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세 가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그들은 공무적이 죽는 것을 지켜만 볼 뿐, 화가 나고 분통이 터져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죽을 뻔했던 예씨 가문은 엄진우를 보자마자 화가 나서 노발대발했다. “재수없는 놈, 소씨 가문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너와 같이 여기에 묻혔을 거야!” 예흥찬은 엄진우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음침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엄진우는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뭐라고? 안 들리는데? 다시 한 번 씨불여 봐.” 엄진우의 반격에 예씨 가문 사람들은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특히 예정명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맨손으로 공자명의 두개골을 부러뜨릴 수 있는 엄진우에게 누가 감히 맞선단 말인가.예씨 가문 사람들의 제압에서 벗어난 예우림은 재빨리 소지안에게 달려가 그녀에게 와락 안겼다. “지안아, 우어엉! 날 위해 이 먼곳까지 와주다니, 나 너무 감동이야.” 소지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헐, 너 지금 나한테 고마워서 이러는 거야? 우린 영원히 베프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모른 척 가만히 있어!” 예우림은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맞아. 우린 영원한 베프야.” “근데 네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어. 나보다 더 많은 걸 했지.” 소지안은 갑자기 여우같은 미소를 지었다. 예우림은 멈칫하더니 상대의 그 우람하고 당당한 그림자를 보았다. 이때 엄진우가 걱정가득한 눈빛으로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예우림은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홱 돌리고 말했다. 예전에는 엄진우가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했든 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요즘 따라 자꾸만 그에게 흔들린다. 특히, 오늘 혼자 이 전쟁터에 뛰어든 엄진우의 모습은 그녀 마음속에 감정을 싹틔웠다. 그녀는 엄진우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이건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수줍음’이라는 감정이다. 맙소사! 대기업 부대표가 일개 평사원에게 수
그러자 상대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엄진우 님, 이건 부탁입니다. 제발 부탁드려요.” 엄진우를 가르치겠다고? 세상에 어떤 미친 놈이 감히 그를 가르친단 말인가? “부탁할 때는 부탁하는 태도를 보여야지 않겠어?” 엄진우가 입꼬리를 올린 채 상대를 노려보자 상대는 바로 알아들었다. “엄진우 님, 걱정마세요. 가문에 사형이 생겼어요. 엄비룡은 비록 죽었지만 그 때의 죄는 반드시 추궁할 거에요. 그리고 어르신께서 하신 말씀이 있으세요. 엄씨 가문은 영원히 엄진우 님의 집이니 원하실 때면 언제든지 아버님이 생전에 소유하셨던 지위와 명예를 드리겠다고요.” 엄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필요 없어! 난 엄비호만 죽으면 돼. 내일 엄비호 머리통을 우리 엄마 손에 직접 전달해. 알겠어?” 그 말에 상대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형에 관한 결의는 내일 나오는데... 너무 조급하신 건 아닌지...” “뭐?” 엄진우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상대는 겁에 질려 횡설수설했다. “네! 바로 집행할게요. 바로 실시하겠습니다.” 엄진우는 그제야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돌아가서 그 꼰대들에게 내가 살길을 마련해 줄 테니 앞으로 똑바로 살아라고 전해.” “네네네네!” 엄진우의 대답을 들은 후, 상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버렸다. 엄비호와 협력한 미스터리한 존재는 엄비호도 그 신분을 알지 못했다. 그저 상대는 갑자기 찾아왔고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가 모른다면 엄진우는 스스로 찾아낼 것이다. 이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공씨 가문은 비록 엄진우를 적대시했지만 아무래도 고대 무가들과 소씨 가문도 다 있는 자리라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한 채 울분을 삼키고 떠나버렸다. 엄진우도 슬슬 돌아가 찬물에 샤워나 하려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서, 갑자기 실버색의 부가티 베이론이 그의 앞을 막아섰고 엄진우는 순간 경계심을 세웠다. 북강의 번호판. “엄진우, 오랜만이다.” 차창을 내리자 오윤하의 요염한 얼굴이 엄진우의 시선에 들어
