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은 주문을 마치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던 중, 나나가 갑자기 소희를 언급했다. “한 명이 빠져서 아쉽네요. 넷이 모여야 했는데 말이죠.” 이서와 하나는 모두 침묵했다.잠시 후, 하나가 말했다.“소희가 이 자리에 올 수는 없지만, 영상 통화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심 대표님 내외가 늘 소희를 감시한다고 해도, 우리와 영상 통화도 못 하게 할까?”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의견에 동의했다.이내 전화음이 연결되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하나는 몇 번이고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받는 사람은 없었다.그들은 알 리가 없었다.소희가 심씨 가문의 사당에서 심씨 가문 사람들의 심문을 받고 있다는 것을... 심씨 가문의 사당.이미 어두운 밤이 되었지만, 이 일대는 대낮처럼 밝기만 했다.사당의 등불은 모두 켜져 있었고, 입구에는 표정이 엄숙한 사람들이 가득 서 있었다. 하나같이 말이 없었는데, 고요한 밤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맨 앞에서는 소희가 두 남자에게 눌려 어르신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냉담하고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두 눈동자에는 차가운 빛만이 가득했다.그리고 소희의 멀지 않은 곳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심근영 부부가 있었고, 그 옆에는 조롱하는 듯한 표정의 강경숙과 심유인이 있었다. 현장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굳어 있었지만, 무릎을 꿇고 있는 소희는 그 어르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장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심소희, 이제 네 잘못을 알겠니?” 소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저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요. 여러분이 괜히 사적인 재판을 열고 있는 거라고요! 오히려 잘못을 저지른 건 여러분이에요.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라고요!” 이 말을 들은 어르신은 아주 노여워했다.“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아직도 고집을 부리는 게냐? 심소희, 이번에는 범행의 증거도 있어!”
이런 행위는 표절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었다.그러나 게임 회사의 자료는 모두 기밀에 부쳐져 있었고, 모든 직원은 기밀 유지 협의서에 서명한 상태였다.심지어 그들의 이메일과 핸드폰도 조사했지만, 회사의 기밀을 넘긴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그렇게 혼란이 가중되던 찰나, 익명의 누군가가 제보를 보내왔다.[심소희가 벌인 짓입니다!][증거는 그 여자의 가방 안에 있을 거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곧장 심씨 가문의 고택으로 달려온 것이었다.그들은 고택에 들어서자마자 소희를 때리려 했다. 일부 사람들은 자기가 공들여 개발한 게임이 수포가 된 것이 억울하다고 했으며, 또 다른 일부는 개인적인 앙금 때문에 혼란을 일으키기를 원했다고 했다.이 말을 들은 심근영은 황당하기만 했다.“소희는 며칠 동안 집에만 있었고, 너희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너희의 기밀문서를 훔칠 수 있었겠어?!”“게다가 어떤 방법으로 기밀문서를 훔쳤다는 거지?” 하지만 그들은 심근영의 말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 누군가는 소희의 방에 쳐들어가 그녀의 가방에서 USB를 찾아내기도 했다. 물론 그 안에는 게임에 관한 자료가 쌓여 있었다.그래서 그들이 소희를 사당으로 불러낸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르신들은 곧장 가문의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았고, 지금과 같은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이 USB는 네 가방에서 나온 거야!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증언할 수 있는데도, 내가 너를 모독한다는 게냐?” 소희는 깊은숨을 들이쉬었다.“몇 번을 물으셔도 제 대답은 같을 거예요.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에요. 여러분은 이 모든 게 제가 한 일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 USB가 어디서 온 건지도 모른다고요. 그리고 그 USB 안에 회사의 기밀이 숨겨져 있다고 하셨죠? 저는 여러분의 회사에 가본 적도 없어요. 그런 제가 어떻게 그 기밀문서들을 복사해 냈다는 거죠?” “당연히 회사에 갈 필요가 없었겠지! 너는 심씨 가문의 아가씨야. 네 말 한마디면, 너나 할 것 없이
