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흑호의 말에 두 여자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게... 정말일까? 천우 씨가 그렇게도 무섭고 강력한 존재라고?’두 여자는 모두 천해시에서 예천우가 매우 강력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더 큰 범위인 이곳에서 강력한 가문인 백씨 가문마저 그를 두려워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 순간 두 여자는 백씨 가문 따위는 눈에도 안 찬다고 했던 예천우의 이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 말이 정말이었던 것일까? 예천우는 단순히 그녀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두 여자의 표정을 본 흑호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이제 일이 쉽게 해결될 것이다.“두 분,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계좌번호를 알려주시면 오전 중으로 돈을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보상하기 위한 성의라고 생각해 주세요.”“아니에요, 그냥 우리를 괴롭히지만 않으면 돼요.”두 여자가 급히 말했다.이 말을 들은 채도식은 4억 원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기쁨을 금치 못했다. 비록 흑호가 주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자신들이 내야 할 돈이었다.그러나 흑호가 바로 말했다.“안 됩니다. 이 돈은 꼭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자들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겁니다.”“아, 그렇다면... 알겠어요. 받을게요.”이 사람들의 목숨을 위해 두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받기로 했다.이후에도 채도식은 연거푸 사과를 한 후에야 흑호가 그들을 보내줬다.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두 여자는 당황하며 계속 피하려 했다.자리를 떠날 때 채도식의 불만을 눈치챈 흑호가 싸늘하게 말했다.“4억 원을 헛되이 낸 것 같아 속상해하지 마. 이건 네 목숨값이라고 생각해. 두 여자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용서해줬지만 잊지 마, 그들의 용서가 정말 중요할까? 가장 중요한 건 주인님의 생각 아닐까? 주인님께서 결과를 아시고 너희가 단 몇 마디로 모든 걸 해결했다는 걸 알면 주인님이 화를 내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게다가 네 과거도 그리 깨끗하지 않아. 주인님
‘알겠다고? 무슨 뜻이지?!’순간 멍해진 예관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이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천우야, 방금 뭐라고 했니? ‘알겠다’는 게 무슨 뜻이야? 승낙한 거야?”“네. 승낙한 거예요.”예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냐? 너무 고맙구나!”예관희는 극도로 흥분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물어본 것이었기에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그런데 예천우가 정말로 승낙하다니...예천우는 용문의 용왕이며 용문을 대표하는 존재이다. 게다가 소문에 따르면 종사 고수라고 했다.남궁 가문 같은 용도 최고 가문에 필적할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었기에 예천우가 나서면 예씨 가문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미리 기뻐하진 마세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예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말해봐. 어떤 조건이든 다 들어줄 테니!”예관희는 주저하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그래요. 예씨 가문의 모든 사람이 내 명령을 듣고 내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여야 합니다.”“문제없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네가 오면 족장 자리를 너에게 물려주마.”“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씨 가문의 족장 자리에 관심 없어요.”예천우가 고개를 저었다.“알겠어.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자. 그럼 언제 올 거야?”예천우가 오면 어떻게든 족장 자리를 물려주려고 생각한 예관희가 급히 물었다.“아직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요. 며칠 후에 갈게요.”예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내 신분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비밀로 해주세요.”“알겠어.”비록 신분을 공개하는 게 더 위협적일 것 같았지만 예관희는 주저하지 않고 승낙했다.“그리고 예웅남을 조심하세요.”예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왜?”“내가 돌아간다는 소식은 예천우에게만 흘리세요.”“그래!”예관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예웅남도 그의 친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천우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예관희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예웅남이 과연 예씨 가문을 배신할까? 이번 기회에 천우를 통해 떠보지 뭐. 그 녀석이 대
