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 귀신이 어디 있어?!”최소택은 얼굴과 목을 긁으면서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었다.그러면서 짜증 섞인 말로 계속 하녀를 꾸짖었다. “아니에요, 세자. 그런데 얼굴이… 대체 어쩌다 그리 되셨어요?!”다행히 하녀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귀신이 아니라 세자임을 알아챘지만, 겁에 질린 표정은 사라지지 않고 경악을 금지 못했다.“내 얼굴이 어떤데?”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최소택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그러자 하녀가 구리거울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최소택은 구리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핏자국투성인 걸 확인하고서야 아연실색하고 말았다.“이게 어찌 된 거지? 내 얼굴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본래 윤택이 흐르는 피부에 잘생긴 얼굴인데 지금은 핏자국이 가득하고 붓기까지 해서 살이 찐 돼지머리 같았다.심각한 것은 얼굴뿐만 아니라 목, 손, 다리, 심지어 온몸이 얼굴과 똑같은 상태였다.자세히 들여다보니 핏자국이 제일 많은 곳은 그가 제일 세게 긁었던 부위였다.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최소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뭐 하는 것이냐? 어서 의원을 불러오거라!”그가 당황하며 하녀에게 지시했다.그렇게 반 시진 후, 꿀잠을 자던 의원은 대문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깨고 부랴부랴 충용후부에 달려왔다.최소택의 상황을 살피던 의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세자께서 아마도 중독되어서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그게 무슨 독이냐?”최소택이 다급하게 물었다.“심각한 건가? 지금 해독할 수 있어?”그러자 의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무능력함을 솔직하게 말했다.“해독을 하려면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 알아야 알맞은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한데 소인은 독에 일가견이 없어서 잠시 증상을 완화시키는 탕약만 처방드릴 수 있습니다. 해독하시려면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최소택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의원들을 불러 진찰을 받았다.서너 명이 되는 의원에게 증상을 보였지만 결국 어느 한 명도 해독할 줄 몰랐다.한밤
이 옥여설화고는 궁중의 어용물로, 작은 병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천금이어서 일반 관리와 백성들은 사용할 수도 없었고 마마들이 하사해야 관리 가족과 신하들이 사용할 자격이 있었다.온아려는 그녀의 큰 오라버니 덕분에 혜택을 받은 것이었다. 게다가 남편이 실권을 쥔 충용후였기에 태후마마께서 가끔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니 옥여설화고 같은 하사품도 당연히 적지 않았다.이 세 병은 지난번에 그녀가 궁에 들어왔을 때 태후마마께서 그녀에게 상으로 주신 물건이었다.다만 그녀도 쓰기 아까워서 세 병을 모두 창고에 넣어두었던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건 오전에 입고된 옥여설화고가 오후에 아들에 의해 진국공 저택으로 보내져 온모의 화장대에 나타났다는 것이었다.최소택은 어머니가 얼마나 옥여설화고를 소중히 여기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다.최소택은 그날 진국공 저택에서 말을 잘못해서 사촌 여동생이 화를 냈는데 아무리 달래도 화를 풀지 못했다.마침 그의 어머니가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 옥여설화고라는 말을 듣고난 후, 한 병을 가져가서 시험해보려고 했던 것 뿐인데, 정말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다.옥여설화고는 온모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온모의 몇 마디 말에 정신을 잃고 나머지 두 병도 모두 줬다.나중에 최소택이 옥여설화고가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 알게 되었을 땐 후회해도 소용이 없어 몰래 어머니를 속일 수밖에 없었다.“너도 참. 낭비는 무슨, 네 얼굴에 가득한 핏자국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구나.”온아려는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마음이 아파서 말했다. “괜찮다. 태후마마께서 많이 하사하셨으니 난 남은 한 병만 사용해도 괜찮다.” 하지만 한 병도 남지 않았다. 최소택은 사실을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가 평소에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막상 화를 내면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직 방법을 생각해 내기도 전에 온아려는 이미 하녀를