하지만 지난번 소희가 폭로하겠다고 위협한 후, 어르신들은 그 생각을 포기했었다.다만, 매일 같이 그녀가 스스로 실수를 저질러 자신들에게 약점을 잡히기를 기다릴 뿐이었다.어쩌면 헛된 망상으로 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일이 소희의 대담한 행동으로 큰불을 일으키자, 모처럼 온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하지만 소희가 자신들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어르신들은 마음속에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럼 왜 네 가방에 USB가 있었던 거지?”심지훈은 마침내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는 그동안 회사 기밀을 훔친 사람을 찾아 소송을 걸기 위해 조급해했다.그래야만 손실을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자, 점차 냉정해지며 이전에는 이상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이제야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했다. ‘잠깐, 심소희가 말한 대로 우리는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이해관계도 없어. 그렇다면... 왜 우리 회사의 기밀을 훔친 걸까?’ ‘그리고 가장 이상한 건 그 익명의 제보야.’‘그 사람은 심소희의 가방에 USB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렇게 명확한 제보를 한 걸 보면, 우리가 움직이기를 기다린 것만 같아.’ ‘그리고 심소희!’‘정말 심소희가 게임 자료를 훔쳤다면, 이미 팔아넘긴 USB 자료를 폐기하지 않았을까?’‘계속 가방에 넣어 두면 우리가 찾을까 봐 두렵지 않았겠냐고.’“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제대로 조사해 보는 게 어떨까요?”소희가 심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가 고개를 숙였다.심지훈은 진심으로 기밀을 유출한 사람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만 기밀을 유출한 사람을 고소하여 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설령 소희가 기밀을 유출한 사람이라고 해도, 법원은 USB만으로 이 사건의 범인을 소희라고 단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조사할 필요가 있겠니?”심지훈의 표정이 풀린 것을 본 어르신이 급히 말했다.“범죄의 증거가 확보된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어. 이 일이 심소희가 한 일이라면, 심 대표가 배상하면 될
한참이 지나서야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경찰에 신고하면 안 돼요!”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떨어졌다.‘심유인?’사람들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왜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된다는 거지?”심근영은 눈빛으로 심유인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내가 벌인 일이라고, 심소희를 모함하고 싶었다고 말할 순 없어. 만약 경찰이 내가 벌인 일인 걸 알게 된다면...’상황을 지켜보던 강경숙이 서둘러 핑계를 찾았다.“가족끼리 잘잘못을 따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이 일이 밖으로 퍼지기라도 하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녀요? 제 생각엔, 차라리 조용히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어르신들도 이 일을 속전속결 시키려 했다.“우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어. 어쨌든, 소희의 가방에서 USB가 나온 건 사실이잖나? 설령 이 일이 소희가 벌인 일이 아니라고 해도, 소희는 대가를 치러야 해! 교훈을 얻어야 하는 법이니까!” 소희가 말했다.“어르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제가 벌인 일이 아닌데도, 제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요? 피해자한테도 죄가 있다는 건가요?” 어르신은 수치와 분노가 섞인 얼굴로 말했다.“내 말이 틀렸다는 게냐? 다른 사람의 가방이 아닌, 네 가방에 USB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반성해야 하지 않겠니?” 소희는 정말이지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좋아요, 경찰에 신고하시죠. 도대체 누가 제 가방에 USB를 넣은 건지 밝혀내야겠어요.”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직접 경찰에 신고하려 했다. 소희가 정말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본 어르신들이 아연실색하며 말했다.“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심씨 가문의 일은 우리가 결정해야 해! 우리가 결정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네 멋대로 결정을 내리다니! 이... 이런 안하무인을 봤나!” “그저 경찰에 신고한 것뿐이에요. 심씨 가문의 규칙도 이 시대에 맞게 바뀔 필요가 있어요.”소희는 이 말을 마친 후, 양쪽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강경숙 모녀를 모함한다고 할 게 뻔해.’‘허,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는 건 참 좋은 거구나.’소희가 말했다.“네, 제가 하지 않은 일이니 제가 책임을 질 필요는 없을 거예요. 게다가 진범은 흔적을 남겼을 테니까요.” 심유인이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강경숙이 웃으며 말했다.“맞아, 진범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법이지. 경찰이 반드시 기밀을 유출한 사람을 찾아낼 테니까 지켜보자꾸나. 시간이 늦었으니, 나와 유인이는 이만 돌아가 보마.” 강경숙은 이 말을 끝으로 심유인을 끌고 갔다.