안 온다는 말에 걱정을 하고 있던 임완유는 예천우가 돌아오자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오늘 밤에 못 돌아온다며?”“응, 원래는 그럴 예정이었는데 아내가 혼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생각 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돌아왔어.”예천우는 미소를 지으며 임완유를 품에 안았다. 오랫동안 참아온 욕망이었다.임완유는 얼굴이 붉어지며 응석을 부리듯 예천우의 품에 안겨 얼굴을 파묻었다.“사람 너무 괴롭히지 마.”하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임연 그룹에서 임완유는 화장품 사업을 구축했고 천상 그룹 동성시 지사에서는 향수 관련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 자신도 향수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에 매우 민감했다.예천우의 품에 안기자마자 임완유는 그의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를 맡았다.은은하고 편안한 향이었지만 임완유의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한 가지 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도대체 한밤중에 여자를 몇 명이나 만난 거야?’예민한 예천우는 임완유의 표정 변화를 바로 알아챘다.“왜 그래?”임완유는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예천우의 품에서 벗어나 한발 물러서고는 그를 뚫어져라 보며 물었다.“내가 전화하지 않았으면 오늘 밤 안 돌아올 생각이었어?”오늘 다른 여자와 놀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밤새 그 여자들과 함께 있으려 했다니.임완유는 생각만 해도 임완유는 화가 치밀었다.그녀의 말과 행동을 곧바로 알아차린 예천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완유야, 믿지 못하겠지만 정말 오해야.”임완유는 잠시 멈췄다. 과거에도 여러 번 예천우를 오해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도 그런 걸까? 하지만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분명 여자 향수 냄새였다.그래도 이번만큼은 예천우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그럼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는 누구 것이야?”예천우는 잠시 망설였다.‘이신향과 유사라라고 말해야 할까?’그렇다면 오해는 더 커질 것이다. 특히 임완유는 유사라와 예천우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임완유
예천우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임완유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 대화할 의사는 있는 것 같았기에 내일 다시 얘기해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다음 날 아침, 예천우는 일찍 일어나 풍성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일어난 임완유는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지만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고 평소와 달리 그렇게 밝지 못했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임완유의 이런 모습을 본 예천우는 가슴이 아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유은수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완유야, 어제 일은...”“어제 일은 더 이상 말하지 마. 이미 다 이해했으니까!”임완유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이해했다고?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예천우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임완유가 예천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알아. 네 능력과 재주를 보고 얼마나 많은 훌륭한 여자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겠어. 내가 너였어도 참지 못했을 거야.”“완유야...”예천우는 그녀가 오해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말하지 마. 우선 내 말부터 들어.”“그래, 먼저 말해봐.”“사실 이번 일만이 아니야. 지난번에도 내가 널 만족시켜주지 못했을 때부터 계속 생각해왔어.”“그건 농담이었어, 그냥...”예천우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던진 농담일 뿐이라고 말하려 했다.“알아, 농담이었지. 하지만 농담으로 진짜 문제를 말한 거야. 그렇지 않다면 방금 하자마자 그럴 리가 없잖아.”“아니 그게 아니라...”예천우는 어안이 벙벙했다.“변명하지 마. 이제 다 알겠으니까.”“너 같은 남자를 혼자서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내가 순진했어. 능력이 있는 남자들은 여자 여럿을 옆에 두는 게 당연한 거야. 넌 잘생긴 데다가 능력도 뛰어나. 그쪽 부분도 너무 강해서... 나 혼자선 감당할 수 없어.”이 말을 하는 임완유는 가슴이 아팠다.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이 남자 없인 살 수 없게 되어버렸다.이 남자를 위해 그녀는 뭐든 할 수 있
