴 했지만 내가 그렇게 뒤끝 있는 성격은 아니라서 걱정 마. 어찌 됐든 천우 씨는 네 남편인데 내가 체면을 세워 줘야지."유걸은 점점 허세를 떨어갔고, 이렇게 하면 임완유가 감동을 받을 줄 알았다. 정작 임완유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유걸이 매번 자신을 도와준걸 생각하면 차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일단 연주회나 계속 듣자."멍청한 놈.예천우도 한심하기 그지 없는 유걸 때문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그 영문을 알리가 없던 유걸은 괜히 기분이 나빴지만 따질 수는 없어 계속 음악을 감상하기로 했다.곧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사람은 해외파 피아니스트였다. 이렇게 점점 시간이 흘러갔다.곧 마지막이 다가올 시점, 사회자가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음으로 모실 분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맨틀의 공연입니다. 뜨거운 박수로 환영해주세요!”그러자 장내에서는 열렬한 박수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다들 이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필경 당대 세계 제일
"전혀 없습니다.""그래서 제가 예측하기에도 이 곡은 틀림없이 서양의 피아니스트가 창작한 것일거란 말이죠.""다만 국내 사람들은 본인들의 체면을 살리는 것만 좋아해서 허세도 자주 떨고, 심지어는 이렇게 서양 피아니스트의 곡도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고."맨틀이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갑자기 웅성대기 시작했다.이 곡은 국내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아는 곡이었다. 용국 고대로부터 전해져온 곡으로서 몇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믿기지 않는 듯한 얘기에 사람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는 일일이 일어서서 그를 노려보았다.임완유조차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어릴 때부터 TV에서 봐왔던 스타가 이렇게 자신의 모국을 모욕할 줄은 몰랐다.아무리 대단한 피아니스트라 해도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예천우 또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에 강 선생이 말했던 것처럼, 맨틀은 역시나 용국에 대해 차별을 하고 있었다."저 병신, 대체 뭔 소리를 지껄이는거야? 이 곡은 분명히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거라고.""그러게. 아무리 본인이 가장 잘 연주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사실을 왜곡하면 안되지.”“오래동안 좋아해온 연주자였는데, 이런 쓰레기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많은 사람들의 분노에도 맨틀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득의양양하게 계속하여 조롱만 했다."물론 저도 여러분들이 틀림없이 인정하지 않을거란걸 잘 압니다.""그럼 이렇게 하죠. 여러분 들 중 누구라도 여기에 올라오서 방금 제가 연주한 곡을 저보다 더 완벽하게 표현해내면 그때는 이 곡이 여러분의 것이라고 인정하겠습니다.""맞아. 저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직접 실력으로 증명해봐.""나도 사실은 이 곡이 용국의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을 해왔어. 정말로 맞다면 왜 용국에는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없는 걸까.""그렇지. 내가 봐도 이건 용국이 서양 피아니스트의 작품을 표절하고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 같아.""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게 아니라 그냥 억지를 부리네. 실력도 안
