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도 아니고 무려 세 병이었다.아무리 온모에게 잘보이려고 가져갔다고 해도 어머니를 위해 한병은 남겼어야 했다.온아려는 그 많은 옥여설화고를 자신은 써보지도 못하고 아들이 남한테 갖다줬다고 생각하니 아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아들이 온모를 무척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직 혼인도 하지 않은 처자한테 어미인 자신의 물건을 훔쳐서 몰래 갖다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착잡했다.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배 아파서 낳은 아들이었다.“그 녀석이 범인이었을 줄은 몰랐네요. 섭정왕 전하 덕분에 사건이 빨리 해결되었어요. 결과가 나왔으니 남은 건 저희에게 맡기세요. 제가 그 녀석 제대로 혼낼게요.”북진연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온아려를 힐끗 보고는 물었다.“부인이 혼을 낸다고? 어떻게 혼낼 생각이지?”아들을 아끼는 온아려는 당연히 엄벌을 원하지 않았다.“사당에 무릎 꿇리고 반성하라고 할까요?”“좋지.”예상밖으로 북진연은 흔쾌히 동의했다.온아려의 입가에도 다시 미소가 피어났다.‘아무리 섭정왕이라고 해도 충용 후작가의 체면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지!’하물며 그녀의 뒤에는 진국공도 있었다.온아려가 속으로 의기양양해하고 있을 때, 충용 후작은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그는 이대로 쉽게 넘어갈 거였으면 북진연이 흑기군까지 데리고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역시나 북진연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럼 반달 정도 꿇리면 되겠군. 아마 그 정도면 세자도 반성할 것 같아.”“반달이요?”온아려는 순식간에 언성이 높아졌다.그녀는 분노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며 반박했다.“어떻게 그렇게 오래 꿇고 있게 하나요?”반달이면 최소택의 무릎이 나갈 수도 있었다.“싫어?”북진연의 아름다운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는 온아려의 말을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계속해서 말했다.“후작 부인은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럼 반달 더 추가하지. 세자는 충용 후작가 사장에서 한달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할 것이다.”“뭐라고요?”
“오라버니, 드디어 오셨네요!”온아려는 온권승을 보자마자 억울함에 눈물을 흘렸다.“조금만 늦게 오셨더라면 저와 소택이 둘 다 최양봉 저 망할 놈한테 팔려갈 뻔했어요!”“무슨 헛소리야?”온권승은 온아려에게 호통쳤다.“부군한테 망할 놈이 뭐야? 충용 후작 부인으로 산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 성깔을 못 고쳤어?”“오라버니, 저 도와주러 오신 거 아니에요?”온권승이 담담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온아려는 순간 긴장해서 어깨를 움츠렸다.“널 도와주러 온 건 맞다만 그렇다고 예의 없이 구는 건 용납못해.”말을 마친 온권승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충용 후작에게 말했다.“처남, 내 동생이 어릴 때부터 진국공부에서 곱게만 자라 철이 없어. 자네도 혼인한지 오래되었고 그동안 잘 받아주더니 왜 오늘은 못 참고 폭발한 거야? 게다가 충용 후작 부인더러 남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라고 하다니.”충용 후작은 냉소를 지었다.평소였다면 진국공의 체면을 봐줬을 것이다.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남이요? 형님 동생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이 여편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말입니다!”온권승은 인상을 찌푸리며 온아려에게 시선을 돌렸다.온아려는 어깨를 움츠리며 변명하듯 말했다.“별로 큰일은 아니에요. 그냥… 온사 그 계집애를 좀 오해해서 생긴 일인데 섭정왕이 찾아오시더니, 고모인 나한테 그 계집애 찾아가서 사과하라지 뭐예요….”“그래요, 외삼촌! 섭정왕은 대체 왜 그런대요? 왜 그렇게까지 온사 편만 드냐고요!”속박이 풀린 최소택은 재빨리 일어나서 맞장구를 쳤다.“이 불효자식이 그 입 다물지 못해!”충용 후작은 힘주어 아들을 노려보며 호통쳤다.“네가 몰래 네 어미의 옥여설화구를 훔쳐서 온모에게 갖다주지 않았으면 이 사단이 났겠어?”“아직도 제 잘못을 모르다니,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충용 후작은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아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온권승은 온모까지 엮였다는 얘기에 인상을 찌푸렸다.그는 온아려를 싸늘히 노려보며 재촉했다.“대체 무슨 일이