심유인은 입구에 다다른 후에야 강경숙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엄마, 왜 말도 못 하게 해요? 심소희가 뭔가 발견한 건 아니겠죠?”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너는 우리가 심소희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는 걸 다 폭로했을 거야, 내 말이 틀렸니?!”화가 난 강경숙이 말했다.‘어휴, 화를 가라앉힐 줄 모르는 딸이라니, 정말 골치 아프군.’ “엄마, 제가 그걸 말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아니라고요.” “그래, 말하지 않는다고 치자. 네 얼굴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아니?! 급하고 당황한 표정이 네가 이 사건과 관련 있다는 걸 뻔히 드러내고 있다고!” 심유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엄마...” 강경숙은 그제야 너그러운 어투로 말했다.“유인아, 너를 탓하려는 건 아니야. 단지 이 엄마도 화를 참을 수 없어서 그래.”“경찰이 뭔가 알아내면 어쩌죠?”“허.”강경숙이 냉소를 지었다.“심소희의 동생이라는 녀석, 시골에서 왔지만 능력이 탁월하더구나. 걔는 오늘 저녁에 심소희가 경찰에 신고할 거라는 걸 일찌감치 짐작했어. 그래서 모든 준비를 해놓고, 걔가 함정에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이번에는 아주버님이 나서서 심소희를 보호하려고 해도, 심씨 가문 전체가 심소희를 지지한다고 해도, 심씨 가문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을 거야.” “엄마?”심유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심태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심소희를 쫓아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예요
이서는 병실로 돌아왔지만, 조용한 옆 병실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그녀는 의심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어제 이맘때에는 불을 밝게 켜고 향기로운 음식 냄새를 풍기면서 나를 유혹하려 하더니, 오늘은 왜 저렇게 조용한 거지?’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자, 이서는 그들이 또 다른 계획을 세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냥 검사실로 들어가자.’하지만 그녀가 검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지환의 병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이서는 인상을 찌푸린 채 병실 앞에 잠시 서 있다가 문을 열고 자신의 병실로 들어갔다.그녀는 밤새 귀를 쫑긋 세우고 옆 병실의 인기척을 들으려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이서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아직 회복되지 않아서 퇴원했을 리는 없는데...’ ‘퇴원한 게 아니라면,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밤새 잠을 뒤척이던 이서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곧장 옆 병실로 갔다.하지만 지환의 병실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이서는 회사에 도착한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동료의 인사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일에 몰두하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불안했다.‘하지환 씨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질 리가 없는데?’ 이서가 핸드폰을 꺼내 머뭇거리던 순간,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들어오세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윤 대표님.”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하늘이 아닌 고이서였다.이서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어요?” 이서의 시선이 고이서가 들고 있는 꽃차에 떨어졌다. 고이서는 꽃차를 이서의 앞에 놓고 웃으며 말했다.“윤 대표님, 조금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뵀는데 정신이 없으신 것 같더라고요. 어젯밤에 잘 못 쉬신 건가요?” 이서가 말했다.“네.”“이 꽃차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고이서가 말했다.“윤 대표님, 잠이 오지 않으시면 이 꽃차를 한 잔 드세요. 바로 잠