정말로 자신이 오해한 걸까? 하지만 향수 냄새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양체은이 예천우와 가까이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한 적도 있었다.사실 이런 것들이 떠올랐고 그런 여자들이 하나같이 뛰어난 여자들이라는 걸 생각하니 자신이 계속 막는다면 역효과만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그래서 양보하는 것을 통해서라도 정실부인의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예천우를 쫓아내고 싶어 하던 마음에서 예천우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됐고 오히려 이 남자를 지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게 됐다.“당연히 진짜지!”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응, 하지만 내가 방금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해.”임완유는 이렇게 말하며 예천우의 말을 끊었다.“부정하지 마.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의 일까지 누가 알겠어. 게다가 전에 누군가 그랬어. 너는 운명적으로 여자가 많이 붙을 거라고!”“누가 그랬는데? 말해봐, 그 자식 입을 찢어버리고 말겠어!”예천우가 화를 내며 말했다.“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진짜든 가짜든 난 이제 상관하지 않으니까. 왜냐하면... 네가 다른 여자를 옆에 두는 걸 이제는 신경 쓰지 않을 거야.”임완유는 말을 하면서 오히려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내가 말한 두 가지 조건만은 꼭 지켜줘. 알겠지?”“무슨 조건? 애초에 다른 여자는 없을 텐데.”“그냥 약속해! 두 가지 조건, 지킬 거야, 말 거야!”예천우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약속할게. 어차피 다른 여자를 곁에 둘 생각은 한 적도 없으니까.”“그래, 이렇게 정한 거다? 이제 아침 먹으러 가자.”식탁 앞으로 간 임완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그녀의 이런 모습에 예천우는 불안감이 들었다.‘완유가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임완유가 출근한 후에도 예천우는 계속 걱정이 됐다. 한편으로는 부하들에게 임완유를 보호하라고 지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채운에게 전화를 걸어 임완유의 상태를
예천우가 예씨 가문으로 돌아간 소식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예웅남은 제일 먼저 알았다.예관희가 특별히 그에게 알려주며 일단 비밀로 하며 마음속 앙금을 풀고 예천우를 맞이하라고 당부했다. 왜냐하면 오직 예천우만이 예씨 가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이를 위해 예관희는 꽤 정성을 들여 예웅남을 달래고 설득했다.예웅남은 겉으로는 승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분노가 치밀었다.원래부터 예관희에게 매우 불만이 많았던 예웅남은 당장이라도 예관희의 자리를 꿰차서 예씨 가문을 통솔하여 예천우가 돌아오는 것을 막고 싶었다.예관희와 헤어진 후, 즉시 절정종에 연락해 절정종 종주를 용도로 초대해 앞으로의 큰일을 상의했다.원래는 예관희의 팔순 잔치를 기다렸다가 손을 쓸 생각이었지만 지금 보니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이건 예관희가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정우찬은 전화를 받자마자 즉시 예천우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예천우는 특별한 지시 없이 그저 평소대로 진행하라고 했다.가능하면 보육원 방화 사건에 대해 탐색할 기회를 찾아보라고 했다.예천우가 전화를 끊자마자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이내 필요한 약재들이 짧은 시간 안에 모두 준비되었다는 말에 예천우의 얼굴에 기쁨이 떠올랐다.비록 칠색 연꽃을 먼저 확보했고 절정 노조의 소장품 중 중요한 약재가 몇 가지 있었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모으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이것들을 조합하면 영혼과 육체를 단련하는 약을 만들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영혼의 힘을 극대화해 천지의 기운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었다.자신의 돌파를 통해 예천우는 그들이 육지 신선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영혼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런데 이 약이 있으면 돌파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비록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복용자의 실력을 향상시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 육지의 신선에 도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문제가 생기는 걸 피하기 위해 예천우는 특별히