온권승은 불쾌한 표정으로 충용 후작을 노려보았다.충용 후작은 지금 온사가 안타까울 뿐이었다.“만약에 형님께서 평소에 방관하지 않았더라면 온사가 지금 이 지경이 됐겠어요?”“걔 형님 친딸입니다. 하지만 형님은 언제 그 아이를 친딸처럼 품어줬나요? 한낱 양녀에 불과한 애가 적녀보다 더 총애를 받는데, 참으로 편애가 심하십니다. 혹시 우리에게 말못할 사정이라도 있나요?”“아버지!”“최양봉!”온아려와 최소택 모자는 후작이 이렇게까지 온권승의 앞에서 대놓고 반발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평소였다면 충용 후작도 진국공부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반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온아려는 오라버니가 와서 자신을 도와주길 바랐지만 그렇다고 부군과 오라버니 사이가 틀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그녀는 다급히 후작을 말렸다.“부군, 그만하세요. 다 제 잘못이에요. 오라버니는 한 번도 누굴 편애하지 않았어요. 제가 온사를 싫어해서 그런 거니 오라버니한테 뭐라하지 마세요!”“온아려, 나도 눈 있어.”충용 후작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을 바보로 알지 마. 다른 사람은 온사 생일을 몰라도 시아버지가 될 뻔한 나는 잘 알아.”충용 후작의 말에 온권승은 순간 당황했다.“그 아이의 생일은 아마 며칠 전이었을 거야. 그런데 진국공부는 굳이 그 아이의 생일과 성인식을 두 달 앞당기고 양녀의 생일에 맞춰서 둘이 같은 날 성인식을 치르게 했지. 형님, 온사보다 두 달이나 먼저 태어난 딸을 온사의 동생으로 만들다니. 대체 뭘 숨기고 계신 겁니까?”“최양봉!”이번에는 온권승이 소리를 질렀다.그는 섬뜩한 표정을 하고 최양봉을 노려보며 되물었다.“지금 날 의심한는 건가?”“그렇다면 어쩌실 겁니까?”충용 후작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 아이가 진국공부를 떠났다고 해서 아무도 그 아이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예요. 걔 혼자가 아닙니다. 걔의 등 뒤에는 란씨 가문이 있어요.”란씨 가문은 과거 경성의 귀족 가문이었다.조상 삼대
소식을 들은 온사는 어이가 없어져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건 또 무슨 경우일까요?”온아려의 성격을 가장 잘 아는 온사는 그녀가 진심으로 사과하러 올 거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온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사저에게 물었다.“사저, 충용 후작 부인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나요?”“있어. 관복을 입은 중년 사내와 젊은 사내가 있었어.”관복을 입고 온아려와 함께 이곳으로 온 사람이라면 온권승 아니면 충용 후작이 틀림없었다.지난번에 온권승이 와서 기분 안 좋게 돌아갔으니 아마 당분간은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충용 후작이고, 젊은 사내라면 의심할 여지없이 최소택일 것이 분명했다. 온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경서를 내려놓았다.“나가봐야겠군요.”“사매야, 겁낼 거 없다. 내가 같이 갈게.”온사가 나간다는 소리에 최근에 그녀와 부쩍 친해진 무고 사저가 말했다.“걱정하실 것 없어요. 아마 별일은 아닐 거예요.”온사가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안 돼. 그 인간들 올 때마다 널 욕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데 혼자 보낼 수는 없지. 충용 후작 부인은 지난번에도 와서 널 모함하고 없는 죄까지 뒤집어씌우지 않았니.”“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바로 사람 부르게!”열정적인 무고 사저의 말에 온사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알았어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사저.”그렇게 두 사람은 수월관 대문 앞으로 갔다.역시나 온사가 예상했던 것처럼 충용 후작가 일가족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어쩐 일인지 최소택은 충용 후작에 의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옆에는 성인 팔뚝만한 몽둥이가 놓여 있었다.온아려는 안쓰러운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밖으로 나온 온사를 보고 눈을 반짝 빛냈다.“온사야, 드디어 나왔구나. 고모랑 고모부가 얼마나 기다렸다고!”온아려는 다급히 다가가서 온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예전에 온사를 대할 때랑은 완전히 다른 말투와 행동이었다.온사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충용 후작은 고개를 들어 온사를 바라봤다가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고 마음이 착잡해졌다.“미안하구나, 온사야… 예전에 혼약을 파기한 일도 그렇고 옥여설화고도 그렇고 그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너무 많이 있었던 같다. 