옥여설화고를 훔친 도둑이 바로 온사라고 짐작한 온아려는 화가 나서 욕설을 퍼풋기 시작했다.“폐하에게‘복명성녀’로 봉함 받고 기어코 암자에 들어가서 비구니가 되어 수행과 기복을 배운다더니 도둑질하는 법만 배웠구만.”“큰 오라버니 말이 맞았어. 가문을 창피하게 하는 자는 온 성을 박탈해 앞으로 온 씨 가문의 이름을 걸고 온 진국공 저택에 먹칠하는 행동을 할 수 없게 해야 하는 거라고.”“어머니, 온사가 아니라….”최소택은 온아려가 바로 온사를 의심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는 어렵게 입을 열어 온사를 위해 해명하려고 했지만, 그는 겨우 몇 마디 하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온사를 위해 해명하면 내가 옥여설화고 세 병을 모두 온모 동생에게 줬다는 걸 승인해야 하는 거잖아? 그랬다가 어머니가 온사를 욕하듯이 온모를 욕하면 어떡해? 심지어 어머니가 온모 동생에게 앙심을 품고 앞으로 내가 온모와 결혼하는 데 영향을 미칠지도 몰라.”거기까지 생각한 최소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안돼. 절대로 어머니에게 옥여설화고 세 병을 모두 온모 동생에게 줬다는 것을 말해서는 안 돼. 온모 동생은 순수하고 착하니까, 어머니께서 오해하시게 해서는 안 돼.’게다가 그는 온모 동생을 힘들게 하기 싫어, 온사가 잠깐 억울함을 당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원래 온사를 좋아하지 않으니 온사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녀에게 보상하겠다고 마음 먹었다.그렇게 생각하자 최소택의 마음은 편해졌다.“아들, 너도 더 이상 그 천한 년을 위해 좋은 말을 할 생각하지 말거라. 예전이라면 나도 네 말대로 들어줄 수 있지만 지금은 너의 평생이 걸린 중요한 문제이니 가문에게 먹 칠하고 가풍을 파괴할 수 있는 여자는 절대로 우리 충용후부로 들여서는 안 된다.”온아려는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게다가 지금은 네 아버지도 이 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온모와 온사 두 사람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데 온사 그 천한 년한테
진국공 저택의 적녀인 온사도 당연히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자주 사용하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진국공 저택에 딸이 하나밖에 남지 않아, 그때의 온권승은 매번 물건을 하사 받을 때마다 직접 그녀에게 주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온모가 온 씨 가문으로 오게 되었을 때, 그녀가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원래 그녀의 방으로 보내졌던 옥여설화고의 수량이 줄어들더니 결국 나중에는 하나도 받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몰랐던 온사는 바로 온권승을 찾아가서는, 그에게 왜 옥여설화고를 모두 온모에게 주고 자기는 한 병도 주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어떻게 대답하셨던가? 그래, 아버지께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었지. 온모는 동생인 데다 밖에서 고생을 많이 했으니 언니인 내가 양보하라고.’ 언니라는 명분 때문에 온사는 늘 마음속으로 아무리 억울해도 양보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순진하게 그깟 옥여설화고, 온모가 원하니 그녀에게 양보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온사는 온모가 원하는 것이 옥여설화고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옥여설화고는 왜 모두 큰 병에 담긴 것입니까?” 온사가 조심스럽게 병을 들고 물었다. 그리고 나무 마개를 열고 병에서 오랜만에 나는 향기를 맡으며 얼굴에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온사는 이 옥여설화고가 가짜일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북진연의 신분으로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으니 가짜로 거짓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궁중 제약각에서 막 완성된 것인데 그들의 병이 너무 작아서 내가 사람들에게 큰 병을 가져와서 담으라고 한 것입니다.” 북진연이 그녀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한 후에 물었다. “왜요? 혹시 작은 병을 좋아합니까?” “아니에요. 병이 바뀌어서 못 알아봤던 것뿐이에요.”온사는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예전에 내가 쓰던 옥여설화고는 모두 궁안의 색유리병에 담겨 있었는데 작고 정교했지. 하지만 북진연이 보내온 건 일반적