게다가 도달했다 해도 오랜 축적 과정이 필요하지만 남궁은서는 그 과정을 건너뛰었다.똑같이 종사 정상이라 해도 대사와 정우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니 이 약물은 대사에게 사용해도 결코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돌파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아요.”예천우는 100% 확신이 없었다.“어쨌든 희망은 있잖아!”남궁은서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남궁은서가 물었다.“정우찬은 돌아왔어요?”“돌아오는 길이야. 곧 도착할 거다. 정우찬에게 사용할 생각이니?”“네. 정우찬은 종사 정상 경지에 오래 머물렀고 육지의 신선까지 이제 한 발 남았으니 약물 테스트에 가장 적합해요.”예천우가 설명했다.이 약물은 사용해본 적이 없어 과정이 어떨지, 파괴력은 얼마나 되는지, 생명의 위험이 있는지 등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이 말을 들은 남궁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돌아온 정우찬은 예천우에게 특별히 전화를 걸어 어디에 있는지 물은 뒤 성종에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성종에 왔다.“일은 어떻게 됐어?”예천우가 묻자 정우찬은 즉시 예웅남의 계획을 알려주더니 녹음 파일 하나를 건넸다.잠시 당황한 예천우는 바로 뭔가를 직감했지만 묻지 않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앞부분 내용은 정우찬이 이미 언급한 바 있었다.곧이어 정우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이번 우리 협력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길 바라. 네가 예씨 가문 족장 자리에 오르고 우리는 옥패를 손에 넣는 거야.”“절종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예씨 가문 족장 자리에 오르면 반드시 전력을 다해 옥패를 찾도록 하겠습니다. 예씨 가문 사람인 제가 옥패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당연하지. 예전에 너는 우리 귀왕종과 함께 옥패 주인을 추적했고 심지어 보육원에 불까지 질렀잖아.”이 말에 예웅남의 안색이 변하더니 급히 말했다.“절종주님, 무슨 농담을... 그건 귀왕종이 한 일이고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정우찬은 불만스러운 목소
“너도 꽤 대단하네.”정우찬의 눈에는 살짝 살기가 스쳤지만 주인님의 계획을 망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감췄다.예웅남은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말했다.“큰일을 도모하는 자는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법이지. 자식이고, 형제고, 부모고... 다 필요 없어. 예로부터 제왕의 길은 핏줄을 밟고 올라선 자들이 걸어온 길이지.”“그 말도 맞긴 하지. 하하. 그럼 난 여기서 너의 대업이 꼭 이루어지길 미리 축하할게.”이쯤에서 예천우는 녹음기를 멈췄고 그의 얼굴에는 서서히 살기가 차올랐다.그의 표정은 냉랭했고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사실 그는 이미 예웅남을 의심하고 있었다.‘설마... 아닐 수도 있겠지.’하지만 그 의심을 스스로 부정해 왔던 것도 사실이었다.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는 끝끝내 예웅남이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거라 믿고 싶었다.그러나 이제 예웅남의 입에서 직접 들은 그 말이 모든 것을 증명했다.“정우찬, 이번 일 잘해줬어. 아주 만족스러워.”예천우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너에게... 천금 같은 기회를 줄 생각이야.”정우찬은 순간 멍하니 멈췄다가 곧 기쁨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인진 몰라도 주인님께서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틀림없이 엄청난 선물일 터였다.‘혹시... 내 힘이 더 강해질 수도 있는 건가?’ 그의 뇌리를 스친 건 얼마 전 만난 양박군의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이었다.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근처라도 닿을 수 있다면...“가자. 네 수행 공간으로.”예천우가 조용히 말했다.“네! 알겠습니다.”이번 기회만 잘 잡는다면 자신도 한 단계 아니 두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우찬은 가슴이 벅차올라서 목소리까지 떨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정우찬의 비밀 수행 공간에 도착했다.예천우는 공간 반지에서 조그만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며 입을 열었다.“이건 내가 칠색 연꽃을 비롯한 세상에 몇 남지 않은 귀한 약초들로 직접 정제한 약이야.”그 말을 들은 정우찬은 심장이 요동쳤다
