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예천우마저 쉽게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독고살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양박군이 이렇게 강해진 것을 본 독고살도 당연히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그리고 갑자기 예천우의 앞에 나타나 검은 비수를 하늘에 날렸다.예천우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 검은 비수는 예천우에게 위협적이지 않았다.하지만 종사 아래의 경지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예천우는 오른손을 쓱 휘둘러 가볍게 독고살을 물리쳤다. 독고살의 귀영미종이나 궤살술법은 모두 아주 훌륭했다.독고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내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던 술법은 예천우 씨 앞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었네.’하지만 그럴수록 독고살은 더욱 노력해야 했다.독고살의 실력에 만족한 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주 좋아. 계속 열심히 수련해. 나중에 너희들이 종사의 경지에 진입하면 천하에 너희들의 암살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그러자 독고살이 되물었다.“예천우 씨도 피할 수 없어요?”“날 죽이고 싶어?”예천우가 물었다.그 말을 들은 양박군의 몸에는 무서운 기운이 맴돌았다. 비록 그는 참고 있었지만 조금 흘러나온 기운마저도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독고살은 몸을 약간 움찔하더니 다급하게 말했다.“그럴 리가요. 저는 단지 예천우 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을 뿐이죠.”예천우는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다면 넌 적어도 종사 후급의 실력을 갖춰야해. 그러면 조금이나마 알아차릴 수는 있을 거야.”“아... 네.”그 말을 들은 독고살은 놀라서 멍하니 서 있었다.예천우의 말뜻은 지금 그는 적어도 종사 후급의 경지였다. 심지어 세상에서 보기 드문 종사 절정의 경지일 수도 있었다.전 세계에서 용문의 전 용왕, 서양의 교황청 교주, 그리고 지금도 세계 최강자인 용도 수호신청 외에는 그 누구도 종사 절정의 경지가 되지 못했다.양박군은 놀란 나머지 눈에서 더욱 존경의 빛이 나타났다.
그 말을 들은 양박군은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했다. 죽고 싶은 사람은 보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죽으러 찾아온 사람은 처음 봤다.독고살처럼 평소에 웃기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도 심지어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살짝 실룩거렸다.화경 중급인 주제에 그들 앞에서 특히 예천우 앞에서 잘난 척하니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왕 어르신은 그들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력이 막강한 줄 알았다. 주로 화경 중급이라는 실력은 그들과 비기면 너무 약했기에 예천우 등 사람의 실력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왕 어르신은 화가 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감히 웃어? 원래는 고통 없이 편히 보내려고 했는데 더는 안 되겠어.”예천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어르신의 나이를 봐서라도 살 기회를 한번 드리겠어요. 지금 바로 꺼지세요. 돌아가 공손진에게 다시는 날 건드리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공손진도 처참하게 죽을 수 있어요.”“건방진 자식! 너희들을 편히 보내주려고 했는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해줄게.”예천우의 말을 들은 왕 어르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공손 가문은 천해시에서도 으뜸가는 실력을 갖추었다.용도의 명문 집안이 아닌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왕 어르신은 이렇게 애송이 같은 젊은이가 자신 앞에서 공손 가문을 모욕했으니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양박군은 보다 못해 예천우를 바라보며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하지만 예천우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왕 어르신은 그들이 자신을 무시하자 차갑게 말했다.“너희들이 아직 내 실력을 전혀 모르는 것 같군. 똑바로 들어. 난 이미 화경 중급이라고. 이 세상에 화경 중급이 되는 강자는 적도고 적지. 천해시에도 거의 없어. 이제 화경 중급의 무서운 실력을 보여줄게. 눈 뜨고 잘 봐!”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오른발을 땅에 세게 딛고 패기 넘치게 양박군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이 녀석이 가장 건방지게 웃었어.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줘야겠어. 건방지고 유치한 자식들, 이