“사태,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북진연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막수 사태는 두 손을 합장한 후, 아미타불을 읊은 뒤에 답했다.“섭정왕 전하께선 제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월관은 불가의 구역이지요. 이곳에 와서 출가한 아이들은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내면을 깨끗이 비워야 하는 법입니다. 무우 또한 예외는 아니지요.”북진연이 담담한 어조로 되물었다.“사태의 말씀은 내가 무우의 수행을 방해한다는 말씀인지요?”막수 사태는 아무 대답 없이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무거운 분위기가 두 사람 사이를 감돌았다.그렇게 한참 뒤에 북진연이 말했다.“줄곧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의문이 있었지요. 아마 막수 사태께서도 아실 겁니다. 마침 사태께서도 계시니, 부디 제 의문을 풀어주시길 바랍니다.”막수 사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말씀해 보시지요, 전하.” “예전에 책에서 읽은 바로는 부처께선 인연이 닿은 자에게 깨달음을 주신다 하였습니다. 그럼 저 같은 사람도 부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북진연은 상시 검을 잡고 있었던 탓에 상처투성이가 된 손을 막수에게 내보였다.옷으로 가려진 몸의 상처처럼 그의 손도 흉하기 그지없었다.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그에게서 날카로운 분위기가 흘러나왔다.“사태께서는 불가에서 수련하려면 속세의 연을 끊고 내면을 깨끗하게 비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전 2년 저부터 귀에서 잡소리가 들려오며 밤마다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꿈 속은 피바다로 뒤덮인 지옥이이었어요. 전 한시도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없었어요. 제게 이런 고통을 주는 건 부처께서 저를 구원하고 깨우침을 주기를 거부한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제 업보인가요?”막수 사태가 눈을 살포시 감으며 말했다.“나무아미타불, 전하께선 나라를 위하여 전장에 나가 적군의 침략을 막는 과정에서 손에 피를 잔뜩 묻히셨지만, 수많은 백성을 살리고 그들에게 평화를 찾아주셨습니다. 대명 왕조의 태평성세 또한 이루셨죠. 선악의 본질
수월관에서의 수행은 매우 고된 일이었기에, 이런 좋은 과자는 평소에 먹어보지도 못하는 게 여승들이었다.막수 사태가 동의하자, 온사는 과자 봉지를 들고 사저들을 찾아갔다.그리고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품에 반 봉지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온사는 잔뜩 들뜬 얼굴로 달려오다가 북진연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전하 몫을 남기는 걸 깜빡했네.’그녀의 생각을 읽은 북진연은 괜찮으니 어서 먹으라고 말을 하려다가 생각을 바꿔 묘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농을 걸었다.“이를 어쩌나. 얼마 안 남았군. 난 아직 한 조각도 못 먹었는데...”그 말을 들은 온사는 더욱 미안해졌다.섭정왕 전하께서 사온 과자를 너무 기뻐서 사저들에게만 나눠주고 보니, 정작 과자를 사다준 장본인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온사는 잔뜩 미안한 얼굴로 남은 반 봉지를 그에게 건네며 물었다.“조금 남았는데 이거라도 드실래요?”“당연한 거 아니오.”북진연은 살짝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과자 한조각을 꺼냈다.“난 단 걸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남은 건 사태가 다 드시오.”온사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북진연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장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웃으며 북진연에게 감사인사를 한 뒤,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어제 약재 종자를 좀 구하면서 재배 방법도 알아보았소. 사태의 정원이 하도 작으니, 심고 싶다면 뒷산에 심어도 되오. 이미 사람을 시켜 뒷산에다 약재를 재배할만한 곳을 확보하라고 했소. 냇가랑 가까워서 물을 주기에도 편하다 하오.”온사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제가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왜 사셨나요?”“그냥 나간 김에 산 거요.”북진연이 담담히 말했다.나간 김에 한 일이라고 하기에는 뒷산에 약재를 심을 밭마저 갈아주었지만 말이다.온사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북진연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고귀한 섭정왕 전하께서 하루가 멀다 하게 그녀를 위해 물건을 가져다주는 것도
