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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작가: 들개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26 19:25:28
엄마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금세 도착했고, 명건 아저씨와 아빠를 모두 연행했다.

이번 폭행 사건으로 인해 삼일간 구류 처분을 받았다.

처음에는 분노에 차 있었던 엄마도 상황 설명을 듣고 나서는 한발 물러서며 선처를 택했다.

조서를 작성하던 경찰은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경찰은 엄마에게 물었다.

“따님인 부소민 양이 실종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석 달이요! 새해 첫날 집에서 돈을 훔쳐 달아났어요. 내가 몇 마디 꾸짖었다고 삐쳐서 나가서는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죠.”

엄마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들이켜며 성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동안 따님과 연락을 시도해 본 적은 있습니까?”

“그건... 잘못한 애가 먼저 와서 싹싹 빌어야지 우리가 왜 먼저 연락해야 합니까?”

엄마는 형형한 기세로 눈알을 굴리며 한숨을 쉬었다.

병원에 있는 아들은 여전히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딸은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생각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애는 살인자예요. 당장 체포해 주세요!”

“골수 이식을 고의로 미루고 동생을 죽게 만들려는 거잖아요!”

...

나는 테이블 위에 앉아 발을 흔들며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얼마나 악랄한지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를 낳을 때부터 난산으로 고생했으니 나는 불길한 아이였고, 내가 젖을 먹을 때는 엄마의 가슴을 깨물어서 상처를 냈으니 잔인한 아이였고, 내 외모는 엄마처럼 예쁘지 않으니 추한 아이라는 결론이었다.

엄마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개돼지 같았다. 자기가 낳았지만 어리석고, 못생기고, 탐욕스러운 존재...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천장을 향해 누웠다. 천장의 알루미늄 패널에 비친 엄마의 모습은 갸름한 얼굴형, 파란 눈, 금발 머리... 마치 페르시안 고양이 친칠라를 떠올리게 했다.

“응, 확실히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았네.”

나는 혼잣말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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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언니의 자랑이던 예쁜 얼굴을 강하게 내리쳤다.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 언니는 내 주먹에 맞아 욕실 벽을 뚫고 밖으로 날아가면서 도망치려 했지만, 나는 언니를 놓치지 않았다. 나는 계속 뒤쫓아가고, 언니는 계속 소리쳤다. “귀신이다!” 언니는 비명을 질렀지만, 자신이 이미 나와 같은 존재, 즉 귀신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언니는 계단을 따라 1층 거실로 도망쳤다. “아빠! 엄마! 살려주세요!” 그녀는 본능적으로 아빠에게 달려갔지만, 그대로 아빠의 몸을 통과해 버렸다. 언니는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멈칫하더니, 다시 돌아서서 엄마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치고 손을 뻗어도, 부모님은 여전히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며 설전만 벌이고 있을 뿐 언니를 알아채지 못했다. “부연서! 넌 이미 죽었어!!” 내가 악에 받쳐 외친 말은 언니의 가슴을 망치처럼 내려쳤다. 사실 언니는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다만, 거의 죽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언니의 거짓말 때문에 죽게 됐고, 덕분에 나는 몇 달 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이렇게 쉽게 죽을 리 없어! 나는 너무나 뛰어난 사람이야!” 언니는 미친 듯이 위층으로 달려가 자기 몸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갑자기 언니는 무언가 생각난 듯 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으며 나에게 애원했다. “소민아, 언니가 잘못했어. 정말로 잘못했어. 제발... 제발 나 좀 도와줘.” “다음 달이면 전국 발레 대회가 있어. 만약 결승에 진출하면 국립예술종합학교 공연예술대학 무용원에 특별 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어.” “내 재능과 미모로 세상을 놀라게 할 거야. 이렇게 어린 나이에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금 죽을 순 없어.” “내가 죽으면 아빠 엄마