“됐어. 난 사과받을 자격 없어.”이성진 회장이 싸늘하게 말하자 조신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그는 그저 백주 협회 회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막말을 퍼부은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자기 삼촌인 조혁진조차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하지만 조신우가 몰랐던 건 애초에 조혁진이 이번 술자리의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았을 뿐 그조차도 이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애매한 사람이었다.왜냐하면 오늘 자리는 강흥시의 유명 인사인 도 대표님이 이 지역 투자 건으로 방문하면서 직접 시장이 배석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무릎 꿇어!”조혁진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조신우를 꾸짖었다.조신우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그 누구보다 조혁진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고 그의 얼굴만 봐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일을 벌였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특히 이신향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건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조혁진은 이미 분노의 극에 달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그제야 조신우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어두워 뵙지를 못했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그에 맞춰 조혁진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이 회장님, 신우가 정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따로 시간을 내서 제대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반드시 직접 찾아뵙겠습니다.”“됐어.”이성진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과하러 온다는 건 결국 선물이나 뇌물 같은 걸 들고 오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런 건 관심도 없었다.“오늘처럼 기분 상하게 하는 일도 드물었지만 그래도 이 술을 만난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렸어. 그 공으로 이번만은 눈 감고 넘어갈게.”그러고는 술병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이 술은 네 것이야
“실례합니다. 혹시 이 술이... 여러분 겁니까?”이성진 회장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묻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그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고급술을 들고 와서는 가짜라고 단정 짓고 그냥 버리려 한단 말인가.’방금 밖에서 스쳐 지나가던 종업원이 술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향이 나서 따라가 봤더니 그게 바로 그 술이었다.이 말을 들은 모두가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제동이었다. 그는 막 돌아와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술병을 든 노인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저 술이... 다시 돌아왔다고?’그는 거의 튀어나올 듯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네. 저희 겁니다. 그 술은 저희 거 맞아요.”이성진 회장은 단호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게 진짜 명품 술인데... 어떻게 가짜라고 생각해서 버릴 수가 있습니까? 이건 그냥 낭비도 아니고 범죄 수준이에요!”이제동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고 사실 그도 진짜인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저 노인의 말투를 보니 정말 진짜였던 모양이다.그런데 갑자기 조신우가 비죽 웃으며 끼어들었다.“이보세요, 노인네. 연기 참 잘하시네요? 도대체 예천우가 얼마를 쥐여줬길래 이렇게 연극까지 해주는 거죠?”“뭐라고?”이성진 회장의 눈이 번쩍 빛났고 그는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뒤엎을 기세였다.“연기 말이에요. 아주 실감 나는데요?”조신우는 비웃으며 예천우 쪽을 힐끔 쳐다봤다.“예천우,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뭐 하자는 거야? 가짜 술 하나로 사람들 속이고 저 노인네까지 고용한 거야?”그 말에 이성진은 완전히 폭발 직전이었다.“헛소리 작작 하게나. 젊은이, 내가 지금까지 했던 말은 하나도 거짓 없고 모두 사실이야. 못 믿겠으면 백주 협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 내 사진이랑 이력 다 나와 있을 거야.”그 말이 끝나자 조신우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화장실에 간다던 이제동이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얼굴엔 미묘한 실망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사실 그는 화장실에 간 게 아니었다.밖으로 나가 방금 나간 여종업원을 찾아다녔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은 뒤였다.그 술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하... 아까 그냥 진짜라고 말할걸. 괜히 허세 부리다 술까지 날려버렸네...’그는 깊은 후회를 씹어 삼키며 방 안으로 들어섰는데 탁자 위에 놓인 또 다른 술병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이건 뭐야?”“예천우가 또 꺼낸 거죠. 근데 딱 봐도 평범한 마오타이잖아요. 병에 페이톈 마크도 없고 제대로 된 것도 아니네요.” 