이서의 머릿속에는 꽃차의 효능을 시험해 보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이걸 마시면 정말 잠들 수 있을까?’‘나는 지금 잠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인데...’ 병원으로 돌아와서 검사를 마친 이서는 결과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병실로 돌아갔다. 옆 병실은 문은 그때까지도 굳게 닫혀 있었다.이서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바로 그때, 간호사가 병실 앞을 지나갔다.이서가 얼른 그녀를 부르며 말했다.“저기... 뭐 좀 여쭤볼게요.”“이 병실에 있던 환자, 퇴원했나요?” 간호사가 병실을 힐끗 보았다.지환은 이 병원에서 가장 귀한 손님이지 않은가. 그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아, 하 대표님이요? 퇴원하진 않으셨는데, 며칠간 병원에 묵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상처 부위는 좀 나았고요?”“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 들었을 뿐이거든요. 의사 선생님께 자세히 물어봐 드릴까요?” 이서가 얼른 말했다.“아니에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것뿐이에요.” 간호사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걸까?’ 이서가 얼굴을 붉히며 자기 병실로 들어갔다.방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심장이 뛰는 듯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럴 사람은 아니야.’‘설마...’‘하도훈 때문에?’ ‘하도훈 일이라면...’이서는 지체 없이 핸드폰을 켜고 지환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 그와 냉전 중이라는 생각에 이천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이천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바쁘기 때문이 아니라, 수신자가 이서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그의 옆에 있던 사람이 온몸에서 차가운 카리스마를 내뿜었다.이천은 그 기세에 눌려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대표님... 받을까요?”이천이 긴장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봤다.‘내 목숨이 날아가는 건 아니겠지?’ 지환은 그를 흘겨보며 말하지 않았지만, 온몸에서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으로 이천을 짓누
상언은 사람들의 표정이 아주 재미있다고 느꼈다.“아니, 아무 일도 없어. 하지만...” 이서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하지만 뭐요?] “됐어, 아무것도 아니야.”상언이 지환을 흘겨보았다.“어차피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이잖아?”[...]상언이 일부러 놀란 척 말했다.“이 비서님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걱정되는 거 아니야?” 이서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아니에요, 이 비서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 걱정한 거지, 다른 사람을 걱정한 건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의 심장은 수많은 손에 의해 긁히고 있는 듯했다. ‘하지환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너무 궁금해.’다행히 상언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지환이도 우리랑 같이 있는데, 지환이한테 하고 싶은 말은 없어?” 이서는 눈을 똑바로 뜨고 한참을 참다가 말했다.[하지환 씨한테는 할 말 없어요.] 상언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정말? 그럼 나 먼저 끊을게.”[잠, 잠시만요!] 이서가 다급하게 말했다.[지금 어디세요? 그리고 이 비서님이요, 오늘은 오시는 거예요?] 구구절절 이천을 향한 질문이었지만, 모두 지환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그가 이천을 바라보는 눈빛은 이천을 고슴도치처럼 찔러버릴 것만 같았다. 상언이 웃으며 말했다.“이서야, 설마 이 비서님한테 반한 건 아니지?” 이서가 얼굴을 붉혔다.[오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 비서님한테 반한 게 아니라면, 왜 이 비서님이 언제 오는지 물어본 거야?”[저... 저는...] 이서는 말문이 막혔다. ‘자존심 상해. 오빠한테 하지환 씨가 언제 오는지는 묻고 싶지 않단 말이야.’ [사모님.]이천은 상언이 계속 이서를 놀릴까 봐 걱정되어서 서둘러 핸드폰을 빼앗았다. ‘나는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고!’[저는 오늘 저녁에 돌아가지 않을 예정입니다. 아, 아니지, 대표님은 오늘 저녁에 돌아가지 않으실 겁니다.][어둠의 호리병을 찾았는데, 오늘
토요일.이서는 약속 시간까지 병원에서 소희를 기다렸다. 소희의 전화를 받고서야 밖으로 나온 이서는 지환의 병실을 지나며 안을 힐끗 보았지만, 안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갔나 보네.’이서는 별생각 없이 병원을 나섰다.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알콩달콩하게 서 있는 소희와 현태의 모습이 보였다.이 광경을 본 이서는 갑자기 심술이 나는 듯했다. ‘나도 하지환 씨와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차에 오르려던 이서는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이서는 차 안에 있는 지환을 보고는 눈을 두어번 깜빡인 후에야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 하지환 씨가 왜 여기 있어요?”이서는 망설이기 시작했다.“현태 씨가 옷을 고르러 갈 건데, 안목이 좋은 나도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해서 왔어.” 이서가 고개를 돌려 현태를 바라보자, 현태가 어수룩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저... 소희 씨가 사모님께 전화한 줄은 몰랐어요.”“하지만 대표님께서 제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드문 기회라...