  • 얼음 속 진심   제7화

    하지만 이제 엄마가 드디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했다. 비록 그것이 동생을 위해서 나온 말일지라도. ...2025년 4월 13일, 폭우, 내가 죽은 지 103일째 집에서는 격렬한 다툼이 벌어졌다. 더 이상 나를 찾지 못할 바에야, 언니 부연서가 골수 이식을 위해 적합성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엄마가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만약 적합 판정을 받으면 부연서가 골수를 기증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부연서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경악하며 대답했다. “저더러 골수를 기증하라고요? 그건 제 발레리나의 꿈을 짓밟는 거잖아요! 제 인생을 망치라는 말이에요!” 아빠는 언니를 아끼며 말했다. “대회를 마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보자.” “연서 너도 누나잖아! 동생을 위해 이 정도 희생도 못 해?” “연서는 곧 무용 대회에 나갈 거야. 그건 아이의 꿈이야!” “아들 목숨보다 연서의 꿈이 더 중요해?” ...엄마와 아빠의 다툼은 점점 격렬해졌다. 나는 부연서의 뒤에서 떠올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연서는 욕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곧은 머릿결과 아름다운 눈을 가진 언니는 우리 부모님에게서 완벽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겨우 두 살 차이였지만, 부연서는 이미 풍만한 몸매를 자랑했고, 블로그에 수많은 구애자가 줄지어 있었다. 가만히 부연서를 바라보던 나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부연서는 부모님의 외모를 물려받았지만, 나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으니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언니를 처음 본 것은 내가 여덟 살 때였다. 부연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지 마. 공주님이라고 불러야 해!” 그때 언니는 부모님과 함께 외할머니가 사는 농장으로 휴가를 왔다. 예쁜 머리에 하늘색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하얀 토끼 귀가 달린 양산을 쓰고 있었다. 언니는 마치 마을 상점에 전시된 예쁜 인형 같았고, 아니, 그보다 더 아름다웠다. 헤어질 때, 부연서는 이렇게 말했다. “

  • 얼음 속 진심   제6화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밖으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드디어 나를 찾아낸 걸까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몇 달 동안 이곳을 맴돌며 나는 지쳐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직 내 죽음을 인정하지 않아서일까? 혹은 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해 천국도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관심은 내 발밑에 있는 내 시체가 아니라 강아지 하니가 입에 문 카드에 쏠려 있었다. 엄마는 하니의 입에서 카드를 빼앗아 들고는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야 무서워졌나 보네. 이렇게 편지를 써서 사과하려고?” “알고 있어, 네가 근처에 숨어 있는 거. 그만 숨지 말고 빨리 나와!” 나는 숨지 않았다. 나는 바로 그들 눈앞에 서 있었다. 엄마는 카드를 열었다. 카드 안에는 아기자기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그리고 내 이름, ‘소민’이 적혀 있었다. [엄마, 꼭 다음 페이지를 넘겨주세요.]카드의 뒷면에는 은색 목걸이가 붙어 있었고, 하트 모양의 펜던트가 조명에 반짝였다. 그날, 내가 쫓겨난 날 밤에 이 카드를 몰래 엄마에게 두고 가려고 했었다. 곧 명절이 지나면 엄마의 생일이었고, 그때쯤이면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까. 내가 항상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엄마의 생일을 챙긴 적은 한 번도 없어서 그 목걸이 값은 내가 침대 시트 천 장을 빨아 모은 돈으로 샀다. 오랜 시간 찬물로 빨래를 한 덕분에 내 손가락은 동상으로 얼었고, 피부는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내 선물을 보는 엄마가 내 마음을 알지 못했다.“나를 달래려는 거야? 좋아, 성공했어. 하지만 네가 동생에게 골수를 기증해야만 착한 딸이 될 수 있어.” 살아 있었다면, 이런 말은 내가 꿈에서도 바랐던 말이었다. 엄마의 착한 딸이 되는 것.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는 이미 죽었고, 나를 찾지 못할 테니까....