‘이건 위험해!’다만 왕 어르신이 반응하기도 전에 놀랍고 무서운 힘이 몸에 느껴졌다.“으악!”무서운 실력을 갖췄다고 하는 왕 어르신도 참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 공포의 힘 때문에 그의 한 손 전체가 전부 부러졌고 심지어 어깨뼈까지 부러졌다. 그래서 왕 어르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예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양박군 이 녀석아, 살살해야지. 내 집을 더럽히면 어떡해?’예천우가 오른손을 아주 가볍게 움직이자 주변에 뿌려졌던 왕 어르신의 피와 살들이 순식간에 모여서 쓰레기통에 떨어졌다.예천우를 지켜보던 독고살은 눈이 흔들렸다. 이 수법만 봐도 예천우의 무서운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네가, 네가... 어떻게 가능해!”왕 어르신은 자신의 몸을 몇 번 누르면서 피를 멈추게 하려고 애쓰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박군을 바라보았다.왕 어르신은 이 눈앞에 평범해 보이는 젊은이가 아무렇게나 손을 들어 주먹을 휘둘렀는데 심지어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금시초문이었다!양박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천우 씨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면 저도 방금처럼 30% 힘이 아닌 전력을 다했을 겁니다. 그러면 아마 어르신은 이미 죽었겠죠.”‘뭐라고? 세상에? 겨우 30%의 힘만 썼다고?’왕 어르신의 안색은 아주 안 좋아졌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무섭고 강한 존재를 건드렸는지 알게 되었다.‘이런 실력이면 적어도 종사급이겠는데. 하지만 이렇게 젊은 종사가 있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그 순간 왕 어르신은 마침내 홍연석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알았다. 이렇게 무서운 고수 앞에서 홍연석의 실력은 그야말로 보잘것없었다.홍연석은 그렇다 치고 지금 왕 어르신도 빨리 도망쳐야 했다.도망가지 않으면 반드시 오늘 여기서 죽을 것 같았다.다행히 지금 그의 뒤에는 바로 창문이 있었고 동시에 그와 세 사람은 거리가 꽤 멀었다.가장 중요한 건 양박군은 그가 못 도망치게 다리를
“너, 너희들은 도대체 무슨 사람이야?”공포에 질린 왕 어르신이 놀라서 물었다.“지금 그런 걸 물어봐도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예천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방금 분명히 살길을 줬는데 어르신께서 원하지 않았던 거죠. 이렇게 된 이상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그 말을 들은 왕 어르신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왕 어르신은 상대방이 정말 자기를 죽이려 하자 바로 권총을 꺼내서 예천우를 겨냥하면서 소리쳤다.“모두 꼼짝 마! 이 권총은 특수 제작한 권총이야. 속도나 위력이 보통 권총보다 몇 배나 강해.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보통 종사도 꼼짝없이 죽을 거야.”하지만 왕 어르신이 놀란 건 이런 위협적인 권총 앞에서도 예천우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오히려 옆에 있던 양박군은 안색이 약간 변했고 차갑게 말했다.“천우 씨를 건드리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겠어!”독고살도 굳은 표정으로 왕 어르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놀라운 스피드로 먼저 왕 어르신을 죽여버릴지 고민하고 있었다.지금 바로 손을 쓰면 왕 어르신이 총을 쏘기 전에 그를 죽여버릴 확률이 적어도 절반 이상은 되었다. 하지만 독고살도 절대적인 확신이 없었다.독고살은 예천우의 여유로운 표정을 금방 알아차렸고 예천우가 분명 대처할 방법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상황을 두고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예천우의 침착한 모습을 보고 왕 어르신은 당황했지만 양박군이 자신을 위협하자 오히려 자신감이 많아졌다.‘예천우는 지금 아마 애써 침착한 척하는 것 같아. 네 부하들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지.’“예천우 씨?”“예천우, 보아하니 네 신분이 심상치 않네.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날 놓아만 준다면 다시는 널 귀찮게 하지 않을게.”예천우처럼 무서운 사람은 절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난 죽을 텐데 그전에 널 죽이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왕 어르신은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까짓 권총으로 날