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모님, 괜찮으시죠?” ‘완전 고의적이잖아!’이서는 속마음을 내보이고 싶었지만, 다음 주 월요일에 두 사람이 심근영 부부를 만나야 하는 것을 떠올리며, 한 명의 조언자가 더 있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긴, 여자인 나뿐만 아니라 남자의 조언도 같이 받는 게 더 도움이 될 거야. 화가 나긴 하지만... 조금만 참자.’ “괜찮아요, 어서 가시죠!”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조수석으로 향했다.하지만 소희가 재빨리 달려가 조수석에 앉으며 말했다.“이서 언니, 제가 현태 오빠랑 같이 앉고 싶은데, 괜찮죠?”이서는 말문이 막혔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뒷좌석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환과 거리를 두기 위해 창문에 바짝 붙어 앉았는데, 문이 없었다면 진작 차에서 떨어졌을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소희와 현태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아야만 했다. 그렇다. 두 사람이 지환을 불러낸
그 사람은 바로... 심유인!“언니가 왜 여기 있어요?”소희는 심근영 부부를 알게 된 후로 서서히 강한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집을 자신의 영역이라고 여기게 된 찰나, 심유인이 거들먹거리며 이곳에 나타난 것을 보자, 소희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게다가 유인은 항상 뒤에서 작은 음모를 꾸미곤 해서, 소희는 그녀를 보기만 해도 짜증이 밀려왔다.‘회사 기밀을 훔쳤다는 누명도 심유인이 벌인 짓인 것 같단 말이지...’‘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심씨 가문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조사했는데도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겠어?’‘자기 자신을 조사하는 셈이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 수 있는 거지!’ “소희야, 오랫동안 널 만나지 못해서 이 언니가 특별히 너를 보러 온 건데, 날 반기지 않는 것 같네?” 이서의 배후 인물이 지환이라는 것과 하은철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심유인은 소희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하지만 그녀에겐 이미 그럴 기회가 없었다. 소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과거에 있던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심유인은 오직 한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소희의 남자 친구가 월요일에 찾아온다는 것과 그녀의 남자 친구가 운전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심유인은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네, 저는 언니를 반기지 않아요. 당장 나가주시겠어요?”심유인은 곧장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심소희, 너무 거만하게 굴지 마. 지금은 하 대표님께서 너를 지지해 주신다지만, 언제까지 그분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그리고, 그분이 너를 도와주시는 건 전적으로 윤 대표 때문이야. 네가 윤 대표와의 사이가 틀어진다고 해도, 하 대표님께서 너를 지지해 주실까?” 소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심유인을 바라보았다.“이서 언니와 저의 관계는 언니와 주변 사람들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관계가 아니에요!” 심유인이 눈을 굴리며 말했다.“그래, 두 사람의 사이가 정말 좋다는
고이서는 두 사람이 단톡방에 보낸 메시지를 보고 꽤나 만족스러워하며 웃기 시작했다.하지만 자신이 아주 특별한 신분임을 잊지 않았고, 절대 외부인에게 자신이 원래의 ‘윤이서’라는 사실을 알리면 안 된다는 것을 되새겼다. ‘윤이서가 나와 엄마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히 의심할 거야.’고이서가 걱정을 털어놓자, 성지영이 무심히 말했다.[얘, 그렇게 우연히 만날 리가 없잖아. 이렇게 큰 도시에서 쇼핑하다가 윤이서를 만난다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란다.]윤재하도 그런 우연이 일어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우리 딸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야. 곧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끝날 텐데,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서 골치 아픈 일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그래도 드레스가 사고 싶다면, 교외로 가서 사는 게 좋을 것 같군.][윤이서가 교외로 쇼핑가지는 않을 테니까.]성지영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교외에서 어떻게 그럴듯한 드레스를 살 수 있겠어요?] 고이서는 시내에서는 이서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교외에서는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엄마, 교외에는 제대로 된 드레스가 없긴 하겠지만,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잖아요.][제가 윤씨 그룹의 대표가 되면, 시내의 드레스는 물론이고, 고급 럭셔리 브랜드의 드레스까지 전부 집으로 보내드릴게요, 네?]