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식에 엄진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회사를 설립한 지도 고작 며칠 되지 않았는데 임금은 개뿔. 설마 노동자들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게 아닐까? "아니, 우릴 찾는 게 확실해요?” 엄진우는 재차 확인했다. “그렇다니까요! 우리 둘 이름과 직책까지 똑똑히 알고 있었어요! 분명 우릴 겨냥하는 거예요.” 소지안은 다급히 말했다. “아무튼 빨리 와요. 나 혼자 도무지 안 되겠어요.”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다급히 문을 나서서 회사로 갔다. 회사 앞으로 가니 확실히 노동자들이 현수막을 걸고 입구에서 임금을 내놓으라고 시위하고 있었는데 각종 구호가 난무했다. “노동자의 피땀 어린 돈을 당장 갚아라!” “악덕 대표는 돈을 갚아라!” “노동자의 목숨값으로 차와 요트를 사는 악덕 대표는 물러나라!” 그리고 주변에는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분, 잘못 찾아오셨어요. 여긴 비담 컴퍼니예요! 우리가 언제 여러분의 임금을 체무 했죠?” 소지안은 인파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이치를 따지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더 억지를 부렸다. “지성그룹과 예씨 가문과 관련됐다는 건 우리도 알아!” 그리고 옆에 있던 기자들은 더 재밌는 기삿거리를 위해 옆에서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회사를 이렇게 럭셔리하게 꾸몄으면서 우리 노동자들의 임금을 탐내다니. 정말 보기보다 추한 사람들이군!” 그들은 이미 내일 헤드라인 기사에 어떻게 이 회사의 인성을 폭로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고민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용기를 북돋아 주자 노동자들은 점점 더 기고만장해졌다. “돈 내놓지 않으면 우린 여기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거야! 당신들도 도망갈 생각하지 마!” 그 말에 비담 컴퍼니의 직원들은 화가 솟구쳤다. “아니, 지성그룹에서 진 빚을 왜 비담에서 받으려고 하는 거죠? 우리에게 그 구멍을 막을 이유는 없어요!” “우리가 동네북인 줄 알아요? 지성그룹의 빚은 지성그룹에 달라고 하세요!” 양측은 서로 양보하
소지안은 다급히 엄진우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진우 씨,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에요. 누군가 뒤에서 조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런데 무턱대고 이 일을 끌어안는다면 우리에게 똥물이 튀는 건 시간문제예요. 유리한 점이 하나도 없다고요.” 보안 팀장도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엄 대표님, 저런 가난뱅이들을 두려워할 것 없어요. 우리 보안팀에는 직원이 스무 명도 넘으니 몽둥이 하나로도 저놈들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엄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어요. 저 사람들의 임금은 내가 반드시 받아줄 거예요. 왜냐면... 우리 아버지도 예전에 노동직에 종사하셨어요.” 여기까지 말한 엄진우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당시 엄비왕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했으며 때로는 일주일에 단 한 번 집에 돌아왔다. 노동자들은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하지만 여전히 일부 악덕 사장에게 사기를 당하고 있다. 그들에겐 하소연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 관련 부서에 신고해도 그저 ‘악의적인 임금 요구’로 판정될 뿐이다. 그들은 그저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돈만 원할 뿐 누구를 해치자는 생각이 없었다. 이 일이 음모일지 몰라도 이 노동자들에게는 죄가 없다. 부지런히 일한 그들은 응당 이에 따른 보수를 받아야 한다. 엄진우의 단호한 약속에 노동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때, 리더가 또 입을 열었다. “전에 당신 본사 대표도 그렇게 말했지만 얼마 안 가 꽁무니를 내빼더군! 그런데 우리가 당신 말을 어떻게 믿어!” 엄진우는 정색해서 말했다. “여러 기자님들, 그리고 비담 컴퍼니의 직원들! 만약 제가 말한 대로 하지 않는다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고 영원히 창해시 상업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런 독한 맹세를 한다고? 그러다 실패하면 영영 실직하게 될 텐데? 소지안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엄진우는 바로 예씨 가문 저택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엄진웁니다. 