낭비한 시간이 많았기에 예천우도 더 이상 대꾸 하기 싫었다.공손진이 요즘에 이렇게 많은 말썽을 부렸으니 일단 왕 어르신부터 죽이려 했다.어차피 공손 가문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그 말을 들은 왕 어르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감히 내 권총의 위력을 무시해?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라고.’그는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그러자 진동 소리가 들렸고 총알은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속도로 예천우를 향해 날아갔다.정말 빨랐다.하지만 예천우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을 천천히 들었다.그 모습을 본 왕 어르신은 깜짝 놀랐다.‘이 자식이 멍청이 아냐? 감히 손으로 총알을 막으려 하다니.’하지만 곧 왕 어르신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왕 어르신은 예천우가 어마어마하게 빠른 총알을 맨손으로 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이건 정말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종사급인 사람이면 맨손으로 총알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건 보통 총알일 뿐이었다. 왕 어르신의 위력과 속도가 몇 배나 더 강한 특수 총알은 받을 수가 아예 없었다.이런 상황이 일어났다면 단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예천우는 정말 종사 절정의 실력이었다.‘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종사 절정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고수였다. 이렇게 젊은데 종사 절정의 실력을 갖출 수 없었다.왕 어르신은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미친 듯이 권총을 들고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절대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방금은 틀림없이 환각이었을 거야.’하지만 이번에 예천우는 오른손을 휘둘러 날아오는 총알을 거꾸로 날려버렸다.총알이 방향을 바꾸어 날아가서 왕 어르신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그러자 왕 어르신은 쿵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양박군과 독고살도 예천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숭배와 존경이 가득했다. 방금 왕 어르신이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그들은 왕 어르신이 결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정말 일반 권총과 아주 달랐다.만약에 그
“사실 별일 없어요. 권고하는데 다음에 또 저를 죽이고 싶으면 좀 강한 사람을 찾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재미없잖아요.”예천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 그게 무슨 뜻이에요?”공손진은 안색이 크게 변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설마 왕 어르신마저 죽임을 당한 거야?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왕 어르신은 화경 중급의 강자라 하셨는데. 예천우가 무슨 실력으로 왕 어르신을 죽일 수 있어?’사전 조사에 따르면 예천우는 산에서 내려왔고 배후에 그 누구도 없었다. 무술 솜씨가 조금 있었을 뿐이지 다른 건 별로였다.“아무런 뜻도 아니에요. 그럼 이만!”예천우는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공손진은 바로 왕 어르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몇 번을 걸어도 받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예천우의 집에서도 나오지 않았다.그 순간 공손진의 안색은 더없이 나빠졌다.공손진은 자신이 줄곧 얕보고 있었고 쉽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예천우가 어쩌면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심지어 지금 약간 두려움까지 느끼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공손진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아버지께서 걸어온 전화였다.그는 안색이 변했고 솔직하게 말했다.“아버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왕 어르신께서 사고를 당한 것 같아요.”“사고가 났다고?”공손진은 아버지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했고 예천우의 상황까지 말했다.“그랬구나. 걱정하지 마. 예천우라는 젊은이가 어떻게 왕 어르신과 맞서 싸울 수 있겠어?”공손욱은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공손욱도 여러 해 동안 수련했기에 수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젊은이가 그렇게 강할 리가 없었다.“그런데 왕 어르신이 어떻게?”“내가 사전에 왕 어르신에게 약을 먹였어. 실력이 요 며칠 사이에 서서히 사라졌을 거야. 다만 이렇게 빨리 사라질 줄은 몰랐어. 그래서 예천우가 어부지리로 그를 죽인 거고.”“네? 왜 그러셨어요?”“흥. 왕 어르신은 우리 가문을 배신했으니 죽어도 마땅하지.”