이 말은 성지영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어머, 우리 딸 말하는 것 좀 봐? 그래, 토요일에 시외에서 쇼핑하자꾸나.][네, 엄마.]고이서는 약속 시간을 정한 후에야 핸드폰을 내려놓고 업무에 집중했다. 한편, 최고층에 있던 이서는 전화하고 있었는데, 이는 소희가 걸어온 것이었다. [이서 언니, 긴급 상황이에요. 저 좀 도와주세요!]이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야?” [어젯밤에 부모님께 현태 오빠의 존재를 털어놓았잖아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아빠가 저를 서재로 부르셔서는 다음 주 월요일에 현태 오빠를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어
“나는 과거에 살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요.”조용히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눈빛에서는 고통이 요동치고 있었고,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지환의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이 울부짖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감정은 입술 끝에서 단 세 글자로 바뀌고 말았다.“알겠어.” 이서도 지환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괴로웠다.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마다 과거만 떠올릴 뿐, 그 누구도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그것은 그저 과거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지 않은가. “그만 먹을래요.”이서는 황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병실을 떠났다. 차에 오르자, 이서는 고통이 온몸으로 번지는 듯했다. ‘하지환 씨가 하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늘은 왜 우리한테 이런 장난을 친 걸까?’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차 안의 카펫을 바라보던 이서는 운전기사의 말을 듣고서야 회사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에서 내린 이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또 고이서를 마주쳤다.다시 고이서를 마주한 이서의 감정은 완전히 뒤바꾼 후였지만, 그러한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고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고이서가 빙그레 웃으며 이서를 바라보았다.“윤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젯밤에는 잘 주무셨나요?”“덕분에요. 고 팀장님이 주신 꽃차를 마신 이후로 아주 잘 자고 있어요.” “참, 지난번에 꽃차가 부족하면 더 구해줄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큰 걸로 하나 더 구해주실 수 있을까요?”이서가 주동적으로 꽃차를 더 달라고 하자, 고이서의 눈동자에 기쁨이 번졌다.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이서는 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역시,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 윤씨 그룹에 들어온 거였구나.’‘재무팀 팀장을 다시 구해봐야겠어.’어쨌든 재무는 한 회사의 존망이 달린 것이지 않은가. “언제까지 구해드리면 될까요?”“어제저녁에 세어 보았는데, 아직 10포가 남았더라고요. 매일 저녁에 1포씩 먹는다고 가정하면, 10일분은 남은 셈이죠. 4일이나
“감사해요.”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구태우가 한 말을 곱씹자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날이 밝자마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알았어,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줄 여력이 없어.”‘미안해요, 소지태 씨.’이서는 평생 지태에게 대답을 줄 수 없을 것이었다.병실 문을 열자, 아침 식사를 들고 있는 이천이 보였다.“또 아침 식사를 가져오신 거예요?”‘역시 사모님이야!’놀란 이천은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순간, 뒤에서 몸을 일으킨 지환이 보였다.이서가 그를 마주하고도 표정이 구겨지지 않자, 이천이 눈썹을 치켜올렸다.“네, 사모님, 같이 드실래요?” “이 비서님, 말씀드렸잖아요.”“앞으로는 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시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떡해요?”이서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천은 곧장 지환의 안색을 살폈는데, 과연 이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환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지... 괜히 사모님께 식사하자고 해서 또 대표님의 기분을 나쁘게 했으니까!’ “그래도 아침은 같이 먹을게요.”이서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놀란 이천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마침 배가 고프던 참이었거든요.”