예 대표님의 분부로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이내 엄진우는 예씨 가문 거실로 향했다. 예흥찬은 마치 싸움에서 승리한 수탉처럼 씩씩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예우림이 이제야 패배를 인정하겠대? 예씨 가문의 돈이 없으니 이젠 회사에 한계가 왔나 보지?” 예흥찬은 큰 소리로 웃었다. “우리 예씨 가문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너 같은 놈을 보낼 게 아니라 예우림에게 직접 와서 사과하고 대표 자리와 이사회 권력을 도로 내놓으라고 해! 아니면 꿈도 꾸지 마!” 엄진우는 어이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영감탱이가, 잠 덜 깼어요?” 설마 예우림의 패배를 알리기 위해 내가 직접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습기 짝이 없군! 그러자 예흥찬의 안색은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그게 아니라고? 그럼 널 보낸 이유가 뭐야?” “예정명이나 튀어나오라고 하세요.” 엄진우는 예흥찬의 질문을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했다. 그러자 예흥찬은 싸늘하게 웃었다. “그런 거였군! 예우림이 보내서 온 게 아니야! 말해, 왜 찾아왔어!” “예정명이나 불러주세요.” 엄진우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목소리 데시벨만 높여 말했는데 순간 거실의 책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흥찬은 멈칫하더니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네 상사인 예우림도 감히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없어! 죽고 싶어 환장한 거야...” 쿵! 예흥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밑의 마루가 꺼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엄진우는 한걸음에 10미터도 넘게 날아와 예흥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말할게요. 예정명 튀어나오라고 하세요.” 극도의 압박감에 예흥찬은 순간 가슴에 피가 솟구쳐 오르는 느낌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왠지 엄진우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미친놈이 대체 무슨 자극을 받고 이 난리를 부리는 거지? “가서 둘째 불러와!” 예흥찬은
엄진우의 소름 돋는 미소에 예정명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버지, 이 새끼 이거 완전 또라이에요! 미친놈이라고요!” “입 다물어!” 예흥찬은 그를 매섭게 쏘아보며 한마디 했다. “이게 다 네가 모자라서 저지른 일이야! 엄진우, 내 아들이 2억을 넘게 체납했다는 증거 있어?” 엄진우는 차용증을 꺼내 들고 덤덤하게 말했다. “필체 똑똑히 보시죠. 그리고 삼진가든 공사는 회사에도 등록이 되어 있는데 당시 총책임자가 바로 예정명이에요.” 엄진우는 싸늘하게 웃었다. “이미 재무팀에 조사했는데 이 2억이 넘는 돈은 당시 바로 예정명에게 넘어갔죠. 그러니 진실은 오직 하나, 예정명이 이 돈을 꿀꺽한 게 분명해요.” 예정명은 꼬리 잡힌 고양이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회사 자체가 예씨 가문의 소유야! 내가 우리 집 돈 좀 쓰면 안 돼? 그게 네 돈이야? 네가 뭔데 그 일로 나한테 따져?” 엄진우의 가벼운 미소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술을 마시며 즐긴 주제에 아직도 자기 잘못을 모르다니. 엄진우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난 그냥 심심해서 따지러 왔어. 그래서 안 돼?” 엄진우는 예정명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대리석 기둥에 세게 내리쳤다. 순간 예정명은 머리통이 깨져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상대가 이치를 따지려 하지 않으니 엄진우는 힘으로 일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돈 토해내고, 사과해.” 엄진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기타 예씨 가문 사람들은 이 피비린내 나는 상황에 심장이 쫄아들어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지난번에 그들은 테이프 커팅식에서 엄진우가 공씨 가문 소주를 죽이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러니 아무도 두 번째 공자명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예흥찬은 조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엄진우! 그만해! 결국은 그 2억을 내놓으라는 거잖아! 내가 줄게. 거지한테 던져준 셈 치고 내가 주겠다고!” 예씨 가문에 2억은 그저 푼돈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이 여긴 왜 왔어.” 엄진우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내 진동이 딱 멈췄다. 