‘그런 거였구나. 어쩐지 전에도 보답을 하겠다며 염불을 외워달라더니.’상황을 이해한 온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섭정왕 전하께서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시며 위대한 전공을 세운 분이지요. 그런 분께서 지금 고통받고 계시니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온사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제가 경 읽는 소리가 전하의 고통을 덜어드릴 수 있다면 그것도 저의 영광이지 않겠습니까.”대명 왕조가 지금의 태평성세가 있기까지 전신 섭정왕의 공로가 가장 컸다. 그런 공신이 도움을 원하는데 거절할 이유는 당연히 없었다.하물며 쉽게 들어줄 수 있는 요구 아닌가!그녀가 흔쾌히 응하자 북진연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앞으로 힘드시면 언제든 저를 찾아오세요. 절 위해 뭘 안 사오셔도 됩니다.”온사는 북진연이 전에 자신을 위해 자꾸 선물을 가져다준 것이 자신을 매수하려 한다고 생각했다.이제 진실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북진연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그건 나중에 얘기하지.”정당한 이유가 생겼으니 북진연은 더 부지런하게 수월관을 찾을 수 있었다.하지만 본디 사내가 함부로 침입하면 안 되는 곳이기에 혹시라도 자주 찾아가서 다른 사태들을 방해할까 봐 온사와는 매일 뒷산의 냇가에서 보기로 약속했다.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온사는 열심이 경문을 읊으며 약초를 심었고 북진연은 옆에서 그녀를 거들었다.막수 사태는 몇 번이나 찾아가서 확인해 본 후, 드디어 안심이 되었는지 더 이상 둘을 찾지 않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해꾼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충용 후작 부인? 저 사람이 또 왜 왔을까요?”소식을 들은 온사는 미간을 찌푸렸다.항상 그녀를 싫어하고 배척하던 온아려였는데 그런 사람이 수월관까지 왜 찾아왔을까 싶었다. 좋은 일로 찾아온 건 아닐 것 같았다. 상대하기도 귀찮았기에 그녀는 사저에게 부탁해서 말을 전하게 했다.“무우는 최근 폐관 수행 중이라고 못 만난다고 전해주세요.”말을 마친 온사는 눈을 감
“하! 우리가 널 괴롭혔다고?”온아려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온사에게 비아냥거렸다.“온사, 억울한 척하지 마. 너 내 물건을 얼마나 훔쳐갔는지 네가 더 잘 알겠지. 굳이 내 입으로 다 까발려야겠어?”“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 하지 마세요.”온사도 지지 않고 맞섰다.“제가 충용 후작가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생각되시면 사실적인 근거를 대시면 되잖습니까!”“좋아! 그래도 오라버니를 봐서 네 체면을 어느 정도는 살려주려고 했는데, 네가 수치를 모른다고 하니, 나도 더 이상 배려할 이유가 없지.”온아려는 신변의 시종에게 눈짓했다.그러자 시종이 앞으로 나서더니 온사와 사저들을 향해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수월관의 주지 사태인 막수 사태께서 며칠 전 복명 성녀와 함께 충용 후작가로 와서 노부인을 뵈었지요. 그리고 두 분이 돌아가신 후로 부인의 창고에서 옥여설화고 세 병이 사라졌습니다.”온아려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날 너희를 제외하고 아무도 우리 충용 후작가에 들르지 않았어. 너희가 훔친 게 아니면 뭔데?”“옥여설화고? 그게 뭘까? 일반 설화고가 아닌가?”백성 중 한명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옆에 있던 사람이 바로 대답해 주었다.“옥여설화고는 황실에서만 쓰이는 약이야. 미용에 좋기도 하지만 상처 치료에도 아주 탁월하다니. 흉터 제거에도 기묘한 효과를 발휘하고!”“그렇게 좋다고? 우린 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당연히 좋겠지. 한 병에 금화 천냥이나 하는데!”“그리고 황실 전용이라고 했잖아. 우리 같은 백성들은 물론이고 권력 있고 돈 있는 가문이라고 다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폐하와 마마들이 하사해야 구경이라도 할 수 있다고.”“그럼 충용 후작 부인이 잃어버린 옥여설화고는 궁에서 하사한 거겠네?”“그러니 기세등등하게 찾아와서 따지겠지.”“하지만 복명 성녀님께선 이제 공주와 동급인데… 굳이 훔치실 필요가 있을까?”대부분 사람들은 온아려의 말을 믿은 반면, 일부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의문을 제기했다.하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사
