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다른 소희는 침대에 누운 이서를 보고는 재빨리 하나에게 경위를 물었다. 하지만 하나도 경위를 잘 알지 않았다.그저 하은철과 하도훈의 음모로 인한 일이라는 것만 알 뿐이었다. “이서는 이미 형부의 신분을 알고 있어.”하나가 소리를 낮추고 입구를 한 번 바라보았다.소희는 병실로 들어올 때 지환을 보았다. ‘그래서 형부가 들어오지 않고 문밖에 계셨던 거구나.’“그럼...” 하나가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아직 상황이 불분명해. 마이클 천 선생님은 이서가 깨어나야만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 “그리고...”그녀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나쁜 소식을 전했으니, 좋은 소식도 하나 알려줄게.” “좋은 소식?”소희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은철이 죽었어!”“하은철이 죽었다고?” 이는 과연 좋은 소식이었다. 소희는 이 말을 듣자마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 형부가 직접 사격했대. 하지만 이 선생님이 그러는데, 그 총을 맞지 않았더라도 그날 밤을 넘길 수 없었을 거래.” “정말 잘 됐다! 그 미친X이 죽었으니, 이서 언니도 마침내 하씨 가문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 거잖아.” 그 순간, 하나 얼굴의 웃음기가 굳어졌다.‘하도훈과 하도훈 배후의 그 무서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언니, 왜 그래? 설마 내 말이 틀린 거야?” 하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잠시 다른 생각을 했을 뿐이야. 드디어 고생 끝에 낙이 온 거지. 이제 깨어난 이서가 형부와 잘 지낼 수 있기만 바라면 돼.” “형부가 이서를 속인 건, 확실히 형부가 잘못한 거야.”“하지만 형부도 처음에는 이서가 하은철의 약혼녀라는 걸 몰랐다고 하더라고.”“맞아, 나도 이서 언니가 형부와 잘 지냈으면 좋겠어. 두 사람, 그동안 너무 힘들었잖아.” “이제 하은철도 죽었으니, 두 사람을 귀찮게 할 사람은 없을 거야. 이럴 때는...” 소희의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침대 누워 있던 이서의 눈꺼풀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흥분해서 몸을 일으
병실에 들어선 마이클 천은 이서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우선 이서의 눈을 검사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서는 여전히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며 입을 기계적으로 세 번 움직였다.“이서요.” 이 대답을 들은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직업이 뭔지도 기억나세요?”“윤씨 그룹의 CEO요.” 모두가 또 한 번 기뻐했다.마이클 천이 하나를 곁으로 끌어당겼다. “그럼 이분은요, 이분은 누구인지 아시겠어요?” “하나요.”마이클 천은 또 소희를 끌어당겼다.하지만 이서는 그녀의 이름을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기계적으로 천장만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모습은 마치 감정이 없는 로봇과 같았다. 이러한 행동은 미소가 만연해지던 하나와 소희의 얼굴에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마이클 천 선생님...”하나가 고개를 돌리자, 마이클 천이 손을 흔들며 저지했다.“나가서 이야기합시다.”“네.”세 사람은 곧장 병실을 빠져나왔다. 지환은 그들을 보자마자 즉시 걸어왔으나, 마이클 천에게 저지당하고 말았다.그는 턱을 들며 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저쪽에 가서 이야기하시죠.”마이클 천은 복도 끝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었다.“방금 검사해 본 결과, 모든 기억이 완전히 회복된 것 같습니다.”하나가 말했다.“하지만...”“이미 충분합니다. 방금 보여준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의 기억뿐만 아니라 그날 밤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시니까요.” “지금 보여주는 반응은 그저 전형적인 스트레스 반응일 뿐입니다.” “다만 그날 밤의 모든 일과 하씨 가문 어르신의 죽음, 그리고 하 대표님의 신분을 떠올렸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그럼... 우리는 뭘 하면 될까요?”하나가 물었다. 마이클 천은 여전히 침묵하는 지환을 바라보았다.그가 아쉬움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서 아가씨를 일상적인 생활로 복귀시키는 일입니다.”“여러분이 할