독고살과 양박군은 예천우의 말대로 왕 어르신을 화장실로 끌고 가서 약 가루를 조금 뿌렸다.그러자 곧 신기한 장면이 나타났다.한참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고 눈빛에는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어디서 온 물건인지는 몰라도 킬러에게 매우 유용한 물건이었다.“다 했어?”“네!”독고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천우 씨, 이게 뭐예요?”“나한테는 더 있으니 그건 네가 가지고 있어. 이게 그렇게 쓸모가 있는 물건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적게 만들었어.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더 만들어 줄게.”예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네? 천우 씨, 이걸 직접 만드셨다고요?”“그래. 내가 만든 거야.”독고살은 쓴웃음을 지었다. 예천우의 솜씨는 정말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다.두 사람을 떠나보내자 예천우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여보세요?”“네가 바로 예천우야?”상대방은 목소리를 바꾸어서 말한 것 같아서 제 목소리를 알 수 없었다.“나야.”“그러면 됐어. 진가인이 지금 우리의 손에 있어.”“그게 무슨 말이야?”예천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고 눈빛에 살기가 배어 있었다.“우리가 진가인을 잡았어. 진가인을 살리고 싶으면 혼자서 보내준 주소로 와.”상대방은 차갑게 입을 열었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좋아. 지금 바로 갈게. 어디야?”예천우가 물었다.“조급해하지 마. 우리 말대로 오면 돼. 지금 일단 내려와서 차에 올라. 명심해. 반드시 너 혼자와야 해. 누구도 알려줘서는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진가인은 죽을 거야.”“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예천우는 약속하면서 마음속에 살기가 가득했다.상대가 누구든 진가인이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는다면 그들을 모두 죽여버릴 것이다.그 당시 보육원의 일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예천우는 진가인이 다시 상처받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남자는 휴대 전화를 내려놓고 옆에 있는 진가인을 바라보았다. 보육원에서 살아남은 진가인, 게다가 예천우는 요즘 계속 그 화재를 조사하
상대방이 계속 위치를 바꾸는 바람에 예천우는 무려 한 시간이 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그곳은 도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낡은 공장 건물이었다.중요한 건 주변은 매우 넓고 숨을 곳이 없었기에 다른 준비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차가 입구에 도착하자 경비원은 예천우보고 즉시 차에서 내리라고 명령했다.그리고 한 경비원은 예천우의 소지품을 자세히 검사했고 다른 경비원은 차를 뒤집을 정도로 검사했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모든 것을 샅샅이 검사한 후에야 경비원은 예천우를 안으로 안내했고 다른 경비원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잠시 후 예천우는 가면을 쓴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 곁에 있던 남자들도 전부 가면을 썼기 때문에 얼굴 모양새를 알 수 없었다.예천우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진가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찾을 필요 없어. 진가인은 여기에 있지 않아.”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입을 열자 목소리에는 냉랭함이 묻어났다.“넌 도대체 누구야? 왜 진가인을 납치했어?”예천우는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애썼고 진가인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직접 묻지 않았다. 신경 쓸수록 상대방은 더 날뛸 것만 같았다.“왜일 것 같아? 널 이곳으로 오게 하기 때문이지. 나한테 알려줘. 넌 도대체 누구야?”남자가 차갑게 물었다.예천우는 깜짝 놀랐지만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이름은 알고 있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그래? 그러면 넌 그 진가인의 생사에 신경 쓰지 않는가 보군.”“진가인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 참. 진가인의 옷을 전부 다 벗기고 데리고 와.”남자의 말투는 차갑기 짝이 없었다.“네가 감히!”예천우는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화를 냈다.“그러면 내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해.”“알았어. 내가 대답할 수는 있어. 하지만 먼저 진가인을 만나게 해줘.”예천우가 차갑게 말했다.“그렇지 않으면 난 한마디도 하지 않을 거야.”“알겠어. 진가인을 데려와.”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 몇 사람의 실력으로 나이가 어린 예천우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그리고 너... 이신향, 네가 뭐 대단한 여자가되는 줄 알아? 내가 기회를 줬는데도 걷어찼으니... 이제부터는 나도 봐주는 거 없어.”조신우는 눈빛을 서늘하게 바꾸며 이어 말했다.“이선우, 이건 네 누나 탓이니까 괜히 날 원망하진 마. 선택은 둘 중 하나야. 40억을 준비하든가... 아니면 감방 갈 준비나 해.”