“상?” 엄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 상이 너야? 뭐 꽤 유혹적이긴 하네. 하지만 난 너한테 관심없어.” 엄진우의 말에 차 안에 있던 오씨 가문 가신들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건방지게 굴지 마!” “더 할 말 없으면 난 이만 간다.” 엄진우는 덤덤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 싸구려 약혼녀와 오래 있을수록 그녀에게 속을 들키기 쉬워진다. 그러니 이 여자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다. 오윤하는 평소처럼 웃어보였다. “만약 내 손에 엄비호가 그 당시 손 잡았던 미스터리한 인물의 정보가 있다면 어떻게 관심 좀 생겨?” 그 말에 엄진우는 충격을 먹고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오윤하를 바라봤다. “너 어떻게 알았어?” 그녀는 엄씨 가문의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어떻게 그의 아버지에 관한 일까지 알고 있는 걸까? “웃기네. 우리 오씨 가문의 실력으로 그 정도는 껌이야. 엄진우, 넌 날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 오윤하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방긋 웃었다. “그래서 관심 좀 생겼냐고.” “그래.”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일이라면 상대가 어떤 의도라도 엄진우는 다 받아 줄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렇다면 강남무도대회에서 탑5에 들어. 그렇다면 단서를 줄게.” 오윤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넌 내 요구를 들어줘야 해.” “좋아.” 쿨하게 대답하고 뒤돌아서려는 그때, 오윤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급히 말했다. “뭐가 이렇게 쉬워? 너 그러다 탑5에 들지 못해서 내가 너한테 죽으라고 하면 어쩌려고.” “어쩔 거 없어. 난 반드시 이겨.” 엄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오윤하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진우, 네 실력이 만만하지 않다는 건 알아.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할 게 하나 있어. 강남무도대회는 네가 생각한 것만큼 쉬운 대회가 아니야. 그 대회에 참가하는 최하급 무도인이 내력종사나 외강종사야. 강남에서
공무적이 죽고 공무성은 강력한 차기 가주로 떠올랐는데 그는 공무적 다음으로 실력이 강한 대종사이다. 공무적이 죽자 공씨 가문 사람들도 어느정도 그를 다음 가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소씨 가문과 고대 무가가 뒤를 봐주지 않았더라면 그 자식은 이미 죽었을 거야.” “절대 가만 두면 안 돼!” 공씨 가문 사람들은 분개하며 말했다. “소씨 가문과 고대 무가는 상대할 수 없지만 엄진우와 예씨 가문은 손쉽게 제거할 수 있어!” “무성아. 네가 우리와 함께 그 놈들을 죽여서 공 회장의 복수를 한다면 우리는 널 차기 가주로 받아줄 것이다.” 사람들은 연달아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공무성은 악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걱정마. 하나도 놓치지 않아. 하지만 이런 일은 우리 공씨 가문이 직접 손을 쓸 수 없어. 그러니 우리 가문이 연루되지 않게 희생양을 찾아야 해.” 공무성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거액을 들여서라도 혈도의 사람을 고용해야겠어. 그들은 프로야.” 순간 사람들은 저도 몰래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혈도? 강남에서 가장 포악하고 공포스러운 조직을 말하는 거야?” “예강호가 부상하기 전 그 사람들이야 말로 강남 제일 폭도로 불렸어. 비록 지금은 예강호에게 타이틀을 빼앗겼지만 여전히 대단한 존재들이야.” 어떻게 보면 혈도는 예강호보다 더 공포스러운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예강호는 절대 가난한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다는 자기만의 원칙이 있지만 혈도는 돈만 받으면 가난한 사람이든 재벌이든 전부 죽여버린다. “뭐 돈은 많이 줘야겠지만 이 분을 풀려면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공무성과 공씨 가문 사람들은 바로 의견을 통일한 채 혈도의 비밀 아지트로 찾아갔다. 창해시 빈민굴의 작은 골목에 위치한 개 도축장. 피범벅이 된 철장과 개 울음소리로 둘러싸인 가운데 공무성은 지폐를 담은 케이스 두개를 들고 검은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한창 개를 도살하고 있었다. “하, 뭐가 필요하니 마침 뭐가 도착했네.” 그는 모