조신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고 예천우는 그런 그를 힐끗 보며 마치 바보 보듯 조용히 되받아쳤다.“페이톈 마크가 없으면 무조건 싸구려야?”“당연하지!” 조신우는 자신만만하게 외쳤고 예천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페이톈이 나오기 전 마오타이가 뭔지 알아?”조신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는 원래 백주보단 와인을 선호했기에 이런 배경지식엔 무지했다.그때였다.이제동이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설마... 1958년산 오성 마오타이?”그 한마디에 방 안 분위기가 다시 술렁였다.조신우는 다시금 멈칫했고 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맨날 입에 페이톈만 달고 다니더니... 오성 마오타이는 들어본 적도 없나 보네요? 조씨 가문의 자제라는 분이 참...”“흥. 누가 알아. 그것도 가짜일 수 있잖아?” 조신우는 씩씩대며 말했다.“아저씨, 이번에도 한 번 맛 좀 봐주시겠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좀 해주시죠.”예천우도 미소를 띠며 맞받아쳤다.“맞아요. 진짜인지 확인해야죠. 가짜라면 또 쓰레기통 직행이니까요.”그 말에 이제동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그는 천천히 술병을 들어 포장과 마개를 살펴봤다.예전에 단 한 번 직접 본 적 있었고 아주 조금만 맛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설마... 정말 그 술이?’조심스레 병을 열고 한 잔을 따랐다.잔을
이제동은 처음엔 이 술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둘러댈지 고민했지만 예천우가 정확히 이 술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걸 깨닫자 결국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예전에 용도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 술 한 병이 무려 2억 넘게 낙찰됐어.”“뭐라고요? 2억이요?”방 안이 술렁였다.조신우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 저런 평범한 놈이 어떻게 그런 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이야?’ 그는 곧바로 외쳤다. “말도 안 돼요. 이거... 이거 분명 가짜예요. 가짜 술이 틀림없다고요!”그 말에 한지연과 이신향도 순간 흔들렸다.‘그러고 보니... 혹시 진짜 가짜 술이면 어쩌지?’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진짜인지 가짜인지야... 아저씨가 한 모금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그... 그래. 마셔볼게.”이제동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술잔을 들어 한 잔을 따랐다.입에 가져간 뒤 천천히 음미하자 그 향과 맛이 그대로 온몸에 퍼졌고 마치 영혼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이야... 이건... 진짜야.’말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특히 한지연은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가 백주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눈빛 하나로도 이미 확신할 수 있었다.‘진짜... 진짜인 건가?’하지만 조신우는 그 광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게 뭐야... 왜 저런 놈이 이런 술을 가지고 있냐고... 왜!’ 그는 억지로 말꼬리를 물었다. “아저씨... 어떠세요? 정말... 정말 이게 진짜 같나요?”그 말엔 은근한 압박이 실려 있었다. 지금 진짜라고 대답하면 조신우의 체면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그걸 눈치챈 이제동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곧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어. 맛은 괜찮은데 아주 뛰어나다기보다는 평범한 것 같네. 글쎄... 진짜는 아닌 거 같기도 하고...”그 말에 방 안 분위기가 살짝 멈칫했다.‘진짜...
“천우야, 아까 술 가지고 왔다며? 얼른 꺼내 봐. 네 아저씨가 술 하나는 진짜 좋아하셔.” 한지연이 살갑게 말했다.이제동은 뭔가 말하려다 말았지만 아내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그는 이제동도 자기 편이고 이 집 분위기도 다 자기 쪽이라 생각하니 완전히 이긴 기분이었다.‘좋아. 어디 보자. 저 자식이 들고 왔다는 술이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건지 직접 보자고.’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가방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병에는 분주라고 적혀 있었고 얼핏 봐도 평범한 술은 아닌 듯한 깊이 있는 외관이었다.물론 마오타이 같은 유명 술은 아니었지만 병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묘하게 남달랐다.그 모습을 본 이제동은 순간 멈칫했다.평소 백주를 즐겨 마시는 그는 술꾼끼리 떠도는 이야기와 시장 정보를 꽤 알고 있었다.‘이거... 설마... 50년산 한정판 분주야?’그 이름만 들어도 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불리는 고급 백주였다.십몇 년 전 용도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단 한 병에 4억 원 넘게 낙찰됐던 그 술이었다.지금 시세로 치면 훨씬 더 높을지도 몰랐다.‘설마 진짜 그런 술일 리가... 아니겠지?’