이쯤 되자 그는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고 말 그대로 막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분노 때문에 정작 예천우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조신우의 말이 끝나자 방 안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 얼굴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특히 이재동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애원하듯 말했다.“조 도련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요. 저희는 줄곧 도련님 편이었는데요.”“그래?”조신우는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대꾸했다.“그럼 간단하지. 당장 저놈 끌어내. 저 예천우란 놈 지금 당장 꺼져주면 내가 조금은 봐주지.”그 말에 이재동은 주춤거리며 예천우를 바라봤지만 그보다 먼저 이신향이 목소리를 높였다.“아빠,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이재동은 딸의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결국 고개를 돌려 예천우를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천우야, 그만 돌아가. 난 널 사위로 생각한 적 없어. 우리 신향이한텐 조 도련님이 훨씬 더 어울리는 짝이야.”그 말에 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이제 좀 상황 파악되냐? 누가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인지... 누가 진짜 남자인지. 어디서 싸구려 가짜 술이나 들고 와선 뭔가 될 줄 알았나 본데... 그런다고 네가 찌질이란 사실이 달라질 것 같아?”그는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저 술을 어디서 주워왔든 아니면 맛이 그럴듯해서 속은 거든... 저 새끼는 결국 그냥 찌질한 놈이야.’그는 원래 몇 천만 원짜리 술이라도 꺼내서 겁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방 안 사람들 모두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시작했다.결국 술은 이성진 회장의 손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이 술은 조신우가 내놓은 것도 그가 사죄의 의미로 바친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말하자면 조신우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고 단지 무릎만 꿇고 멋쩍은 사과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이 장면을 바라보던 조혁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이 자식이... 감히 신우한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냐. 대체 무슨 심보일까.’그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따지고 들 상황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조신우가 이번 사고만 무사히 넘기면 그땐 따로 시간을 내서 따끔하게 손을 봐줄 생각이었다.이성진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상황을 파악하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밌는 친구구먼. 이름이 뭐지?”예천우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예천우입니다.”“그래. 이름 기억해 두지. 오늘 자네 덕 좀 봤네.” 이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이 술을 돈 주고 못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 희귀한 술이다 보니 아무리 부자라도 마실 기회가 흔치 않았다.82년산 라피노 같은 와인은 평생 마셔도 마실 수 있는 술이겠지만 이런 국보급 백주는 한 병 마실 때마다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회장님, 별말씀을요.”예천우는 여전히 담담한 어조였다.이성진은 더 말하지 않고 시선을 돌리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마오타이를 보고는 다시 한번 눈썹을 치켜세웠다.“오성 마오타이 58년산이라니... 자네 보통 친구는 아닌데?”“지인이 준 겁니다.”예천우가 가볍게 대답했다.“지인도 대단한 사람이구먼. 자네란 사람... 점점 더 궁금해지는군.”이성진은 감탄한 듯 웃으며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이건 내 명함이네. 기회 되면 같이 한잔하지.”조혁진은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세상에... 술 한 병 때문에 회장님이 저 녀석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시다니. 대체 저놈 주변에 어떤 인맥이 있는 거야?’그는 그 순간 조신우보고 예천우를 조심하라
