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간쓰레기에게 사정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원경능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는 필히 시원시원하게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또한 그가 원한다 하여도 경후가 꼭 초왕의 말을 들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원경병의 생각은 너무나 단순했다.다만 우문호가 돕기를 원한다면,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넌 먼저 방으로 돌아가 쉬렴. 이 일은 천천히 신중하게 의논을 하자꾸나.”원경능이 말했다. 원경병은 마음이 매우 아팠다.사실 정말 원경능에게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초왕부에서 잠시 묶는 것도 한동안 피해있고 싶었을 뿐이었다. 오늘 원경능이 궁에서 나온 것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물은 것이었다. 허나 사정하는 말을 내뱉자 조금의 기대를 품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원경능은 ‘천천히 신중하게 의논을 하자꾸나’라고 답하였다. 핑계를 대어 어물어물 넘기는 말이었다.언니는 평생 동안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살았었다. 심지어 초왕의 일에 대해서도 집착적인 마음으로 아버님의 말에 따라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언니는 무리한 수단으로 한 일은 좋은 결과가 없는 법이라는 걸 몰랐다. 초왕이 왕비로 맞이한다 하여도 잘 대할 리가 만무하였다.아버지는 궁지에 몰렸는지라 결연히 이러한 선택을 했었다. 이는 모험적인 행동이었다. 실패하더라도 딸 하나를 희생하는 것뿐이었다.그러나 언니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는 언니의 평생의 행복에 관계되는 일이었다.원경병은 실망한 기색으로 떠나갔다. 그저 원망과 미련만 원경능에게 남긴 채 말이다. 원경능은 기씨 어멈에게 물었다.“왕야께서는 무엇을 가장 즐겨 먹느냐?”“깻잎오리입니다.”기씨 어멈은 원경능을 바라 보았다. 왕비께서는 정말 원경병을 위해 사정하시려는 것인가?“가르쳐다오!”원경능이 말했다. 기씨 어멈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왕비, 이 일은 관여하지 않음이 좋을 듯싶습니다. 왕야께서도 꼭 도우실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왕야께서 허락하셔도, 왕야께서 동생분의
그렇다면 원경능도 사양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직설적으로 말했다.“왕야께 묻고 싶은 사람이 둘 있어요.”원경능은 부탁하는 일은 쉬운 것에서부터 어려운 것으로의 순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요구를 꺼내면 안되었다.“누군데?” 우문호는 과연 반감인 표정을 짓지 않았다.“소요공(逍遥公)이요.”우문호의 낯빛이 조금 변했다.“그를 물어 무엇 하려는 건데?”“태상황께서 언급하신 적이 있어 조금 궁금해서요.”“본왕은 그에 대해 조금도 모르니, 물어볼 필요가 없어.”우문호는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원경능은 조금 의아했다. 소요공은 전임 수부가 아니던가? 우문호가 그에 대해 어찌 하나도 모른다는 말인가?그녀는 곁눈질로 옆에 있는 탕양이 눈짓을 하는 걸 발견하였다. 그녀는 소요공이 아마 우문호와 원한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그럼 됐어요. 두 번째로는 혜정후 저대유에 대해 알고 싶어요.”우문호는 애써 미간을 찌푸리려 하였다. 빨갛게 부어 오른 눈썹은 기름기가 번들거렸다.“저대유?”“그 사람의 품성은 어때요?”원경능은 우문호의 표정을 보고 좋은 평가가 나오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한 글자로 악랄해!”우문호가 싸늘하게 말했다. 원경능은 악랄이라는 단어가 두 글자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을 참아냈다. 그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우문호의 성격으로 쉽사리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의 독설은 늘 그녀에게만 향했다.하지만 혜정후를 악랄하다고만 형용하는 것을 보아, 우문호는 정말 인간쓰레기였다. “상세한 내용을 들려주세요.”원경능은 바삐 물었다.“그에 대해 물어서 무엇 하려고?”우문호가 물었다. 원경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버님께서는 동생을 그에게 시집 보내려고 하셔요.”우문호는 잠시 멍해졌다가 곧 싸늘하게 말했다.“그렇다면 당신 동생 시체를 거둘 준비나 해.”원경능은 화들짝 놀랐다.“그렇게 엄중해요?”탕양이 옆에서 말을 이었다.“왕비, 혜정후는 전에