내가 자식 교육을 잘못해서 너에게 상처를 주었구나.”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온사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그러자 온사는 순간 당황했다.충용 후작이 같이 온다고 했을 때부터 오늘 어떻게든 온아려에게서 사과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인 사람이 충용 후작 본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그녀는 잠깐 동요하는 듯하다가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후작의 사과를 저는 받지 않겠습니다.”“뭐라고? 온사, 너 정도껏 해! 아버지께서 이렇게까지….”최소택은 온사가 주제를 모르고 건방지게 군다고 생각해서 분노에 휩싸였다.이 나라의 충용 후작이 한낱 여승에게 사과를 하는데 저리도 건방을 떨다니!“당장 안 닥쳐?”충용 후작은 눈을 부릅뜨고 아들에게 경고를 주고는 온사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온사야….”“후작, 소인은 이미 진국공부의 딸이 아닙니다. 충용 후작가와는 진작에 혼약을 파기했지요. 그날 성인식에서 소인은 앞으로 충용 후작가와는 연을 끊겠다고 명백히 말씀드렸습니다.”충용 후작이 떨떠름하게 그녀를 쳐다보는 사이,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관계를 정리하면서 정도 끊어냈는데, 호칭부터 바꾸셔야지요.”온사의 매정함에 충용 후작마저 당황했다.‘이 아이는 진심으로 우리들과 연을 끊을 생각이야.’충용 후작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는 간곡하게 부탁하듯 말했다.“그렇게까지 할 건 없지 않니. 나와 네 어미는 소싯적부터 친구였는데….”“어머니는 이제 없잖아요.”온사는 매몰차게 충용 후작의 입을 틀어막았다.전혀 흔들림 없는 그녀의 눈빛에 충용 후작은 더욱 죄책감을 느꼈다.온사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온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온아려를 바라보았다.온아려가 제 발로 사과하러 찾아온 것마저 놀라웠기에, 그녀에게 용서를 바라는 게 더 의아했다.이때 온사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그녀는 눈앞의 삼인방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그녀는 자신이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저들의 표정이 궁금했다.아니나 다를까, 온아려는 바로 화가 폭발하더니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사과도 했고 우리 아들이 네 앞에 무릎 꿇고 사과도 했잖니! 대체 뭘 더 바래?”온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버럭버럭 화를 내는 온아려를 바라보며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확신했다.‘어디서 협박을 받고 왔구나.’그게 아니라면 평소에 줄곧 그녀를 적대하고 무시하던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서 고개를 조아릴 이유가 없었다.누구의 협박인지는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었다.이 대명왕조에 충용 후작 일가 사람들의 머리를 숙이게 만들 인물은 많지 않았다.온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사과는 받지 않겠다고요.”“온사, 적당히 해! 너무하잖아, 이건!”분노한 최소택이 소리쳤다.“내가 너무해?”그러자 온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반박했다.“내가 아무리 너무해도 당신들보다 더하지는 않았을 거야. 한 사람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찾아와서 나를 모함하고 한 사람은 건방지게 내 결백을 더럽히는 말들을 남발하고 다니는데. 당신들 모자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지.”“너!”“그리고 피해자인 척하지 마. 모함을 당한 건 네가 아니잖아. 그리고 당신들은 딱 봐도 진심에서 사과하러 온 것도 아닐 텐데 나에게도 용서를 거부할 권리가 있지 않나?”말문이 막힌 최소택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온사는 온아려의 푸르뎅뎅한 표정을 보며 만약에 충용 후작이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바로 달려들어 예전처럼 자신을 물어뜯지 않을까 생각했다.“성녀님 말씀이 맞습니다.”이때, 충용 후작이 입을 열었다.“성녀님이 피해자이시니 억울한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니 지금 용서를