  • 얼음 속 진심   제5화

    엄마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금세 도착했고, 명건 아저씨와 아빠를 모두 연행했다. 이번 폭행 사건으로 인해 삼일간 구류 처분을 받았다. 처음에는 분노에 차 있었던 엄마도 상황 설명을 듣고 나서는 한발 물러서며 선처를 택했다. 조서를 작성하던 경찰은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경찰은 엄마에게 물었다. “따님인 부소민 양이 실종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석 달이요! 새해 첫날 집에서 돈을 훔쳐 달아났어요. 내가 몇 마디 꾸짖었다고 삐쳐서 나가서는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죠.” 엄마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들이켜며 성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동안 따님과 연락을 시도해 본 적은 있습니까?” “그건... 잘못한 애가 먼저 와서 싹싹 빌어야지 우리가 왜 먼저 연락해야 합니까?” 엄마는 형형한 기세로 눈알을 굴리며 한숨을 쉬었다. 병원에 있는 아들은 여전히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딸은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생각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애는 살인자예요. 당장 체포해 주세요!” “골수 이식을 고의로 미루고 동생을 죽게 만들려는 거잖아요!” ...나는 테이블 위에 앉아 발을 흔들며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얼마나 악랄한지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를 낳을 때부터 난산으로 고생했으니 나는 불길한 아이였고, 내가 젖을 먹을 때는 엄마의 가슴을 깨물어서 상처를 냈으니 잔인한 아이였고, 내 외모는 엄마처럼 예쁘지 않으니 추한 아이라는 결론이었다. 엄마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개돼지 같았다. 자기가 낳았지만 어리석고, 못생기고, 탐욕스러운 존재...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천장을 향해 누웠다. 천장의 알루미늄 패널에 비친 엄마의 모습은 갸름한 얼굴형, 파란 눈, 금발 머리... 마치 페르시안 고양이 친칠라를 떠올리게 했다. “응, 확실히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았네.” 나는 혼잣말을 하며

  • 얼음 속 진심   제4화

    “정말이야?! 이 배은망덕한 계집애가 장례식까지 와서 남자랑 어울려? 진짜 정상이 아니라니까!” 엄마는 언니의 말을 듣자마자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엄마가 왜 이렇게 늘 분노로 가득 차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난 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엄마가 겪은 고통은 아빠를 사랑했기에 아빠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기로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엄마는 항상 그 고통을 내 탓으로 돌렸다. 우리 집안의 분위기는 항상 이랬다.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기면 탓할 사람이 필요했고, 확실한 증거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모든 나쁜 일의 원인은 다 나였다. 이때, 아빠가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늘 침묵을 지키던 아빠가 말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혹시 소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아빠의 낮고 떨리는 목소리에 엄마와 언니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 “아빠, 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우리에게 먼저 연락이 왔겠죠. 그런데 딴 사람을 찾아갔다는 건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부연서가 단호히 말했다. “아마도 아빠가 자기를 쫓아낸 것에 아직도 앙심에 품고 있을 거예요.” 언니의 말이 끝나자 아빠는 묵묵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을 빨아들인 뒤, 아빠는 담배를 눈 덮인 땅 위에 던지고는 발끝으로 거칠게 눌러 껐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SUV로 돌아가 문을 세게 닫았다. 아빠의 행동은 몹시 불쾌하다는 뜻이었다. ...SUV는 곧 레이지 모텔 앞에 멈췄다. 부연서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는 내가 분명히 여기 있을 거라 확신하며, 내가 붙잡혀 나오면서 당황해 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듯했다. ‘니엘대학교? 그런 명문 대학이 어떻게 길거리에서 몸을 함부로 굴리는 저런 애를 받아들일 수 있겠어.’언니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비웃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 시골 모텔은 늘 마약 중독자나 거리의 여성들이 숨어 지내는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 얼음 속 진심   제3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이 학교 냄새가 왜 이래요? 진짜 역겨워.” 부연서는 코를 틀어막으며 차 안으로 다시 숨어들며 창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언니의 이런 반응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나는 다시 SUV 위로 천천히 떠오르며 학교 근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 마을에서 15년을 살았다. 학교 주변은 가축 농장과 푸른 풀밭이 펼쳐진 곳으로, 무리지어 있는 소와 양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푸르른 풀밭 위엔 자연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는 이곳에서 살았다. 도시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 외할머니와 의지하며 살아왔고, 방과 후엔 근처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소와 양을 돌보며 생활비를 벌곤 했다. 언니와 나는 다른 학교를 다녔다. 부연서는 도시의 사립학교에 다녔고, 나는 외할머니댁 근처의 시골 고등학교에 다녔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내 성적이나 생활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이 한적한 마을에 발길조차 한 적이 없었다.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온 것은 외할머니 장례식 때였다. 그마저도 간단히 추모한 뒤 떠났고, 매년 설날에만 나를 잠시 도시로 부르곤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나는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었다. 나는 고아가 아니라고 해도, 다를 바 없었다. “부소민! 너 나와!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이 못된 계집애, 동생이 죽어가는데 누나라는 게 숨어서 도와주지도 않아? 안에 숨으려면 평생 나오지 마라!” 엄마는 분노에 차 학교 정문을 있는 힘껏 흔들어댔다. 작은 학교의 철문이 덜그럭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고, 기숙사에 있던 학생들과 교사들이 모두 놀라 모여서 수근대기 시작했다. 곧 교무부장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 부소민 학생 부모님이시군요! 정말 잘됐습니다!” “이 아이 정말 훌륭한 학생이에요! 저희 쪽은 막 니엘대학교 디자인학부에서 부소민 학생을 특별 전형으로 합격시켰다는 소식을 받았거든요!” 부연서는 ‘니엘대학교’라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 얼음 속 진심   제2화