그녀는 머리를 쥐어짜며 우문호에게 어떤 약점이 있는지 생각했다. 저명취가 있었지만 약점인 동시에 역린이었다. 그의 약점을 쥐는 동시에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라 결과가 매우 엄중할 것이었다.“됐어요, 제가 다른 방법을 생각할 게요. 정말 안되면 제가 직접 그 혜정후를 만나봐야겠어요.”원경능은 노기등등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문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친히 혜정후를 만난다고? 원경능에게 그러한 담이 있다면 손에 장을 지질 것이다.자신이 그녀를 낮잡아보는 것이 아니라, 경후부에는 감히 저씨 집안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원경능은 언행이 일치한 사람이었다. 다음날 바로 녹아더러 혜정부에 배첩을 전하라고 명하였다. 다만 혜정부는 경후부에서 나온 왕비를 낮잡아보는 것이 분명했다. 혜정부가 요 두 날 저택에 있지 않다고 하면서 단번에 거절했다.초왕부로 돌아온 녹아는 매우 화가 났다. 그녀는 원경능의 면전에서 말했다. “혜정후는 왕비를 너무 존중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저택에 있었습니다. 문지기가 보고 하러 갈 때 마침 회랑에 있는 것을 소인이 다 보았습니다.” “녹아, 쓸데 없는 말은 하지 마!”기씨 어멈이 호통을 쳤다. 원경능은 담담하게 말했다.“폐하의 총애를 받는 후작(侯爵)으로서 틀을 차리거나, 나를 업신여기는 것도 정상적인 일이니라.”“왕야도 안중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당연하다. 예전에 왕야께서 그의 부하로 있었으니.”누가 예전에 부하를 안중에 두겠는가? 그것도 자신에게 밉보였던 부하를 말이다.원경능은 속수무책이었다. 정상적인 혼인이라면, 혜정후가 경후부를 안중에 두었다면, 어떻게 하여도 미래의 처형인 자신을 만날 것이었다. 혜정후가 만나기를 거절한 것은, 사실 경후부를 매우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이 혼사는 대등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왕비, 차라리 경후에게 사정을 해보십시오.”녹아가 말했다.“그에게 사정할 바에는 옥황상제에게 빌겠어!”원경능이 싸늘하게 말했다.“그렇다면 옥황상제에게 빌러 갑시다.”녹아는 원경
경후부의 "단결"은 원경능 마음 속에 있던 반항적인 정신을 불러일으켰다.“셋 셀 동안에 비키십시오!”원경능은 난씨를 빤히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난씨는 희미하게 웃었다.“정말 비킬 수 없습니다. 왕비께서 경솔하셔서 노부인의 요양을 방해하실까 염려됩니다.”‘셋을 세다니, 유치하긴.’원경능은 그녀를 빤히 바라 보았다.“하나….”그녀는 두 손으로 난씨를 밀쳐냈다. 난씨는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죄송합니다!”원경능은 재빨리 자리를 떴다.“아이고, 왕비가 저를 때립니다. 왕비가 저를 때리셔요….”난씨는 바닥에서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고함을 질렀다. 이에 경후부의 하인들은 모두 구경을 하러 나왔다. 원경능은 발걸음을 멈추며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난씨는 울며 말했다.“이러한 도리는 없습니다. 저는 그래도 왕비의 큰어머닌데 왕비라는 신분을 등지고 저를 때린단 말입니까? 친정에서 높을 항렬을 괴롭힙니다.”원경능은 고개를 떨구고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백모, 입 다무는 것이 좋을 겁니다. 오늘 둘째 노부인도 감히 저를 저지하러 나오지 않는데, 당신이 도리어 앞장을 서시는 군요.”“왕비….무엇을 말하려는 겁니까?”난씨는 바로 울음소리를 그쳤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눈물 한 방울 짜내지 못하였다.“예전에 경후부로 돌아오려면 왕야께 재삼 청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저는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백모, 알겠습니까?”원경능은 음침하게 말했다. 난씨는 순간 멍해졌다.“왕비, 저를 겁주지 마십시오. 왕야께서는 당신을 안중에 두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날 당신들은 저희들에게 연기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그들은 확실히 그날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럴 수록 그들은 더 의심이 들었다.“연기를 한다 하여도, 왕야께서는 저와 이 연기를 하기 원하십니다.” 난씨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전에 원경능이 돌아왔을 때에는 늘 소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근 두 번 돌아왔을