“넷째 오라버니께서도 뭔가 눈치채신 거죠?”온옥지의 처소로 찾아온 온모는 수심 가득한 얼굴로 온옥지에게 걱정을 털어놓았다.“온사 언니가 출가한 이후 큰 오라버니랑 둘째 오라버니가 점점 변해가고 있어요.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너무 걱정돼요.”그날 온사의 생일 때문에 수월관에 다녀온 이후로 온자신은 줄곧 사당에서 나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나중에 장남 온장온이 온사의 선물은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한 덕분에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그날 이후로 온장온과 온자신은 수시로 외출했다.온모는 몇번이나 그들에게 애교를 부리며 같이 나가자고 했지만 두 형제 모두 그 요구를 거절했다.온모의 위기감은 점점 막중해지고 있었다.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온옥지를 찾아갔다.온가의 사형제 중에 가장 머리가 잘 굴러가는 사람은 장남인 온장온이 아니라 줄곧 몸이 안 좋아 바깥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온옥지였다.물론 온모는 속으로 그런 그를 무시하고 비웃었다.예전의 그녀에게 필요한 건 너무 똑똑한 꼭두각시보다 기가 세고 강한 꼭두각시가 더 필요했다.그런데 지금 보니 진국공부 사형제는 전부 멍청한 존재가 맞았다.온옥지는 그나마 이용할 가치가 있지만 아주 조금일 뿐이었다.진국공부가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게 됐을 때, 그들은 그저 그녀에게 짐이 될 뿐이었기에, 그때가 되면 더 강한 지원군을 찾아 기생할 것이다.그리고 그녀에게는 이미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다만 현재로서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말이다.지난번의 실패를 겪은 후, 온모는 진국공부에서의 자신의 입지부터 다지기로 했다. 속으로는 이런 음침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순진무구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넷째 오라버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큰 오라버니와 둘째 오라버니는 온사 언니가 집에 안 돌아오려고 하니까 이상하게 변한 것 같아요. 더 이상 오라버니들이 망가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요. 오라버니가 나서서 좀 설득해
온옥지가 부탁을 수락하자 온모는 어떻게 할지 그에게 계획을 캐물었다.어쨌거나 그녀는 진심으로 온사가 돌아오길 바라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구슬려도 온옥지는 그저 웃기만 할 뿐,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는 않았다.자신의 계획을 온모에게 알려줄 수 없다는 의지가 강해보였다.그는 온모의 생각을 훤히 꿰뚫어본 것처럼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막내야, 걱정 마. 내가 어떻게든 온사 걔가 네 입지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할게.”뜬금없는 말에 온모는 가슴이 철렁했다.그 순간 그녀는 온옥지가 진작에 자신의 온갖 술수들을 눈치채고 본모습을 들킨 줄 알았다.온옥지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줘고 나서야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해소가 된 듯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온모는 온옥지의 계획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온모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온옥지는 처음부터 자신이 나서서 뭔가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어쨌거나 지금 그는 거동이 몹시 불편한 상황이었기에, 사형제 중에 그와 똑같이 온사를 혐오하는 온자월을 찾았다.“셋째 형님, 돌아오셨어요?”다음 날 아침, 시종에게서 넷째가 자신을 보자고 한다는 소식을 접한 온자월은 곧바로 온옥지의 처소로 향했다.“안색이 왜 이렇게 창백해? 몸이 좋지 않으면 좀 가만히 쉬어.”온자월은 그저 걱정해서 한 말이었지만 예민한 온옥지에게는 이 말이 가족들이 자신을 폐인 취급하는 것처럼 느꼈다.온옥지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기온이 차서 몸살이 온 것 같습니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이 화제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바로 화제를 돌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아침 일찍 형님을 부른 건 형님께 부탁할 일이 있어서예요.”“응? 무슨 부탁? 네가 나한테 뭘 부탁할 때도 다 있네?”온옥지는 그동안 형제들의 도움을 늘 피해왔었기에 온자월은 부탁이라는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큰 형님과 둘째 형님 때문에 그렇습니다.”“형님들이 왜?”온옥지는 어제 온모