식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공무적은 이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돈이 부족해서 그런 거였어요?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공씨 가문에 남은 것이 돈이라서요.” 식칼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돈이 아닌 다른 걸 원해요. 듣자니 공씨 가문 여자들이 그렇게 하나같이 탐스럽다던데, 일 여덟 명만 데리고 놀 수 있게 보내주는 건 어때요?” 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무성 뒤에 있던 공씨 가문 사람들은 바로 분노를 터뜨렸다. “적당히 하세요! 돈을 달라 여자를 달라! 우리는 당신을 고용하러 온 거지, 윗사람 대접 해주려고 온 게 아니에요!” 쿵! 그 순간, 옆에 있던 혈도의 조직원은 바로 상대의 머리에 칼을 꽂았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두쪽이 나버렸다. 공씨 가문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공무성도 겁에 질린 채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제야 식칼은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의 머리에 칼을 꽂은 부하의 뺨을 후려쳤다. “이 새끼가!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말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죽여버리면 어떡해. 기본 예의는 지키자고, 이것아. 우리 혈도는 점잖은 사람들의 조직이야.” 부하를 혼낸 뒤 식칼은 몸을 돌려 음흉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 선생님, 추태를 보여드려서 죄송해요. 제 부하들이 성질이 조금 급해서요. 이미 혼냈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에요.” 그렇다면 적어도 말이 끝나고 죽여라는 뜻인가? 대종사인 공무성도 그들의 기세에 놀라 다리를 벌벌 떨었다. 이건 닭을 잡아 원숭이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공무성에 대한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역시 늑대와 함께 춤을 추려면 처참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좋아요. 보낼게요. 공씨 가문 여덟명의 여자를 내일 밤 식칼 형님의 침대에 올려드릴게요.” “오늘.” 식칼이 담담하게 말했다. “듣자하니 공 선생님 와이프 몸매가 그렇게 죽여준다고 하던데 같이 보내세요. 그렇다면 2억은 적게 받죠. 이 정도면
조연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삽시에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경찰청장님 옆에는 무도종사들이 지키고 있는 거 아니였어?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살해당하셨지?” “그 무도종사들 역시 살해당했습니다.” 부하의 떨리는 목소리에 조연설은 눈앞이 어지러워 이마를 짚고 말했다. “혈도가 그렇게 강했어?” “우리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혈도의 두목은 식칼이라고 불리는 자인데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지독한 인물입니다. 게다가 전에 성에서 모셔온 두 대종사를 혼자서 죽일 만큼 실력이 강하다고 합니다.” 노련한 집행청 대원들이 잇달아 말했다. “그렇다면 그자는 지금 어디있지?” 조연설은 미간을 찌푸렸다. “군사위성을 동원해 위치 추적해. 그 놈은 내가 직접 잡는다.” 그녀의 명령에 집행청 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헐. 다른 집행청 직원들은 식칼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조연설은 오히려 상대를 잡겠다고 나서다니. “청장님, 식칼은 혈도의 두목입니다. 다시 생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혹은 시청에 도움을 청해서 군사를 움직여달라고 하세요. 아니면 우리끼리는...” 모두가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창해시 집행청에는 고작 대원이 수백 명인데 그 중 무도종사가 스무 명을 초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혈도와 식칼에 맞선단 말인가. “하하.” 조연설은 싸늘하게 웃더니 팔짱을 끼고 말했다. “혈도에 겁을 먹은 거야?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해? 이번에 난 내 사사로운 힘을 움직일 거야. 조씨 가문의 열 명의 외강종사와 다섯 명의 내력종사, 즉 총 열다섯 명의 무도종사를 동원해서 그들을 상대한다.” 그 말에 대원들은 흥분에 겨워 환호를 질렀다. “열다섯 명이나요? 그렇게 많이 움직이신다면 저희는 두렵지 않습니다. 청장님을 따르겠습니다!” “창해시를 지키겠습니다!” 하지만 조연설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사실 조씨 가문의 무도종사를 움직인다는 건 그녀가 지어낸 말이다. 사실 그들에게 지원군은 없다. “