소희는 하나가 화를 쏟아내는 것을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나 언니, 이제 심씨 가문 이야기는 하지 말고, 어서 이서 언니부터 보러 가자.” “그래, 그래, 가까스로 그곳에서 도망쳤는데, 그 집안 이야기는 그만하자.” “가자! 어서 이서한테 뭘 먹고 싶은지 물어봐야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병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천장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이서를 보자 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이서야, 이제야 의식을 되찾았는데, 배고프지 않아? 뭐 먹고 싶어? 내가 사 올게.”하나가 침대 옆으로 걸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서는 여전히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가 하는 말을 전혀 듣지 못한 것 같았다.소희와 하나는 눈을 마주치며 초조해했다.두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모르던 찰나, 이서가 입을 열었다.“배 안 고파.” 하나가 기뻐하며 또 입을 열었다.“그럼 어떡해? 벌써 며칠째 밥을 먹지 않았잖아. 내가 나가서 네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포장해 오는 건 어떨까?” 이서가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싫어.”하나가 인상을 찌푸렸다.“내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 며칠이나 됐지?” 이서가 주동적으로 질문을 하자, 두 사람은 앞다투어 대답했다.“오늘로 삼 일째야!” 이서의 눈동자가 마침내 움직였다.“하은철은?”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의식을 되찾고 가장 먼저 물어본 사람이 하은철이라니, 믿을 수 없어!’ “하은철은... 죽었어.”맑고 영롱한 눈물 한 방울이 이서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말씀하셨던 유일한 소원이... 나와 하은철이 결혼하는 거였어.” “이서야...”“하지만 나는...”이서가 눈을 질끈 감았고, 그 눈물 한 방울은 머리카락에 파묻히고 말았다.“내 이기심 때문에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 드리지 않았어.” “만약... 내가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 드렸다면, 지금쯤 하은철도 죽지 않았겠지?”하나는 이서가 하은철의 죽음을 원하
“왜 하필 하씨 가문의 사람인 거냐고!”“하나야...” 이서가 마침내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 본 하나와 소희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모두 이서를 품에 안은 채, 그녀가 억눌러 두었던 억울함을 털어놓도록 내버려두었다.하나와 소희는 이서가 울다가 지친 후에야 휴지를 들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자, 자, 이서야, 이제 울지 말자.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하지환이 하은철의 작은 아빠이고, 하은철이 죽은 일들은 이미 다 지나간 일이지, 너랑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네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은 보란 듯이 잘 사는 것뿐이야.” 하나는 말하면서 또 한번 울음을 터뜨리려 했다.“이서야, 그동안 하은철 때문에 너무 고생 많았어. 이제야 좋은 날이 오나 했는데 또 하지환이라는 사람을 만나다니...” “하지만 하은철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하지환은...”“일단 아무 생각하지 말고, 우리부터 잘살아 보자, 응?” 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나부터, 우리부터 마음을 추스르자.” 이서의 감정이 점차 안정되고 이전처럼 멍한 표정을 짓지 않자, 하나가 마침내 진심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럼 이제 해야 할 일은 밥부터 잘 먹는 거야. 할 수 있지?”“응.”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마치 아이를 놀리는 것 같았다.“그럼 됐어.”“소희랑 여기서 기다려. 내가 가서 먹을 것 좀 사 올게.” 하나는 이서가 대답하기도 전에 가방을 들고 병실을 나섰다. 점차 이성을 되찾은 이서는 코를 훌쩍이며 소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소희가 여기에 있는 것을 보고 이서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소희 씨가 여기에 있으면 심씨 가문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맞다, 심태윤은...’이서가 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한 번 보았다.‘심태윤과 약속한 시간이 벌써 이틀이나 지났잖아?!’그녀는 급히 심태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이서가 긴장한 표정을 짓자, 소희가 영