하지만 예우림 옆에 있는 예정국을 보니 바로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예흥찬, 이 늙은 여우 같은 것. 내가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이미 사람을 시켜 예우림에게 연락했군. 그러니까 이 짧은 시간에 예우림이 도착할 수 있었던 거야. 예우림이 나타나자 방금전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있었던 예씨 가문 사람들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하하하! 저놈을 다스릴 수 있는 장본인이 드디어 도착했군!” “그럼, 아무리 그래도 예우림의 몸에는 예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어. 팔은 당연히 안으로 굽기 마련이지.” 예흥찬은 예우림이 반드시 엄진우를 다스릴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더욱 위엄을 보여주려고 했다. “예우림! 네 부하직원의 정체를 똑똑히 봐! 감히 우리한테 사과를 원해? 게다가 예씨 저택을 무너뜨리려고 했어! 이놈 대체 속셈이 뭐야?” 그 말에 예우림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말했다. “할아버지, 이건 오해예요. 저도 오늘 보고 받았는데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엄진우가 관리하는 회사에 찾아가 시위를 벌여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건 삼촌과 관련이 있고요.” 그러자 예정명은 씩씩거리며 반격했다. “예우림! 너 대체 누구 편을 드는 거야? 그깟 노동자들 때문에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 지금 모르는 척하는 거야?” “그건 다 삼촌 자업자득이에요!” 예정명을 보자 예우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진우가 여기까지 찾아온 건, 원칙상으로 저도 지지하는 일이에요! 그러게 왜 회사 공금으로 여자를 놀아요? 노동자들의 생계는 생각해 보셨어요?” “예우림.” 엄진우는 그제야 죄책감이 들었다. “일이 워낙 갑작스럽다 보니 말하지 못했어. 미안해.” 사실 엄진우는 예우림이 알면 그를 막을까 봐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우림은 엄진우의 탓을 하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지안이한테서 들었어. 걱정하지 마. 이 일은 그룹의 책임이기도 하니 너
“...” 그 말에 현장은 순간 조용해졌다. 예씨 가문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젠 예우림도 엄진우를 다스릴 수 없다고? 예흥찬은 화가 나서 콧수염을 날리며 말했다. “무엄하다! 아주 무엄해!” 예흥찬은 안색이 푸르딩딩해져서 으르렁거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사과까지 했는데 끝까지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야?” 엄진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빈정거렸다. “맞아요. 꼭 이렇게 나와야겠어요. 그러니 마음대로 생각하시던가. 아무튼 예씨 가문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할 거예요. 어르신과 예정명이 함께 하면 되겠네요.” “엄진우!” 예우림의 예쁜 얼굴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예전 같으면 한발 물러났을 법도 한데 오늘은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예우림, 더는 이 일에 나서지 마.” 엄진우가 말했다. “비록 당신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금의옥식 하며 살았잖아. 게다가 해외에서 유학 생활까지 했으니 당신은 노동자들의 고생을 알 수 없어. 만약 당신에게도 노동직을 했던 아버지가 있었더라면, 오직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일 같이 먼지투성이가 되어 열 손가락이 다 닳도록 피를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봤더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어?” 엄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시비를 논하는 게 아니야. 우리 아버지도 노동직을 하셔서 난 잘 알아. 바로 이런 파렴치한 인간들 때문에 노동자들의 가정이 파탄 나는 거야.” 막다른 길이 아니었다면 누가 돈 때문에 자존심을 팔아가며 시위까지 벌인단 말인가? 그는 오늘 회사 대표로 여길 찾아온 것이 아니라 단지 정의를 찾기 위해 온 것이다. 그 말에 예우림은 충격을 받고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미안해, 엄진우. 내가 생각이 짧았어...” 엄진우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노동자들의 노고를 절대 알지 못한다. 하여 관성적인 사고에서 출발하여 쉽게 해결할 방법부