그는 혹시라도 막수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해명을 덧붙였다.하지만 그럴수록 막수의 눈에는 더 수상해 보일 뿐이었다.온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랬군요. 어서 앉으세요. 제가 차를 내오죠.”그녀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고 북진연과 막수만 정원에 남았다.막수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섭정왕 전하의 마음이 너무 티가 납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다 보일 정도예요. 무우는 현재 우리 수월관 사람이니 전하께서 이럴수록 무우의 수행을 망치는 것입니다.”북진연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서신을 받은 후,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온 그였다.수월관에 도착하고 막수와 부딪쳤을 때에야 그는 자신의 행위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밤중에 여인의 처소로 달려오다니, 다른 사람이 봤으면 온사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칠 것이다.북진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생각이 짧았군. 사태,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다음엔 더 주의하겠습니다.”막수는 다음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불만 가득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았다.이때, 온사가 뜨거운 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세 사람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온사는 북진연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막수와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했다.“사부님, 독사의 사체는 어디에 쓰려고 남기라고 한 건가요?”온사는 혐오스러운 눈으로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북진연은 그제야 구석진 곳에 쌓인 피 묻은 보따리를 발견했다.살짝 풀어진 틈새로 독사의 머리가 보였다.비취색의 영롱한 색상을 보고 북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독성이 매우 강한 독사인데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보따리의 형태로 봐서 적어도 열 마리는 될 것 같았다.이게 모두 온사의 정원에서 나왔고 오늘 온사가 하마터면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고 생각하니 북진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이미 죽은 녀석들이고 좋은 약재로 쓰일 수 있어. 마침 3일 후에 그 사구라는 인간을 만나야 하니 그 전에 이것들로 좋은 선물을 준비할
약속 시간을 잡은 사구는 그 길로 뒤돌아섰다.그렇게 온사의 정원을 지나던 그는 뭔가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는 늙은 여승이 있었다.사구는 그 여승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가 옷소매를 휘두르자 뱀들이 소매에서 기어나와 여승이 있는 곳을 향해 기어갔다.사구는 그걸 본 여승이 겁에 질려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흥미가 사라진 사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 길로 수월관을 벗어났다.사구가 떠난 후, 추월은 정원 안팎을 꼼꼼히 확인했다.그리고 정원 곳곳에서 십여 마리의 뱀을 잡아냈다.“사구 놈이 다녀간 후로 내 처소가 뱀 소굴이 다 되었네.”독사를 전부 처치한 추월은 굳은 표정으로 뱀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 불사르려 했다.그리고 이때, 막수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잠깐, 그 독사들은 그대로 둬.”고개를 돌린 온사가 물었다.“사부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내가 안 왔으면 네가 나 몰래 이렇게 큰 일을 치르고 있을 줄도 몰랐잖니.”막수는 싸늘한 시선으로 온사를 쏘아보았고 온사는 괜히 찔려서 어깨를 움츠렸다.사부는 밖에서 그녀와 사구의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온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사부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작정하고 숨긴 게 아니라 확실해지면 사부님께 말하려고 했어요!”“정말이니?”막수 사태는 못 믿겠다는 어투로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온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저도 출가인입니다, 사부님!”“하, 말은 잘해.”막수는 냉소를 지으며 온사에게 말했다.“일단은 믿어주도록 하마. 허나 삼일 후 나도 너와 같이 가겠다.”“그건 안 돼요, 사부님!”온사는 당황하며 막수를 말렸다.“아주 위험한 상황이란 말이에요. 상대가 몇이나 데리고 나올지도 모르고 그쪽에서 만약 사람이 많이 오면 한바탕 피바다가 될 거예요. 사부님은 출가인인데 어찌 그런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겠어요?”“그럼 넌 출가인이 아니고?”