예천우의 갑작스런 돌발 행동에 돌란 임완유는 급히 말렸다."너 뭐 하는거야?"다급했던 나머지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예천우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사람들은 시선을 자연스레 그에게로 돌렸다.사람들은 모두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하지만 예천우는 오히려 태연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나서야지.""그게 뭔 소리야?""네가 이렇게 가만히 참는걸 난 도저히 못 보겠어. 내가 올라가서 제대로 한 수 보여줄거야.""안돼. 싸움 벌일 생각이면 절대 안돼." 임완유는 평소에 누구보다도 폭력적이던 예천우가 또 이성을 잃을가봐 불안했다. 그러자 예천우가 씨익 웃었다."패버리겠다는게 아니라 실력으로 저 놈들을 이길거야.""걱정 마. 넌 그냥 지켜보기만 해."이 말을 끝으로 예천우는 곧바로 무대 위로 걸어갔다."너 뭐하는거야!"임완유는 막무가내인 그를 미처 붙잡을 겨를조차도 없었다.이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도 당연히 크게 놀랐다."저 사람, 대체 뭐하려는거지?""아까 저 여자가 한 말 못 들었어? 올라가서 때리려는거겠지.""에이, 아닐거야. 설마 맨틀이랑 한 판 붙으려고 하겠어?""그건 말이 안돼. 얼핏 봐도 맨틀보다 더 셀 것 같지는 않아.""정말 불가능하다 해도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 저 용기만으로도 난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해.""그래도 고작 용인이 뭘 할 수가 있겠어. 그 누구도 감히 맨틀이랑 겨룰 수는 없어.""이렇게까지 겁 없을 줄은 몰랐네. 어떻게 보면 괜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 되는거 아니야?""어휴, 내가 다 창피하네."더이상 상황을 수습할 수가 없었던 임완유는 말썽만 피워대는 예천우를 생각하면 연신 한숨만 나왔다. 다시는 어딜 가든 절대 같이 데려가지 않을거야. 한편 유걸은 그런 예천우를 비웃으며 겉으로는 임완유를 달래주었다."너무 걱정하지 마. 천우 씨가 정말로 피아노를 잘 칠 수도 있잖아.” "잘 치긴 무슨... 그 손가락이 어딜 봐서 피아노를 칠 손가락이야? 설령 진짜 칠 줄 안
모두들 벙쪄있었다. 이렇게 설쳐도 되나?그러나 예천우의 무례함을 질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환호성을 질렀다. “잘한다!”비록 다들 피아노 실력은 그가 상대방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데에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주로 너무 어려서 아무리 봐도 상대방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당, 당신 참 건방지군. 용국이 예의지국이라고 들었는데 예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군.” 분노에 찬 맨틀이 한쪽으로 밀쳐졌다.“예절은 벗에게 갖추는 것이지, 당신 같이 능력이 좀 있다고 해서 용국을 무시하는 쓰레기한테 갖추는 게 아니거든요.”예천우의 얼굴은 분노의 기색이 없이 몹시 평온해 보였지만 말은 심히 날카로웠다.이 말이 나오자 모두들 더욱 열렬히 호응하면서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다만 곧바로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말은 멋지게 잘했으나 피아노 연주는 어찌할까.맨틀은 화가 잔뜩 나서 예천우를 매섭게 째려보면서 그가 망신을 당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말을 아무리 번지르르하게 해도 소용없다. 결국에는 실력으로 승부를 본다.임완유는 예천우의 말을 듣고 몹시 흥분되었으나 이제 곧 피아노 연주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풀이 죽었다.유걸이 옆에서 속삭였다. “예천우 씨 용기는 가상하나, 경솔하게 올라가서 말은 멋지게 해놓고 그다음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참.”“지면 우리 용국 망신을 시키는 게 아니냐. 만약 처절하게 완패하면 그건 전 용인의 얼굴에 먹칠해서 용국의 죄인이 되는거야.”“설마, 아닐 거야.” 임완유는 눈살을 찌푸렸다.“아니긴 왜 아니야, 인터넷에 업로드되지 않아 다행이지, 아니면 반드시 전 국민에게 손가락질 받을 거야.” 유걸이 말했다. “역시 너무 어려. 충동적이야.”“어쨌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임완유의 말에는 불쾌함이 섞여있다.그러나 유걸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나불거렸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야. 인내심도 우리 용국의 훌륭한 품성이지. 곰
이때 장내는 고요함만이 흐를 뿐이다. 모두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에 취해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마침내, 누군가 먼저 정신이 들어 두 손을 들어 미친 듯이 박수를 쳤다.그의 행동은 나비효과 마냥 모두를 이끌었다.결국,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그 소리는 연주홀 전체를 흔들었다!“와, 닭살 돋아!”“시발 너무 좋아!”“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어!”“시발, 내 아랫도리를 걸고 맹세하는데, 이건 절대 내 인생에서 들어 본 제일 완벽한 피아노곡이야. 반박 불가!”“대박, 완전 대박!”“이 뻔뻔한 서양 피아니스트들아, 잘 봐둬, 누가 우리 용국에 탑 피아니스트가 없다고 했냐!”이 시각, 현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아올랐다.