“됐어. 난 사과받을 자격 없어.”이성진 회장이 싸늘하게 말하자 조신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그는 그저 백주 협회 회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막말을 퍼부은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자기 삼촌인 조혁진조차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하지만 조신우가 몰랐던 건 애초에 조혁진이 이번 술자리의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았을 뿐 그조차도 이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애매한 사람이었다.왜냐하면 오늘 자리는 강흥시의 유명 인사인 도 대표님이 이 지역 투자 건으로 방문하면서 직접 시장이 배석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무릎 꿇어!”조혁진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조신우를 꾸짖었다.조신우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그 누구보다 조혁진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고 그의 얼굴만 봐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일을 벌였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특히 이신향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건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조혁진은 이미 분노의 극에 달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그제야 조신우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어두워 뵙지를 못했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그에 맞춰 조혁진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이 회장님, 신우가 정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따로 시간을 내서 제대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반드시 직접 찾아뵙겠습니다.”“됐어.”이성진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과하러 온다는 건 결국 선물이나 뇌물 같은 걸 들고 오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런 건 관심도 없었다.“오늘처럼 기분 상하게 하는 일도 드물었지만 그래도 이 술을 만난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렸어. 그 공으로 이번만은 눈 감고 넘어갈게.”그러고는 술병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이 술은 네 것이야
“실례합니다. 혹시 이 술이... 여러분 겁니까?”이성진 회장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묻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그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고급술을 들고 와서는 가짜라고 단정 짓고 그냥 버리려 한단 말인가.’방금 밖에서 스쳐 지나가던 종업원이 술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향이 나서 따라가 봤더니 그게 바로 그 술이었다.이 말을 들은 모두가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제동이었다. 그는 막 돌아와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술병을 든 노인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저 술이... 다시 돌아왔다고?’그는 거의 튀어나올 듯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네. 저희 겁니다. 그 술은 저희 거 맞아요.”이성진 회장은 단호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게 진짜 명품 술인데... 어떻게 가짜라고 생각해서 버릴 수가 있습니까? 이건 그냥 낭비도 아니고 범죄 수준이에요!”이제동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고 사실 그도 진짜인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저 노인의 말투를 보니 정말 진짜였던 모양이다.그런데 갑자기 조신우가 비죽 웃으며 끼어들었다.“이보세요, 노인네. 연기 참 잘하시네요? 도대체 예천우가 얼마를 쥐여줬길래 이렇게 연극까지 해주는 거죠?”“뭐라고?”이성진 회장의 눈이 번쩍 빛났고 그는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뒤엎을 기세였다.“연기 말이에요. 아주 실감 나는데요?”조신우는 비웃으며 예천우 쪽을 힐끔 쳐다봤다.“예천우,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뭐 하자는 거야? 가짜 술 하나로 사람들 속이고 저 노인네까지 고용한 거야?”그 말에 이성진은 완전히 폭발 직전이었다.“헛소리 작작 하게나. 젊은이, 내가 지금까지 했던 말은 하나도 거짓 없고 모두 사실이야. 못 믿겠으면 백주 협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 내 사진이랑 이력 다 나와 있을 거야.”그 말이 끝나자 조신우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화장실에 간다던 이제동이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얼굴엔 미묘한 실망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사실 그는 화장실에 간 게 아니었다.밖으로 나가 방금 나간 여종업원을 찾아다녔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은 뒤였다.그 술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하... 아까 그냥 진짜라고 말할걸. 괜히 허세 부리다 술까지 날려버렸네...’그는 깊은 후회를 씹어 삼키며 방 안으로 들어섰는데 탁자 위에 놓인 또 다른 술병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이건 뭐야?”“예천우가 또 꺼낸 거죠. 근데 딱 봐도 평범한 마오타이잖아요. 병에 페이톈 마크도 없고 제대로 된 것도 아니네요.” 조신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고 예천우는 그런 그를 힐끗 보며 마치 바보 보듯 조용히 되받아쳤다.“페이톈 마크가 없으면 무조건 싸구려야?”“당연하지!” 조신우는 자신만만하게 외쳤고 예천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페이톈이 나오기 전 마오타이가 뭔지 알아?”