그는 혹시라도 막수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해명을 덧붙였다.하지만 그럴수록 막수의 눈에는 더 수상해 보일 뿐이었다.온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랬군요. 어서 앉으세요. 제가 차를 내오죠.”그녀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고 북진연과 막수만 정원에 남았다.막수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섭정왕 전하의 마음이 너무 티가 납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다 보일 정도예요. 무우는 현재 우리 수월관 사람이니 전하께서 이럴수록 무우의 수행을 망치는 것입니다.”북진연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서신을 받은 후,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온 그였다.수월관에 도착하고 막수와 부딪쳤을 때에야 그는 자신의 행위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밤중에 여인의 처소로 달려오다니, 다른 사람이 봤으면 온사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칠 것이다.북진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생각이 짧았군. 사태,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다음엔 더 주의하겠습니다.”막수는 다음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불만 가득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았다.이때, 온사가 뜨거운 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세 사람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온사는 북진연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막수와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했다.“사부님, 독사의 사체는 어디에 쓰려고 남기라고 한 건가요?”온사는 혐오스러운 눈으로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북진연은 그제야 구석진 곳에 쌓인 피 묻은 보따리를 발견했다.살짝 풀어진 틈새로 독사의 머리가 보였다.비취색의 영롱한 색상을 보고 북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독성이 매우 강한 독사인데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보따리의 형태로 봐서 적어도 열 마리는 될 것 같았다.이게 모두 온사의 정원에서 나왔고 오늘 온사가 하마터면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고 생각하니 북진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이미 죽은 녀석들이고 좋은 약재로 쓰일 수 있어. 마침 3일 후에 그 사구라는 인간을 만나야 하니 그 전에 이것들로 좋은 선물을 준비할
약속 시간을 잡은 사구는 그 길로 뒤돌아섰다.그렇게 온사의 정원을 지나던 그는 뭔가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는 늙은 여승이 있었다.사구는 그 여승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가 옷소매를 휘두르자 뱀들이 소매에서 기어나와 여승이 있는 곳을 향해 기어갔다.사구는 그걸 본 여승이 겁에 질려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흥미가 사라진 사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 길로 수월관을 벗어났다.사구가 떠난 후, 추월은 정원 안팎을 꼼꼼히 확인했다.그리고 정원 곳곳에서 십여 마리의 뱀을 잡아냈다.“사구 놈이 다녀간 후로 내 처소가 뱀 소굴이 다 되었네.”독사를 전부 처치한 추월은 굳은 표정으로 뱀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 불사르려 했다.그리고 이때, 막수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잠깐, 그 독사들은 그대로 둬.”고개를 돌린 온사가 물었다.“사부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내가 안 왔으면 네가 나 몰래 이렇게 큰 일을 치르고 있을 줄도 몰랐잖니.”막수는 싸늘한 시선으로 온사를 쏘아보았고 온사는 괜히 찔려서 어깨를 움츠렸다.사부는 밖에서 그녀와 사구의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온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사부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작정하고 숨긴 게 아니라 확실해지면 사부님께 말하려고 했어요!”“정말이니?”막수 사태는 못 믿겠다는 어투로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온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저도 출가인입니다, 사부님!”“하, 말은 잘해.”막수는 냉소를 지으며 온사에게 말했다.“일단은 믿어주도록 하마. 허나 삼일 후 나도 너와 같이 가겠다.”“그건 안 돼요, 사부님!”온사는 당황하며 막수를 말렸다.“아주 위험한 상황이란 말이에요. 상대가 몇이나 데리고 나올지도 모르고 그쪽에서 만약 사람이 많이 오면 한바탕 피바다가 될 거예요. 사부님은 출가인인데 어찌 그런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겠어요?”“그럼 넌 출가인이 아니고?”