원래 조용하던 연주홀이 순식간에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해졌다.유걸은 완전히 넋을 잃었다.예천우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광대는 자신이었다.시발.그는 줄곧 예천우가 피아노를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매우 능숙할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를 제치고 모든 사람들의 인정까지 받았다.어떻게 이럴 수가.그 시골뜨기가 어떻게 이런 고급스러운 예술을 안다는 말인가.이건 상위층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닌가?놀라기는 임완유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놀아움 뒤에는 흐뭇함이 있었다. 특히 맨틀의 기세를 팍 꺾은 흐뭇함.이 순간, 방금 전 예천우가 한 말이 뇌리에 스쳤다.그는 거짓말하지 않았어. 다 진짜야.자신의 순결을 뺏어간 이 양아치 새끼가 이번에는 끝내 거짓말을 하지 않았구나.임완유가 흥분하고 설레는 모습을 보니 유걸은 질투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시발, 빌어먹을 예천우, 죽여버리고야 말겠어.지난번에 장혁이 예천우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말을 했었다. 심지어 그의 패거리를 반쯤 죽여놔 지금 다들 병원에 누워있다고 했다.그가 잘 달랬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장혁에게 주식으로 사기 친 일을 들킬 뻔했다.하지만 누군가 귀띔해 준 이상 얼마 못 갈 것이다. 다만 그가
“그런데...” 유사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지만 예천우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그만해요. 그깟 돈 조금 주고 끝난 걸로도 저쪽은 행운인 거죠. 신향 씨와 사라 씨가 더 물고 늘어지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할 일이에요.”“...”두 여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예천우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는 얘기할 수 없었다.“그럼, 두 번째 일은 뭐예요?” 예천우가 다시 물었다.“그게...” 이번엔 이신향이 말을 꺼냈다. 표정이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곧 이를 악물고 말했다.“저... 천우 씨가 제 남자 친구 역할을 잠깐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예천우는 순간 멍해졌다. ‘남자 친구 역할? 지금 그럴 여유 없는데...’ 그는 곧장 떠오른 일정이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동성시를 떠나야 했고 괜히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 여유는 없었다.이신향은 예천우의 표정이 살짝 굳자 급히 덧붙였다.“진짜 어쩔 수 없어서 그래요. 오늘 저희 부모님이 동성시에 오시는데요. 제가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는 맞선 상대를 같이 데리고 오신대요.”“제가 남자 친구가 없다고 하면... 강제로 그 사람이랑 약혼시키려 할 거예요.”예천우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그렇게까지 강요하셔요? 부모님이?”“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사람이에요. 전엔 항상 제 뜻보단 가족 생각부터 하게 됐었고... 오늘 오후에 도착하신다니까 진짜 시간이 없어요.”이신향의 목소리는 애타게 떨려 있었다.그녀는 잠시 부모님을 떠올렸다. 대학 등록금부터 생활비까지 모든 걸 감당해 주기 위해 그들은 가진 걸 다 털었고 빚까지 졌었다. 심지어 그녀의 동생은 대학도 못 갔기에 그런 부모에게 대놓고 맞서고 싶지 않았다. 지금껏 벌어들인 돈도 거의 다 집으로 보냈을 만큼 그녀는 그만큼의 빚을 스스로에게도 안고 있었다.예천우는 문득 유사라의 일도 떠올랐다. 그때도 단순히 돕는다고 나섰다가 일이 꽤 복잡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저는 내일 아침에 동성시 떠나야