조신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는 원래 백주보단 와인을 선호했기에 이런 배경지식엔 무지했다.그때였다.이제동이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설마... 1958년산 오성 마오타이?”그 한마디에 방 안 분위기가 다시 술렁였다.조신우는 다시금 멈칫했고 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맨날 입에 페이톈만 달고 다니더니... 오성 마오타이는 들어본 적도 없나 보네요? 조씨 가문의 자제라는 분이 참...”“흥. 누가 알아. 그것도 가짜일 수 있잖아?” 조신우는 씩씩대며 말했다.“아저씨, 이번에도 한 번 맛 좀 봐주시겠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좀 해주시죠.”예천우도 미소를 띠며 맞받아쳤다.“맞아요. 진짜인지 확인해야죠. 가짜라면 또 쓰레기통 직행이니까요.”그 말에 이제동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그는 천천히 술병을 들어 포장과 마개를 살펴봤다.예전에 단 한 번 직접 본 적 있었고 아주 조금만 맛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설마... 정말 그 술이?’조심스레 병을 열고 한 잔을 따랐다.잔을
이제동은 처음엔 이 술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둘러댈지 고민했지만 예천우가 정확히 이 술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걸 깨닫자 결국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예전에 용도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 술 한 병이 무려 2억 넘게 낙찰됐어.”“뭐라고요? 2억이요?”방 안이 술렁였다.조신우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 저런 평범한 놈이 어떻게 그런 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이야?’ 그는 곧바로 외쳤다. “말도 안 돼요. 이거... 이거 분명 가짜예요. 가짜 술이 틀림없다고요!”그 말에 한지연과 이신향도 순간 흔들렸다.‘그러고 보니... 혹시 진짜 가짜 술이면 어쩌지?’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진짜인지 가짜인지야... 아저씨가 한 모금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그... 그래. 마셔볼게.”이제동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술잔을 들어 한 잔을 따랐다.입에 가져간 뒤 천천히 음미하자 그 향과 맛이 그대로 온몸에 퍼졌고 마치 영혼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이야... 이건... 진짜야.’말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특히 한지연은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가 백주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눈빛 하나로도 이미 확신할 수 있었다.‘진짜... 진짜인 건가?’하지만 조신우는 그 광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게 뭐야... 왜 저런 놈이 이런 술을 가지고 있냐고... 왜!’ 그는 억지로 말꼬리를 물었다. “아저씨... 어떠세요? 정말... 정말 이게 진짜 같나요?”그 말엔 은근한 압박이 실려 있었다. 지금 진짜라고 대답하면 조신우의 체면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그걸 눈치챈 이제동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곧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어. 맛은 괜찮은데 아주 뛰어나다기보다는 평범한 것 같네. 글쎄... 진짜는 아닌 거 같기도 하고...”그 말에 방 안 분위기가 살짝 멈칫했다.‘진짜...
“천우야, 아까 술 가지고 왔다며? 얼른 꺼내 봐. 네 아저씨가 술 하나는 진짜 좋아하셔.” 한지연이 살갑게 말했다.이제동은 뭔가 말하려다 말았지만 아내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그는 이제동도 자기 편이고 이 집 분위기도 다 자기 쪽이라 생각하니 완전히 이긴 기분이었다.‘좋아. 어디 보자. 저 자식이 들고 왔다는 술이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건지 직접 보자고.’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가방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병에는 분주라고 적혀 있었고 얼핏 봐도 평범한 술은 아닌 듯한 깊이 있는 외관이었다.물론 마오타이 같은 유명 술은 아니었지만 병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묘하게 남달랐다.그 모습을 본 이제동은 순간 멈칫했다.평소 백주를 즐겨 마시는 그는 술꾼끼리 떠도는 이야기와 시장 정보를 꽤 알고 있었다.‘이거... 설마... 50년산 한정판 분주야?’그 이름만 들어도 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불리는 고급 백주였다.십몇 년 전 용도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단 한 병에 4억 원 넘게 낙찰됐던 그 술이었다.지금 시세로 치면 훨씬 더 높을지도 몰랐다.‘설마 진짜 그런 술일 리가... 아니겠지?’조신우는 병 라벨을 힐끔 보더니 툭 비웃으며 말했다.“봐. 내가 뭐랬어. 역시 마오타이도 아니잖아. 고작 집에서 들고 온 싸구려 술이겠지.”그러다 이제동이 술병을 유심히 바라보며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그리 화내지 마세요. 어차피 그냥 술 아닙니까. 다음에 제가 제대로 된 마오타이 한 병 챙겨드릴게요. 진짜 좋은 걸로요.”조신우는 그 말에 은근히 힘을 실었다.지금 마오타이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웬만하면 60만 원은 훌쩍 넘는 고급술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바로 그때 이신향이 뭔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이제동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술병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목소리엔 믿기지 않는 떨림이 담겨 있었다. “이, 이게 설마... 50년