조신우는 병 라벨을 힐끔 보더니 툭 비웃으며 말했다.“봐. 내가 뭐랬어. 역시 마오타이도 아니잖아. 고작 집에서 들고 온 싸구려 술이겠지.”그러다 이제동이 술병을 유심히 바라보며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그리 화내지 마세요. 어차피 그냥 술 아닙니까. 다음에 제가 제대로 된 마오타이 한 병 챙겨드릴게요. 진짜 좋은 걸로요.”조신우는 그 말에 은근히 힘을 실었다.지금 마오타이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웬만하면 60만 원은 훌쩍 넘는 고급술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바로 그때 이신향이 뭔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이제동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술병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목소리엔 믿기지 않는 떨림이 담겨 있었다. “이, 이게 설마... 50년
예천우가 잠시 말이 없자 한지연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물론 그녀 입장에선 아들을 위해 이신향이 조신우 같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천우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그녀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서둘러 나섰다.“조신우 씨, 농담이죠? 여긴 그냥 평범한 식당인데 그런 최고급 술이 있을 리가 있나요.”하지만 조신우는 턱을 치켜들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그럼 딴 데 가시죠. 이딴 데선 도저히 못 먹겠네요.”그 말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풋, 네가 나한테 밥 한번 사보겠다고? 한참 멀었어. 이 정도 식당에서 몇십만 원 쓰는 것만으로도 네 눈은 휘둥그레지겠지.’조신우는 속으로 그렇게 예천우를 조롱하고 있었다.그런데 예천우는 그를 슬쩍 쳐다볼 뿐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무심하게 말했다.“애초에 난 널 초대한 적도 없어.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그 말에 조신우의 얼굴빛이 확 어두워졌고 이제동은 깜짝 놀라 급히 끼어들었다.“천우야, 너 지금 무슨 말버릇이니. 조신우 씨가 어떤 분인데? 이런 분께 음식 대접하게 된 것만으로도 너에겐 큰 영광이야.”예천우는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이신향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아빠, 그런 말은 너무하시잖아요. 오늘은 천우 씨가 초대한 자리예요. 뭐가 나와도 그걸로 먹는 거죠. 손님이 무슨 메뉴까지 고르고 술까지 따져요?”그러고는 예천우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천우 씨, 제가 가서 식당에 무슨 술 있는지 보고 올게요. 적당한 거 가져다드리면 되죠.”하지만 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막았다.“괜찮아요. 제가 준비해 왔어요. 굳이 여기 술 안 써도 됩니다.”사실 그가 가져온 술은 모두 공간 반지 안에 들어 있었기에 언제든 꺼낼 수 있었지만 굳이 이목을 끌고 싶진 않아 자연스럽게 옆 가방에서 꺼내는 척을 했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잠시 멈칫했다.방금까지 분명 손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느새 술병이 나타난 것이다.하지만 누구
“흥, 그건 당연하지.”조신우는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쟤는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거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알아서 무릎 꿇게 될걸요?”“그럼요. 조신우 씨,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죠.”이제동은 말하면서도 속으론 걱정이 가득했다.이신향이 갑자기 남자 친구를 데려왔다는 것도 머리가 아픈데 예천우가 무턱대고 나서서 조신우를 자극할까 봐 더 불안했다.특히나 예천우라는 사람은 뭘 좀 안다고 착각하는 무모함까지 있으니 더 위험했다.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먼저 안으로 향했다.그런 모습에 이제동과 한지연은 눈살을 찌푸렸고 이신향은 난감한 마음에 얼른 뒤따랐다.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괜히 예천우에게 미안한 마음만 커졌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괜히 그가 모욕당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조신우도 마지못해 따라 들어왔고 일행은 함께 식당 안으로 향했다.내부는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전통적이고 소박한 농가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대도시 고위층들이 선호하는 콘셉트 중 하나였다.하지만 조신우는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투덜댔다. “뭐야, 이런 촌스러운 데를? 딱 봐도 저질이네. 대도시에서 인당 2만 원도 안 되는 데면 분명 어디서 쿠폰이라도 긁어온 거겠지.”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오히려 잘 됐네. 이따가 제대로 면박 줄 수 있겠다.”사실 오늘 조신우는 아버지에게서 활동 자금으로 4억 원을 통 크게 받아온 상태였다.그 돈으로 오늘 제대로 부자의 삶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다.이번 자리는 급하게 잡긴 했지만 예천우에겐 아무런 어려움도 아니었다.왜냐하면 이 동강루의 최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바로 천상 그룹이었고 결국 이 식당도 그의 사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그러니 예약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사실 식당 대표는 그에게 가장 최고급 방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예천우는 일부러 거절했다.너무 티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의 안내로 모