이서가 싱긋 웃어 보였다. ‘식사하시겠다고?! 경사네, 경사야!’이천은 바삐 이서를 붙잡고 지환의 병실로 향하며 말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아니, 윤 대표님께서 같이 식사하시겠답니다!” “그래.”지환의 낯빛은 조금이나마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듯했지만, 여전히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서가 자리에 앉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천은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눈물이 눈 앞을 가렸다.‘이런 평화로운 모습이 얼마 만인 거지?’ “아,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이천이 음식을 내려놓고 말했다.“맛있게 드십시오. 부족하시면 더 사 오겠습니다.”이서는 멀어져가는 이천의 뒷모습을 보며
“이 꽃차를 장기간 이용할 경우, 중추신경이 손상돼서 심하면 치매를 일으킬 수 있어요.”“강력한 성분이 꽤 많이 들어 있더군요.”“음... 제 예상대로라면, 대략 보름 정도 사용하면 치매가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놀란 이서가 다시금 물었다.“그러니까, 제가 보름 동안 이 꽃차를 복용했다면, 치매에 걸렸을 거란 말씀이세요?”“네, 그래서 지인이 준 게 맞냐고 물었던 거예요.”의사가 설명서를 보고 말했다.“설명서에도 다른 나라 언어만 있잖습니까.”“그래서 그분도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에요.”“윤이서 씨, 이 꽃차를 복용하기 시작한 건 아니죠?”“그게...”이서는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고 팀장은 외국에서 자란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를 수 있겠어?’‘오히려 잘 알아서 이 꽃차를 사 온 걸 거야.’ 하지만 이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팀장님이 왜... 나를 해치려 한 거지?’ ‘설마, 하도훈이 보낸 사람인 건가?’“윤이서 씨?”의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설마 벌써 며칠간 드신 겁니까?” 별안간 정신을 차린 이서가 말했다.“아니요, 딱 한 번 마셨어요.” 의사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딱 한 번만 마셨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이서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내 건강보다도 회사를 걱정할 때야.’‘고이서, 당신... 대체 누구야?!’의문을 품은 이서는 병실로 돌아간 후, 하늘에게 고이서의 모든 자료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하늘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으나, 곧장 고이서에 관한 자료를 보내왔다.이서는 한 장씩 뒤적거렸으나, 결국 고이서의 이력서에서는 어떠한 문제점도 찾지 못했다.‘지금 당장 고이서를 해고한다고 해도, 그 여자가 대체 누구인지, 왜 나를 찾아온 건지는 알 수 없을 거야.’ 이서는 별안간 지태의 곁에 있는 구태우를 떠올렸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구태우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는 두말없이 승낙했다.
병원에 도착한 이서는 우물쭈물하다가 차 안에 있는 지환을 향해 말했다.“오늘은 정말 고마웠어요.” “그 사람을 처리해 줘서?”“네.”“참,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어요? 왜 날 죽이려고 한 거죠?”“설마... 하도훈의 사람이었던 거예요?” 지환은 이서의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잠시 후에야 말했다.“하은철의 죽음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지만, 하도훈은 우리 두 사람이 비밀을 누설했다고 생각하고, 우리를 죽여서 분풀이하려던 거야.” 이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우리요? 누가 하지환 씨에게도 해를 가한 거예요?”“응.” 이 대답이 나오는 순간, 이서의 심장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괜찮아요?”그녀가 간신히 입을 뗐다.지환은 그런 이서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날 걱정하는 거야?” 이서는 붉게 물든 얼굴로 화를 냈다.“우... 우리는 지금 협력 관계예요! 하지환 씨한테 사고가 나면, 내가 어떻게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지환의 웃음기는 더욱 짙어졌다.“난 괜찮아. 어둠의 호리병이 있으니, 하도훈조차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을 거거든.” “하지만...”이서가 걱정스럽게 말했다.“어둠의 호리병은 한 사람이잖아요. 만약 하도훈이 동시에 두 사람을 보내면 어떡해요?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은 위험에 빠질 거라고요.” “걱정하지 마. 우리 곁에 고수가 있다는 걸 안 이상, 하도훈은 당분간 우리를 해치려 하지 않을 거야. 게다가 하도훈은 지금 여자를 찾아 하씨 가문의 후계자를 만드느라 바쁠걸?”이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차 안으로 돌아갔다.“하도훈이 찾는 여자한테 손을 쓸 수는 없을까요?”“무슨 뜻이야?” “하도훈은 대를 잇는 것에 집중하느라 상대의 출신은 전혀 개의치 않을 거예요. 오히려 그 사람이 더욱 중요시하는 건 상대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가 하는 거겠죠.”