그러자 두 형제는 이따금 자기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그러네요! 아무리 그래도 우린 예우림의 혈육인데, 저 자식이 우릴 죽이면 그건 악행이라 언젠가는 벌받을 거예요.” “우리 가족 누구라도 죽이면 저 자식은 절대 예우림과 결혼할 수 없어요! 인륜에 어긋나면 천벌을 받는 법이죠.” “저놈이 예우림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절대 우릴 건드리지 못해요.” 그 말에 엄진우의 안색은 확실히 변했다. 엄진우의 약점을 잡은 예흥찬은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역시 연륜은 무시 못 하는 거야. 엄진우, 넌 아직 너무 어려.” 이내 예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둘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는데 엄진우가 절대 그들을 털끝도 건드리지 못할 거란 걸 확신하는 듯했다. 그러자 엄진우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이 맞아요. 예우림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들을 죽일 수 없죠.” 여기까지 들은 예씨 가문 사람들은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이제 보니 허세만 가득 들어찼군.” “엄진우, 그렇게 대단하면 일단 이 저택부터 무너뜨려. 우리 가문에는 남아도는 게 돈이라 하나 다시 지으면 돼!” 엄진우는 그들의 비웃음에 시종일관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처했다. 이때 예흥찬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됐어, 엄진우. 네 연기는 이미 끝났으니 당장 여기서 꺼져. 굳이 굴욕을 자초하지 말고. 아, 물론 이 저택을 무너뜨려도 좋아. 아무튼 손해는 예우림과 지성그룹에 청구할 거야.” 예흥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예씨 가문 사람들은 다시 체면을 되찾은 듯 가차 없이 비웃음을 늘어놓았다.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싸늘하게 말했다. “잠깐만! 내 말은 내가 직접 죽일 수 없다는 거야. 하지만 나 대신 당신들을 죽여줄 대체품은 따로 있어. 영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랬죠? 영감은 곧 죽을 거라고.” 엄진우의 말에 예씨 가문 사람들은 순간 입을 틀어막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예흥찬이 제일 꺼려하는 말이 바로 그의 죽음에 관한 말이다.
멀쩡하던 예흥찬이 갑자기 피를 흘리며 쓰러지다니! 예씨 가문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소리를 질러댔다. “엄진우! 대체 어르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물건 돌려받은 것뿐이야.” 엄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영감탱이는 워낙 천인오쇄를 앓고 있었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그러니 함부로 입 놀리지 마! 아, 맞다. 참고로 이 영감 말이야. 두 시간은 더 살 수 있어. 그러니 알아서 살리든가.” 엄진우는 뒤돌아 바로 떠나려고 했다. “잠깐만! 엄진우!” 예흥찬은 피를 토하며 엄진우를 불렀지만 엄진우는 홀연히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 저놈 저거 일부러 말 심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요! 일부러 우릴 겁주려고 저러는 게 분명해요! 아버지 올해 건강검진 결과가 얼마나 좋은데요.” 예씨 형제는 애써 예흥찬을 위로했다. 하지만 예흥찬은 이미 사색이 되어버렸다. 예흥찬의 건강은 예흥찬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연명침이 몸에서 빠지고 나니 그의 몸은 급격히 악화하고 있었다. 지금의 그는 이미 죽음의 문턱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으로 가! 돈이 얼마 들던 가장 비싼 전문의를 찾아 나부터 살려!” 예흥찬은 오직 살자는 생각에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예흥찬의 제어를 잃은 모습에 예씨 가문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히 대답했다. “예!” 이내 예흥찬은 창해시에서 가장 좋은 사립병원으로 옮겨져 해외 전문가의 진찰을 받기 시작했다. 그 사이 예흥찬은 여러 번 피를 토했다. 심지어 예씨 형제도 두려움에 몸이 떨려왔다. 설마 정말 이대로 죽는 걸까? “어르신, 건강 상태가 최악입니다.” 해외 전문가가 유창하게 말했다. “신체 각 기관의 쇠약은 거의 놀라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계신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그래서 살릴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예흥찬은 조급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안심하세요. 우리는 프롭니다.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그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