“그래 맞아요.”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물론 지금은 백가의 실질적 수장인 백강호가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만 굳이 두 사람에게 그런 사소한 일을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예 대표님, 진짜... 너무 멋있고 대단하세요!” 두 여자는 감탄을 넘어 아예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 찬 표정이었고 예천우를 바라보는 눈빛은 말 그대로 반짝반짝 별이 떠다니는 듯했다.그 강한 시선에 예천우는 도리어 살짝 당황했다. “아니, 그냥 백씨 가문 하나 상대했을 뿐인데... 그 정도까진 아니잖아요.” 그의 말에 이신향과 유사라는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백씨 가문뿐이라고요? 천우 씨, 그게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두 사람은 동시에 쓴웃음을 지으며 혀를 내둘렀다.“그건 백씨 가문 사람들이 세상 제대로 못 봐서 그런 거지. 이제 알았잖아요. 이 회사는 제가 그냥 공짜로 받은 거예요. 그러니 부담 가지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마음껏 부딪쳐 봐요. 그리고 이 회사엔 의외로 능력 있는 인재가 꽤 있어요. 그런 사람들 잘 묶어서 잘 써봐요.”“네, 최선을 다해볼게요.” 이신향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예천우는 또다시 뭔가를 휴대폰으로 전송했다.“자, 그리고 이거 하나 더.”두 사람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이건... 뭐예요?” 둘이 파일을 열어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그 안엔 백성 그룹 내 중간 간부 이상 모든 인물의 성향, 인간관계, 숨겨진 약점까지 아주 자세하게 정리돼 있었다.그야말로 일대일 맞춤형 인사 전략 자료였다.‘이 정도면... 회의실에 앉아서 사람들 손바닥 들여다보는 느낌이잖아.’ 이신향은 가슴이 벅차올랐다.‘천우 씨가 이걸 우리 위해 준비한 거야?’ 그 배려와 준비에 감동이 밀려왔고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진짜... 몸 바쳐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야. 이것만 있으면 나도 어쩌면 잘 해낼 수 있겠지.’그녀는 마음속으로 절절하게 생각했고 유사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감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요.”이신향과 유사라는 여전히 상황을 정리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둘 다 왜 이렇게 긴장하고 있어요? 제가 뒤에 있으니까 그냥 믿고 마음껏 해봐요.” 예천우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 “신향 씨, 자신은 있어요?”“없어요.”“...”“진짜 없어요!”이신향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제가 관리직을 못 하는 건 아닌데 이건 너무 갑자기 닥친 일이라... 뭐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어요.”“걱정하지 마세요. 마두석이 앞으로 일주일간 신향 씨를 잘 보조해줄 거니까요.” 예천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네? 마 본부장이요? 능력은 있는데 좀... 그랬잖아요.”“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이미 단단히 말해놨어요. 아무리 용기를 쥐어짜도 감히 신향 씨한테 손가락 하나 못 댈 거예요. 신향 씨 말 잘 듣고 신향 씨가 총괄할 수 있도록 제대로 도와줄 겁니다.”예천우는 말을 덧붙였다.“게다가 제가 마두석한테 딱 일주일 기한 줬어요. 그 안에 신향 씨를 제대로 된 본부장으로 키워내지 못하면... 그땐 인생 끝이라고 말했어요.”그 말에 이신향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예 대표님이... 날 위해서 이 정도까지 준비했다고?’그가 자신 같은 한낱 팀원을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모습에 이신향의 눈빛이 떨렸다. “예 대표님, 정말 감사해요. 그렇게까지 도와주신다면... 저 진짜 잘해볼게요.”무엇보다 이번 기회는 예천우에게 다가갈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이번에 제대로 자리 잡기만 하면... 예 대표님 곁에서 더 가까이... 어쩌면...’지금까지는 그저 회사 말단 직원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백성 그룹의 총괄 본부장이었다.그녀의 마음속엔 말 못 할 설렘이 살며시 피어올랐다.‘혹시... 나도 예 대표님의 여자가 될 수 있을까?’“좋아요. 바로 이런 패기가 좋지요.” 예천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사라 씨는 원래 영업 쪽 베테랑이잖아요. 예전에도 영업팀 관리도 해봤으니 굳이 채광수한테 따