원윤문이 떠나고 나서도 그러한 생각이 미쳐 날뛰었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약상자를 살펴 보았다. 마취제, 붕대, 지혈제, 그리고 구급할 때 사용할 도파민과 아토르핀이 있었고 또 자질구레한 약들이 몇 개 있었다. 비수는 없었으나 서일에게서 빌리면 되었다. 만사가 준비되었고 조사만 남았다. 그녀는 혜정후가 어떤 곳에 드나들기를 좋아하는지, 어떠한 길로 가는지, 신변에 얼마나 많은 경호원들이 있는지, 어떤 무기를 지니고 다니는지를 조사해야 했다. 서일은 최근 왕비가 매우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비수를 빌려달라고 하더니, 또 다른 암살 무기(暗器)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자신에게 남자의 가장 특출한 표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그전의 두 가지 물음은 괜찮았으나, 마지막 물음은 정말 대답하기 어려웠다. 남자의 가장 특출적인 표징은 우람진 가슴근육과 아랫도리의 그것이 아닌가?왕비는 실로 너무 단순했다.그렇게 어느 날, 서일은 왕비가 남자의 의복을 입고 외출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후문으로 나갔었는데 녹아도, 두 어멈도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그는 이상하다고 여겼으나 차마 묻지 못했다. 왕비께서 이러한 취향이 있으시니, 실로 부끄러워서 물을 수가 없었다.두 번째 날, 왕비는 찐빵 두 개를 지니고 또 외출했다. 온 하루 밖에 있었는데 날이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세 번째 날에도 그러했다. 서일은 왕야께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문호는 붓기가 빠진 뒤에 바로 경조부로 인수인계를 하러 갔다. 정식으로 경조부윤직을 인계 받은 것이었다.필연 새롭게 인사를 정리여야 했다. 경조부에는 크고 작은 관원 몇 십 명이 있었는데 각종 모순으로 복잡했다. 인간관계는 마치 나무뿌리처럼 얽히고 설켰으며, 각자의 단체가 있어 암투가 대단했다.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우문호는 최대한 빨리 각종 업무를 익혀야 하는지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망했다. 이날 초왕부에 돌아오니, 서일이 다가와 말했다."왕야, 최근 왕비께서 매우 수상하십니다."우문호는 원래부
원경능은 자신의 그의 마음에 들었음을 눈치 채고 애써 진정하려 하였다.그녀의 계획은 먼저 자신에게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손을 쓰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혜정후가 손을 쓸 기회를 다시 안배할 것이다.그때가 되면 어찌 그를 단번에 생포하지 못하겠는가?그리하여 원경능은 여기까지만 하고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떴다.서일은 탕양의 분부에 따라 요 이틀간 계속 원경능의 뒤를 따랐다. 원경능의 경성소축에 들어갔을 때 그도 측문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자리에 앉지 않고 문에 기대어 보기만 했었다.서일도 혜정후를 보았으나, 왕비는 아마 혜정후와 무슨 교제가 없을 것이었다. 왕비가 떠나는 것을 본 서일은 천천히 뒷문으로 나가 멀리찍히 떨어져 걸었다.원경능은 걸어가고 있었다. 며칠동안 다니면서 부근 일대의 길은 이미 매우 익숙했다. 그러나 오늘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고대의 거리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북당의 경성은 매우 번화했는데 점포가 늘어졌고 시장이 매우 창성하였다. 비단 가계, 보석 가계, 쌀가게, 연지 가게들에는 손님들이 북적였다. 원경능은 걸으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한눈에 이루 다 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곁에 마차 한 대가 서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마차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원경능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발이 올려지더니 혜정후가 눈에 안겨왔다.원경능이 요 며칠간 모두 이 사람을 위해 분주했었다. 비록 깜짝 놀랐으나 너무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금 멍한 표정으로 혜정후를 바라 보았다.그녀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늘 말을 타고있었는데 왜 오늘에는 마차를 탄 것인가?"공자,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혜정후가 말했다. 원경능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집이 가까운지라 조금만 걸으면 도착합니다."아직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어떤 대비와 배치도 하지 않았었다. "방금 공자와 함께 경성소축에서 노래를 들었었습니다. 공자도 감수성이 풍부한 분이라는 걸 발견하였습니다