예천우가 잠시 말이 없자 한지연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물론 그녀 입장에선 아들을 위해 이신향이 조신우 같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천우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그녀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서둘러 나섰다.“조신우 씨, 농담이죠? 여긴 그냥 평범한 식당인데 그런 최고급 술이 있을 리가 있나요.”하지만 조신우는 턱을 치켜들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그럼 딴 데 가시죠. 이딴 데선 도저히 못 먹겠네요.”그 말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풋, 네가 나한테 밥 한번 사보겠다고? 한참 멀었어. 이 정도 식당에서 몇십만 원 쓰는 것만으로도 네 눈은 휘둥그레지겠지.’조신우는 속으로 그렇게 예천우를 조롱하고 있었다.그런데 예천우는 그를 슬쩍 쳐다볼 뿐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무심하게 말했다.“애초에 난 널 초대한 적도 없어.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그 말에 조신우의 얼굴빛이 확 어두워졌고 이제동은 깜짝 놀라 급히 끼어들었다.“천우야, 너 지금 무슨 말버릇이니. 조신우 씨가 어떤 분인데? 이런 분께 음식 대접하게 된 것만으로도 너에겐 큰 영광이야.”예천우는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이신향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아빠, 그런 말은 너무하시잖아요. 오늘은 천우 씨가 초대한 자리예요. 뭐가 나와도 그걸로 먹는 거죠. 손님이 무슨 메뉴까지 고르고 술까지 따져요?”그러고는 예천우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천우 씨, 제가 가서 식당에 무슨 술 있는지 보고 올게요. 적당한 거 가져다드리면 되죠.”하지만 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막았다.“괜찮아요. 제가 준비해 왔어요. 굳이 여기 술 안 써도 됩니다.”사실 그가 가져온 술은 모두 공간 반지 안에 들어 있었기에 언제든 꺼낼 수 있었지만 굳이 이목을 끌고 싶진 않아 자연스럽게 옆 가방에서 꺼내는 척을 했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잠시 멈칫했다.방금까지 분명 손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느새 술병이 나타난 것이다.하지만 누구
“흥, 그건 당연하지.”조신우는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쟤는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거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알아서 무릎 꿇게 될걸요?”“그럼요. 조신우 씨,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죠.”이제동은 말하면서도 속으론 걱정이 가득했다.이신향이 갑자기 남자 친구를 데려왔다는 것도 머리가 아픈데 예천우가 무턱대고 나서서 조신우를 자극할까 봐 더 불안했다.특히나 예천우라는 사람은 뭘 좀 안다고 착각하는 무모함까지 있으니 더 위험했다.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먼저 안으로 향했다.그런 모습에 이제동과 한지연은 눈살을 찌푸렸고 이신향은 난감한 마음에 얼른 뒤따랐다.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괜히 예천우에게 미안한 마음만 커졌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괜히 그가 모욕당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조신우도 마지못해 따라 들어왔고 일행은 함께 식당 안으로 향했다.내부는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전통적이고 소박한 농가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대도시 고위층들이 선호하는 콘셉트 중 하나였다.하지만 조신우는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투덜댔다. “뭐야, 이런 촌스러운 데를? 딱 봐도 저질이네. 대도시에서 인당 2만 원도 안 되는 데면 분명 어디서 쿠폰이라도 긁어온 거겠지.”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오히려 잘 됐네. 이따가 제대로 면박 줄 수 있겠다.”사실 오늘 조신우는 아버지에게서 활동 자금으로 4억 원을 통 크게 받아온 상태였다.그 돈으로 오늘 제대로 부자의 삶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다.이번 자리는 급하게 잡긴 했지만 예천우에겐 아무런 어려움도 아니었다.왜냐하면 이 동강루의 최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바로 천상 그룹이었고 결국 이 식당도 그의 사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그러니 예약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사실 식당 대표는 그에게 가장 최고급 방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예천우는 일부러 거절했다.너무 티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의 안내로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