미리 대비를 해두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그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나에 대한 정보를 대체 누가 줬을까?”중년 사내는 위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배신자는 빨리 제거해야 해서 말이야.”온사는 당연히 이 시점에 김사도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주인이 워낙 겁쟁이라 좀 겁만 줬을 뿐인데 전부 말하더라고. 그걸 꼭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알아?”“쯧,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군.”사구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질문을 이어갔다.“그런데 참 궁금하단 말이야. 고결하신 성녀 전하는 대체 우리 아가씨한테 어떤 식으로 겁을 줬을까?”능글맞게 웃는 그의 눈매에서 위협이 느껴졌다.하지만 온사에게는 저런 속임수가 통하지 않았다.“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도 많아서 말이야. 궁금하면 너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됐어. 난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 성녀 전하의 시련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 본론부터 얘기하지.”사구는 손을 뻗더니 소매 안에서 고급 소재의 헝겊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성녀 전하, 이게 뭔지는 알고 있지?”온사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그것은 사망하신 어머니께서 입관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온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좋아. 어디 네 얘기 한번 들어보지.”그녀는 소매를 만지는 척하며 공간 안에서 뭔가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피 묻은 머리카락이었다. 딱 봐도 억지로 잡아당겨 뽑은 것으로 보였다.사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온사는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내 어머니의 물건으로 날 협박하려 하지 마. 네가 어머니를 완전한 상태로 돌려준다면 너희의 아가씨도 무사할 테니까.”물론 지금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손발가락 그대로 붙어 있으니 완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사구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호통쳤다.“이런 식으로 나에게 협박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어!”“그건 예전이고 지
“뭐라고?”온자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는 그런 그를 싸늘히 노려보고는 말했다.“거래 안 한다고. 알아들었어? 내가 다시 말해줘?”“온사, 너!”온자월이 온사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검은 인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놀란 온자월은 품에 간직한 비수를 꺼내려 했다.하지만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추월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곧이어 추월은 주먹으로 온자월의 얼굴을 쳤다.퍽!온자월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그가 일어나서 반격하기도 전에 추월은 그의 복부를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너… 넌 누구야? 감히 진국공가의 공자에게 무력을 휘두르다니!”온자월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신분으로 추월에게 겁을 주려 했다.온사는 그런 그들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추월이 고개를 숙이고 온사의 뒤에 섰을 때에야 온자월은 상황을 눈치챘다.“이 아이는 내 사람이야. 뭐, 불만 있어?”온사는 바닥에 쓰러져서도 소중히 연을 감싸고 있는 온자월을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아들이 원수의 딸을 구한답시고 친히 만들어준 연을 거래 조건으로 들고 나온 걸 어머니가 아시면 참 후회하실 거야.”“원수의 딸이라니! 또 무슨 헛소리야!”온자월은 바닥에 쓰러져 몸도 못 일으키면서도 언성을 높여 말했다.“참, 내 정신 좀 봐. 또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온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는 생전에 우리를 무척 사랑하셨어. 네가 불효자인 걸 아셨어도 후회는 없으셨을 거야.”말을 마친 온사는 온자월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온자월 너는 후회 안 해?”온자월은 주먹을 꽉 쥐고 온사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아. 넌 나와 막내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어. 하지만 착각하지 마. 혈연을 떠나서 막내는 내 동생이야!”“그래? 진실을 알게 되는 날에도 그 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그 말을 끝으로 온사는 수월관으로 돌아가 버렸다.그녀는 더 이상 온자월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그가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온사는 그가 뭐 하러 온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그녀는 온자월이 대체 뭘 갖고 왔을지 궁금했다.밖으로 나가서 온자월이 들고 있는 연을 보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연까지 가지고 왔네?”온자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연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나도 쓸데없는 말 안 할게. 너 어머니의 물건을 원하잖아? 이 연을 너에게 줄게. 당장 막내를 풀어줘.”