상대는 엄진우의 말을 무시한 채 몸을 돌려 화장실 문을 잠갔다. 엄진우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하시는 거죠?” “질문이 너무 많아.” 상대는 바로 본색을 드러내고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꺼냈다. “영원히 입 다물게 해줄게.” 그리고 화장실에서는 잠시 격렬한 충돌 소리가 들려왔다. 3초 후, 엄진우는 화장실 문을 열었고 상대는 피범벅이 된 채 죽어버렸다. “귀찮아 죽겠네. 혈도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했을 뿐인데 굳이 죽으려고 덤비다니.” 감히 나한테 까불어? 누가 사냥감이고, 누가 사냥꾼인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손을 깨끗이 씻은 후 화장실에서 나온 엄진우는 직원 구역에 찾아가 간식을 먹으며 공연을 감상했다. 이때 김종민이 잔뜩 신나서 그를 불렀다. “진우야, 오랜만이다?” “종민아, 정말 오랜만이네.” 엄진우도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러자 상대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너 팀장으로 승진한 후 얼굴 보기 진짜 힘들다. 다들 너와 함께 일했던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어.” 엄진우가 제7팀으로 발령난 후 그는 기존 부서와 거리가 많이 멀어졌다. 엄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다들 보고 싶어. 그래도 부서만 다를 뿐이니 가끔 모여서 한잔 하자고.” 두 사람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몇 마디 수다를 떨었다. 이때 하얀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장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 지기성이야!” 김종민이 감탄했다.“비주얼 좋지, 피아노도 잘 치지, 듣자하니 회사에 지기성을 짝사랑하는 여직원들이 그렇게 많대. 근데 재밌는 건 지기성이 소 비서님을 좋아한다는 거야. 전에 몇 번 고백했었는데 소 비서님이 아예 쌩깠대. 그러니 너 조심해. 너 평소에 소 비서님이랑 친하게 지냈잖아. 어쩌면 이미 널 벼르고 있을 지도 몰라.” 엄진우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저런 놈이 있었어? 근데 피아노 실력이 너무 젬병이다. 오리 울음소리 같잖아.”
설마 행적을 들킨건가? 깜짝 놀란 식칼은 하마터면 공격을 개시할 뻔했다. 이때 옆에 있던 부하가 다급히 말했다. "보스, 직원들끼리 싸움이 난 것 같아요. 우리와 상관없습니다." 그제야 식칼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작전 개시 전에 이런 쇼도 볼 수 있다니, 재밌군. 가서 구경이나 하자고."엄진우와 지기성의 소란에 직원들은 당황했고 결국 예우림까지 출동했다. 엄진우에게 얻어터진 지기성의 모습에 예우림 옆에 있던 아티스트들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예우림 부대표님, 직원들끼리 치고 박고하는 게 귀사의 문화인가요?방금 전까지도 우리를 위해 나름다운 곡을 연주하던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단요. 피아니스트에게 손가락은 생명이란 걸 모르세요?"오늘 지성그룹에서는 거금을 들여 이 아티스트들을 섭외했고 그들은 지기성의 연주에 극찬을 보냈다. 그런데 잠재력있는 피아니스트가 저런 꼴을 당했다니, 그들은 참을 수 없었다. 예우림은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진우, 어떻게 된 거야."이때 김종민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부대표님, 지기성 씨가 먼저 진우를 모욕해서 얘도 화가 나서 그런 거에요." "말도 안되는 소리! 어찌됐든 먼저 손찌검을 한 사람의 잘못이에요!" 아티스트들은 잔뜩 흥분해서 분노를 표했다. "예우림 부대표님, 이거 제대로 설명하셔야 할 겁니다. 만약 이 손찌검을 한 직원을 감싸준다면 우리는 바로 강남문예계 동인에게 알려 지성그룹이 아티스트들을 무시하는 행위를 고발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앞으로 지성그룹에서 열리는 그 어떤 이벤트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와 협력관계에 있는 기업에도 지성그룹과의 친분을 단절하라고 통보하겠습니다." 예우림은 순간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버렸다. 엄진우가 이유없이 사람을 폭행하지 않는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보나마나 지기성이 그의 금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평소라면 그녀는 상사로서 이 일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텐데 하필 오늘 이렇게 많은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