    2025년 4월 4일, 맑음, 내가 죽은 지 94일째 하룻밤을 기다렸지만 내가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초조함과 분노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계집애. 내쫓긴 걸로 부족했나? 이제는 날개라도 달려서 어디로 날아가버리기라도 한 거냐? 전화를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아빠는 격노하며 휴대전화를 바닥에 던졌다. 쾅! 나무 장판에 커다란 흠집이 생겼다. 나는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만약 내가 살아 있었다면, 그 핸드폰은 내 머리 위로 날아왔을 게 분명했다. 엄마는 당황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엄마의 소중한 아들은 병원에서 이식받을 골수와 병원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골수 기증하라고 하니까 하기 싫어서 숨어버린 거 아니야?” “안 되겠어. 학교로 찾아가요!” 부연서가 제안했고, 그 말에 부모님은 모처럼 즉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세 사람은 곧바로 아빠의 SUV에 올라탔다. “세상에 이런 누나가 어디 있어? 동생이 죽어가는데 숨어버려? 학교에서 찾으면 혼쭐을 내주겠어!” ...아빠의 SUV는 빠르게 도로를 질주했다. 엄마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언니는 뒷좌석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부연서는 SNS에 글을 올렸다. [소민아, 너 어디 있니? 우리는 가족이잖아! 기다리고 있어.] 함께 올린 사진은 병원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내 남동생과 꽃을 들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나는 부연서 옆에 앉아 언니의 핸드폰 화면을 힐끔거렸다. 부연서는 팔로워가 수십만 명인 인기 있는 SNS 블로거였다. 금세 수많은 ‘좋아요’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댓글에 이렇게 답했다. “남동생이 백혈병으로 골수 이식이 시급해요. 소민이가 용기 내어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나서는 바로 그 댓글을 삭제했다. 그 순간, ‘생명의 릴레이’라는 제목으로 퍼지기 시작한 글은 순식간에 공유되

  • 얼음 속 진심   제1화

    2025년 4월 3일, 맑음, 내가 죽은 지 93일째나는 공중에 떠서 병실 안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와 대화를 나누는 우리 부모님은 초췌한 얼굴로 무거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드님의 백혈병은 중기 단계에서 발견되어 다행히 아직 골수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병원에는 일치하는 골수가 없습니다.” “보통 가족 간의 골수 이식이 적합도도 높고 안전합니다. 최대한 빨리 적합한 골수를 찾아야 합니다.” “수술 가능한 일정은 가장 이르면 다음 달 8일입니다. 수술비 선납금 2,500만 원도 서둘러 납부해 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병원을 나오자마자 말다툼을 시작했다. 2,500만 원은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집에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돈을 남동생의 치료비로 사용하게 된다면, 집안의 장녀인 부연서가 다니는 발레 개인 수업은 당장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부연서는 학교 응원단의 주장으로, 팀원 전원이 이번 훈련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만약 언니가 빠지게 된다면, 팀원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런 이유로 부연서가 자신의 훈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역시나, 부연서는 고개를 살짝 돌려 깊은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빠의 팔에 애교를 부리며 매달렸다.“아빠, 나도 동생을 돕고 싶지만, 다음 달에 있을 전국 발레 대회에서 제가 입상하면 국립예술종합학교 공연예술대학 무용원에 특별 입학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국립예술종합학교 공연예술대학 무용원,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아빠의 눈이 번쩍 뜨였다. 큰딸의 명문 학교 입학은 아빠에게는 무한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역시나 아빠는 무언가 말하려다 멈추고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빠 부정식은 큰딸을 더 편애했다. 부연서는 출중한 외모에 고운 말씨, 학교에서는 치어리더 주장에 성적까지 우수한 ‘모범 학생’이었다. 그러나 아들을 더 편애했던 엄마는 누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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