미리 대비를 해두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그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나에 대한 정보를 대체 누가 줬을까?”중년 사내는 위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배신자는 빨리 제거해야 해서 말이야.”온사는 당연히 이 시점에 김사도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주인이 워낙 겁쟁이라 좀 겁만 줬을 뿐인데 전부 말하더라고. 그걸 꼭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알아?”“쯧,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군.”사구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질문을 이어갔다.“그런데 참 궁금하단 말이야. 고결하신 성녀 전하는 대체 우리 아가씨한테 어떤 식으로 겁을 줬을까?”능글맞게 웃는 그의 눈매에서 위협이 느껴졌다.하지만 온사에게는 저런 속임수가 통하지 않았다.“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도 많아서 말이야. 궁금하면 너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됐어. 난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 성녀 전하의 시련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 본론부터 얘기하지.”사구는 손을 뻗더니 소매 안에서 고급 소재의 헝겊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성녀 전하, 이게 뭔지는 알고 있지?”온사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그것은 사망하신 어머니께서 입관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온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좋아. 어디 네 얘기 한번 들어보지.”그녀는 소매를 만지는 척하며 공간 안에서 뭔가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피 묻은 머리카락이었다. 딱 봐도 억지로 잡아당겨 뽑은 것으로 보였다.사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온사는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내 어머니의 물건으로 날 협박하려 하지 마. 네가 어머니를 완전한 상태로 돌려준다면 너희의 아가씨도 무사할 테니까.”물론 지금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손발가락 그대로 붙어 있으니 완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사구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호통쳤다.“이런 식으로 나에게 협박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어!”“그건 예전이고 지
“뭐라고?”온자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는 그런 그를 싸늘히 노려보고는 말했다.“거래 안 한다고. 알아들었어? 내가 다시 말해줘?”“온사, 너!”온자월이 온사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검은 인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놀란 온자월은 품에 간직한 비수를 꺼내려 했다.하지만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추월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곧이어 추월은 주먹으로 온자월의 얼굴을 쳤다.퍽!온자월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그가 일어나서 반격하기도 전에 추월은 그의 복부를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너… 넌 누구야? 감히 진국공가의 공자에게 무력을 휘두르다니!”온자월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신분으로 추월에게 겁을 주려 했다.온사는 그런 그들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추월이 고개를 숙이고 온사의 뒤에 섰을 때에야 온자월은 상황을 눈치챘다.“이 아이는 내 사람이야. 뭐, 불만 있어?”온사는 바닥에 쓰러져서도 소중히 연을 감싸고 있는 온자월을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아들이 원수의 딸을 구한답시고 친히 만들어준 연을 거래 조건으로 들고 나온 걸 어머니가 아시면 참 후회하실 거야.”“원수의 딸이라니! 또 무슨 헛소리야!”온자월은 바닥에 쓰러져 몸도 못 일으키면서도 언성을 높여 말했다.“참, 내 정신 좀 봐. 또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온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는 생전에 우리를 무척 사랑하셨어. 네가 불효자인 걸 아셨어도 후회는 없으셨을 거야.”말을 마친 온사는 온자월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온자월 너는 후회 안 해?”온자월은 주먹을 꽉 쥐고 온사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아. 넌 나와 막내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어. 하지만 착각하지 마. 혈연을 떠나서 막내는 내 동생이야!”“그래? 진실을 알게 되는 날에도 그 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그 말을 끝으로 온사는 수월관으로 돌아가 버렸다.그녀는 더 이상 온자월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그가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온사는 그가 뭐 하러 온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그녀는 온자월이 대체 뭘 갖고 왔을지 궁금했다.밖으로 나가서 온자월이 들고 있는 연을 보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연까지 가지고 왔네?”온자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연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나도 쓸데없는 말 안 할게. 너 어머니의 물건을 원하잖아? 이 연을 너에게 줄게. 당장 막내를 풀어줘.”