이 말이 떨어지자, 회의장 안은 다시 한번 정적에 휩싸였다. 거기 모인 사람 중 절반 이상은 도대체 누가 이신향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듯이 이신향은 회사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이들도 있었다.사실 당사자인 이신향과 유사라조차 충격에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봐도 이런 전개는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순간 이신향은 조금 전 예천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작은 일인데 신향 씨랑도 좀 관련이 있어요.”‘그 작은 일이... 설마 이거였던 거야?’물론 승진이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쳐 갔지만 회사 상황이나 인사 구조상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는 곧 다른 의미로 해석했었다.‘그런데 이게 정말 승진이라니? 그것도 총괄 본부장?’“이걸 작은 일이라고 한 거예요. 예 대표님?”이신향은 마음속으로 외치고 싶었고 옆에 있던 유사라도 상황은 똑같았다.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예 대표님... 우리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닌가요...’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발표에 반발이 없을 리 없었다. 회의장 뒤편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채널 사업부의 부장 황유한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예 대표님, 저는 대표님의 결정에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이신향 본부장님은 아직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셨고 회사 구조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셨다고 보기엔 이르지 않나 싶어 이렇게 의견을 드립니다.” 그는 말을 조심스레 이어갔지만 분명히 불편한 속내가 담겨 있었다.예천우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아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름이... 황유한 씨 맞죠?”“예, 예 맞습니다.” 황유한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이름 참 좋네요.” 예천우는 그저 웃는 얼굴로 말을 잇고 있었다.“근데 황 부장님, 지난 몇 년 동안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본인은 잘 아시죠?”그 말에 황유한의
바로 그때였다. 회사 전체 직원들에게 회의 소집 메시지가 전달되었고 장소는 다름 아닌 1층 대회의실이었다.모든 인원이 반드시 참석하라는 지시까지 함께 내려왔다.이신향과 유사라는 잠시 멍해졌다.‘갑자기 전 직원 소집 회의? 무슨 일이지?’직감적으로 두 사람은 이번 일 역시 예천우와 관련이 있다고 느꼈다. ‘혹시 아까 마두석이랑 무슨 중대한 거래라도 한 건가?’아무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사내 메신저에 회의 알림이 쏟아졌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퍼지며 10분도 되지 않아 전 직원이 대회의실에 모이기 시작했다.모두 웅성이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추측하기에 바빴다.잠시 후 예천우가 마두석, 채광수와 함께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런데 직원들은 곧 눈치를 챘다.마두석과 채광수, 두 사람의 얼굴빛이 심각하게 창백했고 걸음걸이도 힘이 없었다. ‘저 사람들한테... 뭔가 엄청난 일이 터진 게 틀림없어.’그 사이 마두석이 마이크 앞에 서더니 형식적인 인사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여러분께 새로 부임하신 백성 그룹의 실질적 대주주이자 앞으로 우리 회사를 이끌어갈 새로운 대표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바로 이분... 예천우 대표님이십니다. 전 백씨 가문에서 보유하고 있던 모든 지분을 예 대표님께 양도하였습니다. 다 함께 박수 부탁드립니다.”이 말이 떨어지자 회의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모두가 충격에 말을 잃었다.백씨 가문이 회사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백씨 가문이... 지분을 전부 넘겼다고?’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이신향과 유사라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진짜야? 예천우 씨가... 우리 회사 대표가 됐다고?’이내 두 사람의 얼굴엔 기쁨과 놀라움이 뒤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이렇게 되면... 우리 또다시 예 대표님 회사에서 일하게 되는 거잖아?’ 그 사실만으로도 둘은 왠지