온사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온모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걔를 위해서 어머니까지 버릴 생각이야?”“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야!”그 말을 들은 온자월은 곧바로 반박했다.“네가 막내를 납치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머니의 물건을 꺼낼 일도 없었어!”온사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니까 넌 결국 어머니와 외부인 둘 중에 외부인을 택했다는 거잖아!”“헛소리하지 마!”온자월은 격앙된 목소리로 호통쳤다.“막내는 외부인이 아니야. 외부인은 너지! 잊지 마, 넌 이미 진국공가의 딸이 아니야. 진국공가의 딸은 막내 한 명뿐이야. 걔가 내 동생이라고!”“그래! 양심도 없는 놈. 역시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끼리 잘 어울리네. 원래부터 너희가 일가족이었나 봐!”온사는 눈을 부릅뜨고 온자월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지금 누굴 욕한 거야?”온자월도 눈을 부릅뜨고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 내가 너한테 주먹을 못 휘두른다고 함부로 막내 욕하지 마!”온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참 대단하네. 경성의 사내들 중에 여자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너!”온자월은 발끈하며 온사에게 다가가려다가 손에 든 연을 놓칠 뻔했다. 그는 뒤늦게 연이 괜찮은지 살펴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온사는 그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연을 외부인인 나에게 갖고 와서 거래를 하자는 사람이 뭘 그렇게 긴장해?”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설마 내가 이걸 소중히 보관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중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온자월은 나무상자에서 조심스럽게 연 하나를 꺼냈다.이것은 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간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이것을 꺼낸 적 없었다.오늘에 와서야 이것을 꺼내보지만 목적은 좀 달랐다.“분명 온사가 막내를 숨겨뒀을 거야. 온사가 막내를 풀어주게 하려면 걔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밖에.”온사가 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온자월은 잘 알고 있었다.온사는 출가하러 수월관으로 떠날 때도 그들 몰래 어머니의 위패를 가져간 사람이었다.나중에는 온자신을 갖고 그들을 협박하여 어머니의 혼수품까지 모두 챙겨갔다.그래서 이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물건은 별로 많지 않았다.이걸 온사에게 내어주기엔 너무 아깝지만 막내가 온사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온사는 막내가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모함하고 있지 않은가! 빨리 막내를 구해내지 않으면 명성이 더럽혀질 것 같았다.“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세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막내만 구출하고 어떻게든 이 연은 다시 돌려받을게요.”온자월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그는 연을 들고 말에 올라 남산 쪽을 향해 달려갔다.그가 경성을 나간 후, 진국공부.“국공 어르신, 셋째 공자께서 외출하셨습니다. 성녀를 찾아간 것 같아요.”침상에서 휴양 중이던 온권승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집사가 재빨리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온권승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뭐 하러 가는지는 말이 없었고?”집사가 답했다.“셋째 공자께서는 손에 연 하나를 들고 나가셨습니다. 다른 건 소인도 모릅니다.”“연을 갖고 나가?”온권승은 잠시 기억을 회상하다가 집사에게 물었다.“제비 모양의 연 말이야?”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맞습니다. 크지 않고 자그마한 어린애용 연 같았습니다.”온권승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온자월이 뭐 하러 갔는지 알 것 같았다.“됐어. 갈 테면 가라고 해. 수월관에 침입하지 못하도
그러나 김사도는 사구와 그저 몇번 지나치다 본 사이라고만 했다.말투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온사는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옥패 공간으로 돌아간 온사는 사구가 찾아올 것을 미리 대비해 두기로 했다.그 시각, 경성 진국공부.“그럴 리 없어요. 막내가 그런 짓을 했을 기 없잖아요! 분명 온사 그 계집애가 막내를 모함하는 걸 거예요!”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완전히 실망한 온장온은 어머니의 무덤이 도굴당한 일을 두 동생에게 알렸다.두 사람의 반응은 무척 격했다. 하지만 온장온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지금 그게 중요해? 먼저 어머니의 시신부터 찾아야 하는 게 아니야?”“당연히 알죠. 하지만 형님, 온사가 막내를 모함하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온자월은 격분해서 온장온에게 언성까지 높였다.온장온의 표정도 순간 차갑게 변했다.“온사가 이런 일로 장난칠 애로 보여? 잊지 마! 걔도 우리처럼 어머니의 자식이야!”“형님!”온자월은 실망한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며 따져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막내는 우리와 같은 배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의심해도 된다는 거예요?””내가 언제 그렇다고 했어? 셋째야, 내 말을 왜곡하지 마!”“제가 왜곡을 했다고요?”온자월은 냉소를 짓고는 온옥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그럼 넷째에게 물어보세요. 