온사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온모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걔를 위해서 어머니까지 버릴 생각이야?”“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야!”그 말을 들은 온자월은 곧바로 반박했다.“네가 막내를 납치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머니의 물건을 꺼낼 일도 없었어!”온사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니까 넌 결국 어머니와 외부인 둘 중에 외부인을 택했다는 거잖아!”“헛소리하지 마!”온자월은 격앙된 목소리로 호통쳤다.“막내는 외부인이 아니야. 외부인은 너지! 잊지 마, 넌 이미 진국공가의 딸이 아니야. 진국공가의 딸은 막내 한 명뿐이야. 걔가 내 동생이라고!”“그래! 양심도 없는 놈. 역시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끼리 잘 어울리네. 원래부터 너희가 일가족이었나 봐!”온사는 눈을 부릅뜨고 온자월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지금 누굴 욕한 거야?”온자월도 눈을 부릅뜨고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 내가 너한테 주먹을 못 휘두른다고 함부로 막내 욕하지 마!”온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참 대단하네. 경성의 사내들 중에 여자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너!”온자월은 발끈하며 온사에게 다가가려다가 손에 든 연을 놓칠 뻔했다. 그는 뒤늦게 연이 괜찮은지 살펴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온사는 그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연을 외부인인 나에게 갖고 와서 거래를 하자는 사람이 뭘 그렇게 긴장해?”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설마 내가 이걸 소중히 보관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중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온자월은 나무상자에서 조심스럽게 연 하나를 꺼냈다.이것은 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간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이것을 꺼낸 적 없었다.오늘에 와서야 이것을 꺼내보지만 목적은 좀 달랐다.“분명 온사가 막내를 숨겨뒀을 거야. 온사가 막내를 풀어주게 하려면 걔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밖에.”온사가 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온자월은 잘 알고 있었다.온사는 출가하러 수월관으로 떠날 때도 그들 몰래 어머니의 위패를 가져간 사람이었다.나중에는 온자신을 갖고 그들을 협박하여 어머니의 혼수품까지 모두 챙겨갔다.그래서 이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물건은 별로 많지 않았다.이걸 온사에게 내어주기엔 너무 아깝지만 막내가 온사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온사는 막내가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모함하고 있지 않은가! 빨리 막내를 구해내지 않으면 명성이 더럽혀질 것 같았다.“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세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막내만 구출하고 어떻게든 이 연은 다시 돌려받을게요.”온자월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그는 연을 들고 말에 올라 남산 쪽을 향해 달려갔다.그가 경성을 나간 후, 진국공부.“국공 어르신, 셋째 공자께서 외출하셨습니다. 성녀를 찾아간 것 같아요.”침상에서 휴양 중이던 온권승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집사가 재빨리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온권승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뭐 하러 가는지는 말이 없었고?”집사가 답했다.“셋째 공자께서는 손에 연 하나를 들고 나가셨습니다. 다른 건 소인도 모릅니다.”“연을 갖고 나가?”온권승은 잠시 기억을 회상하다가 집사에게 물었다.“제비 모양의 연 말이야?”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맞습니다. 크지 않고 자그마한 어린애용 연 같았습니다.”온권승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온자월이 뭐 하러 갔는지 알 것 같았다.“됐어. 갈 테면 가라고 해. 수월관에 침입하지 못하도
그러나 김사도는 사구와 그저 몇번 지나치다 본 사이라고만 했다.말투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온사는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옥패 공간으로 돌아간 온사는 사구가 찾아올 것을 미리 대비해 두기로 했다.그 시각, 경성 진국공부.“그럴 리 없어요. 막내가 그런 짓을 했을 기 없잖아요! 분명 온사 그 계집애가 막내를 모함하는 걸 거예요!”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완전히 실망한 온장온은 어머니의 무덤이 도굴당한 일을 두 동생에게 알렸다.두 사람의 반응은 무척 격했다. 하지만 온장온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지금 그게 중요해? 먼저 어머니의 시신부터 찾아야 하는 게 아니야?”“당연히 알죠. 하지만 형님, 온사가 막내를 모함하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온자월은 격분해서 온장온에게 언성까지 높였다.온장온의 표정도 순간 차갑게 변했다.“온사가 이런 일로 장난칠 애로 보여? 잊지 마! 걔도 우리처럼 어머니의 자식이야!”“형님!”온자월은 실망한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며 따져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막내는 우리와 같은 배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의심해도 된다는 거예요?””내가 언제 그렇다고 했어? 셋째야, 내 말을 왜곡하지 마!”“제가 왜곡을 했다고요?”온자월은 냉소를 짓고는 온옥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그럼 넷째에게 물어보세요. 