두 여자는 도무지 무슨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결국 더 생각해 봐야 의미 없다는 걸 깨닫고 그냥 예천우가 말한 대로 곧 알게 된다는 말만 믿기로 했다.하지만 이신향은 여전히 마음이 복잡했다.‘혹시 천우 씨가 내 부탁 들어주려는 걸까?’이제 와서 다른 방법도 없고 그녀로선 더 이상 손쓸 길이 없었다....한편 이신향이 자리를 떠난 후 예천우는 조용히 사무실 문 앞에 섰고 문을 그대로 밀고 들어섰다.그런데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화려하게 치장한 여자가 마두석의 무릎 위에 앉아 서로 정신없이 입을 맞추고 있던 것이다.예천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그 순간, 등을 보이고 있던 마두석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불쾌하게 외쳤다.“씨X, 누군데 막 들어와? 문도 안 두드리고!”그는 자기 사무실에 아무도 감히 그냥 들어오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방금 유혹에 못 이겨 문 잠그는 것도 잊고 말았다.하지만 설마 진짜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 줄이야...“허허, 잠깐 안 본 사이에 마 대표는 아주 바쁘시네요? 위세가 대단하십니다.” 예천우가 조소 섞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그제야 마두석은 돌아봤고 그 순간 그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했다.예천우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예, 예 대표님... 죄,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몰라뵈었고... 방금 그건 정말...”“됐고.” 예천우는 말을 끊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오늘 내가 여기 온 이유는 하나야. 네가 앉아 있는 본부장 자리... 이제 그만두시지.”“제, 제발요 예 대표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기회를...”마두석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간절한 표정으로 사정사정하며 손으로는 자기 뺨을 연달아 세게 때렸다. 대표 자리는 너무나 달콤했기에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 비서는 충격에 얼어붙었다.저렇게 위세 높던 마두석이 예천우 앞에서 이렇게까지
“제가 도와준 거 고마워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 건 신경 안 써도 돼요. 별일도 아닌데요.” 예천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감사 인사도 있지만... 사실 드릴 말씀이 조금 있어요.” 이신향의 목소리는 약간 조심스러웠다.“그래요? 오늘 오전엔 회사에 있는 거예요?”예천우는 마침 머릿속에 떠오른 일이 있었다. 바로 마두석을 정리할 타이밍이 온 것이다.“네, 근데 왜요?”이신향이 되묻자 예천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도 마침 너희 회사에 볼 일이 좀 있어서요. 가서 얼굴 보면서 얘기나 해요.”전화를 끊은 뒤 이신향은 잠시 멈칫했다. ‘천우 씨가 회사를? 무슨 일이 있는 거지?’하지만 이내 며칠 전 어떤 이가 백씨 가문조차 예천우 앞에선 꼼짝 못 한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그리고 실제로 그녀와 유사라가 회사로 돌아왔을 때 평소 고압적이던 마두석의 태도는 정반대로 바뀌어 있었다.‘설마... 예천우 씨랑 마두석 본부장님이 아는 사이야?’게다가 마두석이 그토록 예천우를 두려워하는 걸 보면 틀림없었다....예천우는 전화를 끊고 바로 백성 그룹으로 향했다. 건물 앞에 막 도착했을 때 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발신자는 바로 정우환이었다.“주인님, 예웅남이 모레 밤에 움직일 예정입니다.” 전화 너머에서 정우환이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생각보다 빠르군.”예천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예웅남 쪽에선 예 어르신께서 이미 주인님의 귀환을 준비하고 아예 족장 자리를 주려 한다는 말을 듣고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합니다.”정우환의 말에 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이제 이 모든 걸 끝낼 시간이야.” 전화를 끊은 그는 즉시 절정 노조와 함께 갈 비행기 표 두 장을 예약하도록 지시했다.그리고 바로 남궁은서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어머니가 뭘 준비하든 그는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그다음으로 양박군에게 연락해 화간종의 노조 원은희를 데리고 용도로 오게 하라 지시했다.또한 원