“나는 하지환이 하은철의 작은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너와 하지환의 사이가 틀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우리’라고 표현하는 거야?”하나가 이서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서야, 하지환이 진심으로 미운 게 아니구나?” 하나가 알아차린 이상, 이서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어. 물론 그 사람이 한 일도 용서할 수가 없지... 나더러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사람과 잘 지내라고 한다면, 절대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나보고 마음의 응어리를 내려놓고 그 사람과 함께 하도훈을 상대하라고 한다면, 그건 할 수 있어.” “하나야, 하도훈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모든 과정을 본 건 아니겠지만, 너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을 거야.” 하나는 그날 밤 사방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나와 지환 씨의 일로 하도훈을 상대하는 데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 “더 큰 일을 위해서... 나는 지환 씨와 평화롭게 지낼 생각이야.”“그저 찰나의 ‘우리’... 인 거지.” 한숨을 내쉰 하나가 갑자기 웃으며 소희에게 말했다.“소희야, 이서가 이렇게 철이 들어버린 건, 그동안 너무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일까?” 소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한 셈이었다.“나도 철없이 소란을 피우고 싶지만, 너와 상언 오빠의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내가 어떻게 내 일 때문에 너와 상언 오빠를 해칠 수 있겠어?” 하나는 이서를 보면서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세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자, 이서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자, 이제 지환 씨랑 상언 오빠를 좀 불러줘.”“지금은 우리한테 아주 중요한 시간이야.” “1분 1초가 흐를수록, 우리는 더 큰 위험에 빠질지도 몰라.” 하나와 소희가 눈을 마주쳤다.“알았어, 우리가 불러올게.”옆 병실에 있던 지환은 소희가 부르러 갔다. 이서가 자신을 만나려
지환은 가장 앞쪽에 서 있었다.이치대로라면 그가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것이 맞지만, 문을 열지도 못하고 또 망설이기 시작했다.사람들은 그런 지환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 순간, 그는 일단 들어가면 좋은 소식을 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급기야 병실 문이 지옥의 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들어가자.”상언이 또 말했다.“너무 걱정하지는 마.”“마이클 천 선생님이 먼저 상황을 지켜봤다고 했잖아. 이제는 바로 들어가도 된다는데, 왜 갑자기 망설이는 거야?” 상언의 이 말은 지환의 마음에 닿은 듯했다.‘그래, 이서가 들어오라고 한 거잖아. 이 문만 열면 이서를 만날 수 있어.’‘그 소원만 이루어진다면, 다른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이렇게 생각한 지환은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그 순간, 병실에 있던 이서가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익숙한 기류가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하지만 이서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서 들어가세요. 문밖에 서 있지 말고요.”하나는 사람들을 밀고 병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병실에 들어선 후에야 문을 닫았다. “자.”하나는 이서의 침대 옆으로 걸어갔다.“이서야, 모두 데려왔으니까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해 봐.”이서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가능한 한 지환을 바라보지 않으려 했다.왜냐하면 그를 보면 감정이 요동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감정이 요동치면, 이성적인 사고가 힘들어질 수도 있어.’“병원에서...”이서의 손가락이 떨렸다.“하지환 씨가 하은철의 작은 아빠라는 걸 알고 기절했어요.”“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두 분이 가장 잘 알고 계시겠죠.”“그날 밤에 일어난 일을 제게 알려주시겠어요?”“그건 이미 다 지나간 일이야. 이서야, 너는 알 필요가...” 이서가 지환의 말을 끊었다.“하 선생님, 앞으로는 저를 윤이서 씨나 윤 대표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이서야!”“우리의 결혼에 대해서는.