서일은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왔다. 그는 감히 우문호 눈 속의 노기를 직면하지 못했다."소인이 요 두 날 계속 왕비의 뒤를 따라다녔었습니다. 왕비께서는 오늘 남장을 하시고 경성소축에서 노래를 들으셨는데 혜정후를 만났습니다. 떠날 때 혜정후의 마차가 왕비를 막아 섰었는데 무엇을 말했는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왕비는 그저 두어 마디만 답하고 떠났습니다. 소인은 계속 뒤를 따랐었는데, 뜻밖에도 혜경후의 마차가 휙 지나더니 왕비가 사라졌습니다. 소인은 왕비가 혜정후에게 납치당했다고 의심합니다.""남장을 했다고?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냐?"우문호는 화가 나기 그지 없었다. 원경능은 자신이 이미 사면초가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감히 남장을 하고 외출을 하다니. 이러한 사람은 죽지 않아도 다른 쓸모가 없을 것이었다."관여하지 말거라. 죽게 내버려 둬."우문호는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탕양이 권고했다. "왕야, 현재 홧김에 그러한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왕야께서도 혜정후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왕비의 신분을 모르고 있습니다. 현재 왕비가 그의 수중에 놓였으니, 죽는 것이 가장 경한 일일 겁니다.""다 왕비가 자처한 일이지. 누가 그녀더러 함부로 돌아다니라고 하였어?"우문호는 불현듯 눈을 가늘게 떴다."아니야. 왕비는 절로 혜정후를 접촉하려고 나간 것이 아니냐? 자신 여동생의 혼사를 위해서 말이야."탕양은 그의 대담한 추측에 깜짝 놀라 공포에 질려 말했다."아닐 겁니까? 왕비께서는 그렇게 대담하시지 않을 겁니다.""그러한 담이 없으나 아둔한 사람이지."우문호가 버럭 화를 냈다. 서일이 물었다."그렇다면 지금 어쩝니까? 바로 혜정후부에 가서 사람을 찾아야 합니까?""가지 않을 것이야!"우문호가 싸늘하게 말했다. 탕양도 맞장구를 쳤다."왕야께서 사람을 거느리고 혜정후부에 가는 것은 좀 모험적입니다. 필경 서일의 추측뿐이니, 만일 혜정후부에 사람이 없다면 왕야는 난처하게 될 것입니다. 왕야께서 금방 경조부윤의 직무를 맡았는데
원경능은 혜정후 뒷문으로 들어갔다. 남장을 한 산발인 여인을 본 혜정후부 사람은 조금도 의아해하지 않았다. 심지어 버릇이 되어 예사로운 일로 돼버렸다.후야의 이 취향을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본후가 용무를 보러 갈 테니 너희들은 저 여인을 잘 살피고 있거라!"혜정후는 원경능을 방 안에 끄집어 들이고는 곁에 있는 시녀에게 분부했다."네!"두 시녀는 허리를 숙이며 응하였다. 원경능은 이 두 시녀의 우람진 체격과 두툼한 손목을 보고 무술을 익힌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녀가 이 두 사람 수중에서 벗어나려면 절대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되었다.허나......원경능은 소매 안의 약상자를 매만졌다. 그녀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저기, 일을 보고 싶은데 뒷간이 어딥니까?"원경능이 물었다.원경능은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었고 남장을 입었지만 여인의 아름다움을 잔뜩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요염한 눈빛을 살살 흘리고 있어 기루나 꽃배의 기생일 것이었다. 두 시녀는 원경능이 자발적으로 온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후야께서는 잘 살피라고 하셔서 이렇게 말했다."병풍 뒤로 가시면 변기가 있습니다.""뒷간이 없습니까?"원경능은 미간을 찌푸렸다."멀리에 있습니다. 후야께서는 이 방에서 나가지 말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저택에 사나운 개가 있는지라 낭자께서 놀라실 수 있습니다."사나운 개라? 원경능은 들어올 때 확실히 요란한 개 짖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아마 사나운 개를 한 무리 길러 저택을 지키는 것 같았다.병풍 뒤에도 약상자를 꺼낼 수 있으니 괜찮았다. 자신이 일을 보는 것까지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었다.원경능은 병풍 뒤에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세히 밖의 동정을 들었다. 두 명의 시녀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들어오지도 않았다.그녀는 살금살금 약상자를 꺼냈다. 전에 서일에게서 비수 한 자루를 빌려 약상자에 넣으려 했었다. 그러나 약상자를 소매 안에 넣으려 할 때, 비수가 있어서 작아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비수를 넣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