이 말이 떨어지자 박민정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지금까지 사부님인 멸정 사태는 언제나 남자는 다 똑같은 쓰레기라며 가까이하지 말고 멀리하라 가르쳐왔는데 이제 와서 직접 남자에게 다가가라고 하다니... 아무리 임무라지만 이건 정말 충격이었다.그녀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고 멸정 사태는 그런 제자의 반응을 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라. 너더러 정을 주라는 말이 아니야. 네 외모라는 무기를 활용하라는 뜻이지. 절대 감정에 휘둘리지 마. 만에 하나라도 진심이 생기면 너는 지금까지 쌓아온 내공이 모두 허사가 될 것이고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옥패의 힘은 그녀에게도 크나큰 유혹이었다. 만약 그것을 손에 넣는다면 자신의 무공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것이며 진정한 천하제일의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세상의 남자들 따위가 아닌 여인이야말로 이 세상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멸정 사태 본인도 강하긴 했지만 결코 무적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비룡위의 창시자인 용진성만 해도 이미 오십 년 전에 육지 신선 경지에 도달했고 그녀는 아직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더군다나 최근엔 모든 실무를 청룡에게 맡기고 자신은 온전히 내공 수련에 몰두하고 있다고 하니 그 실력은 더욱 깊이를 알 수 없었다.“알겠어요.”박민정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부터 멸정 사태에게 길러졌고 사부님의 말은 거역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난번 예천우를 한 번 본 적 있었던 그녀로서는 그 남자에게 호감까진 아니더라도 혐오감은 없었기에 접근하는 것 자체는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만약 다른 남자였다면 단호히 거절했을 테지만 예천우라면 그래도 억지로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좋아. 단... 절대 감정에 빠져선 안 돼. 더더욱 관계를 맺는 일은 있어선 안 되고.” 멸정 사태는 마지막까지 우려를 감추지 못한 채 신신당부했고 박민정은 조금 놀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양서은은 순간 멍하니 예천우가 자리를 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렇게 갑작스레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자 그녀의 눈빛도 서서히 어두워졌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이미 거절당한 기분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예쁘지 않아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입은 옷차림이며 메이크업이며 회사에 있던 남자 동료들만 해도 눈을 떼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예천우는 오직 임완유에게만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가볍게 웃는 얼굴 뒤로도 감정 하나만을 지켜가는 지독할 정도로 한 사람에게만 진심인 남자, 예천우는 그런 남자였다....예천우가 화장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완유가 사무실에서 나왔다. 일이 다 끝나서가 아니라 그녀는 그냥 예천우가 이토록 오랜 시간 자신 곁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게 신경 쓰였다.‘천우는 정말 좋은데... 그게 문제야. 너무 여자한테 잘해. 그래서 더더욱 안심이 안 되네.’괜히 남겨두고 바쁜 일만 하게 둘 순 없어서 얼른 나와 함께 돌아가기로 결심했다....그 시각, 용도의 비룡위 본부.“뭐라고? 예천우가 이미 육지 신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게다가... 특수한 에너지의 도움까지 받았다고?”천도 용진성의 눈빛에 반짝이는 흥분이 스쳤다.“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황상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예천우의 사부님인 옛 용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너는 왜 지금까지 아무 연락도 안 한 거야?”“지금 연락하면 바로 의심받을 겁니다. 오히려 역효과나 나타날 수 있죠.” 옛 용왕은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조만간 천우는 분명 용도에 올 거니 그때 직접 만나 확인할 생각입니다.”“지금은 움직이지 않을 거야?”용진성이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며칠 차이로 달라질 건 없어요.” 옛 용왕의 눈빛은 어두워졌다.“정말 예천우가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무조건 천우를 손에 넣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훗날 우리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