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형제는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온옥지에게 고개를 돌렸다.온옥지는 담담히 말했다.“큰 형님, 어머니의 시신이 사라져서 많이 놀라고 초조한 마음 이해요. 하지만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돌아온 막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얼마나 속상하겠냐고요?”온자월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온장온은 한숨이 나왔다.그는 이 둘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어쩌면 매번 막내와 연관된 일에 한해서는 그랬던 것 같았다.예전의 그 역시 막내의 편에 섰기에 그게 틀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최근에 그놈을 만났어?”온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놈이 나한테 정말 소중한 것을 훔쳐갔어. 그래서 놈을 찾고 있어.”김사도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온모가 시킨 거겠지. 그 인간 평소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 나도 몇 번 마주친 게 다라고. 사구의 다른 무리는 본 적도 없어.”“그렇게 은밀히 행동해?”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김사도가 말했다.“놈들을 찾자면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구는 곧 나타날걸.”온사가 흠칫하며 물었다.“온모가 내 손에 있기 때문에?”“맞아. 놈들은 온모가 변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조심해. 내 해독제를 만들어내기 전에 죽지 말라고.”말은 그렇게 해도 김사도는 꽤 신이 난 표정이었다.온사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너도 조심해야겠지.”“내가 왜 조심해? 난 어차피 온모에게 조종당하던 허수아비일 뿐이야. 지금은 온사가 너에게 잡혀가고 내 통제권이 너한테 넘어간 것일뿐. 한낱 허수아비일 뿐인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김사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온모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넌 이미 내 허수아비가 되었으니 사실을 말해주지. 온모의 몸에서 수색한 처방전을 보고 감히 확신하건대, 이 대명왕조에서 나를 제외하고 너희들의 해독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김사도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처방전을 훼손한 거야?”“그거도 그거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자세한 원인은 지금은 말해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너희는 영원히 해독제를 못 구할 거라는 것만 명심해.”“정말 너무하네.”김사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이제 동맹이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한테 그런 것도 얘기 못해줘?”“미안하지만 나한테 동맹과 친구는 달라. 동맹은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지만 친구는 아니거든. 그러니 넌 내 친구가 아니야.”온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김사도는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나 상처 받았어.”“그래. 그
“쿨럭… 처리하기도 전에 납치를 당해서… 시신은 사구한테 있어.”온사가 온모를 납치하던 날에 온모가 사구를 시켜 무덤을 도굴하게 했다는 얘기였다.온사는 만약 추월이 그날 온사를 납치해서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시신은 진작에 온모의 손에 훼손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사구는 누구야?”“모… 몰라. 난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그 사람들? 온모의 배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환각제를 먹고도 상대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다면 김사도 무리처럼 온모의 어미 백초유가 미처 온모한테 알려주지 못하고 남기고 간 사람들일 것이다.‘아니면 온모의 배후에 비밀의 존재가 있거나.’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온사는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은 후에 바로 온모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놈은 어디 있어? 너희는 어떻게 연락해?”“나도 걔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내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났어.”말을 마친 온모는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환각제의 약효가 끝난 것이다.온사는 싸늘한 눈으로 온모를 내려다보았다.“네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난다라….”‘그렇다면….’방법을 떠올린 온사는 온모를 끌고 가서 다시 철장에 가두었다.그러고는 김사도에게 서신을 보내 속히 수월관으로 오라고 했다.다음 날, 김사도는 저녁 무렵에 온사의 처소 앞에 나타났다.“무슨 일인데 이리도 급하게 사람을 불렀어? 고귀하신 성녀 전하께서 내가 그리웠나?”그는 늘 이렇게 시정잡배처럼 굴었다.온사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아, 알았어. 내가 안 보고 싶었나 보네. 그럼 내 해독제 연구에 진전이라도 있는 건가?”김사도는 온사의 옆으로 다가가서 싱글거리며 질문을 던졌다.“진전은 있어. 온모의 몸에서 네가 말한 해독제 처방을 찾았거든.”김사도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더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성녀가 보기에 그 처방 어땠어? 만들어낼 수 있어?”그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물론 온사는 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