“만약 우리가 먼저 하도훈의 조건에 맞는 여자를 골라낸다면, 그 여자를 하도훈의 곁에 두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이지숙이 꽤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어머, 내 정신 좀 봐.”“나는 윤 대표더러 소희를 설득해 달라는 의미였어. 오해하지는 마.” 이서는 이미 고개를 돌려 심근영과 대화를 이어가던 지환을 흘겨보다가 이지숙을 향해 말했다.“알맞은 상대를 찾는 일은 제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잖아요.” 이지숙이 말했다.“그거야 그렇지만... 윤 대표는 우리 소희의 친구잖아. 그러면 소희와 가치관이 잘 맞는다는 뜻이지 않겠어? 어쩌면 이 중에 두 사람 마음에 다 드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서는 소희를 힐끗 보았는데, 그녀는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현태 씨에 관해 말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 이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진을 받고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요리가 나오는 동안, 이서는 구실을 찾아 소희와 함께 룸을 나섰다.“소희 씨, 왜 현태 씨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거야?” 소희가 말했다.“아직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두 분이 현태 오빠를 받아들일지도 모르겠고요.”“만약 반대하신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소희의 긴장한 모습을 본 이서가 웃기 시작했다.“두 분이 현태 씨를 반대할까 봐 걱정하기 시작한 거야? 현태 씨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네?” “이서 언니!”“그래, 인제 그만 웃을게.”“나는 두 분이 현태 씨의 출신을 전혀 개의치 않으실 거라고 생각해. 두 분에게는 현태 씨의 출신보다, 소희 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실 테니까.”“물론, 두 분이 소희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현태 씨의 출신을 더 중요히 여기시겠지.”“그럼 소희 씨도 두 분의 의견을 신경 쓰지 않으면 되잖아?” “내 말이 틀렸어?”곰곰이 생각하던 소희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언니 말이 맞아요.”두 사람은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이지숙이 다시금 중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소희는 이서를 힐끗 본 후에야 입을 열었다.“엄마, 사실... 제겐 남자 친구가 있어요.”놀란 이지숙은 대답도 잊은 채 소희를 바
이서의 심장 소리가 욕실 안을 가득 메웠다.거부할 수 없는 그의 손길, 오히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은근한 기대가 피어올랐다.그 순간, 지환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손이 많이 차갑네. 평소에 신경 좀 써.’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섰을 때는 5분이 흐른 후였다. 뺨에 오른 붉은 기운은 이미 옅어졌지만, 귓불의 붉은 기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다시 운전석에 앉은 지환의 모습이 맑고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이자, 이서는 방금 욕실에서 느꼈던 감정이 더욱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환 씨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떨칠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 이서와 지환은 마침에 호텔에 다다랐다.심근영 부부와 소희는 이미 도착해 있었는데, 두 사람을 보고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게다가 심근영은 이 기회를 틈타 지환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하 대표님, 저희 체면을 세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지환의 표정은 매우 담담했다. 하지만 심근영은 그의 행동 스타일을 일찌감치 들은 모양인지, 전혀 개의치 않고 이서와 악수를 하려 했다.그가 손을 뻗으려던 찰나, 지환이 이를 저지했다.“늦게 왔는데, 주문부터 하시죠.”심근영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지만, 곧 상황을 이해하고는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소희에게 두 사람의 일을 들은 상태였다.‘참, 두 사람이 싸우는 중이라 했었지?’‘그런데 상황을 보아하니, 곧 화해하겠는걸?’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심근영이 지환에게 메뉴를 건넸고, 지환은 이서에게 메뉴를 건넸다. 이서는 모두의 권유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주문하기 시작했다.그녀가 주문한 요리는 모두의 입맛을 고려한 것이었는데, 음식이 식탁에 오르자 모두가 만족했다. 다만, 심근영과 지환은 사업상의 일을 이야기했으며, 이지숙과 소희, 그리고 이서는 생활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의 끝은 ‘결혼’이었다.“소희야, 너도 나이가 적지 않으니, 곧 결혼해야 해.” “...엄마, 서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