차는 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을 달린 끝에 곧바로 예동구 동강루 주차장에 도착했다.동강루는 동성에서 손꼽히는 고급 식당 중 하나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부자들과 고위 인사들이 주로 회식이나 접대를 위해 찾는 곳이었고 일반인들이라면 예약 잡기도 어려웠다.비록 이신향의 부모는 세상 물정에 밝진 않지만 식당 외관만 봐도 그 수준이 꽤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어머니는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천우야, 여기 꽤 괜찮아 보이네. 혹시너무 비싼 데는 아니겠지?”예천우는 혹시라도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그냥 평범한 집밥 수준이에요. 1인당 2만 원도 안 돼요.”이신향의 부모님이 괜히 위축될까 싶어 대충 둘러댄 말이었다.“그래? 다행이네. 옷차림도 단정하고 검소해 보여서 걱정했는데... 근데 너 옷이 참 잘 어울린다. 보통 옷 같은데도 은근히 멋스럽네?”식당 앞에 내린 뒤 한지연은 그제야 예천우를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전엔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이제서야 그의 차림새를 눈여겨본 것이다.“하하. 그냥 대충 산 거예요.”예천우는 웃으며 답했다.겉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옷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입은 건 평범한 브랜드가 아니었다. 다만 보는 눈이 없으면 모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런 스타일을 더 선호했고 편하고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가끔 무시당하는 걸 제외하면 괜찮은 선택이었다.“그럼 이제 안으로 들어갈까요?”예천우가 말했다.하지만 그때 이제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잠깐만. 조금 있으면 조신우가 올 텐데 여기서 기다리자.”조금 전 조신우에게 실례를 한 것도 있고 괜히 먼저 들어갔다가 또 기분 상하면 어쩌나 걱정되는 눈치였다.이신향은 상황이 불편해질까 봐 급히 말했다.“우선 안으로 들어가요. 천우 씨가 여기 남아서 기다리게 하면 되잖아요. 게다가 조신우도 아마 엄마 아빠 전화번호는 알고 있을 텐데 도착하면 어느 방인지 물어보면 되죠.”하지만 이제동은 단호했다.“안 돼. 꼭
“그래... 예천우란 사람은 내가 잘 모르긴 해도 조신우 같은 남자를 두고 굳이 다른 사람을 택하겠다는 건... 솔직히 이해가 안 돼.”한지연이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예천우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조시욱 정도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다.“조신우랑 결혼하면 적어도 네가 남은 인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 아니야. 이렇게 고생하지 않고 말이야.”그 말을 덧붙인 뒤 그녀는 예천우를 향해 부드럽게 설명했다.“천우야, 오해하지 마. 아줌마가 너를 싫어해서가 아니야. 그냥... 조신우가 너무 뛰어나서 그래. 신향이한테도 잘 어울리고. 너도 성격이 괜찮은 것 같긴 해. 근데 아무래도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것 같더라. 네가 신향이랑 안 어울린다는 게 아니라... 조신우랑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크잖아.”예천우는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냥 잠깐 가짜 남자 친구 행세를 하겠다고 했을 뿐인데 이 집에선 벌써 그를 깎아내리기 바빴다.그는 곁눈질로 이신향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그러자 이신향이 급히 나섰다.“누가 그래요? 천우 씨가 조신우보다 못하다는 건 말도 안 돼요. 엄마 아빠는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가 어디인지 아세요? 바로 천우 씨 회사예요!”“무슨 헛소리야! 신향아, 넌 원래 거짓말 같은 거 안 하던 애였잖아. 근데 지금은 왜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아빠가 그렇게 쉽게 속을 사람인 줄 알아?”이제동은 곧장 나무라듯 말했다.“진짜라니까요!”“진짜는 무슨... 너 며칠 전에 뭐라고 했어? 지금 백성 그룹 다닌다며?”“맞아요!”“그럼 됐지. 네가 그날 뭐랬는지 기억나? 백성그룹은 백씨 가문 거라며? 백씨 가문은 동성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 있는 집안인지 아빠도 다 아는데. 근데 지금 네 남자 친구가 백씨 가문 사람이야?”“아니에요.”“그럼 됐잖아. 백성 그룹이 예천우의 회사라니... 그건 완전 말도 안 되는 소리지.”“그건... 그게... 사실은...”“무슨 사실? 엄마 아빠도 네가 천우랑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