“맞아.”상언의 목소리가 이서를 그 거대한 고통에서 빠져나오게 했다.“그렇게 큰 가업이 다른 사람의 재산이 되지 않게 하려면, 두 번째 후손을 만들어내야만 할 거야.”“하지만 한 아이가 태어나려면 적어도 1, 2년은 걸리겠지.” “정말 그 동안 하도훈이 잠잠할 거라고 생각하세요?”하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만약 하도훈이 혼자였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겠죠.”상언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하지만 하도훈의 곁에 있던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은 정말 대단했어요.” “다행히도 여긴 H국이잖아요. 다른 곳이었다면 그날 밤 우리는 모두 목숨을 잃었을 거예요.” “그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이서가 물었다. 상언이 지환을 한 번 보았다.“지환아, 말해도 돼?” 그 순간, 지환의 시선이 이서에게 향했다. 잠시 후,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말해.” “그래.”지환의 허락을 받자, 상언은 곧장 입을 열기 시작했다.“이서야, 단편소설대회에 참가했을 때 만났던 그 사람들, 기억하지?” 이서가 그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그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겪은 대규모 총격전이었으니 말이다. “그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하지호라는 사람이야, 지환이의 형이지.”“사실 형이라고는 하지만, 친형은 아니고 양자야.” “지환이의 아버지는 홀로 M국에 가셨을 때, 기차에 버려진 하지호를 만났어.”“그리고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겨 5년 동안 홀로 키워내셨지.” “후에 지환이의 어머니를 만나서 결혼하셨고, 이듬해에 지환이가 태어난 거야.”“하지만 자신의 아이가 생기면서 하지호의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줄어들었지.”“물론 지환이의 아버지는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셨지만, 그게 쉽진 않았어.”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하지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지환이를 미워하게 된 거야.” “그런 마음가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가 10살이 되던 해였던가?”“그날, 지환이의 아버지는 지환이와 하지호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려 하셨어.” “하
“그 자식은 자기 얼굴이 망가졌다는 걸 알게 된 후, 미친 듯이 행동했어!” “심지어 그 화재를 지환이가 저지른 거라고 생각했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그랬다나 뭐라나?!”여기까지 말한 상언은 주먹을 꽉 쥔 채 의자를 세게 내리쳤다.“나는 살면서 그렇게 독한 짐승을 본 적이 없어!” 제삼자인 상언이 이렇게 분노하자, 이서의 시선은 지환에게 떨어졌다. ‘지환 씨는 정말 무기력하고 분노했을 거야. 참을 수 없었겠지...’ 지환의 마음을 헤아리던 이서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다음에는요?”그녀는 주의를 돌리기 위해 소리를 높였다. “그런 다음에는...”상언이 한숨을 내쉬며 계속 말했다.“그 화재 사건이 벌어진 후, 하지호는 지환이 집안과 완전히 관계를 끊었어.” “그리고 사업에 대한 머리가 비상했던 그 자식은 곧 지환이 집안의 모든 걸 빼앗아 갔지.”“그때의 나이가 겨우 12살이었어.”“하지만 그렇게 대담한 행동은 오래가지 못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장성한 지환이를 만났거든.”“두 사람은 사업에 있어서 정말 막상막하였지.”“하지만 하지호는 본래 성격이 어두운 데다가, 행동거지도 음침했어.” “그래서 돈은 벌 수 있었지만, 그 자식과 협력하는 사람들은 오래가지 못했지.” “그리고 점점 빈틈을 파고든 지환이가 시장을 넓혀 가기 시작한 거야.” “YS그룹도 그렇게 생긴 거지.” “하지호는 지환이의 YS그룹이 강력해지는 걸 보고만 있지 않았고, 수시로 걸림돌을 던져왔어.” “그렇게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원수가 된 거야.”“하지만 하지호는 여태껏 지환이를 이긴 적이 없어.”“지금까지는...”상언은 이서를 한 번 쳐다본 후, 사람들이 ‘지금까지는’이라는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이야기를 전환했다. “하은철이 지환이를 상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하지호는 그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을 거야.” “내 추측이긴 하지만... 그 자식이 주동적으로 하도훈에게 연락해서 자신의 사람을 넘겨줬을 가능성이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