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형제는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온옥지에게 고개를 돌렸다.온옥지는 담담히 말했다.“큰 형님, 어머니의 시신이 사라져서 많이 놀라고 초조한 마음 이해요. 하지만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돌아온 막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얼마나 속상하겠냐고요?”온자월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온장온은 한숨이 나왔다.그는 이 둘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어쩌면 매번 막내와 연관된 일에 한해서는 그랬던 것 같았다.예전의 그 역시 막내의 편에 섰기에 그게 틀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최근에 그놈을 만났어?”온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놈이 나한테 정말 소중한 것을 훔쳐갔어. 그래서 놈을 찾고 있어.”김사도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온모가 시킨 거겠지. 그 인간 평소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 나도 몇 번 마주친 게 다라고. 사구의 다른 무리는 본 적도 없어.”“그렇게 은밀히 행동해?”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김사도가 말했다.“놈들을 찾자면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구는 곧 나타날걸.”온사가 흠칫하며 물었다.“온모가 내 손에 있기 때문에?”“맞아. 놈들은 온모가 변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조심해. 내 해독제를 만들어내기 전에 죽지 말라고.”말은 그렇게 해도 김사도는 꽤 신이 난 표정이었다.온사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너도 조심해야겠지.”“내가 왜 조심해? 난 어차피 온모에게 조종당하던 허수아비일 뿐이야. 지금은 온사가 너에게 잡혀가고 내 통제권이 너한테 넘어간 것일뿐. 한낱 허수아비일 뿐인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김사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온모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넌 이미 내 허수아비가 되었으니 사실을 말해주지. 온모의 몸에서 수색한 처방전을 보고 감히 확신하건대, 이 대명왕조에서 나를 제외하고 너희들의 해독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김사도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처방전을 훼손한 거야?”“그거도 그거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자세한 원인은 지금은 말해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너희는 영원히 해독제를 못 구할 거라는 것만 명심해.”“정말 너무하네.”김사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이제 동맹이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한테 그런 것도 얘기 못해줘?”“미안하지만 나한테 동맹과 친구는 달라. 동맹은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지만 친구는 아니거든. 그러니 넌 내 친구가 아니야.”온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김사도는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나 상처 받았어.”“그래. 그
“쿨럭… 처리하기도 전에 납치를 당해서… 시신은 사구한테 있어.”온사가 온모를 납치하던 날에 온모가 사구를 시켜 무덤을 도굴하게 했다는 얘기였다.온사는 만약 추월이 그날 온사를 납치해서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시신은 진작에 온모의 손에 훼손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사구는 누구야?”“모… 몰라. 난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그 사람들? 온모의 배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환각제를 먹고도 상대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다면 김사도 무리처럼 온모의 어미 백초유가 미처 온모한테 알려주지 못하고 남기고 간 사람들일 것이다.‘아니면 온모의 배후에 비밀의 존재가 있거나.’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온사는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은 후에 바로 온모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놈은 어디 있어? 너희는 어떻게 연락해?”“나도 걔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내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났어.”말을 마친 온모는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환각제의 약효가 끝난 것이다.온사는 싸늘한 눈으로 온모를 내려다보았다.“네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난다라….”‘그렇다면….’방법을 떠올린 온사는 온모를 끌고 가서 다시 철장에 가두었다.그러고는 김사도에게 서신을 보내 속히 수월관으로 오라고 했다.다음 날, 김사도는 저녁 무렵에 온사의 처소 앞에 나타났다.“무슨 일인데 이리도 급하게 사람을 불렀어? 고귀하신 성녀 전하께서 내가 그리웠나?”그는 늘 이렇게 시정잡배처럼 굴었다.온사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아, 알았어. 내가 안 보고 싶었나 보네. 그럼 내 해독제 연구에 진전이라도 있는 건가?”김사도는 온사의 옆으로 다가가서 싱글거리며 질문을 던졌다.“진전은 있어. 온모의 몸에서 네가 말한 해독제 처방을 찾았거든.”김사도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더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성녀가 보기에 그 처방 어땠어? 만들어낼 수 있어?”그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물론 온사는 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